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머리(Janet Murray)는 일찍이 영향력 있는 저서 『홀로덱 위의 햄릿』(Hamlet on the Holodeck)에서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이야기 생산과 향유가 “음유시인의 전통”(bardic tradition)을 되살릴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컴퓨터 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문자와 프린트 기술로 매개된 오랜 읽기 경험의 역사를 되돌려 우리를 구전 전통으로 회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1) 머리에 따르면, 마치 전근대의 음유시인들이 오랜 세월 축적된 이야기의 레퍼토리―인물, 사건, 리듬―를 매 순간 변주하며 공연했듯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또한 데이터베이스와 알고리즘을 통해 패턴화된 이야기 요소가 다양하게 조합되며 이루어진다. 몇 가지 코드를 넣으면 자동으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인공지능 콘텐츠 산업이 최근 새로운 서사 창작의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머리의 진단이 오늘날에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반복되면서 조금씩 달라지지만 동시에 모든 스토리텔링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의 파편으로서 존재하는 구전 이야기 구성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스토리텔링 또한 매체 기술을 통해 연결되고 공유되는 기호의 네트워크 속에서 재조합되며 탄생한다.
머리가 지적하듯,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는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이야기의 코드가 웹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구축된 연결망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며 확장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 형태 중 하나인 웹툰은 이러한 디지털 기반 이야기의 유동성과 확장성을 포착하기에 적절한 사례를 제공해준다. 웹(web)과 카툰(cartoon)을 합친 개념인 웹툰은 출판된 종이 만화를 디지털화한 해외의 웹코믹스나 디지털 코믹스와는 구분되는 한국의 독자적 문화 현상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의 ‘디지털 만화’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만화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으로 유통하는 형태였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음과 네이버 등의 웹 플랫폼이 독립적 수익모델로 정착하면서 모든 제작 공정이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생산·유통·소비하는 오늘날의 웹툰 산업이 정립되었다.2) 2010년대 스마트폰의 상용화,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웹툰 소비는 점차 증가했고, 현재 국내에서는 프린트된 만화를 거의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3) 특히 IP(intellectual property)에 기반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원천 콘텐츠로서 그 가치를 증명하면서 오늘날 웹툰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4) 글과 그림의 합성체로서 웹소설 및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매체와의 호환성이 좋다는 특징과 더불어, 쉬운 접근성과 소비의 간편함을 특징으로 하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해왔다는 점은 웹툰이 디지털 스토리텔링 시장이 요구하는 콘텐츠의 유동성과 확장성을 구현하는 중요한 산업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웹툰에 관한 최근의 국내 학술적 논의는 대체로 산업적 가치와 결부되어 이루어져왔다. 웹툰 창작을 위한 효과적인 연출법과 트랜스미디어 전략, 플랫폼 경영 모델과 향유자 참여 양상 등의 차원에서 연구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웹툰에 관한 많은 논의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콘텐츠’, 더 나아가 ‘서사’의 측면”에 대한 분석이다.5)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개별 웹툰을 ‘서사체’로 조명하는 연구들 또한 수행된 바 있으나, 전반적으로 웹툰 분석에 성장 서사 개념을 비롯해 전통적 매체에 적용되었던 서사론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은 아쉽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과 매체의 진화 속에서 서사 분석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틀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VR과 인공지능 웹툰의 실현으로 허구의 세계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현실’의 자리가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은 서사 창작과 소비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놓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연구에 고유한 전통적 서사 분석만으로는 변화하는 문화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없으며, 산업적 관점과 매체적 특징이 서사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김명진이 지적하듯, 콘텐츠 산업이 디지털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서사는 더 이상 매체에 선행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기획 단계부터 생산 조건으로서의 매체와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구상되기 때문이다.6)
디지털 문화 콘텐츠 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웹툰 소비의 증가는 디지털 전환 이후 서사를 경험하는 방식, 다시 말해 읽기의 방식이 달라졌음을 노정한다. 그리고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읽기 문화로 자리잡은 웹툰의 흥행 요인은 이야기의 매력뿐 아니라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의 시의성, 즉 웹툰의 독특한 매체성에서도 상당 부분 기인한다. 오늘날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콘텐츠 매체의 변화가 서사 경험, 독서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큰 문제의식을 지닌 채, 이 글은 웹툰이 선도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읽기 경험에 관한 다각도의 이론적 논의를 촉구하고자 한다.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디지털 전환은 허구와 현실세계의 분리를 점차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유동하고 확장되는 이야기 코드의 조합으로 특징되는 웹툰 스토리텔링의 특유한 서사적 그리고 매체적 특징과 결부된다. 뉴미디어 시대의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통해 변화하는 읽기 경험이 콘텐츠 산업과 맺는 연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이 글은 먼저 서구의 코믹스 담론에 나타난 시공간 개념에 주목하여, 오늘날의 웹툰이 어떤 식으로 만화의 매체성을 계승하고 있는지 논한다.7) 이어 최근의 웹툰 스토리텔링을 특징짓는 세계관 설정과 반복의 기법을 다루면서, 이것이 디지털 콘텐츠 소비를 통해 점차 불분명해지는 현실과 디지털 시공간 사이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주요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 웹툰의 매체적이며 서사적인 특징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국내외를 통틀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히 보완이 필요한 지점이다. 물론 매체와 서사적 특성에 대한 이론화가 동반할 수 있는 섣부른 일반화를 경계하고 개별 장르와 작품별 세분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별 웹툰 작품 분석에 집중한 최근의 논의들은 매체담론뿐 아니라 웹툰 서사가 성장, 로맨스, 판타지 서사 등의 장르적 관습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유의미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한편으로 실시간으로 유동하는 콘텐츠 산업과 매체 기술의 빠른 변화 속도는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고 개괄하는 것을 넘어 깊이 분석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 인문학적 성찰의 속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웹툰 매체와 서사의 결합된 진화를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일은 ‘음유시인 전통’의 재림에 관한 머리의 주장에 함의된 스토리텔링의 유구한 역사 속에 우리의 현재를 위치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웹툰 콘텐츠가 지닌 유동성과 확장성은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긍정하는 깊고 긴 스토리텔링의 시공간, “다양하게 다시 이야기되면서 (…) 얇고 투명한 층들이 하나씩 천천히 쌓여가는”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서사’가 디지털 전환의 한가운데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며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사유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8)
2. 코믹스의 공간, 웹툰의 시간
만화는 글과 이미지의 결합으로서 본래 기호적 속성을 강하게 띤다. 적절하게 배치된 글이 서사 진행을 돕는 한편으로, 이미지는 더욱 직관적인 방식으로 감정·상황·행동·의도를 전달한다. 한편 만화가 제공하는 이미지는 시각정보에 기반한 다른 서사예술, 예컨대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 매체보다는 ‘사실성’의 제약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다.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이미지가 아닌 손으로 제작된 그림을 통해 표현되는 만화는 확실히 영화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환상성”을 구현할 수 있는 매체다.9) 그러한 의미에서 만화는 영화보다는 리얼리즘적 현실 재현에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로서 존재해왔다. 영화가 언제나 기계장치로 매개된 현실을 전달하는 반면 만화는 기본적으로 수작업을 통해 제작된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흥미로운 역설이다. 손으로 제작하는 일의 현전성이 자유롭고 무궁무진한 환상성으로 귀결되는 한편, 기계로 매개된 현실 재현은 오히려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디지털 기술이 콘텐츠 제작과 소비 전반에 도입되면서 영화와 만화 사이의 이러한 대립 구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듯 보인다. 최근의 포스트시네마 담론이 제시하듯,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생산되는 오늘날의 영화는 현실의 표상이기보다 “데이터의 합계”(aggregate of data)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10) 영화 생산에 전자 이미지가 도입되면서 스크린은 더 이상 현실을 비추는 창이 아니라 “‘데이터’가 새겨진 불투명한 표면”(an opaque surface on which are inscribed ‘data’)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1985년 예견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11) 오늘날 CGI(computer generated images) 등의 디지털 기술로 매개된 영화 연출은 이미지가 현실의 지위를 대체할 뿐 아니라 현실에 선행함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불가능하거나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며, CGI를 통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현실과 가상이 좀 더 매끄럽게 연결되고 서로 간의 구분이 약해지도록 하는 뉴미디어 시대 콘텐츠의 존재 조건을 방증한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영화가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졌다면, 웹툰은 영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만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대체로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되는 웹툰 콘텐츠는 문자와 이미지가 공존하는 만화의 매체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동시에 스크롤링으로 장면의 연속성을 획득하고 서사를 제시하는 영상매체의 기법을 차용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웹툰은 영화가 제공하는 연속적 시간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자가 감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한층 더 높은 자유도를 지니는 오늘날의 OTT 콘텐츠 시간성과 친연성을 지닌다. 영화 스크린의 프레임은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옮겨왔고, 영화의 테크노 시간은 독자의 능동적 스크롤링으로 변환되면서 더욱 유동성을 띠게 되었다. 영화 콘텐츠 소비가 영화관으로부터 가정으로, 단체 관람에서 개인 관람으로, 스크린에서 TV 화면으로 옮겨왔듯 웹툰문화 또한 디지털미디어의 발달이 불러온 콘텐츠 소비 양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영상매체와 호환성이 높으면서도 웹툰 원작 콘텐츠가 스크린 영화보다는 OTT 시리즈로 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은 그러므로 의미심장하다. 최근 몇 년간 OTT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된 「D.P.」 「무빙」 「마스크걸」 「스위트홈」 「피라미드 게임」 「지옥」 「살인자o난감」 「중증외상센터」 등의 주목할 만한 성공은 웹툰 콘텐츠가 OTT 문화가 기반하고 있는 시리즈물에 특히 적합한 이야기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오늘날 영상 콘텐츠 창작과 소비 매체가 영화에서 OTT로의 재매개(remediation)를 겪고 있다면, 이 변화의 중심에는 웹툰이 제공하는 IP의 유동성과 확장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크롤링의 연속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스마트폰 스크린을 통해 독자에게 서비스되는 웹툰은 기존의 서구 ‘코믹스’ 담론에 비추어본다면 중대한 변화를 담지한다. 팝아트이자 하위문화 그리고 대중매체로서 코믹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진지한’ 학문적 비평 대상으로 적극 주목받기 시작한 1980~90년대부터 만화는 오히려 전통적인 프린트 문화에 굳건히 복속된 것이자 ‘읽기’의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비평가들은 코믹스를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내세우는 동시에 이것이 학술적 비평과 분석에 걸맞은 예술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만화가 인접 대중예술, 그중에서도 영화와 다르다고 힘주어 주장해왔다. 예컨대 코믹스 비평의 선구자 아이스너(Will Eisner)는 코믹스가 영화의 빠른 진행 속도와 파편적 서사를 모방하면서 고유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했다.12) 코믹스 비평사에 한 획을 그은 매클라우드(Scott McCloud) 또한 코믹스가 “연속성”(sequence)으로 규정되는 서사 장르이며 그러므로 애니메이션 및 영화와 친연성을 갖지만, 흐르는 시간의 연속성에 매여 있는 영화와 달리 코믹스는 ‘패널’ 또는 ‘페이지’라 불리는 공간적 단위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대―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제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13) 이처럼 시간의 연속성을 공간의 문법으로 풀어내는 장르로 코믹스를 정의하며, 매클라우드는 코믹스가 물리적 공간을 표상하는 페이지를 통해 전달되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넓게 펼쳐진 페이지 위에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여러 시각정보가 일정한 순서로 배치되었을 때 독자는 각 요소 사이의 관계성을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성찰하며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이와 같은 매클라우드의 설명은 코믹스를 전통적으로 ‘주류문화’이자 ‘문학’의 영역에 속해왔던 예술만큼이나 깊고 지속적인 독서를 동반하는, 말하자면 정독과 숙독 그리고 재독의 가치가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한다.
매클라우드의 고전적 정의는 코믹스가 영상예술과 달리 “고정된”(static) 성질의 매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며 만화의 ‘공간적’인 속성을 조명한다. 햇필드(Charles Hatfield)가 지적하듯, 코믹스 초기 비평에서 매클라우드 등이 이처럼 만화를 성찰적 독서와 강하게 연결지은 이유는 그동안 코믹스에 가해져왔던 비판, 특히 쉽고 가볍게 소비되는 장르로서 대중의 전반적인 문해력 하락에 기여한다는 부정적 인식에 대한 반응이자 해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4) 프린트된 것이자 공간적 매체,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는 대신 독자가 멈추어 성찰하고 의미의 복잡성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코믹스를 규정하는 비평담론은 디지털 전환이 무르익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까지도 유지되었다. 예컨대 2011년 『서브스탠스』(SubStance)에서 발행한 그래픽 서사에 관한 특집 논문에서 쿠코넨(Karin Kukkonen)은 온라인과 디지털 형태로 된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코믹스는 종이 기반의 매체성을 간직한 채 남아 있으며, 비록 연속성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시간적 속성”(temporal quality)을 부여받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정된 이미지를 연속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발생하는 움직임을 “함축적 순간들”(pregnant moments)로 고정하고 압축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15) 비슷한 맥락에서 르페브르(Pascal Lefèvre) 또한 만화가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움직이지 않는 장면”(unmoving phases)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열된 글과 이미지 사이의 연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독자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독해를 촉구한다고 말한다.16) 르페브르는 코믹스란 “모방이 아닌 암시의 예술”(an art of suggestion, not of mimesis)이라 역설하며, 만화가 영화의 리얼리즘을 흉내 내다가는 만화의 고유한 매체성이 동반하는 추론의 과정, 즉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독서의 가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17) 그에 따르면 영화 서사가 즉각적이며 동시적으로 체험되면서 몰입을 부르는 사실적 표현을 통해 작동한다면, 코믹스는 “정적이며 고도로 스타일화된”(static and strongly stylized) 예술로서 독자가 그 “수제의 느낌”(handmade quality)을 의식함으로써 거리를 두고 주체적으로 비평하게 한다.18)
이처럼 현대의 코믹스 담론은 영화 등 여타 시각정보를 동반하는 서사 매체로부터 스스로를 구분지으며 발전해왔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만화는 평평한 스크린으로 표상되는 디지털의 매체성이 담지 못하는 수작업의 물성을 보존하며, 전통적인 숙독과 성찰적 읽기의 가치를 디지털 시대에 되새기도록 하는 서사예술의 한 형태로 여겨져왔다. 물론 햇필드가 지적하듯, 이러한 인식은 만화가 오락문화로서 독자의 읽기 능력을 저하하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에 맞서기 위한 의식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최근 이루어진 웹툰의 발생과 흥행은 코믹스 비평 역사를 뒤바꾸어놓을 만한 막대한 변화를 지시한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통해 스크롤링하며 읽는 웹툰에 ‘페이지’로 볼 수 있는 단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관의 고정된 스크린처럼, 독자는 스마트폰 기기의 틀에 담긴 일정한 규격의 이미지와 글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소비한다. 이는 김가영·김이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흐르는 세로 캔버스 위에 가상적으로 주어지는 이미지”이자, 스크롤링하는 “독자의 손에 의해 가변적으로 틀이 지어진다는 점에서 ‘유동적 페이지’”라 불릴 만하다.19) 만화에서의 연출이 공간 차원을 가로로, 시간 차원을 세로로 배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가로 범위에 제약이 있는 웹툰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문법에 지배받게 된다.20)
만화의 문법이 흐르는 스크롤링의 시간성으로 흡수되면서 코믹스 비평에서 강조되어오던 공간적 성질은 약해지고, 영화 및 애니메이션의 문법과 결부되어오던 시간의 문법이 강화되었다. 패널과 페이지 위에 고정된 채 나열된 정보들에 “움직임”(movement)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서사를 유추해내는 것이 전통적인 코믹스 독자의 몫이었다면, 이러한 독서 행위가 동반하는 능동성은 웹툰에 이르러 스크롤을 내리는 기계적인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전환되었다. 매클라우드의 설명에 따르면, 연속성을 지닌 이야기를 다루는 미디어는 언제나 독자가 “현재”(now)를 경험하게 하지만, 페이지의 레이아웃을 통해 제시되는 만화는 예외적으로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공간적 속성을 지닌다는 면에서 특별하다.21) 그렇지만 스마트폰의 프레임을 통해 세로로 긴 스트립 형태로 제시되는 웹툰은 독자가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는 ‘현재’의 시간성을 경험하도록 한다. 더군다나 웹툰은 여타 디지털 서사에 비하면 더욱 현재성이 강조되는 매체다. 예컨대 OTT를 포함한 웹 기반 영상 콘텐츠들이 재생 바(play bar)를 사용하거나 되감기와 빨리 감기를 통해 시청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의 앞뒤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스크롤을 통해 진행되는 웹툰 스토리텔링은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거나 이야기를 앞으로 건너뛰기 어려운 조건을 지닌다. 게다가 연재되는 웹툰 한 편을 읽는 속도가 약 3분 정도로 빠르다는 점, 그리고 일반적인 독자라면 주 단위로 연재되는 여러 편의 웹툰을 동시에 감상한다는 점은 긴 소설이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적으로 감상하기보다 여러 다른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대량 소비하는 오늘날 가성비 문화의 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생각한다면 웹툰은 박미영의 표현대로라면 “스크린과 촉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self)의 현전감으로서 현재성을 강조”하는 숏폼의 미학과 상통한다.22)
그러나 이것이 아이스너나 르페브르 등이 우려하던 독자의 수동성과 문해력 약화로 곧바로 귀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매클라우드 등은 코믹스가 글과 그림의 합성체이자 페이지에 나열된 일련의 시각정보로서, 서로 다른 요소 간의 관계성을 독자가 직접 추론해야 하는 능동적 독서를 고취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를 따른다면 코믹스는 근본적으로 문자와 이미지의 혼종성에 기반하여 독자가 나열된 요소들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어 스토리텔링에 참여하고 개입하도록 하는 매체다. 웹툰문화 속에서 만화가 새로운 매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면, 디지털 기술이 허용하는 독서 과정에서의 상호성은 이러한 능동적 독서의 가능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한다.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시간 동안 콘텐츠를 감상해야 하는 영화와 달리, 스크롤링을 통해 소비되는 웹툰 콘텐츠는 독자가 독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면에서 높은 수준의 능동성을 개입시킬 가능성을 지닌다. 또한 댓글을 통해 독자는 콘텐츠에 대한 단순한 감상뿐 아니라 콘텐츠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기제와 의미를 탐색하고 공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독자의 반응에 기반하여 웹툰의 이야기는 산업적 가치를 부여받고 드라마, 게임, 굿즈 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재창조되면서 넓어진다. 이처럼 웹툰의 독자는 스크롤링을 통해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좋아하는 웹툰―좋은 웹툰―을 선별하여 소비하고, 팬이 되고, 그것이 다른 미디어를 통해 다시 이야기되도록 하면서 오늘날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산업을 움직이는 주체가 된다. 코믹스에서 패널과 페이지 위에 공간적으로 나열된 정보들이 독자의 능동적 독서를 통해 시간성을 동반하는 하나의 ‘움직이는’ 서사로 완성되었다면, 웹툰 스토리텔링의 원천 콘텐츠는 독자의 선택을 거쳐 드라마·게임·굿즈 등의 다양한 미디어로 재창조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의 공간을 넓히고 있다. 그렇다면 거닝(Tom Gunning)이 정의하는 “코믹스의 힘”(power of comics)은 웹툰문화에서도 잔존한다. 이는 “정지된 상태에서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능력”(their ability to derive movement from stillness)이되, “독자가 단순히 움직임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력을 통해 그 움직임의 생성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힘이다.23)
3. 세계관 스토리텔링과 반복의 시간성
20세기의 코믹스 비평이 인접한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만화만의 고유한 매체성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설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았다면, 오늘날 웹툰문화는 미첼(W. J. T. Mitchell)이 코믹스의 본질이라 정의한, 말하자면 “초매체적인”(transmediatic) 특성을 21세기의 맥락에서 가시화한다.24) 미첼은 코믹스란 글쓰기나 드로잉(drawing)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해왔던, 시각적 표식을 만드는 원초적인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표상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가장 원시적 욕구를 반영하는 매체로서 코믹스는 돌벽과 모래사장에서 나무판, 종이, 스크린과 가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식에 유동적으로 적응하며 생존해왔다. 이처럼 손으로 그린 그림이자 표식화된 것, 읽는 동시에 보는 행위를 동반하는 만화의 매체성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으로 옮겨오면서 어쩌면 “가장 원시적 형태의 표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25) 제작 공정이 온전히 디지털화되었지만 작가들은 여전히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만화를 제작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웹툰은 디지털로 구축되는 가상의 시공간을 손으로 만져지는 현실의 감각과 합체시킨다. 스크린 인터페이스는 디지털과 현실의 공간을 수월하게 연결해주며, 수작업의 자유로움은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구현되고 있다.
초창기 웹툰이 마우스를 이용한 PC 스크린 세로 스크롤 방식의 읽기 경험을 제공했다면, 스마트폰으로 매개된 오늘날의 웹툰 소비는 한층 더 체험적 성격을 띤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수용자가 자신이 감상하는 세계를 직접 만진다는 것, 그 시공간의 전개 속도를 직접 조절하고, 나아가 스크롤링을 통해 서사의 전개 자체를 매개한다는 점은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의 밀착된 관계뿐 아니라 수용자와 그가 소비하는 허구 세계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일상의 시공간이 웹툰의 시공간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라이언이 말하는 ‘현실세계’와 ‘허구 세계’ 사이의 메타렙시스(metalepsis), 즉 서로 다른 세계 층위 사이의 ‘간섭’과 ‘넘나듦’은 서사 진행의 지엽적 요소가 아닌 그것의 존재조건 그 자체가 된다. 헤일스(N. Katherine Hayles)가 주지하듯, 프린트된 종이를 통해 픽션의 세계를 경험할 때 독자들은 페이지와 자신이 신체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비교적 덜 갖지만,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세계는 촉각적이며 동적인 피드백 루프를 통해 강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한다.26) 웹툰이 컴퓨터 스크린에서 터치스크린으로 옮겨오면서 이러한 피드백 루프는 더욱 강화되고, 신체와 페이지/스크린 사이의 거리는 더욱 좁아졌다. 디지털 매체와 기기를 통해 ‘현실세계’와 ‘허구 세계’는 그 접점 또는 갈라지는 지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연결되며, 이러한 메타렙시스는 단순히 서사의 부산물이 아니라 매체 전반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디지털로 매개된 웹툰의 경험은 매체로서 만화가 오랫동안 견인해온 가장 원초적인 행위인 표식/기호 만들기,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하는 즐거움의 감각과 감정을 현대의 맥락에서 재상연한다. 매클라우드는 리얼리즘 미술이 바깥세계의 표현이라면 카툰은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시각예술이라 주장한 바 있다.27) 간단히 설명하자면, 과장되거나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진 카툰 캐릭터에는 독자가 자신을 투영하기 쉽다. 예컨대 동그란 얼굴에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눈·코·입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독자는 구체성이 결여된 그 얼굴과 자신을 쉽게 동일시한다. 매클라우드에 따르면 이러한 동일시의 가능성이야말로 어린아이들이 카툰에 열광하는 이유다.28) 카툰을 기반으로 한 서사예술인 코믹스 또한 예외가 아니며, 이미 명칭 자체에 ‘카툰’이 포함된 웹툰은 더욱 직접적으로 이를 반영한다. 초창기 웹툰이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 웹상의 개인 공간에 연재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류철균·이지영이 지적하듯, 형성기 웹툰은 “디지털 문화 기반의 사적 글쓰기”에 기반을 둔 서사 구축 전략이라는 점에서 독자적이다.29) 「스노우캣」 「마린블루스」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의 웹툰은 간단한 그림체로 구현된 ‘작가’ 캐릭터가 등장하며 각 에피소드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독자가 작가의 일상에 쉽게 자신을 대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까지도 ‘인스타툰’을 비롯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1인칭 서사를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례가 많다는 점, 그리고 댓글을 통한 공감 형성과 굿즈 제작 등 2차 창작, 팬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웹툰문화가 기본적으로 디지털과 웹 매체를 통한 자기표현 및 공감, 동일시의 기제와 긴밀히 연관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웹툰은 디지털과 웹 문화,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자기고백적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웹툰이 대형 플랫폼 산업으로 흡수되고, 고정 독자와 팬덤을 확보하기 위한 정기 연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단편적인 자기서사는 ‘스토리형 웹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30) 이 과정에서 웹툰에 비해 제작 속도가 20배가량 빠르다고 알려진 웹소설의 스토리를 적극 수용하면서 최근 웹툰에는 세계관 기반 판타지 장르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융희가 지적하듯, 웹소설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판타지 장르는 “비슷한 장르적 코드”를 공유하는 거대한 신경망 구조를 띤다. 창작과 소비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을 지닌 웹소설 시장은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장르라는 장 안에서 서로 교섭하며 적극적으로 창작을 반복”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31) 가상의 정보로서 웹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콘텐츠 간, 미디어 간, 나아가 생산자와 수용자 간 정보가 빠르게 넘나들 수 있다는 웹소설의 매체적 특징은 서사 창작이 자기복제, 데이터 재배합과 반복의 독특한 구조를 띠도록 한다. 한편 웹소설 원작 판타지 장르 이야기의 웹툰화 과정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이융희는 웹툰 시장은 웹소설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판타지 장르 역사에 고유한 마니아적 ‘코드’ 중심의 소비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웹소설에 비해 연재 속도가 느린 웹툰은 판타지 장르성을 규정해온, 비교적 가볍고 쉽게 공유되는 ‘코드’의 문법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두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32)
산업적 관점뿐 아니라 질적 관점에서도 이융희의 지적은 유효하다. 예컨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증가했던 웹툰 이용 빈도는 엔데믹 이후 감소했는데, 이에 대한 원인으로 판타지 장르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스튜디오 제작이 증가하면서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대거 양산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33) 하지만 마니아 중심의 코드 반복은 아니더라도 웹툰 스토리텔링이 디지털 매체와 결합하면서 비슷한 설정의 변주와 반복을 통해 서사를 전개하는 독특한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웹툰 서사는 설정의 반복으로 진행되는 퀘스트 중심 서사, 익숙한 데이터의 조합을 통한 캐릭터 구축, 이세계(異世界)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로 대표되는 일종의 자기복제적 피드백 루프 구조와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등의 주제를 구현하며, 콘텐츠와 매체,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드는 ‘코드’의 반복 배열 양상을 보인다. 웹툰 서사가 보이는 이와 같은 설정의 반복과 변주는 코믹스를 포함한 만화 전통이 깊게 뿌리박고 있는 ‘시리즈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재 형식으로 출판되는 만화와 마찬가지로 웹툰 또한 매회 독자를 사로잡으면서도 그를 매주 연재되는 서사의 지속적 흐름 속에 오랫동안 붙들어놓아야 한다는 양가적 목표를 지닌다. 특히 웹툰은 속도감 있는 스크롤링을 위해 너무 많은 정보를 빽빽하게 담아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분량이 적다’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충분한 이야기 전개를 한 회 내에 구현해야 한다. 매 회차는 유의미한 정보와 적당한 클라이맥스를 통해 독자가 다음 화를 기다리도록 만들어야 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스케일은 몇 회 만에 완전히 소비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아쉬움을 자극해서 한 주 후 다음 화를 감상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더 큰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웹툰 매체에서 세계관 중심의 판타지 장르 스토리텔링이 우세한 이유이기도 하다.
웹툰 콘텐츠가 세계의 문법과 설정을 주요한 서사적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은 이들 서사에 나타나는 독특한 반복의 시간성과 연결된다. 예컨대 네이버 웹툰 「사신소년」의 경우, 수명의 일부를 값으로 제공하면 티켓을 사용해 죽은 영웅의 능력을 1시간 동안 빌릴 수 있다는 기발한 설정을 반복적으로 변주하며 서사를 진행해나간다. 초반에는 티켓을 사용해 가족의 죽음과 학교폭력을 극복한다는 뚜렷한 서사가 존재했지만, 연재가 계속되면서 서사의 목적은 점차 희미해지고 세계관이 복잡하게 확장되면서 주인공은 일본의 비밀조직과 맞서는 특수부대의 일원으로서 티켓의 힘을 빌려 악의 무리와 싸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티켓 사용과 함께 새롭게 소개되는 영웅과 그들의 다양한 특수 능력에서 오는 재미, 그리고 “이순신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같은 게임적 요소를 더해 「사신소년」은 여전히 네이버 웹툰 순위권에 정주 중이다. 티켓을 사용해 역사 속 영웅의 영혼을 소환한다는 설정을 서사 전개의 핵심적이며 반복적인 추동력으로 사용하는 「사신소년」은 성장형 주인공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적을 갱신하며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소년만화의 장르적 문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웹콘텐츠 스토리텔링이 기반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서사로서의 특성을 드러낸다. 또한 특정한 ‘코드’의 반복 변주로서 이야기가 마치 옴니버스처럼 분절적이면서도 연속적인 시간성을 갖고 무한히 확장될 가능성을 부여받는 양상을 보여준다.34)
최근 웹툰을 비롯한 웹콘텐츠 서사가 이른바 이세계로의 ‘회빙환’ 주제를 폭발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오늘날 웹툰 스토리텔링에서 두드러지는 반복의 시간성에 관해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책)빙의물’은 읽는 주체로서의 독자가 현실의 시공간으로부터 그가 읽고 있는 대상인 허구의 세계 속 시공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을 지닌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시공간 이동은 현실과 허구 사이의 분리를 강화하는 대신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둘 사이를 매끈하게 연결한다. 빙의물을 포함한 이세계 회빙환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시스템 창’의 존재는 주인공이 이동해 들어온 허구의 세계가 여전히 ‘읽기’의 대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세계 회빙환 서사에서 세계와 주인공을 매개하고 연결하는 ‘시스템 창’은 그 자체로 허구의 세계가 일상 세계와 맞닿도록 매개하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그리고 그 표면에 나열되는 기호화된 이미지의 구현이다. 그렇다면 터치스크린을 통해 허구의 세계와 한층 더 밀착된 채 즉각적이며 감각적인 읽기 경험을 소비하는 웹툰 수용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원본’이라기보다 이세계 회빙환 장르 서사의 무한히 증식하고 회귀하는 세계 속 여러 층위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독자가 읽는 허구 세계의 존재가 자신이 읽는 허구 세계로 들어가 독자의 읽는 행위를 비출 때, 이는 단순히 허구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재현적 리얼리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디지털과 웹콘텐츠의 범람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 이미 전자기기의 스크린을 통해 상당 부분 매개되도록 만들었다. 자주 다녀 익숙한 경로도 GPS로 탐색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적 습관에서 현실 공간을 개인 컴퓨터 바탕화면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시스템 창’을 통해 정보화되어 제공된다. 정보는 감각에 선행하고 감각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휴대할 수 있는 형태로 이리저리 이동하며 현실의 시공간을 지배한다. 빙의물 속 주인공의 시스템 창이 허구의 존재인 자신과 허구의 세계 사이를 잇는 인터페이스였듯, 콘텐츠로 포화된 현실을 사는 우리들도 이미 허구화된 세계를 스크린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세계관 설정이 강한 이세계물이 아니더라도 설정 중심의 반복을 통한 서사 전개는 효과적인 웹툰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자주 사용된다. 예컨대 네이버의 「나를 바꿔줘」와 「결혼 시뮬레이션」은 각각 뛰어난 외모로 완전히 변신하여 살 수 있다는 설정과 결혼생활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는 설정의 반복을 통해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나를 바꿔줘」의 경우 기존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이후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때로는 단순한 배경으로, 때로는 꽤 비중 있는 조연으로 재등장한다. 이를 통해 「나를 바꿔줘」는 각 인물의 이야기로 얽혀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로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인물 사이의 이러한 연결된 시공간을 포착하고 드러내는 일이 수용자의 차원에서, 많은 경우 웹툰의 댓글창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관이 복잡할수록 독자들이 이해를 위해 ‘베스트 댓글’의 해설에 의지한다는 점도 뉴미디어 시대의 창작자-수용자 간의 흐려진 경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는 옴니버스 형식을 띠지만 강한 세계관 설정으로 인해 연속성을 부여받도록 하는 이러한 웹툰 서사 형식은 오늘날 빠른 속도의 웹툰 소비와 연재의 긴 호흡이 동반하는 양가적 시간성 속에서 독자의 ‘중도 하차’를 막으려는 하나의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정착된 듯 보인다.
4. 나가며
빠르고 가볍게 소비되고 실시간으로 독자를 자극하며 즉각적 만족을 주는 ‘스낵 컬처’로서 웹소설, 숏폼과 더불어 웹툰이 오늘날 문화 생태계를 다소 우려스러운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관련하여 서희원은 신속한 스크롤링과 가독성으로 특징되는 웹소설을 ‘정신 분산’의 텍스트라 부른다. 현실에서 처리해야 할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감정노동으로 소모된 정신과 피로감을 가볍고 쉬운 오락(정신 분산)으로 달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독, 탐독, 재독의 가치 대신 가독성과 다독의 방식을 택한 웹소설 문화는 삶의 통제력을 잃은 현대인이 “죽음의 공포를 망각”하기 위해 취하게 되는 “거의 마지막 심리 기제”와도 같다.35) 웹소설과 깊은 친연성을 지닌 웹툰도 이러한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가독성과 빠른 소비, 같은 소재와 연출의 반복으로 특징되는 정신 분산의 오락문화, 그리고 이에서 기인한 전반적인 문해력 하락과 문화의 질적 퇴보에 대한 우려는 이전의 코믹스 비평이 맞서야 했던 비판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혼종성과 공간성으로 특징되는 코믹스 고유의 매체성이 깊은 독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듯이, 웹툰 또한 오랜 예술적 전통으로서 만화 매체의 창조성과 확장성을 계승하고 있다. 빠르게 유동하고 소비되는 웹 기반 콘텐츠의 향연 속에서 웹툰은 여전히 수작업을 동반하면서 비교적 느린 템포로 제작된다. 웹소설 원작의 웹툰이 드라마, 게임 등 더욱 오랜 제작 기간을 요구하는 타 매체로 콘텐츠가 옮겨가기 위한 교두보가 되는 것은 이러한 속도의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한 완성도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와 글자의 조합으로서 웹툰이 소설과 영상 모두와의 호환성이 좋다는 점도 웹툰이 지닌 가능성 중 하나다.
속도가 질량과 반비례하듯, 디지털 시대에 이야기가 소비되는 빠른 속도는 콘텐츠의 가벼움과 결부된다. 그리고 콘텐츠의 가벼움은 다시 소비 속도의 증가로 이어진다.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 산업의 결합은 시간 관리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기계발의 에토스와 만나 무수한 이야기의 홍수를 이루어내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이야기 소비 행위가 이제는 특수한 경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시공간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때를 비롯하여 일상 중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서사 매체로서 웹툰은 가벼워진 이야기의 시공간이 일상의 시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스마트폰 속에 휴대할 수 있는 형태가 되어 일상 속 비어 있는 시공간을 속속들이 채운다. 매체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넘나들며, 한 편의 작품 안에서도 복제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전자화된 이미지 기호로 존재하는 웹툰 속 이야기는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로 연결된 매끄러운 신체가 거주하는 가상 속으로 일상의 시공간을 녹여낸다. 메신저와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짤방’의 형태로 캡처 및 휴대가 쉬운 웹툰은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증식하는 디지털 서사 세계의 확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세계관’ 설정이 강한 판타지 장르 웹툰의 경우 팬카페나 댓글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수용자가 소통하면서 팬픽, 패러디, 외전 등의 2차 창작물 생산으로 이어지며 콘텐츠의 유동성과 확장성을 증명한다.
한편으로 웹툰 스토리텔링의 유동성과 확장성을 고려할 때, 세계관을 공유하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 독자의 욕망이 설정 중심의 웹툰 스토리텔링 전략을 성공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관찰예능, 연애 매칭 프로그램 등의 대중성에서 엿보이듯 현대의 소비자는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웹툰 스토리텔링의 세계관 설정 변주 전략은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이들이 결국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해준다. 많은 정보가 빠른 속도로 분절적으로 지나가는 가상의 시공간과 연결되어 무한히 유동적이고 신체를 지닌 채 각자의 스크린 속에 갇혀 있는 듯 보이는 현대의 소비자에게 타인의 이야기란 매력적이고,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그들과 ‘세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웹툰의 세계관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잃어버린 총체성의 감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이동하는 이야기의 반복, 변주, 재생산과 재창조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긴 역사를 지닌 스토리텔링을 통해 드러나는 깊은 세계의 연결망 속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韓率智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는 「데이터베이스 (대) 서사: 「밴더스내치」와 디지털 시대의 이야기」(2024)가 있다.
Janet Murray,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 (New York: The Free P, 1997) 212면.
2) 2003년 다음(Daum)에 연재되었던 강풀의 『순정만화』를 최초의 웹툰으로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며, 강풀 이후 웹 콘텐츠에 최적화된 ‘세로 스크롤’ 연출이 웹툰만의 고유한 ‘문법’으로 정착되었다. 임채진 「디지털 혁명기 한국 만화의 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성공회대 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24) 31면.
3) 2024년 이용 실태조사 결과 만화·웹툰 형태별 이용 경험은 ‘웹툰만 이용’이 61.6%, ‘둘 다 이용’이 36.9%, ‘출판만화만 이용’이 1.5%로 나타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 17면.
4) 하위문화에 속했던 만화가 오늘날 더욱 폭넓은 독자층을 갖춘 웹툰이라는 “주류문화”로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IP 산업 덕분이라는 해석에 관해서는 박인하·성인수·이재민·조경숙 『웹툰 입문』(커뮤니케이션북스, 2022) 67면 참조.
5) 양혜림 『웹툰의 서사 공간』(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11면.
6) 김명진 「디지털시대 서사와 매체의 융합: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문화와융합』 44.9 (2022) 88면.
7)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만화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많이 축적되어 있지만 웹툰이라는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서사 형식에 특화된 이론적 틀은 아직 제한적인바, 이 글에서는 우선 서구 코믹스 이론을 중심으로 웹툰의 형식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웹툰이 (일본) 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사실은 주지해야 하며, 추후 보완적 논의가 필요하다.
8)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ed. Hannah Arendt (New York: Schocken Books, 1968) 93면.
9) 김명진, 앞의 글 93면.
10) Francesco Casetti and Andrea Pinotti, “Post-cinema Ecology,” Post-cinema: Cinema in the Post-art Era, ed. Dominique Chateau and Jose Moure (Amsterdam: Amsterdam UP, 2020) 194면.
11) Gilles Deleuze, Cinema 2: The Time-Image, trans. Hugh Tomlinson and Robert Galeta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1989) 265면.
12) Will Eisner, Graphic Storytelling and Visual Narrative (Tamarac: Poorhouse P, 1995) 70~73면.
13) Scott McCloud, Understanding Comics: The Invisible Art (New York: Harper Collins, 1994) 7면.
14) Charles Hatfield, Alternative Comics: An Emerging Literature (Jackson: UP of Mississippi, 2005) 35면.
15) Karin Kukkonen, “Comics as a Test Case for Transmedial Narratology,” SubStance 40.1 (2011) 34, 37, 43면.
16) Pascal Lefèvre, “Some Medium-Specific Qualities of Graphic Sequences,” SubStance 40.1 (2011) 26면.
17) 같은 글 29면.
18) 같은 글 15면.
19) 김가영·김이진 「웹툰의 유동적 페이지에 관한 연구: 웹툰 「악당의 미학」을 중심으로」, 『한국영상학회논문집』 20.2 (2022) 47면.
20) 물론 장면 컷을 가로로 넘기며 보는 ‘컷툰’ 형식의 웹툰도 존재하지만, 이를 전통적 의미의 ‘페이지’라 보기는 어렵다. 보통의 만화 페이지가 여러 개의 패널을 포함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구현했다면, 컷툰의 경우 한 컷당 하나의 패널만이 존재하며 독자는 이를 빠르게 넘기며 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공간의 문법보다는 장면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시간의 문법이 두드러진다.
21) 같은 글 104면.
22) 박미영 「숏폼의 미학과 시간성: 유튜브를 중심으로」, 『씨네포럼』 42 (2022) 24면.
23) Tom Gunning, “The Art of Succession: Reading, Writing and Watching Comics,” Critical Inquiry 40.3 (2014) 40면.
24) W. J. T. Mitchell, “Comics as Media: Afterword,” Critical Inquiry 40.3 (2014) 259면.
25) 같은 글 260면.
26) N. Katherine Hayles, “The Condition of Virtuality,” The Digital Dialectic: New Essays on New Media (Cambridge: MIT P, 1999) 88면.
27) McCloud, 앞의 글 41면.
28) 카툰과 코믹스는 개념상 다르다. 카툰이 하나의 패널에 그려진 이미지라면, 코믹스는 연속성을 갖는 이미지의 연쇄라 정의할 수 있다.
29) 류철균·이지영 「형성기 한국 웹툰의 장르적 특질 연구」, 『우리문학연구』 44 (2014) 589면.
30) 조유빈 「콘텐츠 업계에 웹툰 IP가 몰려오는 이유」, 『시사저널』(2021).
31) 이융희 「웹소설계에서 바라보는 웹소설 원작 웹툰화」, 『디지털만화규장각』(2021).
32) 이융희는 웹소설이 제작되는 물적 토대와 소비의 맥락을 제거한 채 “웹소설에서 사용되던 작은 단위의 코드, 그것도 고맥락적이고 휘발성 강한 코드”만을 옮겨 적는 안일한 세태를 비판하며, 웹소설과 웹툰이 지닌 각각의 매체별 특성과 언어, 향유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각색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각색의 과정에서 단순한 코드 복제가 아닌 매체 간의 제대로 된 ‘번역’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
이다.
33)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만화·웹툰 이용자 실태조사」.
34) 김명진은 일본의 오타쿠, 미국의 마블 코믹스의 팬덤문화에서 나타나는 수용자 간 세계관 ‘설정’과 ‘규칙’을 공유하는 문화가 최근 웹툰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웹툰을 비롯한 오늘날의 세계관 스토리텔링에서 각 이야기는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허구 세계의 파편으로서, 그 세계를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조합되고 출력된 산물이다. 여기서 수용자가 소비하는 것은 출력된 콘텐츠 결괏값이라기보다 그 세계를 구성하는 설정, 문법, 규칙이다. 이러한 세계관 중심 스토리텔링은 이야기가 수용자의 차원에서 짤방·팬픽·패러디·외전 형태로 재생산될 수 있도록 하며, 댓글을 통해 생산자와 소통하며 이야기 세계를 증식해나가도록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상이 자리한 ‘현실’의 시공간과 콘텐츠가 제공하는 ‘허구’의 시공간 사이의 분리는 점차 희미해진다. 김명진, 앞의 글 92면.
35) 서희원 「웹소설의 발생: 모바일 디바이스, 다독, 정신 분산으로서의 예술」, 『인문과학연구논총』 44.2 (2023) 89면.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