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9호] [특집] 영미문학연구회의 다음 30년을 위한 성찰 /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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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김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스스로 돈 벌어서 대학 가겠다고 자기 월급에서 100만원씩 적금을 부었다. 지난해 10월에 입사했지만 그나마도 월급이 적으니 1월부터 저축을 해왔다”고 말했다. 숨진 김씨는 월급 144만 6000원 중 30만원만 본인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부모와 동생 용돈으로 줬다.

– ‘구의역 김군’ 사건 언론 보도의 일부, 『경향신문』(2016년 6월 3일)

어두워가는지라 차도 제정신이 드는지, 낮에 한눈만 팔던 당나귀처럼 제법 속력을 낸다. 휙 지내쳐놓고 다시 돌려다 보니 어스레한 길에 지게를 진 아이가 책을 펴 들고 간다. 해방 이후에 비로소 반가운 꼴을 본 듯싶다. 어쩐지 마음에 좋았다. 해방의 꼴을 그 아이에게서 본 것 같다. 텅 비인 내 가슴에도 희망이 차츰차츰 차(滿)올으는 듯싶다.

– 염상섭의 1948년작 단편 「삼팔선」의 한 구절

202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학의 현실을 살펴보자면, 『대학(大學)』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이 밝히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던 대학이라는 제도는 이제 ‘학문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식의 근대 대학의 이념에서 이탈하여 기업 대학(corporate university)의 성격이 짙어짐으로써 변질되었다. 대학은 기업과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젊은이들은 대학을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직업훈련기관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대세가 되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현재 한국의 대학은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이 겪는 문제들에 더해 자신의 고유한 역사에서 비롯된 모순 탓에 더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단일하고 균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아무리 냉대 속에 위축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에는 여전히 진리 탐구를 사명으로 삼고 인간의 인간다움을 밝히는 일(‘재명명덕’)에 매진하는 학생과 연구자들이 존재하며, 인간 사회를 새롭게 함으로써(‘재친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가운데 바람직한 인간 삶과 사회를 이룩하려는 노력과 열망(‘재지어지선’)도 여전히 살아 있다. 여기에 인문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포함한 ‘기초학문’의 중요성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자본의 영향력에 속박된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대학에 몸담은 이들에게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영미문학연구회(영미연) 창립 30주년을 맞아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의 30년을 전망하고자 한다.

지난 30년의 시대적 특징

영미연 출범 후 지금까지 연구회 안팎에서 벌어진 일을 한두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 먼저 연구자의 존재를 조건짓는 고등교육의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성장하여 학자가 된 우리에게 지난 30년은 ‘5·31 교육체제’의 시대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영미연의 발족과 같은 시점인 1995년 5월 31일에 첫 보고서가 나옴으로써 ‘5·31 교육개혁’이라고 부르는 개혁은 그동안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는 ‘문민정부’의 GNP 5퍼센트의 교육예산 증액 목표 설정, 초·중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도입 등은 군사독재기의 교육체제와 학교문화를 일신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보고서의 계획대로 개혁을 완수하지도 못했고 개혁의 밑바닥에 깔린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이후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갈수록 더 강해졌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을 신자유주의가 압도한 빗나간 개혁으로만 본다면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진영논리에 빠질 위험이 크다.

꼭 지적할 점은 정부의 5·31 교육개혁만으로 교육과 학교의 낡은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89년에 법외노조로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6월항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세력의 재집권을 허용하여 침체와 분열에 빠졌던 민주세력의 선봉에서 노태우 정권의 강력한 탄압에 맞서며 큰 희생을 치렀다. 전교조의 참교육운동과 이를 지지한 숱한 교사들의 노력은 교육현장의 고질적 병폐였던 ‘촌지’를 없애는 성과를 포함하여 교육에 질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과 고등교육의 관계에 국한하자면, 지난 30년의 대학은 대체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이었다. 물론 사회민주화와 보조를 맞추며 과거의 낡은 제도와 관행을 극복하려는 싸움도 있었다. 전국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현재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이나 비리사학과 맞서 싸운 일부 대학 교수(협의)회의 노력과 성과는 기억해야 하지만, 현실 변화에 둔감한 한국 대학은 민주화 이후에 스스로 개혁에 나서지 못했다. 역시 1970~80년대 내내 민주화운동을 선도한 학생들이 대학개혁에서도 나름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르는 옛일이 되었지만, 6월항쟁 이후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학원자주화운동’의 기치 아래 여러 대학에서 학문적 다양성과 개방성을 위해 학생이 원하는 과목 개설이나 교·강사의 초빙 요구가 거셌으며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몇몇 대학에서는 대학원 자치회 또는 학생회가 출범했으며, 강사노조도 결성되어 학기말에 성적 처리를 늦추는 방식으로 학교에 압력을 가해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 시기의 대학개혁 노력이 군사독재정권에 음양으로 복무한 ‘어용교수’, 좀 표현을 누그러뜨리자면 관변 교수에 대한 척결을 거의 이루지 못했음은 무척 아쉽다. 특정 인물들의 축출도 필요했지만 학문 연구와 교육의 본령, 대학사회의 기본 원칙을 확립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내란 청산 중인 현재의 시국에서 더욱 뼈아프다. 이는 당시 대학 내 민주역량의 한계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1988년 6월에는 진보적 교수·연구자들이 결성한 새로운 학회·연구회·연구소들이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결성으로 이어지는 심포지엄을 열면서 대안적 학술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려고 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충북대 서관모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공산주의 혁명론이라고 매도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게재하자 검찰이 서 교수를 소환하면서 학문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벌어졌지만, 학술운동 진영의 단결된 저항과 당시의 유리한 정치정세 덕에 국가보안법 형사처벌의 굴레를 피했다. 『안과밖』 창간 10주년 좌담에서도 지적되듯이,1) 영미연의 결성은 학단협 소속 학회들보다는 여러 해 늦었지만 학단협이 대표하던 대안적 학술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틀림없다. 또 영문학 분야가 다른 외국문학 연구에 비해 월등한 인력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객관적 조건과 백낙청, 김우창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큰 학자들의 존재가 영미연 결성에 도움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전두환 정권의 대학정책, 연구자 양성 정책을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두환 정권은 ‘졸업정원제’를 도입하여 대학 정원을 단숨에 두 배 가까이 늘림으로써 고등교육에 대한 높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고 대학의 등록금 수입을 늘려주는 동시에 교수 급여를 높게 유지하여 지지 기반을 넓히고자 했다. 약칭 졸정제의 명분은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쉬운 한국 대학의 병폐 해결이었다지만, 고등교육 투자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빠진 탓에 혼란만을 초래했다. 어쨌든 갖가지 부작용을 낳은 졸정제는 국내에서도 고등교육이 대중교육이 되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2)

졸정제 덕에 교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나 석사학위만 가졌거나 박사과정에 적을 둔 연구자가 대학 전임교수로 취직하는 관행이 1980년대 후반까지 유지되었다. 덧붙여 1982년부터 시행된 이른바 ‘석사장교’(예비역 사관후보생) 제도의 영향도 언급할 만하다. 과거에는 이공계 대학원생에게만 산업체 대체 복무 등 병역 혜택이 주어졌다. 그러나 신군부는 인문사회계를 포함한 석사학위 소지자가 시험에 통과하면 6개월만 장교 훈련을 받고 예비역 소위로 전역하는 ‘석사장교’ 제도를 느닷없이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인문사회계 석사 취득자도 큰 혜택을 받게 되어 대학원 입학 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인문사회과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는 학문정책의 일환이 아니었으며, 신군부의 유력인사 아들들을 배려한 꼼수였다. 내가 이 제도의 덕을 본 1983년에는 800명이 넘는 인원이 혜택을 입었지만, 신군부의 아들들이 대거 혜택을 본 1985년 이후에는 정원을 크게 줄이다가 곧 폐지되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나 가능한 희한한 일이었으며, 공부의 길을 택한 여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정책이었다.

뒤에 다시 논하겠지만 과학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군사정권 이후의 역대 정부도 실질적 학문정책, 연구자 양성 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주의적 대학정책은 들쭉날쭉한 가운데도 본격화되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평가제도와 학술지 등재 제도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도입된 대학평가제는 그동안 국가의 고등교육 투자 부족, 감독 관청인 교육부의 태만과 무능의 와중에 부실하게 운영된 대학들이 모두 일정한 기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강제했다는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낙제를 면하기 위한 노력의 상당 부분은 겉치레와 편법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가령, 교수의 인사채용 절차가 표준화되고 과거처럼 노골적인 정실 인사가 어려워지는 변화도 있었지만, 교수집단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규정과 제도의 틈새는 지금도 많다.

역시 1990년대 말에 시작된 학술지 등재 제도는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정부 주도의 학술지 평가 및 관리 제도였다. 이 제도야말로 시장주의적 이념과 관료주의가 결합한 기묘한 한국형 제도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자리는 아니지만, 하향식의 경직된 평가 기준 등은 제도 시행 초기의 시행착오로 보기에는 심각한 내용이 많았다. 『안과밖』의 경우 첫 두 번의 등재 신청에서 모두 탈락했으며, 그 사유는 일반 학술논문이 아닌 연구동향, 시평, 서평 등의 꼭지를 평가할 항목 자체가 없어 점수가 크게 낮아진 탓이었다. 간신히 등재 후보지로 선정된 후에도 『안과밖』 특유의 편집 방침이 평가제도와 어긋나는 바람에 갖가지 풍파를 겪었다. 개인적으로 학술지 평가 준비를 돕는 과정에서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은 일부 교수들이 학술지이자 독서대중과 연결되는 시판지의 성격도 겸하려 노력한 『안과밖』의 시도를 도무지 이해하려 들지 않거나 아예 질시의 눈길로 보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대학평가제도와 학술지 등재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어엿한 등재학술지에 포함된 부실 학술지 또는 약탈적 학술지의 폐해가 일부 해외 학계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심각하지만, 학문사회의 공론화도 부족하고 주관 기관인 한국연구재단도 소극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비판할 것은 대학사회 및 교수사회의 자율적인 자정능력 결핍이며, 우리가 정부의 시장주의적이고 하향적인 관료주의만을 탓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우리의 대학사회는 학문과 교육의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대학 본연의 이념에 토대를 두고 스스로를 규율하는 제도를 만들고 다듬어가는 노력이 태부족했다. 이는 시장만능주의가 대학을 지배했기 때문에만 벌어진 결과는 아니고, 오랜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문화 탓에 체질화된 타율성과 노예근성이라는 장애물이 그에 못지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12·3 내란 이후 대학사회에서 터져나온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는 소중한 것이지만, 아직 한국 대학의 교수·연구자 사회는 체제순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풍토에 갇혀 있다. 단적인 예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극우세력이 대학 캠퍼스에 침입하여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폭력적 언행을 하거나 내란 규탄 집회를 공격할 때 직접 나서서 단호히 대처한 총장이 단 한 명도 없었다.3)

지금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 부실 대학 양산, 비정규 교수 확대, 사학비리, 실종된 인문사회 학문정책

앞서 말한 1980년대 말 ‘학원자주화운동’의 새로운 기운은 1991년 강경대 사건 이후의 ‘공안 국면’이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격변과 겹치면서 보수화의 물결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이후 5·31 교육개혁을 수행한 김영삼 정부 말년에 벌어진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사태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국제금융자본의 일방적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국가 부도를 겨우 막았지만, 이후 우리 사회는 정리해고제 도입 등으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물론 우리가 외부의 요구에 굴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내부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이 옳다는 신념을 지닌 미국 유학파 엘리트 경제관료들의 적극적 가담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4)

지난 30년의 신자유주의 고등교육 정책이 남긴 가장 심각한 폐해 두 가지는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시행에 따른 대학 설립 남발과 갖가지 형태의 비정규직 교원의 출현과 확대다. 이 두 가지는 젊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문사회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엄격한 신규 대학 설립 절차를 대폭 완화하여 일정 요건만 갖춰 신고만 하면 현지 답사도 생략하고 설립을 허가하는 제도로서 5·31 교육개혁이 남긴 최악의 정책이다. 전문가들이 1990년대 들어 이미 인구 감소를 예측하고 있었지만, 교육부는 1995년 49만 5000명이던 대학 입학정원을 2003년에 65만 3000명으로 무려 32퍼센트나 늘렸으며,5) 1990년대 말부터 100개 이상의 대학 설립을 마구잡이로 허용하여 부실한 사립대학이 양산되고 고등교육에 심각한 거품이 발생했다.

정부의 대학 늘리기는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 운영의 기조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분위기로 바뀌어감에 따라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출생률과 모순되는 정책이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를 결정한 위원회의 일원이었으며 이명박 정부와 지난 정부에서 연거푸 교육부를 맡았던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에 대학이 많아지면 상호경쟁이 치열해져 더 우수한 대학이 탄생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발언으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대학과 대학교육은 시장에서 완전경쟁이 달성될 ‘상품’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15년 후인 2040년에는 현재 대학 입학정원의 거의 절반을 줄여야 하는 경악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런 현실이 대학 운영진이 연구와 교육의 질을 외면하며 제멋대로 학교를 구조조정하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학 교원의 비정규화 문제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우선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69년에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 교원이 75퍼센트 이상이었는데 2016년에는 거꾸로 비정규직 교원이 73퍼센트일 정도로 교원의 지위가 불안정해졌다.6) 이것이 최근 미국 대학에서도 파업이 빈발한 사회적 배경이며, 예를 들어 2023년 4월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인 럿거스대학의 일주일에 걸친 교수노조 파업은 정규직 교원들이 비정규직 교원의 처우 개선을 내걸고 싸움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얻어 승리하기도 했다.7) 그만큼 대학 비정규직 교원의 차별 철폐와 정규직 전환은 세계적 대세를 거스르는 어려운 과제다. 우리의 경우 문재인 정부 초기의 ‘강사법’ 개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과정에서 교육부가 전국 대학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교원 종류를 실태 파악하다가 포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 현실이 더욱 심각하고 혼란스럽다.

한국 대학의 해묵은 시간강사 문제 외에도 2000년대 초반 ‘발명’된 비정년트랙교원제도는 전국 대학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교원 처우를 악화시켰다.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교육부가 대학 평가에서 비정년트랙교원을 교원 충원률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며, 등록금 동결 정책과 고등교육 투자 외면으로 재정이 악화된 대학으로서는 이 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변명이 통했기 때문이다. 비정년트랙교원은 전임교원 취급을 받고 심지어 주요 보직에도 종사하지만 급여는 전임교원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그 외의 처우에서도 온갖 차별에 시달리는데, 이처럼 대학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의 차별과 갈등은 학내 민주화를 방해할 뿐 아니라 특히 사립대에서 대학 운영의 주역이어야 할 교원들을 분열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두 가지 중대한 문제, 즉 고질적인 사학비리와 과학기술 일변도의 학문정책을 따져봐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앞서 논한 시장만능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우리의 구체적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로서 시장주의 정책의 폐해 이상으로 심각하게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고등교육기관에서 국공립이 아닌 사립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가 사립대에도 운영비를 지원하며, 나름의 전통과 재정능력이 있는 사립대를 제외하고는 박사과정을 운영하지 않음으로써 국공립 위주로 학문정책, 연구자 수급 정책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실행한다. 반면에 한국은 대학 숫자로나 재학생 규모로나 사학이 전체의 80퍼센트를 훌쩍 넘지만, 사학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매우 취약하며 정부의 사립대 지원도 형편없다. 따라서 부실한 대학원이 많고 학위가 남발되어 옥석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잦다. 이는 국내 박사가 해외 박사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가 고등교육을 책임질 역량이 모자라던 시절에 정부는 개인이나 지역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세운 사립대학에 의존했다. 그런데 훌륭한 뜻을 지닌 독지가들이 세운 사립대학의 운영권이 분단과 전쟁의 혼란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정치적 강압이나 술수에 의해 대학 설립에 기여하지 않은 부정한 인사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애초부터 교육에 뜻을 두지 않고 학생 머릿수로 등록금 장사를 노린 대학 설립도 있었다.

이처럼 사립대의 굴곡진 역사 탓에 이른바 ‘교육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관료, 비리사학 소유주, 정치권의 삼각 유착관계는 뿌리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그동안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 민주화를 위해 교육 마피아에 맞서 수없이 투쟁했지만, 대학 운영이 정상화된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그만큼 비리사학의 척결은 교육 분야에 국한된 과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실질적 민주화를 좌우할 핵심적인 개혁 과제다.8)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기에 ‘과학기술입국’이라는 기치 아래 과학기술자 양성에 진력하여 큰 성과를 거뒀다.9)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한 학문의 균형발전은 무시되었고, 역대 대선에서 주요 후보의 선거 공약은 언제나 ‘과학기술입국’일 뿐이었다. 그 결과 GDP 대비 세계 2, 3위를 다투는 한국의 연구개발비 중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예산 비중은 불과 1퍼센트 내외에 머물고 있다. 학문 선진국의 경우는 전체 연구개발비 중 5퍼센트 이상을 과학기술 외의 인문사회와 예술 분야에 배정하는 것이 관행적 기준이며, 이는 게놈 프로젝트 당시에 총 연구비의 5퍼센트를 ‘ELSI’(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 연구에 배정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10) 새 정부는 인공지능(AI) 집중 투자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위한 기초적 투자가 될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 발전도 언급하지만, AI 분야야말로 ‘ELSI’ 연구가 절실함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월 16일 확정된 123가지 국정과제에서 ‘고등교육’이나 ‘대학’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학문의 균형발전이 말잔치에 그칠지 모른다는 염려가 크다.11) 어쨌든 인문사회 학문정책을 도외시한 국가정책의 폐해는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생들이 등록금 면제를 포함한 생활장학금이 없어 좌절하는 현실이 입증한다.12) 주요 선진국들은 박사과정을 무상교육으로 함으로써 국가가 인재 양성을 책임진다는 정책을 견지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자비 부담을 당연시한다. 사실 이는 영문학자들에게는 익숙한 현실인데, 한국에서 박사 공부하는 것보다 미국 가서 장학금 받고 공부하는 것이 싸게 먹히고 귀국 후에 더 대접받는 현실이 여전하지 않은가. 물론 트럼프의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따라서는 이 또한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인류가 처한 복합적 위기 극복과 고등교육 혁신

우리가 몇 달 전에 간신히 극복한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과 인류 사회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인류가 처한 세 가지 도전, 즉 기후-생태위기, 디지털 대전환의 가능성과 위험성, 기성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붕괴 및 범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혼란과 퇴행에 더해 대한민국은 인구절벽과 지역 소멸의 위기라는 남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너무 거대 담론으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지만, 이들 복합적 위기에 대한 올바르고 효과적인 대응책과 고등교육 혁신 사이의 남달리 긴밀한 관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기후-생태위기 극복은 ‘지방대 살리기’와도 직결된다. ‘지방대 살리기’는 표현 그대로 수세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이를 기후-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대전환과 연관시키면 매우 적극적인 혁신 담론을 제출할 수 있다. 원거리에서 이루어진 화석연료·핵 발전을 기반으로 수도권을 향하는 장거리 송전 체계는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고압 송전망 체계에 새 송전망을 추가하면 상호간섭으로 문제가 일어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 체계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RE 100에 대응할 수 없어 우리 기업들이 급속히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마저 있다. (덧붙이자면, 산업시설의 수도권 집중은 에너지 외에도 물 공급이 불가능해진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호남 지방과 서남해안, 백두대간·정맥 지역에는 태양광과 풍력에 유리한 환경이 존재한다. 햇빛이 풍부한 영호남 평야지대의 막대한 면적의 논에 지역 농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대대적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agrivoltaics) 시설을 추진하고 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송배전망을 갖추면 지역 제조업에 전기를 싼값에 공급함으로써 우리 제조업의 재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당연히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하는 AI 관련 산업시설이 새로 들어서기에도 적합하다. 투자자 모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남 신안군의 ‘햇빛연금’ 성공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지역 주민 소득에도 기여할 수 있다.13) 지역 대학들은 이제 이런 변화를 뒷받침할 인재를 길러내고 지식과 기술을 공급하는 혁신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이는 수도권 이상 비대를 완화하고 지역 소멸 경향을 역전시키며, 인구절벽의 흐름 또한 바꿀 수 있는 방향인 것이다.

둘째, 앞서 말한 학문 균형발전은 디지털 대전환이 가져오는 가능성과 위험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아무리 고급의 지적 작업이라도 일정한 패턴과 규칙이 존재하는 작업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AI가 곧 대체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까지 없던 것을 상상하여 발견하고 발명하는 인간의 창조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지식과 기술의 습득과 축적이라는 기존의 교육방식은 대부분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달리 말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기초학문 수준, AI를 활용하는 개개인의 폭넓고 깊이 있는 교양 수준과 안목이 AI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셋째, 민주주의의 혼란과 퇴행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도 고등교육의 균형발전이 절실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교육부가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정확히 말하면 미래 직업 전망 보고서를 조작하여) 인문사회 분야 입학정원을 줄이고 공대 정원을 늘리는 ‘프라임 사업’을 실행했지만, 그 당시에도 대학 졸업생 중 공대생의 비율은 우리가 중국에 뒤이어 세계 2위였다. 바꿔 말해 한국에서 더 투자해야 할 학문은 오히려 인문사회 분야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도 해외 이론을 수입해 적용하는 낡은 학풍이나 정부 용역이나 수주하러 돌아다니는 학문 아닌 학문을 배격해야 하며, 우리 현실과 세계의 실상을 장기간에 걸쳐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문학이나 역사학, 예술 연구와 한 몸이 된 사회과학이 필요하며,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이 하나가 되는 통합학문의 차원을 고민해야 한다.

영문학에서 이런 차원의 본보기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톰슨(E. P. Thompson)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비롯한 낭만주의 영시 연구에서 당대 영문학계도 높이 인정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그의 낭만주의 연구는 산업혁명기 노동계급 성립사를 연구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English Working Class, 1963)의 획기적 의의와 떼어놓을 수 없다. 더불어 톰슨은 1980년대 초 미국이 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시도하자 모든 일을 접고 반핵운동에 나섰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14)

하지만 우리가 건설할 새로운 학문 풍토의 윤곽을 체감하게 하는 분야는 문학부터 생물학까지 모든 기초학문을 아우르는 지적 노력을 전제하는 ‘여성학’이 아닐까 한다. 12·3 내란 이후 ‘빛의 혁명’의 주력군을 이룬 10·20·30대 여성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15) 물론 지난 대선의 주요 후보의 공약에서도 이들의 요구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동덕여대와 서울여대 사태, 계명대 여성학과 폐지, 그리고 극우세력의 여성혐오에서 드러나듯이 여성학은 수세와 퇴조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여성학의 발전은 새 시대의 문턱을 넘어설 지표가 되리라 생각하며, 이때의 여성학은 기성의 틀에 따른 분과학문인 여성학이 아니라 여성해방과 성평등의 시각이 연구 대상을 막론하고 연구의 목표와 방법에 제대로 스며든 통합학문이어야 한다. 영미연은 활동 내용이나 구성원의 면면으로나 이러한 학문의 건설과 친연성이 높고 잠재력이 크다.16)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안과밖』의 지면에 관련 글들이 자주 실리지만 필자가 영미연 회원이 아닌 경우도 많고 관련 특집이나 쟁점도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이는 대학의 영문학과 영문학자들이 여성학 프로그램과 연결이 미약하거나 영문학과 내에서 페미니즘 연구가 홀대받는 현실을 시사한다.

지난 30년간 영미연이 거둔 성과

에너지 대전환과 AI 시대의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쌍둥이 전환’은 서로 상충하기도 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는 복잡한 사안이며,17)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현실과 맞대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과연 나의 후배와 제자들은 영문학자, 외국문학 연구자, 인문학자,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제까지 우리가 해낸 활동의 성과를 정확히 평가해야만 제대로 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애초에 영문과가 실용주의에 무임승차해서 과잉으로 잘나갔던 면”18)을 비판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좋았던 옛날’ 식의 안이한 사고를 배격해야 할 것이다. 실제 나를 가르친 위 세대의 선생님들 중에는 자신을 영문학자, 문학 연구자가 아닌 그저 영어 선생으로 격하하여 규정하면서 주어진 처지에 순응하거나 안락한 처우에 자족했던 경우도 많았다.

앞서도 논의했듯이 영미연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학술운동의 연장선에서 탄생했다. 영미연은 영문학계의 ‘대표 학회’인 한국영어영문학회를 대체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그룹이나 동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지향은 뚜렷했다. 영미연 창립 총회에서 회원 일동의 명의로 발표된 창립취지문이나 첫 공동대표 이종숙·설준규 교수의 이름으로 나온 『안과밖』 창간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영미연은 외국문학 연구와 교육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성과를 쌓았다고 자부한다. 1996년에 창간한 『안과밖』, 1999년에 창간한 『영미문학연구』라는 학술지를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하고 있으며, 매년 2회의 학술대회를 봄, 가을로 개최해왔다. 또 한때 침체하기도 했지만 연구분과들을 만들어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1996년 하반기의 『안과밖』 창간호의 ‘기획 1: 한국영문학 연구의 쟁점’(필자: 김우창, 윤지관), ‘기획 2: 문학전통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필자: 김영희, 유명숙)는 영문학의 범위를 넘어 인문학계 전반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영문학계의 원로 대담인 ‘한국 영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10회에 걸쳐 진행되면서 1세대 영문학자인 권중희, 피천득 선생 등을 모실 수 있었던 귀한 기획이었다. 학계 내부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 ‘재론과 반론’ 같은 코너도 몇 차례 기획했으며, 매 호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택해 ‘특집’을 꾸미려고 애썼다. 요즘은 활발한 학회라면 일상적인 노력이지만, 이런 문화를 만드는 데 영미연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영미연은 2001년에는 영미문학 공부 입문서인 『영미문학의 길잡이: 영국문학』과 『영미문학의 길잡이: 미국문학과 비평이론』을 발간했고, 한국학술진흥재단(현재의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 영미문학 작품의 번역본 실태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영미문학, 좋은 번역을 찾아서1』(기획평가위원장: 김영희, 2005), 『영미문학, 좋은 번역을 찾아서2』(기획평가위원장: 서강목, 2007)를 연달아 출간하여 사회적 주목을 받으며 번역계와 출판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2008년 초 이명박 정부 출범 시의 영어교육 강화 정책을 포함하여 영어 공용화론, 대학의 영어 인증제 도입 논란 등에 대해 발 빠르게 학술대회를 조직한다거나 『안과밖』의 ‘시평’과 ‘기획’ 등으로 대응했다. 이는 우리가 아카데미에 갇힌 구성원에 머물지 않고 현안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에 응답하려는 사회적 노력이었다.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따라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 시민사회운동의 흐름에 발맞춰 파병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는 예외적인 활동도 있었다.

솔직히 평가하건대, 영미연은 2010년대 이후로 최초의 10년만큼은 활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사무실 구입, 회원제도 정비, 사단법인 등록 등으로 지속 가능한 학회 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럼으로써 여느 학회나 연구회와 다른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열악한 현실적 조건에 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탄탄하다.

영미연의 두 번째 30년의 과제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범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갈릴 것임은 틀림없다. 그 점에서 내란을 진압한 우리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 만큼 예외적이어서 일단 자부심을 느끼고도 남는다. 그러나 외환(外患)을 유도하여 친위 쿠데타를 뒷받침하려 했다는 의혹이 보여주듯이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과 평화체제 구축은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 대전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한층 더 튼튼하게 다지면서 수구 기득권과 극우세력을 제어해야 한다. 특히 현재 미국 정치판을 장악한 마가(MAGA) 세력이 글로벌 극우연대의 주요 파트너로서 반공보수의 강력한 개신교 전통을 가진 한국과 남다른 관계를 모색 중이라는 점에 대해 영미문학 연구자로서 더욱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의 동향을 관찰하고 비판할 필요가 절실하다.

2045년의 해방 100주년은 향후 30년의 시간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계기다. 해방 100주년의 뜻깊은 시점에서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흔들리지 않을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 하며, 그 중대한 사업에 영문학자와 인문학자의 모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정당한 역할에 대한 물음을 항상 품고 활동해야 한다고 본다. 또 한 해 뒤인 2046년은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600주년(한글 창제 600주년은 2043년)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우리의 문화전통을 축적하고 민족 정체성을 빚는 일에 주춧돌을 놓았으며, 그의 시대는 자연과학에서도 당대 최고의 수준을 구가하던 때였으니 통합학문 건설의 차원에서도 돌아볼 면이 많다. 영미연이 해방 100주년과 한글 반포 600주년을 염두에 두고 한층 더 거시적이고 야심찬 학문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영미연 창립취지문의 첫 대목은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세계질서가 재편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영향력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그 영향력은 특히 문화적 영역에서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위협할 정도로 급속히 그리고 전면적으로 증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미문학을 매개 삼아 한국 사회와 영어권을 잇는 데 중심적인 경로 구실을 해온 우리 영미문학 연구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새삼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19) 30년이 지나 되돌아볼 때, 이러한 판단은 여전히 옳지만 동시에 불충분하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우리가 알던 패권국가 미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창립취지문의 바로 다음 대목은 “대학의 영어영문학과 및 그를 통해 배출되는 인력은 물론이고 영미문학 연구자의 층 또한 지속적으로 규모가 증대해왔으며, 전문적인 영미문학 연구 외에도 번역 등을 통한 영어권 문화의 유입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요인이 되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영어권 문화의 중요성 지적은 지금도 온당하지만 영문학 연구 인력이 늘어난다는 대목에서는 누구나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바로 이처럼 30년 전과 지금의 같고 다른 점에 대한 예민한 의식 위에서 우리의 담론과 우리의 논쟁과 우리의 활동방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것이 창립취지문이 말한 “연구자 상호간의 진지하고 활발한 토론 및 연구성과 검토,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을 하는 길이며, 그 사회적 실천을 통해 영문학계에 국한되지 않고 학계와 문학판, 고등교육을 받는 젊은 세대 전체, 나아가 일반 독자층과도 탄탄한 상호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영미연은 아직 자신의 독자적인 담론을 구축해 학문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력으로서 『안과밖』에 실린 일련의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영문학이라는 학문과 대학 내 관련 학과의 향방을 둘러싼 최근 10여 년 동안의 논의는 ‘쟁점’으로는 34호(2013년 상반기)의 「대학 교양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35호(2014년 상반기)의 「대안인문학의 가능성」, 39호(2015년 하반기)의 「위기의 대학과 인문학의 길」, 51호(2021년 하반기)의 「대학의 창의융합교육 어디로 가고 있나?」 등이 있고 ‘특집’으로는 41호(2016년 하반기)의 「인문학, 융합을 짚어본다」 등을 들 수 있다.

34호의 ‘쟁점’에 실린 세 편의 글 중에 화제가 되었던 도발적인 글이 바로 송승철의 「인문대를 해체하라!: ‘전공인문학’에서 ‘교양인문학’으로」다. 12년 전 주장을 다시 거론하며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명백한 사실은 인문대 해체 주장은 이제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이 파문을 일으킨 후 지금까지 예전의 인문대에 속한 학과들은 속절없이 사라지거나 명칭과 교육 내용을 바꾸고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해체의 길을 걸어왔다. 윤지관의 비판대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 빠진 그의 입론은 시장주의에 포박된 것이었지만,21) 촛불대항쟁을 통한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정책의 질적 전환을 이루지 못했던 탓에 대학구조조정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따라 진행되어 영문학은 더욱 위축되고 우리의 역할은 주로 영어교육으로 격하되어왔다. 20)

위에 언급한 ‘쟁점’과 ‘특집’ 들에서 다양한 필자들이 이런저런 분석 끝에 내놓은 흥미로운 대안 중 어느 하나도 우리 힘만으로는 제대로 실현할 여건을 만들기 어려웠다. 대안의 모색이 그저 무익했던 것은 아니지만, 15년 후에는 현재 대입정원의 절반을 감축해야 할 상황에서 어문학과·역사학과·철학과는 소수의 대학을 제외하면 이제 독립적인 학과(전공) 단위로서 사실상 종말을 고한 셈이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도 학과별로 입학하는 수시모집 정원 9명(!)이 있지만 정시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신입생들이 언제나 인기 학과였던 영문학과 진입을 외면하고 있어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난 30년 동안 영미연의 활동 성과 중에 가장 낡아버린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바꿔 따져볼 만한데, 아마도 『영미문학의 길잡이』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이 입문서는 이제 교육현장에서 별로 활용되지 않으며 대학원을 준비하는 극소수의 학생이나 들춰보는 수준이다. 그만큼 『영미문학의 길잡이』는 수정증보판을 기획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영문학 관련 학과가 ‘해체’를 당하는 현실에서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미래의 영문학자 및 인문학자 양성을 손 놓고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21) 어문학 중에서도 특히 외국어문학 전공은 무시하면 곤란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중국어, 일본어도 마찬가지지만,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스파냐어·러시아어 등 서양 외국어와 외국문학 공부는 장기간의 수련을 요구한다. 이것이 이들 전공에 대해 학과 체제가 끈질기게 유지되어온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학과가 없어지더라도 학부에서 소수의 학생을 상대로라도 긴 기간의 언어 수련 과정을 탄탄하게 유지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이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영문학·프랑스문학 등 서구 어문학과를 하나로 묶어 ‘유럽인문학부’ 등으로 바꾸는 것은 행정인력과 예산을 줄인다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으며, 이를 융합 등의 명분으로 치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따라서 외국어문학과 해체를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더라도 해당 외국문학의 연구자 재생산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22)

문학 연구자 재생산 체제를 위해 이공계 대학원생에 뒤지지 않는 장학금 제도와 학위 취득 후의 일자리 확대가 필수적이지만, 교육 내용에서도 다양하고 창의적인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부교육에 유용한 입문서나 단행본을 잘 기획하여 교양교육이든 전공교육이든 강의의 질을 높여야 한다. 연구평가 제도의 시장주의적 강화 이후 대학의 학자들이 실적용 논문은 열심히 쓰지만 상대적으로 연구실적 점수가 박한 단행본 출간을 외면한다는 비판은 낯익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이미 정년을 보장받았거나 연구실적 압박을 덜 받는 회원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단행본들은 교양에 목마른 학생과 일반 대중을 겨냥하면서도 영문학 공부의 길로 이끌 전공교육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내용이 되어야 한다. 양쪽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어느 한쪽으로 쏠리더라도 항상 두 목표를 의식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회원들을 포함한 영문학자들이 발간한 단행본들을 거론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우선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윤지관 엮음, 당대, 2007)는 기존의 글을 모은 책이지만, 1990년대 말부터 나온 ‘영어 공용화론’ 논란이나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정책의 폐단을 비판하는 책으로서 영미연 안팎에서 나온 다양한 논의와 더불어 상당한 파급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크게 변모한 우리 현실을 분석하고 영어교육에 대해 새로운 비전과 실천방안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영어 유치원 열풍이 보여주듯이 아예 어린 시절부터 영어가 사교육에 맡겨져 경제적 격차가 ‘영어 격차’를 더욱 벌리는 현상, 그 반대편의 공교육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절대평가가 낳는 부작용, 또 우수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한국 대학이 교육언어를 한국어와 영어 중에 선택하는 (아마도 전공 분야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질) 문제 등이 더욱 치열하게 논의되어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이는 관련 학과에서 영어학 및 영어교육 전공자와 문학 전공자의 기형적 공생관계를 시너지 효과가 나는 협업관계로 전환하는 개혁과도 연관될 것이다.

19세기 영국소설 이해에 도움을 주는 윤혜준의 『재산의 풍경: 근대영국소설의 배경과 맥락』(한국문화사, 2013)과 『근대 용어의 탄생: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교유서가, 2024)도 학부교육 강화에 참고할 단행본이다. 영미연 공동대표를 역임한 오민석의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시인동네, 2017)는 국내 저자가 집필한 흔하지 않은 입문서다. 이경원의 『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한길사, 2015)는 파농(Frantz Fanon) 저작의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의의에 천착하면서도 여성문제에 관한 약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면이 눈길을 끌며, 이 책이 포함된 ‘인문고전 깊이읽기’ 시리즈 중에서도 성공적인 기획으로 판단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들 저서들도 크고 작은 약점을 안고 있다. 어쨌든 이런 기존의 단행본 저서들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영미연이 주도하는 영문학 단행본 시리즈를 기획하여 출간한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가령, 옥스퍼드출판사가 지금까지 800권 가까이 내면서 큰 성공을 거둔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very short introduction)를 참고하여 분량이 짧으면서도 학부 학생들을 학문의 길로 이끌 참고문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덧붙여 그동안 영미연 안팎의 학자들이 내놓은 훌륭한 작품 번역들이 교육에 활용될 중요한 자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사업들을 힘있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구와 교육 모두에서 영미연의 창립 취지에 근거한 자기의식과 주체성이 더 강화된다. 여기서 약간의 쓴소리를 섞자면, 영미연의 학술지에서 자신의 연구가 국내 연구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암시조차 없어 국내 최초의 연구인지 아니면 국내 연구사를 전혀 점검하지 않은 것인지 불투명한 논문도 아직 눈에 띈다. 선행 국내외 연구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평가 위에서 내 연구가 목표하는 성과가 무엇인지를 (명시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적절하게 제시하는 풍토가 아쉽다.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지금 관심을 끄는 의제들과 직결된 주제를 다루는 영문학 논문들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엿보인다. 이는 연구의 창의성과 독자성을 훼손하면서 때로 해외 이론의 단순한 적용으로 폄하될 수 있으며, 결국 방금 말한 단행본 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이 글이 애초에 발표된 영미연 학술대회에서 토론자였던 이우창 교수가 “오늘날 자신의 분야에서 유효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영문학자들의 작업을 참조하는 타 전공자들은 극히 드뭅니다”라고 한 발언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더불어 『안과밖』은 “영미문학 분야에서 한국어만으로 출간되는 유일한 학술잡지”23)라는 지적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하며, 영미연 초기에 몇 년 하다가 중단된 『안과밖』 합평회를 다른 방식으로 살려 활발한 토론을 북돋울 방안도 고민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연구와 교육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학문 연구자들의 조직적 단결과 행동을 강조하고 싶다. 이재명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이 허술하기 때문에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비관적인 관점도 이미 상당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당장은 신중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 새 정부가 내란 청산을 철저하게 하면서 경제 등 국정 운영에 성과를 거두는 과정과 병행하여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고등교육 투자와 혁신의 실질적 청사진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오히려 먼저 지적할 것은 고등교육 혁신과 투자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대학 교수들의 자기혁신과 조직적 단결을 통한 국민적 설득력 강화가 절실하다는 점이다. 현재 교수 노동조합이나 단체들은 조직력이 약하고 상호연대의 수준이 낮아 정부를 상대로 실질적 압력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 앞으로 우리 교수들은 정치적으로도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력을 갖추도록 애써야 하며,24) 영미연의 계속될 실험 역시 이런 차원의 정치적 노력과 깊이 연관될 수밖에 없다.

글을 마무리하며 소소하지만 우리를 지켜줄 결정적인 몇 가지를 덧붙인다. 우리의 학문 연구와 교육이 북미와 서유럽에 비해 취약한 점은 “학문적 상호 점검과 자극”(창립취지문의 한 구절)의 일환으로서 서로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협업하는 체제를 끊임없이 가동하는 문화다. 꼭 여럿이 모여 세미나를 하고 공동연구를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완성되지 못한 초고일지라도) 남의 글을 기꺼이 열심히 읽고 기탄없이 의견을 전달하는 일이요, 자신의 정돈되지 않은 생각과 글을 동료 연구자에게 설명하고 어수선한 초고라도 읽어주기를 청할 수 있는 학풍이다. 또 논문심사 요청이 들어왔을 때 논문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 논문이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뜯어고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여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리 능력이 부족한 연구자가 시간에 쫓겨 쓴 허술한 논문이더라도 고칠수록 좋아지게 마련이며, 이러한 상호협력은 말 그대로 학문공동체를 가꾸는 첩경이다.

학술활동, 학회활동에는 행정과 잡무가 따르게 마련이다. 수업과 연구에도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데다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기혼자의 경우 육아와 가사의 부담도 있었다. 그러므로 영미연 활동에 따르는 실무에 쏟는 정력과 시간은 빛도 나지 않고 학자로서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영미연 실험의 의미를 인정하고 그 활동에 꼭 필요한 실무와 돌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누군가는 나서서 그 일을 맡아 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기꺼이 희생할 때 연구회가 원만한 학문공동체로서 자기 구실을 해낸다. 이처럼 작은 일들이 때로 결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이다.


  1. 1) 성은애·오길영·이경덕·이명호·박인찬 「특별좌담: 영미문학연구회와 한국의 영문학 연구현황」, 『안과밖』 20 (2006 상반기) 31~32면 참조.
  2. 2) 이미 박정희 정권 말기에도 사회적 압력에 따라 대학 입학정원이 크게 늘기 시작했는데, 이는 주로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이 당시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지방에 분교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교들이 대부분 수도권이나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에 설치되어 실제 정책 목표에도 어긋나는 기형적인 대학정책이었다.
  3. 3) 심지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내란 며칠 후인 2024년 12월 9일에 극우단체인 빌드업코리아·엠킴TV의 김민아 대표를 초청해 ‘미국이 트럼프 2.0을 선택한 이유와 이것이 대한민국에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기도 했다. 당시 국가미래전략원장이던 김준기 행정대학원 교수는 직접 첫머리의 인사말과 마무리 발언까지 했으며 올 초부터 기획부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개막한 ‘빌드업 코리아 2025’ 행사에는 트럼프의 최측근으로서 방한 직후 유타주의 행사장에서 총격 테러로 사망한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직접 참석했다. 트럼프의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그의 딸 모린 배넌(Maureen Bannon)은 직접 행사장 연단에 올라 우리의 지난 총선과 대선이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 있는 부정선거라고 강변했다. 현재 해당 강연의 유튜브 동영상은 국가미래전략원의 채널에서 삭제된 상태이지만,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을 한국을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인 서울대는 과연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조성식 「‘한국판 마가(MAGA)’ 엠킴과 한미 극우의 거대한 연대」, 『뉴스타파』(2025년 9월 16일) 참조.
  4. 4)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다산출판사, 2011) 5~7장 참조.
  5. 5) 대학교육연구소 『사립대학 구조개선법률안 주요 내용 및 비판적 검토』, 2024년 정책자료집(2024년 4월).
  6. 6) Jonathan David, “Rutgers Strikers Run the Table,” The Nation (April 19, 2023).
  7. 7) Hurubie Meko and Liam Stack, “Rutgers University Faculty Members Suspend Strikes,” The New York Times (April 15, 2023).
  8. 8) 한때 윤석열의 최측근이었다가 성범죄 혐의가 불거지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장제원 전 의원이나 내란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며 극우화되고 있는 나경원 의원은 모두 집안이 소유한 사학이 정치적 기반이다. 집권 민주당 역시 사학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7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사학구조개선지원법’(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관련 법률이 10년 이상 국회에서 거듭 발의되면서도 번번이 폐기되고 말았지만, 지난 1월 국회 교육위 법률심사소위에서 마침내 민주당 내의 이견을 누르고 여야가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란 진압의 와중에서 ‘쟁점 법률’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모양새가 껄끄러워 새 정부가 탄생한 뒤에야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자세히 논할 계제는 아니지만, 이 법은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제정된 것으로서 절박한 부실 대학 통·폐합의 효율적 추진이 불가능한 내용에 그치고 있으며, 오히려 운영 여력이 있는 사립대들이 ‘해산정리금’ 조항을 악용해 재산을 챙겨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9. 9) 송위진·홍성주 『현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들녘, 2017) 참조.
  10. 10) 인문사회 분야 지원 예산과 이를 뒷받침할 관련 법률의 제·개정과 관련해서는 김명환 「한국 고등교육과 학문의 도약을 위한 실마리: 기초학문 학술정책과 ‘기초학술기본법’」, 『안과밖』 53 (2022 하반기). 특히 244~46면에서 언급하는 OECD의 『프라스카티 매뉴얼』(Frascati Manual) 논의를 참조.
  11. 11) 영미연 고문 백낙청 선생은 이재명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 한 자리에서 AI 강국을 위해서도 인문강국을 위한 투자를 강조했음을 밝혔다.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 인터뷰(2025년 8월 6일). 18분 이후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XX4ALu3h8wU.
  12. 12) 인문사회계와 대조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2025년부터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생활장려금’이라는 새 제도를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내년부터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한국형 연구생활장려금(스타이펜드)을 받는다」(2024년 8월 5일).
  13. 13) 전남 신안군은 태양광 발전으로 2021년 주민에게 21억 원을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총 220억 원을 지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햇빛연금·바람연금 시행 위한 제도 설계 본격화···연구용역」, 『연합뉴스』(2025년 9월 11일).
  14. 14) 김명환 「E. P. 톰슨의 역사 연구와 영문학: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안과밖』 33 (2012 하반기) 154~78면 참조.
  15. 15) 최나현·양소영·김세희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오월의 봄, 2025) 참조.
  16. 16) 이 점에서 최근 이화여대 김부성 교수가 동덕여대 사태를 바라보는 이대생들의 시각을 학부 토론수업을 통해 분석한 글은 돋보인다. 김부성 「남녀공학 전환 논란과 탄핵 정국 속에서 바라본 여대와 시위의 의미」, 『안과밖』 58 (2025 상반기), 193~213면.
  17. 17) 다보스포럼이나 유럽연합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쌍둥이 전환’(twin transfor-mation)의 뜻을 포함하여 에너지 대전환과 디지털 대전환의 복잡한 관계를 간명하게 다룬 책으로 김병권 『AI와 기후의 미래: 디지털 과잉함정에 빠진 한국, 더 위험해진 기후』(착한책가게, 2025) 참조.
  18. 18) 「특별좌담: 영미문학연구회와 한국의 영문학 연구현황」, 『안과밖』 20 (2006 상반기) 47면.
  19. 19) 영미연 홈페이지 소개란 참조. http://www.sesk.net/sub1_1.php.
  20. 20) 윤지관 「구조조정 속의 인문학과 대학: 무엇을 할 것인가」, 『안과밖』 39 (2015 하반기) 96~119면.
  21. 21) 송승철의 도발적 입론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인문학자 양성 체계에 대한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영문학과가 사라졌거나 처음부터 영문학 전공 강좌가 없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공 교수도 자신의 강좌에서 우수한 학생을 발굴하여 다른 대학의 영문학과 대학원으로 진학시키는 역할을 포기할 수 없지만, 이들이 인근 대학과 연계하여 연구 협력을 하거나 학부 전공이나 대학원 수업 기회를 얻을 네트워크 체제 구축이 긴요하다.
  22. 22) 대한민국은 외국문학·문화 연구를 할 여력이 없다거나 아예 해당 분야가 불필요하다면 모를까 학문의 균형발전은 나라 운영의 근간으로서 정부의 책임이다. 두드러진 사례로서, 주요 국가들의 외국어대학은 대부분 국립이지만 우리의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사립이라서 다양한 언어권의 연구와 교육에 투자하기 힘들다는 기형적 문제도 심각하다. 전면적인 고등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여기서도 절감한다.
  23. 23) 성은애 「팬데믹, 대학, 그리고 『안과밖』」, 『안과밖』 50 (2021 상반기) 19면.
  24. 24) 전국민교협이 주축이 되어 2001년에 발족한 전국교수노동조합(이하 전국교수노조)은 그동안 법외노조로 활동하며 노조 합법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 후 교원노조법 개정을 거쳐 20년 만인 2021년에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교사와 달리 교수는 학교별 개별 노조 결성이 법으로 허용된 탓에 주요 대학들은 대부분 개별 노조를 결성하여 자기 대학의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국교수노조를 포함하여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국교조(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사교조(전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등이 있지만 아직 정부를 상대로 내실 있는 단체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라는 신분이 지닌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런 지리멸렬한 실정을 두고 단체행동권이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참고로, 오래전부터 존재한 전국민교협이나 국교련(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 사교련(전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 등은 임의 단체라서 정부를 상대로 교섭력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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