Category: 영미문학연구 50호

  • I. 들어가며 2016년 6월, 영국 국민의 51.9퍼센트가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에서 환대는 조건의 언어가 되었다. 누가 머물 수 있는가, 누가 영국인으로 인정받는가, 그 인정은 누가 부여하는가. 앨리 스미스(Ali Smith)의 『겨울』(Winter, 2017)에서 소피아 클리브스(Sophia Cleeves)가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Lux)에게 건네는 발화—“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드리죠”(“accept you as English”; 113)—는 이 조건의 구조를 한 문장 내에 응축해낸다. 받아들임은 약속되지만, 그 약속은 타자를 영국성이라는 기존의 범주—영어를 구사하고 영국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즉 문화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는 증명—로 흡수하는 조건 위에 서 있다. 본고는 이 조건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균열되는지를 추적한다. 2016년 투표를 “중추적인 순간”(“pivotal moment”; “It’s a Pivotal Moment”)으로 명명하고 4부작의 집필이 이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조형되었음을 밝힌 스미스의 인터뷰 발언들(“I Thought It Would Be about the Seasons”)이 시사하듯, 주요 현대작가들에게 브렉시트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하나의 정동적 탈구(affective dislocation)로 경험되었다. 즉, 영국성(Englishness)을 둘러싼기존의 묵시적 합의가 균열되며 그 내부의 긴장과 조건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미스의 『겨울』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6개월 후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콘월(Cornwall)의 한 저택에 모인 네 인물의 사흘을그린 소설이다.[1] 보수적 성향의 전직 사업가 소피아, 그녀의 아들이자 자연 블로그 운영자인 아트(Art), 아트가 어머니에게 소개할 여자친구로 위장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즉흥적으로 데려온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 그리고 수십 년간 동생과 의절했다 다시 호출된 활동가아이리스(Iris). 이 네 인물의 임시적이고 어색한 모임은 표면적으로는 분열된 영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힌다. 그러나 본고는 이 작품을 브렉시트의 알레고리적 재현으로 읽는 기존의 해석(이행선; Bényei; Shaw)에서 한 걸음 비켜서, 소피아와 럭스 사이의 이자관계(dyad)—두 인물이 형성하는 비대칭적 일대일 관계의 구조—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두 인물 사이에서 작동하는 정동적 비대칭이야말로 스미스가 환대(hospitality)라는 윤리적·정치적 개념을 형식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석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이자관계는아트, 아이리스와의 관계망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본고는 소피아-럭스 관계를 중심 축으로 삼되 그 관계를 굴절시키는 다른 인물들의 역할에도 주목할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문학을 다룬 기존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한쪽은 향수, 분노, 애도라는 극화된 정동에 주목해왔다. 크리스티안 쇼(Kristian Shaw)는 국민투표를 “잉글랜드의 반란”(“an English revolt”; 72)으로 명명하며 제국적 과거에 대한 향수가 어떻게 정치적자원이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로버트 이글스톤(Robert Eaglestone)은 로런 벌란트(Lauren Berlant)의 “잔혹한 낙관”(cruel optimism; 95) 개념이브렉시트에는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잔혹한 향수”(cruel nostalgia; 96)로 재구성하여, 미국의 정치 슬로건을 빗댄 표현으로 말하자면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Britain Great Again)라는 욕망을 도달할 수 없는 과거에 묶인 멜랑콜리아로 읽는데, 이 독해는 브렉시트를 추동한 집단적 정동의 구조를 설득력 있게 포착한다.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회복에 묶인 채 해소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브렉시트 지지가 합리적 이해관계 계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포기될 수 없는 정동적 집착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벌란트의 개념을 집단적 차원에서 재활성화하기보다, 소피아라는 개인이 자신의 번영을 가로막는 바로 그 영국성에 반복적으로 집착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캐슬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의 일상의 정동과 교차시킨다. 시빌 아담(Sibyl Adam)과 빅토리아 투엔스카(Wiktoria Tuńska)는 브렉시트 소설 전반에서 멜랑콜리아, 분노, 불안, 그리고 회복에 대한 취약한 열망이 반복적 정동 구조로 등장함을논증한다(Adam 61, 63; Tuńska). 그러나 이 연구들은 그 정동이 개인의 신체 차원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멜랑콜리아는집단적 감정이기 이전에 소피아의 입에서, 발화의 리듬에서, 럭스 앞에서 보이는 신체 반응에서 작동한다. 또 다른 한쪽은 브렉시트 소설을 작가 단위로 접근하여 개별 텍스트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국내에서 이행선은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잇따라 분석하며 『가을』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적대, 『겨울』의 국수주의와 거짓의 문제, 『봄』의 이민자 추방과 미디어 인종차별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했다. 특히 『겨울』 분석에서 이행선은 소피아를 국수주의자로, 아이리스를 세계시민으로 대비시키며 럭스를 당사자로서 증언하는 인물로 위치시킨다)이행선, 「브렉시트와 트럼프」 19). 이 독해는 작품의 정치적 구도를 명료하게 포착하지만, 럭스를 두 입장 사이의 매개적 인물로 환원함으로써 럭스가 소피아라는 특정 인물의 정동 구조에 미치는 교란적 효과를다루지 않는다. 영어권 학계에서도 캐서린 베르나르(Catherine Bernard), 터마시 빈예이(Tamás Bényei), 제스 반 암슬부어트(Jesse van Amelsvoort), 엘리너 바이른(Eleanor Byrne)의 연구가 있으나, 럭스를 동유럽 이주민의 표상이나 “퀴어한 환대”(“queer hosting”; 88)의 행위자로 위치시키는 데 그치며, 소피아와 럭스가 형성하는 정동적 관계를 그 구조적 비대칭성과 형식적 작동을 통해 분석한 연구는 부재하다. 이 공백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기존 연구는 브렉시트의 정치적 차원을 명료하게 조명했다. 그러나 그 정치가 일상의 미시적 차원에서수행되고 실패하는 방식은 포착하지 못했다. 특히 『겨울』을 정동 이론의 렌즈로 분석한 연구는 현재까지 부재한다. 기존 연구가 정동을 시대적 분위기나 집단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본 논문은 정동이 개별 신체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균열되는 방식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구별된다. 이데올로기 비판의 언어는 소피아가 왜 “크로아티아 여자”(“the Croatian woman”;…

    ·

    ,
  • The June 1939 air in Virginia Woolf’s Between the Acts feels heavy with what Paul Saint-Amour calls “future conditional anxiety”—a restless, anticipatory dread that acts as a medium for injury long before any bombs actually fall (7). The characters seem caught in a state of “perpetual suspense,” trapped within their own limited consciousness and unable to reach a unified understanding…

    ·

  • I. Introduction: Dystopian Science Fiction and the Genealogy of Governmental Technologies In twenty-first-century digital society, technology cannot be understood merely as a tool or a neutral medium. Data infrastructures, algorithmic systems, and platform networks organize communication, information flows, and social relations while continuously regulating individual behavior. Contemporary society is not governed solely by direct repre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