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8호] [특집] 웹소설과 새로운 ‘읽기’ / 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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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웹’이라는 물질성

디지털미디어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전환이 아닌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혁명을 야기했다. 이는 스마트폰에서 한 정점을 이룬다. 정보의 저장·이동·활용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스마트폰 없이 현대사회의 이기(利器)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이는 불가역적인 현실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모든 문명과 완전히 담을 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디지털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의 삶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독서라는 개념 역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독서라는 말의 전제는 ‘책’이다. 그런데 오늘날 디지털미디어는 이 독서라는 말의 근원부터 흔들고 있다. 디지털기기의 등장으로 인해 책이라는 전제가 이미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읽느냐가 아닌 ‘무엇으로’ 읽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1) 독서라는 말보다 ‘읽기’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웹소설은 이러한 디지털미디어를 바탕으로 형성된 독자적인 콘텐츠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물론 웹소설의 뿌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학,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르소설이다. 하지만 웹소설을 기존의 장르소설이 웹이라는 미디어에서 서비스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웹이라는 미디어의 속성과 만나는 순간, 그 장르적 형질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소설은 기존 장르소설이 웹에 ‘접붙이기’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웹이라는 미디어 자체와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듯 ‘합성’되어 새로운 물질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러므로 웹소설을 분석하는 데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웹’이라는 접두어다. 기존의 출판미디어 안에서도 대중성에서는 강자로 군림했던 장르소설이 웹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면서, 미디어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콘텐츠의 창작·유통·소비의 구조가 결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전제가 바로 이 접두어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웹’이라는 접두어가 야기한 물질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속도에 기반한 확장성이다. 웹 플랫폼 내에서 모든 웹 콘텐츠는 고정불변한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는 빠르게 모방되고 확산하며, 다수의 유사한 콘텐츠를 촉발한다. 그에 더해 작품의 생산에서 소비(향유)까지의 거리 역시 놀랍도록 가까워졌다. 디지털 세계의 속도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웹 콘텐츠를 두고 OSMU(One-source Multi-use)라고 말하는 그 본질에는 하나의 미디어에서 또 다른 미디어로 이동하는 속도가 내재되어 있다.

둘째, 상호텍스트성이다.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는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로 구축되며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받아들이고 변형시킨다. 우리가 상호텍스트성이라 부르는 개념이 여기서 촉발된다. 그 어떤 텍스트도 이 영향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더 나아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상호텍스트성을 미디어 자체의 물질성으로 구축한 것은 다름 아닌 ‘웹’이라는 새로운 환경이다. 오늘날 우리가 OSMU·미디어믹스·트랜스미디어 등으로 다양하게 일컫는 모든 미디어 및 콘텐츠의 본질적인 변화의 기저에는 ‘웹’이 있으며,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념은 어쩌면 상호텍스트성 그 자체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변화는 따로 있다. 셋째, 바로 콘텐츠를 향유하는 방식의 변화다. 종이라는 물질에서 디지털기기로의 전환은 단순한 미디어의 변화가 아니다. 달라진 미디어는 향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책장을 넘기는 수평적 읽기에서 스크롤로 내리는 수직적 읽기가 보편화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콘텐츠를 향유하는 방식뿐 아니라 콘텐츠의 내용마저 변화시켰다. 시선의 이동 없이 수직적으로 연속되는 이미지는 기존 콘텐츠가 가지고 있던 형태적 틀마저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웹이라는 물질성 위에서 탄생한 웹소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논점을 제대로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글의 제목이 품고 있는 키워드, ‘읽기’가 그것이다. ‘읽기’는 디지털미디어에 의해 가장 결정적인 전환을 겪은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읽기’는 비평적으로 대상을 읽는다는 개념만이 아닌, 그보다 더 광의로서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정보를 판단해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과정으로서의 ‘읽기’까지 확장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웹소설은 문자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서사이지만, 그 텍스트 안에 삽화를 넘어 만화·음향·영상까지도 반영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독서보다는 ‘읽기’라는 말을 활용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 글은 ‘읽기’를 키워드로 웹과 디지털기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플랫폼과 그것을 기반으로 형성된 웹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2. 웹소설 산업 기반의 형성

잘 알려진 대로 웹소설의 기원은 PC통신소설이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통신을 기반으로 등장한 PC통신소설은 표절과 모방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PC통신소설이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텍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동호회 게시판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게재되었던 여러 작품은 인터넷 기반으로 떠돌던 여러 이야기를 혼합한 성격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구전에 가깝게 떠돌던 이야기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PC통신소설이라는 장르 안으로 흡수되었다. 이우혁의 『퇴마록』(1993~2001)이 대표적이다. 오컬트를 표방한 이 작품에는 당시 PC통신에서 유행했던 ‘엽기’ 트랜드가 녹아 있다. PC통신망을 타고 마치 구전설화처럼 양산되었던 다양한 공포 콘텐츠를 하나의 클리셰로 받아들이면서 순식간에 독자층이 확대되었다. 더욱이 이우혁의 『퇴마록』은 1998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고, Y2K 인기에 힘입어 2025년에는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웹 기반 콘텐츠의 OSMU를 대표한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인터넷소설이다. PC통신보다 발전된 웹페이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인터넷소설은 PC통신소설보다 적극적으로 OSMU가 진행되었다.2) 시작은 견우74가 나우누리에 연재한 『엽기적인 그녀』(1999)였다. 2001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어 인기를 끌면서 이후 인터넷소설의 영화화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OSMU의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것은 지수현과 귀여니였다. 지수현 작가의 『내 이름은 김삼순』은 2005년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중적 지지와 평단의 호평까지 거머쥐었다. 외계어의 남발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10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귀여니 작가의 대표작인 『그놈은 멋있었다』(2001)와 『늑대의 유혹』(2002)도 2004년 동시에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흥미롭게도 두 편의 영화는 같은 날 개봉했는데, 그만큼 인터넷소설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2000년대에는 인터넷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고, 영상물의 원천 콘텐츠로서 인터넷소설의 가능성이 주목받기도 했다.

웹소설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PC통신소설과 인터넷소설은 모두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인기 있는 작품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OSMU에 최적화된 콘텐츠로서 그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PC통신소설이나 인터넷소설 모두 독자적인 산업을 구축하지 못한 채 그 열풍만큼이나 빠르게 쇠락했다. 대중적인 열광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 때문일까? 웹소설이 처음 탄생했을 때, 그것이 이토록 거대한 산업구조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실 웹소설은 그 기원인 PC통신소설이나 인터넷소설과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디지털 기반의 서사 텍스트라는 동일한 기반, 상호텍스트성이라고 칭하기에도 민망할 만큼의 모방과 표절, 대중적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연재 시스템까지.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웹소설은 해답을 찾아냈고, 결국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웹소설은 무엇이 달랐을까? 그 첫 번째는 바로 미디어였다. PC통신소설과 인터넷소설은 모두 웹이라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서비스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출판시장이라는 산업구조 안에 종속되어 있었다. 웹 안에서 아무리 인기를 끈다고 해도 책으로 출판되지 않으면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태생적인 한계였다. 하지만 웹소설은 달랐다. 오늘날 우리가 웹이라고 부르는 인터넷 환경의 탄생과 그것을 구현하는 데 최적화된 미디어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e-book이라 불리는 단말기의 탄생이 그 시작이었다.

1998년 10월 최초로 출시된 e-book 단말기 Rocket eBook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 새로운 미디어가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3) 가용성·편의성·효율성·경제성 면에서 종이책을 압도하는 e-book의 등장으로 출판시장 전체가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이 점쳐졌다. 바야흐로 종이책의 소멸까지 예언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와 함께 새롭게 시작된 이 e-book 환경으로 인해 ‘읽는다’라는 개념에서 ‘본다’라는 개념으로의 전환을 이룰 것이라는 추정이 힘을 얻었다.4)

이러한 초창기 e-book은 기존 책을 디지털기기 안에서 읽도록 이미지를 옮기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이동과 보관의 편의성은 높였지만, 가독성 면에서는 책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곧 e-book을 읽을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되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책을 하나의 기기 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인식되면서, 별도의 기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또한 e-book을 제공하는 단말기의 인터페이스에 맞추어 텍스트 화면도 변화하면서 가독성도 높아졌다. 이로써 e-book이 종이책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추측이 힘을 얻게 되었다.

e-book이 보편화하면서 초기 단말기의 기술 혁신은 기존 책에서 느꼈던 실감을 디지털기기로 옮겨오는 것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e-book이 종이책의 감각을 닮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e-book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는 모순을 야기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역시 e-book 단말기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욕을 떨어뜨렸다. 책보다 실감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이나 태블릿 외에 또 다른 디지털기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집·보관·이동이 편리하다는 e-book만의 장점은 여전히 컸기에 시장의 요구는 다른 쪽 방향으로 나아간다.

바로 편집이었다. 기존 책의 편집 형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시각의 확대가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e-book 단말기 시장을 오히려 협소하게 만든다. 편집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면 굳이 단말기라는 미디어에 국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별도의 단말기가 아닌 항상 소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책을 읽고자 하는 필요가 늘어나면서 e-book을 서비스하는 메인 기기는 스마트폰으로 재편성되고, 사용자가 사용하는 미디어에 따라 최상의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자체도 조절되기 시작했다.

웹소설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변화를 견인했다. 어떤 미디어에서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유연한 편집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일례로 같은 작품이라도 스마트폰에서 읽을 때와 PC에서 읽을 때 각기 다른 편집 형태로 작품이 제공된다. 디지털미디어에 친화적인 구조로 콘텐츠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이는 웹소설이 기존의 출판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형태라는 것은 출판에 얽매이지 않는 콘텐츠로서의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웹소설은 그 탄생부터 이미 디지털미디어로부터 촉발된 물질성을 그 장르적 특성으로 내재화한 채 발전했다. 강력한 클리셰를 가진 장르적 성격, 짧은 분량으로 이어지는 회차별 연재, 장르 코드를 충실하게 따르는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주인공, 이동시간이나 휴식시간 동안 짧게 즐길 수 있는 웹소설의 특성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정착되었다. 웹 서사 특유의 수직 읽기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웹 특유의 읽기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두 번째는 독자적인 수익모델의 획득이었다. 웹소설이라는 명칭이 웹툰에서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수익모델의 안정화 면에서는 웹소설이 오히려 웹툰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차적으로는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대형 웹 플랫폼은 웹툰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를 유인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 때문에 웹툰의 유료화는 이용자들의 거센 저항이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반면 웹소설은 처음부터 유료화를 추구하는 한편, 일정 기간을 기다리면 일부 회차가 무료로 제공되는 이중적인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웹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도 수익모델의 안정화에 한몫했다. 대여 200~300원, 소장 500원 정도로 과금되는 웹툰에 비해 100원 과금으로 소장할 수 있는 웹소설의 진입장벽이 더 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 플랫폼이라는 뉴미디어를 대중에게 인식시킨 것이 웹툰이라면, 유료화 이후 웹 플랫폼 산업의 성장에 날개를 단 것은 웹소설이었다고 평가된다. 웹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유료화할 수 있는 기반은 다름 아닌 웹소설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이다.5)

이로부터 세 번째 조건이 등장한다. 바로 웹소설 작가가 하나의 직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일정한 기간 동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일, 자신의 적성과 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버는 일이다. 웹 플랫폼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은 플랫폼 안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비로소 직업으로서 그 오롯한 자리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5)

창작자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수많은 잠재적 작가군을 발굴할 수 있는 결정적인 키가 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수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웹소설 작가가 하나의 ‘직업’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는 전제가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다. 웹소설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또는 삼고자 하는) 거대한 전문/예비 작가군이 형성되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웹소설 콘텐츠의 양적·질적 성장을 견인하며 안정적인 산업화 동력으로 작동한다.

이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2년 웹소설 분야 산업 현황 실태조사」6)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플랫폼 사업체 매출 기준에 따른 국내 웹소설 산업 규모는 약 1조 390억 원에 이른다. 2013년만 해도 100~200억 원으로 추산되었던 시장이 2020년에는 6000억 원 규모로 8년 만에 60배 성장한 데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부 상황과 맞물리면서 1조 원을 훌쩍 넘어버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3.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장르 문법

그렇다면 웹소설의 작가, 그들은 누구인가? 웹소설 작가는 일단 기존의 문학 작가와는 다른 경로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보증받는다. 기존의 문학 작가는 자기 자신을 증명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들은 ‘등단/문예지 게재→단행본 출판→서점’이라는 경로를 거쳐 독자와 만났다. 그런데 오늘날 웹소설 작가는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 독자를 만난다. 이미 웹소설의 뿌리라고 논하는 PC통신/인터넷소설 시대에 ‘인터넷→단행본 출판→도서(만화)대여점’이라는 다른 경로를 개척하면서, ‘등단/문학지 게재’라는 하나의 고리를 끊어냈기 때문이다. 웹 콘텐츠의 유료화로 인해 ‘웹’이라는 매체가 종이 매체로부터 완전히 독립되면서, 출판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과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실제로 오늘날의 웹소설 작가들은 더 이상 종이책 출판에 관심이 없다.7)

따라서 웹 플랫폼이라는 매체 안에서 작가의 역할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작가가 해왔던 역할을 넘어선다. 웹 플랫폼의 콘텐츠로서 웹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는 작품을 창작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입장 역시 함께 획득한다”.8) “창작된 작품을 업로드하고(출판하고), 작품이 업로드된 게시판을 관리하며 독자와 소통하고, 또 작품을 홍보하는 것, 그리고 2차 저작을 준비하는 것”9)까지 작가의 역할이 확장되어 일종의 개인사업자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 실제로 다수의 웹소설 작가는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웹소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장인 정신과 장사꾼’의 모습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며 자조적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작가들의 자기착취적인 고된 노동으로 이어지는 모순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10)

이러한 특성들은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서사 장르를 그 자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웹소설이 아니라고 여겨질 장르적 문법이나 구조, 형태들이 이질적인 성공을 거두며 새롭게 웹소설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 편입되거나 탈락하길 반복”11)하는 것이 웹소설 장에서는 일상적인 현상이다. 이는 웹소설에 대해 ‘정의할 수 없음’ 그 자체라는 새로운 정의를 부여하기도 한다.

웹소설 창작을 둘러싼 환경도 이를 가중한다. 바로 글을 읽던 독자가 스스로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창작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 웹소설 세계의 특징 때문이다. 오늘의 독자가 그대로 내일의 작가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은 ‘웹소설 쓰기’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비단 전문 작가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취미이자 부업으로 웹소설을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원작자인 정경윤 작가의 본업은 약사이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자인 한산이가 작가의 본업은 의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웹소설 연구자들 가운데는 직접 웹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들도 상당수다. 부정적인 시선을 한 겹만 벗겨보면 우리는 여기서 웹소설 콘텐츠가 가진 본질적인 특징 하나를 찾을 수 있다. 독자의 ‘읽기’ 경험이 그대로 창작으로 이어지는 융합적인 장르로서의 성격 말이다.

더 나아가 웹소설은 웹이라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다. 무엇인가로 정의되기 이전에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고, 그 새로움은 순식간에 모방되고 대체되면서 이전의 정의를 갱신한다. 불안정한 시장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고, 장르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도 전에 그 장르의 간격을 넘어서면서 형성된 장르가 웹소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이끈 것이 끊임없이 쏟아진 새로운 창작물 그 자체였다. 이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웹소설은 애초부터 읽기와 쓰기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한, 그 두 가지의 결합 자체를 정체성으로 하는 새로운 장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웹소설에 대한 논의는 다시 미디어로 귀결된다. 모든 이야기는 그것을 매개하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고유한 문법을 갖게 된다.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텍스트로 전달될 때, 소리로 전달될 때, 그림으로 전달될 때, 영상으로 전달될 때가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하나의 원천 콘텐츠가 여러 가지 다른 미디어로 가공될 때는 반드시 ‘각색’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 미디어가 가진 고유의 형식이 그대로 스토리텔링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변경 가능성이 적은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한번 인쇄된 책은 변경되기 어렵고, 이것은 TV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야기는 다르다. 원천 콘텐츠 자체의 변경이 쉽고 활용도까지 높은 데다 어떤 디지털기기든 하나만 있으면 콘텐츠 이동마저 간단하다. 그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접근법도 달라진다. 가령 한번 인쇄된 책은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는 쉽게 수정될 수 없다. 하지만 웹소설은 다르다. 기존 파일을 수정된 파일로 대체한 후 사용자에게는 다시 다운로드하도록 공지하면 된다.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나 이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읽기’만이 아니다. 콘텐츠의 향유 방식, 더 나아가 창작 방식까지도 변화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디지털미디어는 콘텐츠의 미디어 간 이동, 즉 하나의 콘텐츠가 하나의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 옮겨가는 과정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디지털미디어의 등장 이전까지 미디어 이동은 그 자체로 엄청난 과업이었다. 더구나 일단 만들어진 콘텐츠를 변경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디어도 다양했다. 소설과 음악과 영화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미디어를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디지털미디어는 이를 순식간에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의 이동이 너무도 빠르게, 그리고 간단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소설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무엇이든 향유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용자 스스로 기존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 수도 있다. 저작권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라면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이것은 콘텐츠의 소유 방식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디지털미디어 등장 이전까지 콘텐츠는 희소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에 앞서 소유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읽고 싶은 책을 소장하고, 보고 싶은 영상을 소장하고, 열광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소장해야 했다. 그런데 디지털미디어 안에서 모든 콘텐츠는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 된다. 빠르게 전송되는 여러 시스템 안에서 언제든 다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더 이상 물리적 장소나 값비싼 소장 비용은 불필요해졌다. 디지털미디어가 훨씬 쉽고 빠르게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소비되는 데이터 통신비와 저장기기의 용량뿐이다.

또한 콘텐츠의 양적인 측면을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적은 데이터 용량으로도 부담 없이 다운로드할 수 있을 만큼 길이가 짧고 용량이 적은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콘텐츠 자체를 즐기는 소비 태도도 변화한다. 디지털미디어만 있으면 그 어떤 콘텐츠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동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정독과 집중을 요구하는 콘텐츠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변화했다. 짧은 시간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량도 적은 콘텐츠가 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 위에서 범람하게 된 것
이다.

이는 웹소설의 주된 특징을 이룬다. 묘사보다는 서술 위주로 내용이 구성되고, 대화체가 늘어난다. 실제로 대형 웹 플랫폼인 네이버는 대화 위주로 이어지는 웹소설의 특징을 더 시각화하기 위해 모든 대화에 등장인물의 캐릭터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에 비해 좁은 스마트기기의 화면에 맞추기 위해 웹소설의 단락은 1~2문장으로 매우 짧게 구성되어 있다. 미디어가 콘텐츠의 내용을 넘어 장르가 가진 고유한 형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모든 장르적 문법이 고정불변하지 않음을 넘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다는 점이다. 웹소설을 이루는 모든 특징은 굉장히 단발적이고, 일정하지 않으며, 일회적이다. 이로부터 촉발된 유연성과 가변성은 그 자체로 웹소설의 확장성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오늘의 웹소설은 그 어떤 서사 장르보다 빠르게 변주하면서도 놀라운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다.

4. 혼종성, 웹소설의 가능성

웹소설은 인류가 창조한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혼종적인 장르다. 오늘날 웹소설은 텍스트를 비롯해 시각적 정보뿐만 아니라 청각적 정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장르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창작의 영역이 그대로 산업의 영역까지 직접적으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장르와 산업의 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다. 반대로 많은 작품을 쓰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다 해도 끝까지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혼종성이야말로 오늘의 웹소설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 바탕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웹 플랫폼 특유의 낮은 진입장벽이 놓여 있다. 기본적으로 웹 플랫폼에 작품을 업로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물론 일부 메이저 플랫폼에서 작품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허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플랫폼은 나이도 성별도 자격도 제한되지 않는다. 특별한 조건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글을 게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유료화를 통해 경제적 성취까지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작품을 업로드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모든 과정은 작품을 올리는 순간 시작된다. 당연히 작가로서의 정체성 역시 그것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즉 웹소설 작가의 정체성은 쓰는 그 순간 시작되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웹소설 영역에는 엄청난 아마추어 군단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
된다.

현재까지 웹 기반 서사들이 축적해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말하는 웹소설은 처음부터 어떤 뚜렷한 장르적 조건을 내세웠다기보다는 웹 플랫폼이라는 특수한 미디어를 기반으로 창작된 다양한 양식의 스토리텔링 전체를 아우르는 것으로 재정의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웹 플랫폼 안에서는 독자(유저)들의 ‘읽기’ 경험과 작가의 창작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 비단 프로슈머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 자신이 창작과 유통을 모두 담당하는 웹 플랫폼의 특성상 작품의 공유와 독자의 반응이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또한 모든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연재물이기 때문에 독자의 반응 역시 작가의 창작 안에 바로 반영될 수 있다. 결국 작가와 독자 모두의 다양한 ‘읽기’ 경험이 그대로 장르적 혼종성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웹소설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웹소설은 그 모태인 PC통신소설이나 인터넷 소설뿐만 아니라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시작된 그때로부터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되었다. 현재 웹소설 안에는 웹소설의 일반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로맨스, 판타지, 무협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적 성격을 가진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최근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인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한산이가, 2019. 03. 21~2022. 02. 19)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된 이 작품은 웹소설의 장르상 현대 판타지물이지만, 그 뿌리는 우리의 의료현실에 대한 깊은 고뇌와 문제의식 위에 구축된 철저한 현실감각이다. 이 작품이 2023년 제10회 SF 어워드 대상에 선정된 것은 이 작품의 영역을 판타지 안에 가둘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방증
한다.

2022년 제9회 SF 어워드에서 수상한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연산호, 2021. 05. 20~2023. 12. 07)도 주목할 만하다. 문피아의 연재작인 이 작품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구성된 심해 재난 판타지물이다. 한국소설에서는 드물게 해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재의 참신성도 빼놓을 수 없다. 치과의사인 주인공이 타임루프하면서 해저 기지의 재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해저 기지라는 극악한 환경 속에서 재난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현실 가능한 모습을 담아내면서,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아포칼립스 속에서 환경과 인간성의 문제를 끝없이 환기하는 문제적 작품이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모두 웹 플랫폼 안에서는 판타지로 분류된 작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웹 플랫폼 바깥에서는 두 작품 모두 SF로 호명되고 있다. 이는 웹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장르 교섭의 실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 웹 서사가 추구하는 판타지라는 것이 현실적인 논리 바깥의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 안에서 작동하는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보수적이며 판타지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인식되는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된 『에보니』(자야, 2017. 07. 10~2018. 01. 26)가 그것이다. 여주인공 에보니의 성장과 사랑을 그려낸 이 작품은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중세풍을 배경으로 남녀차별적인 환경 속에서 여주인공의 생존기를 그려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여주인공의 정치적 입장과 선택이 남녀 주인공의 애정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키다리 아저씨처럼 그녀를 지지하는 남주인공의 존재가 있고, 그와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로맨스판타지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정치적·신분적 열세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 과정에서 남주인공은 신뢰를 뒷받침할 뿐 모든 선택과 결과를 오롯이 여주인공 자신이 책임지고 이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흥미롭게도 앞에서 사례로 든 작품들은 웹소설의 일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들로, 바로 그 때문에 독자 및 평단의 지지까지 거머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웹소설의 장르 규범은 상당히 느슨한 편이고, 그만큼 장르 간 교섭도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들이 완전히 예외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존 장르의 문법에 얽매이기보단 다양한 장르의 교섭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12)하고자 하는 것은 웹소설 시장을 확대해온 매우 유효한 전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웹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웹 서사에서만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일반 문학에서는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낯선 콘텐츠를 통해 새롭게 정의되는 웹소설의 현재는, 결국 이 장르가 독자와 창작자의 거리를 좁히면서 지금 ‘생성’되는 예술 장르임을 다시금 환기한다.

5. 결론

오늘날 웹 플랫폼 기반의 서사는 다양한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허용하는 웹 플랫폼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독자/작가의 ‘읽기’ 경험이 그대로 창작으로 이어지는, 그로 인해 언제든 새롭게 장르적 문법을 갱신해나가는 장르적 속성이야말로 현재의 웹소설이 가진 독특한 지형도를 만들어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현재 웹소설이라는 단일한 장르 개념으로는 포괄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다채로운 서사들이, 때때로 매우 실험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까지도 웹 플랫폼 안에서 모두 균등하게 하나의 텍스트이자 콘텐츠로서 소비되고 있다. 물론 상업성에 치우쳐 저급한 내용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작품들 역시 같은 플랫폼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일 많은 작품이 업로드되는 치열한 레드오션인 만큼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작품들이 범람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진지하게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차별성 있는 작품세계를 밀고 나가는 작가들이 있으며, 그들을 지지하는 독자(유저)들이 존재한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웹 플랫폼 내에서는 가장 선정적인 작품을 읽는 독자와 이른바 문제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읽는 독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성은 내재한다. 그것은 바로 독자와 창작자를 매개하고 산업의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평의 부재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논리적 비평 작업은 웹소설 분야의 질적 향상을 견인하며 질 높은 독서를 통해 웹소설에 대한 합의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13) 더 나아가 그 자체로 다양한 지향을 가진 작품들을 촉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읽기’ 경험이 그대로 창작으로 이어지는 웹소설 장르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급속하게 성장한 웹소설 산업 구조 안에서 이러한 비평의 자리가 너무나도 협소하다는 것이다.

물론 웹 플랫폼 시장에는 독자들의 소통 창구로서 댓글이 존재한다. 웹 콘텐츠에 대해 개인 의견을 쓸 수 있도록 마련된 댓글란은 해당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바로미터로서 웹 플랫폼의 부흥에 한몫을 담당해왔다. 특히 프로슈머인 콘텐츠 소비자를 강조하는 웹 플랫폼 환경에서 댓글은 가장 적극적인 소비 행위인 동시에 또 다른 의미의 콘텐츠로서 기능하고 있다. 댓글 자체가 하나의 소통이자 웹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콘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댓글은 독자의 독서 행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그 자체로 웹 콘텐츠의 트랜스미디어적 성격을 강화하며, 단순히 공감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경험할 것을 요청하는 ‘말 건네기’로서 스토리스케이핑적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14)

이미 다수의 웹 플랫폼은 이러한 댓글의 가치를 인정하고 데이터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 용도는 지극히 상업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 소비자의 취향을 수집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철저히 플랫폼에 종속된다. 댓글의 실질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플랫폼 유저에게 댓글은 그저 일회적인 휘발성을 가진 논의의 장일 뿐이다. 이 점에서 댓글은 웹 콘텐츠에 대한 반응으로서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지만,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담론장으로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웹 플랫폼 바깥에서 이러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자들이 웹 콘텐츠를 학술적으로 논의하고 있고, 인문학협동조합의 텍스트릿처럼 웹 콘텐츠에 대해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노력들이 구체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이 아직은 웹 플랫폼 산업의 내부로까지 침투하지는 못한 상태로 보인다. 실제로 웹소설을 서비스하는 주요 웹 플랫폼 어디에도 비평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웹 콘텐츠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그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비평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비평은 불필요한 트집 잡기가 아니다. 하나의 작품을 동시대와의 관계 속에서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 가치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상업화 및 대중화와 함께 예술성이라는 가치를 지속하기 위해 비평적 담론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맨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라. 영화가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기까지는 비평과 연구가 큰 몫을 담당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모든 예술 장르는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이제 웹소설의 차례다. 그동안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던 웹 플랫폼이 한 걸음 더 성숙하고 안정화되기 위해서, 그리고 웹소설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문학이자 다양한 2차 저작물을 위한 원천 콘텐츠로서 그 가치를 제대로 존중받기 위해서 웹소설을 위한 안정적인 담론장의 확보가 긴요한 때다. 그것은 웹소설을 통한 ‘새로운 읽기’를 완성할 마지막 키가 될 것이다.


1) 류수연 「웹소설, 댓글, 그리고 독서」, 『비교한국학』 30.3 (2022) 71~72면 참조.

2) 인터넷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과 관련해서는 나무위키의 정보를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3) 박혜련 「웹사이트상의 e-book에 관한 연구」,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연구』 14.1 (2003) 185면 참조.

4) 같은 글 187면 참조.

5) 류수연 「웹 2.0 시대와 웹소설: 웹 로맨스 서사를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25.4 (2019) 20면 참조.

6)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웹소설 분야 산업 현황 실태조사」(2023년 9월 6일) 39~40면 참조.

7) 김준현 「문학 매체로서의 ‘웹’의 대두와 소설가/작가」, 『현대소설연구』 93 (2024) 18면 참조.

8) 같은 글 26면.

9) 같은 글 같은 면.

10) 김미숙 「웹소설 작가의 노동 특성과 노동 경험에 대한 사례연구: 웹소설 작가 모임 <글로별>을 중심으로」, 『연기예술연구』 36 (2024) 190면 참조.

11) 이융희 「웹소설 시장 변화에 따른 웹소설 창작자 의식 변화 연구」, 『한국문학연구』 70 (2022) 88면.

12) 김예니 「웹소설의 미감과 장르교섭 양상」, 『한국문예비평연구』 64 (2019) 51면.

13) 이희영·문정현 「웹소설 산업화에 대응하는 웹소설 교육과 학문」, 『어문연구』 121 (2024) 530면 참조.

14) 류수연 「웹소설, 댓글, 그리고 독서」, 『비교한국학』 30.3 (2022) 85~8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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