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2025)은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13세 영국 소년의 이야기다. 2025년 3월 공개 직후 4주 연속 글로벌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얼마 전 제76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아역 배우 쿠퍼(Owen Cooper)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작품상·감독상·각본상·여우조연상까지 주요 상을 휩쓸며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압도하는 자본으로 치장한 블록버스터나 잘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은 미니시리즈가 전 지구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작품에 열광한 평론가들과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작품의 시의적절성(“could hardly be more timely”)을 지적한다.1) 청소년 문화, 특히 ‘인셀’(incel)이라는 폐쇄적이고도 독특한 온라인 하위문화 집단을 다룬 「소년의 시간」의 인기는 문화와 지역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성별 갈등이 극에 달한 현 세대 청소년들에 대한 전 지구적인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제망과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으로 인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동질화된 시간성이 파편화된 지역성을 압도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동시에 페미니즘에 극심한 반감을 가진 10대와 20대 남성들의 여성혐오 범죄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목도한다. 2014년 로저(Eliotte Rogers)가 자신을 거부한 여자들에 대한 “응징의 날”(Day of Retribution)을 선언하며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여섯 명을 살해하고 열네 명을 다치게 만든 총격 사건을 시작으로 2021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네 살 소년이 열두 살 소녀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미나시언(Alek Minassian)은 인셀 사상을 바탕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차량을 돌진시켜 열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한국에서도 2015년 강남역 살인을 위시하여 남자 청소년들의 여성혐오 수위가 문제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교육현장 및 일상생활에서 연일 보고되고 있다.2)
「소년의 시간」은 이 같은 청소년들의 일탈 이면에 혐오와 배제의 담론을 전파하는 온라인 인셀 문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비판적 개입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상 느슨한 소속감 및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인셀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작품은 인셀 문화를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젠더 권력관계와 온라인 네트워크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해해야 할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본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involuntary celibate)의 약어로 주로 이성애자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정체성 범주를 가리킨다. 이들은 여성과 자신들이 원하는 성적 또는 연애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황을 사회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로 보고 강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공유한다.3) 이 용어는 본래 1993년 캐나다 양성애자 여성 알라나(Alana)가 자신의 성적 경험의 부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에서 처음 등장했다. 남성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해당 온라인 공간은 점차 성차별적 분위기가 심해졌고, 결국 알라나는 2000년 웹사이트 관리 역할을 내려놓았다. 2010년 이후 이들이 4chan과 레딧(Reddit) 같은 온라인 포럼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지향하게 되었고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화되었다.4)
인셀은 ‘매노스피어’(Manosphere)라 명명된 디지털 공간을 중심으로 밈(meme)을 통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표출한다. 자주 쓰이는 용어로는 ‘20 대 80 법칙’(20%의 남성이 80% 여성의 관심을 독점한다는 법칙), ‘채드’(Chad, 가장 매력적인 이성애 백인 남자)나 ‘스테이시’(Stacy, 가장 매력적인 이성애 백인 여자) 등이 있다. 인셀은 외모에서 파생된 유전적 열등감 담론을 내면화하여 여성의 선택을 받는 남성을 ‘알파’(Alpha)로, 자신을 ‘베타’(Beta)로 위치시킨다. 또 자신의 권리 박탈과 성적 매력에 따른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레드필’(Red Pill) 이론5)을 믿고, 이 같은 불평등의 원인을 여성 및 페미니즘에 전가한다. 현재 인셀의 세계관은 종종 극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반페미니즘,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같은 차별적이고 파괴적인 시너지를 발생시킨다.6) 즉 인셀은 개인의 성적 좌절 경험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집단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정체성이다.
한국의 인셀 현상은 서구의 그것과 여성혐오 및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이라는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의 특수한 젠더갈등 구도 속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7) 특히 2010년대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남충’이나 ‘된장녀’ 담론과 같은 젠더화된 혐오언어가 유통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사회 진출을 남성의 기회 박탈로 환원하는 인셀적 서사가 두드러졌다.8) 이른바 ‘이대남’들은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배제된 피해자라는 자기인식을 공유하며, 페미니즘을 사회적 위협으로 지목하고 반페미니즘 정서를 강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인셀 문화를 현재 10대와 20대 남성들의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보는 연구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미투운동과 강간문화 거부 운동 같은 초국적 페미니즘 실천들은 여성의 성적·경제적 주체성에 대한 급진적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이 글은 인셀 현상을 젠더권력 재편에 대한 현 세대 남성들의 생존전략이자 수정된 남성성의 발현으로 해석한다. 동시에 인셀 문제를 정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과학 또는 인셀의 인터넷 매체성에 관해 연구하는 미디어학과는 다르게, 인셀이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재현은 사회가 인셀의 집단적 상상과 욕망, 혐오가 어떻게 매개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의 인셀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앞서 소개한 영국 인셀 문화를 다룬 「소년의 시간」을 주요 분석 텍스트로 삼아 인셀 재현에 관한 문화비평을 시도하려 한다.
2. 남성성 연구와 인셀 문화 연구의 교차점
인셀 현상은 최근 남성성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미디어 젠더 연구가 깅(Debbie Ging)은 인셀이 매노스피어 담론을 ‘알파/베타’라는 남성적 위계와 결합해 성차별 위기 담론을 재생산한다고 분석한다.9) 범죄학자 린세이(Angus Lindsay)는 인셀이 개인적 좌절을 넘어 남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집단적 정체성으로 조직되며 여성혐오적 폭력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적한다.10) 이런 연구들은 공통으로 코넬(R. W. Connell)의 ‘지배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과 ‘종속적 남성성’(subordinate masculinity) 같은 개념을 통해 인셀을 젠더 규범에서 배제된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설명하는 이론적 토대로 사용하고 있다. 코넬은 기념비적 저서 『남성성들』(Masculinities, 1995)에서 남성성은 단일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층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속적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제하는 지배적 남성성 역시도 고정된 개념이 아니고 사회적 실천과 권력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11)
코넬의 남성성 이론은 가부장제 내부 권력관계에서 나타나는 저항과 공모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토대를 제시한다. 인셀은 지배적 남성성이 규정하는 젠더 규범에 편입되지 못한 남성들의 불안과 배제의 경험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지만 이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공모적이다. 즉 인셀은 매력 자본을 바탕으로 여성 정복을 통해 만들어지는 서열화된 지배적 젠더 규범의 수여자가 아니면서도 이를 지지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12)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성차별적 구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전복을 꾀하는 것에 비해, 인셀은 남성성 위계에서 패배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위계를 전복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배적 남성성의 위계구조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문제의 발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여성혐오 전략을 취한다.
이러한 공모는, 인셀이 성적 성공을 거둘 수 없고 지배적 남성성 체계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인셀의 세계관은 철저하게 생물학적 진화론에 기반하고 있다. 인종과 피부색, 키, 외모 등 생물학적 자본을 바탕으로 매력이 평가되는 세계관에서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채드’를 선택하기에, 인셀들이 생물학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신체적 특성은 그들의 실패를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인셀은 지배적 남성성에 의한 조롱과 낙인을 스스로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을 ‘루저’ 또는 ‘베타’로 규정하는 극단적 자기비하의 모습이 특징적이다. 결국 인셀은 자신들의 소외된 구조를 전복하지 못하고 충실한 재생자가 된다. 동시에 인셀은 철저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는데, 이러한 폐쇄적 공동체는 알고리즘(algorithm)과 에코 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인셀 문화 내에서 남성성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재현이 나타난다. 젠더학자 디메트리우(Demetrakis Demetriou)는 지배적 남성성은 다른 남성성으로부터 전략적으로 유용한 요소들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재구성한다고 주장했다.13) 비슷하게 인셀 역시 자신을 불공정한 사회의 억압받는 남성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억압을 주장하며 과거의 권력 위계를 회복하고 남성 헤게모니를 재확립하려는 욕망을 내면화한다. 인셀들의 복잡한 남성성 재현은 학계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한 예로 깅은 인셀을 ‘혼종적’(hybrid) 남성성을 구현하는 집단으로 보았다. 인셀들은 자신의 종속성을 피해자화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혼종적 남성성’을 실천하며 온라인 공간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한다. 즉 자신을 열등한 지위로 인식하는 상태를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전략이다.14) 이러한 ‘혼종적 남성성’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남성 헤게모니가 다르게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며, 특히 소셜미디어의 기술적 환경이 피해자로서의 남성성을 재현 및 증폭시키는 데 적합함을 보여준다.
3. 「소년의 시간」 속 인셀의 재현
「소년의 시간」은 열세 살 소년 제이미 밀러가 동급생 케이티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청소년기의 불안과 외로움, 온라인 문화와 또래관계, 어른들의 무관심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비극을 그린다. 작품은 나체 사진 유출, 사이버 괴롭힘, 여성혐오적 폭력 등 현 사회가 겪는 디지털 문화의 어두운 이면을 추적하여 현실과 온라인 세계가 맞물린 지점에서 인셀 문화가 소년을 파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엄밀히 말해 「소년의 시간」은 인셀의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제이미는 극 안에서 자신을 인셀로 밝힌 적이 없고, 또래집단에 의해 인셀로 규정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스로를 인셀로 정의하고 인셀의 언어 및 문화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남성이 아닌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열세 살 제이미의 심리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소년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일상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인셀 문화를 아이들이 어떻게 흡수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더 치중하고 있다.
3.1. 원테이크, 서사를 조종하는 시선
「소년의 시간」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약 1시간 분량의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첫째 날(1화), 셋째 날(2화), 7개월(3화), 13개월(4화)이 되는 하루를 촬영한 것으로, 시간순으로 사건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직선적 내러티브 구조다. 인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2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만큼 1화는 사건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원테이크 기법은 편집 없이 하나의 숏으로 전체 서사를 전개하는 촬영 방식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몰입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된다. 영화학자 바쟁(Andre Bazin)은 카메라가 극적 공간의 연속성을 끊임없는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냄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온전함”(the integrity of space and time)을 보존한다고 설명했다.15) 서사의 인위적 단절을 제거하는 원테이크는 한편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관객에게 강요함으로써 관객이 극 중 인물의 심리와 상황에 더 밀착하게 한다.
원테이크 기법의 장점이 잘 드러난 「소년의 시간」의 첫 에피소드는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급습하는 기동대를 카메라가 밀착해서 따라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사건 담당자인 루크 베스컴 경위가 제이미를 체포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집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긴박하게 쫓는다. 이때 관객은 경찰들이 왜 이 집을 급습하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검은 방탄복을 입은 다수의 기동대원들이 라이플을 겨누며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은 마치 마약상이나 테러리스트 검거 작전을 방불케 한다. 카메라는 공황 상태에서 소리를 치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를 재빨리 제압하고 이동하는 기동대원들의 동선을 속도감 있게 따라가는데,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집 안에서 가장 어린 남자아이의 침실이다. 겁에 질린 채 침대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앳된 소년이 뿜어내는 극도의 긴장감은 베스컴 경위가 소년이 오줌을 지린 것을 발견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그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일부 완화되고, 목적을 이룬 기동대는 철수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행동을 취하는 인물들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준다. 첫 장면은 베스컴 경위가 사과를 베어먹는 모습을 카메라가 뒤에서 촬영했고 급습 작전 동안에도 기동대원들의 표정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제이미를 비롯한 가족들의 몸과 얼굴은 종종 클로즈업되는데, 이때 관객들은 카메라의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극영화 연구자 지주연은 장면의 단절이나 편집이 배제된 원테이크가 “관객이 인물의 움직임과 사건의 리듬에 신체적으로 동기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구성”하는 동시에, “카메라가 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다니며 관객은 사건에 신체적으로 밀착된 관찰자로 위치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즉 이러한 관찰자의 위치는 “감정의 선명한 윤리적 판단보다, 정동의 모호성과 불편함에 머무는 윤리적 감응의 조건을 구성한다”라는 것이다.16) 베스컴 경위가 가족들에게 “아드님은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라고 선포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이제 살인의 동기를 밝혀야 하는 숙제를 받고 극의 참여자로 전환하게 된다. 원테이크 장치는 이 작품이 어른들에게 다소 생소한 인셀 문화를 탐구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작품은 원테이크 장치를 통해 다소 강압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동시키지만 그렇다고 관점이 강압적인 것은 아니다. 관객이 카메라가 제공하는 직선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다양한 인물들의 물리적 이동선을 따라 점프하듯이 이동하기에 극의 서사구조 자체는 오히려 다중적이고 다각적이다. 한 예로 제이미가 집에서 경찰서로 이동한 뒤 혈액 채취, 신체 수색, 변호사 선임, 면담까지 컷 편집 없이 원테이크 촬영으로 전개된다. 사과를 먹으며 사무실을 나서는 베스컴 경위는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말을 거는 동료 경찰관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이때 카메라는 동료 경찰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경찰이 제이미를 신체검사하기 위해 온 간호사에게 서류를 건네는 시점에서 카메라는 다시 한번 초점을 이동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피사체를 이동하며 초점을 수시로 재배치한다. 원테이크 내 다중 초점은 경찰서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참여를 보여주어 일종의 집단 공동체성을 관객에게 일깨운다. 이는 「소년의 시간」의 궁극적 목적의식을 보여주는 구조적 장치로 작용한다. 즉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의 다양한 역할 및 반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모두가 열세 살 소년이 저지른 폭력적이고 잔인한 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고 함께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1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원테이크로 생성된 서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배우들의 감정선 역시 최고조에 이른다. 마지막 심문에서 변호사의 조언대로 감정 없이 ‘노코멘트’(no comment)를 반복하던 제이미는 베스컴 경위가 케이티를 살해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긴 CCTV 영상을 보여주자 잠시 침묵하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주삿바늘에 겁을 먹을 만큼 자신의 고통에는 예민한 열세 살 소년은 동갑내기 소녀를 부엌칼로 일곱 번이나 찔렀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싶냐는 경위의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않아 타인의 고통에는 끔찍하리만큼 둔감함을 보여준다. 심문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난 아니야, 난 아무 짓도 안 했어”라며 흐느끼는 소년과 아들이 저지른 범죄가 사실임을 목도하게 된 아버지의 얼굴에 나타나는 혼란 및 절망을 카메라가 비추는 것으로 1화는 끝을 맺는다. 이 시점에서 관객은 제이미가 범인임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의 동기가 이해된 건 아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역시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된 이어지는 세 개의 에피소드, 경찰(사법)·심리학자(지식)·부모(사적) 시선에서 인셀 문화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즉 작품은 원테이크 기법을 통해 ‘인셀’이라는 어른들에게 생소하고 이해 불가능한 온라인 문화에 다중적인 접근법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구조를 취한다.
3.2. 무너진 아버지들과 부상하는 인셀의 세계
1화가 사건의 맥락을 제공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설정했다면 2화는 사건 3일째 베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가 제이미와 케이티가 다니던 학교를 탐문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원테이크 기법으로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탐문 수사의 중심인물인 베스컴 경위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동시에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사건의 공모자 또는 목격자인 아이들의 은밀한 세계가 함께 치환된 이중구조다. 관객은 이 비밀공간에 초대된 목격자로서 제이미와 케이티에 관한 소문이 퍼진 학교에서 아이들이 비밀을 공유하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2화에서 최초로 ‘인셀’이 사건의 동기나 제이미의 심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2화 전개의 핵심 인물인 베스컴 경위는 사법기관의 대변자인 동시에 제이미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작품은 베스컴 경위의 공적 얼굴(수사관)과 사적 얼굴(아버지)을 원테이크 서사에 교차시켜 학생 교육에 실패한 제도의 붕괴와 아들 교육에 실패한 아버지를 동시에 조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셀이 기존의 위계적인 남성 체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동시에 여성에게 받은 피해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쓰는 ‘혼종적 남성성’의 발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작품이 인셀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남성성 및 가부장성에 대한 재고찰을 시도하는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다. 때문에 「소년의 시간」은 제이미 어머니의 모성이나 여성 피해자의 서사보다 (예외적인 3화를 제외하고) 제이미와 같은 10대 소년들의 아버지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한 예로 2화의 시작 장면에서 베스컴 경위는 1화의 시작 장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들 애덤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계속해서 어긋나는 베스컴 경위와 애덤의 소통은 제이미와 에디의 그것과 함께 현대의 단절된 부자관계에 대한 단상을 제공한다. 에디가 제이미의 살인 동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베스컴 역시 아들과 음성 메시지로만 이어져 있는 일방향의 소통 속에서 아들에게 실시간으로 닿지 못하고 있어, 실패한 양육자로서 아버지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 남성성을 상징하는 경찰과 배관공 같은 중산층 노동계급의 가장들이 아들들의 새로운 남성성 형성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작품은 아들의 세계에서 배제된 아버지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호해야 하는 학교라는 시스템 역시 완전히 붕괴했음을 보여준다. 학교를 방문한 베스컴 경위는 계속해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산만해서 제대로 된 탐문 수사를 하기 힘들어한다. 교실에 나오지 않는 교사, 따돌림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교사들은 학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베스컴의 아들 애덤은 일상적으로 따돌림과 또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짧은 점심시간 장면에서 그는 반복적으로 위협과 폭력에 노출되지만, 이를 목격한 교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냥 걔 내버려둬”라고 하고 무심히 지나가버린다.
무엇보다 작품은 인셀 문화의 핵심 조건인 디지털 세상에 대한 공교육의 실패를 교실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베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가 복도를 스쳐 지나갈 때 카메라에 뒷배경으로 잠깐 등장하는 교실 장면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지 않기에 관객들은 교실 속 상황을 소리로만 엿듣게 된다. 현실의 교사는 수업을 하는 대신 비디오를 틀어주고, 비디오 속 교사가 “정말 좋은 질문이군요”라고 말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교실 내 한 학생이 “저기요”라며 끼어들자, 현실의 교사는 바로 “입 다물어! 손 내려놓고 비디오나 봐”라며 소통을 차단한다. 작품은 수동적으로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며 학생의 호기심을 차단해버리는 교사를 통해 현재의 공교육이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critical digital literacy) 교육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17)
「소년의 시간」은 학교와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를 제대로 교육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디지털 장악력 역시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인셀 문화를 가속한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베스컴 경위에게 아들 애덤이 찾아와 제이미 사건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애덤은 작품에서 유일하게 불완전하게나마 아버지와 소통하려고 하는 소년이다. 애덤이 아버지에게 또래의 세계를 ‘가르치는’ 행위는 일시적인 권력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를 내치거나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와 달리 베스컴은 불완전하나마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할 기회를 부여받는다.
애덤: 아빠, 아빠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니까 잘 안 풀리는 거야. 아빠는 애들이 뭘 하는지 못 읽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베스컴: 무슨 말이야?
애덤: 인스타. 인스타 보고 있지? (휴대전화를 꺼내며)
베스컴: 응.
애덤: 그래, 그럼 [케이티]가 뭐라고 썼는지 봤겠네?
베스컴: 그래.
애덤: 착한 애 같지?
베스컴: 아니야?
애덤: (휴대전화의 화면을 가리키며) 다이너마이트, 이게 무슨 뜻 같아?
베스컴: 어, 몰라.
베스컴과 애덤의 대화는 아버지가 아이들이 쓰는 언어의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베스컴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로 전통적인 수사기법인 증거 수집(살인 도구·경찰견·인력)을 생각하지만, 애덤은 그런 베스컴을 답답해하며 그의 디지털 공간에 대한 독해 능력의 부재를 지적한다. 애덤은 케이티의 인스타그램에 대한 베스컴의 표면적인 해석을 반박하며 이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인스타그램 댓글에 달린 이모지의 함의 및 디지털 공간의 권력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사건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애덤의 입을 통해 베스컴과 관객에게 본격적으로 ‘레드필’ ‘블루필’ ‘매노스피어’ ‘20 대 80 법칙’ 같은 앞서 다룬 인셀의 세계관과 용어를 설명한다. 베스컴이 인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셀의 언어가 ‘암호어’(cryptolect)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셀어는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독특한 철자법, 말장난, 난해한 유머,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신조어로 구성”되어 있다.18) 따라서 인셀의 언어는 새로운 언어 사용에서 기존의 의미를 완전히 소거하여 세대 간의 불소통성을 더욱 악화시킨다. 한 예로 레드필과 블루필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 참조체계이지만 베스컴이 아들에게 “뭐야, 너 「매트릭스」 본 거야?”라고 묻자, 애덤은 「매트릭스」를 전혀 알지 못한다. 즉 인셀의 언어는 이전의 의미 및 개념 체계를 완전히 삭제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에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버지 세대의 경험과 참조체계, 지식 자본이 아들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다시 한번 아버지들의 양육 실패를 암시한다.
인셀 문화의 배제성은 역설적으로 내부 집단의 결속과 소속감을 공고히 한다. 인셀의 언어는 작품에서 아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내부 문화이자 소통의 체계다. 그리고 인셀 언어를 전유하게 된 또래집단이 보여주는 공격적인 온라인 문화는 인셀의 언어가 현실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 이때 “어떻게 열세 살 미성년자가 비자발적 독신(인셀)이 아닐 수가 있냐?”라며 논리로 상황을 이해하려 하는 베스컴과 이면의 의미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애덤은 다시 소통 불능 상태에 처한다. 온라인에서 새롭게 구성된 담론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재해석하며, 외모나 인기, 매력 등 현실 제도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또래집단 내에서 권력을 획득하거나 박탈당하기도 한다. 인셀의 남성성이 자신의 결핍을 구조적으로 야기시키는 지배적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이는 케이티가 전 남자친구가 유출한 반나체 사진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이면서도 제이미를 온라인상에서 ‘인셀’이라 낙인찍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폭력성은 또래집단 모두가 케이티의 리플에 ‘하트’를 누르는 가학적 폭력으로 증폭되고 결국 제이미가 케이티를 ‘제거’하는 가장 비극적 결론으로 끝나게 된다.
인셀 문화가 그렇듯이 온라인상의 피해가 실제 물리적 피해와 교차하는 ‘기술 매개 성폭력’(technology-facilitate sexual violence, TFSV)은 전통적인 물리적 피해 못지않게 현실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19) 「소년의 시간」은 온라인상에서 존재하던 인셀의 가학적 문화가 현실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인셀 담론 속에 갇힌 아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체제 속에서 각기 역할을 수행하기에 아버지들이나 학교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아버지의 부모로서의 권위와 사회 시스템 모두가 붕괴한 뒤, 매력이나 외모 등 수치화하기 쉬운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인셀식 계급사회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소통이 아닌 지배를 꿈꾸는 폭력적인 세계다.
3.3. 젠더 전쟁: 두 가지 남성성 전략
기존의 지배적 남성 질서의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공고히 하는 인셀의 정체성은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3화는 사건 발생 7개월 뒤 시설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제이미를 심리학자 애리스턴 브라이오니 박사가 면담하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가장 인상 깊은 회차로 꼽기도 한 3화는 유일하게 여성이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작품에서 제이미의 엄마나 누나 등 여성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로 기능할 뿐 대부분 서사의 전개와 심리 분석은 남성 인물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3화는 여성 심리학자와 제이미의 2인극을 통해 제이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는 회이기도 하다. 관객은 2화에서 애덤을 통해 인셀의 모순적인 남성성을 알게 되었기에, 3화에서 등장하는 실체로서의 인셀 남성성을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브라이오니 박사는 전문직, 중산층, 미모의 성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어린 남학생인 제이미와 대척점에 서 있다. 인셀의 세계관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지만, 현실에서 박사는 나이 및 교육자본, 사회적 지위 면에서 제이미보다 우위에 자리잡고 있고 무엇보다 사법기관의 요청으로 제이미를 ‘평가’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권위를 부여받았다. 앞서 경찰이나 변호사, 아버지 등 자신보다 권력의 우위에 선 남성들을 만났을 때 제이미는 대부분 명령을 순순히 수행하거나 겁에 질린 열세 살 소년의 면모를 보였지만, 권력의 우위에 선 여성을 만났을 때 그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이처럼 작품은 여성 심리학자를 제이미가 답습하고 있는 인셀의 젠더관을 시험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면담장에 들어오며 박사는 의도적으로 마시멜로가 든 코코아와 피클이 든 샌드위치를 제이미에게 건넨다. 1화에서 남자 경찰이 제이미를 구속하며 다소 건조하게 절차적으로 시리얼을 제공한 것과는 달리, 박사는 제이미가 좋아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이라는 전통적 여성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제이미는 이를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박사가 갑자기 제이미와 아버지의 관계, 또래집단에서의 위치 등을 언급하자 제이미는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앉으라고 하지 마. 당신은 [나를] 통제 못 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며 욕설을 내뱉는다. 제이미가 잠시 흥분이 가라앉은 틈을 타 박사는 다시 제이미가 케이티에게 성적 접근을 하려고 했는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제이미는 자신을 거부한 케이티를 ‘나쁜 년’이라고 욕하며 자신의 욕망을 좌절시킨 케이티를 제거한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 제이미의 여성에 대한 적개심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받아주지 않을 때 드러난다는 점에서 제이미의 성차별적 위계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케이티의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고 전 남자친구가 유출한 사진을 보며 케이티를 성적으로 대상화해온 제이미가 케이티의 자신에 대한 평가(인셀)에 분노해 살해까지 하게 된 것처럼 자신에 대한 박사의 평가에도 집착하며 노트를 보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제이미는 성별을 매개로 케이티와 박사를 동일시하고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여성들의 평가에 심하게 좌우되는 모습을 보인다. 박사가 제이미의 요청을 거부하자 제이미는 다시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조롱과 위협을 이어간다. 제이미는 상담 내내 “당신은 날 좋아하나요?”와 “당신은 날 통제할 수 없어”라며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거부하는 상반된 반응을 교차로 보이는데, 이는 제이미가 관계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두 가지 남성성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제이미는 양육자의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소년과 통제를 거부하는 성인 남성이라는 두 가지 남성의 역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교차적으로 수행한다. 박사가 “여자들은 너한테 끌릴까?”라고 묻자 제이미는 “아뇨. 당연히 아니죠. 저는 못생겼으니까요”라며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시키는데, 곧바로 박사에게 “[당신은 내가] 안 못생겼다고 해야죠”라고 이를 반박하는 감정노동을 해주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박사가 제이미의 이상에 부합하는 전통적 여성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했을 때 제이미는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폭력성을 드러낸다. 제이미의 두 가지 남성성 전략은 앞서 언급한 ‘혼종적 남성성’의 수행성 개념에도 부합하는데, 제이미는 주변화된 남성성을 가지고 있지만 주류 남성성을 강화하는 인셀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남성성 수행을 전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박사를 향한 제이미의 공격성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 카메라는 두 사람의 젠더에 기반한 움직임과 공간 분할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비시킨다. 제이미가 코코아를 집어던지고 상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리적으로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는 데 반해 박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또 제이미가 박사의 지시를 거부하며 통제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낼 때 제이미는 앉아 있는 박사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한다. 수직으로 배열된 갈등 상황에서 제이미는 앉으라는 박사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상황을 압도하고 지배하려 한다. 카메라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열세 살 남자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박사의 경직된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박사는 여성을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 않고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라 ‘여자’로 환원하여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제이미의 폭력성에 무력함을 느낀다. 결국 남자 감시관이 오고 나서야 제압당해 상담실에서 끌려 나가는 제이미는 다시 한번 “아빠한테 나 괜찮다고 전해줘요”라고 박사에게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그들의 상담은 끝난다. 관객은 성인 여자가 열세 살 남자아이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이 상황을 다시 한번 박사의 몸을 통해 관찰하게 되는데, 제이미가 남긴 샌드위치를 치우다 박사가 헛구역질하는 장면은 제이미가 여자에 대해 느끼는 순수한 악의에 대한 박사의 역겨움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경도된 인셀의 여성혐오에 대한 적절한 해결법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순간 박사는 무력감을 느끼고, 두 가지 남성성을 전략적으로 차용하며 자신의 폭력성을 피해자의 자기방어로 정당화하는 제이미에게서 어떠한 건설적인 소통 및 변화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둘의 대화는 종결된다.
4. 나가며: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더’ 잘할 수 있을까?
「소년의 시간」은 폐쇄적인 인셀 문화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지만,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문제가 제도, 또래문화, 젠더갈등 등 얼마나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어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작품은 다중적인 관점에서 살인범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것이 유일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해서 환기하는 장치들을 제공한다. 원테이크 방식을 택하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이동 경로를 설정한 서사 전개가 한 예다. 또 미샤 경사가 “언제나 가해자가 앞에 오죠. (…) 모두 케이티는 기억 못 하고 제이미를 기억할 거예요”라고 말하자 베스컴이 “우리는 답을 찾으러 온 거야”라고 답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살인범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그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해결을 위해 공동체의 담론장을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역시 이 작품에서 피해자의 부재는 “[살인자에] 면죄부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분석했다.20) 즉 피해자의 부재가 사건의 서사를 진행하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고, 폭력의 원인을 다각적인 면에서 접근하면서, 작품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셀의 세계관에 대항하는 다중적 인식론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마지막 에피소드 4화는 살인자의 가족이 된 밀러 가족의 삶을 사건 발생 13개월 후 제이미의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을 통해 그린다. 제이미가 체포되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일하게 제이미의 살인 장면을 CCTV로 본 에디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전형적인 중산층 노동계급인 밀러 가족은 여느 가족이 그렇듯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평범하다. 이런 설정을 두고 많은 평론가가 제이미의 일탈을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서사를 피하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임을 환기하는 장치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해자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낙인과 혐오로 인해 고립된 밀러 가족은 그 속에서도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에디는 자신의 생일 아침에 작업용 밴에 ‘NONSE’(소아성애자를 뜻하는 ‘nonce’의 오기로 보인다)라는 낙서를 발견하고 분노한다. 에디의 밴은 1화에 베스컴 형사와 기동대가 제이미의 집을 급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화면에 등장하는 피사체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에디의 배관공 사업에서 중요한 자본이다. ‘밀러 배관 서비스: 친절하게, 신뢰 있게, 전문적이게’라는 문구는 완전 무장한 경찰차와 대조를 이루며 곧 위협받게 될 가정의 일상 파괴를 암시한다. 이처럼 밴을 둘러싸고 기표(문구)와 기의(상황)가 괴리되는 상황은 4화에서도 반복되는데, 밴에 폭력적으로 남겨진 스프레이 낙서는 먼저 철자가 잘못되었다는 점, 소유주인 에디는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 마지막으로 제이미는 살인자이지만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기표가 아니다. 이처럼 본연의 의미가 좌절되는 것은 우리가 앞서 본 「매트릭스」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원작을 모르는 인셀의 언어를 떠오르게 한다. 에디의 에피소드를 통해 작품은 파괴적인 온라인 인셀 문화가 초래한 범죄로 인해 무고한 사람(살인자의 가족)이 온라인 문화의 폭력에 다시 한번 노출되는 악순환의 원형 구조를 관객에서 보여주며 인셀의 세계관이 어떠한 해법도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4화에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제이미는 유죄를 인정하기로 한 결정을 아버지에게 전화로 통보하는데, 이것이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깨달은 참회인지, 범죄자로서 형량에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많은 범죄 드라마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정을 설명하거나 참회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범인을 동정하게 되는 서사 장치를 빌리는 것에 반해, 「소년의 시간」은 제이미에게 어떤 동정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4화에서 제이미는 최소한의 매체(소리)로만 존재하고, 관객의 연민은 그의 가족, 정확히는 “방에 있으니 안전하다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내가 더 잘할걸”이라며 제이미의 곰 인형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에디에게로 선회한다.
마지막으로 「소년의 시간」은 다층적이고 설득력 있는 접근을 통해 인셀 문화를 고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인셀로 정체화하고 정치운동으로서 인셀 사상에 가담하는 젊은 남성들이 아니라 인셀 문화에 불가항력적으로 노출된 어린 소년의 사례를 통해 사회와 가정의 역할을 재고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기에 미샤 형사가 자신의 힘든 학창 시절을 버티게 해준 ‘좋은 교사’를 회상하며 “모든 아이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라는 정도의 피상적(이지만 중요한) 해결방안만이 제시되었다.
한편 「소년의 시간」은 당초의 목적대로 현실의 개입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는 영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이 드라마를 커리큘럼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유럽 국가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온라인 규제 및 성교육과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의 실효성에 힘을 실어주었다.21) 하지만 이런 조치가 어떤 맥락에서 실행되는지 역시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2025년 9월부터 공립학교에서 미성년자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정책은 젠더 및 인종에 관한 내용을 커리큘럼에서 삭제하도록 한 것과 더불어 성평등 교육 및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반대하는 보수 교육정책의 하나로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의 정책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나아가 「소년의 시간」이 다루지 않은 부분인 인셀 문화가 인종 및 민족성과 교차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매노스피어의 남성성을 이론화하는 작업은 디지털 공간의 초국가적 성격과 그에 수반되는 지역성의 중첩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그렇기에 인종과 젠더의 교차점에 물린 한국판 「소년의 시간」을 통해 한국의 인셀 문화를 언어화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 1)禹孝璟 미국 East Texas A&M University 영문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 “Re-bordering Collective Memories of a Refugee Family in Ocean Vuong’s Night Sky with Exit Wounds”(2025)가 있다.Michael Hogan, “‘Unnervingly On-the-nose’: Why Adolescence is Such Powerful TV that It Could Save Lives,” The Guardian (Mar. 17, 2025). https://www.theguardian.com/tv-and-radio/2025/mar/17/adolescence-netflix-powerful-tv-could-save-lives.
- 2)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은 여성혐오와 극우 사상이 청소년 남성 연대의 중심이 된 현상을 지적한다. 그는 치열한 경쟁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사회가 청소년들이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이대남’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이한 「우리의 ‘소년의 시간’, 구원하고 계몽할 수 있나요?」, 『오늘의 교육』 86 (2024) 64면.
- 3) Mahirza Aulia, “The Phenomenon of Incels in Internet Meme Culture,” International Journal of Media 7.1 (2022) 5~6면.
- 4) Debbie Ging, “Alphas, Betas, and Incels: Theorizing the Masculinities of the Manosphere,” Men and Masculinities 22.4 (2019) 644~45면.
- 5)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주인공 네오가 모피어스로부터 받은 두 알약 중 하나로, 블루필(Blue Pill)은 일상적이고 안락한 거짓된 현실(매트릭스)에 그대로 남게 되지만, 레드필은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고통스럽지만 진짜 현실로 깨어나게 된다.
- 6) Stu Lucy, “Slippages in the Application of Hegemonic Masculinity: A Case Study of Incels,” Men and Masculinities 27.2 (2024) 128~29면.
- 7) 이우창은 한국의 이대남 담론과 북미 및 서구의 안티페미니스트들과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북미나 서구의 전통적인 안티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전사적 남성성을 선망하고, 기독교에 기초한 안티페미니스트들은 보수적인 성 윤리 및 가족관을 강조하곤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주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은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혐오하며 이성애적 관계와 가족관을 당연하게 전제한다는 사실과 별개로 전통적인 가부장의 책무를 부담스러워하고, 성인물 검열 정책에 분개하는 면모에서 볼 수 있듯 보수적인 성 윤리를 계승하지도 않는다.” 이우창 「안티페미니즘 전략의 형성에서 음모론적 남성성의 등장까지」, 『폭주하는 남성성』(한국성폭력상담소, 2025) 177~78면.
- 8) 이보명 「‘진보’ 정치학 이후와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에 대한 소고」, 『경제와 사회』 132 (2021) 142면.
- 9) Ging, 앞의 글.
- 10) Angus Lindsay, “Swallowing the Black Pill: Involuntary Celibates’ (Incels) Anti-Feminism within Digital Society,” International Journal for Crime, Justice and Social Democracy 11.1 (2022) 참조.
- 11) R. W. Connell, Masculinities (Berkeley: U of California P, 1995) 77~78면.
- 12) 소수인종 아시아계 남성들을 칭하는 스테레오 타입 ‘너드’(nerd)와 ‘긱’(geek)은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전통적 남성성에서 배제된 비주류 남성성이라는 점에서 일견 인셀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너드나 긱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열중해 이를 기술·문화 자본으로 만들어내지만, 인셀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 및 총기 난사 사건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자신의 비주류성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너드와 인셀 모두 비주류적 남성성으로 외부의 조롱이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만, 너드는 위계화된 주류 남성성을 열망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셀과 다르다.
- 13) Demetrakis Z. Demetriou, “Connell’s Concept of Hegemonic Masculinity: A Critique,” Theory and Society 30.3 (2001) 337~38면.
- 14) Ging, 앞의 글 651면.
- 15) Andre Bazin, “The Evolution of the Language of Cinema,” What Is Cinema?, trans. Hugh Gray (Berkeley: U of California P, 1967) 35면.
- 16) 지주연·이영의 「혐오 정동의 미학적 전환: <소년의 시간>과 <그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51 (2025) 143면.
- 17) 비판적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의 보급과 복제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비판적 문해능력 및 미디어 교육을 위한 핵심 개념이다. 가짜 뉴스 및 디지털 플랫폼, 소셜미디어상의 상충하는 담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Lakkala Ilomaki, et al., “Critical Digital Literacies at School Level: A Systematic Review,” Review of Education 11 (2023) 4면. https://doi.org/10.1002/rev3.3425.
- 18) Ksenija Bogeti, “Race and the Language of Incels: Figurative Neologisms in an Emerging English Cryptolect,” English Today 39.2 (2023) 90면 재인용.
- 19) Nicola Henry and Anastasia Powell, “Technology-Facilitated Sexual Violence: A Literature Review of Empirical Research,” Trauma, Violence & Abuse 19.2 (2018) 196~97면. doi:10.1177/1524838016650189.
- 20) 권김현영 「소년의 시간, 각주와 이어쓰기」, 민변 성평등위원회 강의록(2025년 7월 16일).
- 21) 김기홍 「드라마 <소년의 시간>과 공공성」, 『공공정책』(2025) 105~106면. 영국의 온라인 안전법(2023), 오스트레일리아의 온라인 안전법(2024), 유럽의 디지털 서비스법(2024) 등을 들 수 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