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출간된 『딕테』는 1997년 토마토출판사가 김경년의 번역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한 후 IMF 영향으로 절판, 2004년 어문각에서 재출간, 다시 절판 상태가 지속되면서 오랜 시간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어떤 부재의 흔적과 소문으로 존재해온 작품이다. 2021년 번역된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에서 테레사 학경 차(이하 차)의 죽음을 다룬 장을 통해 차와 『딕테』를 처음 접한 이들도 적지 않다. 미국과 한국에서 거듭 재호출되었지만 『딕테』 번역서 재출간은 명확한 이유 없이 요원한 상태였다. 2024년 마침내 들려온 20년 만의 재출간 소식에 독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영문학을 비롯해 시각예술, 영화이론, 매체이론, 퍼포먼스 등 번역본 절판과 상관없이 『딕테』를 영어로 접하고 연구해온 이들에게는 새삼스럽고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반응이었다. 이는 그만큼 해당 소설이 한국어 독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절판 상황에 긴 시간 소외되어왔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딕테』의 공식 한국어 번역이 절판된 시간은 말하자면 디아스포라의 시간과 흡사했다. 공식적인 시간은 멈춰 있었지만 차와 『딕테』가 잊히지 않도록 모여서 조각난 종이를 나눠 읽고 재번역하던 집단기억의 시간은 드문드문 불규칙적으로 흘렀다. 번역은 두 언어 간에만 일어나는 사건일 수 없었다. 『딕테』의 언어, 장르, 매체 간 번역은 몸과 시간과 기억의 번역으로 경험되었다. 『딕테』가 언어와 기억의 시차로 타자의 공간을 여는 것처럼 출간과 번역, 절판과 재출간이라는 작품 밖 사건들은 공식 번역서를 읽기라는 재번역으로 수행하는 독자들에게도 시차를 남기고 비가시적 사이 공간을 창출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딕테』가 재조명된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와 1994년 킴(Elaine H. Kim)이 편집한 『딕테』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 『자신 쓰기, 민족 쓰기』(Writing Self, Writing Nation)으로 강화된 비평적 위상을 들 수 있다. 현재 『딕테』를 둘러싸고 있는 수식어들이 공식화된 것도 그때쯤이다. 파편적 서사 구조로 난해하고, 해체적이며, 단일한 의미망에 가둘 수 없다는 특징이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 내부에서 소화되었다. 이후 오바마 당선이 인종차별을 개선하지 못하고, 2016년 인종차별을 종용하는 트럼프가 당선되자 예술의 사회 참여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흐름 속에서 『딕테』는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여러 의미에서 정치성과 미적 실험성을 모두 구현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부상한 시기였다. 디아스포라, 퀴어,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더불어 차와 『딕테』가 호명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민자, 유색인 작가의 작업이면 어떤 의심도 없이 인종적·정치적인 관점으로 분석되는 흐름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의 작품은 으레 민족성과 인종, 젠더를 지우는 특정 비평 태도 모두를 『딕테』는 강하게 밀어내며 벗어났다.
미국에서 『딕테』가 획득한 맥락과 별개로 한국문학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진 『딕테』 연구는 한동안 1990년대 후반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의 민족성과 언어담론, 탈식민주의 문학, 한국 근현대 이민문학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절판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중요한 영문학 논문과 영화, 사운드, 몸, 다매체 분야의 외국 연구들이 확장한 아방가르드 담론,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매체이론, 정체성이론, 여성적 글쓰기, 번역과 권력 등의 주요한 관점이 한국어 독자들에게 도착하기까지 불가피한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16년 이후 『딕테』 국내 수용의 프레임 변화는 페미니즘 운동의 역동적 영향력이 요청한 새로운 언어와 위치에 대한 관심과 고민에서 기인했다. 여성 작가와 번역가들이 주목받으면서 여성의 쓰기와 젠더 번역이 연결된 변화의 장 안에서 포착되었다. 즉 『딕테』 재출간은 2000년대 초반 이후 달라진 예술/문화 수용의 장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미래가 있다면 새로운 과거도 있는 것이다. “만약 작품에 힘이 있다면 작품은 청중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모할 것이며 이 과정은 무한히 이어질 것”1)이라는 차의 창작론이자 매체론은 새로운 과거로, 독자의 능동적 번역 행위를 통해 다시 한번 재현되기 시작한다.
발수신자로서의 번역자
『딕테』에서 번역은 다의적인 의미망 안에서 수행되고 실패한다. 서구 번역 관습에서 번역은 원문에 충실한 반복이자 재생산이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연장하고 동화(assimilation)의 맥락을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두 언어 간 비대칭성과 권력관계는 소외된다. 초반 프랑스어와 영어가 아래 위로 놓인 부분에서 차는 ‘틀린 받아쓰기’와 번역을 등치시킨다. 받아쓰기는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번역 결과의 불완전성은 필연적이며 각 언어의 문법과 문화의 상이함 탓에 누락되고 오염되어 불투명해지는 부분을 뚜렷하게 부각한다. 멀리서 온 사람(여성)은 언어에 실려 이동되는 권력에 저항하는 잠재적 장소로서의 틈, 비워진 몸으로 받아서 쓴다. 디아스포라 여성의 몸이 곧 번역의 장소가 되고 다음에 오는 “디죄즈”(DISEUS)2)의 의미를 확장한다. 전문 낭송인을 의미하는 여성형 명사이면서 영매이자 현대적 의미에서 여성 작가로까지 존재가 파생되는 디죄즈는 언어 없는 존재의 언어를 해석하고 매개하며 번역을 수행하는 자다. 이러한 다중 주체가 갖는 복수성이 단일한 의미화와 반복 및 재생산으로서의 번역 수행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디죄즈 장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번역 문제는 기본적으로 언어 학습의 목표가 모방과 재생산의 실천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차는 번역 연습 문제에 문법적으로 부정확한 영어 문장을 포함하면서 식수(Hélène Cixous)가 말한 여성적 글쓰기가 갖는 초문법적 특징을 드러내며 법 밖의 언어와 그 언어 사용자의 존재를 환기한다.
5. 그녀는 전화하다 그녀는 믿다 그녀는 누구에게 전화하다 대답이 없으니까 계속 전화하다 그녀는 믿다 그녀는 전화하고 상대편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상대편은 반대쪽이 느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3)
5. She call she believe she calling to she has calling because there no response she believe she calling and the other end must hear. The other end must see the other end feel4)
예문에서 한국어 번역은 두 가지를 누락한 채 전달한다. 하나는 영어 동사의 초문법성과 극단적 파편화이고, 다른 하나는 영어의 의미 단위들 사이에 보통보다 크게 놓인 여백이다. 의미의 해석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 두 누락으로 언어들의 관계가 재설정되거나 의미가 확장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가령 she를 ‘그녀들’이라는 복수 주어로 인식할 수도 있다. 『딕테』의 다른 장에서 주어 she가 여러 여성이 중첩된 주체로 기록되고 있음을 상기하면 이 부분의 법은 역설적으로 법 밖의 주변적 위치에 대한 상상에 조력한다. 이렇듯 언어에 기입된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번역하고 있는 『딕테』가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차가 「관객 먼 친척」에서 강조한 바 있는 발수신자(sendereciver)로서의 능동적 순환과 저항으로서의 번역을 실천하는 존재가 된다.
“어떤 파헤쳐야 할 이식”
20년은 새로운 번역을 기대하기에 정당한 시간이다. 2004년 판본과 비교했을 때 2024년 재출간본은 판형과 표지색의 변화 외에 아쉽게도 번역에서는 큰 변화를 찾기 힘들다. 다만 『딕테』에서의 번역이 언어가 언어로 옮겨지는 텍스트의 번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할 때 이미지와 매체, 장르의 번역에서 몇 가지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소개한다. 먼저 재출간본에서 보여주는 지도 번역이다. 「멜포메네: 비극」 장의 한반도 지도가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지도가 땅의 지형과 주변 정세, 역사의 기록과 정치적 선택이 교차하며 형성되는 매체이자 번역이라는 것을 지도는 여러 표식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던 지역들과 DMZ가 표시되어 있고, 동해 부분에는 Sea of Japan이라는 표시가 뚜렷하게 보인다. 한반도의 일제 식민지 잔재, 분단, 민주화 역사가 한국 지정학적 상태의 번역 결과로 그려진 지도에서 새 번역본은 Sea of Japan을 지웠다(그림1).5)
2004년과 달라진 이 의도적 누락 또는 삭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해야 할지 독자는 선택해야 한다. 번역의 시차가 원본의 맥락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작가가 근현대사의 기억을 번역한 결과로 제시한 지도의 부분을 삭제한 선택에 대해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전히 ‘일본해’ 표기가 정치적 문제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환기하기에도, 청산하지 못한 현대사 문제를 인식하기에도 삭제의 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Sea of Japan이 표시된 지도가 번역하고 있는 것은 오래 이어져온 “어떤 파헤쳐야 할 이식”6)이다. 차의 어머니가 만주로 이주하고 차의 가족이 하와이로 이주해야만 했던 이식의 시간과 기억이 번역된 지도에서 정작 삭제되어야 할 것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신념일지 모른다. 새 번역본의 이미지는 그렇게 재번역된다. 6)
기억의 질감과 번역
『딕테』에는 이미지나 매체로서의 언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표지 다음에 나오는 유일한 한국어 이미지와 차의 아버지가 쓴 한자 붓글씨, 「클리오: 역사」 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차의 필기체 이미지 등은 언어를 의미적으로 해독하는 방식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사진을 흑백으로 여러 번 복사해 시간성을 부여한 『딕테』 이미지들이 어떤 출처도 표시되지 않은 채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놓임으로써 새로운 관계성과 장르적 경계를 넘는 의미를 획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와 이미지를 수용하는 관습적 방식이 『딕테』 곳곳에 놓인 번역의 장소에서는 힘을 잃는다. 「탈리아: 희극」 장에 놓인 두 버전의 편지는 소문자 기억(memory) 및 대문자 기억(Memory)과 연계되어 등장한다. 첫 번째 편지는 타자기로 친 듯한 서체에 마지막 서명과 주소만 손글씨로 인쇄되어 있다. 2004년 판본에서는 텍스트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면수 표시 없이 놓여 있는 반면 재출간본에서는 이 부분을 텍스트 삼아 번역하고 면수를 표시
했다.
이렇게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문 이미지의 수정 부분인 and와 서명, 주소는 누락되고 만다. 곡선이 크게 휜 필기체가 몸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두 번째 편지는 번역 없이 이미지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첫 번째 편지의 언어 번역은 두 편지가 가진 관계성을 바꾼다. 이 편지들은 언어를 매체로 작업해온 차가 타이포그래피에 내재된 신체성을 적용해 기억을 감각의 영역으로 치환한 이미지로 번역할 수 있다. 편지의 내용은 부차적이며, ‘기억’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텍스트들의 정렬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 두 이미지 사이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그런데 재출간본의 이미지 번역은 이 관계성을 느슨하게 만들고 언어의 매체성을 다른 의미에서 재차 환기
한다.7)
「탈리아: 희극」 장에는 전화받는 여자가 등장한다. 독자의 기억은 앞서 언급한 번역 문제 5번을 소환하거나 그곳으로 움직인다. 두 부분은 상호 조력하며 서로를 번역하면서 처음 그 자리에서 있던 각각의 의미 너머로, 제3의 번역 장소로 나아간다. 이처럼 『딕테』 내부에서 작동하는 어떤 장면들의 시차와 외부적으로 주어진 번역의 시차로 인해 20년 만에 재출간본을 만난 독자들은 단일한 의미로 파급되는 주류적 시각에 저항하며 맥락화된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4)으로서의 재번역을 새롭게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발수신자’의 읽기란 위치와 몸을 바꾸는 역동적인 번역이고,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받아쓰기다. 새로운 과거는 그렇게 이식된다. 8)
1) “pahts,” Theresa Hak Kyung Cha (1978, 3, Cha Archive,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San Francisco, CA).
2)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딕테』(문학사상, 2024) 13면. 앞으로 이 책의 인용은 괄호 안에 면수만 표기함.
3) 같은 책 25면.
4) Theresa Hak Kyung Cha, DICTEE (California: U of California P, 2001) 15면.
5)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딕테』(어문각, 2004) 90면; Theresa Hak Kyung Cha, DICTEE (California: U of California P, 2022) 78면; 차학경, 앞의 책(2024) 90면.
6) 차학경, 앞의 책(2024) 같은 면.
7) 차학경, 앞의 책(2004) 154면; 차학경, 앞의 책(2024) 154면.
8) Donna Haraway, “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 Feminist Studies 14.3 (Autumn 1988) 575~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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