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9호] [책머리에] 변화의 시대, 사유의 경계에서 ‘안과 밖’을 다시 묻다/ 김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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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8일, 미국 기업 1X Technologies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NEO를 2026년부터 판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선주문 접수를 시작했다. 명령어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과 태스크 수행 속도가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생성형 AI가 보여준 업무 처리 능력의 비약적 발전을 돌이켜보면 이 역시 시간문제일 것임은 분명하다. 소비자는 2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불해 NEO를 소유할 수도 있고 매달 499달러를 내고 서비스를 구독할 수도 있다. 매우 제한적인 계층에만 가능한 서비스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인간의 노동력을 최저시급으로 환산해보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라는 재빠른 계산도 이루어진다. 이 셈법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선다. 인간의 몸과 노동이 대체되는 순간, 우리는 지극히 존재론적인 의문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을 돕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기계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AI 시대 영문학의 연구와 교육에도 유효하다. AI는 인문학을 확장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인문학이 AI 질서에 포섭되는 것인가?

이번 호의 ‘특집’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영문학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불과 3년 전, 생성형 AI의 등장은 콘텐츠 창작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대학 교육의 근간을 흔들었다. 불안감 속에서도 인문학은 해석 및 판단에 대한 인간의 주체성을 마지막 보루로 삼아왔지만, 최근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그 경계를 흔들고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기대되는 AI 에이전트의 개발이 가속화되며 인간의 능동적 판단을 대행시킬 수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지연시키는 이 시대적 논리 속에서 인문학의 전제와 가치가 재검토되고 그 효용성이 더욱 의문시된다.

그런데 이 ‘주체성’이라는 개념, 그리고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끝에는 인류가 오래도록 붙들어온 또 하나의 개념인 진본에 대한 성찰이 자리한다. 벤야민이 기술 복제 시대에 진본의 권위가 어떻게 해체되어가는지를 분석했다면, 보드리야르는 그 이후 진본과 모조의 경계를 완전히 소거한 세계에 주목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와 예술가의 역할을 둘러싼 엇갈린 시각도 환기된다. 인문학이란 결국 진본과 모방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인간의 사유 그리고 사유의 주체를 되묻는 행위였으며, 지금의 AI 시대 또한 이 오래된 숙고를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리고 있다. 진본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원형으로 여겨져왔기에 AI가 신속하게 수집·처리·배달하는 정보는 진본의 경험이 결여된 (재)매개된 지식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보수적 관점의 기본 전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유튜브의 요약 영상이나 그 요약의 2차 해설 콘텐츠는 ‘신성한’ 진본에서 멀어진 가공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소비 주체로서 학생들은 (재)매개되는 정보를 더 이상 진본의 상실도 단순한 복제도 아닌, 새로운 감각인 하이퍼리얼리티를 구성하는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복제와 생성이 중첩하며 진본의 의미가 희미해진 지식 생태계 속에서 대학은 다층적으로 매개된 세계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한다. 특히 인문학은 인간 사유의 효용을 새롭게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곧 주체성은 물론 인간성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번 호에는 특집 논문뿐 아니라 축사, 연작기획, 이론과 쟁점, 시평, 동향, 문화비평, 서평, 논문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보다도 영문학 본연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 있다. 나아가 영문학의 새로운 존재 이유를 탐색하려는 시도가 일관되게 이어졌다. 총 열여섯 편의 글이 실리며 다른 호보다 분량이 많았지만 그만큼 논지의 밀도와 응집력도 촘촘하다. 무엇보다 글의 성찰이 추상적 관념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의식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면모다.

‘특집’은 영미문학연구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 발표를 바탕으로 현시점 한국 대학에서 영문학과의 연구와 교육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한다. 이하람은 「나비 이야기: 인류세 시학 시론」에서 생태 및 기후 위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제왕나비를 다룬 다양한 텍스트를 분석하여, 과학 기술 중심의 시각을 넘어 문학 서사를 통한 생태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다. 저자는 인간 활동에서 기인한 재앙과 위기들이 지구 시스템과 지역 생태계를 비롯해 인류의 역사·종의 진화·지질학적 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제왕나비가 이러한 인류세적 위기의 상징적 매개체로 작동한다고 보고 세 가지 담론적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북미 지역에서 제왕나비 개체수 감소를 다룬 과학 연구를 분석하며, 해당 연구들이 인류세의 복합적 스케일을 암시하면서도 이를 의식적으로 사유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어 킹솔버의 『비행 습성』(2012)과 해러웨이의 『카밀 이야기』(2016)를 중심으로 인간적 스케일과 비인간적 스케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비의 서사를 분석함으로써, 인류세 비평의 핵심적 방법론으로서 스케일 기반 읽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과학, 문학, 이론 담론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시각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연구라 할 수 있다. 유상근은 「위기의 인문학을 넘어 다양성의 인문학으로: 미국과 한국 영문학계 동향 비교 2016-2025」에서 2016년부터 2025년까지의 MLA 고용정보 목록 보고서와 학술대회 프로그램 통계를 바탕으로 미국 내 영문학계의 최근 연구동향과 고용 형태를 상세하게 정리하고 이를 한국영어영문학회(ELLAK) 학술대회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한국 영문학계의 동향을 읽는다. 논문은 지난 10년간 미국 대학들이 소수인종, 여성, 이민자, 성소수자 학자의 고용 확대와 관련 연구 육성을 통해 인문학의 위기와 구조적 문제에 포용적으로 대응해왔음을 강조한다. 유상근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책이 미국 인문학계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적 전략임을 지적하면서도 한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모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보다는 미국의 대응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한국 학계가 자국의 현실에 맞는 방향성을 설계하는 데 유익할 것이라고 시사하며 글을 맺는다.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최신 동향 분석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 영문학 연구가 포용적이고 세계로 연결된 미래를 구상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라 할 수 있겠다. 김명환은 「영미문학연구회의 다음 30년을 위한 성찰」에서 지난 30년간의 고등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향후 영미문학연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고 단호한 어조로 제시한다. 논문은 영미연의 창립 배경을 한국 대학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며 현장 경험에 기반한 논지를 전개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인한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데서 나아가,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대학이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통합학문의 비전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한 위기 진단에 그치지 않고 대학 본연의 정신을 회복하고자 하는 실천적 인문학의 의지를 드러낸다. 한국 대학과 사회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려는 영미문학연구회의 책무와 정체성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이번 호의 다른 논문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최예정은 「“To be or not to be”: 한국 대학 영문과의 현황과 교육과정 돌아보기」에서 한국 대학 내 영문학과가 처한 현재 상황을 진단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역 간 불균형한 영어 관련 전공의 분포와 광범위한 학과 축소 현황을 보여주는 통계를 통해 지역 인구 감소, 입시 경쟁률, 학생 충원율, 그리고 취업 담론이 영문과 교육과정 현황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는지를 분석한다. 논문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영문학과 교육과정을 세 가지 모델로 요약한다. (1) 전국 영문학과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전통적 학술지향형 교육과정” (2) 문학 연구를 유지하면서 미디어 및 문화 콘텐츠를 통합하는 경향을 반영한 “변화 수용 학술형 교육과정” (3) 학제 간 그리고 산학 연계를 전면에 내세운 “변신 지향 학제융합형 교육과정”이다. 저자는 향후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고전 체험형, 현실 밀착형, 융합/확산 지향형의 세 가지로 제안한 뒤 영문학 전공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삶에 다층적이고 실질적으로 맞닿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지를 의식하여 영문과의 존립 이유를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을 맺는다. 한국 대학의 영문학 교육이 직면한 구조적 현실을 실증적으로 진단하고, 데이터 기반 분석을 통해 학문적 정체성과 교육적 실천의 접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정희원은 「교양교육과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안과밖』의 성찰과 이후의 단상」에서 『안과밖』 창간 이후 지난 30년간 영문학의 역할 논의가 전공인문학과 교양인문학이라는 두 축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되짚어본다. 논문은 미국과 유럽 대학 내 교양교육 역사를 소개하면서 이를 한국 상황에 연결해 영문학 교육과 역할의 공시적·통시적 탐색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위상 변화와 영문학 및 교양영어 교육 커리큘럼, 실제 교실 내 역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주요 쟁점을 정리할 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교양교육에 대한 제안을 첨언함으로써 영문학 교육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논문은 향후 교육에 있어 인문학 교육이 비판적 읽기, 성찰적 사고, 평생학습 역량을 기르는 데 여전히 핵심임을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안과밖』의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전공/교양 간 담론 분석과 교육현장 사례를 소개하며 거시적 담론과 미시적 실천을 아우르는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한 글이다.

초기 4년간 공동대표와 『안과밖』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종숙은 ‘축사’ 「세계화 시대의 ‘K-영문학’?: 영미문학연구회 창립 30주년에 부쳐」에서 영미문학연구회 창립 당시를 회고하면서 현재 한국 영문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진단한다. 저자는 한국의 영문학이 과거에는 지적 실천을 주도했으나 오늘날에는 시장논리에 종속되어 고유한 학문적 주체성을 상실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한국 영문학은 “K-영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 체제에 편입되었으나, 실상은 영어권 중심의 문화질서 속에서 한 “지점”으로 기능하는 주변적 위치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지식을 조작하고 인간적 사유를 잠식하고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 영문학은 비판적 사고의 근본적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햄릿처럼 근대성의 위기를 끌어안고 과거와 미래를 함께 사유하는 “기억의 사고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축사는 시장과 기술의 논리에 흔들리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도 영문학이 인간적 사유와 윤리적 성찰을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인문학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번 호 ‘연작기획’은 ‘새로운 언어적 전회를 위하여: 언어, 재현, 다른 현실의 창조’라는 주제의 마지막 회로서 두 편의 논문이 기존의 인간중심적 서사를 넘어 인간, 동물, 환경의 경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인류세적 감수성과 윤리를 환기하며 문학의 힘을 재확인하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 송다금의 「비언어적 동물 재현의 가능성: 「카우」·「군다」·「플로우」를 중심으로」는 최근 영상 서사에서 나타나는 동물 재현의 새로운 경향을 통해 비언어적 재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글은 아감벤의 개념을 빌려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적 틀에 기반한 “인류학적 기계”가 작동해온 기존의 동물 서사가 동물을 인간의 정치적/사회적 알레고리나 상징으로 소비하고 동물성을 배제하며 인간중심주의를 강화해왔다면 최근 비언어적 동물로의 전환 담론은 동물을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릿보의 “동물로의 전환” 개념으로 설명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카우」와 「군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플로우」에서 시도되는 카메라 기법, 시선, 의인화와 감정이입의 배제 등의 사례 분석을 통해 동물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려는 최근의 서사적 시도를 조명한다. 황정아의 「인류세 소설과 인류세 담론: 『하늘의 물레』와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을 중심으로」는 고시를 출발점으로 인류세 담론과 문학적 상상력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면서 인류세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확장하는, 문학의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르 귄의 『하늘의 물레』가 인류세 담론의 ‘폐허’ 개념이 전제하는 적실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면 파워스의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얽힘’의 낭만적인 서사를 경계하게 한다고 관찰한다. 작품 분석을 통해 글은 인류세는 문학, 특히 사실주의 소설의 재현 방식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사상적 전환점이며 고시를 비롯한 기존 논의는 주로 인류세 담론이 제기한 문제를 문학이 얼마나 충실히 재현하는가에 초점을 두었지만, 문학은 단순히 인류세의 담론적 수용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담론에 비판적으로 도전하는 주체가 될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이론과 쟁점’은 김정하의 「규모와 태도의 해석학: 리타 펠스키와 포스트비판」을 싣는다. 글은 『비판의 한계』와 『사로잡히다』를 바탕으로 펠스키의 포스트비판적 읽기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자신이 ‘규모-태도의 해석학’(S-S 해석학)이라 명명한 새로운 방법론이 해석의 규모와 태도를 정밀하게 조정한다고 주장한다. 펠스키의 포스트비판적 읽기는 작품과 독자 사이의 정서적 반응을 제대로 가능하게 하는 연결방식이고, 이때 해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규모와 태도를 계속 바꾸어가며 이루어지는 유연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김정하는 자신의 학문적 경험과 한국 문학교육의 현실을 겹쳐 사유하며 글을 맺는데, 펠스키의 새로운 읽기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개인적 경험과 달리, 오늘날 한국 대학생들은 쉽게 매혹되지 못하는 피로의 정동을 공유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소진”을 비관적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능동성과 수동성의 전환이 발생하는 경계적 시공간이자, 행위자성과 감수자성이 얽힌 잠정적 체류의 상태로서의 “망설임” 개념을 끌어온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일상에서는 무기력해 보이더라도 예기치 않게 강렬한 행위자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지적하면서 21세기 한국 문학교육이 이 ‘망설임’의 공간이 지닌 잠재력과 그 변형 가능성을 새롭게 탐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가 주목하듯 AI가 글쓰기의 내밀한 지점까지 침투하는 시대에 읽기와 행동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펠스키의 이론은 AI 시대의 대학교육의 방향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번 호 특집 논문들의 논의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평’에서 최태섭의 「한국, 남자는 억울한가?: 청년 남성의 생애과정과 주관적 인식, 그리고 젠더 정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대남이라는 보수적 정체성으로 나타나는 청년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을 통계적 산출 자료에 근거하여 조사한다. 한국 청년 남성이 경험하는 교육과 양육, 군 복무, 취업과 노동, 연애와 결혼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자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이 “표준적인 생애주기”를 청년 남성의 관점에서 분석·재구성함으로써 청년 남성의 보수화의 원인뿐 아니라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함께 시도한다. 기존 연구가 주로 단면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 글은 청년 남성이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성장하고 경험을 축적하며 주관적 인식 및 태도를 형성해왔는지를 살핀다. 방법론적으로는 문헌 연구를 택한다.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기보다 기존의 다양한 연구와 조사 자료들을 저자의 관점에서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있으며, 비록 “청년 남성”을 하나의 집단처럼 다루지만 이는 개별적 차이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함을 분명히 한다. “이대남” 담론이 형성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이 부족했던 점을 고려해보면 논문은 향후 정책 및 학술적 논의를 위한 유용한 근거를 제공한다.

‘동향’은 한예림의 「‘아시아 셰익스피어’ 연구동향」을 통해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독립된 학문 분야로 자리잡은 아시아 셰익스피어 연구 경향을 살핀다. 논문은 아시아 셰익스피어학회(ASA)의 창립,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편집논문집 출판,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의 각색 및 공연 연구가 어떻게 학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한예림은 ASA 기반 연구가 중심/주변 이분법, 미학과 정치의 긴장, 디지털 불균형 및 제국적 아카이빙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글로벌 셰익스피어 담론은 탈국가적·리좀적 연결을 강조하면서도 미학적 읽기를 우선시하면서 정치·역사적 맥락을 희석하고 서구 보편주의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글은 아시아 셰익스피어 연구가 단순한 사례 전시나 다양성의 확장에 머물지 않고 공연사, 각색사, 번역사, 수용사를 통합하는 장기적이고 비판적인 방법론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궁극적으로 논문은 이종숙이 ‘축사’에서 언급하는 글로벌 시대 한국 영문학의 방향성을 아시아 셰익스피어 연구라는 사례 분석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으며, 한국 영문학이 아시아적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국제 학계와 의미 있게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문화비평’에서는 우효경의 「세상으로 나온 인셀의 남성성: 「소년의 시간」」을 소개한다. 이 논문은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을 분석하며, 여성혐오 온라인 하위문화를 뜻하는 인셀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연애 또는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한 인셀 문화는 여성혐오적 관점에 기반하며 현대의 주요 젠더 이슈로 제기된다. 우효경은 「소년의 시간」이 인셀 문화를 재현하는 방식을 분석하며, 남성 주체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서사를 파헤친다. 동시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페미니즘 정서와 젠더 갈등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큰 글이다. 저자는 「소년의 시간」이 인셀 문화의 폭력성과 그 배경의 사회·가정·젠더갈등의 복합성을 고발하는 한편, 한국의 인셀 문화를 언어화하는 작업이 시급함을 주장하며 글을 맺는다. 이 논문은 최태섭의 논문과 함께 현재 한국 남성의 정체성, 특히 20대 남성의 극우화 경향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며, 이러한 현상이 문화권을 넘어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문화적 비교와 젠더 정치의 보편적 양상을 성찰하게 한다.

‘서평’은 세 편의 글을 싣는다. 김성호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영국 소설을 새롭게 읽는 이혜수의 『스피노자로 영국 소설 읽기: 신, 정서, 픽션』을 소개한다. 이혜수의 책은 스피노자의 세 개념인 존재의 일의성, 욕망과 정서의 윤리, 상상 역량의 덕을 바탕으로 디포·셸리·브론테·스위프트·오스틴 등의 작품을 재해석하며, 특히 “적합한 상상”과 “공통 관념”을 통해 스피노자 미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에 김성호는 들뢰즈적 해석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지성의 질서에 따른 상상”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한다. 이성호는 「우울증과 같이 살아가기: 회복과 돌봄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에서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을 소개한다. 이 책은 우울증을 개인의 병리적 상태로 보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성과주의와 사회적 불평등, 젠더·섹슈얼리티의 억압이 만들어낸 사회적 정동으로 해석한다. 번아웃과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은 자본주의 폭력을 드러내는 필연적인 징후이자 그 자체가 저항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울로 인한 지연과 생산의 정지는 신자유주의적 생명정치에 대한 비자발적 불복종이자 “정동적 파업”이기에 정치적 휴식을 위한 자기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츠베트코비치는 이 책에서 자전서사와 이론을 결합한 혼종적 글쓰기를 시도하는데, 이성호는 이러한 글쓰기가 개인과 집단, 고통과 회복을 잇는 복원적 실천을 시도하지만 결국 감정적 서술이 역사적 통찰로 연결되지 못하고 정치적 비전의 명확성을 희석시키며 독자에게 산발적인 감정의 흔적을 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넘기는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또한 츠베트코비치는 소소한 일상적 실천을 신자유주의적 생산성 논리에 대한 미시적 저항으로 제안하지만, 이성호는 이러한 미시적 정치학은 구체적 정치 실천과의 연결이 약할뿐더러 체제 순응으로 이어질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담론과 중첩될 위험 또한 지니고 있음을 환기한다. 박선아는 「고통이 있다—너무나도 절대적인—」에서 흑인 페미니스트 시인 랭킨이 일상에서 겪는 개인적 경험이 역사적·구조적 불평등과 필연적으로 교차함을 기록한 에세이 『그냥 우리: 미국의 대화』를 소개한다. 서평은 랭킨의 글이 사적인 에세이 형식을 취하지만 흑인 공동체의 고통 및 미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겹쳐져 공적 기록의 성격을 띠며 프라이어와 휴즈의 “우리”를 소환해 동시대와 과거를 대화시키는 정치적 작업으로 확장됨에 주목한다. 랭킨은 인종적 편향이 고착된 현실을 보여줄 뿐 보편적 판단을 하지 않고 철저히 흑인의 시각으로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중립을 가장하지도 않는데, 평자는 그러한 편향성이야말로 이 책이 의의를 획득하는 지점이라 분석한다. 박선아는 이 책이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외면해왔으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 분열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한다.

마지막으로 ‘논문’ 「경계 위의 기쁨: 정동 이론으로 블레이크의 기쁨 읽기」에서 유선무는 ‘기쁨’을 블레이크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로 주목한다. 논문은 기쁨이 블레이크 전 작품에 스며 있는 핵심 정동임에도 그동안 신역사주의적 경향이 블레이크 연구의 상당 부분을 이끌어온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정동 이론의 부상은 블레이크 세계에서 기쁨의 다면적인 의미를 조명하게 했다고 환영한다. 유선무는 블레이크 초기 시의 기쁨을 신체·사회·권력·담론과의 촘촘한 관계 속에서 분석하고, 사회 통제와 해방 사이의 경계적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도, 약화하기도 하는 그 양가적 속성에 주목한다.

『안과밖』 59호는 대학, 지역사회, 국가, 그리고 글로벌 마켓이라는 다층적 맥락 속에서 영문학 연구와 교육의 의미를 과거의 회고, 현재의 진단, 미래의 전망이라는 연속성에서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반성과 우려, 그리고 희망의 스펙트럼을 함께 담아낸 의미 있는 호였다. ‘영어권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하는 연구회’라는 영미문학연구회의 철학은 우리의 연구가 문학 안에 머무르기보다 문학 밖에서도 사회적 역할을 모색해왔음을, 그래서 세상과 끊임없는 소통을 지향해왔음을 다시금 환기한다. 이번 ‘특집’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한 인문학의 위기 담론은 사실 이전부터 꾸준히 되풀이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관성적인 반복이라기보다 인문학이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되묻는 지속적인 성찰의 과정일지 모른다. 이러한 되풀이를 새로운 출발을 위한 움직임이자 자생적 갱신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다음 호가 60호라는 사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인문학적 사유를 자극한다.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이 사용한 60진법에서 보이듯, 60은 시간(분·초)과 공간(360。)을 작동시키는 완성과 순환의 수다. 이 상징 속에서 우리는 인문학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의 시작점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 호는 문학과 이론, 인간과 환경, 인간과 기술의 주체성, 연구와 교육, 교수와 학생, 사적 경험과 공적 담론 사이의 다양한 긴장과 공생의 관계를 세밀히 돌아보았다. 문학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문학이 사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대화의 장을 열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특히 문학의 힘이란 지배 담론이 제시하는 거대 서사나 인식의 틀을 보완 또는 지지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전제를 흔들고 한계를 드러내며 비판적 사유의 장을 여는 데 있다고 주장한 이번 호의 한 논문은 담론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담론이 놓칠 수 있는 감정과 윤리의 복잡성을 서사 속에 구체화함으로써 우리가 교류하는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만드는 문학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시대를 새롭게 이야기할 가능성 또한 열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이번 호 소개를 마친다. 곧 마주할 60호가 문학과 세상의 공생을 빚어낼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라면 이번 59호는 그 시작을 준비하며 성찰의 결을 다듬은 예비의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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