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8호] [연작기획] 5·18 성폭력 증언의 고립과 연결의 조건들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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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결과 통합의 중요성

트라우마가 예외적이고 압도적인 참사나 비극의 결과로 인식되면 일상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다종한 폭력이 누적된 피해는 간과되기 쉽다. 성폭력과 아동기 학대 등의 가정폭력, 그리고 정치적 폭력 피해자들과의 상담 연구를 통해 일찍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허먼(Judith Herman)은 기존 트라우마 연구가 배제하기 쉬운 고통에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폭력과 속박에 의한 트라우마를 ‘복합성 외상후스트레스장애’(complex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복합적 트라우마’)로 정의한다. 허먼이 주목한 ‘복합적 트라우마’의 핵심 증상으로 ‘해리’(dissociation)가 있다. 해리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상적 의식으로부터 단절해내는 억제 반응의 일종으로 이인증(離人症)의 감각을 야기하며 심할 경우 기억상실이나 다중인격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리를 트라우마적 공포에 대항하는 신경체제의 자율적인 방어 반응으로 보는 긍정적 관점도 존재하지만 허먼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해리가 통합된 자아를 분열시키고 주체의 고통을 “언어와 기억이라는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단절”시켜 피해자의 침묵과 고립의 주된 기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1) 즉 해리는 생리학적 증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며 정치적 의미에서 피해자의 이후 삶에 고립과 소외를 야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트라우마 연구에서는 증언의 행위에 내재된 치유적 속성을 주목해왔다. 도상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파편화된 기억을 언어화하고 서사화하는 노력은 분열된 자아를 통합으로 이끄는 첫 발걸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언의 과정이 안전 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며 상담자, 즉 청자가 공감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데 있다.2) 자신의 증언이 경청되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증언자가 상실한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타인과 세계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은 한국의 증언사에도 선취되어 있다. 탈식민과 페미니즘 연구는 증언이란 일련의 과정이 불균등한 권력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착목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사유해왔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할 때 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 서술하길 강요받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증언으로부터 소외된다는 점을 문제시했다. 이러한 성찰에 기반하여 증언의 궁극적 목적이 치유여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의 증언 방법론을 고안하는 등 한국의 여성주의적 트라우마 연구의 계보가 형성되었다.3) 이는 당시 공존했던 ‘성폭력특별법’ 입법 운동과 기지촌여성 운동, 성매매 근절 운동 등 다양한 여성운동과의 공명 속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치유적 효과를 잠재한 증언의 대화적 관계는 증언이 발화되는 현장에서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증언은 광범위한 청자와 매개되고 있다. 중요성을 인정받은 여러 증언은 원본 또는 편집된 형태로 기록되어 증언집이나 각종 아카이브에 수록되거나 보고서나 단행본, 논문 등에서 인용된 일부로 독자에게 읽힌다. 촬영된 증언의 순간은 언론 보도나 소셜 플랫폼, 영화나 다큐 등의 가공·편집된 2차 재현물에 활용되기도 한다. 증언이 다변화된 매체와 매개 방식을 통해 광범위한 청자에게 도착하고, 이는 개인과 공동체 단위의 새로운 앎과 감각을 형성한다.4) 이러한 매개적 만남은 폭넓은 시간성을 가로지른다. 청자는 동시대의 증언을 청취하기도 하고 주목받지 못한 먼 과거의 증언을 우연히 아카이브에서 마주하기도 한다. 이 같은 마주침 안에서 증언을 동시대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이루어질 때 증언의 새로운 의미가 창출될 수 있다. 이 상호작용을 증언의 ‘확장된 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증언의 치유적 효과는 증언자를 대하는 ‘묻고-듣기’의 윤리를 강조하고 경험의 착취 대신 고유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을 논하는 식으로 다루어져왔다. 반면 상대적으로 ‘확장된 대화’의 역학, 즉 매개된 증언과 광범위한 청자라는 관계망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치유를 직접적이고 내밀한 관계에 한정하여 사고할 경우, 증언의 치유가 심리상담자 등과 같은 전문적 관계 안에서 획득된다는 임상심리학적 맹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일차적으로 증언의 상호작용 안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치유는 주체의 내면에서 폐쇄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5) 증언자는 대화가 진행된 안전한 공간과 관계에서 벗어나면 사회의 차별과 억압, 혐오가 자리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통스러운 피해 경험과 연속성이 있는 모든 폭력과 부정의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에게 증언을 통한 치유의 느낌은 일시적일 뿐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상 고통은 지속된다.

치유의 문제를 증언의 ‘확장된 대화’ 안에서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증언자의 치유는 광범위한 청취-공동체6)의 증언 감수성과 지속되는 폭력을 단절하는 정치적 실천이 뒷받침될 때 궁극적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트라우마 증상의 핵심인 해리가 ‘통합’을 통해 완화된다는 점과도 이어진다. 해리는 자신과의 안정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붕괴시킨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치유는 분열된 개인의 내적 통합과 더불어 폭력의 여파로 단절된 미시적 관계들과 사회라는 큰 공동체와의 재연결을 통해서 가능하다. 허먼은 피해자가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트라우마로 손상된 ‘신뢰, 자율성, 주도성, 능력, 정체성, 친밀감 등의 기본 역량’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7) 그리고 이러한 치유는 증언자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장을 형성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며 이러한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정치를 요한다.

허먼의 ‘복합적 트라우마’ 연구가 시사하는 연결과 정치의 중요성에서 출발하는 이 글은 2019년 조사에 착수해 2023년 진상규명 결정을 내린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들여다본다. 이 사건은 법적 조사 권한을 지닌 국가기관이 국가폭력 사건의 성폭력 문제를 조사한 첫 사례라는 점과 조사 내용이 국가보고서로 발간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사가 함의하는 중요한 의제 중에서 이 글은 5·18 성폭력 증언의 결정적 계기들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조사가 이루어지기까지 5·18로부터 40여 년, 5·18 성폭력의 첫 공개 증언으로부터 30여 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시차를 만들었던 과거의 증언 불가능 조건들을 되짚어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첫 장에서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 2018년 증언과 그 증언에 뒤따라 나온 증언의 연쇄적 발화를 살펴본다. 두 번째 장은 2018년 공개 증언이 있기 전 불연속적으로 시도되어왔던 5·18 성폭력 증언과 그 좌절의 이유를 분석해본다. 세 번째 장에서는 5·18 성폭력 증언이 어떠한 인식론과 방법론을 정초함으로써 복합적 폭력과 피해에 대한 규명이 가능했는지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증언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적 한계를 개선하며 증언의 통합적 연결을 꾀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글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2. 5·18 성폭력 증언의 연결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나처럼 아프고 병들지 않을 수 있게, 언제든 손을 잡아주고 싶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누구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국가로부터 사과받고 치유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8)

역사는 복잡한 모순을 지운 채 단선적으로 서술된다. 5·18은 ‘폭도에 의한 광주사태’라는 오명을 벗고 ‘민중항쟁’으로 재평가되며 한국 민주주의의 진보를 상징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역사화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문제는 훨씬 지연된 궤적을 그려왔다.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이하 ‘광주특위’) 설치 후 11월 18일부터 ‘광주특위’ 청문회가 약 1년간 진행되었고,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5·18보상법」)과 1995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하 「5·18특별법」)이 제정된다. 그러나 5·18 성폭력 문제가 1989년 ‘광주 청문회’에서 고 전옥주(본명 전춘심, 이하 전옥주로 표기)의 증언에 의해 최초로 공론화되었지만9) 이후 제정된 「5·18보상법」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기준10)이나 「5·18특별법」의 피해 정의에서는 누락되었다.11) 뒤늦게 1996년 서울중앙지검의 5·18에 대한 성폭력 피해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8년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도 꾸려졌으나 제한된 조사 권한과 공론화 역량의 부족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마침내 2019년 12월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5·18 관련 법에 규정된 피해와 진상규명 범위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을 신설하며12) 5·18 성폭력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약 3년간의 조사 끝에 2024년 내려진 진상규명 결정은 5·18로부터 40여 년, 성폭력에 대한 최초 공식 증언이 있은 후 3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얻어졌다. 국가에 의한 직권 조사와 결과 발표가 가능했던 것은 당사자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만든 사회적 파장 때문이었다. 입증 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찾기 어려운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피해 당사자의 증언 없이는 조사 착수나 전개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2018년 5월 8일 김선옥의 언론 인터뷰는13) 5·18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재점화했을 뿐만 아니라 침묵하던 다른 피해자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용기를 전언하며 피해자들의 증언 및 조사 참여에의 의지를 촉발시켰다. 실제로 ‘조사위’의 조사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조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로 김선옥의 증언을 꼽았다.14)

주목할 점은 김선옥이 공개 증언을 결심하게 된 맥락이다. 김선옥은 5·18 성고문의 최초 증언자인 전옥주가 아닌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의 증언을 본 후 자신도 ‘말해야겠다’고 다짐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대중화된 페미니즘 의식 속에서 2018년 서지현 전 검사, 김지은 전 수행비서 등의 증언이 이어지며 한국사회에서는 전방위적인 ‘#미투’(Me too)의 물결이 형성된 바 있다.15) 이를 시작으로 각계각층에서 자신이 겪은 성적 침해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고, 증언의 연쇄는 구조적인 젠더 부정의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을 요구했다.16) 온오프라인에서 넘쳐흐른 #미투의 언어가 “피해 경쟁”이 아니라 “공동체적 실천”을 꾀했다는 점은 중요하다.17) 이들이 겪은 피해는 젠더 폭력이란 하나의 범주에 속하지만 사건의 시공간과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 폭력에 결부된 차별과 억압의 종류는 상이했다. 하지만 #미투의 연대는 피해나 정체성의 동질성을 조건으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각의 차이들을 예리하게 지각하면서 오늘날 다변화된 양상으로 지속되는 젠더 폭력의 근절이라는 통합된 의제로 수렴시켰던 것이다. 이 운동 안에는 침묵 속에 고립되었던 피해자들을 연결하는 강력한 정동이 존재했다.

증언, 특히 폭력과 부정의를 고발하는 증언에는 발화 장르 자체가 지닌 힘이 있다. 발화 불가능한 구조를 깨고 증언을 감행하는 용기가 사람들을 감응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의 힘은 증언 자체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것이라기보다 관계 안에서 발현된다. 증언에 대한 청취가 기본적인 조건이 되며 공감과 이해, 적합한 해석 등의 ‘응답’이 있을 때 수행되는 것이다. 2018년 김선옥의 5·18 성폭력 공개 증언이 정동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접한 청취-공동체의 분노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운동의 대중화로 젠더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 상태였고, 이 때문에 당시 정부의 ‘대응’이 발빠르게 이루어지며 조사가 추진된 맥락도 존재했다.18)

서지현의 증언으로 김선옥은 “개인적 수모와 수치”로 여겼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국가폭력”이자 “인권침해”로 인식할 수 있었기에 공개 증언을 할 수 있었다.19) 나아가 김선옥은 증언을 결심한 이유로 자신의 피해 호소만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다른 피해자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김선옥의 증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증언이면서 동시에 침묵하는 다른 이들을 위한 증언이었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공개 증언하는 행위는 주체가 정의와 치유를 향하는 여정에 타자를 초대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조사위’는 김선옥의 발화 계기들과 피해 경험에 대한 인식 변화를 정리하면서 그녀의 공개 증언이 “5·18 성폭력 피해자를 위하여 ‘목격자’이자 ‘증언자’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결단과 용기를 낸 것”으로 평가했다.20) ‘대신하여’ 증언하는 행위가 식민·제국주의적 폭력이 작동할 수 있는 안전한 대리자의 위치를 전제하는 반면,21) 취약성을 공유한 타자를 ‘위하여’ 증언하는 행위는 더 강렬한 연결의 감각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 증언에 다른 증언이 포개진다는 것. 이는 부정당하거나 폄하받기 쉬운 ‘소수자’의 언어가 사회에서 온당한 자리를 쟁취하는 방식 중 하나다. 소수자는 “증언적 부정의”와 “해석학적 부정의”에 처하기 쉽다.22) 증언자의 말에 낮은 신뢰성을 부여할 때 발생하는 ‘증언적 부정의’는 주로 젠더·인종·계급 등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에 기반하며 ‘해석학적 부정의’는 비판적 개념과 해석 도구, 인식 틀을 소유하거나 창안·활용하는 능력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법적이거나 공권력이 요구하는 제도적 절차와 통용되는 문법으로 피해를 입증할 자본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의 ‘무응답’과 구조적 ‘외면’에 맞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모이면 그들이 호소하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부피가 된다. 유사한 경험을 겪은 또 다른 증언자의 출현은 증언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입증해줄 수 있다. 따라서 침묵을 종용하는 구조적 폭력에 맞서 피해자의 통합적 연결이 긴요해지는 것이다. 이때 연대의 감각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증언하는 목소리들은 하나의 목표점으로 수렴하기보다 서로간의 분열과 반목을 초래하기 쉽다. 이러한 기제는 피해를 등급화하고 차등적으로 보상금을 산정하는 제도에 내재하여 피해자 내부의 갈등을 야기해왔다.23)

5·18 성폭력 증언자들을 잇는 연결의 성과는 현재 ‘열매’의 활동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24) ‘열매’는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소망에서 출발해 결성된 5·18 성폭력 증언자 모임이다. ‘열매’의 활동은 타인 및 세계와 재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치유적 통합이 진전됨을 보여준다. 서지현은 이들을 “여러분은 저의 영웅이고 가장 용감한 여성들”로 칭하며 “이 시간이 또 다른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나누었다.25) 5·18 성폭력 증언자들이 모인 첫 간담회부터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경향신문 플랫팀에서는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라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 피해 아카이브’ 페이지를 만들어 여러 증언자의 증언들과 ‘조사위’ 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독자들이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이 페이지가 형성한 확장된 청취-공동체는 지지의 메시지를 전하며 ‘열매’와 보이지 않는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다.26)

‘열매’의 조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피해자들이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조사위’의 조사를 통해 피해를 공적으로 발화하고 그 고통을 인정받는 최초의 경험이 이러한 의지를 갖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또한 여기에는 ‘조사위’ 조사에 참여했던 일부 구성원들의 헌신이 있었다. ‘조사위’의 법적 의무는 진상 조사와 규명 결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사 과정 중 피해자들이 피력한 소망을 외면하지 않고 조사 종료 후에 치유를 위한 정치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피해자 간의 연결이 익명과 모자이크 뒤에 머물렀던 피해자들이 공개 증언자로 거듭나는 역량을 강화했다면27) 이제 ‘열매’는 정의를 되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국회에서 공개 증언대회를 열고28)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준비한다. 또한 이들의 공개 증언은 오랜 침묵 속에 고립되어온 다른 과거사 성폭력 피해자에게 들려지며 더 큰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다.29)

3. 증언의 고립과 좌절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필요하다. 2018년 김선옥의 공개 증언이 있기 전인 1989년 이미 전옥주의 ‘5·18 청문회’ 증언이 있었다. 당시 청문회는 전국으로 생중계되면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왜 그때는 2018년과 같은 반향이 만들어지지 못했을까? 한 증언이 다른 증언으로 이어지는 데 걸린 시차는 무엇을 의미할까?

전옥주는 광주 시내에 울려퍼졌던 가두방송의 절절한 목소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증언을 기반으로 하여 연극 「모란꽃」30)이 창작되고, 영화 「화려한 휴가」(2007)가 그녀를 여주인공의 모델로 삼는 등 전옥주는 5·18 여성을 대표하는 증언자이며 가장 활발히 재현된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옥주는 5·18 당시 자행된 성폭력에 대해 최초로 공개 증언을 했다. 1988년 2월 ‘민주화합추진위원회’(이하 ‘민화위’)에서 그녀는 5·18에 관한 왜곡된 주장에 반박하며 자신이 간첩 누명을 쓰고 잔혹한 성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고, 이때 “여성으로서 죽었다”고 표현한다.31) 이후 『월간경향』 『월간예향』 등에 당시 그녀의 증언 일부나 인터뷰가 실린다.32) 뒤이어 1989년 2월 24일 ‘5·18 청문회’에 증언자로 선다. 5·18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자신이 받은 고문과 반인권적 대우의 피해를 호소할 때 성고문의 양상도 함께 증언했다.

그러나 공개 증언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던 전옥주는 ‘5·18 청문회’ 이후 8년 동안 특별한 공개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96년이 되어서야 『신동아』에 구술 수기를 실으면서 사회적 발언을 재개했다.33) 공개 증언 후 전옥주가 8년에 달하는 공백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신동아』에 실렸던 구술수기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신동아』 1996년 9월호에는 박노해의 미발표 신작시 7편 및 황석영 옥중 면회기와 함께 전옥주의 구술 수기가 실렸다. ‘광주항쟁 가두방송의 여인 전옥주의 충격고백수기’는 「간첩조작 성고문도 버텨냈다」 제목으로 게재된다. 그녀는 수기에서 ‘민화위’ 증언 이후 공공연히 테러를 당했다고 고백한다. 출소 후에도 국가의 지속적인 사찰을 당해왔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받는 생존의 위협이 가중된 것이다. 간첩이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으며 “일부 언론의 보도와 그것에 편승한 옛 동지들의 흑색선전과 비방”을 성고문의 후유증보다 더 큰 고통으로 꼽았다.34) 청문회 이후 5·18에 대한 제도적 청산 작업이 가속화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편과 거부하는 편이 나뉘기 시작했고, 낙인이 지워지지 않은 관련자들은 청산을 둘러싼 정치에서 점차 소외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전옥주에게도 “얼굴조차 모른 채 ‘광주’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쳤던 동지들에 대해 넌더리”가 나게 만든 것이다.35)

전옥주의 증언에 응답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고 돌아온 날, 그간 자신을 “외면해오던 동네 아줌마들은 막걸리와 떡을 장만해주며 ‘그렇게 훌륭한 일을 했으면서 왜 감추고 살았느냐’”며 자신을 붙들고 울었다고 한다.36) 그러나 이러한 단발적 공감과 위로는 고립을 타파하기에는 미약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비밀로 감춰왔고 사실을 고백해도 피해를 부정당하거나 자신의 귀책으로 비난받으며 침묵하기를 강요당했다. 성폭력을 여성의 ‘수치’로 여기고 비난을 가했던 성차별적 가부장제가 강고했기 때문에 피해 증언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전옥주는 이 같은 난관 속에서 용기를 냈지만 다른 많은 피해자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조사위’는 전옥주가 수기를 발표했던 1996년에서 김선옥이 공개 증언한 2018년까지 어떤 여성도 얼굴과 이름을 내걸어 공개 증언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간 「5·18 보상법」이 개정(1990)되고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1997)되고, 5·18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2011)되는 수순이었음을 참고할 때 “‘5·18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 발화 요인’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그 이상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한다.37) 즉 5·18과 광주 시민에게 가해진 폭도라는 낙인이 역사화 과정에서 해소되어도 여성의 성폭력 증언은 여전히 다른 억압 구조에 가로막히는 것이다.

5·18이 ‘민중항쟁’과 ‘민주쟁취’의 역사로 그 의미를 숭고화하는 ‘남성중심적’ 담론으로 구축되면서 이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여성의 문제는 주변화되거나 묵살되어왔다.38) 특히 국가폭력의 구체적 양상을 조사하는 청산 과정에서 성폭력 문제는 후경화된다. 이는 비단 5·18에 국한되지 않는 한국의 과거사 전반에서 반복되는 사태다. 과거사 청산에서 국가폭력을 문제 삼는 것은 남성의 피해를 기준으로 피해를 보편화·중립화하는 전략 속에서 행해졌다. 민간인 학살과 전시전후의 성폭력, 강제 수용소 및 보호시설 내 성폭력 문제 등 한국의 과거사에는 규명되어야 할 젠더폭력의 사안이 산적해 있지만 이를 위한 법제도는 전무한 실정이다.39)

성폭력 증언에 놓인 중층적 억압은 다른 증언의 좌절을 살펴볼 때 더욱 선명해진다. 전옥주 외에도 5·18 성폭력 증언의 가능성을 타진해왔던 또 다른 이가 존재한다. 처음부터 얼굴을 드러내고 증언할 수 있었던 전옥주에 반해 그녀는 다양한 익명으로 불렸다. ‘유모양’ ‘Y양’ ‘ㅇ씨’, 그리고 ‘조사위’ 조사의 ‘[직가의2-5(4)] 피해자’다.

1988년 『국민신문』에는 ‘유모양’이 작성하여 제출했다는 ‘5·18 부상자 추가신고서’의 전문이 선정적인 제목으로 공개되었다.40) 신고 내용에는 계엄군에 끌려가 다른 여성들과 함께 강간을 당한 피해 사실이 서술되어 있었다. 당시 기사의 편집자주에는 작성자의 동의를 받았다는 언급이 없다. 다만 ‘유모양’ 진술서의 전문을 옮기는 목적이 대중의 공분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음을 “공수부대원에 의해 18세의 순결이 짓밟힌 여고생의 기막힌 사연까지 끼어 있어 보는 이를 분노케 한다”라는 문장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보도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내용과 제목을 고려할 때 엿보이는 관음증적 시선은 그녀의 피해를 대상화한다. 남성적 시선으로 여성의 성폭력이나 착취가 재현될 때 이는 ‘민족’ ‘국가’ 등 남성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전유되기 쉽다.41) 이러한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성 폭력의 재현은 실상 폭력의 문제를 공론화하기보다 남성-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기표가 될 뿐이다. ‘유모양’의 피해는 이 보도로 화제가 되었지만, ‘보상심의위’의 심사에서는 ‘성폭력 피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만 정신이상의 병증을 인정받아 장해등급 1급으로 판정되어 보상을 받았을 뿐이다.42)

이후 5·18항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실천에 주목한 『광주민중항쟁과 여성』(1991)이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전옥주의 수기와 더불어 5·18을 겪어낸 다양한 위치의 여성 증언이 수록되었는데, 앞서 보도된 ‘유모양’은 ‘Y양’이라는 익명으로 실렸다. 이 지면에서는 “군인들의 집단 성폭행으로 유린당한 여고생의 정신분열증”의 사례로 대리 증언된다.43)

‘ㅇ씨’라는 익명은 비교적 최근에 붙여졌다. 2018년 김선옥의 증언으로 5·18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하면서 『한겨레』가 연재한 특집 기사에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 전 회장이 제보한 내용이 소개된 것이다.44) 1989년 ‘5·18 청문회’ 당시 ‘ㅇ씨’의 오빠는 청문회에 참석하는 회장에게 여동생의 피해 사실을 대신 증언해달라고 요청했다.45) 그는 ‘ㅇ씨’가 귀의하고 있던 절로 직접 찾아가 증언을 듣고 청문회에서 증거로 제시할 목적으로 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5·18 청문회 관계자들이 ‘아무리 흉악한 놈들이라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겠느냐’며 성폭력 가능성을 부정하며 공론화를 만류해 회장의 대리 증언은 시도되지 못했다. 그렇게 알려지지 못했던 ‘ㅇ씨’의 이야기가 2018년 5월 『한겨레』에 승려복을 입은 ‘ㅇ씨’의 뒷모습 사진과 함께 등장한 것이다.

2019년 ‘조사위’의 조사 개시로 성폭력 증언이 청취될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그녀는 알츠하이머 증상의 악화로 직접 진술이 불가능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조사위’의 의지로 ‘[직가의2-5(4)]’ 번호를 부여받은 그녀의 사례는 국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신고서·진술서와 참고인 증언 등을 토대로 재구성되었다.46)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그녀가 1991년 환속 후에도 조현정동장애 및 우울증, 불면증의 증상에 시달렸지만 1996년 서울중앙지법의 성폭력 관련 검찰 조사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당시 조서에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 상이을 겪고 있었음에도 5·18 당시의 피해 사실은 구체적으로 증언했고 진술 동기도 명료하게 밝혔다고 한다.47) 그러나 가해자를 꼭 처벌해달라는 요구에도 조사의 진전이 없자 실망한 그녀는 여타의 증언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게 되었다.48)

다양한 익명으로 증언과 비증언의 경계를 오갔던 ‘ㅇ씨’의 사례는 5·18이라는 문제계 안에서 어떤 문제가 후순위로 간주되고 누구의 피해가 침묵을 강요받았는지를 보여준다. ‘5·18 청문회’는 진상규명과 해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억압된 말들이 공적 영역에 진입하는 정치적 장이었다.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 역사를 재평가하기 위해 기억투쟁을 벌여온 5·18 생존자 및 유족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투쟁 공동체’ 내부에는 남성중심적 질서가 공고했다. ‘ㅇ씨’의 증언이 확보되었음에도 이들은 계엄군의 성폭력을 비현실적이라 간주하며 그녀에 대한 증언이 신뢰받지 못할 것이라 가정했다. 또한 청문회에서 그녀의 피해를 폭로하더라도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이나 이를 시청하는 일반 시민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가정했다.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이 ‘지나치게’ 잔혹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증언이 불신을 야기할 ‘골칫덩어리’로 취급되는 방식은 정확히 성폭력의 공론화를 막고 폭력과 침묵의 구조를 지속시킨 메커니즘과 동일하다.

전옥주가 5·18 안에서 대표 증언자가 될 수 있었던 맥락에는 그녀가 항쟁의 주요한 일원으로 활약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또한 성폭력 양상이 수사 과정 중에 발생한 성고문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청문회가 있기 전인 1986년, 한국에서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폭로 후 연일 규탄대회가 이어졌고 가해자들의 기소유예 및 무혐의 결정에 맞선 투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여성단체를 비롯한 각종 시민사회 단체들은 성고문 문제를 “광주 학살을 담보로 출범한 현 군사독재의 구조적 폭력에서 파생된 것”으로 규정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한 젠더 폭력으로 프레임화했다.49) 특별항고와 재정신청 등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88년 가해 경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면서 성고문은 국가폭력의 한 양태로 인지될 수 있었다. 이 투쟁이 성취한 폭력의 규명과 사회적 앎의 확립은 5·18 성고문의 발화와 청취가 가능해지는 토대가 된 것이다.

반면 ‘ㅇ씨’는 목격자나 참고인이 없던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계엄군 성폭력의 피해자였다. 이 폭력은 연행과 구금이라는 ‘이른바’ 적법한 절차의 외부에 있었다. 또한 ‘ㅇ씨’는 그날의 폭력으로 착란, 분노장애, 우울 등의 증상에 시달리며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의 상태에서 비껴난다. 정신장애 진단 기준에 따라 ‘조현정동장애’와 ‘양극성 정동장애’로 판정된 자의 말은 그 서사가 진중히 사유되기에 앞서 신뢰할 수 없는 언어로 치부된다. ‘ㅇ씨’는 이미 사회로부터 ‘증언 불가능한 자’로 인식되었던 것이다.50)

그러나 그녀가 처음부터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전부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1988년 정신이상 증세를 겪는 와중에도 직접 신고서를 작성해 자신의 피해를 호소했고 1989년 ‘부상동지회’ 회장에게 자신의 피해를 확인시켰으며 1996년에도 대다수의 정교한 기억을 잃었지만 피해 사실만은 분명하게 진술했다. 그녀는 중요한 계기마다 증언자로서 부단히 말해왔지만 그녀의 피해가 ‘지나치게’ 끔찍하다는 이유로, 또 그녀가 ‘미쳐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어왔던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언어의 범주를 한정적으로 구획하면서 ‘시민’과 ‘국민’의 자격을 선별해왔던 차별의 역사와 연관된다.51)

4. 증언을 위한 인식·방법론의 창안

만일 1988년 보상심사에서 ‘유모양’의 성폭력 피해가 인정되어 보상뿐만 아니라 진상규명의 대상으로 성폭력 문제가 설정되었다면 어떠했을까? 또는 1989년 청문회에서 대리 증언을 통해 ‘ㅇ씨’의 피해가 사회적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고 엄정한 조사와 처벌의 요구가 대두되었다면? 적어도 1996년 임했던 검찰 조사가 적극적인 후속조치로 그녀의 희망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진실을 밝히려는 그녀의 의지가 잔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고 믿었던 ‘투쟁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ㅇ씨’의 증언을 지움으로써 5·18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전한 ‘청취와 응답’의 영역을 구획했다. 그녀가 5·18 성폭력 증언의 계보 안에서 ‘증언자’가 아닌 ‘피해자’로 남겨진 데에는 적극적 저항 행위에 대한 탄압으로 행해진 성고문과 야산에서의 집단 강간이라는 성폭력 내부의 위계적 분할이 놓여 있기도 하다.

4·3과 부마항쟁, 5·18 등의 주체는 국가 중심의 과거사 청산 방식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되길 거부해왔다. 독재와 탄압, 무자비한 폭력에 맞선 저항적 주체로 역사에 기입되기 위해 진상규명과 더불어 기억투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중의 서사를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점은 문제적이다. 역사의 주체에 대한 규범이 형성될 때 서로 다른 위치에서 사건에 접속했던 주체의 다양한 서사는 지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중심이 되는 과거사 청산과 역사 다시 쓰기의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규정한 피해 기준에 부합해야 하며 이에 따라 피해 증언의 서사가 무/의식적인 검열을 거치게 된다. 일본군‘위안부’ 담론이 ‘강제동원’ 논쟁으로 축소되면서 다른 양상의 서사가 말해지지 못했고,52) 제주4·3 희생자의 ‘사상성’에 대한 판례로 ‘폭도’로 간주될 모호한 서사가 사라졌다.53) 5·18 또한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역사로 자리매김하면서 ‘모범적인’ 정치적 주체에서 벗어난 이들의 증언은 기록되지 못했다. 넝마주이나 하층 노동자, 성폭력 피해 여성 등 이들은 ‘절대공동체’라는 보편적 범주에 속할지 모르지만 젠더와 계급, 차별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고유한 개별 주체로는 서사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증언 담론이 강조하곤 하는 증언의 정치적 힘, 부정의를 폭로하고 사회 변화를 야기하는 힘은 증언‘만’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이는 그러한 증언을 받아들이고 이에 응답하는 공동체적 실천이 뒷받침되는 과정 중에 발현될 수 있다. 증언의 의미는 증언자의 역량이나 사실의 폭로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증언을 의미 있게 만드는 실천 속에서 수행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조사위’의 활동은 이러한 실천이 새로운 인식론과 방법론을 정립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직권 조사의 내용과 진상규명 판정의 결과를 200면이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정리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직가의2-5]에 대한 직권조사의 보고서」(이하 「조사보고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사 성폭력 피해 증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담긴 이 「조사보고서」에서 짚어낼 의미는 상당히 많지만, 무엇보다 40여 년이나 제대로 발화되지 못했던 피해 증언을 듣고 이해하기 위해 ‘피해자 중심 원칙’에 입각한 조사 기준을 세우고 복합적인 폭력의 구조를 규명하려 한 점이 가장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판단된다.

‘피해자 중심 원칙’은 피해 입증에 요구되는 ‘사실의 기준’과 이 사실을 판정하는 ‘판단 기준’에 적용되었다. 오랜 기간 억압·부정당한 트라우마적 기억은 논리적이고 총체적으로 서술되기 어렵다. 따라서 ‘조사위’는 피해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증언 역량을 갖춘 주체를 가정하지 않았고, 이들 증언에 법적 수준의 입증 요건을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피해자가 ‘자신의 관점과 서사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소리, 냄새, 촉감 등 피해 당시의 ‘감각 기억’을 설명하고, 일부분일지라도 특정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경우 이를 ‘사실의 구체성’으로 인정하고 ‘핵심 진술’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공포와 고통으로 압도된 상황과 처지를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고 배려하는 ‘질문’임을 강조한다.54)

또한 ‘조사위’는 증언 청취 후 판정 단계에서 ‘판단 기준’을 달리 설정했다. 통상의 절차에서 피해자는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수준’의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입증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리한 기준이며 피해 사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묻는 심문 과정이 고통을 유발하고 2차 피해를 야기할 위험도 높인다. ‘조사위’는 피해자에게 입증의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는 대신 이들 증언에 부합하는 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55) 그리고 만일 증거가 부재할지라도 피해자의 ‘핵심 진술을 배척하는 증거가 없을 경우’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피해를 입증하는 데 ‘피해자의 증언이 진실일 개연성이 진실이 아닐 개연성보다 더 크다’는 판단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56)

위의 원칙을 적용한 ‘조사위’는 19건의 조사 대상 중 16건에 진상규명 결정을 내린다. 나아가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진 사례들을 종합·분석하여 5·18 성폭력 피해를 범주화하고57) 폭력의 양태를 도출해낸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이 폭력과 가해의 문제보다 피해의 기준을 설정하고 배상 및 보상을 하는 등의 피해와 승인을 부각했던 계보를 생각할 때,58) 5·18 성폭력을 통한 폭력의 규명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조사위’는 5·18 성폭력이 국내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의하는 성폭력 범죄와 상이하다는 점을 분명히하며 국가폭력과 성폭력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양상으로 설명했다.59) 군부독재 정권에서 이루어진 군·경의 훈련과 시위 진압 경험, 여성의 몸을 진압과 탄압의 도구로 허용한 권력의 체제, 문제의 은폐·조작 등이 가능한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구조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분석한 것이다. 성폭력과 국가폭력이 겹쳐진 구체적인 방식들을 분석할 때 계엄군의 성폭력 문제를 일부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지 않고 국가기관과 국가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60)

증언의 청취와 피해의 인정, 인정된 피해에 기반한 폭력의 분석은 관행적인 사법적 원칙을 거부하고 ‘피해자 중심 원칙’을 조사 과정과 판정 기준에 적용했기에 가능했다. 기존의 헤게모니와 권력 작용이 반영된 인식론과 방법론을 변혁해야만 인정받지 못한 피해의 호소가 비로소 증언으로 들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사보고서」는 증명한다. 나아가 폭력의 진상규명을 가능하게 한 피해자의 증언이 진실에의 기여에 그치지 않고 자기치유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도 ‘조사위’가 보여준 중요한 실천이다. ‘조사위’의 조사는 증언자를 의심하고 심판하는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위치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사위’는 ‘피해자 중심 원칙’에 입각하여 진실을 규명하는 동반자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사에 참여한 피해자에게 치유의 계기를 형성했다. 이러한 성과는 ‘열매’의 다양한 후속 활동으로 이어지며 증언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치유와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5. 공백 위에서

그러나 ‘조사위’의 진상규명 결정이 완전한 진실에 가닿은 것은 아니다. 5·18 성폭력 증언 안에는 ‘흔적’으로 남겨진 이들이 있다. ‘조사위’가 조사 대상으로 삼았던 최초의 사건들 중 조사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조사가 중단된 사례가 24건에 달한다.61) 당사자의 사망과 자살, 정신분열과 치매 등으로 조사가 불가능했던 사례도 9건이다.62) 또한 「조사보고서」에 수록된 피해 증언에는 자신과 함께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있음을 언급하는 대목들이 있다. ‘ㅇ씨’의 경우 두 명의 여성이 자신과 함께 군용트럭에 납치되어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한 바 있고, 한 피해자는 공장 동료와 강간을 당한 후 다시 그 동료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63) 또 다른 피해자는 회사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동료가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당했으나 서로 쉬쉬하며 말하지 않았다고 밝힌다.64) 이들 증언에 언급된 이들과 유사한 피해 증언은 ‘조사위’에 신고되거나 포착되지 않았다. 최소 네 명의 ‘침묵하는’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증언은 진실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진실이 완전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위안부’ 증언이나 전쟁 및 학살 생존자 증언 중 많은 증언이 자신과 같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 타자의 존재를 안고 있다. 다양한 억압의 조건들이 증언의 가능성을 제약하지만 증언자는 이 구조 안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65) 한 사람의 증언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춘 서사로 분석되는 것이 불충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증언을 둘러싼 맥락들과 증언이 내포한 공백, 증언이 암시하는 또 다른 진실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 증언이 가지는 의미의 좌표를 좀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66)

증언의 연결이 중요한 이유는 중복되거나 어긋나고 교차하는 진실의 조각들을 이어가며 새로운 앎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과 성폭력, 과거사의 중층적인 폭력의 양상을 5·18 성폭력 증언‘들’이 그려냈듯이 피해와 부정의를 호소하는 증언들을 연결할 때 젠더와 계급, 인종을 가로지르며 행사되는 지배와 억압의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이 연결은 또한 치유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자신이 겪은 피해의 원인을 이해할 때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수치와 자기혐오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폭력이 파괴한 존엄과 삶의 가치들을 회복해나갈 힘을 얻게 된다.

허먼이 강조했듯 ‘복합적 트라우마’의 궁극적 치유는 상담실에서 또는 안전한 피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증언의 연결은 증언을 청취하고 이에 응답하는 공동체의 실천 속에서 가능해진다. 그래야 비로소 불의를 바로잡고 폭력의 구조를 무너뜨릴 사회적 실천들이 부단히 이루어지는 과정이 치유로 나아가는 길과 겹쳐질 수 있을 것이다.67)


1)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트라우마: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열린책들, 2012) 466면.

2) Dori Laub, “Bearing Witness, or the Vicissitudes of Listening,” Testimony: Crises of Witnessing in Literature Psychoanalysis and History, ed. Shoshana Felman and Dori Laub (NewYork: Routledge, 1992) 57~74면 참조.

3) 일본군 ‘위안부’ 증언 방법론에 대한 성찰은 양현아 「증언과 역사 쓰기: 한국인 “군 위안부”의 주체성 재현」(2001); 이나영 「일본군‘위안부’ 운동 다시 보기: 문화적 트라우마 극복과 공감된 청중의 확산」(2017) 참조.

4) 송혜림 「우리는 왜 현전하는 증언자가 필요한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기획, 도미야마 이치로·니콜라 헨리 외 지음 『폭력에 대항하는 법』(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24) 78면.

5) 이 글에서는 ‘피해자’와 ‘증언자’가 혼재되어 쓰인다. ‘피해를 입은 자’와 ‘증언을 수행하는 자’라는 맥락을 강조해야 할 때 선택적으로 사용하지만, 어떠한 주체도 단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대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하기 위함이다.

6) ‘대중’ ‘공중’ ‘사회’ 등의 개념 대신 ‘청취-공동체’를 쓴 이유는 필자가 상정하는 대상이 특정 증언을 마주한 계기로 구분될 수 있는 단발적이고 무작위적인 대중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 집단은 청취 후 증언에 대한 응답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강화될 수 있고, 빠르게 흩어지며 증언이 사회와 재연결될 가능성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증언과의 만남을 계기로 증언이 응답되고 지속될 수 있는 장을 형성하거나 실패하는 확장된 청자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집단을 개념화하는 이론의 부재는 현재 증언 연구의 공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익명의 심사위원들의 지적처럼 좀 더 정치한 개념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7) 허먼, 앞의 책 263면.

8) 김선옥의 인터뷰 재인용, 김효실 「“24살 학생에게 내란죄 겁주고 성폭력”…국가책임 묻는다」, 『한겨레』(2024년 12월 12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72559.html.

9) 전옥주의 어떤 증언을 ‘최초의 공론화’된 증언으로 볼 것인지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청문회 이전 그녀는 1988년 2월 ‘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5·18에 관한 왜곡된 주장에 반박하며 자신이 간첩 누명을 쓰고 잔혹한 성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고, 이후 『월간경향』 『월간예향』 등에 당시 그녀의 증언 일부나 인터뷰가 실리게 된다. 본문에서는 ‘광주 청문회’가 ‘증언의 공적 발화’에 대한 상징성이 크다고 판단해 1989년 2월 24일 청문회를 ‘최초의 공론화’된 증언으로 언급했지만, 이전의 결단과 노력이 있었기에 그녀의 청문회 참가도 가능했음을 명시하고 싶다.

10) 1990년 8월 6일 제정된 법률 제4266호 「5·18보상법」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또는 상이를 입은 자(이하 “關聯者”라 한다)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그에 따라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함으로써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관련자 및 그 유족에 의한 사실심사는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가 담당하며, 주로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한 상이 여부 및 상이의 등급이 심사 기준이었다. ‘관련자’에 대한 모호한 정의로 심사에는 자의적 판단이 개입하고 결과에 대한 논란이 야기된 바 있다.

11) 「5·18 특별법」에 “5·18민주화운동”의 정의가 규정되고 이에 대한 피해를 ‘민간인에 대한 살해, 상해, 감금, 고문, 강간, 강제추행, 폭행’으로 명시한 것은 1995년 특별법 제정 후 26년 뒤인 2021년이다.

12) 2021년 1월 5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규정된 ‘구속, 구금, 부상, 가혹행위와 그 후유증을 겪는’ 피해 기준에 ‘사망, 상해, 실종, 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의혹 사건’으로 명시된 진상규명 범위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을 신설한 바 있다.

13) 정대하 「[단독]“고문 뒤 석방 전날 성폭행”…5월항쟁 38년 만의 미투」, 『한겨레』 (2018년 5월 8일; 수정 2019년 10월 19일).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43649.html. 『한겨레』는 2018년 5월 8일 ‘5·18 광주 그날의 진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첫 기사로 김선옥과의 인터뷰와 5·18 여성피해자들인 전춘심, 차명숙, 이성순 등의 증언을 인용하면서 ‘여성 성폭력 및 고문’을 문제화했다. 증언 이후 ‘5·18 메시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의지가 표명된 뒤 그해 6월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꾸려진 바 있다. ‘조사위’는 ‘공동조사단’이 수행하며 정리한 조사 자료를 인계받아 직권조사를 수행했다.

14)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제출된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조사신청서’를 추려볼 때 12명이 피해 사실에 대한 발화의 계기로 ‘김선옥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나란히 언급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직가의2-5]에 대한 직권조사의 보고서』(2023) 226면.

15) 임아영 「과거사 성폭력 첫 진상규명…부마항쟁 성폭력 등 향후 조사에 시사점 되길」, 『경향신문』(2024년 5월 20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40520060 0101.

16) 미투가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이었으나, 명백히 불법적인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의 문제가 법적 처벌이나 지배권력의 개혁, 구조적 변화 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범죄 신고 캠페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정희진의 성찰은 중요하다. 젠더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대한 감도가 낮은 한국사회에서 인식론적 기반이 마련되고 공유되지 않는 이상 미투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은 성폭력 증언뿐만 아니라 일상에 산적한 젠더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교양인, 2023) 90~110면.

17) #미투운동이 보여준 공동체적 연대와 책임의 의미를 분석한 연구로 김애령 「책임의 연대: ‘#미투’ 이후의 과제」, 『여성학연구』 29.1 (2019) 139~65면 참조.

18) 2018년 5월 8일 김선옥의 언론 인터뷰가 있은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5·18 메시지’에서 “한 사람의 삶, 한 여성의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유린한 지난날의 국가폭력”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하며, “역사와 진실의 온전한 복원을 위한 우리의 결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성폭행 진상을 조사할 공동조사단을 꾸려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보듬는 것에서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6월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꾸려졌다. 5·18 메시지 전문은 구영식 「문재인 대통령의 5·18메시지 “당시 성폭행 진지하게 조사하겠다”」, 『오마이뉴스』(2018년 5월 18일). https://omn.kr/rasr 참고.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공개 증언에 신속하게 ‘대응’은 했지만 의미 있는 ‘응답’으로 이어지지는 못해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조사단에 주어진 조사 권한도 한정적이었고 조사 기간도 짧았다.

19)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226면.

20) 같은 보고서 229면.

21) 로절린드 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그린비, 2013)에 수록된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1부 「텍스트」와 5부 「스피박의 응답」 참조.

22) 미란다 프리커 지음, 유기훈·정선도 옮김 『인식적 부정의』(오월의 봄, 2025) 참고.

23) 유해정 「5·18 직접적 피해자의 인권침해 경험과 트라우마: 보상중심의 과거청산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21.3 (2021) 49~95면.

24) 5·18 성폭력 피해 증언의 여정은 『경향신문』의 기획연재 시리즈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기사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393 참고.

25) 서지현의 말 재인용. 플랫팀 「“살아줘서 고마워요” 5·18 성폭력 피해 모임 ‘열매’ 그리고 ‘미투 운동의 출발점’ 서지현 만나다」, 『경향신문』(2024년 9월 2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409020600151.

26) 이 외에도 언론과 아카이브로는 알 수 없었던 증언자들의 용기, 고통과 유쾌함에 대해 소중한 말씀을 나누어준 전 ‘조사위’ 조사4과3팀장이자 현 ‘열매’ 간사인 윤경회 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27) 김정화 「‘익명’으로 남은 ‘5·18 성폭력 조사 보고서’…‘본명’으로 나타난 ‘증언자들’」, 『경향신문』(2024년 10월 2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40513111 0001.

28) ‘열매’ 회원 중 4인이 2024년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여해 공개 증언을 했다. 관련 내용은 김정화 「‘5·18 성폭력’ 피해자, 44년 만에 손잡고 세상으로」, 『경향신문』(2024년 9월 30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409301835001 참고.

29) 최갑순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연행되어 군·경에게 성추행 등의 성폭력을 당했다. 그녀는 2018년 김선옥의 증언 이후 과거사 성폭력 피해자와의 만남을 염원해왔다고 한다. ‘열매’가 그녀에게 절실했던 ‘연결’의 장이 된 것이다. 관련 내용은 김초롱 「“나도 피해자”…5·18-부마항쟁 성폭력 피해자 연대 첫걸음」, 『광주MBC』 (2025년 2월 25일). https://kjmbc.co.kr/NewsArticle/1450245 참고.

30) 「모란꽃」은 오월의 트라우마를 다뤄오던 오수성(당시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심리극 형식의 연극이다. 오수성이 대본 초안을 작성하고, 박효선 및 토박이 단원들의 연구 및 수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주인공 ‘이현옥’은 5·18에서 가두방송을 하고 마지막까지 도청에 (몸을 숨긴 채로) 남아 있던 인물로 모진 고문과 출소 후 안기부의 사찰로 힘들어하는 여성이다. 「모란꽃」 대본은 황광우 엮음 『박효선 전집 1』(연극과인간, 2016) 265~310면 참고.

31) [월간지 관련 기사] 「민화위에서 털어놓은 증언록…김성수, 소준열, 전계량, 전옥주, 김영철, 이광영」, 『월간경향』(1988년 3월). 출처: 전남대학교5·18연구소,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2007년 5월 30일). https://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library&wr_id=6624.

32) [월간지 관련 기사] 나의갑 「그때 그 목소리의 주인공, 전옥주는 누구인가?」, 『월간예향』(1988년 5월). 출처: 전남대학교5·18연구소,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2007년 5월 30일). https://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library&wr_id=6301.

33) 구술수기로 사회적 관심이 되살아나자 여러 잡지에서 잇달아 그녀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1996년 『여성동아』 11월호에 인터뷰가 실렸고, 1998년 『신동아』 5월호에는 당시 함께 가두방송을 했던 전옥주와 △씨가 18년 만에 연락을 주고받게 된 계기로 인해 5·18 활동과 이후의 생을 재구성하는 취재 기사가 실렸다. △씨는 나중에 공개증언을 통해 차명숙 씨임이 드러났다. [월간지 관련 기사] 「광주 민주화운동 가두방송 두 여인」, 『신동아』(1998년 5월). 출처: 전남대학교5·18연구소,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2007년 5월 30일). https://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library&wr_id=6285.

34) 김희경 정리 「간첩조작 성고문도 버텨냈다」(1996), 『5·18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11권)』, 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1998) 228면.

35) 같은 글 227면.

36) 같은 글 224면.

37)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219면.

38) 김영희 「‘5·18’ 서사의 표면과 ‘여성’ 구술이 만드는 파열」, 『한국문학연구』 71 (2023) 257~322면.

39) 김상숙 「여성에 대한 국가 젠더폭력 과거청산과 치유 가능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생존자와 유가족의 경험을 중심으로」, 『인권연구』 7.1 (2024) 125면.

40) [월간지 관련 기사] 「차가 멈춰 데려간 곳은 음침한 장소였다」 『국민신문』(1988년 7월). 출처: 전남대학교5·18연구소,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2007년 5월 30일). https://cnu518.jnu.ac.kr/bbs/board.php?bo_table=library&wr_id=6300&page=22 .

41) 관련 연구로는 이지은 「민족주의적 ‘위안부’ 담론의 구성과 작동 방식: 윤정모, 「에미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최초 판본과 개작 양상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47 (2019) 379~409면; 장수희 「‘증언 전후’ 일본군‘위안부’ 대중서사 연구」, 『현대소설연구』 93 (2024) 227~52면 참조.

42) 피해자가 장해등급 1급 3항 ‘신경계통 또는 정신기능의 뚜렷한 장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인우보증과 복지원, 나주정신병원 등에 남은 치료 및 입원 기록, 그리고 신경정신과 검사 결과 때문이었다. 이때 인우보증은 계엄군에 의한 폭행으로 정신이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즉 성폭행에 대한 보증이나 입증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폭행에 의한 피해가 인정되는 것과 폭력의 진상이 밝혀진다는 것이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43) 이경순 「5월항쟁과 여성의 피해」, 5월여성연구회 지음 『광주민중항쟁과 여성』(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91). 전춘심의 증언은 269~74면, ‘Y양’의 사례는 275면.

44) 2018년 『한겨레』가 연재하기 시작한 특집의 첫 기사에는 5·18 여성 증언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려진 여고생’의 사례도 언급되었다. 여기서 ‘ㅇ씨’는 집단 강간의 후유증으로 조현병의 고통에 시달린다고 설명되었다. 이 기사를 본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 전 회장이 ‘ㅇ씨’ 오빠와의 일화를 언론사에 직접 제보했다.

45) 이지현 전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장은 『한겨레』의 5·18 성폭력 피해에 관한 기사를 읽고 언론사에 직접 공개했다. ‘ㅇ씨’와의 만남에는 그녀의 오빠가 동행했으며, 청문회에서 그녀의 사진을 전두환 부인과 노태우 부인의 사진과 나란히 공개하려고 했다. 관련 기사는 정대하 「[단독] “5·18 때 군인들이 집단 성폭행한 여고생, 승려 됐다”」, 『한겨레』(2018년 5월 9일; 수정 2019년 10월 19일).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43817.html.

46) ‘조사위’는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원칙으로 삼았으나 [직가의2-5(4)]는 직접 진술을 대신하여 참조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이 사례를 예외적으로 추가했다. 조사에서 당사자의 증언 없이 진상규명이 결정된 유일한 피해자다.

47)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58면 각주 154번 참고.

48) 정대하·안관옥 「[단독] “계엄군에 성폭행당한 동생, 5월만 되면 한바탕 앓는다”」, 『한겨레』(2018년 5월 14일; 수정 2019년 10월 19일).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844437.html.

49)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인권위원회 「변태적 성고문을 강력히 규탄한다: 부천경찰서 문귀동 형사를 처단하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1986년 7월 3일).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150302.

50) 송혜림 「위증과 무고, 증언의 지형도 그리기」, 『사이間SAI』 33 (2022) 81~107면.

51) ‘비정상’을 정신병리학적 기준이 아닌 다른 종류의 민감성과 언어로 해석하려는 접근법에 대해서는 신지영 「인/종주의를 벗어난 포스트메모리 재일조선여성 및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안과밖』 57 (2024) 229~37면 참고.

52) 박정애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강제동원과 성노예: 공창제 정쟁과 역사적 상상력의 빈곤」, 『페미니즘연구』 19.2 (2019) 45~79면 참고.

53) 고성만 「4·3 과거청산과 ‘희생자’: 재구성되는 죽음에 대한 재고」, 『탐라문화』 38 (2011) 249~77면 참고.

54) ‘조사위’는 피해자들 대다수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고 트라우마적 기억에 대한 증언이 사건이 있은 지 40여 년 후에 이루어지는 사실을 참작했다. 그렇기에 ‘사실적 진술’이 아닌 ‘서사적 진술’을 기준으로 삼았으며 “① 피해 당시의 감각적 기억 ②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③ 듣거나 했던 말 ④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자포자기하게 만든 공포감 자체를 언어화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한 질문’을 하는 것”을 중시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231~32면.

55) ‘조사위’는 5·18 당시 작전을 수행한 계엄군 및 경찰, 헌병대 등을 특정하여 127회에 달하는 진술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당시 생산된 군·경의 「전투상보」와 「상황일지」, 검찰의 수사기록 등을 광범위하게 검토하며 피해자들의 ‘핵심 진술’과 대조했다.

56) 피해자 중심 원칙은 해외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 판단 기준을 참고한 결과다. 보고서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개연성의 균형’과 ‘증거의 우위’의 원칙, 엘살바도르 ‘진실위원회‘의 ‘충분한 증거’ 기준 등을 설명하며, 사건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성폭력 사건의 피해 입증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적 기준이 아닌 현실성 있는 원칙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보고서 232~34면.

57) 보고서는 5·18 성폭력 피해를 ‘강간 및 강간미수’ ‘강제추행’ ‘성고문’ ‘성적 모욕 및 학대’ ‘재생산폭력’이라는 5가지 유형으로 범주화했다. 종합적으로 피해자가 겪은 피해를 “(1) 군부독재와 결부된 국가폭력의 역사성과 (2) 성폭력 피해자를 ‘정조를 잃은 여성’으로 비난하는 가부장적인 성차별 통념, (3) 이러한 사회적 통념의 내면화로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는 ‘억압의 중첩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종합하고, 이들이 사건 이후에도 “생애사 전반에 걸쳐 신체적·정신적·사회관계적 영역에서 연쇄적으로 누적되는 복합적 후유증을 겪어왔다”고 보았다. 같은 보고서 211~22면 참고.

58) 정근식 「과거청산의 역사사회학을 위하여」, 『역사와사회』 61 (2002).

59)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208~209면.

60) 신상숙 「교차적 접근을 통해 본 국가폭력, 젠더폭력, 과거사피해의 복합성: 5·18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40.3 (2024) 114면.

61)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앞의 보고서 237~38면.

62) 앞서 언급한 ‘ㅇ씨’도 조사 불가능한 사건에 속하지만 1996년 서울중앙지검의 진술 자료가 남아 있어 ‘조사위’는 가족의 동의하에 유일하게 조사를 진행했고 진상규명 판단을 내렸다.

63) 같은 보고서 120면.

64) 같은 보고서 67면.

65)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2014) 16~ 18면.

66) 지면의 한계로 이 글에서 5·18 성폭력 증언의 불가능 조건들을 모두 다루지는 못했다. 광주시민에 대한 인종적 낙인이 가능했던 냉전의 잔재와 군·경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정보 조작,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는 국가의 청산 정책, 민주화항쟁을 지배하는 국가주의 등 더 많은 축들이 논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정치하게 다루고자 한다.

67)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김정아 옮김 『진실과 회복: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북하우스, 20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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