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안과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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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머리(Janet Murray)는 일찍이 영향력 있는 저서 『홀로덱 위의 햄릿』(Hamlet on the Holodeck)에서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이야기 생산과 향유가 “음유시인의 전통”(bardic tradition)을 되살릴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컴퓨터 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문자와 프린트 기술로 매개된 오랜 읽기 경험의 역사를 되돌려 우리를 구전 전통으로 회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1) 머리에 따르면, 마치 전근대의 음유시인들이 오랜 세월 축적된 이야기의 레퍼토리―인물, 사건, 리듬―를 매 순간 변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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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Hamlet)은 과거의 망령이 현재를 잠식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비극적 미래가 끊임없이 지연되어 “시대의 관절이 모두 어긋나 뒤틀려버린”(The time is out of joint, 1.5.189)1) 세계를 그린다. 어긋나고 뒤틀린 시대 또는 뒤틀린 시간은 작품 속 인물들이 시기적절하게 행동하기를 주저하거나 섣부르게 행동해서 실수를 저지르거나 하는 등의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일어나는 비극적 결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2019년 미국의 독립 게임 개발사 골든 글리치 스튜디오(Golden Glitch Studios)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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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문학이 의학에게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서사의학 석사과정(Master of Science in Narrative Medicine)이 있다. 의학 박사이자 영문학 박사인 컬럼비아 의과대학 교수 샤론(Rita Charon)의 주도하에 2009년 출범하여 큰 성공을 거둔 이 프로그램은 주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업계 종사자나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서사 역량”(narrative competence)의 함양이다.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서사 역량을 갖춘 의료인은 좀 더 “인도적이고 효과적인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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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미 1. 19세기 말 등장한 노인 흡혈귀 20세기 이후 대중문화 속 흡혈귀는 매력적인 젊은이인 경우가 많으나, 19세기 말 영국문학 속 흡혈귀들은 대체로 겉만 젊은 노인이며 젊은 세대와 적대관계를 형성한다.1) 스토커(Bram Stoker)의 1897년작 『드라큘라』(Dracula) 속 400세의 드라큘라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드라큘라를 단순히 살아 있는 시체(living dead)로 간주할 수도 있겠으나, 아우어바흐(Nina Auerbach)의 주장처럼 그는 사실 자신의 “오래됨”을 활용하여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에 나이는 들었을지언정 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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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1. 들어가며 이 글은 쿳시(J. M. Coetzee)의 작품 『철의 시대』(Age of Iron, 1990)의 제목이 환기하는 신화적 은유가 유년기와 노년기의 관계를 선형적 시간관 너머에서 바라보려는 작가의 시도를 구체화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먼저 쿳시의 “철의 시대”의 심상이 헤시오도스(Hesiod)의 금속 신화뿐만 아니라, 플라톤(Plato)과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신화적 재구성까지 복합적으로 차용한 결과물임을 분석한다. 특히 헤시오도스가 철의 시대의 타락상을 묘사하기 위해 언급한 “흰머리의 아이들”이 플라톤이 재해석한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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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1. 들어가며 2023년 10월 작고한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 1943~2023)은 조로(早老)의 시인이다.1) 스물여덟 번이나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끝에 가까스로 출간된 첫 시집 『맏이』(Firstborn, 1968)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이미 다 살아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품었던 사랑을 잃고, 사랑에 배신당하고, 가난에 점령된 청춘들의 이야기는 이미 서늘하고 초라한 늙음과 죽음에 포획되어 있다. 첫 시집의 첫 시 「시카고 기차」(“The Chicago Train”)에서는 세상 무서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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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I. 자기발명, 혹은 ‘삶-작품’을 향한 실천 1983년 4월 철학자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와 인류학자 래비나우(Paul Rabinow)는 버클리에서 푸코(Michel Foucault)와 몇 차례의 인터뷰를 가진다. 이후 그 내용은 ‘윤리의 계보학에 관하여: 진행 중인 작업의 개관’이라는 제목 아래 두 연구자의 푸코 해설서에 후기로 실린다. 이 인터뷰에서 푸코는 말년에 몰두한 윤리학적 문제 설정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으로서의 삶’이라는 명제는 이후 많은 주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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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령 1. 용서에 대하여: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1942년 폴란드 렘베르크의 야노프스카 집단수용소에 수감 중이던 유대인 비젠탈(Simon Wiesenthal)은 부역노동으로 차출된 한 야전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SS대원 카를(Karl)을 만난다. 눈은 멀고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임종실에 누워 있던 이 21세의 SS대원은 자신이 1년 전 가담했던 유대인 민간인 300여 명을 학살한 범죄행위를 고백하고 사죄하고자 간호사에게 ‘한 명의 유대인’을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비젠탈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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