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7호][연작기획] 인/종주의를 벗어난 포스트메모리: 재일조선여성 및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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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1. 아시아 여성 유민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여성’ 범주의 복합성

여성 작가의 계보와 경험을 그려낸 『다락방의 미친 여자』1)와 그 후속작인 『여전히 미쳐 있는』2)이 보여주듯이, 글쓰는 ‘여자’는 흔히 비정상성 또는 광기와 결부되곤 했다.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이처럼 대문자 역사에서 ‘비정상’으로 여겨지거나 ‘공백’으로 남겨진 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한 실천적 담론이자 글 속에 존재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성’이라는 범주에도 통합될 수 없는 계급, 인종, 세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전보다 섬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최근 번역 소개된 캐시 박 홍의 시 「동물원」은 ‘여성’이라는 범주에 통합될 수 없는 아시아 유민 여성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 시는 미국의 아시아 유민 여성의 비 표준어를 마치 서커스의 불구나 동물원의 동물, 미개한 종족의 소리로 치부하고 구경거리로 만드는 인종주의적 시선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역사의 흉곽은 커다랗게 / 갈라지고. 호텐토트족 혀 차는 소리는 미개하다 여겨지네. // 위생에 집착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오래된 제3세계의 냄새를 지우려 하시는 듯. (…) 개코원숭이 얼굴의 벙어리 소녀는 모음을 / 배우지 못했기에 거칠한 음성 지도를 뱅뱅 돌았지.”3) 이 시는 인간/비인간을 나누는 척도를 비판하면서 아시아 유민 여성의 말을 호텐토트족, 개코원숭이, 하이에나, 박쥐, 벙어리 소녀의 말에 연결시킨다. 이때 선명해지는 것은 ‘여성’ 안에서도 복합차별을 받아온 아시아 유민 여성의 위치, 트라우마로 남아 ‘정상성’ 안에서는 말해질 수 없는 기억, 그럼에도 그녀들의 말을 듣고 표현하고자 하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욕망이다. 

캐시 박 홍뿐이 아니다. 아시아 유민 여성 1세의 경험을 듣고 표현하고자 하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문화생산물들이 최근 5~6년 사이 한국에 많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재일조선여성 2, 3세의 작업으로는 『봉선화, 재일한국인 여성들의 기억』(2018), 『지니의 퍼즐』(2018), 『재일조선인문학사를 위하여』(2019), 『보통이 아닌 날들』(2019),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2022),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2023),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2023) 등이 있다. 또한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 2, 3세의 작업으로는 『파친코1, 2』(2018),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2020), 『마이너 필링스』(2021), 『작은 땅의 야수들』(2022), 『H마트에서 울다』(2022), 『핵가족』(2023), 『전쟁 같은 맛』(2023), 『몸 번역하기』(2024)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텍스트를 보면 창작자가 ‘한국’에서 떠나온 유민 2, 3세이며,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유민 여성의 경험을 ‘어머니-딸’의 관계나 ‘여성’의 입장에서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아시아 유민 여성 1세의 병(조현병·치매), 수치, 무지 등의 ‘비정상성’이 중심 주제가 되어 서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런 만큼 서술형식도 기록과 문학, 실천과 연구, 구술·증언과 역사 같은 문화생산의 분업적 경계를 벗어난 형태를 보인다. 이때 정상·인간·남성 중심의 지식과 다른, 아시아 유민 여성의 삶과 경험 속에서 길어올려진 앎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들의 문화생산물이 이처럼 활발하게 생산·번역·유통되고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예고한다. 첫째로, 혈연적 관계나 당사자성을 극복한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다. 2024년 올해는 정전 71주년이자 해방 80주년을 향해 가는 시기로, 식민지배·해방·분단·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유민화된 ‘당사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은 여성 생존자의 경험은 기존 아카이브에서 배제되어왔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이 증언·구술·일기·자기서사와 같은 기록/문학의 형태였다. 그런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당사자의 소멸은 아카이브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방법을 요청한다.

‘당사자성’에 기반한 증언·구술·일기·자기서사와 같은 기록/문학은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이 표현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당사자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혈연적 관계가 없는 새로운 세대가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트라우마적 역사를 경험한 당사자나 그 당사자의 혈연적 가족이 아니어도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기록하고 표현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미래적 표현으로써,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를 새롭게 정의하고 모색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메모리’란 허시(Marianne Hirsch)가 『포스트메모리의 세대』(The Generation of Postmemory)에서 제기한 개념으로, 이전 세대로부터 개인적·집단적·문화적 트라우마를 이어받은 이후 세대가 형성한 기억을 의미한다.4) 혈연관계를 지닌 이후 세대는 이전 세대와 정서적으로 깊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전 세대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낀다. 이렇게 형성된 이후 세대의 포스트메모리는 “과거에 일어났지만 현재에 지속”되며, “연속성과 파열 사이의 불안한 진동을 반영”한다.5) 허시는 홀로코스트 경험 당사자와 혈연관계를 지닌 이후 세대에 초점을 맞춰 이 개념을 제시했지만, 그가 가족적인 것(familial)만이 아니라 친밀한 것(affiliative)이 포스트메모리의 구성요소임을 언급했음은 중요하다. 특히 허시가 홀로코스트 논의에서 여성적 관점이 부재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포스트메모리를 제안했다는 점, 당사자들이 의식적으로 이루지 못했던 연대 가능성을 이후 세대가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포스트메모리의 “연결적 전환”(connective turn)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6)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 글에서는 혈연적 가족관계를 벗어난 포스트메모리의 가능성을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문화생산물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둘째로, 병(치매·조현병), 수치, 무지 등의 ‘비정상성’을 적극적인 서사 전략으로 활용하는 포스트메모리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는 조현병·치매와 같은 병, 매춘부·무지에 대한 수치 등이 핵심 주제로 나타난다. 이는 아시아 유민 여성 1세의 경험 자체가 일반적인 가족 서사로 수렴될 수 없는 트라우마적 경험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따라서 이를 증언하고 구술하는 것도, 그것을 듣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도 ‘정상성’을 벗어난 요소들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상성을 벗어난 요소들은 기존 아카이브나 글쓰기에서 충분히 표현되기 어려웠다. 식민지배와 국가폭력 등의 과거사에 대한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한국에서 트라우마를 가진 아시아 유민 여성들의 증언은 주로 피해를 증명하기 위한 법적 증거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가 트라우마를 겪은 존재들을 인터뷰하여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의 형식으로 쓴 글이나,7) 한국의 김숨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창작한 소설 『한 명』(2016), 『듣기 시간』(2021), 또 ‘증언-소설’로 분류되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 등이 보여주듯, 증언·구술을 기반으로 한 서사는 최근에 들어와서야 증거주의에서 벗어나 풍성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글에서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 비정상적이라 일컬어지는 상태(조현병·치매·수치·무지)나 감성적으로 여겨지는 행위(요리·음식), 비/인간 존재들(동물·식물·사물 등)이 빈번히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이러한 ‘비정상성’을 서사에서 배제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매드 포지티브’(Mad Positive) 서사 전략을 통해 아시아 유민 여성의 비정상성을 의미화하고자 한다. 

셋째로, 위계적인 문화 생산·번역·순환이 아니라, 공감과 연결을 추구하는 문화 생산·번역·순환을 촉발하는 포스트메모리다. 아시아에서 번역은 제국에서 식민지로, 서구에서 동양으로, 영어에서 타 언어로, 일본에서 한국으로라는 위계 속에서 이뤄져왔다. 탈식민주의론이나 마이너리티론조차도 이러한 지식의 식민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영미권에서 생산된 퀴어 이론만 보더라도 “미국이 아닌 다양한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이해, 미국 이주의 역사, 페미니즘 정치, 반-인종주의 운동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요구한다.8) 또한 2018년경부터 시작된 한국발 페미니즘 문학의 확산은 동아시아의 위계적 번역 출판 구조를 변화시켰고, 최근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문화생산물도 이 기반 위에서 번역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이 텍스트들의 번역은 선진 지식을 한국으로 번역해 소개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맥락에 있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될 때조차도 영미권에서 아시아 유민 여성으로서 겪은 인종차별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서구·남성·엘리트 중심의 지식체계를 균열시키고, 한국의 여성·마이너리티·유민과의 수평적 연결과 공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문화 생산·번역·순환의 이러한 위계구조의 변화는 반길 만한 일이지만, 아시아 유민 여성이라는 범주 속 차이를 섬세하게 조명함으로써 한국 내부의 유민·난민, 섹슈얼 마이너리티, 비/인간 존재 등에 대한 인종주의·식민주의·종차별주의를 좀 더 깊이 성찰하는 관점도 요청된다. ‘여성’이라는 위치에서도 다른 여성이나 마이너리티에게 구조적으로 가해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2018년 난민 유입을 반대했던 일부 여성들, 여성과 트랜스젠더 사이의 갈등, 성노동 당사자들이 결성한 ‘주홍빛연대차차’가 호소하는 페미니즘 내부의 위계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해 확인된다. 따라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도 ‘아시안’ ‘유민’ ‘여성’이라는 각 범주의 내적 차이를 인식하면서 다른 마이너리티와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한다. 

한 예로 ‘K-페미니즘 문학’의 확산이라는 맥락에서 일본 출판시장을 보면, 『82년생 김지영』 같은 페미니즘 서사는 번역되고 인기를 끈 반면,9) 페미니즘과 함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이해해야 하는 김숨의 『한 명』은 같은 시기에 번역되었음에도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10) 페미니즘 문학이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번역될 때 ‘젠더’는 부각되지만 ‘식민주의’는 후경화되었던 것이다.11) 동아시아 번역·출판·유통 구조의 전환 속 이러한 문제는 한국에 번역되어 들어오는 현재의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텍스트에 대해서도 비판적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넷째로, 한국 내부의 마이너리티 및 유민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역사적 자원을 제공하고, 미래의 유민 문학을 예견할 수 있는 포스트메모리다. 2018년 예멘 난민의 유입에 71만 명의 ‘국민’이 반대서명을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인종주의와 배외주의는 뿌리가 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연결된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담은 텍스트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가해자성을 드러내며 한국사회에 체재하는 이주·난민 여성들과의 공생을 모색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 들어와 있는 유민 여성 2, 3세가 미래에 만들어갈 포스트메모리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를 현재의 우리에게 질문한다. 

이러한 논점들은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인/종주의를 넘어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적 좌표와 표현방법을 요청한다. 비정상적이고(미쳤고), 비합리적이고(감정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쓸모없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의 반복 속에서 부정적으로 일컬어진 상태들을 정상화·합리화·생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 자체를 의미화할 수 있는 사유와 표현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분석 대상은 다음과 같다. 

2021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2023년 한국에 번역된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12)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 제작 뒷이야기를 감독 자신이 기록한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13) 재일조선인 3세이자 사회학자로 헬싱키대학 교수인 박사라가 2022년 일본에서 출간하고 2023년 한국에 번역 소개된, 독특한 형식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생활사인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14) 그리고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시인이자 연구자인 에밀리 정민 윤의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2020년 한국에 번역 소개된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15)이 이 글에서 다룰 텍스트다. 이 텍스트들은 아시아 유민 여성 1세의 경험을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가 듣고 쓰는 포스트메모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기록과 문학, 실천과 연구를 넘나들며 기존의 지식과 표현의 체계를 파열시키는 형식적 특성을 지니며, 조현병·치매·수치·무지 등의 비정상성, 요리와 음식 등의 감성적 행위, 버섯·블루베리·볼쥐·향유고래 등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표현되어 있다. 

이 글은 이들 텍스트의 공통된 특성에 주목하면서 2장에서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가 혈연적 관계를 벗어나 타자들과의 공감을 향해 확장될 수 있는 실마리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이들 텍스트의 핵심 주제가 조현병·치매·무지·수치임에 주목하고, 이러한 ‘비정상성’을 ‘매드 포지티브’ 서사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명한다. 4장에서는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아시아 유민 여성들과 근접지대에 놓이거나 연결된 비/인간 존재들의 형상에 주목한다. 이때 아시아 유민 여성이 다른 마이너리티나 비/인간 존재에게 가할 수 있는 구조적 가해성을 성찰함으로써 혈연적 관계나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타자와 연결되는 포스트메모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혈연적 가족관계를 벗어난 포스트메모리와 그 매개들: 음식·카메라·인터뷰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기존의 아카이브에서 배제되거나 트라우마와 수치라고 여겨져온 아시아 유민 여성 1세의 경험을 불러오고 명명하고 자리매김한다. 이때 제도화된 대문자 역사로 이야기되던 한국전쟁과 냉전사는 물론이고, 제주4·3과 기지촌 여성, 일본군 ‘위안부’의 경험에서도 ‘비정상’이라고 치부되거나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수치 때문에 충분히 말해질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전쟁 같은 맛』의 ‘엄마’에게 식민지배는 배고픔이고, 한국전쟁은 김치로 버틴 시간이며, 전후는 기지촌의 삶이고, 아메리카드림은 인종차별과 가정폭력의 시간이다. 이는 한국전쟁과 냉전 세계사 속 공백이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의 어머니에게 제주4·3은 말하기조차 두려운 봉인된 경험이고, 재일조선여성으로서의 삶은 일본에서의 차별을 피해 북으로 보낸 가족·친척·친구들의 가난을 뒷바라지해온 삶이다.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의 구술자 중 박준자 고모에게 제주4·3은 배고픔의 기억이고, 무서운 것은 가정폭력이며, 수치스러운 것은 글자를 모르는 자신이다. 이 재일조선여성의 기억과 경험은 한-일 국민국가 형성의 역사 속 공백이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에밀리 정민 윤에게 일본군 ‘위안부’의 경험은 아시안 여성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이자 인간인 자신이 고래와 자연에 가하는 폭력이며, 이는 한국 근현대사 및 인간중심주의 속 공백을 드러낸다. 이 모든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한미일 근현대사 아카이브와 함께, 동시에 그 아카이브에 반하여 쓰여졌다. 

하트만(Saidiya Hartman)은 노예제 아카이브의 토대적 폭력과 구성적 한계를 뛰어넘어 어떤 아카이브에도 기록될 수 없었던 노예 소녀 둘 사이의 연결을 표현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초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에 관한 우리 앎의 생산”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는 것이다.16) 이 글에서 다루는 네 편의 텍스트는 기존 아카이브에서 배제된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표현하고 그녀들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포스트메모리 속에 마련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이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배제한 아카이브와 지식체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앎과 연결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때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는 어떻게 여성들을 옭아매온 기존의 혈연적 가족관계를 벗어나 또 다른 마이너리티의 경험과 연결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안고,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속에서 혈연적 가족관계가 내파되고, 국가·남성·엘리트 중심의 지식체계가 비판되며, 그 결과 새로운 앎의 공통장이 구축되는 순간들을 살펴보자. 

2-1. 『전쟁 같은 맛』: 주류 지식체계 비판과 ‘음식’을 통한 포스트메모리

『전쟁 같은 맛』은 혈연적 가족관계를 근거로 한 포스트메모리의 전형으로 보인다. 저자인 그레이스 조는 한국전쟁의 빈곤을 경험했고 기지촌에서 일했으며 혼혈아를 낳은 여성이자 조현병자인 엄마가 미국사회에서 겪은 인종차별과 복합차별을 조명한다. 이러한 엄마의 경험은 딸인 자신이 미국에서 겪는 아메라시안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과 연결된다. 이처럼 『전쟁 같은 맛』은 부모에게서 들은 트라우마적 경험이 이후 세대의 유년 시절 기억을 점유하게 되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가 지닌 특징을 보여준다.17)

그러나 연대기적 시간관이나 인과관계에 기반한 플롯을 벗어나 ‘엄마-딸’ 관계에 이질적인 존재들이 연결되는 형태로 쓰여진 『전쟁 같은 맛』의 서술방식은 엄마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혈연적 가족관계 안에서가 아니라 확장된 마이너리티의 경험과 연결지으며 읽게 한다. 엄마의 “빵 부스러기” 같은 단편적인 말은 조가 과거에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을 상기시키고, 그 말을 통해 시공간이 앞뒤로 움직이며 다시금 엄마의 과거 및 현재와 연결되고, 엄마와 근접한 위치에서 그 시공간을 살아온 취약한 존재들에게 연결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계도를 그려오라는 숙제는 “오빠랑 다른 언니도 한 명 더 있었어”(조/51면)라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말에 의해 오빠는 실종되고 언니는 죽고 엄마는 배를 곯았던 한국전쟁 이야기로, 그로부터 또 다른 언니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었던 이야기로, 입양 보내는 사회복지사의 구술과 그 구술 속 입양을 결심해야 했던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의 고통으로, 다시금 “개 잡아 먹는 주제에!”라는 말과 함께 아메라시안으로서 인종차별을 받았던 조의 어린시절로 이어진다(조/50~59면). 엄마의 외마디 말이 연대기적이고 인과론적이며 합리성에 기반한 서술형식을 흐트러뜨리고, 유령화되거나 공백으로 여겨져온 엄마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미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이런 형식은 엄마가 받은 복합차별이 현재의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에게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혈연적 가족을 근거로 한 포스트메모리에서 벗어나 다른 마이너리티들과 연결될 수 있는 대안적 앎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앎의 공통장을 구성하려는 양상은 『전쟁 같은 맛』이 수행하는 제도화된 지식체계에 대한 비판을 통해 확인된다. 『전쟁 같은 맛』의 독특한 서사 전개의 기반에는 기지촌 여성이자 조현병자이자 아시아 유민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록되거나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그녀들을 유령화해온 주류 지식체계에 대한 비판이 있다. 조는 『전쟁 같은 맛』이 “어머니와 닮은 사람들을 기리고 애도하는 데 실패한 한미 사회에 대한 정의 회복 프로젝트”라고 말한다(조/6면). ‘엄마’를 유령화한 지식체계의 폭력을 넘어서기 위해 조는 “‘양공주’의 표상을 한 한인 디아스포라에 출몰하는 유령”을 분석하겠다는 박사논문 계획을 내놓지만, 보수적인 남성 사회학자들로부터 맹렬한 비판과 함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조/411~12면). 

이러한 권위적 지식체계의 대척점에 있는 말이 “아이구! 답답으라”라는 표현이다(조/39, 161, 352면 등). 원문에서도 “아이구”라는 감탄사와 함께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된 이 말은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설명할 말이 없을 때, 더구나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때, 들어줄 담론장도 없을 때, 그럼에도 봉인된 트라우마적 기억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엄마가 내지르는 저항과도 같고 선언과도 같은 외마디다. 이는 외마디 말이지만 그 감정적 강도가 강렬하여 권위적 지식체계의 대척점에 있는, 아카이브화되지 않은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불러낸다. 

아시아 유민 여성의 외마디 말들인 “아이구! 답답으라” “내가 쓸모없게 느껴져서 그래”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 전쟁 같은 맛이야”로부터 기존의 역사와 사유와 관계를 재구축해나가는 『전쟁 같은 맛』의 스타일은 연구와 창작, 연구와 실천, 글과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형성된 앎과 표현의 공통장을 텍스트 속에 담고 있다(조/313, 39면). 먼저 『전쟁 같은 맛』은 조의 또 다른 저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유령』(Haunting the Korean Diaspora)18)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전쟁 같은 맛』에는 유령화된 엄마의 존재를 기존의 역사 아카이브와 연구에 정초하기 위한 수많은 역사서·이론서·문학작품·증언-구술자료집·기사 등이 마치 연구서처럼 인용되어 있다. 『전쟁 같은 맛』의 부별 시작에는 그 부의 내용을 대변하는 저서의 글귀가 프롤로그처럼 달려 있다. 유민 여성이 내면화한 수치와 불안을 다루는 1부에는 로드(Audre Lorde)의 『살아남기를 위한 호칭기도』(A Litany for Survival)가, 음식을 통한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2부에는 톰킨스(Kyla Wazana Tompkins)의 『인종적 소화불량』(Racial Indigestion)이, 조현병의 병리화를 비판하는 3부에는 루어먼(T. M. Luhrmann)의 『우리의 가장 문제적인 광기』(Our MostTroubling Madness)가, 요리를 통해 조현병을 극복해가는 4부에는 하조(Joy Harjo)의 「어쩌면 세상은 여기서 끝날는지도」(“Perhaps the World Ends Here”)가 인용되어 있다. 

직접 인용 이외에도 『전쟁 같은 맛』의 서사에 녹아들어 있는 연구서도 많다. 조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모런(Patricia Moran)이 존슨(Erica L. Johnson)과 함께 쓴 『여성의 수치심』(The FemaleFace of Shame)19)도 빈번히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음식에 대한 설명이다. 이 부분은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인 여지연의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제4장 「요리는 미국식으로 먹기는 한국식으로」를 연상시킨다. “맵고 마늘 맛이 강한, 발효된 한국 음식을 마침내 맛보는 경험은 마치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가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조/155면)는 언급은 여지연의 연구서에 인용된 “그건 마치 정말로 오랜 세월 갈증을 느끼고 느끼다가 마시는 물과 같은 것이거든”이라는 크리스핀 부인의 말과 유사하다.20) 여지연은 조와 함께 「어제 안에 오늘: 잊혀진 전쟁 살아 있는 기억(2005. 1. 29~3. 19)」이라는 전시에 역사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협업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21)

이러한 새로운 앎의 공통장은 『전쟁 같은 맛』이라는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고, 조가 현실에서 실천하는 연구·전시·퍼포먼스 등의 여러 활동으로 뒷받침된다. 나보령은 『전쟁 같은 맛』에 나타난 ‘유령’의 의미를 추적한 논문에서 이 책이 쓰여지기 전에 진행된, 연구와 예술을 넘나드는 다층적인 실천인 퍼포먼스·전시·좌담 등을 언급한다. 2002년 12월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초연한 퍼포먼스 텍스트인 「혀들의 꿈」(“Dreaming in Tongues”)은 “미국 유학생, 해외입양아, 기지촌의 성노동자, 일본군 위안부 등의 목소리를 오가면서, 트라우마적 기억이 개별 주체를 넘어 여러 시공간 속의 디아스포라의 몸(혀)들을 통해 전달되는 양상”을 표현했고, 앞서 언급한 전시 「어제 안에 오늘」에서는 “엄마와 관련된 일화”와 “구술사에서 발췌한 내용”을 연결시킨 공연 「6.25: 우리 안에 흐르는 역사」를 전시와 함께 선보였다는 것이다.22)

그런데 제도권 아카이브 내에서 유령화된 존재들을 드러내기 위한 새로운 앎의 공통장 형성 과정에 ‘음식’이 매개로 작동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조는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의 “서브 텍스트에는 엄마가 있었다”고 하면서 어떤 구조와 시스템이 엄마를 성산업에 진입하게 했고 무엇이 엄마의 자존감을 질식시키고 정신을 짓밟았는지를 찾아가는데,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매개로 ‘음식’이 등장한다(조/327면). 장영은은 『전쟁 같은 맛』의 분석에서 삶과 공존하는 페미니즘적 공부의 특성을 음식과 함께 진전되는 서사에서 찾으면서 이 특성을 통해 자기서사가 “모녀서사”가 된다고 제안한다.23) 이때 모녀서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통해 혈연적 가족관계에 갇히지 않는 다른 시공간의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 학살과 전쟁 속 여성들의 경험 등으로 확장되어간다. 예를 들어 엄마는 올케가 준 분유를 거부하면서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라고 단언한다. 이 말은 “죽은 엄마의 시신 옆, 흙길 바닥에 나앉아 있는 아기들.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미라처럼 붕대를 감은 여자들의 모습. 미군기가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아이를 잃은 노근리 학살 생존자”로 환유적으로 연결된다(조/39~40면). 

이처럼 『전쟁 같은 맛』은 혈연적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이지만, 그 혈연적 가족관계에서 공백으로 남았던 아시아 유민 여성의 외마디 말과 감정적 깊이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한 취약한 존재들에게로 연결되며 혈연적 가족관계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포스트메모리의 특성은 엄마와 같은 존재들의 경험을 유령화한 제도권 아카이브와 지식체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앎의 공통장을 모색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2-2.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친밀성의 아이러니와 ‘카메라’를 통한 포스트메모리 

양영희 감독은 재일조선인 2세로서 가족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어왔다. 「디어 평양」(2006)은 아버지, 「굿바이 평양」(2011)은 조카 선화, 「가족의 나라」(2013)는 북으로 간 오빠들,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는 제주4·3 생존자인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재일조선인 가족 속 젠더 규범이 포스트메모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재일조선여성이 겪는 복합차별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인종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기 위해 유민 가족 내부의 젠더 규범은 ‘전통과 정체성의 보호’라는 이유로 강화되며, 이는 재일조선여성에 대한 복합차별로 나타난다.24) 양영희의 다큐와 글은 재일조선여성이 놓여 있는 이러한 복잡성을 인식하면서도, 혈연 중심적인 가족 및 민족공동체 속 젠더 규범과 여성 차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보여준다. 또한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 속 공백이었던 재일조선인의 역사뿐 아니라, 그 공백 속에서도 다시금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로 남겨진 영역과 재일조선여성의 경험을 묻고 기록한다. 

특히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이하 『카메라』)는 혈연적 가족관계에 기반해 시작된 포스트메모리가 가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확장되는 순간들을 담는다.25) 양영희는 자신이 가족에 대한 다큐를 찍게 된 것은 혈연에 기반한 가족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딸, 여동생, 여성, 재일조선인 2세와 같은 주어진 정체성과 젠더 규범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으며,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고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양/31면). 즉 양영희가 생산한 재일조선여성 2세의 포스트메모리는 혈연적 가족의 친밀성에 기반하는 동시에, 바로 그 혈연적 가족의 친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때 혈연적 가족관계에 기반하면서도 젠더 규범이나 민족공동체 등과 거리를 둔 채 묻고 기록할 수 있는 매개로 ‘카메라’라는 장치가 있다. 양영희는 『카메라』에서 딸로서는 가족과 마주하기 어려웠고, “캠코더라는 장치의 힘을 빌려 속내를 숨긴 관찰자, 인터뷰어, 감독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가족의 경험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적는다(양/53면). 양영희는 카메라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픈 상황”을 포착하며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하면서, 이것은 “잔인한 이야기다”라고 덧붙인다(양/11면). 이처럼 양영희는 카메라를 매개로 가족의 위치에서 벗어남으로써 분단체제의 검열이나 국민국가의 인종주의 때문에 솔직하게 물어볼 수 없었던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북으로 오빠)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라고 질문하고, 오랜 침묵 끝에 아버지가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그, 가서……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런 예다(양/92면). 북송사업(귀국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조선인들을 북한으로 집단이주시킨 정책으로 양영희의 오빠 세 명도 이때 모두 북으로 보내졌다. 이 장면이 담긴 「디어 평양」이 공개되자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은 양영희에게 사과문을 쓰라고 강요했고, “이를 무시하자 북한 입국을 금지”했기에 2005년 이후 양영희는 북에 있는 친척과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며, 어머니는 항의전화를 받거나 친하던 사람들과 멀어지기도 한다(양/94면). 혈연적 가족관계이기에 가능한 포스트메모리적 다큐였지만, 이 때문에 양영희는 가족과 단절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도 이러한 질문과 장면이 등장한다. 재일조선인 소설가로서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위치에 있는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이 역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 묘사한 이 장면은 집에 걸려 있던 김일성의 초상화를 치우는 순간이다(양/198면).26) 영화에서 이 장면은 마치 양영희가 독자적으로 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카메라』에서 어머니의 판단이었음이 드러난다. 어머니와 가족이 받을 비난과 압박을 걱정해 영화에서는 그렇게 편집했던 것이다(양/199면). 이처럼 북에 있는 가족과 어머니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하면서도 이 장면을 삽입한 이유에 대해 양영희는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지만, 이러한 장면을 넣으려면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양/198면). 혈연적 가족의 고통을 그려내기 위해서 혈연적 가족과 멀어져야 하는 아이러니와 함께 양영희 감독의 포스트메모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다큐를 찍는 것이 가족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양영희는, 누군가를 찍고 구술을 들을 자격이 혈연적 가족이라고 해서 쉽게 담보되는 게 아님을 다음과 같은 장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양영희 감독은 조카 선화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데,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은 선화와 여섯 살 때 갑자기 오빠들을 북으로 떠나 보낸 자신이 동일한 상실을 겪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양/113면). 청소년이고 여성이며 양영희가 분신처럼 여기는 선화는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의 폭력성과 표현성의 경계를 섬세하게 되묻게 하는 대상이다. 「굿바이 평양」에는 선화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면이 암전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카메라』에서 이 장면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고모, 카메라 꺼. 셧다운! 셧다운! 갑자기 선화가 캠코더를 끄라고 말했다. 비밀스럽고 심각한 상황인 걸까. 심장이 멎을 듯 바짝 긴장했다. 나는 캠코더를 껐다.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낼지 상상도 안 갔다. 

“고모는 지금까지 어떤 연극을 봤어?” 선화는 호기심 가득한 생기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주 일반적인, 사건성이라곤 없는 평범한 질문에 맥이 빠졌다. (…) 사춘기 소녀가 이렇게까지 위축되어 살아가야 하는 감시 체제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민감하게 상황을 의식하는 아이에게 계속 렌즈를 들이댄 나의 무신경함이 부끄러웠다. (양/132~33면, 인용자 강조)

다큐에 찍히는 것의 위험에 대해서 어린 선화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이 장면은, 카메라를 통해 찍고 인터뷰하는 내용뿐 아니라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찍히는 대상에게 야기할 수 있는 고통을 보여준다. 이 장면 이후 양영희는 선화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

양영희가 “가족 영화를 만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하듯이(양/7면), 동아시아 냉전과 분단체제 속에서 유민 가족의 경험은 의도치 않아도 북한체제에 대한 거부가 되고, 일본의 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한 저항이 되고, 재일조선인의 고통에 오랫동안 무관심했던 한국에 대한 비판이 된다. 혈연적 가족관계의 내밀한 경험을 파고들수록 오히려 혈연적 끈들에서 차단되는 이 아이러니는 혈연적 가족관계에 근거한 폐쇄성을 내파하고 새로운 해방의 공간을 꿈꾸게 한다. 양영희는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며, “그런 실감이 나를 새로운 해방구로 이끈다”라고 쓴다(양/7면). 이때 새로운 해방구란 혈연적 가족관계의 가장 내밀하고 깊은 곳으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외부, 즉 혈연적 가족관계 속에서 강요되는 젠더 규범이나 분단체제의 검열, 인종주의적 차별을 벗어난 포스트메모리의 가능성과 연결돼 있다. 

2-3.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 생활사의 재해석과 ‘인터뷰’를 통한 포스트메모리 

박사라의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이하 『가족의』)는 재일조선인 친척의 제주4·3, 밀항, 오무라수용소 등의 경험을 인터뷰하여 쓴 생활사 연구서다. 그러나 이 책은 ‘연구서’로도 혈연적 가족관계에 고착된 ‘포스트메모리’로도 정의될 수 없는 특징들을 담고 있다. 

『가족의』의 구술은 혈연적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일본사회에서 “좀 ‘별난’ 사람들”(박/11면)로 여겨지는 친척들의 이야기를 유민 여성 3세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듣고 기록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부여받아온 아시아 유민 여성 3세로서의 고착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비판적 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재일조선인 공동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인척 속에서 자란 박사라는 자신이 “글을 쓰거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모조리 ‘재일 코리안 3세 여자아이’의 글이고 이야기”로 취급되었다고 말한다(박/40면). 그래서 박사라는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아이, 젊은이, 여성, 소수자를 운동에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일본인 (특히 남성) 어른이 혐오스러웠”고, 오히려 학문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박/42~43면). 

학문적 올바름이 무엇이고 어떻게 ‘공백’으로 남은 유민 공동체의 경험에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박사라는 기존의 사회학, 구술사, 생활사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구술을 얼마나 해야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 구술의 사실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 구술자와 편집자의 의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박/26~27면). 같은 맥락에서 “문화기술지” 방식에도 비판적인데, “인터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기술하면 큰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박/31~32면). 이 고민 속에서 박사라는 『가족의』에서 재일조선여성 3세인 자신과 연구자로서의 자신,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그 차이를 드러낸다. 가족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학술적 언어가 없다는 이유로 구술 내용을 연구자가 맘대로 해석해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사라의 책은 혈연적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구술을 진행하지만, 구술에 대한 자의적 편집과 해석을 경계하면서 혈연적 가족관계 속에서나 학술적 언어로 말해질 수 없었던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한다. 

구술 과정에서 경험하는 갈등, 어긋남, 흔들림, 후회, 고민 등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를 가시화하는 방법이다. 즉 구술 과정을 편집한 뒤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다이내믹한 관계를 표현함으로써 글을 읽는 독자가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관계를 계속하여 염두에 두면서 구술의 진위나 해석의 타당성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각 장의 시작은 구술 대상자의 이력으로 시작하는데,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구술자의 성격과 옷차림 말투까지 마치 소설 속 인물을 묘사하듯이 자세히 쓴다. 

이연규(1925년생, 2011년 사망. 몸이 작고 성격이 유순하고 웃는 얼굴이 귀염성 있는 고모부), 박정희(1935년생. 이연규의 아내로 아버지의 작은 누나.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장기.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여성), 박성규(1938년생, 2011년 사망. 겉으로 방탕한 이미지를 풍기긴 해도 달콤한 팥소떡을 좋아한다), 박준자(1944년생. 오사카 아줌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모가 화려한 편이다) (박/14면)

구술자에 대한 감정적 정보뿐 아니라 청취자인 박사라와 구술자의 사적인 친밀도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것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이연규 고모부는 친척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었다거나(박/47면), 박정희 고모는 몸이 작고 목소리가 커서 “언제나 고모와 나 사이의 친밀감과 거리를 동시에 느낀다”거나(박/93면) 하는 식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대한 당혹감, 이러한 질문을 해도 되는가라는 망설임과 후회 등을 솔직히 고백하는 장면들이다. 예를 들어 ‘차별’에 대해 물으면서 당시 히가시오사카의 유민 노동자였던 큰아버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2007년 대학교 4학년인 자신의 입장에서 질문하자 큰아버지는 대답을 못하고 당황한다. 이러한 반응을 보면서 박사라는 자신이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고 반성한다(박/188면).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당혹감·흔들림·후회는 박사라가 던진 질문의 의도와 어긋나는(더 정확히는 아시아 유민 여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답을 하는 박준자 고모를 인터뷰할 때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재일조선여성 3세의 포스트메모리가 지향하는 것은 아시아 유민 가족 내부의 “몰라”와 “공백”을 역사화하는 일이다. 박사라는 자신이 “그들의 기억을 계승할 수 없기 때문”에야말로, “우리 친척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그들이 ‘몰라’ ‘말할 수 없어’라고 말한 부분을 역사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한다(박/284면). 혈연적 가족관계를 근간으로 한 구술이라 하더라도, 즉 아무리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의 경험은 그 이후 세대에 의해 온전히 재현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 불가능성은 박사라에게 부정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박사라는 ‘몰라’라는 외마디 말에 담긴 ‘공백’으로 남은 경험을 역사화하고, 아시아 유민 여성의 수치와 무지를 새롭게 의미화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지향을 통해 박사라는 재일조선여성들의 공백뿐 아니라 “역사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숱한 공백이 있을 것”이라는 성찰에 도달한다. 

식민지에서 귀환한 일본인이나 장애인, 피차별 부락 출신자가 살아온 전후의 세계나 지금의 세계는 내게 공백이다. (…) 그 세계는 나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 즉 애당초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세계다. 당연하게 그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왔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박/286면)

이처럼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의 어긋나고 흔들리는 감정적 관계를 가시화함으로써 『가족의』는 혈연적 가족관계에 머물지 않고 성찰을 거듭하는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를 시도한다. 

3. 아시아 유민 여성의 글쓰기와 ‘비정상성’의 자리매김: 조현병·치매·수치·무지

혈연적 가족관계에 근거하고 있을 때조차도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내재적으로 폐쇄적 가족주의와 젠더 규범을 파열시키는 측면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파열된 틈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시아 유민 여성의 ‘비정상성’이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서는 조현병이나 치매 같은 병, 매춘부나 무지에 대한 수치 등이 핵심 주제로 나타난다. 『전쟁 같은 맛』의 ‘엄마’는 조현병자이자 매춘부였으며 이는 딸에게 깊은 수치를 물려준다. 『카메라』에서 ‘어머니’의 치매는 제주4·3에 대한 증언과 함께 악화되어간다. 『가족의』에서는 ‘고모’들의 대문자 역사에 대한 무지와 글자를 모른다는 수치가 강조된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것들, 그러나 사실은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기존 아카이브 속 공백을 지시하는 상태들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성’ 그 자체로 의미화할 수 있을까?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안고 조현병을 병리화하지 않고, 매춘부를 낙인찍어 배제하지 않고, 무지하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이 지닌 앎을 가시화하고, 수치심을 내면화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포스트메모리의 치유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3-1. 트라우마의 ‘유전’과 매드 포지티브 서사 전략: 조현병과 매춘부 

『전쟁 같은 맛』은 세 번에 걸친 엄마의 변화를 조명하는데, 각 변화의 계기에 매춘부와 조현병이라는 낙인이 작동한다. 첫째, “카리스마 넘치고 노련한 미시 정치가”(조/17면)로,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주민을 보살피고 인정투쟁을 하는 엄마다. 둘째, 조현병 진단을 받고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은 엄마다. 세 번째는 조와 요리를 하며 엄마가 관통해온 트라우마적 경험을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앎을 추구하는 엄마다. 조는 조현병과 매춘부라는 낙인을 찍어 엄마를 병리화하거나 수치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서 벗어나, 엄마의 삶 속에 ‘비정상성’이라고 불리는 이 모든 상태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조의 이러한 서사 및 담론 전략을 ‘매드 포지티브’ 개념으로 재인식하고,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낙인·수치와 직면하고 치유로 나아갈 수 있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의 서사 전략을 모색하려 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서사 전략은 조현병 발병의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는 조현병을 유전적 요인에서 찾는 인종주의와 환경적 요인에서 찾으면서 육아 책임을 여성에게 묻는 가부장제 모두를 거부하기 위해서다. 대신 조는 엄마가 아시아 유민 여성으로서 경험해온 역사적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짚는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속 가난, 미국 워싱턴주의 시골 마을 셰헤일리스의 낮은 소수인종 비율, 성폭력이 만연했던 셔헤일리스 그린힐 소년원에서의 야간근무, 기지촌 여성을 향한 한국사회의 혐오, 유일한 보금자리였던 할머니의 죽음 등이 그것이다(조/242면). 그중에서도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이자 아메라시안으로서 조가 주목하는 것은 미국 중산층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적 차별이 조현병을 발병 또는 악화시켰을 가능성이다. 조현병이 발병한 해에 엄마는 “이 동네 사람 다 나를 노리고 있어”라고 말하는데, 조는 엄마의 이 말이 셔헤일리스의 인종주의적 현실을 반영할지도 모른다고 해석한다(조/91면). 

엄마의 말을 조현병의 증상으로 병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종차별에 대한 민감한 비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드 포지티브 전략과 연결된다. 라셰드(Mohammed Abouelleil Rashed)는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구별해내는 것, 건강으로부터 질병을 구별해내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모호성”과 “증상의 비명확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논한다. 건강과 질병을 구별하는 경계는 모호하며, 조현병의 병리적 증상으로 여겨지는 “환청, 사고주입, 수동성 현상”은 “비환자 집단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조현병, 양극성 장애, 혹은 광기” 등을 비환자 집단과 구별되는 특성으로 볼 근거가 취약하다는 주장이다.27)

이러한 사유는 매드 프라이드 운동(Mad Pride Movement)과 관련된다. 1993년 토론토에서 최초로 개최된 ‘정신과 생존자 프라이드 데이’에서 ‘매드’와 ‘프라이드’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함께 쓰인다. 이에 대해 핑클러(Lilith Finkler)는 정신과 “생존자들이 게이 혹은 레즈비언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유사한 억압을 공유”하기 때문에 ‘프라이드’라는 용어를 쓴다고 밝힌다.28) 또한 핑클러는 정신과 생존자들이 “광인이나 흑인이나 성소수자 집단”이 그러하듯이 “‘매드’라는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29) 정신과 생존자의 정체성 인정 요구에서 더 나아가 “매드 포지티브” 접근법은 ‘광기’로 여겨지는 상태의 특이성을 긍정한다. “감각인식이 고조되는 상태, 강렬한 음식 감각과 시각적 자극,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복잡성과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등은 정신병리학에서는 “감각적 왜곡, 환각, 망성적 지각”으로 분류되지만 “활동가들에게는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30)

조가 엄마의 망상이나 환청으로 여겨지는 불평들을 조현병의 증상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를 타진하는 것은 매드 포지티브 접근과 유사하다. 

1986년 3월에 이미 나는 엄마의 불평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취급하는 것을 내면화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엄마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 여성이 진실을 말했을 때 광기라고 이름 붙여져 침묵당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213~14면)

엄마의 불평을 ‘망상’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을 가능성을 묻는 작가의 질문은, 여성들이 진실을 말할 때 ‘광기’ 또는 ‘미친년’으로 분류되었던 역사와 연결되며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이처럼 『전쟁 같은 맛』에 나타난 엄마의 ‘조현병’이라는 비정상성은 글쓰는 여성들에게 부여된 ‘미친년’이라는 낙인과 호응하면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속에 비정상이라고 치부된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 번째 서사 전략은 조현병을 병리화하는 동시에 범죄화함으로써 승승장구한 의학산업, 감옥-산업 복합체, 인종주의 담론의 카르텔을 밝히는 것이다. 조는 이러한 카르텔의 결과, 블랙파워운동(Black Power Movement) 활동가들의 저항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조현병의 병리화 및 범죄화 담론이 활용되었음을 언급한다. 

나는 정신의학이 감옥-산업 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와 깊이 연루되어 있어서, 항정신성 약물이 감금 통제에 이용되며 정신질환이 점점 더 범죄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무지했다. (…) 할돌은 종종 블랙파워운동에 연루돼 정신과에 수용된 인사들의 저항 행동을 막기 위한 화학적 억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조/299~300면)

진정효과가 있는 약물 할돌이 블랙파워운동 활동가의 저항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과 엄마가 할돌과 멜라릴을 거부했던 것 사이에는 여러 층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두 경우를 바로 연결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조는 엄마가 할돌과 멜라릴을 먹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 했던 말을 자신이 무심코 넘겨버렸음을 반성한다(조/301면). 매드 프라이드 운동의 핵심은 “자신들의 경험이 정신의학의 영향 아래 의료화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병리화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더 이상 ‘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게 하는 데 있다.31)반면 할돌과 멜라릴을 먹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증상을 의료의 대상이자 범죄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자 자신의 의지를 빼앗는 통제를 허용하는 것이다. 『전쟁 같은 맛』은 엄마에게 조현병이 발병한 원인을 복합차별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찾는 동시에, 그 조현병을 병리화·범죄화하는 것이 의료산업 및 감옥-산업 복합체와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 속에 비정상성으로 분류된 존재들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 속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성’은 엄마의 것이자 딸의 것이기도 하다. 조현병과 매춘부라는 낙인이 야기한 수치와 자기혐오는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딸인 조는 어떻게 트라우마·낙인·수치·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수치와 자기혐오의 양상들은 “내가 쓸모없게 느껴져서 그래”라는 말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는 엄마의 “‘쓸모없다’라는 말이 내 정신을 파고들었고, 질병처럼 내 안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조/313~14면). 조는 “쓸모없다고 느낄 정도로 엄마의 정신을 산산조각 낸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가고, “어머니는 매춘부였어요. 그리고, 쓸모없어”라는 두 문장이 어떤 연관을 갖는지를 고심한다(조/324~25면). 그리고 대중매체에서 ‘성노동’에 대한 모욕적인 말과 사회적 낙인이 반복되고 있으며, 특히 그 혐오 발언이 사회적 구조가 아닌 개인을 향해 있음을 깨닫는다. 

모런은 『여성의 수치심』(The Female Face of Shame) 「서문」에서 수치심은 “자아-삭제”를 심화시키며 각 개인은 “날것 그대로의 혐오와 함께 남겨진다”라고 말한다.32) 외부로부터 주어진 폭력과 배제로 인해 생긴 수치심이 주체를 파괴한 상태는, 엄마가 가상인물인 오키/옥희의 명령에 따라 상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음식과 요리는 엄마와 딸이 사회에서 주어진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여성적 앎과 연결을 형성해갈 수 있는 공통장 형성의 매개로 작동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음식에는 인종주의적 차별과 배제의 미시적 통제장치들이 각인되어 있다. 수치심을 내면화하여 자아를 삭제당한 엄마는 마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외국인 혐오자들의 말을 따르는 것”처럼, “자기 존재를 짓이겨 없애고 無가 되어 사라지고 싶어하는 것”처럼 상한 음식들을 먹는다(조/20면). 상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외부로부터의 폭력과 차별이 어떻게 수치와 자기혐오로 내면화되는가를 보여주는 선명한 예다. 

이러한 수치와 자기혐오는 허시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들을 통해 밝혀냈듯이,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진다.33) 월린(Mark Wolynn)은 홀로코스트뿐 아니라 “가정폭력, 학대, 근친상간, 살인 등 가정 안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당사자뿐 아니라 이후 세대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불안감, 우울감, 강박관념, 정체 모를 두려움” 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해 그 윗세대”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34) 조는 네다섯 살 무렵에 어린아이의 유령이 자신을 찾아왔던 기억을 상기하며, 엄마의 트라우마가 자신에게 전이되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솜털 같은 하얀 털이 피부를 덮고 있었고 이마 한가운데엔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이 유령은 “내 무의식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경험을 연구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조/418면). 이것은 조 자신은 경험한 적 없지만, 전쟁과 학살의 생존자였던 엄마나 외할머니가 목격한 죽음의 트라우마가 조에게 전이되어 어린아이의 유령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욱이 이러한 트라우마는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인 조가 겪는 현재의 복합차별과 일상적인 마이크로 어그레션 속에서 심화된다. 특히 수치심은 엄마-딸 관계에서 “어머니가 여성을 폄하하는 사회적·문화적 기대에 부응하도록 딸을 훈육할 때” 더욱 심화된다.35) 여성혐오적인 사회 규범을 어머니가 딸에게 교육시킬 때, “친밀한 관계는 여성이 수치심을 경험하는 비옥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36) 조는 엄마가 “순희야, 너 순진한 내 딸 맞지?”라고 할 때마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힌”다(조/92면). 아시아 유민 여성과 아메라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성장한 조는 고등학교 2학년 테니스 시간에 성폭행을 당했고,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던 경험을 했으며, 그해 가을 충동적으로 자살시도를 할 뻔했고, 그 후로도 빈번히 아시아 유민 여성을 표적으로 한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어왔다. 따라서 엄마가 “순진한 내 딸 맞지”라며 ‘순희’라는 애칭으로 자신을 부를 때마다 자신이 당한 성폭력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수치를 느끼는 것이다(조/94면). 이처럼 수치심이 엄마에게서 딸로 전이되는 배경에는 여성혐오적 사회문화가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서 딸로 이어진 트라우마와 수치심은 단지 부정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이 원동력이 되어 “개인적·집단적 책임과 사건의 증인이 될 필요성을 인정”하게 하며, 이때 수치심과 트라우마는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짐”이 아니라 트라우마적 역사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여성성, 자기 정체성과의 개인적 투쟁”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꿈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치유하고 또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37)

이처럼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당사자가 생물학적 수명을 다해가는 현재,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역사 속 공백으로 남겨진 비정상성에 존재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서사 전략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비정상성에 존재의 자리를 마련하는 포스트메모리는 이전 세대에서 이후 세대로 이어지는 트라우마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앎과 인식의 공통장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3-2. 제주4·3 증언과 함께 시작된 치매와 아이러니한 해방 

양영희의 「수프와 이데올로기」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양영희의 어머니는 대동맥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제주4·3의 기억을 말하기 시작한다. “제주 관덕정 마당 뒤에서 말이 달려와서 남자애를 걷어찼대. 그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지. 그다음엔 모르겠어. 무서웠어. 사방에서 빵빵 총소리가 들리니까. 제주 아낙들이 많이 죽었어”(양/145면). 이는 양영희의 말처럼 “어머니가 제주4·3 사건의 생존자임을 강렬하게 알리”며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양/146면).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 속에 병과 나이 듦이 결부되면서, 공백으로 남겨졌던 이야기가 기록되기 시작하는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양영희는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간 침묵하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쓴다. 그 후 어머니가 대동맥류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급격히 쇠약해졌고, 병원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양영희는 “어머니가 삶에서 마지막 할 일은,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것을 내 카메라 앞에서 말해주는 거 아닐까? (…) 아들을 북조선에 보낼 때의 진짜 기분이나 평양에 갈 때마다 느낀 거, 아무거나 좋아요. 어머니의 역사를 남기자”고 생각했고, 어머니도 “너 카메라로 찍어서 어머니 영화도 만들래?”라고 이야기했다고 창작 동기를 설명한다(양/146~47면). 

이처럼 양영희의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아시아 여성 유민 1세인 어머니의 이야기는 제주도 출신 재일조선여성들의 이야기, 또 어머니의 병과 함께 시작된다. 이는 기존 재일조선인 서사에서도 공백으로 남겨졌던 이야기로, 그중 하나가 제주4·3에 대한 여성의 기억이다. 예전에 어머니는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4·3은 특별해.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니까!”라면서 마치 “누군가에게 감시나 도청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경계”했었는데, 갑자기 구체적인 기억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양/147~48면). 제주4·3 이야기는 오사카 이카이노구에 정착한 제주 출신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양/147면). 고씨 아줌마는 제주4·3 때 어머니보다 “더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한국을 지지하는 남편과 싸워가면서 조총련 부인부 활동을 그래 열심히 했”고 “남편이 반대해도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냈”다고 한다(양/148면). 그 밖에도 야쿠르트 아줌마, 고양이 아줌마, 비녀 할망 등에 대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양영희의 어릴 적 기억들을 불러온다(양/24면). 또 양영희는 어머니가 겪어온 일본사회에 의한 차별과 혐오의 경험을 듣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는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외할머니와 거리를 걷다가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치마저고리에 잉크를 뿌리는 경험을 한다. 양영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가 집회나 관혼상제 때마다 민족의상을 입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그 민족의상이 저항적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양/156~57면). 

어머니의 제주4·3의 경험과 이카이노구 여성들의 이야기는 또 한번의 전환을 맞이한다. ‘제주4·3 연구소’가 방문하여 제주4·3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자, 3시간 동안이나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양영희는 “자신의 말을 충분한 지식을 바탕으로 받아주는 인터뷰어에 자극을 받은 어머니의 기억의 뚜껑이 잇달아 열리는 것 같았다”(양/191면)라고 쓴다. 그런데 그 인터뷰가 끝나고 일주일 후부터 어머니의 치매가 악화된다.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는 가족들을 찾기도 하고, 아버지·장남·당신의 남동생을 부르며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 방 안을 둘러보기도 했다. 치매와 제주4·3의 진술이 동시에 심화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는 제주4·3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해서 상기하고 증언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고통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양영희는 어머니의 치매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큐와 『카메라』 양쪽에서 표현의 중심 주제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때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비정상성’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일조선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의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으로 재현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억을 잃어버림으로써 제주4·3의 공포, 일본에서 받은 인종차별의 기억, 마음 졸이며 감당해온 가족들과 민족운동 뒷바라지의 의무감, 북으로 보낸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 등 평생 품고 살아왔던 트라우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양영희는 이런 아이러니한 해방에 대해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서 어머니의 표정은 실로 온화해져 갔다.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망상 덕분에 송금 걱정에서 해방된 것이다. 방북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걱정도 사라졌다. 조울증으로 고통받던 건오 오빠에 대한 기억도, 남편을 잃은 외로움도 날아갔다”(양/192면)라고 쓴다. 어머니는 제주4·3과 같은 트라우마적 기억이나 가족에 대한 것뿐 아니라 남북을 가르는 이데올로기에서도 벗어난 듯이 보인다. 김일성을 기리는 노래를 “잔혹하고 순수하고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가엾고 성숙한 소녀”처럼 부르는 모습을 양영희는 「수프와 이데올로기」 118분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불가사의한 면모가 응축된 장면”으로 꼽는다(양/194면). 

기억을 잃는 순간 편안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은 재일조선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머니에게 부과했던 트라우마와 의무와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가를 반증한다. 또한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노래만이 남을 때, 아시아 유민 여성과 가족들을 산산조각 냈던 이데올로기가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포스트메모리로 기록하여 그 존재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 경험을 기록하고 해석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일이 당사자가 아닌 자 그리고 이후 세대에게 맡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제주4·3을 증언할 수 없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주4·3을 전하는 것도, 북에 있는 오빠들에게 어머니가 북으로 당신들을 보낸 것을 잊었다는 “잔혹한 말”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양영희의 몫이 된다(양/192면). 

대동맥류로 인해 가사노동을 할 수 없는 시간,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시간 등 이른바 생산적이고 정상적인 노동이나 기억이 불가능해진 비정상성의 시간과 마주할 때 어머니는 역사 속 공백으로 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한다. 열정적으로 증언을 한 뒤 치매로 기억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의 포스트메모리가 글쓰기 안에 비정상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공백으로 남겨진 이야기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서사 형식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포스트메모리로 기록하는 일은 비정상성이나 공백으로 분류된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앎의 공통장과 그 공통장을 통해 세대와 혈연을 뛰어넘는 연결을 만드는 일과 함께 진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3-3. 트라우마의 ‘공백’과 무지·수치의 자리매김 

『가족의』는 재일조선인 경험 속 ‘몰라’와 ‘공백’을 가족의 생활사 인터뷰를 통해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로 쓰여진 포스트메모리다. 그런 만큼 제주4·3 사건, 밀항, 오무라수용소 등 그동안 한일 역사 안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재일조선인의 경험이 고모부 두 명과 고모 두 명의 구술을 통해서 조명된다.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것은 재일조선인의 역사에서도 다시금 공백으로 남은 재일조선여성의 경험이다. 재일조선여성 3세인 박사라는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고 배움이 없는 재일조선여성의 위치에서 오무라수용소, 밀항, 제주4·3의 경험을 다시 쓴다. 

허시는 포스트메모리를 정의하면서 홀로코스트 연구가 페미니즘 이론과 분리된 방식으로 논의되어왔음을 비판한다. 트라우마적 역사에서 성별은 일종의 페티시처럼 아주 잘 보이거나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성별이 지워지거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에도 “페미니스트와 퀴어 읽기”는 “여태까지 말해지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채 남아 있던” 경험이 출현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를 재구축하고 지식의 틀을 바꾸도록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38) 박사라의 생활사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특히 두 고모는 제주4·3, 밀항, 오무라수용소를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경험했거나,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시간을 산다. 박사라는 두 고모의 구술 속에서 대문자 역사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질문의 의도 및 예상과 어긋난 형태로 돌아오는 대답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고모들의 ‘몰라=무지’를 새로운 앎으로 구축하고, ‘수치’를 포스트메모리의 특성으로 자리매김한다. 

먼저 박정희 고모의 경우를 보자. 박정희 고모의 인터뷰는 “얘기가 볶은 콩 튀듯 여기저기 마구 튀기 십상이고 시간순으로 이어지지도 않”아서 이해하기도, 역사적 사건과 관련짓기도 어려우며 지나치게 개인적이다(박/28, 131면). 제주4·3은 “그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박사라의 할머니: 인용자)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마니까 절대로 입 밖에 내면 안 돼요”라고 주의를 주는 장면이 보여주듯이, 트라우마로 점철된 경험이다(박/263면). 이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임에도 박사라가 제주4·3에 대해 묻자 박정희 고모는 “별일 아니었어, 위험한 일은 겪지 않았어. 기억나지 않아”(박/106면)라고 답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했던 “4·3 사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으며, 무서웠거나 위험했다는 기억조차 없었기 때문에 박사라는 자신의 “물음 자체가 틀리지 않았을까 재고”하기까지 한다(박/106면).

제주4·3의 기억만이 아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동양판으로 불렸던 오무라수용소에 대해서도 예상을 비껴가는 대답이 돌아온다. 박정희 고모는 오무라수용소를 때가 되면 “고봉밥”이 나오고 같은 처지를 나누며 공감을 얻었던 “퍽 재미있었던” 곳으로 기억한다(박/113면).

이 고모랑 비슷한 사람들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 이렇게 왔다! 얘기꽃이 피어나지. 힘들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았어. (…) 말이 형무소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다들 이런 다다미 위에 앉아서 놀았어. 그 뭐냐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지. 밥도 배불리 실컷 먹을 수 있고 말이야. 눈꼽만큼도 고생하지 않았어. (박/114면)

그러나 박정희 고모가 오무라수용소에 갇혔던 시기는 대략 15살 전후이며, 『오무라 입국자 수용소 20년사(大村入国者収容所二十年史)』를 참고하면 1951년에는 소요사건과 항의집회가 있었고, 1952년에도 피수용자 50명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6월에는 참여자가 150명으로 늘어났던 때였다.39) 박사라는 이 두 오무라수용소 경험이 만약 다 사실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사실’”이며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박/116면). 그리고 다른 수용자에게는 오무라수용소가 집회를 벌일 만큼 혹독하게 느껴졌지만, 애초에 삶이 혹독했던 고모에게는 퍽 재미있고 좋은 환경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박/116면). 조경희는 박정희 고모의 구술과 함께 15살에 오무라수용소에 수용되었던 A씨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오무라수용소가 일시적인 피난소처럼 서사화되었던 역설적 상황은 “수용 경험 이전과 이후의 삶이 폭력과 빈곤에 가까울수록 수용소(asylum)는 상대적으로 피난소(asyl)로 서사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40) 이를 통해 “국민국가 체제에 포섭되지 못하는(하지 않으려는) 신체를 억압하는 장치”였던 오무라수용소를 비판하면서도, “젠더 및 연령 등에 따라 수용소가 얼마나 다층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지”를 고찰할 수 있게 된다.41)

마찬가지 해석을 고모의 제주4·3 증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제주4·3에 대해 고모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제주 “4·3 사건의 심각함을 은연중 드러내 주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오무라수용소가 퍽 재미있고 배고프지 않고 좋았다는 말은 박정희 고모의 그간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역으로 말해준다. 이처럼 고모의 구술에서 제주4·3의 ‘공백’이나 오무라수용소의 고통에 ‘무지’한 것처럼 보이는 지점들은, 여태까지 제주4·3의 경험과 오무라수용소 경험이 이에 저항하거나 비판적일 수 있었던 남성의 경험과 해석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온 게 아닐지 성찰하게 한다. 

한편 박준자 고모의 제주4·3과 밀항에 대한 구술은 재일조선여성 안에서도 연령, 계급, 교육 정도 등에 따라 사건에 대한 경험과 감정이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배움이 적고 나이가 어렸던 박준자 고모의 인터뷰가 나오는 5장은 부제부터 “말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달려 있어 의미심장하다. 다른 장들이 인터뷰이의 캐릭터 묘사부터 시작하는 데 비해 이 장은 박준자 고모와의 인터뷰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해준 부정적인 말로 시작한다. 박성규 큰아버지는 “무슨 얘기를 듣겠다고 그러니? 그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라고 했고, 아버지는 “도시코 누나가 옛날 얘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한다. 고모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 10형제 중 여덟째인 박준자 고모를 다들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박/205면). 

그런데 박준자(도시코)와의 인터뷰는 박사라의 예상을 가장 많이 비껴간다. 그 대답들은 사적인 것, 역사가 아닌 것, 무지한 것, 수치스러운 것, 하찮은 것 등 이른바 ‘비정상성’을 지닌 것들이지만, 재일조선인 역사뿐 아니라 재일조선여성의 역사에서도 좀처럼 드러나지 못했던, 가부장제로 깨진 여성들 사이의 우정, 제주4·3의 폭력과 연결된 가정폭력, 배우지 못한 수치와 고통을 남성·엘리트·국가 중심적 경험을 파열하듯 펼쳐놓는다. 특히 박준자 고모의 대답은 요약할 수 없는 어투와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직접 인용으로만 그 함의가 전달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얽혀들면서 반복되고,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의미가 덧붙여지며, 때로는 매우 감정적이지만 때로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침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적 구술은 익히 주어진 지식체계를 흔들면서 다가온다. 

먼저, 박사라가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했어요?”라고 질문하자 갑자기 재순이라는 친구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결혼·출산·육아로 우정을 지속할 수 없었던 두 여성의 생애사다. 어린 시절 고모는 학교에도 다니고 얼굴도 예뻤던 재순이와 친구가 되지만, 재순이가 먼저 결혼하면서 우정은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재순이가 결혼에 실패하고 병을 얻어 제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둘은 재회하지만, 고모가 출산과 함께 일본으로 가면서 다시금 헤어진다. 

그런데 딸아이가 생겨서, 또 헤어졌어. 일본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 우리 집에 말이야. (…) 나도 오라고 하고야 싶었지. 집에 와서 남편한테 말했어. 친구를 이리로 오라고 하고 싶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렇게 할 만큼 한가하냐고 화를 내더라. 그러니 어디 부를 수가 있어야지. (…) 내 마음이야 여기 오라고, 부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 (박/208~209면)

이에 박사라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화제를 돌리고 싶어 역사 이야기”를 묻는다(박/209면). 그러자 또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구술자와 청취자 사이에 어긋난 대화가 지속된다. 

둘째로, 고모는 역사적 질문에 대해 생활의 구체성으로 답한다. 제주4·3의 경험을 듣기 위해 어릴 때 험한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었냐고 묻자, “전쟁이 끝나고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힘들었지. (…) 배가 고팠던 일은 똑똑히 기억해”(박/209~10면)라더니 곧이어 배 팔고 신발 팔고 돼지 키우는 구체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밀항에 대해 묻자,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배 바닥에 타고 밀항으로 왔”으며, 산 어딘가에 두어명 씩 살금살금 내렸다면서, “다들 같이 엮여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박/220~21면). 박사라는 “다들 엮여 있다”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밀항은 본인과 브로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뱃사람, 숨겨준 집주인, 밀항선을 묵인해준 사람, 도착한 지역 사람 등의 얽힌 관계 속에서 가능했음을 깨닫는다(박/224면). 

셋째로, 제주4·3에 대한 질문에 고모는 가정폭력에 대한 언급으로 답한다. 제주4·3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자 박사라는 “무서운 일은 당하지 않으셨어요?”라고 질문한다. 그러자 고모는 당시 자신이 묶고 있던 박난희 고모 집에서 고모부가 휘두른 가정폭력이 가장 무서웠다고 답한다. 박난희 고모는 생계를 위해 경찰의 눈을 피해 밀주를 만들었는데, 고모부가 그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언니가 땀 흘려 가며 열심히 장사하려고 애를 썼어.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길로 콱 차는 거야. 내가 직접 본 적도 있어. 그 일은 지금도 기억해. 언니를 때리는 모습, 발길로 콱 차고, 얼굴을 철썩 때려. 그러면 코피가 흐르잖아. 난 울었어. 울었는데,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박/215~16면)

박사라는 고모들이 제주4·3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가 “공포는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박/215면). 이는 식민지배 후 냉전질서하에서 일어난 제주4·3 사건의 폭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사유하게 한다. 아시아 유민 여성 3세가 쓴 포스트메모리가 지닌 의미는 이처럼 예상을 빗나간 재일조선여성의 대답과 마주할 때 선명해진다. 즉 무지라고 일컬어지고 공백으로 여겨져왔던 아시아 유민 여성의 구체적 삶이 발화되고 표현의 자리를 얻을 때, 국가폭력과 가부장적 폭력이 만나는 지점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회의 박탈과 지속적인 폭력은 고모에게 깊은 수치심을 심어준다. 박준자 고모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월사금이 없어서 쫓겨났고, 박난희 고모가 아이를 낳자 애보기를 해야 했음을 아프게 기억한다(박/212면). 글을 못 읽는다는 것은 박준자 고모에게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깊은 수치심을 심어준다. 

난 글자 몰라서 자살하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 (…) 글자 몰라서 고통스러웠거든. 병원 갈 때, 갓난아기 업고 전차 다니는 철로에 간 적도 있어. (…) 글자를 모르면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 남에게는 말할 수도 없어. 그런 식으로 고생하고 살아온 고통보다, 글자 모르는 고통은 뭐라고 차마 말로 할 수가 없어. (박/238~39면) 

고모는 1969년에 생긴 오사카 최초의 공립 야간 중학교인 텐노지 야간 중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게 되고,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만 해도 그래. 지금은 갈 수 있어. 가슴 콩닥거리지 않고 말이야. 얼마나 기쁜지 몰라. (…)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름도 못 읽으니까. 그런 고통을 누가 알겠어? 아무도 몰라. 남한테 말할 수도 없지. 부끄러우니까. 그만큼 괴로웠으니까 죽을 힘을 다해 학교에 간 거야. (…) 주소와 전화번호도 쓸 수 있어. 예전에는 쓸 수 없었어. 지금은 무엇이든 쓸 수 있지. 저, 막힘이 없으니까. 옛날 일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 글을 알았으면 난 틀림없이 이혼했을 거야. 글자를 모르니까 혼자서는 잘해 나갈 자신이 없었어. (…) 무조건 이혼했을 거야. 내 갈길 찾아 갔겠지. 하지만 글을 모르니까, 마음이 약해서 못해. 세상은 그런 거야. (박/243~45면) 

글자를 못 읽는다는 사실이 재일조선여성 1세들에게 얼마나 깊은 수치, 자기혐오, 자기비하와 같은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를 내면화하게 했는지는 이들의 작문, 수기, 일기 등에 빈번하게 표현된다.42) 마이너 필링스란 자신이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함에 따라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인데, “변하지 않는 구조적 인종주의와 경제상황에 의해 촉발”되고 일상적인 마이크로 어그레션에 의해 심화된다.43) 고모와 같은 아시아 유민 여성들이 글자를 몰라서 경험한 이 고통의 기반에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앎을 풍부하게 갖고 있음에도, 남성중심주의적 지식체계에 의해 ‘무지’로 치부되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느끼게 한 지식구조가 놓여 있다. 

박사라의 생활사 기록은 ‘몰라=무지’와 ‘수치=존재의 삭제’를 어떻게 의미화하고 자리매김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때 기존의 글쓰기와 지적 구조 속에서 배제되어온 무지와 수치가 아시아 유민 여성의 새로운 표현의 장소로 포스트메모리 속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아시아 유민 여성 내부의 연령·계급·배움의 차이로 생긴 경험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그 위계를 넘어 아시아 유민 여성들 사이의 연결을 모색하게 한다. 

4. 근접지대의 공통성과 연결적 포스트메모리: 비/인간 존재들, 피해 속 가해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속에는 다른 이주민이나 마이너리티와의 관계가 자주 등장하며,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관계도 표현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에서 그들과 그 근접지대에 등장하는 다른 유민 및 소수자들, 그리고 비/인간화된 존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아시아 유민 여성이 또 다른 타자와 연결될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허시가 포스트메모리에 천착한 궁극적인 이유와도 연관된다. 허시는 포스트메모리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트라우마적 포스트메모리와 연결됨으로써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때 예로 드는 것이 “미국 노예제, 베트남전쟁,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과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독재정권,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소련·동유럽·중국의 공산주의 테러, 아르메니아·캄보디아·르완다의 대량 학살, 미국의 일본인 수용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도난 세대, 인도 분할 등”이다. 이 언급 속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허시는 “포스트메모리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자신이 바랐던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공감”이었다고 강조한다.44)

이러한 기대를 표현하면서도 허시는 각각의 상황에 대한 포스트메모리를 단순히 ‘비교’함으로써 피해와 고통의 정도를 서로 경쟁적으로 견주는 구도가 될 가능성을 경계한다.44)45) 따라서 여러 곳의 트라우마적 포스트메모리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포스트메모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살핌으로써 세계의 ‘인권’정치 문화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포스트메모리 기술 및 구성의 궁극적 목표다. 허시가 “연결적 전환”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는 것도 당사자 세대보다 넓은 관점을 획득할 수 있는 이후 세대들을 통해 각각의 포스트메모리를 연결하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공통장을 만들어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서사에 다른 지역의 유민 여성이나 마이너리티, 그리고 비/인간 존재들과의 접촉이 나타나는 지점을 포착하려고 한다. 비정상화되고 공백으로 남겨져 있던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권력에 의한 근접성(proximity)과 구별된 근접지대에서 나타나는 공통성(commons)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려는 것이다.46) 이러한 접근은 흑인노예와 동물의 근접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시사받은 바 크다. 부아스롱(Bénédicte Boisseron)은 인종주의(racism)와 종차별주의(speciesism)의 연관성에서 중요한 것은, 흑인성과 동물성을 단순히 비교하여 각각이 갖고 있는 특성과 차이를 ‘비인간’이라는 말로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근접하거나 유사하다고 여기고 근접지대에 위치시켜 배제하는 권력과 제도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47)

이러한 관점을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 적용시켜, 다음 절들에서는 아시아 여성 유민들과 다른 마이너리티 및 비/인간 존재들이 ‘근접지대’에서 만들어내는 연결의 의미를 살펴본다. 특히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가 중첩되는 피해-가해 구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혈연적 가족관계나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포스트메모리의 잠재성을 모색한다. 

4-1. 음식-공통장과 비/인간 존재들: 이탈된 음식과 ‘오키/옥희’의 자리 

『전쟁 같은 맛』에서 음식과 요리는 포스트메모리가 혈연적 가족관계를 넘어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나 비/인간 존재와 접촉하는 근접지대로 나타난다. 아시아 유민 여성, 또 다른 유민들, 마이너리티들, 비/인간 존재들이 접촉하는 이 근접지대에서 미국음식, 한국음식, 인간의 음식 등은 각각의 폐쇄적 범주를 넘어 새로운 의미와 연결을 보여준다. 

첫째로, 미국 남편에게 맞춘 음식이 미국사회에서 아시아 유민 여성이 시민권을 승인받을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하는 경우다. 미국식 음식을 준비해 학교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고 파티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엄마는 “더 이상 낯선 손님이 아니라 새로 온 사람들을 어떻게 환대하는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주인이 되”었다고 회상한다(조/139~40면). 이때 미국음식은 아시아 유민 여성을 인종주의적으로 미국화하는 통제장치가 아니라, 아시아 유민 여성이 인종주의적 동화를 전유하여 위계관계를 전복시키는 수단이 된다. 

둘째로, 엄마가 한국에서 온 다른 이주민들과 근접지대에서 만나 그들을 돕고 그들과 연결되게 하는 ‘김치’를 둘러싼 관계가 있다. 엄마에게 김치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잃어버린 채 몇 주일을 버티게 해준 음식이며, 고향을 떠나 홀로 남겨졌음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며, 새로운 이주민이 올 때마다 ‘함 묵자’면서 그들을 돕는 음식이다. 예를 들어 앤더슨 부인이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게 김치 대신 양배추 절임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엄마는 “아이구, 답답으라!”라며 울음 섞인 한탄을 하고 그 아이들이 “당신이 먹여야 할 입이라는 걸 알아”보며, “잠시나마 그 애들의 잃어버린 한국 엄마가 되”어준다(조/161~62면). 

조는 엄마가 이주민이 올 때마다 김치를 담가주는 것을 보면서 “이토록 섬세한 방법으로 엄마는 미국 가정과 미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의 구세주이고 우리가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담론에 구멍을 냈”다고 해석한다(조/165면).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엄마의 행동은 의도적인 저항행위는 아니었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갈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조/같은 면). 조가 대학에 들어갈 때 엄마는 김치를 싸주고(조/같은 면), 조가 처음으로 김치를 먹는 모습에 기뻐하며 “자 김치 더 무라 그레이스야. 우린 생존자야. 너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어”라고 말한다(조/167~68면). 이처럼 ‘김치’는 근접지대에 위치한 엄마와 이주민들을 연결하고, 함께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공통성’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 

셋째로, 글은 엄마와 비/인간(블루베리·버섯·쑥 등)을 긴밀하게 연관된 존재로 묘사하며, 비/인간 존재들과의 근접지대에서 공통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엄마는 그린힐 소년원에서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하고 낮에는 블루베리, 버섯 등을 채집한다. 블루베리 채집은 스릴이 있을 뿐 아니라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어 주변을 모두 먹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엄마는 원피스와 하이힐을 벗고 “벌목꾼 같은 옷”을 입고 “프로 채집인으로 급부상”한다(조/190면). 

더 흥미로운 것은 엄마와 비/인간 존재인 블루베리, 버섯, 고사리, 민들레 등과의 특별한 교감이다. 이 교감은 엄마 내부에 있는 비/인간적 면모를 끌어내며 자신이 채집하는 대상들과 공통성의 지대를 만들어가게 한다. 엄마는 동북선 기차를 타고 가다 쑥을 발견하면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얼굴을 씰룩”였으며(조/191면), 조현병으로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봄비가 내린 뒤 창밖 나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야생의 기질”이 살아 있어, 숨을 내쉬면서 “곰보버섯, 느타리버섯, 먹물버섯” 등을 속삭이곤 했다고 조는 엄마와 비/인간 존재와의 공통점을 묘사한다(조/194면). 엄마가 공감과 연결을 형성하는 비/인간 존재는 식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엄마는 아버지가 쫓아내려고 한 (볼)쥐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애완동물처럼 먹이를 주고 돌보기 시작한다. 이름이 있냐는 그레이스의 질문에 “글쎄. 나는 그냥 볼쥐[박쥐의 경상도 함경도 방언]라고 불러. 무슨 뜻인지 아니? ‘똑똑한 쥐’라는 뜻이야. 얘는 고양이를 피해서 달아날 만큼 똑똑하거든…….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나를 볼쥐라고 불렀어. 아이구, 답답으라. 우리 엄마 보고 싶네”라고 엄마는 대답한다(조/352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신을 ‘볼쥐’라는 애칭으로 불렀기에, 또 아버지로부터 피신해 살아남았기에 엄마는 볼쥐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조는 엄마의 생각을 “기괴한 망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엄마가 ‘볼쥐’, 즉 다른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회복의 신호로 인식한다(조/353면). 다시 말해 셰헤일리스의 인종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한 그린힐 소년원의 인간사회에서 배제된 엄마는 블루베리, 버섯, 고사리, 민들레, 볼쥐와 공감과 연결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 같은 맛』에는 엄마와 다른 이주자, 비/인간 존재들(버섯·블루베리·볼쥐)의 근접지대가 펼쳐지는데, 이 근접지대의 연결을 증폭/감소시키는 것은 엄마-딸 사이의 요리다. “엄마를 방문하는 일은 마치 1950, 60년대 한국과 조우하는 요리 역사 수업” 같고, “엄마의 요리법은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과거사를 거스르는 주문”과 같으며 그 과정을 통해 엄마의 조현병도 조의 수치도 조금씩 회복된다(조/428~30면). 그러나 근접지대에서 다른 타자와 연결되는 것은 쉽지 않고, 엄마-딸의 요리는 여러 형태로 실패를 거듭하며, 엄마-딸이 새로운 앎의 공통장을 형성하려는 시도도 그러하다. 

먼저 엄마에게 요리를 배우려는 조의 시도를 보자. 고등어와 쑥을 사러 간 조는 생선가게 아저씨의 의심과 혐오의 시선을 느낀다. 생선머리는 먹을 줄 아는데 한국말을 못하는 게 이상한 것일까, 양공주 자식임을 안 걸까, 아니면 순혈 한국인이 아닌데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등 그 시선의 의미를 고민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조는 어린 시절 부산 어린이집에서 네 살 아이에게 당했던 인종차별을 떠올린다(조/39~40면). 이렇게 조에게 미국에서 한국음식을 만드는 것은 미시적인 복합차별에 노출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아시아 유민인 엄마-딸이 만든 요리는 엄마가 ‘한국에서 맛본 요리=원본’로부터 늘 이탈된다. 미군과 결혼한 한인 여성들의 요리를 분석한 여지연은, 그녀들은 한국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없고, 따라서 그들이 미국에서 추구한 한국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한국음식만큼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48) 한국음식을 향한 그녀들의 갈망은 한국음식이라는 원본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탈된 위치”(displacement)에서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는 상상적 고향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49) 나보령도 『전쟁 같은 맛』에 등장하는 음식은 “민족적으로 코드화된 음식”이 아니라, “엄마의 오랜 욕망과 원한, 그리고 소속되거나 향유한 적 없었던 대상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의해 탈코드화된 음식”이라고 분석한다.50) 더구나 함께 만든 음식이 상하거나 엄마가 상한 음식만을 먹거나 하면서 엄마-딸의 요리는 원본에서 이탈되었을 뿐 아니라 불완전한 음식으로 남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이탈된 위치와 불완전성이야말로 엄마-딸의 요리수업이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타자들과 만나게 하고 제도화된 지식에서 벗어난 앎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공통장 형성을 위해 계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쟁 같은 맛』에서 표현되고 있는 엄마-딸의 요리는 정상성에서 이탈되고 불완전한 것이지만, 억압당하고 쫓겨난 존재들 사이에 형성되는 돕고 돌보는 관계를 보여준다. 특히 그 관계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고 미국식 음식, 김치, 다른 이주민들, 블루베리, 버섯, 쑥, 고사리, 민들레, 볼쥐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통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게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아시아 유민 여성과 타자와의 근접지대를 보여줌으로써,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가 타자·마이너리티·비/인간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공통장의 가능성을 연다. 

4-2.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가해성 성찰과 근접지대의 복합성 

엄마와 비/인간 존재 간의 공통성이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었다면,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인 그레이스 조가 다른 유민이나 마이너리티와의 관계에서 갖는 경험은 더 의식적이며 자신의 가해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첫째로, 아메라시안의 이중의식을 내면화한 자신을 자각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중국 놈, 일본 놈.” 남자아이는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짚고 위로 아래로 당기며 찢어진 눈 모양을 만든다. “더러운 무릎, 이것 좀 봐.” 그 애는 엄지와 검지로 자기 젖꼭지를 잡고, 옷을 바짝 당겨 여자 가슴 모양을 흉내 낸다. 나는 당황해서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되받아친다. “난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거든.” (…) 시간이 흐르면서 내 대답은 진화한다. “나는 반 한국인이야.” (…) 수치심은 이미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는 반 미국인이야.” 내가 말한다. “우리 아빤 미국사람이라고.” 시간이 흐를 만큼 흐르고, 나는 엄마를 사라지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조/75~76면)

아메라시안인 조는 혐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인종차별적 혐오를 내면화하고, 미국인이 아닌 어머니를 사라지게 하는 법을 배운다. 친한 친구들로부터 “난 칭크랑 잽 싫어. 걔네는 모든 걸 장악하려 들어. 네 얘기 하는 건 아니야! 너는 괜찮아. 너는 그런 사람들하고 다르잖아”와 같은 혐오 발언을 듣고 인종차별이라고 느끼지만, 자신도 모르게 “반 미국인인 나는 이들(칭크, 잽)과 다르다”고 생각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조/86면). 

둘째로, 친밀한 가족인 아버지로부터 혐오와 차별의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모욕하고 말았던 어린 시절을 가해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상기한다. 세 살 때 흑인 소년이 신문배달을 하러 집에 오자, 조는 반갑게 문으로 달려가 외친다. “‘안녕, 깜**!’ 그게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당황해 소년에게 사과하고 조에게 “누구도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야”라고 야단치자 조는 “‘아빠가 그렇게 부르잖아”라고 반발하면서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타는 듯한 감각이 온몸에 퍼져”왔던 것을 기억한다(조/26면). 아버지는 농담으로 조를 “베이비 몽골로이드”라고 부르곤 했고, 엄마가 아무리 화내고 소리치며 그 말을 쓰지 말라고 해도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능글맞게 웃”으면서 출생증명서에 그렇게 쓰여 있잖냐고 대답하곤 했다(조/27면). 시간이 흐른 후 엄마에 대한 포스트메모리를 쓰면서 조는 이 순간의 자신의 가해성을 고통스럽게 마주한다. 

셋째로, “어머님이 매춘을 하셨어요”라는 말을 듣자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피부 아래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들 수 있다(조/290면). 조는 오빠도 올케도 알고 있었는데 왜 자신은 어머니가 기지촌 여성임을 알지 못했을까 자문하고, 이런 무지에 매춘부에 대한 무의식적 배제나 차별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한다. 이처럼 조는 매춘부였던 엄마에 대해 느끼는 수치심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매춘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엄마를 수치스럽게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이자 아메라시안인 조의 가해와 수치에 대한 성찰은 매우 복합적이다. 이는 조가 구조적인 위치 때문에 가해를 저지를 때조차 피해의 위치와 근접해 있거나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잽)·중국인(칭크)은 조와 인종적으로 근접해 있고, 매춘을 한 존재가 엄마이기에 조는 매춘부와도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된다. 따라서 조는 한편으로는 인종차별을 받는 쪽과 구별될 수 없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차별을 받는 그들과 구별되고 싶어서) 인종차별을 했다는 점을 자각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미시적인 형태로 작동하는, 아시아 유민 여성에게 가해지는 독특한 형태의 혐오다. 앞서 소개한 인용에서 조롱하는 남자아이가 “엄지와 검지로 자기 젖꼭지를 잡고, 옷을 바짝 당겨 여자 가슴 모양을 흉내”내는 경우가 보여주듯 아시아 유민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혐오의 표적이 되며, 인종적 수치심이 성적 수치심과 결합되어 ‘엄마’에 대한 부정도 강화된다. 

따라서 조는 타자들과의 근접지대를 발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들에게 가할 수 있는 가해성도 성찰한다. 즉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사회에 강제적으로 병합”되었기 때문에 “가장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는 존재들인 “멕시코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재일 한국인” 등이 자신과 근접지대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연결성을 느낀다(조/275면). 그러나 아메라시안의 이중적 위치와 아시아 유민 여성이 겪는 복합차별을 경험해온 그녀는 이 근접지대에 위치한 존재들에게 자신이 행할 수도 있는 가해성 역시 성찰한다. 

재일조선여성 3세 위치에서 쓰인 박사라의 『가족의』는 가해성에 대한 성찰이 새로운 공통장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그리지는 않지만, 재일조선인 사회 내부에서도 일상적으로 억압과 배제를 경험한 재일조선여성의 경험을 보여주며, 이는 같은 소수자들 사이에서 재생산되고 내면화되는 차별을 드러낸다. 아래 인용을 보면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한 혐오 발언을 어린 남동생이 누나에게 다시 반복한다. 

원규는 소학교에 들어갔는데, 툭하면 날 놀렸어. 조선, 조선, 발바닥이 좀 이상해. 이러면서 말이야. (…) 그래서 내가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원규한테 발칵 성질을 냈어. 울면서 화를 냈지, 놀리니까. 조선, 그 말이 뭔지 몰라. 나는 일본어, 일본 말을 모르니까. 조선, 조선이라고? 어디가 달라? 그러면 발바닥이 좀 달라, 그러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몰랐어. 학교에 다녀와서는 나한테 말해 줘. 다들 내 얘기를 했대. 그러면서 때리려고 뛰어다녀. 그러면 난 도망갔지. (박/227~28면)

박사라는 이 장면에 대해서 “차별의 뜻을 담은 놀림 말을 남동생이 누나에게 던졌다는 데 나는 놀라고 말았다”라고 적는다(박/228면). 남동생의 혐오 발언은 복합적인데, 먼저 남동생이 외부로부터 받은 인종차별이 남동생에게 내면화되어 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발화 대상이 같은 가족 중 어린 여성이며 친근한 누나였다. 인종주의의 내면화가 민족 간 경계뿐 아니라 같은 민족 안에서 젠더적 경계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다. 

아시아 유민 여성과 다른 마이너리티 및 비/인간 존재의 근접지대에서 일어나는 연결과 가해의 동시성은, 아시아 유민 여성 내부의 위계와 차이에 민감하고 성찰적이어야 다른 지역의 유민 여성 및 마이너리티, 더 나아가 비/인간 존재와의 연결을 모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담은 포스트메모리가 다른 지역 및 위치의 마이너리티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인 조와 박사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의 가해성과 자신에게 내면화된 인종주의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4-3. 인/종주의를 넘어선 근접지대의 공통성 

『전쟁 같은 맛』에서 엄마와 비/인간 존재가 근접지대에서 만나 새로운 공통장을 형성하는 과정은 엄마에 대한 딸의 관찰 속에서 상상적으로 그려진다. 반면 에밀리 정민 윤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A Cruelty Special to Our Specres)은 혈연적 관계가 없는 위치에서 쓰인 아시아 유민 여성 2세의 포스트메모리다. 또한 이 시집은 비/인간 존재와의 근접지대에서 모색된 가해성 성찰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공통장 형성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 

미국에서 2018년 출판된 이 시집은 2020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의 서문 「‘찾은 시’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종족의 잔인함」에서 윤은 자신이 1991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2002년 캐나다로 이민간 후 현재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여성이며 “이 책은 미국 거주 한국계, 더 넓게는 동아시아계 이민자 여성의 관점으로, 그 구체적인 역사적·개인적 경험에 대해, 그리고 미국의 사회문화적·문학적 바탕에서 영어로 쓰”인 것이라고 자신의 위치를 선명히 밝힌다(윤/13면). 자신이 자라던 2000년대와 현재의 한국 위상은 매우 달라졌기에 이 시들은 불완전하며, “이 책이 번역을 통해 새로운 언어와 맥락에서 재탄생한 것이 매우 감격스럽지만, 어떤 변화를 거칠지도 숨죽이고 지켜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다(윤/13면). 또한 미국에서 이 시집을 쓴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위안부’ 역사가 공동체 의식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책의 목적은 “‘알림’이 아니라 ‘지속시킴’이 된다”라고 밝히기도 한다(윤/16면). 

이 시집은 고발, 증언, 고백, 사후라는 네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증언’ 장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 아카이브(번역을 포함한)를 기반으로 한 증언-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에밀리 정민 윤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와 어떤 가족적·혈연적·지역적 관계가 없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운동 기관이나 모임과도 직접적인 연결이 없다. 따라서 이 시집은 가족적·혈연적·지역적·세대적 관계가 없는 위치에서 쓰인 포스트메모리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윤은 ‘증언’ 장이 보여주는 시적 기법을 “파운드 포이트리”(Found Poetry, 찾은 시)라고 설명한다. 파운드 포이트리란 “존재하는 텍스트를 부분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시를 만드는 기법”이다(윤/16면). 따라서 윤은 이 시집에서 인용한 증언들이 “직접 녹음, 번역,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증언 텍스트를 단순 복제하지 않고, 내용과 언어를 선택적으로 추출하여 재배열하고 내 언어도 소량 추가하여 시라는 형태로 변형”시켰다는 사실과 이 작업을 위해 참고한 문헌을 밝힌다(윤/17~18면).51) 또한 미국 저작권 가이드에 따라 “변형적 사용”의 정당한 범위를 따랐다는 사실도 명시하고 있다(윤/18면).

그런데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증언’ 장만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의 경험이 다른 시들에서 또 다른 폭력과 학살을 경험한 여성들과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로, 윤은 「종 이론」에서 “영어가 서투르다며 비웃음을 샀을 때, 나는 목을 만져보았다”(윤-종 이론/81면)고 쓰면서, 영미권에서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과 식민 시기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학살의 경험을 연결한다. 둘째로, 「일상의 불운」에서는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을 한국에 온 필리핀 노동자들의 고통, 그리고 필리핀에 성관광을 가는 한국 남성들 및 그곳에 남겨진 코피노에 대한 한국의 가해성 문제와 연결짓는다(윤-일상의 불운/107~108면). 그 밖에도 4·16 세월호 참사(윤-뉴스/105면), 경주의 지진(윤-경주에 지진이 발생했던 날/112~13면) 등 여러 층위의 고통들이 연결되어 표현된다. 황선희는 이런 시집의 특성에 주목하면서, 윤의 시집이 “‘위안부’ 피해자의 경험을 중심에 두면서도 ‘가해자’로서 한국이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들에게 저지른 폭력, 미국 내의 소수자인 ‘아시아 이주 여성’에 대한 차별까지도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한다.52)

그런데 에밀리 정민 윤이 시를 통해 연결하는 존재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부분은 아시아 유민 여성과 일본군 ‘위안부’ 여성이 연결되고, 이들이 다시금 향유고래를 비롯한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는 양상이다. 특히 「변신」은 “2016년 초 향유고래 열세 마리가 배 속에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채 독일 북부 해안가로 밀려왔다”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윤-변신/127면). “한때 나는 여자가 되기에 충분히 순진했다”라는 ‘여성’의 말로 시작하는 이 시는 배 속에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한 ‘고래’의 발화로 이어
진다. 

한때 나는 순진하게도 잔뜩 부른 배로 / 굶주린다는 게 물로 배를 채운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지 / 그 후로 새로 얻은 내 은빛 배를 / 인간이 만든 쓰레기 수천 개로 채운다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어. (윤-변신/130~31면)

인간사회의 폭력과 고통이 어떻게 비/인간 존재와 근접지대에서 연결되는지는 「변신」 이외의 다른 시들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고래시간」은 아시아 유민 및 아시아 유민 여성의 역사와 형상을 고래로 이미지화하면서 비/인간 존재와의 접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 거대한 동물은 대기에 으스러졌고 인간의 잘못이라는 / 단어들이 몸에 분사되었다. 그래, 그래서 아마도 세계는 물로 끝장날 거야. 모든 사랑스러운 / 것들을 휩쓸면서, 그래, 은총 속에서, 오직 노래만이. 부력만이 당신은 이제 일어선다”(윤-고래시간/138면)라는 언급은 비인간화되었던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인간이 비/인간 존재에게 저지른 가해에 대한 성찰로 확장하면서, 그 중첩된 연결과 어긋남의 지대에서 길어올려진 포스트메모리적 언어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시아 유민 여성의 말들이 고래, 또 향유고래로 연결되는 이러한 시들을 통해서, 포스트메모리는 가족적·혈연적·지역적·세대적 근접성뿐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나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통장을 모색하는 관계를 향해 열린다. 

5. 20년 뒤, 비/인간 존재들의 포스트메모리를 향하여

이 글은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 텍스트가 최근 5~6년간 활발하게 번역되어 소개되는 상황에 주목했다. 그리고 혈연적 가족에 근거한 허시의 포스트메모리 개념을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 나타난 특성을 통해 재정의하고, 비혈연적·비정상적·탈인간중심주의적 포스트메모리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혈연적·지역적·종적 경계를 넘어선 마이너리티들 간의 연결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는 재일조선여성과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의 다층적 위치를 연결하여 사유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 기록/문학 분석의 미래적 자원을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에 의한 포스트메모리의 재개념화는 다음과 같은 용어와 범주에 대한 질문 및 포스트메모리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 재일조선여성 2, 3세,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 2, 3세라는 명칭은 여태까지 공백으로 여겨졌던 아시아 유민 여성의 경험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잠정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가족, 조직, 민족, 인종, 국가, 젠더의 틀에서 고통받았던 유민 여성을 이렇게 범주화할 때 발생하는 근본적 폭력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더구나 양영희와 박사라는 재일조선여성이라든가 2세, 3세 같은 호칭이 자신들의 경험을 전형화하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민감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그레이스 조는 ‘코리안 아메리칸 2세’라기보다는 아메라시안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며, 에밀리 정민 윤은 본인이 이주 당사자다. 그럼에도 이 글은 이러한 명칭과 아카이브의 한계 속에서 아시아 유민 여성의 포스트메모리를 새롭게 맥락화하고 확장된 연결을 모색하기 위하여 이 용어들을 사용했다. 이는 한계를 내포한 명명이지만, 아시아 유민 여성들 각각이 위치한 독특한 경험을 뭉뚱그리거나 차이를 지울 위험을 경계하고 의식하면서 분석을 진행했다. 

둘째로, ‘재일조선여성’과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이라는 두 범주 사이의 접점과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복합차별의 양상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지닌 인종주의의 양상에 따라 상이하다. 이민자 사회이자 여러 인종이 있는 미국에서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는 다른 인종과의 관계나 다른 인종을 향한 가해성에 대한 성찰이 뚜렷이 나타난다. 반면 재일조선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에서는 같은 재일조선인 공동체 내부의 여성과 마이너리티에 대한 내면화된 차별이 좀 더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인종주의가 발현되는 양상에 인종, 젠더, 계급 이외에도 식민주의와 관련된 분단(냉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관여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셋째로,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가 이전 세대(특히 어머니)의 경험을 서사화할 때 발생하는 양면성과 윤리성을 고려해야 한다. 허시는 이후 세대가 이전 세대의 경험을 듣고 자라면서 그 이전 세대의 경험과 말을 신비화하거나 절대화하거나 자기 자신의 경험과 분리시키지 못하는 경향을 “목격의 환상”(fantasies of witnessing)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53) 이 글에서 다룬 텍스트들도 크건 작건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한계와 가능성을 작품별로 꼼꼼히 언급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이 문제를 사유할 단초들 몇 가지만 제시하려 한다. 

『전쟁 같은 맛』에서 조는 기지촌 여성이자 미국 이주 여성이자 조현병자인 엄마를 ‘피해자’로 그리는 것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행위자로 부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를 진보적 페미니스트이자 소수자들의 연대자로 재현하고 엄마의 해석 불가능한 말과 침묵과 행동을 의미화하는 과정에서 그레이스 조의 “과도한 욕망이 투사되어 있지 않은지” 또한 “조현병의 왜곡된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이 책이 오히려 그것을 낭만화, 신비화하는 혐의는 없는지 재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54) 타이페이한은 그레이스 조가 “어머니의 행위를 조현병으로, 트라우마의 흔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어머니의 행동들에 담긴 사건의 잉여를 지워”버리고, “‘어머니’는 자신의 학문적 대상으로 남아 있고 실제 어머니는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겨”진다고 비판하기도 한다.55)

이 비판들이 제기하듯이 『전쟁 같은 맛』을 ‘회고록’으로 보고 서술의 진위 여부나 엄마-딸 관계 내의 위계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지만, 이 글은 이 텍스트를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가 쓴 포스트메모리로 보고, 그 포스트메모리를 통해 이전 세대의 트라우마와 수치가 치유되고 다른 존재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주목하고자 했다. 즉 혈연적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공통장의 형성, 매드 포지티브 서사 전략이 지닌 관점의 전환,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연결의 단초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허시가 언급한 “목격의 환상”이나 그것을 의미화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바로 그러한 깊은 감정적 교감과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향한 욕망이야말로 포스트메모리라는, 기록과 문학이 혼재된 표현 형식이 이전 세대는 할 수 없었던 “연결적 전환”을 시도하고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로 이어지는 새로운 공통장을 창출하는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가 이전 세대, 특히 엄마나 친족을 표현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물음은 양영희의 『카메라』나 박사라의 『가족의』에도 적용된다. 양영희는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특히 박사라는 구술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위계와 차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공백과 ‘몰라’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자신의 시도 또한 늘 의도·편집·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작업은 구술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 되기 어렵다고 하며 박사라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역사를 서술하는 것도, 공백을 메우는 것도, 공백을 드러내는 것도, 큰아버지나 고모들을 위해서는 아니다. 아마도 그분들께 ‘제가 썼습니다’하고 이 책을 들고 간다면, 필시 ‘못 읽겠어’ ‘모르겠어’ ‘이런 걸 내가 읽을 거라고 생각했냐?’고 말하면서 책 모서리로 내 머리를 때리려 들든지, 아니면 ‘이 책을 팔면 얼마나 받니?’ 하고 돈 얘기를 시작할 테니까”(박/287면).

표현 주체와 표현 대상의 불일치라는 이 상황을 어떤 윤리적 물음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무런 가족적·혈연적·지역적·세대적 연결이 없는 위치에서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통해 시를 쓴 에밀리 정민 윤은 두려움과 불편함을 윤리적 지평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제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책 출판 직전까지 사실적 오류나 부적절한 표현이 들어간 건 아닐까 매우 두려웠”고, “시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증언이 잘못 해석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아직도 있”으며, “미국과 영어의 맥락 속에서 구상하고 쓴 이 책이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두려움도 큽니다”(윤-인터뷰/150~51면). 윤은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과 두려움을 지속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56) 이 불편함을 지속하겠다는 윤리적 결심을 표현한 시가 「두려움」이다. 이 시에서 윤은 “내게서 두려움을 도려내고― / 역사의 절벽들로 측면을 두른 / 피오르드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 내가 살지 않은 / 시간들을 쓸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면서 두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이 “삶으로 충만한” 장소가 되기를 염원한다(윤-두려움/102면).

윤은 또한 자신이 경험하지도 공감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공백들이 자신이 쓰는 대상에게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 그리고 그 공백 속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감정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하여, 시 속에 ‘공백’―불규칙한 빈칸이나 빈 공간―을 삽입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윤은 “「증언」에서는 문장들을 쪼개어 페이지 위에 흩어지는 무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마디 마디를 끊으면서 독자들의 읽기 경험을 좀 불편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 저의 글쓰기 경험도 불편한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단어와 문장 사이 사이에 불규칙적으로 있는 빈 공간들은 생략되거나 지워진 내용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증언들을 시로 옮기는 과정에서 제가 선택적으로 뺀 단어들이기도 하고, 역사 속 혹은 당사자들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 것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한다(윤-인터뷰/ 151~52면). 

이런 공백의 적극적 사용은 포스트메모리 서사 내 근접지대의 연결에 자리잡은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당사자와 타자, 제1세계 페미니즘과 제3세계 여성, 언어를 가진 자와 입만 가진 자 사이의 차이와 표현을 둘러싼 윤리적 불편함을 상징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끊임없이 인식하게 하는 시 속의 공격적 공백들은 아시아 유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가 혈연적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이라 여겨져온 존재들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비/인간 존재를 포함한 다른 마이너리티와의 공통성을 모색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공백의 불편함을 내포한 채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아시아 여성 유민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는 앞으로 20년 뒤 한국사회에 거주하는 유민·난민 여성 2, 3세의 포스트메모리를 마주할 그 어느 미래의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1)* 이 연구는 아모레퍼시픽재단의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음. 

申知瑛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부교수. 최근 논문으로 「동아시아 ‘정착식민주의’ 담론과 한국-팔레스타인 기록/문학을 통해 본 연대의 토대들」(2024)이 있다.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다락방의 미친 여자』(북하우스, 2022).

2)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여전히 미쳐 있는』(북하우스, 2023).

3) 캐시 박 홍 지음, 정은귀 옮김 「동물원」, 『몸 번역하기』(마티, 2024) 13~14면.

4) Marianne Hirsch, The Generation of Postmemory: Writing and Visual Culture After the Holocaust (New York: Columbia UP, 2012) 5면.

5) 같은 책 같은 면.

6) 같은 책 20면.

7) ‘목소리 소설’이란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모은 구술을 논픽션으로 풀어낸 알렉시예비치의 서술기법이다. 대표작으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 참조.

8) 루인 「퀴어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의 성격을 질문하기: 전혜은의 『퀴어 이론 산책하기』」, 『사이間SAI』 32 (2022) 292면.

9) チョ・ナムジュ 지음, 斎藤真理子 옮김 󰡔82年生まれ、キム・ジヨン󰡕(筑摩書房, 2018).

10) キムスム 지음, 岡裕美 옮김 『ひとり』(三一書房, 2018).

11) 신지영 「트랜스내셔널 여성문학의 공백」, 『여성문학연구』 48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

12)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 2023); Grace M. Cho, Tastes like War: A Memoir (New York: The Feminist Press at CUNY, 2021).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조/면수’로 표기.

13) 양영희 지음, 인예니 옮김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가족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의 특별한 삶』(마음산책, 2022).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양/면수’로 표기.

14) 박사라 지음, 김경원 옮김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 어느 재일 사회학자가 쓴 가족의 생활사』(원더박스, 2023); 朴沙羅 『家(チベ)の歴史を書く』(筑摩書房, 2022). 이하 이 책의 인용은 ‘박/면수’로 표기.

15) 에밀리 정민 윤 지음, 한유주 옮김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 2020); Emily Yoon,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 Poems (New York: Ecco Press, 2018).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윤-시제목/면수’로 표기.

16) 사이디야 하트만 지음, 정규식 옮김 「두 행위의 비너스」, 『인-무브』(2023년 4월 26일; 2023년 5월 1일). https://en-movement.net/436; https://en-movement.net/437.

17) Hirsch, 앞의 책 4면.

18) Grace M. Cho,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Minnesota: U of Minnesota P, 2008).

19) 에리카 L. 존슨·퍼트리샤 모런 엮음, 손희정·김하현 옮김 『여성의 수치심』(글항아리, 2022).

20) 여지연 지음, 임옥희 옮김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삼인, 2007년) 250면.

21) 「어제 안에 오늘: 잊혀진 전쟁 살아 있는 기억(2005. 1. 29~3. 19)」. www.stillpresentpasts.org. 이 전시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나보령 「유령을 위한 레시피: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을 통해 본 한국계 미국인의 한국전쟁 기억과 재현」, 『인문논총』 81.1 (2024) 154면 참조.

22) 같은 글 153~54면.

23) 장영은 「트라우마와 공부: 그레이스 조의 자기서사와 모녀서사」, 『여성문학연구』 57 (2022) 147면.

24) 서아귀 지음, 유라주 옮김 『할머니들의 야간중학교: 재일조선인 여성, 삶과 투쟁의 주체가 되다』(오월의봄, 2019)의 「서론」 참조.

25) 양영희는 영화와 함께 소설과 수필집도 내왔다. 『가족의 나라』(씨네21북스, 2013)는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기록 수필이고,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 2023)는 소설이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는 가족 3부작을 만들게 된 동기, 제작과정의 고민과 어려움을 적은 수필집이다.

26) 한국에 번역된 대표작으로 김석범 지음, 김환기·김학동 옮김 『화산도』(보고사, 2015) 참조.

27)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 유기훈 옮김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오월의봄, 2023) 64~65면.

28) 같은 책 69면에서 재인용.

29) 같은 책 87면.

30) 같은 책 76면.

31) 같은 책 75~76면.

32) 존슨·모런, 앞의 책 27면.

33) 시네이드 맥더모트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 존슨·모런, 앞의 책 273~4면; Hirsch, 앞의 책 22면.

34) 마크 월린 지음, 정지인 옮김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심심, 2016) 8~9면.

35) 시네이드 맥더모트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 존슨·모런, 앞의 책 323면. 

36) 같은 책 45면. 

37) 맥더모트, 앞의 글 281~82면.

38) Hirsch, 앞의 책 9면.

39) 박사라, 앞의 책 114면; 『大村入国者収容所二十年史』(法務省大村入国者収容所, 1970).

40) 조경희 「오무라수용소를 둘러싼 젠더화된 기억 서사」, 신지영 편저 『수용, 격리, 박탈: 세계의 내부로 추방된 존재들 동아시아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서해문집, 2024) 216면.

41) 신지영 「서문: 피난과 수용 사이에서」, 신지영 편저, 같은 책 15면

42) 관련된 논문으로는 송혜원 「‘재일조선인여성’을 읽다: 재일조선인 1세 여성들을 가시화하기 위한 한 가지 시도」, 『여성문학연구』 56 (2022); 신지영 「재일조선여성의 ‘마이너 필링스’와 대명사화된 ‘어머니’: 재일조선여성 1세들의 문해교육과 글쓰기」, 『여성문학연구』 56 (2022) 참조. 

43)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1) 84~85면.

44) Hirsch, 앞의 책 19면.

45) 같은 책 20면 

46) 인간과 동물의 ‘근접지대’에서 형성되는 공통성에 대한 논의는 申知瑛 「比較から近接地帯へ」,『動物のまなざしのもとで: 種と文化の境界を問い直す』(勁草書房, 2022) 참조.

47) Bénédicte Boisseron, Afro-Dogs: Blackness and the Animal Question (New York: Columbia UP, 2018) xix면. 

48) 여지연, 앞의 책 220면.

49) 같은 책 같은 면.

50) 나보령, 앞의 글 165, 173면.

51) 참고문헌 목록은 다음과 같다. Sangmie Choi Schellstede, Comfort Women Speak: Testimony by Sex Slaves of the Japanese Military (New York: Holmes & Meier Pub, 2000); Keith Howrd, True Stories of the Korean Comfort Women (London: Cassell, 1996); Dai Sil Kim-Gibson, Silence Broken:Korean Comfort Women (San Francisco: Mid-Prairie Books, 1999).

52) 황선희 「여성-증언시의 공동체 구축 방식과 가능성: 에밀리 정민 윤의 시를 중심으로」, 『다문화콘텐츠연구』 43 (2023) 111면.

53) Hirsch, 앞의 책 20면.

54) 나보령, 앞의 글 171면.

55) 타이페이한 「트랜스내셔널 ‘위안부’ 서사 연구: 『종군위안부』와 『전쟁 같은 맛』을 중심으로」, 『우리문학연구』 83 (2024) 202~203면.

56) 관련 기사로는 이진주 「편터뷰: 이 시를 읽고 당신이 불편해지길…시인 에밀리 정민 윤」, 『경향신문』(2020년 10월 17일). https://www.youtube.com/watch?v=RLCK-aFSvoM.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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