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2016년 6월, 영국 국민의 51.9퍼센트가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에서 환대는 조건의 언어가 되었다. 누가 머물 수 있는가, 누가 영국인으로 인정받는가, 그 인정은 누가 부여하는가. 앨리 스미스(Ali Smith)의 『겨울』(Winter, 2017)에서 소피아 클리브스(Sophia Cleeves)가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Lux)에게 건네는 발화—“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드리죠”(“accept you as English”; 113)—는 이 조건의 구조를 한 문장 내에 응축해낸다. 받아들임은 약속되지만, 그 약속은 타자를 영국성이라는 기존의 범주—영어를 구사하고 영국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즉 문화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는 증명—로 흡수하는 조건 위에 서 있다. 본고는 이 조건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균열되는지를 추적한다. 2016년 투표를 “중추적인 순간”(“pivotal moment”; “It’s a Pivotal Moment”)으로 명명하고 4부작의 집필이 이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조형되었음을 밝힌 스미스의 인터뷰 발언들(“I Thought It Would Be about the Seasons”)이 시사하듯, 주요 현대작가들에게 브렉시트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하나의 정동적 탈구(affective dislocation)로 경험되었다. 즉, 영국성(Englishness)을 둘러싼기존의 묵시적 합의가 균열되며 그 내부의 긴장과 조건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미스의 『겨울』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6개월 후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콘월(Cornwall)의 한 저택에 모인 네 인물의 사흘을그린 소설이다.[1] 보수적 성향의 전직 사업가 소피아, 그녀의 아들이자 자연 블로그 운영자인 아트(Art), 아트가 어머니에게 소개할 여자친구로 위장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즉흥적으로 데려온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 그리고 수십 년간 동생과 의절했다 다시 호출된 활동가아이리스(Iris). 이 네 인물의 임시적이고 어색한 모임은 표면적으로는 분열된 영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힌다. 그러나 본고는 이 작품을 브렉시트의 알레고리적 재현으로 읽는 기존의 해석(이행선; Bényei; Shaw)에서 한 걸음 비켜서, 소피아와 럭스 사이의 이자관계(dyad)—두 인물이 형성하는 비대칭적 일대일 관계의 구조—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두 인물 사이에서 작동하는 정동적 비대칭이야말로 스미스가 환대(hospitality)라는 윤리적·정치적 개념을 형식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석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이자관계는아트, 아이리스와의 관계망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본고는 소피아-럭스 관계를 중심 축으로 삼되 그 관계를 굴절시키는 다른 인물들의 역할에도 주목할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문학을 다룬 기존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한쪽은 향수, 분노, 애도라는 극화된 정동에 주목해왔다. 크리스티안 쇼(Kristian Shaw)는 국민투표를 “잉글랜드의 반란”(“an English revolt”; 72)으로 명명하며 제국적 과거에 대한 향수가 어떻게 정치적자원이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로버트 이글스톤(Robert Eaglestone)은 로런 벌란트(Lauren Berlant)의 “잔혹한 낙관”(cruel optimism; 95) 개념이브렉시트에는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잔혹한 향수”(cruel nostalgia; 96)로 재구성하여, 미국의 정치 슬로건을 빗댄 표현으로 말하자면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Britain Great Again)라는 욕망을 도달할 수 없는 과거에 묶인 멜랑콜리아로 읽는데, 이 독해는 브렉시트를 추동한 집단적 정동의 구조를 설득력 있게 포착한다.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회복에 묶인 채 해소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브렉시트 지지가 합리적 이해관계 계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포기될 수 없는 정동적 집착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벌란트의 개념을 집단적 차원에서 재활성화하기보다, 소피아라는 개인이 자신의 번영을 가로막는 바로 그 영국성에 반복적으로 집착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캐슬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의 일상의 정동과 교차시킨다. 시빌 아담(Sibyl Adam)과 빅토리아 투엔스카(Wiktoria Tuńska)는 브렉시트 소설 전반에서 멜랑콜리아, 분노, 불안, 그리고 회복에 대한 취약한 열망이 반복적 정동 구조로 등장함을논증한다(Adam 61, 63; Tuńska). 그러나 이 연구들은 그 정동이 개인의 신체 차원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멜랑콜리아는집단적 감정이기 이전에 소피아의 입에서, 발화의 리듬에서, 럭스 앞에서 보이는 신체 반응에서 작동한다.
또 다른 한쪽은 브렉시트 소설을 작가 단위로 접근하여 개별 텍스트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국내에서 이행선은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잇따라 분석하며 『가을』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적대, 『겨울』의 국수주의와 거짓의 문제, 『봄』의 이민자 추방과 미디어 인종차별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했다. 특히 『겨울』 분석에서 이행선은 소피아를 국수주의자로, 아이리스를 세계시민으로 대비시키며 럭스를 당사자로서 증언하는 인물로 위치시킨다)이행선, 「브렉시트와 트럼프」 19). 이 독해는 작품의 정치적 구도를 명료하게 포착하지만, 럭스를 두 입장 사이의 매개적 인물로 환원함으로써 럭스가 소피아라는 특정 인물의 정동 구조에 미치는 교란적 효과를다루지 않는다. 영어권 학계에서도 캐서린 베르나르(Catherine Bernard), 터마시 빈예이(Tamás Bényei), 제스 반 암슬부어트(Jesse van Amelsvoort), 엘리너 바이른(Eleanor Byrne)의 연구가 있으나, 럭스를 동유럽 이주민의 표상이나 “퀴어한 환대”(“queer hosting”; 88)의 행위자로 위치시키는 데 그치며, 소피아와 럭스가 형성하는 정동적 관계를 그 구조적 비대칭성과 형식적 작동을 통해 분석한 연구는 부재하다.
이 공백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기존 연구는 브렉시트의 정치적 차원을 명료하게 조명했다. 그러나 그 정치가 일상의 미시적 차원에서수행되고 실패하는 방식은 포착하지 못했다. 특히 『겨울』을 정동 이론의 렌즈로 분석한 연구는 현재까지 부재한다. 기존 연구가 정동을 시대적 분위기나 집단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본 논문은 정동이 개별 신체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균열되는 방식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구별된다. 이데올로기 비판의 언어는 소피아가 왜 “크로아티아 여자”(“the Croatian woman”; 248)라고 말하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그녀의 신체가 왜 구멍 뚫린 돌 앞에서 동요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영국성이 신체와 감각의 차원에서 경험되고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려면 정동 이론이 필수적이다. 본 논문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환대론과 스튜어트의 일상의 정동을 교차시킨다.
논지는 이렇다. 스미스는 소피아와 럭스의 관계를 통해 환대가 구조적으로 비대칭적인 사건임을 드러낸다. 이 비대칭성은 호명(naming), 오독(misreading), 공명(resonance)이라는 세 형식 장치를 통해 정동으로 전달된다. 데리다는 『환대에 관하여』(Of Hospitality, 2000)에서 환대를 두 양상으로 구분한다. 한편에는 주인이 손님에게 이름과 신분을 요구하며 시작되는 조건적 환대(conditional hospitality)가 있다. 데리다에따르면 환대는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이방인은 “그를 맞아들이기 위해 당신이 그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며, 그최소한의 요구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27) 라는 질문이다. 다른 한편에는 무조건적 환대(unconditional hospitality)가 있다. 이는 “절대적이고, 알 수 없고, 익명의 타자에게…호혜도, 심지어 그들의 이름조차도 요구하지 않고”(“the absolute, unknown, anonymous other…without asking of them either reciprocity…or even their names”; 25) 장소를 내어주는 환대다. 데리다는 이 두 양상이 “풀 수 없는 이율배반”(“insoluble antinomy”; 77)을 이루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단수의 환대의 법(the law of hospitality)은 복수의 환대의 법들(the laws of hospitality)—“항상 조건화되고 조건적인”(“always conditioned and conditional”; 77) 권리와 의무의 체계—없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균열을 정동의 차원에서 포착하기 위해 본고는 스튜어트의 “일상의 정동”(ordinary affects) 개념을 핵심 도구로 사용한다. 정동 이론가들 중 스튜어트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개념이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나 극화된 감정이 아니라 일상의 미시적 차원—스쳐 지나가는 신체 반응, 우연한 접촉, 의도되지 않은 공명—에서 작동하는 힘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라는 역사적 사건이 소피아의 일상적 발화와 신체적 동요 안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추적하는 데 스튜어트의 틀이 가장 적합하다. 스튜어트에게 일상의 정동이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양하고 급격한 능력들로서, 일상에 관계, 장면, 우연성, 창발의 끊임없는 운동이라는 질을 부여하는 것”(“the varied, surging capacities to affect and to be affected that give everyday life the quality of a continual motion of relations, scenes, contingencies, and emergences”; Stewart 1)이다. 그것들은 “일어나는 것들”(“things that happen”; 1)로서 의도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으며, “넓은 유통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공적 감정들”(“public feelings that begin and end in broad circulation”; 2)인 동시에 “겉보기에 친밀한 삶들을 구성하는 것들”(“the stuff that seemingly intimate lives are made of”; 2)이다. 정동은 “힘을 전도하고 연결, 경로, 단절을 지도화하는 생동적인 회로”(“an animate circuit that conducts force and maps connections, routes, and disjunctures”; 3)로서, 의미의 질서 안에서가 아니라 신체들, 꿈들, 사회적 세계들을 통과하며 밀도와 질감을 얻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스튜어트가 말하는 공적 감정은 집단적 유통 안에 있지만 언제나 개별 신체를 통과하며 경험된다. 소피아와 럭스의 이자관계는 바로이 지점—공적으로 유통되는 영국성의 정동이 두 신체 사이의 미시적 관계 안에서 수행되고 균열되는 자리—에서 분석의 초점이 된다. 본고는 스미스가 소피아와 럭스의 만남을 정확히 이 일상의 정동의 차원에서 구성하고 있음을 보일 것이다. 소피아가 럭스 앞에서 무의식적으로보이는 신체적 동요, “구멍 뚫린 돌”(“holed stone”; 272)을 만지는 손의 움직임, 자매가 우연히 화음을 이루는 순간—이 장면들은 어떤 인지적변화나 정치적 각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들은 환대의 조건이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새어나가는 정동적 잔여(affective residue)다.
이 두 이론적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본 논문의 핵심 개념인 정동적 비대칭(affective asymmetry)이 구체화된다. 비대칭은 단순히 권력의 불균형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힘의 크기와 방향이 다른 두 정동이 하나의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한다. 소피아는 이름을 요구하고 대체하고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강한 정동, 즉 데리다가 말하는 주권적 의지를 행사한다. 럭스는 이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럭스의정동은 미끄러지고 변형되고 흘러넘친다. 소피아의 언어가 경계를 그을 때, 럭스의 음성은 그 경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이 힘의 방향과 크기의 불일치가 비대칭의 핵심이다. 비대칭은 전복이 아니라 가시화로 귀결된다. 럭스의 정동이 소피아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은 그 힘이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건적 환대의 언어가 작동하는 차원과 일상의 정동이 새어나오는 차원은 서로교차하지만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이 비대칭이 전복이 아니라 가시화에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복은 같은 차원에서의 충돌을 전제하지만, 럭스의 정동은 소피아의 언어가 작동하는 차원 밖에서 미끄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소피아는 럭스를 통제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정동적 비대칭은 이처럼 가시화의 조건이자 동시에 한계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은 호명의 정치를 다룬다. 소피아의 발화들에서 작동하는 호명의 문법을 분석하며, 럭스의 자기명명이 문법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살핀다. 3장은 오독을 환대의 형식으로 읽는다. 럭스가 셰익스피어의 Cymbeline (『심벨린』)을 “심멜린”(“Cimmelleen”; 315)으로 변형하여 발화하는 럭스의 음성이 정전의 권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분석한다. 이 오독은 단순한 발음 오류가 아니라 데리다적 의미의 환대—타자의 언어를 자신의 체계로 흡수하지 않고 그 이질성을 유지하는 환대—의 음성적 형식이다. 4장은 공명의 장면들을다룬다. 소피아가 구멍 뚫린 돌 앞에서 보이는 신체적 동요, 자매가 노래로 화음을 이루는 순간, 아트가 발견하는 Cymbeline (『심벨린』)에눌린 꽃의 흔적이 호명이 실패하거나 포기되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정동을 보여준다.
본 논문의 궁극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스미스가 『겨울』에서 그리는 것은 소피아의 변화나 영국 사회의 화해가 아니다. 스미스가 가시화하는 것은 영국성이라는 정동적 구조의 취약함, 즉 영국성이 일관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매 순간 호명을 통해 수행되어야 하고 매 순간작은 균열에 노출되는 불안정한 구성물이라는 사실이다. 럭스는 이 구조를 전복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 구조의 비대칭성과 취약성을 정동의차원에서 가시화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독해는 브렉시트 시대 영국 문학을 이데올로기 비판의 차원에서 읽어온 기존 연구에 형식적·정동적차원의 분석을 추가하며, 동시대 영문학에서 환대의 윤리가 어떻게 미시적 정동의 정치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II. 호명의 정치: 이름을 묻는 자와 이름을 거부하는 자
데리다는 환대의 시작을 이름의 요구로 설명한다. 환대의 관습 안에서 이방인은 “그를 맞아들이기 위해 당신이 그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시작하는 사람”(“is someone with whom, to receive him, you begin by asking his name”; 27)이며, 그 최소한의 요구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the minimal demand being: ‘What is your name?’”; 27)라는 질문이다. 이름을 묻는 행위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를 법적 주체로 호명하는 동시에 주인이 환대의 조건을 통제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권력의 행사다. 이름을 요구하는 자가 환대의 문을 열거나 닫는다. 이 문법이 『겨울』에서 소피아가 럭스를 맞이하는 방식을 구조화한다. 그러나 럭스의 첫 번째 발화는 이 문법을 선제적으로 뒤흔든다.
소피아가 이름을 묻기 전에, 럭스는 먼저 말한다. “나는 럭스입니다”(“I am Lux”; 74). 이 세 단어는 데리다적 환대의 문법을 교란한다. 주인이 이름을 요구하기 전에 손님이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면, 질문의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럭스라는 이름 자체가 흥미롭다. “Lux”는 라틴어로 “빛”(light)을 뜻하는, 크로아티아어가 아닌 유럽 문화권의 공유 어휘다. 이미 영어권 맥락에서 읽힐 수 있도록 번역된 이름인 셈이다. 럭스는 주인의 명명권을 선점함으로써 조건적 환대의 첫 번째 작동 지점을 차단한다. 럭스의 자기 명명이 선제적 교란이라면, 소피아의 응답은그 교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소피아는 럭스가 아트의 여자친구 샬럿(Charlotte)을 연기하고 있음을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럭스가 자신의 이름을 주장하는 순간, 소피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누구이건 간에, 나에게 당신은 샬럿입니다”(“Whoever you are to yourself, you are Charlotte to me”; 246). 엘리너 바이른(Eleanor Byrne)은 스미스의 서사가 “일종의 근본적인 ‘퀴어한’ 환대”(“a kind of radical ‘queer’ hosting”; 88)를 실천한다고 읽지만, 소피아의 이 발화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바이른의 독해에서 핵심은 주객의전도다. 『겨울』의 럭스를 포함하여 각 권의 이주민 혹은 외부자 인물이 손님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 인물들을 맞아들이고 피난처를 제공하는 호스트로 기능한다는 것이다(88). 바이른이 말하는 환대가 관계를 열어두는 실천이라면, 소피아의 명명은 관계를 닫아버리는 선언이다. 그리고 럭스가 바이른적 의미의 호스트라면, 소피아는 자신이 호스트의 자리에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이 어긋남 자체가 본고가 말하는 정동적 비대칭의 한 형태다.
여기서 “to yourself”와 “to me”의 대립이 핵심이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누구이건 간에”라는 양보절은 관용의 제스처처럼 들린다. 럭스의자기 인식의 영역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나에게 당신은 샬럿입니다”(“you are Charlotte to me”; 246)가그 양보를 즉시 무효화한다. 소피아의 인식 안에서 럭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샬럿만이 존재한다. 자기 명명의 권리를 형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이중 구조다. 곧이어 덧붙여지는 “그것이 내 견해입니다”(“That’s my view”; 246)는 이 호명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한다. 짧은 문장이 대화를 닫아버린다. 주목할 것은 럭스의 반응이다. 럭스는 “나는 럭스입니다”(“I am Lux”; 74)라는 자기명명 이후 소피아가 그녀를 샬럿으로 부르는 선언에 직접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녀는 논쟁하지 않고, 정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주장하지도 않는다. 럭스는 소피아의 명명을 그냥 통과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굴복이 아니다. 럭스는 이후에도 스스로를 럭스로 인식하고 행동한다.럭스는 소피아의 언어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소피아가 “샬럿”이라 부를 때 럭스는 그 이름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것은 소피아의 언어가럭스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리다가 말하는 주인의 주권적 명명이 손님의 신체에 닿지 않는 것이다. 소피아는 환대의 조건을 설정하지만, 럭스는 그 조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 불일치가 정동적 비대칭의 핵심적인 형식이다.
이 호명의 권력은 이름을 부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름을 지우는 데까지 나아간다. 럭스라는 고유명이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소피아는 그녀를 “그 크로아티아 여자”(“the Croatian woman”; 248)로, 이후에는 “외국인 소녀”(“the foreign girl”; 266)로 부른다.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가 “절대적이고, 알 수 없고, 익명의 타자”(“the absolute, unknown, anonymous other”; 25)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소피아의 조건적 환대는 이름을 부여받은 타자를 다시 익명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럭스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소피아의 언어 안에서 그 이름은 지워지고 민족적 범주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호명은 럭스를 개인이 아니라 영국 밖에서 온 유형으로 고정시킨다. 베드라나벨리치코비치(Vedrana Veličković)는 브렉시트 담론이 동유럽인을 유럽의 내부적 타자로 주조해 왔다고 분석하는데(648-49), 소피아의 발화는 이 담론적 패턴을 일상의 대화 차원에서 재생산한다.
소피아의 “크로아티아 여자” (248) 라는 호명은 오랜 표상의 역사가 한 인물의 입을 통과해 나오는 형태다. 소피아는 그 역사를 의식하지않는다.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언어를 사용할 뿐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이 호명의 담론적 위치를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소피아는자신을 “개방적”(open-minded; 113)이라 여기며, 전후 세대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스스로가 다르다고 믿는다. 그녀의 언어는 이 자기 이해를배반한다. 스튜어트가 말하는 공적 감정의 순환이 가리키는 것이 정확히 이런 회로다. 소피아의 발화는 그녀의 개인적 편견의 표현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공적 감정이 한 인물의 입을 통과해 나오는 형태다.
이 모든 발화의 귀결점은 소피아가 럭스에게 건네는 조건적 승인이다. “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 드리죠”(“accept you as English”; 113). 이 발화에서 결정적인 것은 “as”라는 전치사다. “영국인으로서”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럭스가 영국성의 범주 안으로 편입될 때에만 환대가유효하다는 조건을 내포한다. 받아들임이 약속되지만 그 약속은 타자를 기존의 범주로 흡수하는 조건 위에 서 있다. 데리다에 따르면 주인의환대는 근본적으로 주권의 행사와 연결되어 있다.
집 위에서 자기 자신의 주권 없이는, 고전적 의미의 환대도 없다. 그러나 또한 유한성 없이는 환대도 없기 때문에, 주권은 오직 걸러내고, 선택하고, 따라서 배제하고 폭력을 행사함으로써만 행사될 수 있다.
No hospitality, in the classic sense, without sovereignty of oneself over one’s home, but since there is also no hospitality without finitude, sovereignty can only be exercised by filtering, choosing, and thus by excluding and doing violence. (53-54)
자신을 관용적이라 여기는 소피아의 환대 안에도 이 주권적 걸러냄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 인정은 약속되지만 인정의 조건을 정의하는 권한은 소피아에게 남아 있다.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흉내(mimicry) 개념은 이 발화의 구조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바바에 따르면 식민 담론의 흉내는 “개혁된, 인식 가능한 타자에 대한 욕망, 거의 동일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차이의 주체”(“the desire for a reformed, recognizable Other, as a subject of a difference that is almost the same, but not quite”; 122)를 구조화한다. “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드리죠”에서 소피아가 허용하는 “as”는정확히 이 “거의 동일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위치를 럭스에게 부여한다. 럭스는 영국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 인정은 소피아의승인을 조건으로 한다. 럭스는 유사-영국인(almost English)의 위치, 즉 영국성의 범주 안으로 완전히 편입될 수도, 그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나지도 않는 부분적 현존(partial presence)에 놓인다. 바바가 흉내를 “동시에 닮음이자 위협”(“at once resemblance and menace”; 123)이라고 말할때, 그는 이 부분적 현존이 지배 담론의 권위를 안정화하는 동시에 불안정화한다고 본다. 소피아의 조건부 포용은 럭스를 통제 가능한 범주안에 위치시키려 하지만, 럭스의 부분적 현존은 그 범주의 경계가 자의적임을 드러낸다. “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 드리죠” (113) 는 관용의발화이자 영국성이 부여될 수 있는 것이라는—따라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사실을 폭로하는 발화다. 그러나 이 폭로는 소피아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바바가 흉내의 “위협”이 지배 담론의 권위를 불안정화한다고 말할 때, 그 불안정화는 지배 담론 바깥에서 가시화된다. 소피아는 자신의 발화가 영국성의 자의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영국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13). 이 무지가 조건적 환대의 정동적 구조다. 주권적 의지는 자신의 조건성을 보지 못할 때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이 장에서 분석한 발화들은 이름을 선점하고, 대체하고, 범주로 환원하고, 조건을 부과하는 하나의 일관된 패턴을 형성한다. 이 패턴 안에서 환대는 구조적으로 조건적이며, 그 조건의 언어는 영국성이다. 소피아의 발화들이 조건적 환대의 문법을 반복하고 강화하는 회로라면, 다음 장의 “심멜린”은 그 회로가 음성의 차원에서 처음으로 끊기는 지점이다.
III. 오독의 환대: “심멜린”과 정전의 재구성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를 이름도, 호혜도, “가장 작은 조건의 이행조차도 요구하지 않고”(“without asking a name, or compensation, or the fulfilment of even the smallest condition”; 77)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것을 언어의 차원으로 옮기면, 타자의 언어를 자신의 체계로 흡수하거나 교정하지 않고 그 이질성을 유지하는 것이 된다. 이 관점에서 정전(canon)은 조건적 환대의 언어적 형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정전은 영국성의 문화적 핵심으로 기능해 왔으며, 그것에 “제대로” 접근하는 능력—올바른 발음, 올바른 이해, 올바른 재현—은 영국 문화 공동체 안으로의 편입 조건으로 작동해왔다. 다시 말해 정전은 문화적 동질성을 검증하는 장치이며, 그 검증의 구조는 데리다가 말하는 이름을 요구하는 환대의 문법과 동형적이다.
럭스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영국에 왔다. 정전이 이주의 동기가 된 것이다. 이 설정은 중요한데, 럭스와 셰익스피어의 관계가 조건적 환대의 문법 바깥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럭스는 소피아의 허락을 받아 셰익스피어를 읽은 것이 아니다. 영국성의 승인을 받아 정전에 접근한것도 아니다. 럭스는 혼자, 크로아티아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었고 그것이 이주의 동기가 되었다. 정전과 럭스의 관계는 소피아와 무관하게이미 존재한다. “심멜린”은 이 독립적인 관계의 음성적 형태다. 소피아가 부여하려는 영국성의 조건 이전에, 럭스는 이미 셰익스피어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정전은 그녀의 입에서 변형된다. “Cymbeline”의 발음 [sɪmbəlaɪn]은 “Cimmelleen”으로 미끄러진다. 자음 /b/가 탈락하고, 이중모음 [aɪ]가 단순화되며, 마지막 음절이 길게 늘어진다. 이 변형은 무작위가 아니다. 크로아티아어 음운 체계가 영어음운 체계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변형이다. 셰익스피어의 권위 있는 세 음절 구조 “Cym-be-line”이 더 부드럽고 길게 늘어지는“Cim-mel-leen”으로 재구성된다. 정전의 딱딱한 음성적 윤곽이 럭스의 입에서 곡선을 얻는다. 베르나르(Catherine Bernard)가 스미스의 4부작에서 감각과 소리의 미시적 어긋남이 감정의 구조를 실어 나른다고 말할 때(“It was the worst of times” 10), 그가 포착하는 것이 정확히 이 종류의 변형이다. “심멜린”은 의미의 차원이 아니라 음성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어긋남이며, 그 어긋남이 정동적 힘을 갖는다. 이 발화의 의미는 2장의 소피아-럭스 관계와 맞물려 더 선명해진다. 소피아는 『겨울』 내내 럭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범주를 부과하면서 언어를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소피아의 언어가 이름을 고정시키고 범주를 확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럭스의 언어는 음성의 층위에서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정전의 딱딱한 윤곽에 곡선을 부여한다. 이것은 소피아의 언어 게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언어적 실천이다.
주목할 것은 아트(Art)의 반응이다. 아트는 그 발음을 교정하지 않는다. 럭스가 변형된 음성으로 셰익스피어를 호명할 때, 아트는 그 변형을 오류로 처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2장에서 분석한 소피아의 방식과 정확히 대비된다. 소피아는 럭스의 이름을 대체했다. 아트는럭스의 음성을 교정하지 않는다. 스튜어트가 말하는 일상의 정동은 바로 이런 순간에 발생한다. 교정되지 않은 오독, 언어의 표면 위에서 미끄러지는 “일어나는 것들”(1). “심멜린”은 틀린 발음이 아니라 하나의 정동적 사건이다. 교정의 충동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멈추는 것, 변형된 음성을 그대로 두는 것—이 침묵 자체가 정동적 사건을 구성한다. 데리다의 환대 개념으로 돌아오면, 이 장면은 무조건적 환대가 언어의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절대적 환대는 내 집을 열고…절대적이고, 알 수 없고, 익명의 타자에게 장소를 내어주는것을 요구한다”(“absolute hospitality requires that I open up my home and…give place to them…without asking of them either reciprocity…or even their names”; 25). 아트는 “심멜린”을 교정하지 않음으로써 셰익스피어라는 정전의 권위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럭스의 입에서 나온 변형된 음성을 그 이질성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이 소설에서 무조건적 환대가 실현되는 방식이다. 극적인 선언이나 정치적 제스처가아니라, 교정하지 않는 것, 침묵하는 것, 그 음성을 그대로 두는 것. 데리다가 law와 laws의 긴장을 설명할 때, 즉 복수의 조건적 환대의 법들이단수의 무조건적 환대의 법을 끊임없이 제한하는 구조를 묘사할 때 (77), 그 긴장이 이 장면에서 음성의 차원으로 압축된다. 아트의 침묵은복수의 법들—정전의 권위, 올바른 발음의 요구—이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자리다. 이것은 무조건적 환대의 완전한 실현이 아니다. 교정 권위의 일시적 정지, 데리다가 말하는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 사이의 긴장이 음성의 차원에서 압축된 순간이다. 이 침묵의 의미는 소피아의 방식과 대비할 때 더 선명해진다. 소피아는 럭스에게 샬럿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이 내 견해입니다”(“That’s my view”; 246)로 대화를 ‘닫았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조건을 강화하는 행위였다. 아트는 언어를 행사하지 않는다. 교정하지 않고, 정의하지 않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소피아의 언어가 적극적인 조건 부과라면, 아트의 침묵은 조건 부과의 포기다. 데리다가 말하는 무조건적 환대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아니라 하지 않는 것, 요구하지 않는 것, 교정하지 않는 것으로 실천된다. 아트의 침묵은 그 실천의 가장 소박한 형태다.
“심멜린”은 정전의 권위를 전복하지 않는다. 럭스는 셰익스피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영국에왔고, 셰익스피어를 자신의 신체적 운동성 안에서 다시 발화한다. 이 오독은 정전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정전의 조건적 권위, 즉 올바른 발음으로만 접근 가능한 권위를 무효화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법들의 체계가 이 순간 잠시 정지하고, 그 자리에서 단수의 환대의 법이음성의 형태로 작동한다. 정전은 이 변형된 음성 안에서 살아남는다. 살아남는 방식이 조건적 환대의 방식과 다를 뿐이다. 스튜어트가 정동을 “힘을 전도하고 연결, 경로, 단절을 지도화하는 생동적인 회로”(3)로 설명할 때, “심멜린”이 만들어내는 것이 정확히 이 회로다. 교정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자리, 럭스의 음성과 아트의 침묵 사이에, 조건 부과가 일시적으로 유예된 연결의 가능성이 잠시 열린다.
다음 장에서는 언어가 완전히 물러서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정동적 공명을 살핀다. 소피아의 신체적 동요, 자매의 화음, 눌린 꽃의 흔적이호명이 실패하거나 포기되는 곳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일상의 정동의 형태들이다.
IV. 공명의 정동: 언어가 멈추는 자리
2장과 3장에서 분석한 장면들은 언어의 차원에서 작동했다. 소피아의 발화들은 이름을 통해 조건적 환대의 구조를 드러냈고, 럭스의 “심멜린”은 음성의 차원에서 그 구조를 교란했다. 그러나 『겨울』에는 언어가 실패하거나 스스로 물러서는 장면들이 있다. 일상의 정동은 정확히 이 언어 이전, 언어 이후의 자리에서 작동한다. 정동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다양하고 급격한 능력들”(“the varied, surging capacities to affect and to be affected”; Stewart 1)로서 의미화되기 전에 신체에 작용한다. 그것들은 단순히 “일어나는 것들”(1)이다. 의도나 통제 없이, 때로는 주체도 모르는 채 작동한다. 오딜 에인더스(Odile Heynders)가 스미스의 소설이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적 의미에서 감각의 분배를 재조직한다고 주장할 때, 그가 가리키는 것은 이처럼 언어 이전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지각의 재편이다. 이 장에서 분석하는 세 장면, 즉구멍 뚫린 돌, 자매의 화음, 눌린 꽃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발생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소피아는 아이의 머리 형상을 한 돌(child-stone-head)과 상상 속에서 대화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돌은 소피아의 내면 풍경을 구성하는 물질적 상관물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이 신체적·물질적 형태로 응결된 이미지다. 소피아가 해변에서 “구멍 뚫린 돌”(holed stone; 272)을 발견하고 만지는 장면은 이 맥락 안에서 읽혀야 한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밀도 높은 순간중 하나다. 소피아는 돌을 손에 쥐고 그 구멍을 통해 무언가가 통과하는 느낌을 경험한다. 그 느낌은 “감각적이고, 신체적이고, 즉각적”(“sensory, physical, immediate”; 272)이다. 세 형용사가 각기 다른 층위를 가리킨다. “감각적”은 지각의 차원, “신체적”은 의지가 개입하기 전의 물리적 차원, “즉각적”은 언어적 매개 이전의 시간적 차원이다. 이 세 층위가 겹쳐지는 자리에서 정동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느낌이 언어로 올라오는 순간, 소피아는 스스로를 차단한다. “그것은 돌이다”(“It is a stone”; 272). 이 짧은 자기 선언은 신체의 반응을 언어로 봉쇄하려는 시도다.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경험이 무엇인지 인정해야 한다. 스튜어트가 말하듯 정동은 “일상이 강도를 등록하는 방식”(“The ordinary registers intensities”; 10)으로 작동한다. 소피아의 신체는 이미 그 강도를 감지했다. 언어는 그것을 뒤쫓아 왔지만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소피아는 이감각적 경험을 언어로 완성하는 대신 즉각 명명으로 봉쇄한다. “그것은 돌이다” (272) 라는 선언은 신체가 감지한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방어적 축소다. 느낌이 언어로 올라오는 순간 그것을 가장 단순한 사실 명제로 환원함으로써, 소피아는 그 경험이 열어놓을 수 있는 균열을닫아버린다. 그러나 스미스의 서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피아는 이어서 자신의 몸 안에도 구멍이 있어서 잉여가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상상을 하다 스스로 멈춘다. 구멍 뚫린 돌은 소피아가 자신의 신체에서 감지하는 무언가를 물질적으로 형상화한다.돌의 구멍과 소피아의 상상 속 구멍은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무언가가 통과할 수 있는 개구부(opening), 즉 조건이 일시적으로 열리는 자리다.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법이 조건 없이 타자에게 집을 여는 것이라면, 소피아가 상상하는 구멍은 그 열림의 신체적 등가물이다. 그러나소피아는 이 상상을 언어로 완성하기 전에 스스로 차단한다. 열리려는 충동과 닫으려는 의지의 긴장이 이 짧은 장면에 압축되어 있다.
자매가 화음을 이루는 장면은 언어의 실패가 다른 방식의 연결로 이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소피아와 아이리스는 수십 년간 의절 상태였다.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한 저택에 모인 두 사람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 차이로 격렬하게 충돌한다. 소피아는 럭스를 “외국인소녀”(“the foreign girl”; 266)으로 규정하고 아이리스의 활동주의를 거부하며, 아이리스는 소피아의 국수주의적 폐쇄성을 공격한다. 대화는 “당신이 싫다”(“I hate you”; 235)에서 멈춘다. 이 언어적 단절 이후에 화음 장면이 발생한다. 언어는 두 사람을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두 사람은 “다른 언어로 된 노래 안으로 자연스럽게 함께 떨어지고…화음을 이룬다”(“They fall together naturally into a song in another language… then they break into harmony”; 301).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사 “fall”이다 (301). 화음을 이루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두 신체가 같은 리듬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의지의 행사가 아니라 중력에 가까운 사건이다. “다른 언어로 된 노래”(301)라는 세부 사항도 중요하다. 두 자매는 영어로 말할 때 분열되었지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외국어 노래 안에서 화음을 이룬다. 언어의 의미적 차원이 사라지는 순간, 음성의 리듬과호흡만이 남는 순간, 연결이 가능해진다. “다른 언어로 된 노래”가 어떤 언어인지 소설은 명시하지 않는다. 이 의도적인 미확정이 중요하다.노래의 언어가 특정되지 않음으로써 그것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음성이 된다. 소피아의 영어도, 아이리스의 이념적 언어도 아닌, 의미이전의 순수한 음성적 차원이다. 노래가 특정 언어로 확정되는 순간, 그것은 다시 어떤 공동체의 소유가 되고 조건적 환대의 문법 안으로 회수되기 때문이다. 두 자매가 이 노래를 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언어 이전의 어떤 공유된 과거를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 공유된 과거가인종적으로 동질한 영국성의 회로 위에 형성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본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정체성의 회로를 작동시키는가가 아니라, 언어가 실패한 자리에서 신체들 사이의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사실 자체다. 화음은 그 연결의 내용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조건적 환대의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다른 종류의 접촉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언어가 그들을 분열시키기 전의 신체적 기억이 노래를 통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스튜어트가 말하는 정동적 회로가 여기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화음은현재의 사건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회로는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스튜어트가 말하는 “힘을 전도하고 연결, 경로, 단절을 지도화하는 생동적인 회로”(3)가 언어 없이 작동한 것이다. 그레이스 코탄(Grace Cowtan)은 스미스의 정지된 시간의 미학이 내러티브의직접적 추동력을 유예시킴으로써 공명 자체를 정동적으로 생산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분석하는데(175-77), 이 화음 장면이 그 원리의 가장 선명한 예다. 이 화음이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해결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피아와 아이리스의 갈등은 화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화음은 화해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이 순간 정동적 비대칭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신체는 같은 리듬 안으로 떨어진다. 힘의 방향도,크기도 다르지 않다. 정동이 언어와 무관하게 신체들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의 일시적인 가시화다. 2장에서 소피아가 언어를 통해 조건을 부과했다면, 이 장면에서 소피아의 신체는 언어 없이 조건 없이 다른 신체와 공명한다. 데리다적 의미의 무조건적 환대가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 신체적 사건으로 발생하는 순간이다.
아트가 발견하는 눌린 꽃의 흔적은 이 공명이 시간을 가로질러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트는 오래된 『심벨린』 안에서 장미 꽃봉오리가 눌린 자국을 발견한다. 꽃은 사라졌지만 그 압력이 페이지를 변형시켰다. 스미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꽃의 유령…여전히 거기에, 그 생명의 자취가 페이지 위의 단어들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영락없이 불 켜진 초의 끝으로 이어지는오솔길처럼
the ghost of a flower… still there, the mark of the life of it reaching across the words on the page for all the world like a footpath that leads to the lit tip of a candle. (319)
시간이 압축되어 물질적 흔적으로 남은 것, 그 흔적이 다음 신체에 닿아 새로운 정동적 사건을 촉발하는 것. 코탄은 스미스의 정지된 시간이“이미지들 사이의 비시간적 연결을 정동적으로 생산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분석하는데(179-80), 눌린 꽃이 정확히 그런 이미지다. 이 이미지가 포착하는 것은 스튜어트가 “넓은 유통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공적 감정들”(2)이라고 부른 것의 물질적 형태다. 누군가의 신체적 접촉이남긴 흔적이 시간을 건너 다른 신체에 닿는다. 정동은 사건이 끝난 후에도 잔류하며, 그 잔류가 다음 신체에 힘을 전도한다.
아트가 이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장에서 아트는 “심멜린”을 교정하지 않음으로써 무조건적 환대를 실천한 인물이며, 바로 그가 럭스의 변형된 음성이 책의 물질성 안에 새긴 잔여를 발견한다. 럭스의 변형된 음성이 음성적 잔여라면, 눌린 꽃은 그 음성이 책의 물질성 안에 새긴 신체적 잔여다. 두 경우 모두 원본은 사라졌지만 그 압력의 흔적이 남아 다음 순간에 작용한다. 빈예이가 『겨울』의 초현실적 이미지들을 정치적 혼란의 상징으로 읽을 때(25-26), 그는 이 이미지들의 정치적 차원을 포착한다. 눌린 꽃의 흔적은 그 정치적 차원에 정동적 차원을 추가한다. 단순히 무언가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재가 된 것이 현재에도 여전히 힘을 행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정동적 잔여(affective residue)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세 장면을 묶어보자. 이 소설에서 정동이 가장 선명하게 가시화되는 것은 언어가 실패하거나 스스로 물러서는 순간이다. 소피아는 “그것은 돌이다”라고 단언해 보지만 신체는 이미 동요했다. 자매는 대화하지 않지만 화음을 이룬다. 꽃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페이지에 남아 있다. 세 장면 중 어느 것도 이데올로기적 입장의 변화나 정치적 각성을 직접 가리키지 않는다. 소피아의 신체는 동요했지만 그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고, 자매의 화음은 화해가 아니며, 꽃의 흔적은 어떤 주제적 해결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스튜어트가 말하는 일상의 정동이작동하는 방식, 즉 “규칙적으로, 간헐적으로, 긴급하게, 혹은 약한 떨림으로서”(“regularly, intermittently, urgently, or as a slight shudder”; 10) 일상의 표면 위에서 등록되는 강도들이다. 조건적 환대의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정동이 새어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유토피아적 해결이 아니다. 소피아는 변화하지 않는다. 자매의 갈등은 계속된다. 꽃의 흔적은 희미하다. 공명은 영국성의 구조를 전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 구조의 균열을, 언어 이전의 차원에서, 잠시 가시화할 뿐이다. 스미스는 이 균열을 통해 텍스트의 정치성을 형식적으로 조직한다.
V. 나가며
앨리 스미스의 『겨울』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성을 이데올로기적 명제가 아니라 정동적 구조로 제시한다. 소피아의 콘월 저택에서 사흘동안 벌어지는 일들—이름을 둘러싼 발화들, 변형된 음성, 신체적 동요와 화음—은 영국성이 어떻게 매 순간 수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수행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준다. 본 논문은 이 과정을 호명, 오독, 공명이라는 세 형식적 장치를 통해 추적했다.
2장에서 분석한 소피아의 발화들은 조건적 환대의 문법이 언어 차원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냈다. 이름을 요구하고, 대체하고, 범주로환원하는 패턴 안에서 영국성은 타자를 흡수하거나 배제하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조건적 환대의 구조, 즉 주인이 걸러내고선택함으로써만 행사될 수 있는 주권이 소피아의 일상적 발화들 안에서 반복된다. 3장의 “심멜린”은 이 구조가 음성의 차원에서 교란될 수있음을 보여줬다. 럭스는 정전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정전의 조건적 권위를 무효화한다. 교정하지 않는 것, 그 음성을 그대로 두는 것으로실천되는 이 오독은, 무조건적 환대가 거창한 선언 없이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4장의 세 장면은 언어가 완전히 물러서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공명을 포착했다. 구멍 뚫린 돌 앞에서의 신체적 동요, 자매의 화음, 눌린 꽃의 흔적—이것들은 스튜어트가 말하는 일상의 정동이 조건적 환대의 언어가 닫히는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방식을 보여준다. 세 장을 관통하는 논지는 하나다. 세 장의 분석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것은, 영국성이 그것을 수행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가 새어나가는 신체적 균열 사이의 긴장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럭스는 이 구조를해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로 인해, 영국성을 수행하기 위해 소피아가 들이는 노력과 그 노력 아래에서 새어나오는 것들 사이의간극이 처음으로 가시적인 무언가가 된다. 소피아와 럭스의 이자관계를 형식적·정동적 차원에서 읽을 때,『겨울』은 브렉시트 소설이라는범주를 넘어 환대의 구조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된다.
이 물음은 브렉시트 문학 연구의 지형 안에서 특정한 이론적 기여를 수행한다. 기존 연구는 환대를 주로 윤리적 의무나 정치적 입장의 문제로 다루어왔다. 이글스톤과 쇼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브렉시트 소설을 추동하는 정동을 향수, 분노, 애도라는 강렬하고 극화된 감정들의 차원에서 분석해 왔는데, 이 접근은 브렉시트의 정치적 차원을 명료하게 조명하지만 그 정치가 개별 신체를 통과하며 수행되고 균열되는 방식까지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2] 데리다의 환대론은 이 논의에 철학적 정밀성을 부여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신체적 차원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스튜어트의 일상의 정동을 데리다의 환대 개념과 교차시킴으로써, 본 논문은 조건적 환대가 선언적 발화만이 아니라 신체의 동요, 화음, 물질적 흔적이라는 형태로도 작동하고 균열된다는 것을 보였다. 환대는 이름을 묻고 조건을 부과하는 언어의 차원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언어가 멈추는 자리에서도 작동한다. 데리다의 환대론은 이 지점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데, 스튜어트의 일상의 정동이 그 공백을 채운다. 환대는 발화되고 철회되고 조건화될 뿐만 아니라, 신체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반응하고, 화음이 의도 없이발생하고, 꽃의 흔적이 시간을 건너 전달되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문학 텍스트는 이 차원을 포착하는 데 특히 유리한 형식이다. 『겨울』이 브렉시트 문학의 범주 안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스미스가 이 미시적 정동의 차원을 형식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때문이다.
스미스가 『겨울』에서 제안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해결이 아니다. 소피아는 마지막까지 “그 크로아티아 여자”(“the Croatian woman”; 248)를 떠올린다. 자매의 화음은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다. 눌린 꽃의 흔적은 희미하다. 스미스가 가시화하는 것은 이 균열들, 즉 조건적 환대의언어가 작동하는 순간마다 그 언어의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정동적 잔여들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성은 일관된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매 순간 반복되어야 하고 매 순간 조금씩 실패하는 수행으로서 존재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 사이의 “풀 수 없는이율배반”(Derrida 77)은 소피아의 발화들 안에서, 아트의 침묵 안에서, 자매의 화음 안에서 매 순간 재연되는 살아있는 긴장이다. 스미스는브렉시트 이후 영국성의 조건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들이 작동하고 실패하는 방식을 독자의 신체에 전달한다.
본 논문의 분석은 몇 가지 후속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소피아-럭스 이자관계에 집중한 틀을 아트나 아이리스와 럭스의 관계로확장한다면『겨울』의 정동적 지형도가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둘째, 스미스의 계절 4부작 전체— 『봄』의 이민자 구금 시설, 『가을』의 엘리자베스와 다니엘의 관계—를 환대의 구조라는 렌즈로 읽거나, 셋째,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나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처럼 이주와 귀속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대 영국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함으로써 이 논문의 논지를 더 넓은 맥락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의 이론적 기여는 두 차원에서 작동한다. 첫째, 브렉시트 문학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을 제안한다. 기존 연구가 이데올로기 비판의언어로 텍스트를 읽어왔다면, 본 논문은 정동 형식 분석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신체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실패하는 방식을 추적했다. 둘째, 환대 연구의 형식적 확장을 수행한다. 데리다의 환대론이 철학적 정밀성을 갖추고 있다면, 스튜어트의 일상의 정동은 그 개념이 일상의 신체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균열되는지를 포착하는 도구를 제공한다. 문학 텍스트는 이 두 차원을 매개하는 형식이다. 『겨울』이 브렉시트 문학의 범주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스미스가 조건적 환대의 구조와 그 구조의 정동적 잔여를 동시에 가시화하는 형식적 장치들을정밀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용 문헌
이행선. 「브렉시트와 트럼프, 국수주의와 거짓의 극복, 그리고 정치적 인간의 탄생: 앨리 스미스, 『겨울』(2017)」. 유럽사회문화 30 (2023): 5–37.
———.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사회적 적대의 확산: 앨리 스미스, 『가을』(2016)」. 문화교류와 다문화교육 12.3 (2023): 28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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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ever You Are to Yourself”:
Conditional Hospitality and Affective Asymmetry in Ali Smith’s Winter
| Abstract | Bora Kang |
This article examines Ali Smith’s Winter (2017) at the intersection of affect theory and hospitality studies, focusing on the affective asymmetry between Sophia Cleeves and Lux, a Croatian migrant. Where existing scholarship reads the novel primarily as Brexit allegory or ideological critique, this study argues that hospitality operates as a structural imbalance enacted through linguistic and pre-linguistic registers. Drawing on Jacques Derrida’s theory of hospitality and Kathleen Stewart’s concept of ordinary affects, the article isolates three formal mechanisms through which this asymmetry is conveyed: naming, misreading, and resonance. Sophia’s speech acts—renaming Lux, reducing her to ethnic categories, offering conditional recognition—enact a grammar of sovereign hospitality in which the host retains the authority to filter and exclude. Against this, Lux’s phonetic rendering of Cymbeline as “Cimmelleen” marks a temporary suspension of corrective authority, while scenes of resonance—the holed stone, the sisters’ unexpected harmony, the trace of a pressed flower—reveal how ordinary affects emerge where conditional language recedes. Winter portrays post-Brexit Englishness not as a coherent ideology but as an unstable performance, one that must be repeated at every moment and that leaks affective residue precisely where it fails.
Key Words
Ali Smith, conditional hospitality, ordinary affects, affective asymmetry, Brexit
강보라
뉴욕 빙햄턴 주립대학교 영문과 강사
영미문학연구
Journal of English Studies in Korea
50 (2026): 24-31
http://doi.org/10.46562/jesk.50.1
[1]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은 『가을』(2016), 『겨울』(2017), 『봄』(2019), 『여름』(2020)으로 구성된다. 각 권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동시대적 사건들에응답하며, 알렉스 칼더(Alex J. Calder)가 지적하듯 연작의 각 권이 자신의 역사적 순간과 “동시에” 발화하는 연속적 구성으로 기획되었다.
[2] 마크 파런트(Marc Farrant)는 브렉시트 소설이 “투쟁적 상상력”(agonistic imagination; 500)을 통해 갈등을 가시화하고 다원주의를 열어둔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의 정동적 독해는 이 방향과 맞닿으면서, 형식 분석이 정치적 상상력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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