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읽기는 인간의 활동 중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요소로 인류사에 등장한 지 6000년도 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이 읽고 쓸 수 있는 보편적 문해력의 확산은 비교적 최근의 혁신이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스콧(A. O. Scott)의 말처럼, “역사의 대부분 동안 우리의 언어는 구어였으며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은 구술적이었다.”1) 이 같은 읽기의 짧은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여전히 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텍스트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매체의 급격한 발전 및 변화로 인해 우리는 아직 읽기의 방식과 속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읽기라는 행위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이라고 불리는 논쟁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읽기의 과학’이라는 방법론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읽기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채택하도록 하는 것으로 음운론(phonics), 즉 글자와 소리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을 강조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인지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뇌 스캔과 같은 기술로 입증된 뇌의 활동에 대한 지식(예를 들어 아동들이 어떻게 글자를 소리와 결합하는지에 대한 실험 결과)에 기반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한편 기존의 미국 문해교육은 단어를 개별적인 소리나 의미 단위로 보기보다는 문맥을 통해 학습하도록 장려하는 “균형 잡힌 문해교육”(balanced literacy)과 “전체 언어 접근법”(whole language approach)에 기초한 독서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전역에서 많은 주가 ‘읽기의 과학’ 방법론을 지지하며, 기존의 독서 시스템이 강조하던 자유로운 읽기 및 텍스트 감상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2)
‘읽기의 과학’ 운동은 다양한 뉴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체험적 경험이 읽기의 핵심이 되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읽기란 시청각에 기반을 둔 경험의 합이자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뇌의 작용이며, 법칙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일종의 트레이닝의 영역이다. 읽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발하는 현 상황에 대해서 혹자는 “우리의 집중력은 잘게 쪼개져 상품화되었고, 조각조각 팔려나가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먹이가 되었으며, 우리는 너무 바쁘고, 게으르며, 책에 빠져들기에는 너무 마음이 산란해져 있다”라고 비관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3) 다시 말해 우리는 제대로 읽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수많은 상품의 홍수 속에서 읽기가 ‘듣기’와 ‘보기’로 대체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동안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전국에 다시 소설 읽기 열풍이 불어닥치는 기쁘면서도 낯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수십만 권의 한강 소설이 판매되었다는, 문학을 직업으로 하는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여러 의미에서 2024년 가을은 한국의 읽기 문화에 한 획을 긋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그 수십만 권 중 정말로 읽힐 책은 얼마나 될까 하는 불경스러운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뉴스에서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한강과 한강의 책에 대해 ‘들려주고’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소셜미디어에는 실로 한강 책의 표지를 찍은 사진, 한강의 소설 옆에서 포즈를 취한 유저들의 사진 역시 넘쳐난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텍스트 읽기와 최신 이미지에 기반을 둔 매체를 소비하기 위한 다양한 ‘읽기’ 행위가 혼재되어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가 교육현장의 큰 화두로 떠오른 요즘,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현대적 의미의 ‘읽기’ 문화가 형성된 시작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읽기라는 행위에 대한 근현대 문화담론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러한 변화에 따른 문학비평계의 반응과 대응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독서문화와 ‘읽기’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이 글은 시대적 변화에 따른 ‘읽기’의 의미와 대상의 변화에 주목하여, 기술문화적 변화에 영미 문학비평 및 교육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관해 이론화하고자 한다. 특히 텍스트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 흔히 ‘정독’으로 번역됨)를 교육과 학술적 방법론의 기준으로 삼아 발전해온 영미문학 비평계가 읽기 대상의 급격한 변화, 즉 매체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읽기의 방법과 대상을 비판적으로 재정의해온 비평의 흐름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목표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대중매체와 디지털미디어가 문학의 위치를 크게 위축시키자, 영미문학 비평계에서 기존의 텍스트 읽기의 거의 유일한 방법론이자 그 당위성을 의심받지 않던 ‘자세히 읽기’의 가치와 효용을 재고찰하는 연구가 증가했다. 특히 21세기가 도래하며 등장한 디지털인문학과 함께 ‘원거리 읽기’(distant reading)와 같은 인간의 스케일을 넘어선 기계의 스케일을 통해 읽고 분석하는 방법론이 소개되자, ‘자세히 읽기’와 ‘원거리 읽기’의 긴장 속에서 ‘자세히 읽기’를 재정의하거나 개별 텍스트 분석을 새로이 시도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디지털 매체 시대에 걸맞은 ‘자세히 읽기’의 가치를 재정립하거나 그것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새로운 읽기 방법론에 관한 개별적 연구들이 존재하지만, 20세기부터 현재까지 한 세기를 아우르는 ‘자세히 읽기’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들을 이론적으로 한눈에 정리한 연구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스미스(Barara Herrnstein Smith)의 「‘자세히 읽기’란 무엇이었나?: 문학연구에서의 방법론 100년」(“What Was ‘Close Reading’?: A Century of Method in Literary Studies”)의 경우, 디지털 인문학의 시각에서 “자세히 읽기” 방법론의 역사적·이론적 맥락을 탐구하는데, 이 연구는 ‘원거리 읽기’와 ‘자세히 읽기’의 이분법 속에서 문학비평계의 읽기 방법론의 변화를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있다.4)
그러나 스미스의 연구는 그 연구 대상의 외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읽기 방법론의 복잡한 변화 양상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영미문학계에서 일어나는 읽기 방법론의 논쟁을 좀 더 넓은 문화적 차원인 매체의 변화에 따른 대응이라는 시각을 통해 정리한 연구는 아니다.
한국 영미문학 학계의 차원에서도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는 한국문학 학계에서 디지털 시대의 읽기에 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영미문학 비평과 교육이라는 맥락 속에서 해당 주제에 관한 연구가 훨씬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영미문학 학계는 어떻게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이론적 담론을 구성하여 문화에 반응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서 영미문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한국의 영미문학 학계가 영미권에 비해 디지털 매체에 대한 이론이나 교육방법론의 개발이 늦고, 또한 최근까지도 해당 주제에 대한 산발적인 개별 연구는 존재하지만 공동의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공동의 담론을 구성하는 데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또 다른 스케일로 읽기와 쓰기의 주체와 대상이 달라지고 있는 지금, 매체의 변화에 따른 영미문학 비평의 발전 방향에 관한 연구는 우리가 앞으로를 대비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원이자 대화의 시작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영미문학 비평계가 읽기 대상의 변화와 그에 따른 문화 트렌드의 지속적인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왔는지를 이론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양적으로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영미문학 학계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유연하게 외면을 변화시킨 일련의 작업들의 실타래를 연결하여 큰 그림으로 완성하는, 즉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영문학 발전 방향에 관한 하나의 서사를 구성해보는 작업일 것이다. 이 같은 연구는 문학연구 분야가 스스로의 정체성 및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변화·발전시켜온 역사를 추적하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읽기의 이론적 변화를 정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함께 또다시 격변할 읽기 문화의 이해와 형성을 위해 문학 연구자인 우리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연구의 방향성을 상상하고 제안해보고자 한다. 연구 대상의 범위가 넓고 선행연구 부족으로 말미암아 개별 주제 사이의 연결이 다소 임의적일 수 있다. 이 같은 연구가 지닌 단순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관련 주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동료 연구자들이 그 한계를 보완해주리라 믿으며, 또 ‘읽기의 전환’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공동의 담론 구성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대의에 기대어 용기 있게 글을 시작해본다.
2. 19세기 말~20세기의 읽기 담론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자세히 읽기’ 또는 ‘정독’과 같은 읽기 방법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도전받아왔다. 19세기 말 대중매체와 대량인쇄로 인한 변화는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이 초래하는 사회문화적 변화와 유사하게 당시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데임스(Nicholas Dames)는 19세기 후반부터 영국 대중들이 “점점 더 빠르게 소비, 훑어보기, 스캐닝, 또는 ‘부분적으로’ 읽는 현상을 목격했다”라고 설명하며, 이를 “속독가”의 문화로 언급한다.5) 데임스에 따르면, 시각생리학의 발달로 인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독서할 때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즉 독서 중 우리의 눈이 “습관적으로 텍스트를 건너뛰거나 텍스트의 일부만 관찰한다”라는 점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권장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다는 것이다.6) 데임스의 설명은 빠르게 대충 읽는, 그리고 잠재적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방식의 독서가 19세기 말부터 문화적·생리학적으로 자연스럽고 규범적인 것으로 이해되었음을 시사한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부상과 함께 빠르고 효율적인 읽기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19세기 말의 읽기에 대한 문화적 시선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20세기 초의 모더니즘 문학 작품들도 이러한 속도의 문화와 그로부터 영향받은 읽기 방식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담고 있는데,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는 그 시기에 관한 읽기의 현상학을 잘 담고 있는 대표적인 텍스트다.7) 예를 들어 조이스의 캐릭터 블룸은 소설 속에서 기존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계속 잊어버리거나 잘못 기억하기 일쑤인데, 조이스 역시 자신의 긴 소설을 읽는 독자의 바쁘고 대충 읽는 읽기 행위를 작중의 캐릭터와 서사 차원에서 녹여낸다.
한편 20세기 초 신비평(New Criticism)의 대두와 함께 체계적으로 발전한 ‘자세히 읽기’ 방법론은 그 역사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자세히 읽기는 미국의 대학 문학수업에서 널리 채택되며, 20세기 전반을 거치면서 영문학과와 같은 텍스트 비평 중심 학과들의 제도화와 함께 교육기관들을 중심으로 규범화되었다. 스미스에 따르면, 자세히 읽기는 20세기를 거치면서 구조주의·탈구조주의·페미니즘·신역사주의 등 다양한 비평 방법론과의 비판적 보완관계 속에서 발전·계승되어왔다. 하지만 자세히 읽기 방법론은 제안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1960~1970년대에 바르트(Roland Barthes)와 손택(Susan Sontag) 같은 비평가들은 ‘즐거움’과 ‘감각’ 같은 요소를 읽기의 핵심으로 상정하면서, 기존의 자세히 읽기가 강조한 저자의 메시지에 집중한 읽기 방식을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바르트는 그의 유명한 저서 『텍스트의 쾌락』(The Pleasure of the Text)에서 구조주의적 텍스트 분석을 비판하고, 쾌락과 주이상스(jouissance)에 기반을 둔 좀 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행위로서의 독서, 작가의 의도에 귀속되지 않고 독자가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독서 경험을 강조한 바 있다.8) 손택 역시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에서 ‘자세히 읽기’에 기반을 둔 ‘해석’이라는 읽기 방식 자체를 문제시하며, 예술과 텍스트는 해석의 영역이 아닌 감각과 경험의 영역임을 강조했다.9) 또한 손택은 작품의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읽기의 에로틱스(erotics)라는 새로운 사고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바르트와 손택의 독자 중심 경험에 기초한 읽기에 대한 시각이 표면적으로는 자세히 읽기라는 방법론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비판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방법론이 끌고 들어오는 정치적 함의, 예컨대 역사와 콘텍스트의 망각, 작가 및 비평가의 권위와 계층화 등에 대한 거부의 요소가 더 크다는 점이다. 특히 손택에서 시작되어 21세기 베스트(Stephen Best)와 마커스(Sharon Marcus)에서 부활한 “표면”(surface)에 집중하는 읽기 방식은 여전히 예술의 ‘표면’이든 ‘깊은 내부’든 간에 상관없이 예술작품의 자세히 읽기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10)
20세기 중후반은 아마도 가장 많은 비평이론이 등장한 시기일 것이다. 이때 등장한 강력한 비평이론들과 함께 주목받은 이론 중 하나가 ‘독자반응이론’(reader-response theory)이다. 1960~1970년대의 이저(Wolfgang Iser), 피시(Stanley Fish) 같은 이론가들로 대표되는 독자반응이론은 현상학과 해석학을 도구로 독자 중심 읽기의 다양한 양상에 관해 이론화했다. 이저는 현재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암묵적 독자”(implied reader), 즉 ‘텍스트에 내포된 이상적인 독자’라는 개념을 제안했으며, 읽기라는 행위의 핵심이 텍스트에 있는 것이 아닌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에 있다고 주장했다.11) 피시의 경우도 「이 수업에 텍스트가 있는가?」(“Is There a Text in This Class?”)에서 읽기 행위를 독자 중심의 해석 행위로 재정의했으며, “해석 공동체”(interpretive communities)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읽기의 사회문화적·공동체적 차원을 강조했다.12)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세기 중반은 미국에서 TV가 역사상 최초로 대중매체가 된 시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 둘 사이의 직접적 연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는 없지만, 수용자의 반응과 참여가 핵심인 TV 매체의 발전과 텍스트의 수용자인 독자의 반응을 중심으로 둔 읽기 이론의 발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1979년에 출간된 칼비노(Italo Calvino)의 독자와 독서에 관한 메타픽션 『겨울 밤의 여행자』(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의 첫 장에서도 TV와 책은 서로의 강력한 경쟁자로 묘사된다.13) 물론 칼비노의 작품에서는 독서가 TV 시청과 다르게 훨씬 능동적인 행위로 묘사되지만, TV 같은 대중매체에 점점 밀려나는 독서에 대한 자의식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읽기라는 행위를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은 칼비노와 독자반응이론 둘 모두에 존재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자세히 읽기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읽기를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려는 시도는 바르트 이후에도 20세기 후반 내내 지속되고 정교화된다. 브룩스(Peter Brooks)의 『플롯 읽기: 내러티브의 설계와 의도』(Reading for the Plot: Design and Intention in Narrative)의 경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빌려 플롯이라는 개념을 욕망과 연결시킨다.14) 그는 텍스트의 시작에서 끝으로 가는 여정이 독자 플롯의 마지막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각은 텍스트 중심의 읽기 행위를 독자 중심으로, 더 자세히는 독자의 욕망 중심으로 관점을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바르트적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자세히 읽기가 전제하는 텍스트의 세부적인 요소에 대한 집중보다는 서사 전체의 구조와 독자의 심리적 측면의 다이내믹으로 방점이 옮겨간 측면도 발견된다. 여기에는 텍스트를 일종의 상품 또는 미디어의 한 종류로 생각한다는 무의식적 암시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플롯이 독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이 결말부에서 해소되는 매커니즘이 마치 상품의 내적 구조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된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룩스의 주장은 현재 TV 드라마나 영화, 비디오게임, 인터랙티브 미디어 소비에서 중요시되는 시청자의 감정반응 분석과 유사해 보인다. 이처럼 20세기를 거쳐 신비평에 반대하며 나온 다양한 읽기에 관한 논의들은 책이라는 미디어를 매개로 한 읽기라는 행위의 감각적·경험적 측면을 좀 더 정교하게 이론화했다.
3. 21세기의 읽기에 대한 이론 1: 세즈윅과 정동 이론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읽기라는 주제는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는다.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이 쏘아올린 “편집증적 읽기”(Paranoid Reading)와 “회복적 읽기”(Reparative Reading) 개념은 문학비평, 퀴어이론, 정동이론, 문화비평 이론 분야에서 폭넓게 논의되었다.15) ‘편집증적 읽기’는 텍스트의 표면을 넘어 텍스트 내부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폭로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세즈윅은 이러한 읽기 방식을 기존의 해체주의·마르크스주의·정신분석·페미니즘·탈식민주의와 같은 “강한 이론”(strong theory)에 기반을 둔 텍스트 읽기 방식과 연관시키며, 이를 비평가의 권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읽기의 창조적·정서적 기능을 억압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규정했다. 반면 세즈윅이 옹호하는 ‘회복적 읽기’는 편집증적 읽기의 대안적 읽기 행위로서, 때로는 텍스트 옆에서 편안히 쉬는 것과 같은 읽기, 텍스트가 가능케 하는 다양한 심리적·정서적 경험을 고스란히 느끼는 행위로 제시된다. 여기서는 특히 읽기라는 행위가 가능케 하는 감각과 감성 같은 미학적 경험이 텍스트 읽기의 중심에 자리잡는데, 읽기란 작가의 의도나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한 행위가 아닌 그것을 소비하는 독자의 정서적 필요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실로 ‘회복적 읽기’ 개념은 독자 또는 미디어 소비자의 판타지와 상상력이 가지는 구체적인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특히 읽기라는 행위가 독자의 의지와 의도에 따라 사용되는 방식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외연이 넓다.16)
동시에 21세기 들어서부터 정동(affect)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읽기라는 주제 역시 정동이론-퀴어이론-페미니즘-문화연구-문학비평의 네트워크 속에서 논의되었다. 대표적인 비평가로는 마수미(Brian Massumi), 세즈윅, 벌랜트(Lauren Berlant), 아메드(Sarah Ahmed)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회복적 읽기’는 문학 및 문화 비평가 벌랜트가 제안한 “행복한 삶”(Good Life)에 대한 추구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17) 벌랜트에 따르면, 읽기 행위는 현실에서는 쉽게 변화하거나 편안하게 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구라도 가변적인 환상·허구·꿈의 영역에서는 낙관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능케 하는 수단 중 하나다. 즉 벌렌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허구·꿈의 영역이 바로 문학과 예술의 영역이자 미디어의 영역이다. 벌랜트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나 TV나 영화 같은 매스미디어에 집착하는 소비자들은 그 허구의 세계 속에서 제공되는 순진한 “약속들”에 애착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약속들이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상생활 속에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고 설명한다.18) 벌랜트는 적극적으로 변화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허구 속 행복이라도 만끽함으로써 삶을 지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읽기가 가능케 하는 치유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연구 대상인 문학 텍스트나 디지털 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텍스트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즉 독자는 독서라는 정신적 공간 안에서, 미디어의 소비자들은 미디어 속 허구의 세계에 대한 몰입을 통해, 책이나 영화 속의 허구적 대상들과의 친밀감과 애착을 통해 견뎌내기 힘든 현실을 잊고 잠시 살아갈 만한 공간에서 희망을 꿈꾼다는 설명이다.19) 이 같은 읽기의 치유적 차원은 문화를 초월하여 현대사회에서 공통된 유의미함을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영미권 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작품인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초반에 재현된 읽기 행위에서도 이 같은 독서의 치유적 차원이 드러난다.20) 소설 속 주인공 영혜는 남편과 가족에게 “정상적인 아내” 역할을 하도록 강요받으며, 깊이 내재한 자신의 욕망(채식주의자, 나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대목이지만, 결혼생활 초반 영혜가 자기만의 방에서 책 속에 묻혀 살고, 이를 남편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영혜의 독서 행위는 나무가 되려는 그녀의 선택만큼이나 현실의 다양한 폭력에서 도망쳐 자신의 개인적 꿈을 보호할 수 있는 허구의 공간 속에 머물며 살 만한 상태, 최소한 희망이 남아 있는 상태에 머무르기로 한 결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21)
21세기의 읽기라는 주제에 대한 정동적 접근은 사실 사회문화의 거대한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넓게는 인문학의 위기가 하나이고, 좁게는 문학비평계에서 기존의 ‘강한 이론’ 중심의 비평 및 해석 방법의 획일화와 역사주의적 텍스트 비평의 지배를 향한 불만과 저항이 다른 하나다. 20세기 중후반 인종, 젠더, 성 정체성과 같은 이데올로기 중심의 다양한 사회비판 이론을 발전시키며 학문 분야를 정립해온 인문학 분야는 20세기 후반 가속화된 신자유주의하의 대학의 상업화로 인해 크게 도전받아왔다. 이러한 인문학 전반의 위기는 역사주의(historicism) 및 이데올로기 비판과 같은 기존의 교육 및 연구 방법론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텍스트 ‘읽기’ 방식을 향한 추구로 연결되었다. 한 예로, 2010년에 제안된 이후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와 마커스의 “표면 읽기”(surface reading) 개념은 기존의 심층적 해석을 중시하는 비판적 읽기 방식의 대안으로 제안되었다.22) 자세히 읽기가 심층적이고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베스트와 마커스는 손택의 제안을 이어받아 텍스트 표면에 있는 감각적 경험에 집중한다. 펠스키(Rita Felski)와 제이(Paul Jay) 역시 기존의 문학연구와 읽기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인문학 전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읽기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펠스키는 『비판의 한계』(The Limits of Critique)에서 회복적 읽기의 가치를 강조하며 텍스트를 통해 감정적·미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23) 제이는 『인문학의 ‘위기’와 문학연구의 미래』(The Humanities “Crisis” and the Future of Literary Studies)에서 비판적 거리두기에 기반한 텍스트 비평에서 벗어나 텍스트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통한 공감과 윤리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읽기 방식을 대안으로 제안했다.24) 정리하자면, 21세기의 읽기에 관한 논의는 시각매체의 군림과 텍스트 읽기의 약화가 야기한 인문학의 위기와 이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시도, 그리고 ‘비판적 읽기’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21세기의 읽기에 대한 이론 2: 디지털미디어와 ‘원거리 읽기’
21세기의 또 다른 거대한 흐름 중 하나는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 변화다. 인터랙티브 미디어의 등장과 플랫폼 기반 다양한 디지털 매체의 등장, 숏폼·웹툰·웹소설 같은 디지털 서사의 폭발적인 증가는 읽기의 시각적·공간적 경험을 행위의 핵심으로 재설정하고 있다. 이제 읽기의 대상이자 우리 문학연구의 대상은 비정형적이고 감각적·공간적 요소를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 서사를 빼고는 논의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디지털 서사가 대중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읽기에 관한 논의는 텍스트 읽기의 감각적·정서적 경험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시각매체의 발달과 함께 그 논의가 더욱 정교화·다양화되어왔다. 특히 서사 연구 분야는 디지털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방법들을 탐구해왔다. 모바일 서사를 연구한 파먼(James Pharman)은 모바일 미디어 시대에 맞는 경험의 영역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연구 대상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테크놀로지 자체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과 “기계가 제공하는 육체적·공간적 행동성”에 관한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5) 오스틴(Tricia Austin)은 서사를 “환경”(environments)으로 재정의하면서, 공간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 전달 매개체보다 훨씬 우월한 서사의 수단이라고 규정한다.26) 한편, 21세기의 미디어 읽기에 특화된 방법론이나 개념은 주로 미디어 연구 분야에서 주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미디어학자 젠킨스(Henry Jenkins)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미디어 컨버전스”(media convergence), “세계 구축”(worldbuilding)과 같은 개념은 연구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27) 이처럼 현재 인문예술 및 미디어 연구 분야 전반에 디지털미디어가 가능케 하는 공간 및 경험 서사에 관한 이론적·교육학적 접근이 주목받고 있는 추세이며, 개별 미디어 텍스트에 대한 분석 연구의 숫자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디지털미디어 서사 환경에 기반을 둔 읽기 경험에 관한 체계화된 이론 및 개념적 논의는 크게 부족한 상태다.28)
동시에 21세기의 텍스트 읽기 패러다임은 ‘원거리 읽기’라 부르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읽는’ 방법론을 기반으로 등장한 디지털인문학 분야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제 읽기라는 행위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해석이냐 감각이냐, 비판이냐 수용이냐의 문제에서 대규모냐 소규모냐, 기계의 속도냐 인간의 속도냐 등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어젠다로 넘어가게 되었다. 기존의 서사 연구나 소설이론 분야에서 텍스트의 길이(length)가 경험의 영역이었다면, 디지털 읽기 논의에서 텍스트의 길이와 읽기의 양이란 일정 부분 극복 또는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예를 들어 갤러거(Catherine Gallagher) 같은 전통 소설 연구자에게 모더니즘 소설 같은 긴 서사 형태에 기반을 둔 텍스트 읽기의 시간과 길이는 다양한 감정적·인지적 경험의 영역으로 이해되었다.29) 반면 텍스트의 양과 길이는 디지털인문학 학자인 언더우드(Ted Underwood)에게는 디지털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자 새로운 스케일의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다.30) 즉 원거리 읽기란 문학 연구자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자 많은 양의 문학 텍스트를 효율적이고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읽기의 한 방법이다. 모레티(Franco Moretti)를 시발점으로 등장한 언더우드와 같은 원거리 읽기의 지지자들은 원거리 읽기가 기존의 인간이 수행하는 읽기에서는 불가능했던 방대한 문학 데이터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던 거대 스케일에 기반한 패턴 분석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기억과 비교 능력을 확장함으로써 문학에 관해 새로운 패턴과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원거리 읽기의 다양한 적용과 평가 및 비판은 현재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장르 연구, 감정 분석, 텍스트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 등이 주목받으며 원거리 읽기 논의가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언급했던 21세기적 읽기 방식과 읽기 문화의 변화, 새로운 읽기 방법론의 정립에 대한 요구와 관심들을 반영하듯, 영문학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저널 PMLA는 2020년과 2021년에 “읽기의 문화들”(Cultures of Reading)이라는 제목의 특별호를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쳐 출간했다. 이 두 권의 특별호는 기존의 자세히 읽기에 기반한 문학비평에서부터, 구미디어와 신미디어의 텍스트 분석, 디지털 읽기의 역사와 디지털 읽기 이론 및 적용 사례, 문학 읽기에 대한 인지과학적 접근, 그리고 기계 읽기의 사례와 이론 등을 아우르며 21세기에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는 읽기의 문화‘들’과 방법론에 대한 광범위한 개관 작업이었다. 이는 현 시대에 읽기의 문화가 얼마나 복수적이고 정의하기 어려운 성격을 띄는지, 그리고 현재 문학 연구와 교육에 일관된 이론적 독해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2021년에 이루어진 광범위한 독서문화의 정리 작업에서 빠진 부분, 즉 2022년 11월에 공개된 챗GPT로 촉발된 또 한 번의 대단위 읽기 문화의 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이론화는 아직 시작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025년 이후의 영미문학계는 어떠한 독해를 기반으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해야 하는가? 만일 인공지능 문화하에 또 다른 읽기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기술문화에 단순히 편승하지 않고 그것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새로운 문화의 윤리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인문학과 그 핵심 도구인 읽기의 바람직한 다음 모델은 무엇일까?
5. 21세기의 읽기 문화와 문학연구
2025년 현재, 읽기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 공간에서 수행되고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더욱 ‘진보된’ 디지털 읽기 및 분석 방법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방대한 데이터 세트, 전례 없는 컴퓨팅 파워, 그리고 인공신경망 딥러닝 모델에 기반한 딥 인공지능 시대를 들어가고 있다. 창조적 인공지능이라는 개념 및 적용기술의 등장 역시 읽기의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는 읽기의 속도와 스케일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읽기의 대상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같은 대규모 변화는 읽기 문화의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의 시급성을 부추긴다. 아직 인공지능 시대에 읽기가 어떻게 변할지에 관한 이론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소수의 비평가가 이미 그러한 작업에 착수했다. 예를 들어 레일리(Rita Raley)와 사몰스키(Russell Samolsky)의 글에는 미래의 독자가 인공지능과 함께 새로운 시간성을 경험하리라는 예측이 담겨 있다. 그들은 미래의 독자가 “선형적인 역사의 질서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시간 속에서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한다.31) 레일리와 사몰스키는 인공지능이 열어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들이 더욱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미래의 독자는 인공지능을 매개로 읽기를 수행하면서 독서 시간을 더 깊이 성찰하고, 독서로 인해 열린 시공간을 더욱 흥미롭고 사유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보통 ‘역사’라고 지칭하는 직선적 시간성에 따른 읽기와는 다른 방식의 읽기를 의미한다. 즉 컴퓨터와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내는 순환적 시간성을 포함한 복수의 비정형적 시간성, 그리고 디지털 공간성이 인간의 시간성에 선행하는 상태에서의 읽기 경험 등을 포함한 새로운 인식론적·존재론적·미적 경험의 영역이 우리의 읽기에 대한 담론에 포함될 것이다.
한편,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읽기를 포함한 21세기의 미적 경험과 미디어 소비의 문화를 기술할 수 있는 또 다른 담론은 “신미학”(New Aesthetic)이다. ‘신미학’이라는 용어는 2012년 영국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인 브라이들(James Bridle)이 소수의 예술가 및 비평가들과 함께 “남서부 영화제”(South by Southwest) 패널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이 미학의 핵심은 “봇, 디지털 카메라 또는 위성 등 기술과의 협력”이며, 이 용어는 “‘실재’와 ‘디지털’, 물리적 세계와 가상세계,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 기반한 미적 경험을 지칭한다.32) 이 초기 ‘신미학’ 주창자들이 제시한 예는 건축물, 사진, 광고, 시각예술 또는 소프트웨어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종류의 픽셀화된 이미지들이다. 이들은 또한 인간의 삶과 일상적인 미적 경험을 변화시키는 로봇과 모바일 기술에 집중한다. 이 용어는 이후 미디어 학자들에 의해 수용되었으며, “포스트디지털”(Postdigital) 문화라는 좀 더 공식적인 명칭에 종속되었다. 베리(David M. Berry)와 디이터(Michael Dieter)에 따르면, “‘포스트디지털’은 미디어 생활의 엉킴과 함께 (…) 이제는 새 미디어를 향한 집착과 열광에서 벗어나 피로, 권태, 환멸을 포함한 더 넓은 정서적 반응의 범위를 포괄한다”.33) 이러한 맥락에서 ‘신미학’은 “집중과 수익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미적 경험을 소비화”한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현대 시각문화 산업과 얽혀 있다.34) ‘신미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가시성에 노출되도록 만드는 환경의 산물”이며, “강박적 디지털화”가 야기한 시청각 경험의 질적인 변화를 기술한다. 또한 신미학은 “컴퓨터가 세상을 보는 방식,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의 수학적 계산이 시각 자체로 나타나는 방식”이기도 하다.35) 이 같은 새로운 미학 담론은 우리가 21세기의 맥락에서 문학을 포함한 매체 읽기 속성의 거시적인 변화를 이론적으로 기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미학 담론이 기술하는 디지털상 시각 텍스트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읽기에 대한 거부와 같은 행위적 특성, 피로감과 지루함 등과 같은 정동은 문학계가 그간 적극적으로 이론화하지 못했으나 앞으로 적극적으로 읽기 담론에 포함시켜야 할 주제들일 것이다.
동시에 최근 읽기라는 행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활발해지는 트렌드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에 많은 미적 경험이 디지털화되어온 현실을 두고 보았을 때 필연적인 것일지 모른다. 21세기에 들어와 문학연구 분야에서 문학을 읽는 행위에 대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적 접근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문화적 흐름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다.36) 그중 소설이론 연구가인 오영(Elaine Auyoung)은 읽기라는 주제를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의 시각에서 잘 풀어낸다. 오영은 기존의 서사 이론과 인지심리학, 현상학을 결합하여 독자가 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어떻게 진짜처럼 인지하고 경험하는지를 이론화한다. 특히 현재의 비평적 읽기 방식이 인간의 한계, 예를 들어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한계가 실제로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계 자체가 분석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고 독특한 미학적 효과와 정서를 만들어낸다고 역설한다.37) 오영의 이 같은 시각은 읽기의 방식, 경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신선하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오영이 모델로 제시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은 우리가 종이책을 읽는 방식과 디지털 공간상에서 읽거나 디지털 툴을 활용하여 읽는 방식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이같이 기존에 고려되지 않았거나 경시되었던 인간의 다양한 한계와 그것들의 미적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읽는 방식과 기계가 읽는 방식을 탐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나가기에 앞서, 이 글은 앞선 읽기의 매체에 따른 변화·발전 방향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앞으로 영미문학 학계가 공동으로 대처하고 반응해야 할 인공지능 문화하의 읽기라는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구방향을 제안한다.
1. 인공지능 시대에 읽기에 대한 재해석: 앞서 언급한 라일리와 사몰스키의 제안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읽기나 인공지능이 창조한 문학 및 비문학 텍스트 읽기에 관한 연구에서 읽기의 시간성과 규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거리 읽기 또는 자세히 읽기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읽기의 양상들을 관찰하고 이론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같은 연구는 새로운 읽기 방식들이 문학 연구 및 교육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연구와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2. 인공지능 시대에 읽기의 역할: 서두에서 밝혔듯이 현재 기술적 측면에서 읽기를 재교육하는 시급한 당면과제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읽기의 사회적·공동체적 측면과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해석 공동체에서 나아가 감정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읽기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점점 더 기계에 의해 매개될 인간의 해석 행위와 감정 공유 행위에 대한 보완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의 발달이 촉발한 대규모 인공지능 텍스트의 양적 증가에 따라 비판적 읽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문학 분야를 포함한 인문학 분야가 오랫동안 강조해왔던 비판적 읽기를 더욱 명징하게 정의하고 도구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공지능에 특화된 비판적 읽기 방법론 또는 담론 구성이 시급하다.
3. 문학 읽기가 인공지능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 문학비평계는 인공지능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의 인간중심적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이해하는 데 문학계가 개념적·이론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문학 창작 인공지능의 개발 및 발전을 위하여 문학계는 인공지능이 서사구조를 이해하거나 캐릭터와 관점 등 세부적인 문학의 요소들을 구조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읽기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읽기를 쓰기, 더 나아가 창작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읽기의 방법론 개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전통적인 개별 텍스트 분석과 자세히 읽기를 기반으로 한 문학연구 분야는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미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비평이론의 관점에서는, 포스트휴머니즘 이후의 문화담론을 구성하는 것으로 문학계가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미래 인문학은 인공지능이 변화시킬 인간성과 읽기를 포함한 미적 경험에 대해 기존의 거대 담론보다 덜 사변적이면서 복수 형태의 문화담론을 구성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趙聖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 “Literary Criticism in the Postdigital Age: Spatial Narratives and Digital Storytelling” (2024)이 있다.
O. A. Scott, “Everyone Likes Reading. Why Are We So Afraid of It?,” The New York Times (June 23, 2023). https://www.nytimes.com/2023/06/21/books/review/book-bans-humanities-ai.html.
2) 같은 글.
3) 같은 글.
4) Barbara Herrnstein Smith, “What Was ‘Close Reading’?: A Century of Method in Literary Studies,” Minnesota Review 87 (2016) 57~75면.
5) Nicholas Dames, The Physiology of the Novel: Reading, Neutral Science, and the Form of Victorian Fiction (Oxford, New York: Oxford UP, 2007) 208면.
6) 같은 책 216면.
7) James Joyce, Ulysses (New York: Vintage Books, 1986).
8) Roland Barthes, The Pleasure of the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5).
9) Susan Sontag, Against Interpretation, and Other Essays (New York: Dell, 1966).
10) Stephen Best and Sharon Marcus, “Surface Reading: An Introduction,” Representa-tions 108.1 (2009) 1~21면.
11) Wolfgang Iser, “The Reading Process: A Phenomenological Approach,” New Literary History 3.2 (1972) 279~99면.
12) Stanley Fish,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Campus Wars (New York: Routledge, 2021) 49~56면.
13) Italo Calvino,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 (Dublin: Harcourt, 1981).
14) Peter Brooks, Reading for the Plot: Design and Intention in Narrative (Cambridge: Harvard UP, 1992).
15) Eve Kosofsky Sedgwick, Touching Feeling: Affect, Pedagogy, Performativity (Durham: Duke UP, 2003).
16) 세즈윅의 읽기 개념에 대한 확장된 논의는 필자의 다음 논문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Sunggyung Jo, “‘You Are What You Read’” Beside a Book, Beside a Self,” Textual Practice 37.6 (2023) 941~58면.
17) Laruent Berlant, “Civil Society and Its Discontents: The Good Life,” The Eighteenth Century 55.1 (2014) 99~102면.
18) Lauren Berlant, Cruel Optimism (Durham: Duke UP, 2011) 24면.
19) 같은 책 45면.
20) Kang Han, The Vegetarian: A Novel, trans. Deborah Smith (London: Hogarth, 2016).
21) 세즈윅과 벌랜트를 중심으로 한 회복적 읽기에 관한 확장된 논의는 Jo, 앞의 글 참조.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재현된 독서 양태를 “독자의 방”이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낸 논의는 Sunggyung Jo, “The Reading Closet,” Texas Studies in Literature and Language 64.1 (2022) 46~62면 참조.
22) Steven Best and Sharon Marcus, “Surface Reading: An Introduction,” Representations 108.1 (2009) 1~21면.
23) Rita Felski, The Limits of Critique (Chicago: U of Chicago P, 2015).
24) Paul Jay, The Humanities “Crisis” and the Future of Literary Studies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4).
25) Jason Farman, The Mobile Story: Narrative Practices with Locative Technologies (New York: Routledge, 2014) 2면.
26) Tricia Austin, Narrative Environments and Experience Design: Space as a Medium of Communication (New York: Routledge, 2020).
27) Henry Jenkins,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ew York: New York UP, 2006).
28) 파먼과 오스틴, 젠킨스를 포함한 최근의 디지털 환경 변화에 관한 확장된 논의, 특히 공간에 주목한 디지털 서사에 관련된 논의는 Sunggyung Jo, “Literary Criticism in the Postdigital Age: Spatial Narratives and Digital Storytelling,” The Journal of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70.1 (2024) 25~47면 참조.
29) Catherine Gallagher, “Formalism and Time,” Modern Language Quarterly 61.6 (2000) 229~51면.
30) Ted Underwood, Distant Horizons: Digital Evidence and Literary Change (Chicago: U of Chicago P, 2019).
31) Rita Raley and Russell Samolsky, “Does AI Have a Future?,” Understanding Flusser, Understanding Modernism, ed. Aaron Jaffe, Michael F. Miller, and Rodrigo Martini (New York: Bloomsbury Academic, 2021) 21면.
32) James Bridle, “#sxaesthetic,” Booktwo.org (Mar. 15, 2012). https://booktwo.org/notebook/sxaesthetic/.
33) David M. Berry and Michael Dieter, Postdigital Aesthetics: Art, Computation and Design (London: Palgrave Macmillan, 2015) 5면.
34) 같은 책 7, 8면.
35) 같은 책 38, 97면; 해당 문단의 “신미학”과 “포스트디지털”에 관련된 논의는 Jo, “Literary Criticism in the Postdigital Age”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번역 및 수정하였음.
36) 문학에의 인지과학적 접근에 관한 개괄을 위해서는 Michael Burke and Emily T. Troscianko, Cognitive Literary Science: Dialogues between Literature and Cognition (New York: Oxford UP, 2017) 참조.
37) Elaine Auyoung, When Fiction Feels Real: Representation and the Reading Mind (New York: Oxford UP, 2018) 6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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