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구입한 e-book을 읽으며 이제 막 상상과 사유의 장이 열리려는 찰나, SNS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인상적인 문장을 사진 찍어 공유하고 도착한 댓글에 답하는 사이, 새로운 피드에는 관련 상품과 콘텐츠들이 나타난다. 문장은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읽기는 흐트러진다. 고요한 몰입은 사라지고 대신 분산된 자극과 기술의 개입이 그 자리를 채운다.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읽기는 인쇄된 텍스트뿐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사운드·영상·알고리즘으로 가공된 정보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행위가 되었고, 감각과 기계가 함께 작동하는 리터러시의 장 속에서 우리는 책이 아닌 콘텐츠를, 의미가 아닌 반응을 중심에 두고 읽고 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감각과 인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기술은 도구의 역할을 넘어 인간 자체를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읽고 쓰는 행위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문장을 이해하기보다 인증하고, 의미를 파악하기보다 해시태그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말과 문장의 소통이 키워드 중심으로 대체되면서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익숙한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된다. 언어 활동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위치 짓는 기반이지만 맥락 없이 분절된 문장,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표현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오독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인 소통방식으로 자리잡는다. 대화가 의견 조율보다는 이미 선별된 반향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면 시민으로서 요구되는 합리적 사고와 비판적 시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포용력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생
긴다.
글쓰기도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쩌면 앞으로 자세히 읽고 천천히 생각해서 글을 쓰는 대신 AI를 통해 가공된 문장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글을 ‘생성’하는 것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인간이 입력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언어를 조합하고 서사화하는 상호작용은 기술로 창작을 보조하는 것을 넘어 감각과 사고의 흐름 자체를 디지털 환경에 맞게 훈련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기에 인간과 기계는 점점 더 닮아갈 것이다. 인간의 언어 역시 인간 정신의 발현이 아닌 알고리즘의 기계적 산출값으로 기능하게 된다면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통되며 ‘비판’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읽게 될까?
이러한 질문 위에서 이번 호 ‘특집’은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서사와 읽기’를 주제로 네 편의 글을 모았다. 새로운 읽기와 쓰기 양식이 등장할 때마다 인문학적 가치의 저하에 대한 우려는 반복되어왔지만 수록된 글들이 포착하는 것은 기술 환경의 급변이 야기한 혼란이나 위기만은 아니다. 시에서 산문으로, 소설에서 영상으로, 영상에서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서 자세히/깊이 읽기라는 규범적 이상은 여러 차례 도전을 받아왔지만, 그와 동시에 늘 다른 예술 형식과 감상의 윤리가 함께 등장해왔다. 이번 ‘특집’에 실린 글들은 변화된 리터러시 환경 속에서 전통적 규범을 상대화하고 전혀 다른 감각과 속도, 주체와 접속하는 새로운 읽기와 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산만하고 파편적으로 수행되는 이 새로운 언어 행위들은 단지 전통을 훼손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인문학이 탐색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에 ‘특집’으로 실린 네 편의 글은 인간과 기술, 언어와 매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포스트디지털 환경 속에서 읽기와 서사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던지고 각각의 방식으로 응답을 모색한다.
먼저 조성경의 「‘읽기의 전환’: 디지털미디어, 감각적 경험,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문학연구」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읽기 문화를 이론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로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읽기의 방법과 대상을 재정의해온 비평의 흐름을 19세기 말 속독가 문화부터 20세기의 자세히 읽기, 독자반응이론, 정동이론, 그리고 21세기의 디지털 기반 원거리 읽기까지 폭넓게 개괄한다.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 우리의 읽기 현실에 기반한 새로운 담론(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시간성과 공간성, 신미학, 읽기에 대한 인지과학적 접근)을 짚으며 문학연구가 이 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이 글은 읽기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감각과 인식, 문화가 얽힌 복합적 실천으로 바라보며 문학연구의 미래적 방향성을 제안한다.
류수연의 글에서 다루는 웹소설은 장르소설의 디지털 버전이 아니라 ‘웹’이라는 매체와 결합하여 속도 중심의 확장성, 상호텍스트성, 유연한 향유 방식 등 고유한 물질성을 획득한 디지털 친화적인 장르다. 이 글은 스마트폰 기반의 수직 읽기, 실시간 댓글, 연재 시스템, 클리셰 중심의 서사를 특징으로 하는 웹소설이 독자의 읽기와 작가의 창작 방식을 동시에 변화시키며 읽기와 쓰기의 경계를 흐리는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특히 웹소설은 장르적 혼종성과 미디어 간 이동 가능성, OSMU 전략을 통해 플랫폼 시대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는 문학과 콘텐츠 산업의 경계 자체를 재구성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웹소설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읽기’와 서사의 가능성을 이끄는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보며 좀 더 적극적인 비평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솔지는 웹툰이 만화의 매체성에 영화적 시간성이 더해진 장르이자 독자가 감상 속도를 조절하며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OTT 콘텐츠와 유사한 상호작용성을 가진 장르라고 설명한다. 이 글에 따르면 댓글, 굿즈 소비 등 독자의 참여와 반응은 웹툰 콘텐츠 생산에 반영되며 터치스크린은 허구 세계와 수용자 사이의 경계를 더욱 좁힌다. 정기 연재 시스템 속에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세계관 기반의 판타지 장르가 성행하며 옴니버스 형식에 세계관을 결합한 변주와 반복이 주요한 서사 전략으로 작동한다. 이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다양한 인물의 삶을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 독자들의 욕망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웹툰의 서사 형식이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총체성의 감각을 매개한다고 보며 웹툰이 새로운 관계성을 모색하는 실험적 서사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정유미의 글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기반한 게임 「엘시노어」가 어떻게 플레이어의 경험을 설계하여 비극적 서사를 재구성하는지를 분석한다. 플레이어는 오필리어가 되어 타임루프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시도하지만 게임에서 비극은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반복과 실패를 거치며 감수할 비극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게임의 이러한 서사를 절차적 수사학(게임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메시지 체득)과 만화경식 플레이(계속 변주되는 이야기 패턴의 경험)를 통해 설명하는 이 글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포함한 포스트디지털 시대 문학 서사 연구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작기획’은 하나의 중요한 인문학적 화두를 3~4호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을 축적하는 꼭지다. 56호부터 ‘새로운 언어적 전회를 위하여: 언어, 재현, 다른 현실의 창조’를 주제로 두 번째 ‘연작기획’이 시작되었다. 이 기획은 언어가 자연·물질·우연성·기술 등과 함께 현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재현과 서사는 현실의 변화와 재구성에 개입하는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56호에 수록된 기획의 첫 논문들은 서사와 재현이 기존에 인정받지 못한 고통을 공동체의 윤리적 개입 대상으로 가시화하고 등록하는 작업의 의의와 위험성을 동시에 다뤘다. 57호에서는 소수자 생애 서사가 호명을 넘어선 자기발명을 통해 새로운 개별/집단 주체를 구성하는 기제와 그 구체적 사례들을 소개하는 글들을 소개했다. 이번 58호에서는 다른 기억, 발화 주체, 정서적이고 윤리적으로 그 발화에 응답할 청자를 구성하고 매개하며 연결하는 증언 서사의 가능성 및 그 가능성의 조건을 검토하는 송혜림의 글을 싣는다. 5·18 성폭력 증언의 계보를 검토하며 송혜림은 특히 억압을 뚫고 복원된 기억과 그 기억의 발화가 폭력적 역사의 외상을 치유하고 기억과 발화 주체 모두를 사회에 연결하는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증언에 공명하는 청취 공동체의 존재와 역할이 필수적임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수신자 없이 소실된 증언들과 청자 공동체의 공명을 통해 더 많은 억압된 기억들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증언의 사례를 비교하는 송혜림의 글은 후자의 성공 자체가 수신자 없이 상실된 숱한 증언의 무덤 위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은연중 암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시사적이다. 과거의 폭력적 기억과 작별하지 않는 긴 발화의 연쇄들이 결국 응답할 청자를 구성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인 59호에서 마무리되는 ‘연작기획’의 마지막 회에서는 비인간 존재의 재현이 갖는 새로운 관계와 윤리 형성의 가능성과 난제를 검토한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론과 쟁점’에서는 조주연의 글을 통해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둘러싼 기호학적 해석을 새롭게 검토한다. 이 논문은 피카소 입체주의에 대한 ‘기호학적 전환’, 즉 도상에서 상징으로의 단선적 이동이라는 고정된 해석 틀을 재고하고 회화 기호의 작용 방식을 좀 더 유동적이고 실험적인 ‘기호학적 모험’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피카소의 분석적 입체주의에서 ‘지표’를 통해 회화의 출발점을 외부 대상이 아닌 내부 매체 조건으로 이동시켰다면, 종합적 입체주의에서는 ‘상징’의 도입을 통해 의미 작용의 자율성을 실험하며 회화 기호의 도상·지표·상징을 확장해간다고 설명한다. 이런 기호의 확장은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회화가 세계를 직접 재현하지 않고도 성립할 수 있다는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는 점에서 이 글은 피카소가 추상 회화로 직접 이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체주의가 연역적 추상과 구성적 추상이라는 두 갈래의 길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이론적 토대였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김부성의 ‘시평’은 동덕여대 일부 단과대학의 남녀공학 전환 시도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을 중심으로 여자대학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여성 주체성과 집회의 정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핀다. 민주적 절차 없이 추진된 남녀공학 전환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집단적 대응은 대학 운영의 문제를 넘어 여성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김부성은 학부 토론수업 사례를 통해 여대생들이 여자대학을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여자대학의 역할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덕여대 사태와 탄핵정국 속에서 장기화된 집회의 접점을 포착하면서 주디스 버틀러의 “집회의 수행성” 논의를 통해 거리 집회의 의미를 해석한다. 결국 혐오에 맞서 연대하는 몸짓이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동향’은 의료인문학의 하위 분야인 서사의학을 다룬 김혜주의 글을 싣는다. 저자는 서사의학의 기원과 전개, 그리고 최근의 이론적 전환을 살펴보며 의학과 문학의 만남이 실천적이고 성찰적인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갈 수 있을지 탐색한다. 의료인문학은 인간적 의료를 구현하려는 의학의 요청 속에서 인문학이 호출되어온 역사를 보여주며 그 중심에서 서사의학은 환자를 임상적 과제가 아닌 공감과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환자의 내면성과 삶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사의학이 규범적인 개인 주체를 재생산하거나, 신자유주의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최근 서사의학은 서사의 불확실성과 비형식성에 주목하며 그 쓸모를 환자와의 소통을 넘어 의료 행위와 의학 지식의 문화적 구성 방식 자체를 성찰하고 더 나은 의료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결국 이 글은 문학에 대한 의학의 요청에 응답하는 일이 다시 문학의 역할을 재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학이 문학에 기여하는 방식이 된다고 주장하며 문학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서사의학의 쓸모를 이야기한다.
‘문화비평’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세계화 담론이 지닌 문제적 전제를 비판적으로 되묻고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문학의 자리를 다시 성찰하는 정은귀의 글을 싣는다. 저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한강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과정을 따라가며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 번역과 출판의 복합적 경로, 그리고 그 안에서 국가와 문화재단의 정책, 실무자의 감각과 자율성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채식주의자』 번역 사례를 들어 시장과 평단의 반응으로 가늠되는 번역의 성취와 번역의 윤리 및 정치성 사이의 긴장, 중역의 문제, 영어 중심주의가 야기하는 세계문학 장의 구조적 불균형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이 글은 세계문학 속에서 번역과 비평의 역할을 강조하며 영어의 획일성을 넘어서는 다양한 번역의 가능성을 탐색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지역성과 정치성을 삭제하지 않은 한강 문학의 세계적 수용이 세계문학 개념의 갱신을 가능하게 하는 전례가 될 수 있음을 짚
는다.
‘서평’은 인공지능과 리터러시, 번역과 디아스포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한 사유를 담은 세 권의 책을 다룬다. 인간-기계의 공진화 속에서 읽기-쓰기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작업에서부터 번역의 지연된 시간성과 감각의 정치, 그리고 고래와 흑인여성의 관계적 상상력을 통해 탈인간중심적 언어를 모색하는 시도까지 각 서평은 동시대 인문학의 확장된 감수성을 보여준다. 설동준은 비판적 리터러시 연구자 김성우가 그의 저작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에서 인지과학, 언어학, 영어교육, 심리학, 매체철학을 넘나드는 치밀한 이론적 탐구를 통해 인간의 읽기와 쓰기가 단순한 정보처리가 아니라 생물학적 몸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깊이 뿌리내린 행위임을 밝혀낸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 책이 기술에 대한 맹목적 비판이나 낭만적 회귀를 넘어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성찰적인 요청을 던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지승은 차학경의 『딕테』를 중심으로 번역의 시간성, 권력과 감각의 문제를 짚는다. 『딕테』가 한국어로 장기간 절판되었던 역사를 출판 공백이 아닌 디아스포라적 경험, 즉 단절된 지연의 시간으로 보면서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억의 층위, 디아스포라적인 몸의 감각, 사회적 상처와 맥락까지 옮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글은 특히 ‘발수신자’ 개념을 통해 독자 역시 작품을 능동적으로 재번역하고 불완전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열어가는 존재로 제시한다. 최현지는 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떠오르는 숨』에서 인간과 고래, 물질과 은유, 존재와 상상력의 감각적 교차를 읽어낸다. 검스는 타자에 대한 ‘빗대어 말하기’의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고래와 흑인의 뒤얽힌 역사성과 고통을 함께 호흡하며 종 간의 마주침이 만들어내는 상호생성적 안무를 탐색하고, 흑인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해양 포유류와의 응답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언어감각과 친족의 서사를 발명한다. 서평은 검스의 글쓰기가 은유를 넘어 오염과 마찰을 수용하며 근대적 인간중심주의의 경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 만들기를 실천한다고 평가한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문득 고개를 들면 사람들은 같은 기기를 비슷한 자세로 읽고 있다. 포스트디지털 시대라는 말 앞에서 오래전 보았던 애니메이션 「월-E」의 장면이 낯설지 않게 떠오른다. 기계가 몸의 일부가 되어 바로 옆 사람과도 스크린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들. 물론 희망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교차하는 이 시대에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고 기계와의 공존 속에서 인간은 다시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관계를 발명할 것이다. 낯선 기술에 대한 불안이 있는 동시에 인류는 늘 그러했듯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시 삶을 구성해온 경험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계에 의존하여 누리는 편리함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마법은 어딘가의 서버에서 누군가의 손을 거쳐 엄청난 전기와 노동을 대가로 얻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고 기계와 언어를 나눌수록 그 이면에서는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다.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서사와 읽기’를 특집으로 다룬 이번 호는 아직 그 모든 질문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기술과 감각, 언어와 서사를 넘어 그것이 놓인 기반인 자연과 인프라, 불평등까지 함께 사유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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