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8호] [동향] 서사의학과 문학의 쓸모 / 김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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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문학이 의학에게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서사의학 석사과정(Master of Science in Narrative Medicine)이 있다. 의학 박사이자 영문학 박사인 컬럼비아 의과대학 교수 샤론(Rita Charon)의 주도하에 2009년 출범하여 큰 성공을 거둔 이 프로그램은 주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업계 종사자나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서사 역량”(narrative competence)의 함양이다.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서사 역량을 갖춘 의료인은 좀 더 “인도적이고 효과적인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있다. 효과적인 의료를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와 고통을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1)

서사 역량의 함양, 또는 타인의 이야기와 고통을 인지한다는 목표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서사의학과 문학연구의 관계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본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필수과목이 ‘자세히 읽기: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기’(Close Reading: Giving and Receiving Accounts of Self)라는 것은 다소 놀라운데, 이는 바로 영문학연구의 가장 기본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자세히 읽기를 가르치는 과목이다.2) 영문학연구의 기초가 되는 방법론이 서사의학을 수행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샤론은 자신의 저작 『서사의학: 질병 서사에 경의를 표함』(Narrative Medicine: Honoring the Stories of Illness)의 한 장을 자세히 읽기라는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3) 2017년 출간된 서사의학 개론서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현대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The Principles and Practice of Narrative Medicine) 역시 자세히 읽기의 역사와 정의, 임상 상황에서의 적용과 교육방법에 대해 두 장에 걸쳐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책의 공저자인 샤론과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자세히 읽기는 주의 깊은 듣기를 가능하게 하며, 의료인은 자세히 읽기 훈련을 통해 자신과 환자 사이 “무지의 틈을 건너고”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4) 자세히 읽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곧 “타인, 다른 시간, 다른 관점, 다른 주체와 침투하는 접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보건의료가 지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5)

자세히 읽기를 통해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은 문학 연구자의 흥미를 돋우면서도 조금 미심쩍게 들릴 수 있다. 문학연구가 그렇게 쓸모 있는 일이었다니?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제임스(Henry James)나 울프(Virginia Woolf), 월러스(David Foster Wallace), 벡델(Alison Bechdel) 등의 영문학 고전을 수차례 언급하며, 서사의학 훈련을 위해 꼭 보건의료를 다루는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도 주장한다.6) 이를테면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가 좋은 의료인이 되기 위한 실용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 연구자들이 지향하지만 또한 의심하기도 하는 바로 이 문학연구의 구체적 ‘쓸모’는 서사의학, 더 나아가 서사의학이 속한 의료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쟁점이다. 의료인문학은 의료보건 분야의 문제를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예술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학제간 연구 및 교육 분야다.7) 의료사, 생명윤리, 의료인류학 등에 더하여 의료인문학의 주요 갈래 중 하나인 서사의학은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주류 의학계, 특히 정규 의학교육의 틀 안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례라고 할 수 있다.8) 국내에서도 개론서가 소개되고 서사의학에 관한 논문이 『의철학연구』 『의사학』 등 국내 저널에도 상당수 출판되는 등 의학계 안팎에 서사의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좀 더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의료를 위해서도 서사의학이 필요하다는 앞선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서사의학은 일종의 응용인문학(applied humanities)으로서 의료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물론 서사의학이 표방하는 이 실용성을 모두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읽기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실제로 의사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서사의학이 문학연구, 나아가 인문학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문학의 도구화에 불과하며 인문학의 범위 및 할 수 있는 일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9) 서사의학의 실용적 지향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넓게는 미국에서는 보건의료인문학(health humanities), 영국에서는 비판적 의료인문학(critical medical humanities)의 흐름으로 수렴되는 영미권 의료인문학의 자체적인 개혁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의료인문학이 전통적으로 인문학을 의학에 종속시켜온 바를 지적하며 등장한 이들 움직임은 의학교육과 임상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인문학의 창의적이고 확장적인 개입을 주장하며 의료인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10) 이러한 흐름 안에서 서사의학은 타성에 젖은 전통적인 의료인문학의 전형으로 비판받기도 하며, 한편으로 그 가능성이 새롭게 주목받기도 한다.11)

이 글은 의료인문학의 하위 분야로서 서사의학의 발생과 역사, 현재를 다루며 이를 통해 의학과 문학의 만남이 갖는 실천적이며 성찰적인 가능성을 조망한다. 문학 연구자에게는 의료인문학과 서사의학이 다소 생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먼저 더 큰 범주인 의료인문학의 탄생과 발전에 관해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영미권 의료인문학의 맥락 안에서 문학연구와 서사에게 맡겨진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본론 마지막 부분에서는 문학에 대한 서사의학적 접근이 갖는 한계와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현대의학과 인문학 사이의 긴장과 협업의 드라마다. 현대의학을 ‘인간화’(humanization)하라는 의학계 안팎의 요청에 답하여 초창기 의료인문학자들은 개인의 경험이 담긴 질병 서사를 생의학(biomedicine)의 억압과 통제에 대한 해독제로 제시한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와 서사의학이라는 체계적인 의학교육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보편적 개인 주체의 내면성과 일인칭 서술 형식의 친화성이라는 문화적 전제에 기댄 이와 같은 해결책은 그다음 세대의 의료인문학자들에 의해 그 규범성과 한계를 지적받는다. 오늘날 영미권에서 서사의학은 그간의 문학연구의 풍부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감능력이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 이상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 글은 서사의학을 매개로 한 의학과 문학의 학제간 대화를 소개하되, 특히 문학 연구자, 그중에서도 영문학 연구자로서 이 만남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의료인문학에 대한 요청

미국에서 최초로 의과대학 안에 인문학 교실을 만든 곳은 펜실베니아주립대 의과대학(1967)이다.12) 1970년대부터는 학회 설립 및 학회지 발간, 대학원 및 학부 프로그램 설립 등이 이어지며 의료인문학이 하나의 전문 분야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12)오늘날에는 미국 의과대학의 60퍼센트 이상이 인문학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적어도 영미권에서는 새로운 의과대학을 설립할 때 처음부터 의료인문학 분과를 포함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13) 돌런(Brian Dolan)은 의료인문학의 존재 이유가 주로 “현대의학에게 기술에 대한 집착과 환원주의를 잠시 내려놓고 질병이 발생하는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맥락, 그리고 사람들이 질병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또는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양성하는 데 종종 실패한다고 알려진 현대 의학교육의 인간성 상실 문제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위해” 등으로 설명된다고 요약한다.14) 다시 말해 의료인문학의 성과에 대한 의학계 안팎의 평가와 별개로, 의료인문학은 현대의학의 요청에 의해 발생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20세기의 현대의학이 어떤 의미로든 인문학의 개입을 필요로 한 것이다.

이 필요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사를 거슬러 올라가 현대의학의 형성과 과학적 의학의 헤게모니에 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를 서양의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는다. 이 시기에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발전한 병원의학(hospital medicine)은 신체검사를 통한 진단, 병리학과 임상의 연계, 통계를 이용한 분석 등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기 시작한다.15) 이른바 과학적 의학(scientific medicine)의 탄생이다. 이전까지는 의사들이 고전 텍스트를 읽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의술을 행했다면, 이 시기의 의사들은 병원에서 수련하며 임상 진료와 부검을 통해 의학 지식을 획득한다. 의학 지식의 생산 및 전달이 고전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현장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이른바 “아픈 사람의 소멸”(disappearance of the sick-man)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주슨(Nicholas D. Jewson)의 고전적인 의료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의 병상의학(bedside medicine)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병원의학,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후의 실험실의학(laboratory medicine)의 차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각각의 의학관에서 아픈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다. 주슨은 병상의학에서 아픈 사람은 한 명의 인격체(person)이며, 진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그가 직접 전하는 증상(symptom)이고 그는 진료 과정 전반에 걸쳐 주도권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병원의학에서 아픈 사람은 하나의 사례(case)로 존재한다. 진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픈 사람이 본인이 직접 관찰한 자기 몸의 변화가 아니라 의료인이 신체검사를 통해 읽어내는 징후(sign)이며, 진료 과정 전반이 의료인과 의료인이 속한 의료집단 및 병원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된다. 주슨은 나아가 실험실의학에서 아픈 사람은 사례로서의 자리마저 잃어버린다고 설명한다. 그를 대신하는 것은 현미경 아래 놓인 세포조직과 그 조직의 생화학적 변화다.16) 전반적으로 환자중심의학(patient-centered medicine)에서 질병중심의학(disease-centered medicine)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푸코(Michel Foucault)가 『임상의학의 탄생』(The Birth of the Clinic)에서 상술하는 임상의학적 시선(clinical gaze)의 등장과 이를 둘러싼 역사적 전환과도 일맥상통한다.17)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 소실되는 것이 아픈 사람의 몸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격체로서 아픈 사람이라는 점이다. 환자의 몸은 개별성을 잃고 체계화된 의학 지식의 대상이자 보편적 질병이 자리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궁극에는 세포의 집합체로 축소된다. 이를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귀결이라 봐도 좋고,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몸과 마음의 이원론이 득세한 결과라고 봐도 좋다. 분명한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 사이 서양의학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픈 사람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이 역사적 전환을 일방향적 이행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포터(Roy Porter)를 비롯하여 “환자의 관점”(patient’s view)을 통해 의료사를 재구성하고자 한 의료사회사 연구자들이 밝히듯이 의료인의 권위는 병원의학의 도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환자, 또는 더 정확하게는 의료시스템 안의 ‘환자’로 축소될 수 없는 ‘아픈 사람’의 경험과 그가 지역사회와 의료시장에서 갖는 선택권,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교섭되었다.18) 예를 들어 19세기 영국에서 의료시스템의 개혁은 보수적인 정치적 분위기 속에 프랑스에 비해 훨씬 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권력구조와 시장논리의 직접적인 영향력하에 있는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의 역할이 두드러졌다.19) 영문학 연구자에게 익숙한 예를 들자면,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 『미들마치』(Middlemarch)는 19세기 초 영국 시골을 배경으로 파리에서 수련한 젊은 의사 리드게이트가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끝에 몰락하는 내용을 담는다. 이는 곧 파리발 병원의학의 권위가 미들마치 지역사회라는 구체적인 맥락에서 교섭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좋은 출신성분에 유학파 엘리트인 리드게이트가 갖는 권위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사람이 채 죽기도 전에 부검을 해온 의사”라고 비난하며, 결국에는 좀 더 전통적이며 환자 중심의 접근을 고수하는 경쟁자들의 의료 서비스를 선택한다.20) 마을 사람들이 리드게이트의 “임상의학적 시선”에 대해 갖는 이와 같은 불신은 당시 병원의학의 위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병원의학이 담보하는 의료관이 어떤 저항에 부딪혔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20세기에 이르러 항생제의 발명 등과 함께 치료법의 발전이 진단법의 발전을 따라잡으면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을 둔 생의학의 헤게모니는 더욱 확고해진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플렉스너 보고서』(Flexner Report)가 촉발한 미국 의과대학 커리큘럼의 변화다. 카네기재단의 의뢰를 받은 교육자 플렉스너(Abraham Flexner)는 1910년 북미 의학교육의 현황을 조사하여 대다수의 의과대학이 기준 미달의 과학 및 임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이후 미국 의학교육이 과학 중심 교육 및 임상교육 강화의 틀을 바탕으로 표준화되는 계기가 된다.21) 의과대학과 병원의 연계뿐만 아니라 실험실과의 연계가 당연시되고, 의사를 길러내는 것과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엑스레이와 MRI, CT 스캔으로 환자의 몸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에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의사보다 탁월한 과학기술자로서 의사가 더 훌륭한 의사로 간주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학의 과학기술화(technologization of medicine)는 흥미롭게도 20세기 중후반으로 넘어가며 오히려 의학계 안팎에서 도전을 받는다. 생의학과 증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에 기반을 둔 의료기술의 발전은 눈부신데, 그와 함께 장기 이식, 시험관 아기, 인공호흡기를 통한 연명치료, 제약산업의 과도한 이윤 창출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윤리적 딜레마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의 관료화 및 상업화로 인해 의사와 환자의 소통 기회는 점점 더 사라졌고, 만성질환 비중이 높아지며 의료적 개입의 목표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지는 등 생의학적 접근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늘어났다. 이와 같은 의료계 내부의 변화는 1960년대부터 흑인민권운동과 반전운동 등으로 급변하는 미국 내 정치적 분위기와 맞물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특히 반정신의학운동(anti-psychiatry movement)과 재생산권 투쟁은 임상의학적 시선이 야기하는 환자의 인간성 상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의료권력을 사회적 억압의 장치로 간주했다.22) 1978년 의사이자 윤리학자 펠레그리노(Edmund Pellegrino)는 “‘비인간화’ ‘굴욕감’ ‘무신경함’과 같이 신랄한 비하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오늘날 미국에서 환자의 경험을 묘사하는 수식어가 되었다”라고 개탄한다.23) 1990년대에 이르면 ‘비인간성’(inhumanity)이 현대의학의 내재적 특징이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기에 이른다.24)

인문학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바로 이러한 국면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 이르러 “‘차가운’ 과학적 의학”과 대조되는 “‘따뜻한’ 인간적 의학”을 되살려야 한다는 인식이 의학계 안팎에서 대두되었으며, 의학교육과 임상에 인문학을 도입하는 것이 이와 같은 의학의 ‘비인간화’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된다.25) ‘인간적’(humane)인 의료를 위해 ‘인문학’(humanities)이 호출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근대 이후로 과학적 의학의 헤게모니에 의해 밀려난 의학의 오랜 휴머니즘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26)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존스(Therese Jones)가 지적하듯 “인문학(humanities)이라는 단어에 인간(human)이 들어 있어” 생기는 혼란에서 일부 기인한다.27) 전통적 휴머니즘과 체계화된 학문 분야로서 인문학에 대한 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적 사고가 갖는 확장적이고 해방적인 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보다는 차가운 과학적 방법론에 경도된 현대의학의 부족한 점을 따뜻한 인문학이 채워줄 것이라는, 인문학에 대한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고 한편으로는 도구적인 인식이 이와 같은 접근의 기저에 깔려 있다. 존스에 따르면 이처럼 인문학이 할 것이라 기대되는 일과 인문학이 실제로 하는 일 사이의 긴장은 의료인문학의 탄생 때부터 계속되어왔다.28) 이 긴장관계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일단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인문학의 ‘인간화하는’ 영향력에 대한 기대감이 의료인문학이라는 분야의 탄생 및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의료인문학이 약속한, 또는 의료인문학에 부여된 역할로서 ‘인간화’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과연 인문학을 통한 ‘인간화’가 가능한지, 아니 그 이전에 인간이란 대체 누구(무엇)인지,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은 많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의료인문학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인문학 중 하나였던 서사의학이 어떤 형태의 ‘인간화’를 제공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들에 대해 부분적으로 답변을 해보겠다.

3.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서사

서사의학의 기원은 1970년대에 태동한 문학과 의학(literature and medicine)이라는 분야다. 이 분야는 환자 병력 청취 등 의학이 가진 서사적 측면과 의료에 대한 서사적 재현이라는 문학 영역의 결합 가능성에 주목한 일련의 연구자 및 의학교육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1972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트라우트먼(Joanne Trautmann)이 영문학자로서는 최초로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되고 1982년 존스홉킨스대학 출판부에서 『문학과 의학』(Literature and Medicine) 저널을 창간함으로써 문학과 의학은 점점 더 제도화된 학문 분야로서 모습을 갖춘다.29) 1998년 통계에서 이미 미국 의과대학의 74퍼센트가 문학과 의학 수업을 제공하고 39퍼센트는 이를 필수화하고 있을 정도로 영미권 의학교육 안에서 문학과 의학 분야는 보편화된 편이다.30) 그 한 갈래로서 서사의학은 문학연구의 임상적 실천 및 효용에 특히 방점을 두며, 2009년 컬럼비아대학교 서사의학 석사과정 개설과 함께 의학교육의 제도적 틀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듣는다.31)

블리클리(Alan Bleakley)에 따르면 서사적 방법론에 기초한 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으로서 환자에 대한 관심이다. 환자를 표준화된 인구 분포의 한 요소로 보는 증거기반의학과 달리 서사의학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 맥락 안에서 질병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며, 따라서 환자를 해결해야 할 임상적 과제로서가 아니라 공감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의료인의 태도 전환을 동반한다.32) 이와 같은 질병의 개인적 차원에 대한 강조는 어떤 종류의 서사가 서사의학에서 호응을 얻는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화이트헤드(Anne Whitehead)에 따르면 1950~60년대 서사연구가 주목한 것은 환자보다는 의사의 경험으로, 이는 발린트(Michael Balint)나 버거(John Berger) 등 의사가 쓴 에세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비평의 초점이 의사의 경험에서 환자의 경험으로 옮겨가는데, 이는 투병기(pathography) 장르의 부상 및 대중적 흥행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33) 연구자들은 이 시기 투병기의 확산에 대해 상실과 아픔, 죽음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이 힘을 잃은 현대사회에서 생의학이 이를 대신할 만한 적절한 답을 주지 못하면서 자전적 질병 서사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투병기 장르의 부흥을 일종의 근대성의 표현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이에 더해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에이즈 팬데믹으로 인해 촉발된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 1980년대에 일어난 “환자의 정치화”(politicized patient) 현상의 문학적 표현으로 투병기 장르를 이해할 수도 있다.34) 앞서 논의했듯이 현대의학의 형성이 환자 중심 의학에서 질병 중심 의학으로의 “아픈 사람의 소멸”과 함께했다면,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환자의 정치화”는 현대의학이 다시금 환자 중심 의학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자전적 질병 서사는 소멸되었던 아픈 사람을 다시 소환해 목소리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매개체로 의학계 안팎에서 호응을 얻는다.

투병기 또는 자전적 질병 서사의 이론화에 핵심 역할을 한 책으로 1988년에 출간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의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The Illness Narratives)를 꼽을 수 있다. 클라인먼은 책의 대부분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개별 환자 사례와 그에 대한 해설에 할애한다. 2022년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대로 이 책을 읽고 난 대다수 독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론과 개념 설명보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질병 서사이며, 각각의 서사 안에서 질병과 고통이 갖는 특수한 의미다.35) 클라인먼에 따르면 의사들이 의존하는 생의학적 설명 모델(explanatory model)은 사회적 존재로서 환자에게 질병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이 때문에 종종 치료가 실패하기도 한다. 이때 서사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 그리고 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 클라인먼이 공유하는 대안적 설명 모델로, 아픈 사람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포착해 더 효과적이고 윤리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36) 전문가의 언어로 쓰여진 진료차트가 기록하는 것이 생물학적인 ‘질환’(disease)이라면, 일상적 언어로 쓰여진 서사가 담는 것은 총체적 삶의 경험으로서 ‘질병’(illness)인 셈이다.37) 클라인먼은 현대의학의 문제가 몸과 마음의 이원론에 갇혀 전자만을 의학적 가치를 갖는 공적 스토리텔링으로 받아들이고 후자는 치료와는 상관없는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질병 중에서도 클라인먼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만성질환과 그와 결부된 심신(心神, psychosomatic)의 고통이다. 책이 다루는 대부분의 사례에서 환자가 겪는 만성통증은 세포나 조직, 장기의 변형 차원에서 설명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왜 아픈가? 각각의 서사에 집중했을 때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 자아 및 정체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촉발되는 만성통증을 겪는다는 것이다. 클라인먼이 그리는 인물들은 깊은 내면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1장의 해리스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된 남성성 문제를 겪고 있으며, 아내 및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무능함이나 의존성이 드러날 때마다 젊은 시절 겪은 허리 부상의 후유증이 심화하는 것을 느낀다.38) 2장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이민자이자 유대인 퀴어인 크리스티바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복통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박사논문과 아버지와의 불화를 불러온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기 민족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서 기인한 수치심과 깊이 공명한다.39) 3장에는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중산층 여성 파제트 부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책무와 예술가로서 자기실현을 향한 욕망 사이의 딜레마에 갇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목과 등 위쪽에 조이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40) 이들은 평면적 인물이 아닌 입체적 인물들이고,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봐도 손색없을 정도의 심리적 깊이와 감정의 진폭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삶의 굴곡은 고스란히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난다. 클라인먼은 “의학의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환자가 의사에게 자신의 삶에 깊숙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41) 이는 임상의학적 시선과 신체검사가 전제하는 의사와 환자 신체 사이의 강압적인 친밀함(intimacy)을 정서적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한 것이다. 신체는 결코 정신과 분리될 수 없기에 의사는 환자의 몸에 다가가는 것만큼 환자의 마음에 다가가야만 한다.

개념 소개와 인터뷰에 기반해 재구성한 환자 서사, 이어지는 해설이라는 기본적인 책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에서 클라인먼은 인류학자이자 의사로서 환자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특권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는 생의학적 방법론에 갇힌 의학계를 기탄없이 비판하지만, 동시에 의학계야말로 질병 서사라는 새로운 설명 모델을 받아들임으로써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이 그의 주장 속에는 전제되어 있다. 이는 “공감하며 듣기”(empathic listening), “번역”(translation),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구체적인 임상방법론을 제안하고 의미 중심 모델에 기반한 실질적 의학교육 개혁안을 제시하는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42) 이에 반해 질병 서사의 이론화에서 핵심 역할을 한 또 다른 연구서로 1995년 출간된 프랭크(Arthur Frank)의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육체, 질병, 윤리』(The Wounded Storyteller: Body, Illness, and Ethics)는 훨씬 더 적극적이며 때로는 호전적인 방식으로 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프랭크는 사회학자인 동시에 투병기 『아픈몸을 살다』(At the Will of the Body: Reflections on Illness)의 저자이기도 하며, 따라서 의사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질병 서사의 의학적 효능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제시한다.

프랭크의 책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그가 질병 서사를 복원(restitution), 혼돈(chaos), 탐구(quest)의 세 유형으로 분류하는 대목이다. 이는 각각 원래의 건강 상태로 돌아가는 서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통의 의미조차도 찾지 못하는 서사, 질병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서사로 정리할 수 있는데, 종종 있는 오해에도 불구하고 프랭크 본인이 강조하듯 이 세 유형은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실제 질병 서사의 경우 두 개 이상의 유형의 요소를 함께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43) 분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프랭크가 이와 같은 유형화를 통해 수행하는 정치적 작업이다. 프랭크에 따르면 아픈 사람은 자아정체성 및 삶의 일관성에 대한 감각을 빼앗긴 “서사적 잔해” 상태에 빠진다.44) 이때 생의학적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것은 진단과 치료에 따른 복원 서사다. 그러나 아픈 사람 모두가 아프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복원 서사는 회복으로 수렴하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질병 경험을 담아내지 못하며, 무엇보다 아픈 사람이 아닌 의학을 ‘영웅’의 위치에 올려놓는다.45) 이에 반해 탐구 서사는 아픈 사람이 고통의 경험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승화시켜 주체의 회복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이때 주체의 회복을 묘사하기 위해 프랭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자아” “증언” “윤리” 등 동시대 문학비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46) 그는 탈식민주의 이론의 틀 안에서 아픈 사람을 의료권력이 자행한 “의료적 식민화”에 억압받는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으로 재구성한다.47) 만성질환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으며 ‘환자’라는 역할을 부여받고, 임상의학적 시선하에 “단지 몸일 뿐인 어떤 사람으로, 사실상 어떤 사물로, 체계적으로” 축소된다.48) 프랭크는 스피박(Gayatri Spivak)의 언어를 빌려 이러한 의학의 관점을 “주인텍스트”(master text)라 명명하고, 질병 서사를 쓴다는 것은 지배적인 의학 서사에 저항하여 고통의 개별적 의미를 “되찾는”(reclaiming) 정치적 수행이라 주장한다.49) 따라서 프랭크가 말하는 “되찾기”는 단순히 의학적 효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의학이라는 주인텍스트 안에서 환자에게 부여된 역할은 회복이다. 그러나 일종의 탈식민 주체로서 아픈 사람은 질병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하는 바를 직접 발굴하고 창조해낼 의무를 갖는다.50)

질병 서사가 아픈 사람의 내면성 및 자아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이와 같은 전제는 샤론의 서사의학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사의학』의 한 장은 설사와 복통에 시달려 내원한 51세 남성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췌장암에 걸렸다고 확신하는데, 검사 후 췌장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찾아온 것은 사실 자신이 (췌장암이라는 생존율이 무척 낮은 암을 계기로)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 충격적인 깨달음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증상이 시작된 이후로 그가 자신의 안으로 침잠한 깊이”를 알아본 샤론은 그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권하고, 그를 자살 충동으로부터 구해낸다.51) 이 예시에서 드러나듯이 샤론이 서사의학적 접근에서 염두에 두는 환자들은 주로 질병을 계기로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존재론적 갈등을 겪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인물들이다. 샤론에 따르면 “사람은 아플 때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어떤 관계가 가장 의미 있는지, 삶의 끝이 어떤 공포와 위안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 결정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질병은 자기인식에 대한 일상적 욕구를 훨씬 더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52) 이어서 예시로 제시되는 신학자 헐(John Hull)이나 페미니스트 시인 로드(Audre Lorde)의 회고록 역시 장애 또는 질병을 겪는 인물이 신체와 자아 사이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텍스트들이다.

샤론이 역설하는 서사의학의 임상적 효능은 의사가 환자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는 ‘주의 깊은 듣기’(attentive listening)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더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더 효율적인 의료로 이어진다(‘주의 깊은 듣기’가 없었다면 샤론은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는 남성이 사실은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진단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53)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과정은 기계화되고 상업화된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 자신이 자신의 인간성을 재발견하는 일로, 자신 또한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내면성을 가진 존재임을 되새기는 일로 이어진다. 샤론은 서사의학 훈련의 한 방법으로 의사들에게 병원에서 통용되는 진료차트와는 달리 환자를 진료하며 느낀 점을 일상적인 언어로 기록하는 ‘평행차트’(Parallel Chart)라는 것을 쓰자고 제안한다.54) 이러한 “성찰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통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은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 즉 “글쓰는 주체로서 ‘나’”다.55)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글쓰기를 요구하는 진료차트의 관습은 주어로서 ‘나’를 지우고 수동태를 사용하도록 주문한다. 그러나 일상어로 쓰는 평행차트는 의사 본인이 갖는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소환함으로써 환자의 인간성과 함께 의사의 인간성 또한 복원한다.56) 샤론의 초기 저작에서 특히 중요한 공감(empathy)이라는 가치가 이러한 의사와 환자 관계 모델에서 비롯한다.57) 샤론에 따르면 임상이란 내면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의사)이 내면을 가진 다른 한 명의 인간(환자)과 마주하여 함께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58)

샤론은 “서사적 지식”을 “과학적 지식 또는 역학적(epidemiological) 지식”과 대비시키며 후자가 자연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한다면, 전자는 “한 명의 개인에게 일어난 특수한 사건을 보편적이 아닌 고유하고 의미 있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비(非)서사적 지식이 “개별성에서 보편성으로 초월을 지향”하는 데 반해, 서사적 지식은 “개별적인 것에 주목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조명”한다는 것이다.59) 이처럼 서사의학 형성기의 텍스트들은 대체적으로 개별 인간 주체에 대한 깊은 매혹을 보여준다. 생의학적 환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깊은 내면성과 섬세하고 명석한 자기인식을 갖춘 개인 주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서사의학에서 전염병보다는 암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이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60) 만성질환의 경험이 촉발하는 내면의 성찰이 주로 인구 단위로 이루어지는 팬데믹 경험의 재현보다 생의학의 패러다임에 저항하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61)

서사의학이 포착하는 서사 형식과 개인 주체 사이의 친화성은 당연하게도 서사를 통한 개인 주체의 구성이라는 문학 비평 및 연구의 오랜 관심사를 반영한다. 그러나 질병이 꼭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하는 계기가 되라는 법은 없다.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에서 손택(Susan Sontag)은 오히려 질병의 의미를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62) 팬데믹 서사 장르가 보여주듯 질병을 다루는 서사가 꼭 아픈 사람 내면의 드라마에 천착하리라는 법도 없으며, 생의학적 환원에 대한 저항 역시 꼭 개인 주체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법도 없다. 이를테면 장애학자 케이퍼(Alison Kafer)가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비판할 때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개인 주체의 모델이 아닌 관계적 모델이다.63) 장애학을 포함하여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 주체의 보편성이 도전받고,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인문학의 최근 성과를 흡수한 의료인문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사의학을 재구성하는지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다.

4. 서사의 규범성과 그 너머

2000년대에 들어서 의료인문학의 지반이 단단해지면서 의료인문학의 목표와 범주, 역할에 대한 질문 역시 다변화되었다.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일종의 ‘성숙기’에 들어선 것이다.64) 이와 같은 의료인문학의 정체성 고민은 지난 십여 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건의료인문학과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판적 의료인문학이라는 두 갈래의 흐름으로 결실을 맺는다. 의료인문학의 두 번째 물결(second-wave medical humanities)로 칭할 만한 이들 움직임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의료인문학이 의학의 목표와 필요에 맞춰 인문학을 도구적으로 사용해왔다고 비판하고,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의료의 권력구조 및 규범적 실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한다.65) 특히 보건인문학의 경우 의학교육 및 임상에 집중해온 기존 의료인문학의 외연을 확장하여 간호, 물리치료, 약학 등 여타 의료 분야와 사회복지 및 공중보건 문제까지 포괄한 더 넓은 의미의 의료와 인문학의 결합을 강조한다.66) 이처럼 인문학의 역할을 단순히 의학을 보조하는 데 국한하지 않고 의학의 전제를 재점검하고 의학과 사회의 경계를 허무는 통로로 삼으려 한다는 점에서, 최근 의료인문학의 경향은 서론에서 언급한 인문학의 ‘쓸모’에 대한 더욱 확장적인 해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67)

이러한 의료인문학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서사의학 역시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샤론을 위시한 서사의학은 기존의 의료인문학적 접근의 전형적인 예시로 자주 거론되곤 하는데, 이는 서사와 의학 사이에 접점이 없다거나 문학연구가 의학과 결합하여 생산적인 결과물을 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보다는 제도권 내에서 서사의학이 부여받은 역할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서사의학이 의학교육 안에서 서사역량의 함양을 통해 더 섬세하고 인간적인 의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면, 이와 같은 접근이 실질적으로 생의학의 패러다임과 의학 내 위계질서에 얼마나 도전해왔는지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도권 내 의료인문학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배너(Olivia Banner)의 경우 서사역량을 갖춰 공감할 줄 아는 의사라는 모델이 신자유주의적 의료시스템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한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대응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68) 신자유주의적 시스템하에서 의료인이 착취당하고 기계화되며 이와 같은 부담이 환자에게도 전가되는 상황에서, 의료인문학과 서사의학이 이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일종의 면죄부 역할을 하며 오히려 상황을 지속시켜왔다는 것이다.

‘서사를 통해 인간화한다’는 서사의학의 대전제 역시 여러 가지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러한 전제가 서사의 형식성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샤론은 『서사의학』에서 자세히 읽기에 기반하여 진료차트의 형식이 어떻게 수동태 또는 명령형의 사용을 통해 개별 기입자의 차이를 지우고 “하나의 특정한 학문의 대변인”을 생산하는지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보여준다.69) 이때 샤론이 진료차트를 보완할 매체로 제시하는 것이 앞서 소개한 평행차트다. 샤론에 따르면 평행차트는 진료와 관련된 경험이지만 진료차트에는 포함될 수 없는 내용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예컨대 “전립선암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지난여름 돌아가신 자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우는 것”과 같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샤론이 평행차트 속 ‘서사’를 진료차트의 경직된 틀에 담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표현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70) 서사에 대한 이러한 모호한 정의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자서전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간주하는 등 스토리텔링 방식 및 매체의 차이를 중시하지 않는 샤론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71) 이에 대해 우즈(Angela Woods)는 서사의학 연구자들이 생의학적 틀에 맞지 않는 질병 경험이 전부 서사를 통해 포착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우즈에 따르면 이는 서사로 환원될 수 없는 경험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표현하는 사진이나 시 등의 특수 매체가 존재하며 이들의 형식적 특성이 서사와는 다르다는 사실, 더 나아가 서사라는 큰 범주 안에도 다양한 형식과 장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몰이해 또는 무관심에서 비롯한다.72)

이에 더해 우즈는 서사가 문화적·역사적 층위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이는 곧 서사에 형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지배적인 서사 형식이 존재하며, 지배적인 서사 형식 역시 생의학과 마찬가지로 헤게모니를 형성하여 환자의 질병 경험과 표현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듯이 20세기 후반 영미권에서는 투병기 장르가 부흥하는데, 이는 물론 자신만의 고유한 질병 경험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으로 자기 자신의 투병 경험이 갖는 고유한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장려되면서 환자들이 특정한 장르적 형식에 맞춰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즉 ‘개인성의 표현’으로서의 서사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많은 의료인문학자는 전통적인 서사의학이 선호하는 종류의 일인칭 질병 서사가 비록 표면적으로는 생의학적 헤게모니에 저항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규범적인 개인 주체 모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이를테면 샤피로(Johanna Shapiro)는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을 서사화할 때 “‘좋은’ 환자 또는 칭찬받을 만한 개인으로 인식되기 위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달리 이상적이거나 그래야 한다고 느껴지는 관습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지적한다.73) 이때 “‘좋은’ 환자 또는 칭찬받을 만한 개인”은 가든(Rebecca Garden)이 말하듯 정상성의 회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압박 속에서 자기 경험과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회복 서사에 천착하는 장애인일 수도 있고, 반면에 이러한 생의학적 틀에서는 자유롭지만 서사의학적 규범에 갇혀 별다른 의미나 교훈을 주지 못한 자신의 질병 경험을 부정하는 만성질환자일 수도 있다.74) 그런 의미에서 우즈는 질병 서사가 많아지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자기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장려되는 시대에, 서사가 “경험을 조직하는 테크놀로지”로서 “서구 중산층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생산하는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75) 이는 ‘서사를 통한 인간화’라는 전제에서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비판을 바탕으로, 최근의 서사의학에서는 서사가 갖는 의미의 불확실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사의학 초기에 비평가들이 선호한 것은, 프랭크의 분류를 빌리면, 탐구 서사, 즉 질병의 경험이 개인에게 고유한 의미를 갖는 서사였다. 서사의 의미가 분명할수록 생의학적 표준화에 저항하는 구체적인 증거이자 힘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개인 주체의 증강을 구현하는 이러한 서사적 관습이 오히려 획일적인 주체관을 재생산하고 의학적 통제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오히려 혼돈 서사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이트헤드는 스테이시(Jackey Stacey)의 암투병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사실주의적 자서전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실험적 질병 서사가 의학에 기여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화이트헤드는 몽고메리(Kathryn Montgomery)의 언어를 빌려 의학적 실천의 목표는 과학기술적 통제(mastery)가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care of the sick)이며, 문학이 제공하는 미적 경험이 의료인이 이와 같은 “의학 본연의 불확실성”과 마주했을 때 대응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76) 샤론과 함께 컬럼비아대학 서사의학 학파의 핵심 멤버 중 하나인 다스굽타(Sayantani DasGupta) 역시 서사적 역량이 아닌 서사적 겸허(narrative humility)라는 이름으로 서사의 불확실성이 갖는 가치를 주류 서사의학 담론 안으로 편입시킨다. 다스굽타에 따르면 서사적 겸허란 의료인들이 의학적 통제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환자의 서사가 지닌 모호함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서사의학적 실천이다.77) 기존의 서사의학이 동질성에 기반한 공감을 중시했다면, 불확실성과 차이를 반기는 이러한 새로운 서사의학의 흐름 안에서 공감의 가치는 ‘주의 기울이기’(attendance)의 가치로 대체된다.78)

변화하는 의료인문학의 지형 속에서 서사와 의학의 만남은 임상의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는다. 스파크스(Tabitha Sparks)는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소설 『빌레트』(Villette)를 예로 들며 이 소설 속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법”이나 “환자가 특정 질환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와 같은 실용적인 기술이 아니라 “임상적 만남 자체가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79) 만약 이 소설이 의과대학에서 교육자료로 활용된다면, 학생들이 얻는 것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이나 도덕주의적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과 환자의 관계를 메타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모리슨(Alastair Morrison)은 서사의학과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접점에 주목한다. 그는 사후적 진단이 자폐스펙트럼 서사를 변화시키는 양상에 대한 스펜서(Danielle Spencer)의 연구를 예로 들며 의학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서사가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80) 의료인문학에서 서사의 활용이 공감의 증진을 넘어서 인식론에 대한 고찰로 나아가야 한다는 알트슐러(Sari Altschuler)의 논지 역시 모리슨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81) 이처럼 인문학의 풍부한 성취를 기반으로 한 의료인문학의 최근 흐름 안에서 서사의 쓸모는 환자와의 소통의 문제를 넘어서 의료 행위 및 의학 지식의 문화적 구성에 대한 탐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더 나은 의료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5. 나가며: 의학이 문학에게

로드의 『암 일지』(The Cancer Journals), 브로야드(Anatole Broyard)의 『병에 취해』(Intoxicated by My Illness),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와 같은 투병기는 의료인문학에서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다. 그러나 보통의 영문학 연구자라면 20세기 미국문학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이들 작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류 문학연구 안에서 이들 작품의 존재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인문학의 고전이 문학비평계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질병과 의료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방법론의 문제에 가깝다. 주레식(Ann Jurecic)과 배너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질병 서사에 대한 의료인문학적 접근은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 이데올로기 비평(ideology critique), 또는 회의적 읽기(skeptical reading)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주류 문학비평의 접근법과 동떨어져 있다. 배너의 말마따나 이는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다. 생의학적 억압에 맞서 환자의 목소리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이 의료인문학의 목표라면, “숨어 있는 이면의 의미가 표면의 의미를 전복시키는” 식의 이데올로기 비평을 수행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82) 이처럼 의심하지 않고 읽는 서사의학적 접근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래에 들어 개인 주체의 사회적 구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지나치게 순진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디지털 환경에서 생체자본주의(biocapitalism)가 환자의 목소리(patient voice)를 전유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배너의 연구가 이러한 비판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문제에 대해 주레식은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 주레식에 따르면 의료인문학과 주류 문학연구 사이의 간극은 의료인문학의 순진함 또는 신자유주의와의 공모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주류 문학연구가 보통 사람들의 읽기와 쓰기 실천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에 대한 신호다. 주레식은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에서 라투르(Bruno Latour), 그리고 펠스키(Rita Felski)로 이어지는 포스트비평적 전환을 언급하며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질병 서사가 비평의 대상으로서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포스트비평적 비판의 핵심은 오늘날 비평이 텍스트의 숨겨진 의미를 포착해내는 영웅적 비평가의 모델에 의존하며,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반 독자의 읽기 경험으로부터 유리되었다는 데 있다. 주레식은 이와 같은 “의심의 해석학”의 잃어버린 짝 “듣기의 해석학”(hermeneutics of listening)을 실천하기에 가장 알맞은 대상으로 질병 서사를 제시한다.83) 비평가의 취향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끊임없이 몸과 통증에 관해 쓰고 읽으며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얻는다. 이는 임상의학적 시선(clinical gaze)으로도, 비평적 시선(critical gaze)으로도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흔하디흔한 보통 사람들의 문학적 실천이다.

이 글은 문학의 쓸모에 관해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서사의학의 “촌스러운 우직함”을 포스트비평이라는 문학비평의 최신 흐름을 통해 재평가하는 주레식의 연구는 다시 한번 이 ‘쓸모’에 대해 환기한다.84) 다만, 이번에는 의학을 위한 문학의 쓸모가 아닌 문학을 위한 의학의 쓸모다. 질병 서사의 비평적 가치가 무엇인지 답한다는 것, 그리하여 문학에 대한 의학의 요청에 답한다는 것은 동시에 문학연구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문학연구가 문학연구를 재정의하도록 요구하는, 의학의 문학에 대한 기여이며 문학연구를 위한 서사의학의 쓸모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문학이 할 것이라 기대되는 일과 인문학이 실제로 하는 일 사이의 긴장이 의료인문학의 기저에 깔려 있다면, 이 긴장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전유할 것인지는 앞으로 학제간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달렸다.


1)金惠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 「19세기 영국 백신반대 부모의 시민 됨과 “매독 아이”」(2022)가 있다.

“Master of Science in Narrative Medicine,” Columbia University 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and Ethics. https://www.mhe.cuimc.columbia.edu/narrative-medicine/education-and-narrative-medicine/master-science-narrative-medicine. 2025년 3월 17일 접속

2) “Curriculum & Courses,” Narrative Medicine. https://sps.columbia.edu/academics/masters/narrative-medicine/master-science/curriculum-courses. 2025년 3월 17일
접속

3) Rita Charon, Narrative Medicine: Honoring the Stories of Illness (Oxford: Oxford UP, 2006) 107~30면.

4) 리타 샤론 「자세히 읽기: 서사의학의 특징적 방법론」, 리타 샤론 외 지음, 김준혁 옮김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현대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동아시아, 2021) 251~56면.

5) 같은 글 268면.

6) 마우라 스피겔·다니엘 스펜서 「자기 서술: 문학을 통한 관계성의 탐구」, 같은 책 43면.

7) 좀 더 자세한 정의는 황임경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동아시아, 2021) 38~48면; Helene Scott-Fordsmand, “Reversing the Medical Humanities,” Medical Humanities 49.3 (2023) 340~50면을 참조하라.

8) Alastair Morrison, “Narrative and Its Discontents,” Medical Humanities 49.3 (2023) 497면.

9) 증거기반의학의 틀 안에서 서사의학의 효능이 의심받는 정황에 관해서는 Brian Dolan, “One Hundred Years of Medical Humanities: A Thematic Overview,” Humanitas: Readings in the Development of the Medical Humanities, ed. Dolan (San Francisco: U of California Medical Humanities P, 2015) 24면을 참조하라. 서사의학의 효과에 관한 연구를 정리한 논문으로는 Sarah Barber and Carlos J. Moreno-Leguizamon, “Can Narrative Medicine Education Contribute to the Delivery of Compassionate Care? A Review of the Literature,” Medical Humanities 43.3 (2017) 199~203면이 있다. 서사의학의 상대주의 문제와 그에 대한 답으로는 김준혁 「서사의학의 확장: 의사-해석자 만들기」 리타 샤론 외 지음, 앞의 책 450~83면을 참조하라. 의료인문학의 도구화에 관해서는 Jeffrey P. Bishop, “Rejecting Medical Humanism, Medical Humanities and the Metaphysics of Medicine,” Journal of Medical Humanities 29.1 (2008) 15~25면과 황임경, 앞의 책 43면을 참조하라.

10) Julia Kristeva, Marie Rose Moro, John Ødemark, Eivind Engebretsen, “Cultural Crossings of Care: An Appeal to the Medical Humanities,” Medical Humanities 44.1 (2018) 55~58면; Scott-Fordsmand, 앞의 글 347~60면; 황임경, 앞의 책 30~32면; William Viney, Felicity Callard, and Angela Woods, “Critical Medical Humanities: Embracing Entanglement, Taking Risks,” Medical Humanities 41.1 (2015) 2~7면; Delese Wear and Theres Jones, “Not Your Father’s Medical Humanities,” Reflective MedEd (May 26, 2016). https://reflectivemeded.org/2016/05/26/not-your-fathers-medical-humanities/. 2025년 3월 17일 접속.

11) Shane Neilson, “A Logical Development: Biomedicine’s Fingerprints Are on the Instrument of Close Reading in Charonian Narrative Medicine” Medical Humanities 48.3 (2022) 1~4면; Claire Charlotte McKechnie, “Anxieties of Communication: The Limits of Narrative in the Medical Humanities,” Medical Humanities 40.2 (2014) 119~24면: Pooja M. Varman, Marcus P. Mosley, Billie Christ, “A Model for Abolitionist Narrative Medicine Pedagogy,” Medical Humanities 48.3 (2022) e10면.

12) Dolan, 앞의 글 1~2면.

13) Theres Jones, “‘Oh, the Humanit(ies)!’: Dissent, Democracy, and Danger,” Medicine, Health and the Arts: Approaches to the Medical Humanities, ed. Victoria Bates, Alan Bleakley, and Sam Goodman (New York: Routledge, 2014) 32면; Anne Whitehead, “The Medical Humanities: A Literary Perspective,” 같은 책 108면; Dolan, 앞의 글 2면; Olivia Banner, Communicative Biocapitalism: The Voice of the Patient in Digital Health and the Health Humanities (Ann Arbor: U of Michigan P, 2017) 15면.

14) Dolan, 앞의 글 2면.

15) W. F. Bynum, Science and the Practice of Medicine in the Nineteenth Century (Cambridge: Cambridge UP, 1994) 25~54면.

16) Nicholas D. Jewson, “The Disappearance of the Sick-Man from Medical Cosmology, 1770-1870,” Sociology 10.2 (1976) 225~44면.

17) Michel Foucault, The Birth of the Clinic (New York: Routledge, 2002).

18) Roy Porter, “The Patient’s View: Doing Medical History from Below,” Theory and Society 14. 2 (1985) 175~98면.

19) Roger French and Andrew Wear, “Introduction,” British Medicine in an Age of Reform, ed. French and Wear (London: Routledge, 1991) 3면; Michael Brown, Performing Medicine: Medical Culture and Identity in Provincial England, c.1760-1850 (Manchester: Manchester UP, 2011).

20) George Eliot, Middlemarch (London: Penguin Books, 2003) 723면.

21) Alan Bleakley, Medical Humanities and Medical Education: How the Medical Humanities Can Shape Better Doctors (New York: Routledge, 2015) 12면; 황임경, 앞의 책 24면; 크레이그 어바인·대니엘 스펜서 「이원론에 대한 불만1: 철학, 문학, 의학」 리타 샤론 외 지음, 앞의 책 120면.

22) Bleakley, 앞의 책 20면; Jones, 앞의 글 29면; 황임경, 앞의 책 23~27면; Ann Jurecic, Illness as Narrative (Pittsburgh: U of Pittsburgh P, 2012) 6~8면.

23) Edmund D. Pellegrino, “Humanities and Human Values in Medical Education,” Phi Kappa Phi Journal 58.2 (1978) 14면.

24) D. J. Weatherall, “The Inhumanity of Medicine,” British Medical Journal 309 (1994) 1671~72면.

25) Bleakley, 앞의 책 13면; Jones, 앞의 글 29면.

26)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의학의 휴머니즘 전통에 관해서는 황임경, 앞의 책 479~82면을 참조하라.

27) Jones, 앞의 글 27면.

28) 같은 글 27~28면.

29) Jones, 앞의 글 30면; Dolan, 앞의 글 16면; 황임경, 앞의 책 123면.

30) Dolan, 같은 글 20면.

31) 같은 글 20~21면; 황임경, 앞의 책 129~30면.

32) Bleakley, 앞의 책 20면.

33) Whitehead, 앞의 글108~16면. 화이트헤드는 특히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의료인의 공감능력 증진을 위한 교육 수단으로 문학비평 모델이 정신분석 모델보다 각광받게 되었다고 부연한다.

34) Jurecic, 앞의 책 8~10면. 환자의 정치화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Lisa Diedrich, Treatments: Language, Politics, and the Culture of Illness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07)를 참조하라.

35)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사이, 2022) 20면.

36) 같은 책 144~46면.

37) 같은 책 160~70면.

38) 같은 책 41~66면.

39) 같은 책 67~88면.

40) 같은 책 89~109면.

41) 같은 책 339면.

42) 같은 책 326~81면.

43)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윤자형 옮김 『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육체, 질병, 윤리』(갈무리, 2024) 177면.

44) 같은 책 137면.

45) 같은 책 186~87면.

46) 같은 책 227~75면.

47) 같은 책 65면.

48) 같은 책 68면.

49) 같은 책 67면.

50) 같은 책 71면.

51) Charon, 앞의 책 85면.

52) 같은 책 87면.

53) 샤론 「자세히 읽기: 서사의학의 특징적 방법론」, 샤론 외 지음, 앞의 책 251~56면.

54) Charon, 앞의 책 155~75면.

55) 같은 책 149면.

56) 같은 책 142면.

57) 샤론은 『서사의학』에서 여러 번에 걸쳐 서사의학이 의료인의 공감능력을 향상시킨다고 강조한다(107면 참조). 그러나 『서사의학』 출판 이후로 인문학적 소양의 계발이 도덕성의 함양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2017년에 출간된 서사의학 개론서에서는 이를 수용해 공감 대신 관계성의 개념이 강조된다(스피겔·스펜서, 앞의 글 79~80면 참조). 의료인문학에서 공감이라는 가치가 겪은 부침에 관해서는 Jones, 앞의 글 31면을 참조하라.

58) Charon, 같은 책 149면.

59) 같은 책 14면.

60) 화이트헤드와 우즈(Angela Woods)는 서사의학을 포함한 전통적인 의료인문학의 “근원적 장면”(primary scene)으로 의사와 환자, 특히 의사와 암환자 사이의 임상적 만남을 꼽는다. Anne Whitehead and Angela Woods, “Introduction,” The Edinburgh Companion to the Critical Medical Humanities, ed. Whitehead and Woods (Edinburgh: Edinburgh UP, 2022) 2면 참조.

61) 전염병 발생 서사가 생의학의 패러다임에 복무해온 역사에 관해서는 Priscilla Wald, Contagious: Cultures, Carriers, and the Outbreak Narrative (Durham: Duke UP, 2008)을 참조하라.

62)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 139면.

63) Alison Kafer, Feminist, Queer, Crip (Bloomington: Indiana UP, 2013) 5~6, 144면.

64) Rolf Ahlzén, “Medical Humanities: Arts and Humanistic Science,” Medicine, Health Care and Philosophy 10.4 (2007) 385면.

65) Liam Butchart and Shabnam Parsa, “Narrative Medicine Theory and Practice: The Double Helix Model,” Medical Humanities 50.1 (2024) 154면; Paul Crawford, Paul, Brian Brown, Charley Baker, Victoria Tischler, and Brian Abrams, Health Humanities (Basingstoke: Palgrave, 2015) 1면; William Viney, Felicity Callard, and Angela Woods, “The Limits of Narrative: Provocations for the Medical Humanities,” Medical Humanities 37.2 (2011) 2~4면; 황임경, 앞의 책 31면.

66) Therese Jones, Delese Wear, and Lester D. Friedman, “Introduction: The Why, the What, and the How of the Medical/Health Humanities,” Health Humanities Reader, ed. Therese Jones, Delese Wear, and Lester D. Friedman, and Kathleen Pachucki (New Brunswick, New Jersey: Rutgers UP, 2014) 6~7면; 황임경, 앞의 책 32면.

67) 의료인문학의 실천성과 비판적 성찰의 결합에 관해서는 황임경, 앞의 책 47~48면을 참조하라.

68) Banner, 앞의 책 14~20면.

69) Charon, 앞의 책 142면.

70) 같은 책 156면.

71) 같은 책 102면.

72) Woods, 앞의 글 73~74면.

73) Johanna Shapiro, “Illness Narratives: Reliability, Authenticity and the Empathic Witness,” Medical Humanities 37.2 (2011) 69면.

74) Rebecca Garden, “Telling Stories about Illness and Disability: The Limits and Lessons of Narrative,” Perspectives in Biology and Medicine 53.1 (2010) 126~27면.

75) Woods, 앞의 글 76면.

76) Whitehead, 앞의 글 115면.

77) Sayantani DasGupta, “Narrative Humility,” The Lancet 371 (2008) 980~81면.

78) Yianna Liatsos, “Rereading Literary Affordances in Narrative Medicine Pedagogy,” Storyworlds: A Journal of Narrative Studies 11.2 (2019) 18면.

79) Tabitha Sparks, “Literature in Medical School: Why, How and If,” Hektoen International: A Journal of Medical Humanities 6.2 (2014).

80) Morrison, 앞의 글 497~99면.

81) Sari Altschuler, “From Empathy to Epistemology: Robert Montgomery Bird and the Future of the Medical Humanities,” American Literary History 28.1 (2015).

82) Jurecic, 앞의 책 3면; Banner, 앞의 책 16면.

83) Jurecic, 같은 책 3~4면. 포스트비평이 등장한 비평사적 맥락과 의의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Elizabeth S. Anker and Rita Felski, “Introduction,” Critique and Postcritique, ed. Anker and Felski (Durham: Duke UP, 2017) 1~21면을 참조하라.

84) 같은 책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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