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7호][책머리에]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우회로/ 노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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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욱

최근 ‘출생률’과 ‘자살률’이라는 키워드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출생률 세계 꼴찌,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라는 지표는 대한민국이 ‘가장 살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일종의 씁쓸한 고백과도 같다. 이는 대한민국이 감당해야 할 오명으로, 씁쓸함을 넘어 암울하기까지 하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노인빈곤률 OECD 국가 중 1위라는 지표까지 더해지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태어남’과 ‘나이 듦’,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삐걱거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2024년에 개봉한 영화 「플랜 75」(Plan 75)는 우리나라보다 초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영화는 정부가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하는 상황을 상정한다. 「플랜 75」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인문학적 관점을 배제한 채 정책적·행정적 관점에서만 문제에 접근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플랜 75’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관료주의적이다.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권하는(또는 떠미는) 매뉴얼도 그렇거니와, 공무원들의 무감정한(때로는 친절하고 상냥하기까지 한) 말투가 그러하다. 노인들의 안락사를 유도하기 위해 ‘국가의 미래’ 운운하며 끊임없이 들려오는 TV ‘공익’ 광고는 듣는 이를 소름 끼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떨어진 출생률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이와 유사한 맥락에 있다. 이른바 딩크족인 어느 유명 작사가가 ‘국가의 숫자를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플랜 75」에서처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삶을 중단하라는 담론만큼이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애국자 담론’ 또한 폭력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요컨대 출생률의 문제든 고령화의 문제든 궁극적으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한 근본적인 사회 전반의 개선 및 변화와 더불어 사회 분위기와 인식의 전환을 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책적·행정적 시도도 공허한 숫자놀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GNP나 GDP를 들먹이며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 아니 적어도 ‘죽고 싶지 않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특히 고령화의 문제는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접근이 절실하다. 인종·젠더 등의 문제처럼 나이 또한 신체적·생물학적 특징인 동시에 문화적 구성물이며, 아동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생애 주기는 그 사회의 가치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여 발명되고 변화해간다. 그럼에도 사회적·학술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와는 달리, ‘연령차별주의’(ageism)라는 용어는 아직 생소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상대방을 각각 ‘새파랗게 젊은 것’ ‘고집불통 노인네’라고 비하하며 대립하고 있지만, 여기에 ‘세대갈등’이라는 이름을 붙여 단지 갈등의 한 양상으로만 치부할 뿐 차별과 혐오의 양상으로 조명하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이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작업이 될 것이다. 

『안과밖』 57호 ‘특집’ 원고 네 편은 ‘안티에이징’과 ‘웰에이징’ 사이에 갇힌 신자유주의적 노년 담론 너머를 중층적으로 고찰한다. 안소미의 글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19세기 말 영국사회의 노화와 세대갈등이 문학적으로 재구성된 텍스트로 읽어낸다. 안소미는 드라큘라가 단순히 흡혈귀가 아니라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400년의 시간 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생존해온 노인임에 주목한다. 그리고 드라큘라의 생존과 발전, 더 나아가 영생이 젊은 세대의 피와 생명력을 약탈하여 확보한 것임을 지적한다. 『드라큘라』를 공포소설로서가 아니라 세대갈등의 알레고리로 읽어내는 안소미의 분석은, 세대 간의 자원 분배와 기회 불균형이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다. 

최지원의 글은 J. M. 쿳시의 소설 『철의 시대』가 헤시오도스의 금속 신화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베르길리우스의 신화적 재구성까지 복합적으로 차용한 결과물임을 분석하며, 유년기와 노년기의 관계를 선형적 시간관 너머에서 바라보려는 작가의 시도를 논증한다. 특히 커런 부인의 노년을 아파르트헤이트로 대표되는 인종적 불평등을 비롯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부각시키며, 쿳시가 『철의 시대』에서 노화가 인종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시대적 현실을 포착했음에 주목한다. 최지원은 커런 부인의 개인적 쇠퇴를 인류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늙음’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종적 불평등과 연결된 복합적인 문제임을 짚어낸다. 구체적으로 노년은 단순히 개인적 쇠퇴 또는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 지혜를 상징하는 단계가 아니며, 사회적 맥락에서의 고립과 특권, 고통과 깨달음의 복합적인 교차점이라고 주장한다. 

정은귀의 글은 어린 시절부터 상실과 고통을 겪으면서 늙음과 죽음에 깊이 몰두하게 된 루이즈 글릭의 시 세계에서 노년의 시간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은귀는 글릭 시의 여성 주체를 아감벤의 ‘말할 수 없는 소녀’ 코레와 연결한다. 코레는 생과 죽음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자로서, 코레의 생명력은 글릭이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낸 때 이른 늙음인 동시에 죽음을 넘어서게 한 생명력과 극복의 상징이라는 점을 정은귀는 포착한다. 이 글은 글릭의 시를 통해 ‘노년’이라는 타자를 혐오와 기피 혹은 극복의 대상이 아닌, 하강운동 안에서 거듭 피어나는 생명력으로 재해석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박승억의 글은 인간이 오랫동안 신성한 영역이자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여겼던 노화가 생명공학 및 항노화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세속화되고, 통제 및 극복 가능한 것으로 변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박승억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개인의 건강과 수명을 늘리는 문제를 넘어서 노화 및 노년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을 추동할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시간성 및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노화를 통제할 기술적 가능성에만 주목하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적 변화로 인해 오히려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 즉 생과 사의 의미를 결정하는 프레임이 변화될 것임을 시사하며, 인류가 다가올 미래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연작기획’은 하나의 중요한 인문학적 화두를 3~4호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을 축적한다. 56호부터 ‘새로운 언어적 전회를 위하여: 언어, 재현, 다른 현실의 창조’를 주제로 두 번째 연작기획이 시작되었다. 이 기획은 언어가 자연·물질·우연성·기술 등과 함께 현실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며, 재현과 서사는 현실의 변화와 재구성에 개입하는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57호에서는 ‘새로운 언어적 전회를 위하여: 언어, 재현, 다른 현실의 창조’의 하위 주제로 ‘소수자의 글쓰기와 자기발명의 윤리’를 다루는데, 수록된 세 편의 글을 통해 언어와 재현의 실천적 힘을 환기하며 새로운 언어적 전회를 지향한다.

이상길의 글은 박탈, 배제, 모욕에 더 취약하게 노출된 소수자들이 불리한 경제적·물리적·상징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고 차별적 범주와 규정 너머에서 자신을 발명하는 ‘자기발명’ 개념을 소개한다. 또 디디에 에리봉과 에두아르 루이의 자전적 서사를 통해 자기발명의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한다. 이들의 경험과 글은 소수자가 어떻게 기존의 권력구조와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며 다른 자아와 삶의 양식을 만들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이상길은 특히 이 과정에서 우정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정은 소수자가 경험하는 수치심을 자긍심으로 전환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망을 창조하도록 돕는 촉매가 된다. 이 글은 우정이 단순히 감정적 지지에서 그치지 않고, 소수자의 변화와 탈주를 촉진하고 새로운 삶의 모델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장영은의 글은 미군 기지촌 여성 김연자의 자서전을 통해 중층적으로 주변화된 여성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고통을 어떻게 언어적 저항과 주체적인 자기명명 서사로 전환하는지 탐구한다. 김연자는 미군 기지촌 여성 문제에 대한 증언자이자 운동가, 자서전 작가이자 목회자로 자신을 명명하며 기지촌 여성들의 억압된 현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사회적 낙인을 벗어난 자아상을 구축한다. 장영은은 특히 김연자의 상스러운 욕설과 거친 말투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기지촌 여성들이 체제와 억압에 맞서 싸우는 정치적 저항의 도구로 기능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상스러운 저항의 욕설은 점잖은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들의 위선을 까발린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귀해 보인다. 이 글은 김연자의 자서전적 글쓰기를 통해 기지촌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존재를 증명하고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능동적 주체임을 부각한다. 

신지영의 글은 최근 한국에 다수 번역되어 출간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 작가들의 포스트메모리 텍스트를 검토하며 이 작가들의 기록/문학이 어떤 점에서 마리안 허시가 논의한 혈연 중심의 포스트메모리 서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하는지 규명한다. 신지영은 이 텍스트들이 여러 세대 동안 아시아 유민 여성이 겪어온 복합차별의 역사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혈연을 넘어선 ‘공통장’ 구성을 지향한다는 점, 또 기존 역사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배제된 광기나 질병 등을 서사의 동인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그런 비정상성 자체를 긍정하고 그 의미를 재전유하는 매드 포지티브 전략을 취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이 포스트메모리 기록/문학이 증언 및 서술의 당사자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소수자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도 근접 지역을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와 비당사자, 기록의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 등의 관계에 내포된 연결과 폭력의 가능성을 동시에 성찰할 복합적 주체 위치를 제시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트라우마적 역사의 당사자들이 차츰 사라져가고 공백으로 남은 역사를 구성할 과제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지는 현 상황에서, 혈연적·지연적 연결성과 당사자성의 한계 너머에서 포스트메모리 서사의 의의와 가능성을 짚는 시의성 있는 글이다. 

‘이론과 쟁점’에서는 폭력, 취약성, 그리고 용서 불가능성의 주제를 다룬 김애령의 글을 싣는다. 김애령은 주디스 버틀러의 비폭력 윤리-정치학을 중심으로 폭력의 순환을 끊을 방법을 고찰한다. 버틀러는 발터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를 비폭력의 윤리적·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텍스트로 독해하며, 비폭력을 추상적 규범이 아닌 실천 가능한 윤리적·정치적 선택으로 제안한다. 김애령은 특히 버틀러가 비폭력이 현실에서 유지될 수 있는 근거로 인간 존재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신체의 유한성과 취약성, 그리고 그로 인한 상호의존적 관계로 엮여 있다. 이는 비폭력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인간 조건에 뿌리를 둔 실천적 윤리임을 시사한다. 이 글은 비폭력 저항이 단순히 평온함이나 순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용서와 폭력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시평’에서는 최근 대학가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자유전공 제도의 허와 실을 짚는 양일모의 글을 싣는다. 자유전공 제도가 한국에 선을 보인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올해 교육부는 ‘무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전공 제도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양일모는 한국 대학에서 시행 중인 자유전공 제도와 그 배경에 대해 논의하며, 이를 둘러싼 교육적·정책적 함의를 분석한다. 그는 자유전공 제도가 전공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문적 탐구심을 키우고 학문 간 통합적 사고를 함양하는 본래의 목표를 되새겨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이른바 ‘전공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학생만이 선택하는 전공을 유지해 학문 생태계를 보호하는 해외 대학의 사례를 참고하여, 학문적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운영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무전공 제도의 성공적인 도입과 정착을 위해 과거 시행된 자유전공 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학생들이 학문적 자율성과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소중한 글이다. 

‘포커스’에서는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기업가 정신 교육 프로그램인 ‘서사적 사고 기반 창업 교육’(NBSE)의 중요성과 그 실천 사례를 상세히 다루는 권보연의 글을 싣는다. NBSE는 단순히 창업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의 서사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방식을 강조한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서사 기반 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기업가의 경험과 그들의 서사를 분석하고, 자기주도적 실천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글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창의적 리더십과 문제해결 능력 등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인문학이 현대사회에서 실질적이고 혁신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향’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몰입형 퍼포먼스가 공연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다루는 김다산의 글을 싣는다. 김다산은 특히 팬데믹 이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연이 활성화되면서 관객 참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디지털 퍼포먼스가 전통적인 공연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 관객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에 몰입하고 상호작용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몰입과 참여는 기술적 설계를 통해 사전에 설정된 경로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 때문에 관객의 주체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비판도 간과하지 않는다. 이 글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를 눈앞에 둔 현 시점에 디지털 몰입형 퍼포먼스의 사회적 가치와 전망에 대한 동향을 살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화비평’에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그 접근방식은 매우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비교 분석하는 송효정의 글을 싣는다. 이 글은 각각 1979년 12·12 군사쿠데타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과 「김군」의 이미지와 기억의 작동방식을 비교 분석한다. 송효정은 이 두 영화가 역사적 사건의 비가시적 영역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재구성과 표현 방식을 통해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서울의 봄」은 군사쿠데타와 독재의 암흑기를 강렬한 서치라이트로 비추며 독재자의 부상을 중심으로 한 긴박한 사건의 흐름을 통해 관객에게 분노와 무력감을 유발한다. 이러한 영화적 접근은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정서적 흥분 상태로 체감하도록 만든다. 반면,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무명 청년의 이미지를 탐색하며 잊힌 민중의 얼굴을 되찾고, 그의 존재를 기억의 편린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잔존하는 이미지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현재와 연결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며, 역사 속 민중의 생존과 상실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서평’에서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원영선은 인류학자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를 읽으며 자본주의가 초래한 생태적·경제적 폐허에서 새로운 생명과 생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저자의 시도를 검토한다. 칭은 미국, 일본, 핀란드,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송이버섯 생태와 그 상업적 흐름을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와 그 내부에서 발현되는 비자본주의적 가치의 얽힘을 보여준다. 책은 송이버섯이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공급사슬과 비자본주의적 협력의 균형과 충돌을 내포하는 존재, 또 인간의 계획된 행동과 생태계의 자발적 얽힘을 드러내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원영선은 칭의 책이 송이버섯 채집인·무역업자·생태학자 등의 다양한 관점과 삶의 방식을 엮어내며,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계에서 상리공생의 얽힘을 탐구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한다고 평가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보여주는 자생적 협력과 다양한 가치들이 자본주의의 안과 밖이 공존할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호평한다. 

장복동은 팀 잉골드의 『라인스』를 중심으로, 잉골드가 ‘선학(線學)’ 개념을 통해 인류의 생태와 역사적 경험을 재조명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잉골드는 인류의 다양한 활동과 지식 형성 과정을 ‘선’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며, 이를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이해할 방식을 탐구한다. 장복동은 특히 잉골드의 논의 중 ‘따라가는 선’과 ‘가로질러 가는 선’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전자가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삶의 방식을 반영하고, 후자는 효율성과 통제에 집중된 현대적 체계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잉골드가 제안하는 두 선의 개념을 통해 삶과 존재의 이동, 지식과 세계의 인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인간의 움직임과 존재방식이 세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재고할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한다. 

『안과밖』 57호는 늙어가는 세계를 주제로 한 ‘특집’ 꼭지의 글들이 보여주듯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급한 사안들을 다루지만,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이런 시급한 사안일수록 더 근본적인 질문들로 우회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은 각각 주제 및 내용, 관점 등은 다를지라도, 인간이 단지 ‘생산성’이나 ‘사회적 비용’의 관점에서 평가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재)조명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안과밖』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문학 안팎의 문제를 모두 다루는 학술지가 되겠다는 지향을 지키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안과 밖의 경계 문제에 대해서 더욱 심도 깊은 고찰을 제공하고 중요한 담론을 형성하는 장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노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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