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Hamlet)은 과거의 망령이 현재를 잠식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비극적 미래가 끊임없이 지연되어 “시대의 관절이 모두 어긋나 뒤틀려버린”(The time is out of joint, 1.5.189)1) 세계를 그린다. 어긋나고 뒤틀린 시대 또는 뒤틀린 시간은 작품 속 인물들이 시기적절하게 행동하기를 주저하거나 섣부르게 행동해서 실수를 저지르거나 하는 등의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일어나는 비극적 결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2019년 미국의 독립 게임 개발사 골든 글리치 스튜디오(Golden Glitch Studios)가 출시한 「엘시노어」(Elsinore)는 원작 『햄릿』의 ‘뒤틀린’ 시간을 무한히 반복되는 악몽이라는 설정의 타임루프로 새롭게 구성하여 게임 속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유일한 PC(Playable Character)이자 아바타 오필리어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비극을 경험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2)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뒤틀린 시간 속에 갇힌 햄릿의 결정과 선택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엘시노어」는 반복되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오필리어의 입장이 된 플레이어가 그 비극적 결말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등장인물, 시대상을 세계관으로 사용하는 ‘셰익스피어 게임’은 1984년 크라우처(Mel Croucher)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나 1997년 EMME 인터랙티브(EMME Interactive)에서 제작한 「햄릿: 살인 미스터리」(Hamlet: A Murder Mystery)와 같은 클래식한 게임에서부터 2020년 게임 베이커스(The Game Bakers)에서 제작한 「헤이븐」(Haven)에 이르기까지 짧다면 짧은 비디오게임의 역사 안에서 꾸준히 다양하게 개발·공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게임들에 대한 비평적 관심 또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게임 텍스트를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셰익스피어 각색의 일종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는 한편, 비디오게임과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문화의 유사점을 탐구하거나 게임의 미디어적 특성과 기술이 고전작품의 경험과 이해를 변형시키는 방식을 탐구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3) 많은 영문학 작품 중에서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게임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연극이론에 기반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디자인 이론을 설명한 로럴(Brenda Laurel)의 통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의 특징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4) 부시넬(Rebecca Bushnell)에 따르면,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게임’이 해당하는 내러티브 기반 게임은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되어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를 통해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극장 공연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극작가·감독·캐릭터·배우, 그리고 관객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주체로 볼 수 있다.5)
「엘시노어」는 유사한 포맷과 목적성을 가진 다양한 ‘셰익스피어 게임’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공개된 게임으로, 오필리어를 주인공으로 한 정보 수집 기반 시뮬레이션 게임(simulation game)이라는 점에서 차별성과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세계의 특정 시스템이나 내러티브 속 세계관을 모델링하여 플레이어에게 그 환경 내에서의 자유도와 행위성(agency)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행위성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정교하게 설계된 제약 내에서만 작동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부시넬은 이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성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비극적 필연성”(tragic necessity)과 상통하며 게임을 통한 서사의 경험이 원작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6) 또 울드(Julia Wold)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 개념을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신중한 선택”으로 정의하여 「엘시노어」가 셰익스피어 원작과 근대 초기 유럽문화에서의 선택이 가지는 중요성을 게임 미디어의 특성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주장한다.7) 「엘시노어」에 대한 비평은 공통적으로 게임이 단순히 원작을 선택형 모험 게임으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원작의 서사적·철학적 복잡성을 게임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게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 글은 이와 같은 기존의 비평과 궤를 같이하여 게임 「엘시노어」가 어떻게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비극적 서사를 재구성하고 플레이어가 오필리어의 행위성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게임의 구성적 측면을 분석하고 이와 같은 경험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게임이 ‘뒤틀린’ 시간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타임루프 설정과 이로 인해 이어지는 리와인드(rewind) 플레이, 확장된 경로(traversal)와 같은 메커니즘에 집중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몇 편의 논문이 대표적으로 게임이 전달하는 의미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엘시노어」와 같은 게임의 인기와 긍정적인 유저들의 평가에 비해 개별 게임에 대한 학술적 비평은 여전히 적은 편이다.8) 그나마 게임 속 오필리어의 주도적 역할과 다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설정과 장치를 게임에서의 여성주의적 성취이자 게임 디자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분석하는 글을 제외하면 개별 게임의 구성적 측면과 그 의미를 분석하는 논문은 많지 않다.9)
이와 같은 개별 게임에 대한 학술적 분석과 논의의 부재는 국내 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게임 연구는 산업적·기술적 접근 위주로 발전해왔으며 2000년대 이후 한국 게임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경제적 가치와 산업 육성 전략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산학 협력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경향은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거의 동시에 존재해왔으며, 김겸섭이 지적하듯이, “게임은 국가 경제를 견인할 창조산업의 주축으로 평가되면서도 동시에 중독과 폭력의 병인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10)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을 문화적·미학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문학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고 할 수 있겠다.11) 특히 서양권에서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영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 대한 연구 또한 국내에서는 영화나 연극과 같은 다른 문화 텍스트나 각색에 대한 연구에 비해 적은 편이다.12) 이 글은 「엘시노어」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영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 대한 연구가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게임 연구의 학문적 지평 확장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정전 문학작품의 게임화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게임이 단순히 오락 매체가 아닌 문화적·미학적 가치를 지닌 텍스트로 인식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고, 게임과 같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통한 내러티브의 경험이 전통적 문학 연구에서 주변화되었던 인물이나 주제에 새롭게 주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한다.
2. 게임 연구의 역사와 쟁점들
「엘시노어」의 게임적 특성을 분석하기에 앞서, 본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게임 연구의 역사적 전개와 주요 쟁점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게임 연구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사학과 게임학의 대립, 절차주의와 플레이-중심주의의 갈등, 기계매체적 접근과 재현적 접근의 분기 등 다양한 이론적 논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이러한 학문적 패러다임의 변천 과정에 대한 이해는 특히 「엘시노어」가 문학 정전과 게임 매체의 상호작용적 특성을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서사적 실험을 구현하는지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주로 출판물이나 활자로 된 텍스트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전통적이고 가장 좁은 의미의 문학 연구가 영상이나 시각적 자료와 사회적 현상 등을 분석하는 문화 연구와의 접점을 통해 저변을 넓혀갔듯이 게임 연구도 짧은 역사 속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게임 텍스트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며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학술지 『미국문학』(American Literature) 2022년 3월 미국문화에서 비디오게임의 의미와 역할을 고찰하는 특집호 「미국 게임 연구」(American Game Studies)의 편집자 자고다(Patrick Jagoda)와 말코프스키(Jennifer Malkowski)는 서문에서 게임과 게임 연구를 바라보는 두 관점 사이의 ‘대립’(versus)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게임 연구의 발전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한다.13) 물론 프라스카(Gonzalo Frasca)는 이와 같은 관점의 대립이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과장되어왔고 그 결과 서로의 입장에 대한 거듭된 오해를 낳았다는 지점을 지적하기도 했다.14) 그럼에도 두 관점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게임 연구의 범주화가 게임이라는 예술과 산업 그리고 서사와 기술 사이에서 생겨난 장르에 대한 연구의 지형도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15)
비디오게임의 탄생과 관련된 산업의 발전을 따라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임 연구는 게임을 문학과 같은 기존 서사의 연장선상에서 볼 것인지(내러톨로지narratology) 또는 기존 서사와는 구분되는 완전히 독립적인 새로운 형식으로 볼 것인지(루돌로지ludology)로 크게 입장을 구분할 수 있다.16) 로럴과 머리(Janet H. Murray)로 대표되는 내러톨로지스트들은 게임을 상호작용적 스토리텔링 매체로 보고 이와 같은 게임의 이야기가 기존 서사 형식의 확장이자 변형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들은 “사이버드라마”(cyberdrama)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interactive storytelling)과 같은 개념을 통해 게임의 특징적인 서사적 요소·스토리텔링·비선형성(nonlinearity)에 초점을 맞춘다.17) 반면 프라스카, 에스켈리넨(Markku Eskelinen), 율(Jesper Juul)로 대표되는 루돌로지스트들은 게임이 본질적으로 규칙 기반의 놀이 시스템이며, 서사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형식이라고 주장한다.18) 이들은 게임 규칙·메카닉스·시뮬레이션으로서의 게임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기존에 내러티브·캐릭터·텍스트 등을 중심으로 내러톨로지에 기반한 게임 연구를 “이론적 제국주의”로 비판하며 기존의 학제가 게임을 “식민지화”하려고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19)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 사이의 대립은 2000년대 이후 게임이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칙이나 알고리즘과 같은 구조적 메커니즘 등에 집중하는 절차주의(proceduralism) 또는 게임 그 자체의 디자인이나 구성적 의미보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반절차주의(anti-proceduralism) 또는 플레이-중심주의(play-centrism)로 다시 한번 논의의 방향이 변화한다. 대표적 내러톨로지스트로 평가받는 머리에 의해 소개된 “절차”라는 개념은 디지털 매체가 본질적으로 코드와 규칙들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개념은 게임의 수사적 표현을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한다. 또 다른 절차주의자 보고스트(Ian Bogost)는 머리의 “절차성” 개념을 발전시켜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20) 보고스트에 따르면, 게임이란 작가(게임 디자이너)의 수사적 표현을 문자 텍스트가 아닌 절차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매체로서 플레이어가 현실이나 상상된 시스템의 복잡한 모델을 게임 내 규칙을 통해 이해하게 만든다. 이후 절차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게임의 규칙과 과정에 대한 중요성은 시카트(Miguel Sicart)와 같은 플레이-중심주의자들에게 도전을 받는다.21) 플레이-중심주의에서 게임의 의미는 단순히 게임의 규칙이나 절차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것으로, 이들은 “절차”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사용자들의 “플레이” 그 자체의 자율적 행위의 의미를 중요시한다. 규칙은 게임의 기본적인 틀을 잡아주지만 결코 플레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가 게임 연구의 역사 초반에 게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대립을 드러낸다면, 이후 절차주의와 플레이-중심주의는 게임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미학적·철학적 접근방법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관점의 대립은 게임과 관련된 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2010년대 이후 활발해진 세 번째 대립은 게임을 컴퓨터라는 기계 매체의 공학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보는 컴퓨팅 접근방법(computational approach)과 인종이나 젠더, 계급과 같은 정체성의 재현을 중심으로 보는 재현적 접근방법(representational approach)으로 나눌 수 있다. 워드립프루인(Noah Wardrip-Fruin)은 데이터나 프로세스 등을 통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계산 과정의 매체로서 기계를 이해해야 하고, 이와 같은 기계 작동의 원리가 게임 연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22) 이와는 반대로, 재현적 접근방법에서는 단순히 게임의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정체성 재현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게임 매체와 산업을 여러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 투쟁의 장으로 보며 게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한다.23) 『미국문학』 특별호의 편집자 자고다와 말코프스키는 게임 연구에서 이와 같이 상반된 접근방법들이 서로 대립하며 각자의 관점만을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갈등을 빚어오기보다는 서로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발전하며 게임에의 융합적 접근방법을 가능하게 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24) 예를 들어 게임의 정체성 재현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어떻게 특정 정체성이 기계 매체를 통해 구현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과 배움을 거듭하면서 게임 연구가 확장·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 글은 게임 「엘시노어」를 분석하기 위해 보고스트의 절차적 수사학과 머리의 만화경식 플레이(kaleidoscopic play)라는 두 이론을 병행하여 적용한다. 반복적 시간 구조와 분기 서사를 가진 이 게임의 설계 논리와 플레이어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게임 시스템이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고,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어떻게 서사를 구성하는지를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보고스트의 절차적 수사학은 게임의 규칙과 규칙 기반 상호작용이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를 분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전통적 수사학이 텍스트나 연설을 통해 청중을 설득했다면, 절차적 수사학은 플레이어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체득하게 한다. 게임의 규칙은 특정한 규범이나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목표 달성 또는 실패의 과정 자체가 설득의 의미를 갖는다. 머리의 만화경식 플레이 이론은 디지털 서사가 고정된 플롯이 아니라 조각화된 이야기 단위의 조합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25) 플레이어는 이 조각들을 능동적으로 탐색하고 조합하면서 의미를 구성하는데, 이 과정은 마치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야기 경험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 이론은 분기 구조와 비선형 서사를 갖는 게임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이 두 이론을 통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게임에 내재된 메시지와 플레이어의 경험을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다. 「엘시노어」는 플레이어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딜레마 구조를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불가피하다”는 명제를 체험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결국 완벽한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며,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감당 가능한 비극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또한 이 게임은 비선형적 분기 서사 구조를 통해 햄릿 이야기의 다양한 변주를 탐색할 수 있게 한다. 플레이어는 여러 타임라인을 넘나들며 조각난 정보를 수집하고, 반복 플레이를 통해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점차 구성해간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인 타임루프 구조를 중심으로 「엘시노어」의 서사적 및 시스템적 특성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3. 타임루프와 반복을 통한 학습
2019년 출시된 게임 「엘시노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기반으로 하되, 햄릿이 아닌 오필리어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구성된 작품이다. 게임의 이야기는 오필리어가 며칠 뒤 엘시노어 성에서 일어날 파국적인 사건들을 예견하는 악몽을 꾸며 시작된다. 이후 오필리어는 타임루프에 갇혀 나흘간의 시간을 반복해서 살게 되며, 플레이어는 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오필리어를 조작해 햄릿·클로디어스·거투르드·레어티스 등 성 안의 주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몰래 정보를 수집하고 사건에 개입하면서 비극적 결말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한 인물을 구하면 다른 인물이 죽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하는 식으로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모든 비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레이어는 이 루프를 거듭하며 점점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이야기를 다양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선택지를 발견하게 된다.
「엘시노어」는 타임루프를 통한 시간적 반복성을 핵심 메커니즘으로 채택한 상호작용적 서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셰익스피어 비극 서사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한다. 게임의 개발팀 디렉터이자 작가인 치로니스(Kate Chironis)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게임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타임루프 메커니즘을 통해 원작의 비극적 서사 구조에 개입하여 고전 텍스트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26) 플레이어는 원작에서 가장 주변화된 여성 인물 중 하나인 오필리어가 되어 4일간의 타임루프 속에서 원작의 결말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캐릭터들과 대화하며,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조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제작사가 밝힌 「엘시노어」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다이내믹 스토리 엔진”(Dynamic Story Engine)은 캐릭터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욕망을 기반으로 내러티브를 모델링하고, 이에 따라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성하는 장치다. 이 엔진은 플레이어의 선택을 즉각적으로 반영하여, 게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myriad scenarios)가 분기 형태로 실현되도록 한다.
「엘시노어」의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전통적인 게임산업에서 소외되었던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게임은 양인종 양성애자 여성으로 재해석된 오필리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주류 게임시장이 주로 백인남성 이성애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전통적 마케팅 방식에 도전한다.27) 이와 같은 게임의 목적은 「엘시노어」가 미리 대규모 투자를 받아 제작되고 그에 걸맞은 이윤을 내야 하는 상업 게임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개인 펀딩을 통해 제작된 게임이라는 제작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제작사 골든 글리치 스튜디오는 12명의 개발자로 구성된 소규모 프로젝트성 팀으로, 프로젝트 리더 치로니스와 메인 디자이너 팰론(Connor Fallon)은 카네기멜론대학교의 게임 개발 동아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자금을 모았다. 이들은 각기 다른 회사나 프로젝트에서 활동 중이던 지인들을 모아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28) 치로니스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 영문학 수업 시간에 『햄릿』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언급되지 않는 오필리어의 죽음이 타살이었을 가능성, 오필리어가 임신한 상태였을 가능성 등을 상상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게임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에 오필리어와 레어티스의 어머니가 남부 에스파냐에서 덴마크로 이주한 유색인종이라는 설정을 더하게 되었다고 한다.29) 왜 게임 속 오필리어가 유색인종일 필요가 있는가, 오필리어가 유색인종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는 해석이 아니냐는 지적에 제작팀은 “(유색인종이) 아닐 이유도 없지 않은가?”(Why shouldn’t she be?)라는 짧은 답변을 덧붙일 뿐이다. 실제로 제작사는 공식적으로 「엘시노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게임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사용자의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분기의 서사를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서사 기반 게임의 특성은 『햄릿』이라는 원작 IP (Intellectual Property)를 사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구현된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의 딜레마가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는 『햄릿』은 상호작용을 통한 행위성의 수행에 의해 완성되어야 하는 게임 장르에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설정을 제공한다. 응우옌(C. T. Nguyen)에 따르면, “회화가 시각을, 음악이 소리를, 이야기가 서사를 기록하게 해준다면, 게임은 행위성을 기록”하고 경험을 기입하는 매체이자 예술이며 게임은 플레이어가 “혼자서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여러 행위성 형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30) 독자가 희곡작품을 읽거나 공연을 관람하면서 ‘내가 햄릿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상상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 감상 활동은 게임을 통해 그 선택의 결과를 독자가 직접 체험하는 활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선왕인 형을 독살한 죄를 신 앞에 뉘우치며 기도하는 클로디우스를 뒤에서 찔러 죽여 ‘완벽한’ 타이밍에 복수를 완성할 수도 있고, 거투루드의 침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우스를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가능성들은 플레이어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의 연쇄성을 끊어내고 시체 더미로 끝맺는 원작의 마지막 장면을 사회적 정의가 수복된 평화로운 장면으로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종류의 다시 쓰기나 게임을 통한 『햄릿』 경험하기는 원작에서 재현하고 있는 햄릿의 행위성을 플레이어가 단순히 넘겨받아 대신 선택을 해본다는 것 외에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는 한계를 가진다. 플레이어가 햄릿의 행위성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복수를 위한 행동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와 같이 원작에서는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고 단순한 엔딩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선택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엘시노어」는 어긋난 시간을 바로잡을 햄릿의 운명이자 퀘스트를 『햄릿』에서 행위성이 가장 낮은 인물 중 하나인 오필리어에게 부여하여 게임을 통한 선택의 의미를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 타임루프 메커니즘을 통해 원작의 세계관 속에서 대안적 서사의 가능성과 복잡한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31)
사용자는 오필리어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로서 일정한 시간 동안 동일한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타임루프의 특성이 구현된다. 오필리어는 루프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엘시노어 성 내부 인물들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 게임의 중심 설정은 오필리어가 무한히 반복되는 악몽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며, 이는 『햄릿』에서 그녀의 죽음을 익사 또는 광기로 인한 비극으로 처리한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게임에서는 “똑딱거리는 시계”(ticking clock)라 불리는 검은 후드를 쓴 미지의 존재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으로 오필리어의 죽음을 재구성하고, 이 사건이 타임루프의 트리거 역할을 한다. 원작에서 오필리어가 죽은 이후 발생하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은 게임 내에서는 오필리어가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되며, 플레이어의 주된 과업은 이 비극적 미래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게임의 각 루프는 엘시노어 성 내부의 정원에서 시작하며, 이는 『햄릿』을 변주한 서사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플레이어는 오필리어를 조작하여 성 내부를 탐색하고, 다양한 NPC(Non Playable Characters)들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상호작용은 대화·미행·관찰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게임은 전면적인 자유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필리어는 자신이 직접 목격했거나 타인에게서 얻은 정보에 기반해서만 새로운 대화를 시도할 수 있으며, 이는 루프를 거치며 축적되는 정보가 게임 플레이의 중심 동력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플레이어가 수집한 정보는 자동으로 “일지”(Journal)에 기록되며, 이 일지는 특정 인물·사건·시간·장소와 관련된 단서들을 정리하고 추적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일지에 저장된 정보를 분석하여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그에 따른 행동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서사를 재구성한다.
타임루프는 단순히 이전 루프에서의 실패를 되돌리거나 대안적 미래를 실험하는 서사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이 메커니즘은 플레이어가 각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경험함으로써 반복을 통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필리어는 클로디어스가 햄릿 선왕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악몽 속 비전으로 인식하며, 동시에 햄릿으로부터 이 정보를 확인한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복수를 주저하는 햄릿을 대신하여 클로디어스를 직접 대면하고 살해를 추궁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직접적인 개입은 오히려 클로디어스가 오필리어를 살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루프가 리셋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반복은 클로디어스가 증거 없는 비난이나 도덕적 설득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물임을 플레이어가 학습하게 만드는 중요한 서사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 결과, 이후 루프에서 플레이어는 클로디어스를 직접 설득하기보다는 거투르드와 같은 주변 인물을 활용하거나, 설득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 수집 전략을 모색한다. 이처럼 이전 루프에서의 경험과 정보는 새로운 루프로 이월되며 누적되고, 플레이어는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향후의 상호작용과 선택을 결정한다. 따라서 타임루프는 반복적 구조 속에서 학습과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4. 실패의 수사와 리와인드 플레이
게임 「엘시노어」에서 타임루프는 단순히 반복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선택과 전략 수립을 위한 필수적인 학습 기제로 작동한다. 플레이어는 루프를 반복하면서 등장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이후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나 퀘스트 수행, 사건 해결에 활용된다. 또한 ‘타임라인’ 기능은 특정 시간대에 인물들이 위치하는 공간을 기록하여 플레이어가 다른 인물들을 추적함으로써 좀 더 정교한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정보 기반 플레이는 단순한 선택 옵션을 넘어서 게임 진행의 필수 조건이 된다. 즉 플레이어가 이미 서사의 전개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 내에서 관련 정보가 수집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당 선택지를 활성화할 수 없다는 제약이 적용된다. 이 제약은 선택의 자율성과 정보의 습득 사이에서 긴장을 발생시키며, 반복되는 루프 내에서의 반복된 실패와 관찰을 통해 서사를 전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죽음을 막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려고 하더라도 직접 행동할 수 없고, 먼저 이전 루프에서 해당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직접 경험해야만 한다. 그 후에 햄릿이 거투르드의 침실 커튼 뒤에 숨어 있으려 한다는 정보를 도청 또는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확보해야 하고, 거투르드의 침실을 경비가 지키고 있다는 제약 조건을 파악한 뒤 그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낸 이후에야 플레이어는 실질적인 사건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정보 수집이 단순한 메커니즘이나 배경 설정을 넘어서 게임 내 상호작용의 전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에 거의 개입할 수 없었던 『햄릿』의 오필리어는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우선순위를 정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고, 한 가지 비극을 막기 위해 다른 여러 비극적 사건을 방치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인과관계를 유추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오필리어 자신을 제외한 다른 NPC들의 행동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쉽사리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엘시노어」 제작팀의 엔지니어 버틀러(Eric Butler)는 제작자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엘시노어」의 게임 플레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엘시노어」를 통해 구현하고 싶었던 것은 일반적인 선택형 모험 게임(choose-your-own-adventure)이 아니라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결과적으로 「엘시노어」는 두 종류의 게임을 합쳐놓은 형태가 되었지요. 우리 게임은 단순히 분기형 서사 구조도 아니고, 완전한 자유도를 가진 샌드박스형 시뮬레이션도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통해 특정 변수에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 않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결말이 변화합니다.32)
선택형 모험 게임과 시뮬레이션 게임을 합쳐놓은 형태로 제작된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이 특정 변수에 의해 “어떤 사건은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을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점, 즉 그 규칙성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반복되는 목표 달성의 실패와 그로 인한 학습을 게임 플레이의 핵심으로 만든다. 플레이어는 인물들을 미행하거나 대화를 엿듣는 과정에서 행동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수집된 정보 중 어떤 것을 누구에게, 어떤 시점에 전달할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기대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플레이어의 선택은 직접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 성격, 동기 등 복합적인 요소에 영향을 끼치며, 이는 비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햄릿의 이상 행동에 대한 걱정을 왕실의 식사를 담당하는 나인에게 공유하는 선택은 즉각적인 사건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햄릿의 대중적 평판을 손상시키고 이후 거투르드가 아들을 꾸짖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켜 모자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결과는 단선적으로 예측될 수 없으며, 플레이어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희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자신만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선택의 윤리성과 그 선택의 전략적 효과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결정 구조에 직면한다.
이러한 게임 플레이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반복되는 루프를 통해 「엘시노어」의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세계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점차적으로 파악하며, 단순히 몇 차례의 플레이로는 게임을 완전히 해석하거나 종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구조는 보고스트가 제시한 “절차적 수사학”의 개념,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 내 시스템이나 메시지를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실패의 수사학”(rhetoric of failure)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33) 보고스트에 따르면, 게임은 전통적인 언어 기반 매체와는 달리 시각적 정보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명시적이고 단선적인 의미 전달보다는 구조 전체를 체험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방식으로 수사적 효과를 발생시킨다.34) 일부 게임은 이러한 실패를 의도적으로 설계하여 플레이어가 특정 시스템의 한계나 모순을 직접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엘시노어」 역시 플레이어가 설정한 목표 달성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물 간의 관계, 사건의 인과적 연결, 그리고 서사의 구조를 점진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게임의 트레일러를 통해서 알 수 있듯 플레이어의 목표는 무한히 반복되는 4일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비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동시에 오필리어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다. “내 친구들과 가족들이 죽는가 살아남는가는 모두 다 내가 하는 선택에 달려 있어. 어떻게 하면 이 비극의 끝을 찾으면서도 내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지?”35) 플레이어는 비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루프를 반복하며 특정 사건을 막으려 시도하지만, 그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을 통해 비극적 결과의 불가피성을 체험한다. 다시 말해 게임의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서사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실패라는 반복된 체험을 통해 운명과 시스템을 향한 저항을 시도하고 그 한계를 인지한다. 또한 이러한 수사학은 개별적인 문장이나 선택지가 아닌 전체적인 서사 흐름 속에서 우회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인데, 「엘시노어」는 게임의 전체 구조와 타임루프를 통해 비극의 순환성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절차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36) 게임 속에서 절차적 수사학은 각각의 개별 선택보다는 누적된 경험과 지식의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작동한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한 루프에서 어떤 인물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할 경우 다른 인물이 위험에 처하게 만듦으로써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게임 규칙으로 체화한다. 예를 들어 오필리어가 햄릿 왕자와 클로디어스 왕이 햄릿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공유하면 햄릿은 계획보다 일찍 복수를 감행하여 클로디어스를 살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지만, 그 공백을 틈타 포틴브라스의 덴마크 침공이 현실화되어 나라에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또 플레이어가 오빠 레어티스와 같은 사실을 공유하면 레어티스는 덴마크에 남아 오필리어를 지키지만 그 과정에서 햄릿을 살해하게 된다. 또는 플레이어가 아버지 폴로니우스에게 햄릿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면 폴로니우스는 햄릿을 감시하지 않지만 왕실이 자신의 가족을 하찮게 여긴다는 좌절감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렇듯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딜레마 구조는 게임 전반에 짜여 있으며, 플레이어는 매 선택마다 실패를 반복하며 전략적·도덕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엘시노어」는 플레이어가 이러한 딜레마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극은 피할 수 없다”는 명제를 체험시키며 게임의 목적인 비극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여 결국 플레이어가 어떤 비극을 감수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햄릿을 살릴 것인지, 폴로니우스를 살릴 것인지, 국난을 막을 것인지 등의 문제와 명확한 해답을 찾아내기 힘든 난제(wicked problem) 앞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상의 해법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37) 이는 절차적 수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게임이 플레이어 자신에게 가치 판단의 책임을 지움으로써 메시지의 체화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게임의 규칙 시스템 안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할 때 비로소 그 시스템이 내포한 메시지를 내면화한다. 「엘시노어」에서 플레이어의 선택과 반복된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은 곧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희생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며, 이러한 반복된 딜레마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는 비극의 불가피성과 선택의 어려움이라는 주제를 직접 느낀다.37)
이처럼 구조적으로, 또 게임에 규칙적으로 내재된 실패의 반복은 필연적으로 리와인드 플레이를 유도한다. 리와인드는 플레이어가 서사의 특정 지점으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리플레이(replay)와는 명확히 구분된다.38) 리플레이가 초기화된 상태에서 전면적 재경험을 전제로 한다면, 리와인드는 이전 루프에서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적 선택을 정교하게 만들어나가는 서사적 확장의 장치로 작동한다. 「엘시노어」에서는 오필리어가 사망하거나 루프의 시간이 다할 때마다 자동으로 목요일 아침으로 되돌아가며, 루프가 반복될수록 플레이어가 보유하는 정보는 누적된다. 그러나 정보의 축적은 오히려 선택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플레이어는 어떻게 정보를 전달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전략을 구상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단순히 비극을 재현하거나 특정 사건을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선택이 구성해나가는 고유한 확장된 경로(extended traversal)를 능동적으로 형성한다.39)
플레이어만의 고유한 확장된 경로는 「엘시노어」 게임의 구조가 운명적으로 다가올 결말을 지속적으로 유예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서사의 반복 탐색을 경험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과 연결될 수 있다. 미첼(Alex Mitchell)과 쿠웨이(Liting Kway)에 따르면, 「엘시노어」의 플레이어는 누군가의 죽음을 방지하거나 침략을 저지하는 등의 서사적 목표 달성을 위해 필수적으로 리와인드 플레이를 해야 하지만, 게임이 동시에 서사적·시스템적 종결(closure)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40) 게임은 플레이어가 결말 자체를 회피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를 열어두고 계속 탐색과 반복을 하도록 유도하며 의도적으로 종결을 회피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운명의 책”(Book of Fates)을 얻어 그 안에 적힌 11개의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이 왔을 때, 마치 플레이어가 결말을 선택하여 게임을 선택대로 끝낼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결말의 선택 전후로 게임은 거듭 경고를 통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플레이어가 “이 결말을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메시지에 “최종” 선택을 한 후에도 시스템상 플레이어는 여전히 선택을 번복하여 다시 새로운 선택을 시작할 수 있다. 또 선택한 결말이 보여진 이후에 활성화된 “엘시노어로 돌아가기”(Return to Elsinore) 버튼을 통해 이미 끝났어야 할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두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운명의 책”이 제시하는 운명의 결말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책 자체를 불태우는 선택을 하는 경우에도 게임은 완전히 끝나지 않고 타임루프 안에 오필리어를 영원히 가두는 방식으로 종결을 회피한다. 결국 게임 내 시스템의 어떤 부분도 게임의 종료를 강요하지 않고 플레이어는 결국 게임의 진짜 끝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로 게임을 계속하거나 스스로 게임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서사적·시스템적 종결의 부재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 반복하고 탐색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읽는 독자나 관객이 작품 속 단선적 플롯을 통해 햄릿의 복수와 전면적 죽음이라는 종결성(finality)으로 수렴하는 구조의 비극을 경험하는 것과 대조된다. 원작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인물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반복하고, 이야기는 명백한 파국으로 귀결된다.41) 그러나 「엘시노어」에서는 같은 시간 구조와 유사한 캐릭터 및 공간을 기반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오필리어의 선택과 루프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서사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확장·변주된다. 예를 들어 어떤 루프에서 브릿(Brit)이 스파이임을 밝혀내어 그 정보를 적절한 시간에 다른 인물에게 전달하여 그녀를 체포하게 만들 수 있지만, 다음 루프에서 플레이어가 브릿의 정체를 알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브릿은 클로디어스 또는 외부세력과 관련된 정보를 은밀히 수집하거나 조작하여 다른 인물의 행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로 인해 특정 루프에서 엘시노어 성 내부의 정치적 긴장이 강화되거나 햄릿과의 대립구도가 더 급격해질 수 있다. 또는 브릿의 정체를 폭로하는 타이밍을 조절하거나 아예 폭로하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브릿과의 협력 기회를 만들어 국제 갈등 상황을 막을 수도 있다. 이처럼 플레이어는 여러 가능한 세계선을 탐험하고, 게임은 이런 반복 탐험 그 자체를 보상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여러 면모를 볼 수 있도록 유도하여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서사의 깊이를 더
한다.41)
이처럼 플레이어의 반복적 탐색과 선택의 조합에 따라 서사 전체의 전개가 달라지는 양상은 머리가 말한 “만화경식 플레이”로 설명될 수 있다.42) 머리에 따르면, 만화경식 플레이는 같은 이야기 조각들(narrative units)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매번 새로운 패턴과 조합을 만들어내는 서사 방식이며, 디지털 서사가 더 이상 고정된 결말을 지닌 단일 서사가 아니라 플레이어에 의해 끝없이 조합 가능한 패턴의 체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폴로니우스의 과거 이야기나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의 관계 등 『햄릿』에서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엘시노어」에서는 반복된 루프를 통해 부각되고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 「엘시노어」 세계관의 전모를 이해하게 된다. 즉 첫 루프에서는 이해되지 않았던 캐릭터의 행위도 다른 루프에서 그 인물의 과거 사정이나 인물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알고 난 후에는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렇게 조각난 정보를 반복을 통해 종합하는 과정은 플레이어들에게 서사적 탐색의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이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단순한 텍스트의 소비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공동 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만화경으로 볼 수 있는 조각의 패턴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도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요소들을 통해 흥미로워지듯이, 「엘시노어」에는 매 루프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사건이나 대사들이 제시되고, 이와 같은 미묘한 변화는 플레이어가 루프를 반복하면서 어떤 부분들이 달라졌는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플레이어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that is the question, 3.1.55) 독백을 여러 번 반복된 루프에서 엿들으면 오필리어는 “이걸 듣는 고통을 또 겪느니 진짜로 수녀가 되는 편이 낫겠어”라고 되뇌이게 된다. 이와 같은 반복 플레이를 보상하는 세부 연출은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분기를 겪어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며, 플레이어가 흥미로운 변주 지점들을 경험하며 반복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갖는다.
「엘시노어」는 타임루프와 리와인드 플레이라는 게임 시스템적 구성과 플레이 경험을 통해 보고스트의 절차적 수사학과 머리의 만화경식 플레이 개념을 충실히 구현하는 동시에, 이러한 개념들을 실험적으로 체화하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 게임이 제시하는 도전적인 질문들―『햄릿』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을 막을 수 있는가? 어떤 비극을 선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스스로 답하는 선택을 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이야기 조각을 모으듯 게임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러 타임라인을 탐험하며, 능동적으로 서사를 체험하고 즐기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경험을 한다. 결론적으로 「엘시노어」는 게임에서 서사의 종결이나 과업의 완수가 아닌 반복 그 자체가 핵심적 체험 구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게임과 같은 인터랙티브 서사에서 ‘읽기’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재정의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이야기의 공동 설계자이자 실험자가 되어 서사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축적해나가는 과정을 경험
한다.
5. 나가며
게임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게임이 문자 텍스트보다는 매체적 접근성이 낮고 영상 텍스트보다는 사용자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석을 하기 위해 텍스트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은 독자를 대상으로 「엘시노어」가 어떤 게임인가를 설명하는 것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엘시노어」가 설정한 세계관과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과업을 중심으로 게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를 설명해야 하는 부분에 다다르면 수많은 이야기의 분기들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플레이어로서 개인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글을 쓰는 내가 플레이어로 경험한 서사에 한정된 이야기를 위주로, 다른 플레이어의 경험을 참고로 하여 글을 쓰게 된다.
그래서 게임에서의 ‘읽기’를 이야기 조각들이 만화경 안에서 매번 새롭게 조합되는 패턴의 체계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에서의 읽기를 분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단선적인 서사나 서사적 종결이 없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수많은 분기의 모음집을 가지고 특정 게임 텍스트가 어떤 주제의식을 드러낸다고 분석할 수도, 또 어떤 문제를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저자성이나 작품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명확한 작품들을 분석의 텍스트로 주로 다뤄왔던 연구자들에게는 게임을 가지고 어떤 비평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게임 개발과 매체로서 발전해온 게임의 역사가 수십 년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적 중요성에 비해 게임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이 국내외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낯설음이 바로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연구를 더욱 활발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의 일상과 교육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서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은 문학을 포함한 서사를 더 이상 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수용자의 선택과 개입에 따라 변형되고 재조합되는 과정중심적 인터페이스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단선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문해력 개념은 점차 디지털 복합문해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학습자는 서사를 조작하고 창조하는 능동적 참여자가 되길 원한다. 따라서 게임과 같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변화하는 서사 환경을 이해하고, 오늘날의 문화적·교육적 실천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핵심 연구 영역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1)* 본 연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원학술연구비의 지원을 받았음.
丁柔美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 「“Write me a character!”: Jessica Swale의 Nell Gwynn 속 여배우를 통한 역사 다시 쓰기」(2024)가 있다.
『햄릿』 텍스트는 두 번째 사절판(Quarto)에 이절판(Folio)의 내용을 통합해서 도슨(Anthony B. Dawson)이 편집한 노튼(Norton) 판을 사용했다. William Shakespeare, The Norton Shakespeare, ed. Stephen Greenblatt (New York: W. W. Norton, 2016). 앞으로 이 책의 인용은 괄호 안에 막, 장, 행으로 표기한다.
2) Elsinore. macOS Version, Golden Glitch Studios, 2019. 필자는 MacOS 기반의 게임을 플레이했으나 현재 이 게임은 윈도우즈, 맥, 리눅스 운영체계를 가진 PC에서 설치 및 플레이가 가능하다. 「엘시노어」는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이용하여 스크린에 나타나는 커서를 움직이고 스크린에 나타난 물체를 클릭함으로써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포인트-앤-클릭)로 가동되는 어드벤처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유일한 아바타는 오필리어다.
3) Geoffrey Way, “Shakespeare Videogames, Adaptation/Appropriation, and Collaborative Reception,” Games and Theatre in Shakespeare’s England, ed. Tom Bishop et al. (Amsterdam UP, 2021) 256면; Gina Bloom, “Videogame Shakespeare: Enskilling Audiences through Theatre-Making Games,” Shakspeare Studies 43 (2015) 114~27면.
4) Brenda Laurel, Computers as Theatre, 2nd edition (Upper Saddle River, NJ: Addison-Wesley, 2014).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영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는 콘래드(Joseph Conrad)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을 변용한 「스펙 옵스: 더 라인」(Spec Ops: The Line)이나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을 변용한 퍼즐게임 「더 탈로스 원칙」(The Talos Principle)이 있다.
5) Rebecca Bushnell, “Videogames and Hamlet: Experiencing Tragic Choice and Consequences,” Games and Theatre in Shakespeare’s England, ed. Tom Bishop et al. (Amsterdam: Amsterdam UP, 2021) 232면.
6) 같은 글 230면.
7) Julia Wold, “‘This is the fate I choose’: Elsinore and Thoughtful Choice in Shakespeare Games,” Adaptation 17.2 (2024).
8) 게임을 판매하고 있는 플랫폼인 스팀(Steam)의 개별 게임 관련 수치를 기록한 스팀DB에 따르면 「엘시노어」의 리뷰는 상당수가 “매우 긍정적”으로, 331개의 리뷰 중 96.1%가 긍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게임 판매로 인한 공식 수익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Games-stats.com에 기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했을 때 약 5만 7천 달러의 수익을 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게임이 출시된 이후 2020년까지 특히 내러티브와 게임 디자인 부문에서 여러 게임 관련상 후보에 올랐다. https://steamdb.info/app/512890/.
9) Ladan Niayesh and Louise Roszak, “Elsinore(2019) Video Game: An Interactive Experience in Reforming Gender Roles,” Actes des congrès de la Société française Shakespear 41 (2023). https://doi.org/10.4000/shakespeare.8209.
10) 김겸섭 「디지털게임 텍스트와 ‘게임하기’의 수행성」, 『문화와 융합』 43.9 (2021) 107면.
11) 물론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개별 게임을 인문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을 참고. 이정엽 「「에디스 핀치의 유산」에 나타난 문자 텍스트의 표현성 연구」, 『글로벌문화콘텐츠』 52 (2022); 박은경 「오픈월드 게임 공간에 대한 기호학적 고찰: 「포켓못 스칼렛·바이올렛」을 중심으로」, 『한국게임학회』 23.4 (2023).
12) 영문학과 게임 사이의 접점에 대한 국내 연구는 주로 대학에서 영문학 작품을 수업에서 교육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문학 기반 보드게임과 게임용 스토리 창작 도구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 김은정·황수경 「문학에서 게임으로: 『캔터베리로 가는 길』을 통해 살펴본 문학기반 보드게임의 융합교육적 효용성 연구」, 『인문콘텐츠』 46 (2017); 신동일·김은정·한만수·황수경 「영문학서사 기반의 스토리 창작 지원도구 모형개발 연구」, 『인문콘텐츠』 36 (2015).
13) Patrick Jagoda and Jennifer Malkowski, “Introduction: American Game Studies,” American Game Studies 94.1 (2022).
14) Gonzalo Frasca, “Ludologists Love Stories, Too: Notes from a Debate that Never Took Place,” Digital Games Research Conference 2003, 4-6 November 2003, U of Utrecht, The Netherlands.
15) ‘대립’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게임 연구의 지형도를 그리고 기존 연구를 정리하는 국내 논문으로는 고민선 「비디오게임 연구의 지형도: 비판적 비디오게임 연구의 가능성을 위하여」, 『인문논총』 81.4 (2024) 참고.
16) 게임학이라고 종종 번역되기도 하는 루돌로지는 프라스카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서 게임이란 의미나 표현이기 이전에 행위이자 놀이(루두스 ludus)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 기반하고 있다. 프라스카는 게임을 다른 전통적 서사 양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파악할 경우 게임이 갖는 상호작용적 측면과 같은 고유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게임은 어떤 의미나 현상을 표상하는 서사적 텍스트가 아니라 그것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수행성이 게임 이해의 주요한 도구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17) Brenda Laurel, Computers as Theatre (Upper Saddle River, NJ: Addison-Wesley, 2014); Janet H. Murray,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 (New York: The Free Press, 1997).
18) Gonzalo Frasca, “Simulation versus Narrative: Introduction to Ludology,” The Video Game Theory Reader, ed. Mark J. P. Wolf and Bernard Perron (New York: Routledge, 2003); Markku Eskelinen, “Towards Computer Game Studes,”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and Pat Harrigan (Cambridge: MIT Press, 2004); Jesper Juul, “Games Telling Stories?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1 (2001). http://gamestudies.org/0101/juul-gts/.
19) Eskelinen, 앞의 글 36면. 게임 텍스트를 서사로 볼 것인가 놀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게임 연구를 기존의 문학이론과 영화이론 담론 아래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방법론적인 논쟁일 수도 있지만, 게임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사이에 둔 학제간의 정치적 투쟁으로 볼 수 있고 또 복잡한 문화적·정치적 이슈들을 수반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20)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 Games (Cambridge: The MIT Press, 2007).
21) Miguel Sicart, “Against Procedurality,” Game Studies 11.3 (2011).
22) Noah Wardrip-Fruin, Expressive Processing: Digital Fiction, Computer Games, and Software Studies (Cambridge: MIT Press, 2012).
23) 게임의 재현적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는 연구들은 Jagoda and Malkowski, 앞의 글 6면 참조.
24) 같은 글 같은 면.
25) Murray, 앞의 책 149면.
26) “Remaking Shakespeare: How Golden Glitch Made Elsinore,” itch.io (Aug. 9, 2019). https://itch.io/blog/93965/remaking-shakespeare-how-golden-glitch-made-elsinore. 2025년 1월 5일 접속.
27) 게임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증가하는 여성, 다양한 인종 및 민족 소비자층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산업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게임산업이 여전히 백인남성을 주요한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관련 경향으로는 Elizabeth Behm-Morawitz, “Examin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Gender in Video Game Advertising,” Journal of Marketing Communications 23.3 (2017) 220~39면 참조.
28) Kate Chironis. “Elsinore, a Time-looping Adventure Game.” Kickstarter (April 27, 2015).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235466673/elsinore-a-time-looping-adventure-game. 킥스타터 캠페인의 시작부터 이후 개발 일지는 골든 글리치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개발 블로그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Elsinore Developer Blog. https://goldenglitch.tumblr.com/.
29) Emily Rome, “Shakespeare’s Ophelia Gets Bold New Makeovers in a Film and a Video Game,” Los Angeles Times (July 6, 2019). https://www.latimes.com/entertainment/movies/la-et-ophelia-reconsidered-20190706-story.html. 2025년 1월 15일 접속.
30) C. 티 응우옌 지음, 이동휘 옮김 『게임: 행위성의 예술』(워크룸 프레스, 2022) 10면.
31) 플래허티(Jennifer Flaherty)는 2017년 출판된 해리슨(Matthew Harrison)과 러츠(Michael Lutz)의 논문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 PC가 주로 남성 캐릭터였으며 2014년 이후에야 오필리어, 줄리엣 등 여성 인물들을 주인공이자 PC로 한 게임들이 출시되었다고 지적한다. Jennifer Flaherty, “Shakespeare’s Gamer Girls: Playable Female Characters,” Borrowers and Lenders 13.3 (2022); Matthew Harrison and Michael Lutz, “South of Elsinore: Actions that a Man Might Play,” The Shakespeare User, ed. Valerie Fazel and Louise Geddes (Cham: Palgrave Macmillan, 2017).
32) Kate Chironis, “Shaking up Shakespeare’s Balance of Power in the Upcoming Game Elsinore,” interview by Carolyn Petit, Feminist Frequency (April 11, 2016). https://feministfrequency.com/2016/04/11/shaking-up-shakespeares-balance-of-power-in-the-upcoming-game-elsinore/.
33) Bogost, 앞의 글 84~88면. 보고스트의 설득적 게임방법론 해설 및 게임 연구와 문학 연구의 연계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이정엽 「이안 보고스트의 설득적 게임 방법론 연구」, 『대중서사연구』 23.3 (2017) 참고. 보고스트는 플래시 게임 「맥도널드 비디오 게임」을 예시로 들어 플레이어가 패스트푸드 회사인 맥도널드를 직접 경영하게 하여 윤리적인 경영 방식으로는 게임 내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스스로 깨닫고 비윤리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실패”를 통해서 패스트푸드 사업 전체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게끔 해주는 방식의 “실패의 수사학”을 설명한다.
34) 이정엽, 앞의 글 497면.
35) “Elsinore-Launch Trailer (July 22),” Youtube, uploaded by Golden Glitch Studios (May 27, 2019). https://youtu.be/vbWsmc1OhOg?si=6p5wvIMMB5ViK12R.
36) 이정엽, 앞의 글 498면.
37) 시카트(Miguel Sicart)에 따르면 게임에서 이와 같이 명확한 해답이나 그에 따른 보상이 없는 난제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게임에 내재된 시스템의 규칙과 메시지를 깨닫고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Miguel Sicart, Beyond Choices (Cambridge: MIT Press, 2013).
38) Erica Kleinman, et al., “From Immersion to Metagaming: Understanding Rewind Mechanics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ntertainment Computing (2019). https://doi.org/10.1016/j.entcom.2019.100322.
39) 게임 연구에서 ‘경로’(traversal)라는 용어는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를 이동하며 경험하는 여정을 의미하며, 이는 플레이어의 경험과 자기주도적 서사(emergent narrative)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40) Alex Mitchell and Liting Kway, “‘How Do I Restart This Thing?’ Repeat Experience and Resistance to Closure in Rewind Storygames,” Interactive Storytelling: ICIDS 2020, Lecture Notes in Computer Science, vol. 12497. https://doi.org/10.1007/978-3-030-62516-0_15.
41) 물론 셰익스피어 『햄릿』의 5막 2장에서 햄릿이 죽기 전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사후에 남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Things standing thus unknown, 5.2.379)을 세상에 알려달라 당부하는 부분이나 햄릿 사망 이후의 사건이 침묵과 모호성의 영역으로 귀결되는(the rest is silence, 5.2.395) 장면을 고려했을 때, 셰익스피어 원작의 세계관이 명확한 종결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원작에 내재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의 씨앗들이 「엘시노어」와 같은 게임이나 수많은 『햄릿』 기반 콘텐츠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42) Murray, 앞의 책 1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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