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영미문학연구회 창립 30주년이 된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영미문학연구회가 벌써 서른 살이 됐네요. 우선 사람이든 단체든 나이가 서른 줄에 접어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축하받아 마땅합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시간의 무게와 잘 싸우고 잘 버텨냈기 때문에 그러하고, ‘흔들리는 청춘기’를 뒤로하고, 이제 막 안정된 성숙기를 맞이했기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이런 좋은 자리에 오게 된 것만으로도 일신의 명예라 할 수 있는데, 축하의 말 한마디 보태라는 부탁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 한마디 보태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찰 것 같아 몇 마디 더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얘기는 30년 전 우리 영문학자들이 모여 연구모임을 창립할 당시에 관한 저의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 얘기는 제가 보기에 요즘 한국의 영문학이 맞닥뜨린 도전에 관한 ‘전망과 진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준비한 얘기는 모두 다 제 개인적 회상이고 생각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저의 이 축사도 기억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30년 전 영미문학연구회를 세울 때에 관한 저의 기억이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제 세대가 공유한 경험과 문제의식이 거기에 어느 정도는 각인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1)
먼저 저의 회고담입니다. 제가 지금은 이렇게 백발 성성한 노파가 됐지만, 30년 전엔 청청 흑발의 청춘이었습니다. 선생 노릇 시작한 지 10년도 채 안 된 때였고요. 그때 저는 어찌어찌해서, 저보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훨씬 더 뛰어나고 성숙한 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창립대회에서 회원 일동을 대표하여 학회 창립취지문을 읽고 창립의 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과연 영미연의 ‘미션’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변했는지, 저에게 그럴 능력이라도 있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우리는 우리 땅에서 영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의에 관해 논구하고, 그냥 영문학이 아니라 한국의 영문학, 그냥 한국적 영문학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영문학, 한국이라는 장이 제공하는 맥락에서 다시 읽고 다시 해석하고 드디어 다시 형성한 영문학을 우리가 세울 수 있는지, 또는 세워야 하는지, 그 이유와 가능성과 방법을 탐구하려고 한다. 둘째,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어떤 역사적 환경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영문학을 연구하여 어떤 논의를 생산했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입장에서 그 의의를 짚어보고 다시 기억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뭐 대충 그런 종류의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꼭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때 제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던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밖’보다 ‘안’을 더 강조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한국의 영문학이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것을 받아 적는 소극적인 이해나 모방, 수용 작업이 되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문학 행위, 한국에서 생겨난 문제의식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정치·역사 행위로 자리잡고 다시 태어나게 되도록 돕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라면, 그런 강조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그런 생각으로 창립 후 처음 4년 동안을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와 『안과밖』 편집위원으로 일했습니다. 말이 편집 담당 공동대표였지 사실은 『안과밖』의 막노동꾼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낙성대 도로변 어딘가에 얻은 셋방 사무실에서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굉음과 경쟁하며 편집회의도 하고, 편집안도 짜고, 특집 집필진 선정에 원고 청탁과 원고 독촉까지 한 다음에, 들어온 원고를 읽고 수정해서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쇄가 나오면 1차, 2차 교정까지 봐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그 당시는 pdf 파일이나 전산편집 시스템도 도래하기 전이라 모든 게 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물론 이걸 저 혼자 다 한 건 아니니까 저만 막노동을 한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편집간사를 포함한 다른 몇몇 편집위원과 함께 저도 『안과밖』이 완성되어 나올 때까지 편집에서 발간까지의 모든 과정에 매번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쎄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제 개인사라는 측면에서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그게 순전 바보짓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영미문학연구회가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건재할 뿐 아니라, 영문학계가 자랑하는 영재들이 다 모여들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뿌듯하게 여겨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상과 함께 슬그머니 어두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영미문학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도 어김없이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학, 영문학 또는 인문학은 언제나 위기라는 강박,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긴 하지만, 한국의 영문학이 (제가 공부하는 ‘글로벌 스타’ 셰익스피어 연구를 포함하여)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더 커다란 위기에 처한 건 틀림 없는 사실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영문학이 누리는 사회적 위상만을 놓고 본다 하더라도, 30년 전 연구회 창립 즈음의 영문학이 오히려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저희는 영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때 영문학은 인문학의 미래와 한국문학의 행로를 결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와 역사의 행로에도 개입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영문학자는 영문학 전공자/전문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진리라고 믿는 것을 자율적으로 추구하고 설파할 자유와 책무를 가진 공적 지성인으로서 스스로를 매김하거나, 그런 지성인 상을 자신의 모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문학자는 ‘공적 지성인’이나 문화영웅이 아니라 영문학의 대중적 이미지를 대중에게 선전하고 판매하여 그 이미지가 무한히 자가증식하도록 돕는 영업사원 또는 유사 전도사가 되거나, 그게 아니면 전문가들을 위한 전문가로 자리잡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양분 현상을 두고 인문학 위기의 징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위기 탈출의 기회라고 볼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문학 산업의 영업사원이나 유사 종교화한 영문학 교회의 대중전도사가 되는 것은 물론 자발적인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안과 밖에서 전문가의 전문가로 사는 일 또한 마찬가지로 선택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가지 선택지가 다 같이 생계와 시장의 논리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자가 국내시장의 논리에 주로 묶여 있다면, 후자와 더불어 영문학자는 바야흐로 세계시장―혹은 카자노바(Pascale Casanova)가 얘기하는 ‘세계문예공화국’의 시장질서―에 신경 쓰고, 어떻게 하면 거기에 끼어 한몫할 수 있는지, 어떤 상품을 가지고 나가야 잘 팔리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을 두고 ‘K-영문학’의 본토 진격 또는 한국 영문학의 글로벌 영문학 편입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문학’의 탈유럽중심주의 경향과 세계화 시대의 문학과 지식 시장의 개방화 경향은 한국의 일부 영문학자들에게는 세계인들의 인정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는 어떤 세계냐가 문제이고, 우리는 어떤 우리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세계시장의 주문과 경제논리에 따르고 거기서 경쟁적 우위를 구하는 것이 꼭 우리의 영문학 공부에 득이 되란 법은 없고, 세계시장의 개방화 경향이 탈유럽중심주의를 지원하기는커녕 영어권 중심주의를 더욱더 강화시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영문학은 종종 세계 영문학시장의 ‘지점’ 중 하나로 매김되고, 한국 영문학자의 위치는 한국의 문학과 한국의 영문학 수용 및 번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시장의 주재 정보원으로 미리감치 매김되기도 합니다. 또는 글로벌 영문학, 영어 중심의 세계문학 또는 영문학의 보편성이라는 미완의 직소 퍼즐에 끼워넣을 맞춤 조각 중 하나로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본격적’ 영문학이라는 게 운위되고, 그 조각의 형태와 색깔조차 우리가 아니라 세계시장의 손이 결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말해 30년 전 영미문학연구회가 창립의 변과 함께 논의했던 문제가 한국 영문학의 수동성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하면 ‘밖’에서 온 영문학을 ‘안’에서 다시 벼려낼 것인가에 있었다면, 오늘의 영미문학연구회가 좋든 싫든 곧 맞닥뜨리게 될 고민거리는 세계화가 된 ‘안’, 또는 세계화한 ‘밖’에서 영문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문예제국’과 그 제국을 조직하는 세계시장의 유혹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문화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의 문화제국주의는, 그것이 문화제국주의인 한, 필연적으로 문화 획일화 지향에 맞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여전히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장의 유혹에는 일단 넘어가준 다음 거기서 자기 이득을 챙기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쩌면 묘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슬몃 드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우리에게 닥쳐온 위기가 그런 식으로 넘어가도 될 만큼 가벼운 것만은 결코 아닌 듯합니다. 설령 우리가 전문가의 전문가가 되기로 선택하고, 세계시장의 유혹을 잘 이용하거나 꿋꿋이 견뎌낼 정도의 ‘능력자’라 할지라도, 텅 빈 교실을 마주하거나 학생 대신 인공지능과 함께 공부하고, 인문학적 사고 과정을 밟아 세상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대신 인공지능이 잡다한 수집원으로부터 끌어와 기계적으로 정리해준 기성품 정보와 요약문들을 받아 적고 읽는, 이른바 ‘멀리서 읽기’를 일상적으로 하게 된다면, 세상의 역사와 문학이 인공지능에 의해 재조합되고 재생성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포된다면, 우리가 입력한 정보가 인공지능의 ‘상상계’를 가로지르는 어휘로 변신하여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우리를 패러디하게 된다면, 그래서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공지능의 도우미로 만들고 우리 학생들을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키우게 된다면, 참으로 난감하고 낭패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교실이 첨단기술을 내세운 연구의 정치경제학과 세계시장의 경쟁원리에 점령당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저는 철두철미 호모 파베르로서 기계를 도구로 사용하기만을 고집하는 벽창호인 데다가 생래적 무지한이라 기계를 너무 통속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많은 사람이 기계를 통속적인 수준에서 사용하고 있고, 바로 거기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기계를 동원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은 통속적인 차원에서는 별로 의미도 소용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처럼 학문 추구를 위한 기계 이용과 통속적 기계 이용의 논리가 따로 노는 경우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속적인 수준에서 행위합니다. 바꿔 말해 통속적인 수준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 영문학 연구자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기계가 만들어내는 ‘보편성’과 기계가 요구하는 ‘근대성’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에 따라 빈 교실이 채워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저를 두고 ‘보편적 진리’의 추구를 제일의 가치로 삼는 휴머니즘의 전통, 또는 인간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한 인간세의 유물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기계라는 것은―그게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정보력을 가졌다 하더라도―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생각과 윤리―아예 ‘정의’라고 고쳐 말해도 좋겠습니다―에 따르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가 ‘포스트인간세’ 또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미래적 필연성의 현재적 징후가 여러 형태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인공지능이 세상과 인간을 가상현실화하고, 세상과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을 정보 채집과 재조합의 기술로 바꿔놓고 있으며, 인문학 교육을 기성품 정보의 전파와 판매업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인공지능이 보여주는바 과학기술의 자기목적적 무한 발전의 논리는 인문학 교육이라는 실천적 장의 존폐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인문학의 바탕이라고 여겨져왔던 인간 연구와 비판적 사고에 기반한 인문학적 윤리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류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등 떠밀려서 인간과 인간성을 재정의하고, 인간이 발명한 세계질서의 그림과 윤리체계를 재점검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으로 내몰린 건 이번으로 처음이 아닙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 이래 인문학은 언제나 그런 ‘위기’에 처해왔고, 인간 연구는 언제나 위기에 처한 인류와 인간질서에 관한 연구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는 아예 근대 인문학은 그런 위기에서 태어나 위기를 연구하고, 위기 연구를 통해 지배적 인간질서를 흔들며, 그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위기를 낳는 학문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끝낼 수 없는, 끝나지 않는 ‘문화전쟁’을 언제나 해야 하는 운명, 그게 인문학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과거를 생각하는 신경줄과 미래를 예견하는 신경줄은 동일하다고 합니다. 영미문학연구회의 30년 묵은 과거인 제가 여기에 서서 회고와 전망을 같이 논하는 것도 제 신경줄이 그렇게 엮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창립 시에 제가 경험했던 한국의 안과 밖에서의 영문학의 ‘위기’가, 결과 정도는 다르다 하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 계속되는 위기야말로 영미문학연구회를 지탱하고 미래를 만드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서양 근세 초기에 태어나 근대성과 문명의 위기라는 문제를 자기 한 몸에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햄릿과 함께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고,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는 넓은 사고력, 곧 기억의 사고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그의 대답을—1623년 이절판본에서는 삭제당한 그 질문과 대답을—다시 기억에 새기며 이 축사를 마칠까 합니다.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1) 이 글은 원래 축사로 읽은 판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정과 가필을 최소한으로 하고 원래 축사에 담긴 어조와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정 과정에서 창립사 원본을 다시 읽을 기회도 있었고, 기억 저편에 남아 있던 영미문학연구회 창립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들도 적잖이 생각나고 덧붙이고 싶은 말도 있었지만, 그에 맞춰 수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 자체보다 기억에 각인된 형태로서 과거의 사실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은 그런 일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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