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7호][시평] 자유전공 제도의 허와 실/ 양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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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모

1. 자유전공이라는 유령

자유전공 또는 자율전공이라는 제도가 한국에 선보인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올해 들어 유난히 자유전공이라는 유령이 한국의 대학가를 배회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많은 대학에서 자유전공 제도를 도입했으나 미숙한 운영방식 등의 이유로 기대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유전공 제도의 확대를 연상하게 하는 ‘무전공’이라는 어색한 용어가 또다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올해 1월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기본계획」에서 “수도권 사립대, 거점국립대 및 국가중심대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재학 중에 전체 대학 또는 계열·단과대 내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학생 수가 전체 모집인원의 25% 이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한다”1)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새해 벽두부터 무전공 입학에 관한 추진 계획을 드러내면서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자 했다. 1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공·학과 구분 없는 모집 비율을 충족해야 추가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개편안 시안을 마련해 대학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2) 이러한 구상은 이미 지난해 10월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전공과 영역 간의 벽을 대학의 ‘기득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학 정원의 30% 정도는 벽을 허물고 아이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줘야 한다”3)고 언급한 내용의 연장선이었다. 교육부가 현재 한국의 대학을 기득권의 구조로 파악하고 이러한 기득권의 파괴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공청회 등을 통해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번에 시행하는 무전공 제도의 도입 또한 지난해 11월에 연구용역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교육부가 이처럼 서둘러 무전공 제도를 실시하는 이유와 정책적 기대효과에 대해서는 교육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제시한 자료에는 “학생 전공선택권 확대 등 미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의 여건에 맞는 과감한 교육혁신 추진 지원”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울러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융합인재 양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학과·전공 간 벽을 허물고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선택 기회를 보장하여 변화하는 산업·사회의 수요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유연하게 길러낼 수 있는 과감한 대학혁신이 필요하다”라는 교육부 장관의 말씀이 인용되어 있다.

무전공 제도의 도입을 담은 대학혁신사업이 발표되자 교육부의 당찬 기대와는 달리 대학 안팎의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교육부가 ‘대입정책 4년 예고제’를 지키지 않으면서 급박하게 무전공 제도를 대학에 강요하는 정책 시행의 절차상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절차적 정의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무전공 제도의 실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전공 제도는 대학 입학 시기에 전공을 정하지 않고 1년 또는 그 이후에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을 말한다. 무전공 제도는 입학과 전공선택 등과 관련된 행정적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며, 여기에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무전공만을 언급하는 것은 학부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지난 15년 동안 현재 제시되고 있는 무전공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자유전공 제도를 경험했다. 대학의 현장에서는 무전공 제도 또한 자유전공 제도와 마찬가지로 전공선택의 쏠림 현상을 유발할 것이고, 전공선택의 쏠림 현상은 교육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아가 전공선택의 쏠림은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의 구분을 야기하고, 비인기 학과는 학문의 공동체에서 존재감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혁신사업을 공포하기 바로 직전인 1월 24일에 전국국공립대학교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무전공 모집 제도 도입은 기초학문의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 주장하면서, “교육부는 무전공 모집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모집 단위를 비롯한 학사 제도를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하게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우려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인문대학장 협의회를 비롯하여 무전공 제도 도입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제시하는 주장은 대체로 한국의 대학에서 실험해온 자유전공 제도의 부작용을 그 근거로 거론하고 있다. 대학 입학과 전공선택 과정의 측면에서 볼 때 무전공은 자유전공과 유사한 방식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제도는 모두 학과제의 장벽을 넘고자 하고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점에서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무전공 정책은 1990년대 이래 학과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온 한국 대학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 교육부가 제시한 무전공 정책은 입시와 전공선택이라는 수단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학부교육의 충실화라는 본연의 목표가 가려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나아가 무전공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유전공 제도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검토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전공 제도를 성급하게 제시한 목적이 과연 자유전공 제도의 목표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요청된다. 

2. 무전공이 자유전공인가

올해 대학혁신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무전공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교육부가 무전공 정책을 제시한 이유는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보장하고 이를 위해 학사구조를 유연화하는 것이었다. 학사구조의 유연화를 위해서는 학칙의 개정이 필요하고,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의 자율적 선택 능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체제가 필요하다. 교육부도 이러한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전공 없이 입학한 학생들은 대학의 체계적인 지원하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스스로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선택하여, 그 과정에서 습득한 역량을 활용하여 미래 사회를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대학의 체계적인 지원하에”라는 조건문은 실제로 이 제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대학이 체계적인 교육 플랜을 마련하지 못하면 무전공 제도는 형식적 파편만 남기고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정책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에서 전공선택의 범위를 이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무전공 제도를 위한 모집 단위를 “전공을 정하지 않고 모집(예: 자유전공학부 등) 후, 대학 내 모든 전공(보건의료, 사범계열 등 제외) 자율 선택”하는 ‘유형 1’, 그리고 “계열 또는 단과대 단위 모집 후, 계열 또는 단과대 내 모든 전공 자율선택 또는 학과별 정원의 150% 이상 범위 내 전공선택”하는 ‘유형 2’로 나누었다. ‘유형 1’은 전 대학 차원에서 무전공을 실시하는 방식이고, ‘유형 2’는 모집 단위를 계열별 또는 단과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무전공이 시행되는 범위에 따라 유형을 둘로 구분하고, 전자의 유형을 ‘자유전공’이라 해석하고 있다. 대학 전체 차원에서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하는 방식을 자유전공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자유전공 제도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일 뿐이다. 자유전공을 도입한 목적은 입학 방식뿐만 아니라 학부교육의 개선이기 때문이다. 

‘자유전공’은 흔히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만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유전공은 대학의 운영방식을 지칭할 뿐이며, 학부교육의 내용을 포함하는 언어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자유전공을 시행하는 여러 대학의 영어 표기는 각 대학의 교육목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는 College of Liberal Studies라는 표기로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는 School of Interdisciplinary Studies로 융합교육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편 경희대학교 자율전공학부는 School of Global Eminence로 글로벌 리더십의 함양을 지향하고 있다. ‘자유전공’ 또는 ‘자율전공’이라는 한국어보다 영어 표현이 ‘리버럴 스터디’ ‘융합’ ‘글로벌’ 등의 교육이념을 담고 있어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 이러한 용어는 대학개혁이라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이념을 담고 있는 한국식 유행어였다. 

한국의 대학에서 자유전공 또는 자율전공 제도는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지향하는 교육이념을 발판으로 삼아 인문교육(Liberal Education),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 역량기반교육(Competency-Based Education)을 시행하면서 학부교육의 내실화를 꾀하자는 목표를 지녔다.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학생들에게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것 자체에 그 주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한 자유교양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자유롭게 다양한 학문 분야를 ‘탐색’하도록 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4) ‘자유전공’ 또는 ‘자율전공’이 비록 다양한 표현으로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의 기본적인 교육이념을 모델로 하였으며, 학생에게 학과의 경계를 넘어 전공선택의 기회를 확대하면서 학부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한국에서 대학 전체에 걸쳐 자유전공이 시행되는 사례는 1995년 학교를 설립할 때부터 자유전공 방식을 선택한 한동대학교와 2020년에 수도권에서 최초로 자유전공제를 표방한 덕성여자대학 두 곳뿐이다. 대부분은 기초교육대학에 소속되어 있거나 학과 또는 소규모 학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가 단과대학 차원에서 운영되는 것이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대학에서는 자유전공이라는 어색한 간판을 내걸고 학과 단위로 운영되는 대학의 현실 속에서 학부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전공 없이 입학하고 전공을 선택해가는 과정만이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채 자유전공 제도가 지향하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웠다.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자유전공 제도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지 못하고, 전공선택의 결과에 따른 부작용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면서 그동안의 자유전공 제도의 실험은 21세기 학부교육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주호 장관은 지난 1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MIT와 스탠퍼드대학의 사례를 들어 한국의 대학도 무전공으로 입학해서 학생이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 물론 미국의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학은 미국의 역사가 있고, 한국의 대학은 한국의 역사가 있다. 미국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시행되어온 리버럴 아츠 교육은 단순한 입시 모형이 아니라 학부교육의 이념을 담고 있다. 이는 학생의 전공선택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교과과정과 학생지도, 그리고 학문의 균형 발전에 대한 대책 등이 잘 갖추어진 학부교육 체계다. 이러한 미국의 학부교육 체계를 무전공 제도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피상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교육부가 제시한 무전공은 자유전공 제도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자유전공이 가진 이념을 통해 교육적인 측면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무전공 제도는 학부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논의해야 할 과제다. 

3. 자유전공에의 꿈

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정책은 언제나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왔다. 올해에 시행하고자 하는 무전공 제도는 지금까지 정부 주도의 대학정책과는 상당히 이질적일 정도로 ‘기득권’의 척결이라는 강력하고 대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득권의 관점에서 대학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대학정책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교육부가 예산 배부권을 통해 대학 개혁의 방향을 조종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에서 대학의 문제는 관치행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전공과 학과 제도의 벽이 기득권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학과/전공 중심의 대학 운영 또한 그동안 시행되어온 정부 주도의 대학정책에서 파생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도입된 자유전공 제도는 현재 추진 중인 무전공 제도와는 달리 정부 주도의 정책은 아니었다.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9년 25개 대학에서 최초로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설치는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해서 노무현 정부에서 공포되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한 대학에서는 학부에서 법과대학이 폐지되었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자유전공제가 시행되었다. 법과대학의 폐지와 자유전공 제도의 도입이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 두 기관의 관계에 대해 적지 않은 오해가 발생했다. 법과대학의 폐지로 인해 발생한 정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유전공 제도가 성립할 수 있었던 외적인 계기에 불과하다.6) 왜냐하면 남은 정원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 대학에서 자유전공이라는 새로운 제도로 수용한 것은 학부교육에서 자유전공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전공에 대한 꿈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생긴 현상은 아니다. 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제국 대학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 미국식 대학제도를 모색했다. 경성제국대학 시절은 강좌제(course)로 운영되었지만,7) 해방 후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과(department)로 구성된 단과대학 체제를 형성했다. 식민지 유산은 형식적으로 청산되었으나 강좌제의 흔적이 잔존한 채로 학과제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학과 중심 체제에 변화를 시도한 것은 1972년에 공포된 「고등교육에 관한 장기 종합 계획안」이었다. 1973년에 도입된 ‘실험대학’은 “학생의 적성에 따른 전공 선택 기회 부여, 학과 간 장벽 제거로 학문 시야의 확대, 교육 운영의 효율화 도모, 현실에 적합한 인력 수급의 자연스러운 조정 등을 실현하고자 했고”8) 학생 선발 방식을 학과 중심에서 벗어나 대학별, 학부별, 계열별로 다변화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계열별 모집을 시행했으나, 인기 학과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국 1985년 이후로 대부분 학과제로 복귀했다. 

학과제로 복귀한 지 10여 년이 흐른 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 즉 ‘5·31 교육개혁안’을 통해 학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부제 논의가 시작되었고 1998년에 제정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많은 대학에서 학부제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교육부는 학부제를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학과가 너무 세분화되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학생들의 학문 경험 및 전공선택 기회가 제한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하여”9)라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있었지만, 당시 많은 대학이 21세기의 새로운 변화에 대비한다는 희망을 안고 학부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학부제의 모집방식 또한 초기에는 단과대학 단위를 하나의 계열로 규정했지만, 단과대학 내부에 유사한 학과들의 묶음으로서 작은 단위의 학부제로 모집 방식이 바뀌어갔다. 

김영삼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시도한 학부제는 결국 ‘실험대학’의 전철을 밟았다. 역사철학부, 정치외교학부. 수리통계학부 등과 같이 단과대학 내의 몇 개의 전공을 묶어 ‘학부’로 명명한 것이다. 학과의 통합을 위해서였지만, 학생들의 전공선택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어색한 학부였다. 학부제는 모집 단위였고 학생들은 1학년 동안 학부에서 지내다가 학부 내에서 학과/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소규모의 학부제는 융합보다는 경쟁을 유발했고, 결국 학부 내에서 서로 아픈 추억만 간직할 뿐이었다. 학생들의 전공선택 기회의 확대와 학과의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학부제가 시행되었지만, 인기 학과의 출현은 오히려 학과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아울러 인기 학과 진입을 위한 학점 취득을 앞세우는 풍토가 조성되어 학부교육의 부실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결국 2008년 이후 학부제는 점차 사라지고 학과제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학정책은 학과제와 학부제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해왔다. 2009년 자유전공 제도가 도입되던 시기는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귀환하는 추세였다. 당시 자유전공 제도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지속되어온 학생의 전공선택 기회 확대와 학과의 통합 등을 주장하는 정책 노선이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지 않은 대학에서도 자유전공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자유전공 제도는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기대를 품고 출발했다. 그렇지만 지난 15여 년간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목표와 이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부 대학에서는 자유전공 제도가 중도에 폐지되는 난맥상을 보였다. 2017년의 통계에 따르면 37개교에서는 유지되었고, 10개교에서 신설되었고, 25개교에서 폐지되었다.10) 학과/전공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학부교육의 실험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으나 학과와 전공, 단과대학의 구조로 형성된 기존의 대학 제도와의 갈등 등으로 인해 도입된 지 10년 만에 자유전공 제도는 ‘유명무실’이라는 대학 안과 밖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11)

한국의 대학에 처음으로 도입된 자유전공 제도에 대해서는 기대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무늬만 자유전공학부이며 실제로는 로스쿨 준비반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로스쿨 준비반의 등장은 자유전공의 교육목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심각한 비판은 자유전공 제도를 시행하면서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즉 자유전공 방식을 운영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공선택의 결과 인기 학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학문의 생태계에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의 좌표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다.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에서 안정적인 성향을 띠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세상에서 인기 전공에 대한 편향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전공선택은 통제의 차원이 아니라 선택하는 주체의 자율성을 배양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학부교육에서 자유전공이라는 낯선 제도는 한국의 토양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점차 동력을 잃어가던 자유전공 제도에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한 것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직감하고 있던 이공학 분야였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변화는 이공계 분야에서 더 빨리 감지되었다. 2018년 5월 과학기술정통부, 4대 과학기술원, 포스텍으로 구성된 과학기술원 4차 인재위원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핵심 역량을 갖춘 미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각 기관별 특성에 맞추어 무전공·무학과 모델을 발표했다. 일반 대학에서 시행되는 자유전공 제도가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제기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원은 전공과 학과의 장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요청했다.

자유전공 제도의 마력은 수도권 대학에서도 나타났다. 2020년 덕성여자대학교는 전면적으로 자유전공제를 도입하면서 장안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원의 5퍼센트 이내에서, 그리고 대체로 학과 또는 학부 단위에서 자유전공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덕성여자대학교는 3개의 계열(인문사회, 이공, 예술)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제 1전공은 입학한 계열에서 제2전공은 계열을 넘어서 선택하는 방식을 취했다. 덕성여자대학교가 학교 전체 차원에서 자유전공 제도를 시행하면서 한국형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구현하고자 한 것은 한국의 대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자유전공 제도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부정적이던 가운데 서울대학교에서 시행한 자유전공학부는 그나마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모집 단위는 단과대학 형식이었지만 간호대학, 사범대학, 수의과대학, 의학대학, 치의학대학 등 국가 자격증이 수여되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모든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전교적 차원의 제도였다. 이러한 방식과 달리 서울대 공과대학에서는 2023년부터 단과대학 내에서 6개 전공 단위(기계공학부, 전기·정보공학부, 컴퓨터공학부, 화학생물공학부, 산업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광역 모집을 시행했으며, 학생들이 한정된 영역 내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광역 모집은 엄밀하게 말해서 자유전공과는 다른 제도이지만, 전공 사이의 벽을 허무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자유전공 제도와 엮어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이 시도한 광역 모집은 다음과 같은 세 측면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첫째,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이 2013년부터 시행해오던 광역 모집을 2017년에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과대학이 단과대학 차원은 아니지만 6개 전공을 모아 광역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둘째, 어느 분야보다도 개별 학과의 전공교육을 중시해온 공학 분야에서 학과와 전공의 장벽을 넘는 기획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물론 과학기술원 계열의 대학이 무전공 제도를 도입했고, 서울대 공과대학 또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 이러한 신입생 모집방식과 전공선택제를 기획한 서울대 공과대학이 “전공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깨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학에 더 많은 인재를 보낼 수 있을 것”12)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육체제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자세를 갖추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의 사례는 단순히 시대적 흐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이래로 추구되어온 학과의 장벽을 넘어서고자 한 자유전공 방식에의 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자유전공 제도의 과제

대학 개혁은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21세기를 전후하여 대학은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학 개혁이 세계사적 차원에서 화두가 된 것은 대학이 국민국가 내에서 더 이상 “민족문화의 이념을 생산하고 보호하고 주입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며, 이제 전 지구화(Globalization)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초국적 관료적 기업”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13)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공학 및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산업 분야에서 혁명이라고 할 만한 시대적 전환이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환은 21세기로의 진입이라는 단순한 연대기적 변화가 아니라 이전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획기적인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익숙하게 들어온 창의인재교육, 융합교육, 국제화교육 등은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상징하는 언어였다. 자유전공은 학부교육의 획기적 전환을 위해 구상된 한국적 제도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대학은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등장한 일종의 서양적 제도였다. 일본과 중국은 각각 제국주의와 반식민지를 거치면서 독자적 형태의 근대적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을 형성해왔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로 일본은 제국 대학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대학제도를 구축했으며,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면서 대학의 역할을 재구축했다. 한국 또한 식민지 상황에서 형성된 제국 대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대체적으로 미국식 형태의 고등교육 기관으로 대학을 만들어왔다. 지난 세기말 이후로 동아시아의 대학 또한 세계적 차원의 대학 개혁의 파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국민국가 이념의 실현을 넘어야 하고, 아울러 신자유주의 파도 속에서 수월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문과 지식이 인격수양을 위한 덕성이 아니라, 지식이 상품이 되고 글로벌화되고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기술(skill)로서의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도쿄대학과 베이징대학 또한 학부에서 자유전공 방식을 도입하면서 학부교육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1949년 도쿄대학은 이전의 도쿄제국대학에서 탈바꿈하여 교양학부를 설치했으며, 초대 총장 난바라 시게루(南原繁)는 제국 대학의 엘리트주의 방식의 교양(Bildung)에서 벗어나 “개개의 과학적 진리를 깊이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려져 있는 지식을 각 분야, 그리고 전체에 걸쳐서 종합하고 조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일반교육을 강조했다.14) 학생들은 2년 동안 교양학부에서 이러한 내용의 일반교육을 이수하고 문·이과 각각 3개의 계열 내에서 전공을 선택한다.15)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대학에서 시행되었던 계열별 모집 제도와 가깝지만, 단순히 입학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리버럴 아츠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모든 계열에서 교양학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학생이 2년 동안의 전기 과정(Junior Devision)을 이수한 후 각 계열에 한정된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교양학부에 설치된 후기 과정(Senior Division)에 진학하여 ‘교양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새롭게 정비된 후기 과정은 학부 과정의 모든 기간에 걸쳐 리버럴 아츠 교육을 시행하는 제도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다른 국가들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대학에서도 학부 과정에서 교양교육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중국에서는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지식과 가치관의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통식교육(通識敎育)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General Education 또는 Liberal Arts에 대한 중국어 번역이다. 2007년 베이징대학에서는 위안페이칼리지(元培學院)라는 단과대학을 설립했으며, 자유전공 방식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단과대학의 명칭은 베이징대학 초대 총장 차이위안페이(蔡元培)에서 유래했다. 학생들은 입학 후 지정된 기초 교과목(Foundation Course)을 수강하면서 전공을 탐색한다. 입학 후 3학기부터 모든 전공을 선택할 수 있으며, 위안페이칼리지 내에 설치된 학제적 성격을 띤 전공, 즉 고생물학(Paleontology)·정치경제철학(PPE)·종합과학(Integrated Science)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선택한 전공을 보면 위안페이칼리지에 설치된 학제간 전공을 다수가 선택했으며, 이학부, 경제와 경영학부, 사회과학학부, 정보와 공학부, 인문학부 순이었다. 졸업생 가운데 거의 66퍼센트가 국내외 대학원으로 진학했다는 점은 위안페이칼리지의 자유전공 방식이 달성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16)

베이징대학과 도쿄대학이 학부교육의 혁신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서울대학교 또한 2009년 “경계를 넘어 미래로”라는 표어를 내걸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양성”을 교육목표로 제시하면서 자유전공학부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개별 전공교육에 함몰되어 다른 학문 분야나 통합적인 차원에 대해 조망적 시각을 갖추지 못하는 기능인을 양산해내는 교육체제에 대한 반성”에서 자유전공제 도입에 대한 기초 연구를 시작했다.17) 2007년에 제출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2007-2015)』에서는 세계화된 21세기형 인재 육성을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면서 국제적 리더십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를 구현할 방안으로 “개인적 필요에 따른 자유전공, 다학제적 복합 전공 등 유연한 전공 교육체제를 도입”18)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과 자유전공학부가 같은 시기에 설립되었지만, 자유전공학부는 법과대학의 후신이 아니라 서울대학교의 학부교육 혁신을 위한 일련의 노력을 통해 탄생할 수 있었던 새로운 교육 단위였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경험은 교육적인 관점에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귀중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전공 쏠림에 대한 비판이 우선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교육적인 측면에서의 효과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공선택 상황과 졸업생의 진로 등에 대한 통계적 분석이 있지만, 이러한 교육방식이 새로운 인재 양성과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본연의 목표 실현에 기여한 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요망된다. 그동안 자유전공에 대한 관심에서 전공 쏠림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 제도에 대한 비판 또한 전공 쏠림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치중되고 있다. 전공선택 과정에 자유가 주어진다면 전공선택의 결과가 이전 학과제 시기에 배당된 정원과 같아질 수는 없다. 여기에는 학생의 적성과 부모의 취향이 반영될 수 있고, 사회적 경향과 산업의 수요 등 외적 요인이 작동될 수도 있다. 인기 전공이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인기 전공에 편중될 수도 있다.

전공선택의 편차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며,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수요에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수요와 관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전공선택 결과를 두고 보면, 2010년에는 공과대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매우 낮았으며, 최근 인기 전공으로 분류되는 컴퓨터공학 또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선택 경향을 보였다. 자유전공학부가 설립된 초기에는 경영학 전공자가 다수를 차지했지만, 2016년부터 전기정보공학, 컴퓨터공학을 중심으로 하는 공학계열의 전공자가 경영학 전공자를 앞질렀다.

전공선택의 결과를 해독하는 방식으로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전공선택의 결과가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의 교육적 조건이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시행될 무전공 제도에서도 전공선택의 분포에 대한 분석을 1년 단위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교육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서 2011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단위로 전공선택의 분포를 정리한 도표는 무전공 제도를 도입한 대학에서 학생 지도와 학교당국의 대책을 모색할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림 1).19)

5년 단위로 전공선택의 변화를 살펴보면, 사회과학 분야는 줄어들고 있고, 공과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의 구조변동과 연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의 전공은 증감의 차이가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염려할 정도의 유의미한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년간 나타난 전공선택의 전체적 경향 또한 사회적 수요와 학생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경영대·공대·사회대를 선택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반면에 인문대는 비교적 낮고, 농업생명과학대학·생활과학대학·음악대학·미술대학 등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소수의 선택이지만 학부과정에서 농업생명과학대학 계열의 전공이나 음악대학에서 작곡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동일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적성에 따라 인생을 설계하는 경우가 있다. 자유전공이라는 제도를 활용하여 학생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실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자유전공 제도가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대효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위안페이칼리지의 진로 결과가 보여주듯이, 본인이 선택한 전공일수록 그 전공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 학문적인 탐구 과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전공 제도에서 나타나는 전공 쏠림 현상은 한국적인 현상만이 아니다. 전공 없이 진학하는 하버드대학교의 전공선택 결과를 살펴보면 전공선택의 쏠림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의 경우 사회과학 일반과 경제학을 비롯한 상위 4개의 전공이 전체 57개 전공 중에서 약 39퍼센트에 해당하며, 상위 10개의 전공이 약 6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5명 이하가 신청한 전공 또한 11개에 이른다(도표 1). 하버드대학교의 전공선택 사례를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대학교의 상황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전공선택의 결과만으로 해당 학문을 평가하지 않으며, 소수가 선택하는 학문 또한 여전히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선택의 많고 적음이 있을지라도 각각의 학문(discipline)은 독자적인 역할을 지니고 있다. 소수가 선택하는 학문 또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원칙이 적용될 때 학문의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듯이 무전공 제도가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도표 1 하버드대학의 2022년 전공선택 현황(제1전공)20)

전공Students
1사회과학 일반195
2계량경제학186
3컴퓨터 사이언스162
4정치학 일반112
5응용 수학80
6신경과학77
7진화생물학71
8실험심리학66
9분자세포생물학50
10통계학 일반50
47종교학5
48천문학 및 천체물리학4
49동아시아 연구4
50민속학4
51신경생물학 및 해부학4
52여성학4
53아프리카-아메리카 흑인 연구3
54리버럴 아츠 앤드 사이언스3
55독일어문학1
56천문우주학1
57낭만주의 언어와 문학1
합계1697

5. 학부교육의 혁신을 위하여

무전공 제도의 시행과 함께 자유전공 제도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의 대학은 전공과 학과 제도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정부는 대학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근대국가적 이념하에 대학정책을 시행해왔으며 대학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대책을 강구해왔다. 그리하여 정책과 대책의 불협화음 속에서 학과제와 학부제가 반복되어온 것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학부교육을 혁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학과와 전공을 넘어서기 위해 계열별 모집과 학부제가 시행되었으며, 그 뒤로 자유전공, 그리고 이번에 무전공 정책이 시행된다.

자유전공 제도라는 유령은 사회의 기득권을 두려워하게 할 것이고, 기득권 세력은 두려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을 것이다. 문제는 대학이 본래 유령과 기득권의 싸움이 벌어지는 투쟁의 공간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미래를 위해 함께 배우고 익히는 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자유전공 제도가 시행되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이러한 비판은 전공 쏠림과 학문의 불균형 등 교육적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시행되어온 자유전공 제도의 현실과 이상에 대해 교육적 관점에서 다면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학과와 전공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전공 제도가 한국에서 실패했다는 것은 이 제도가 갖는 허와 실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부족한 일면적 평가다. 자유전공 제도를 전공선택의 자유라는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자유전공이라는 제도가 지향하는 교육적 목표를 볼 수 없다. 이 제도의 목표는 학부교육의 내실화이며, 종래와 같은 분과 전공에 정통한 식견을 가진 인재가 아니라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폭넓은 시각을 지니는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미 학과와 전공, 학부와 단과대학을 넘어서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 앞서가고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학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대학교육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교육적 측면에서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해방 이후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학과와 전공의 영역을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970년대 ‘실험대학’의 시도에서 계열별 모집을 제시했고, 1990년대 ‘5·31 교육개혁’에서는 학부제를 제안했다. 그렇지만 학과와 전공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게 나타나는 한국의 대학에서 계열별 모집과 학부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시도된 자유전공 제도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시도한 기획이었지만, 이 또한 전공선택의 불균형이라는 덫에 갖혀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교육적 함의를 널리 전하지 못했다. 이번에 시도되는 무전공 제도 또한 낯선 제도라기보다는 한국의 대학정책에서 학부교육의 혁신을 위해 노력해온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무전공 제도가 한국의 대학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학과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대학교육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에서 시행되었던 자유전공 제도는 지금은 본래의 취지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대학이 추구해온 학부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유전공에 대한 부정적 평가 또한 반면교사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지닐 수 있다. 자유전공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 즉 전공선택의 쏠림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분과학문의 불균형 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공선택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공을 선택하는 주체의 자율성을 배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공 쏠림 현상이 한국보다 심하게 나타나는 해외 대학이 자유전공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대학의 명성을 지켜나가는 운영과 관리 사례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것이다.

올해 제시된 무전공 제도는 학과교육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지난 30년 동안의 대학정책을 성찰하면서, 그리고 지난 15년 동안 시행되어온 자유전공 방식의 교육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학부교육의 혁신이라는 교육 내용과 방식에 관한 설계도를 구비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설계도가 있어야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듯이, 이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를 위한 충분한 준비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부교육은 학생이 학문적으로 성숙하고 인간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교육의 원칙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梁一模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최근 논문으로 「한국적 철학사상을 찾아서」(2024)가 있다.

1) 교육부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국립대학육성사업 기본계획 발표」(2024년 1월 30일 조간 보도자료). 이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자료 별첨 1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일반재정지원) 기본계획」, 별첨 2 「2024년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 참조. 이하 교육부의 정책은 이들 자료에 의거함.

2) 「올해 고2들…수도권대 신입생 25% 이상 ‘무전공 입학’ 추진」 『한겨레신문』(2024년 1월 3일).

3) 「수도권대 정원 25% 이상 ‘무전공 입학’ 선발 추진」 『중앙일보』(2024년 1월 2일).

4)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의 자유전공 제도는 민윤경 「국내 대학 자유전공 제도의 가능성과 한계 탐색」, 『한국교육행정학회 학술연구발표회논문집』(2021) 참조.

5) 「인터뷰, 이주호 “MIT 스탠퍼드도 100% 무전공 입학, 원하는 공부 하게 해주자”」, 『노컷뉴스』(2024년 1월 25일).

6) 양일모 「자유전공 제도의 운영 및 발전 방향: 서울대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평가와 개선 방향: 글로컬대학 사업과 대학교육과정 혁신을 중심으로』(제4차 (사)한국교육정책연구원 교육포럼, 2024).

7) 강좌제는 일본의 제국 대학에서 시행된 제도로서 전문 학문 분야의 명칭으로 된 강좌를 정하여 1명의 주임교수(chair) 아래 조교수, 조수로 구성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조직을 말한다. 1926년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서는 철학 분야의 교육과 관련해서 철학・철학사, 지나(중국)철학, 윤리학, 심리학, 종교학・종교사, 미학・미학사, 교육학, 사회학 등 8개 강좌가 설치되었다. 강좌제는 학과제와는 전혀 다른 제도이지만, 경성제국대학에서는 8개의 강좌가 통합적으로 철학과로 불렸다. 許智香 「京城帝国大學‘哲學・哲學史’講座の日本人たち―その構成員と制度上の特徴」, 󰡔立命館大學人文科學研究所紀要󰡕137號(立命館大學人文科學研究所, 2024) 참조.

8) 강명구·김지현 「한국 대학의 학사구조 변화와 기초교양교육의 정체성 확립의 과제」, 『아시아 교육연구』 11.2 (2010).

9) 김화진 「학부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공학교육연구』 5.2 (한국공학교육학회, 1998).

10) 오은주 「자율전공학과 현황분석과 운영방안 연구」,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9.3 (2019).

11) 「자유전공학부 도입 10년…기능 ‘유명무실’ 폐지 수준 전락」 『아주경제』(2019년 3월 24일).

12) 「“의사 한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서울대 공대는 지금」, 『한국경제』(2023년 2월 2일).

13) 빌레딩스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폐허의 대학: 새로운 대학의 탄생은 가능한가』(책과함께, 2015) 16면.

14) 吉見俊哉 「‘文系學部廢地’の衝撃」(集英社, 2017) 89면.

15) 문과 1계열: 법학부, 교양학부. 문과 2계열: 경제학부, 교양학부. 문과 3계열: 문학부, 교육학부, 교양학부. 이과 1계열: 공학부, 이학부, 약학부, 농학부, 의학부(건강종합과학), 교양학부. 이과 2계열: 농학부, 약학부, 이학부, 공학부, 의학부(의학과, 건강종합과학), 교양학부. 문과 3계열: 의학부(의학과).

16) 「위안페이칼리지 졸업생 취업 동향」. https://yuanpei.pku.edu.cn/xssh/zsjy/ 488431.htm. 2024년 8월 20일 검색.

17) 백종현 외 『자유전공제 도입에 대한 검토 연구』(서울대학교 정책연구, 2005).

18)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위원회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2007-2015)』(서울대학교, 2007) 3면.

19) 김동일 「서울대학교 학부 교육 혁신 방안 연구」(서울대학교 평의원회 정책보고, 2024) 48면.

20) https://www.collegeraptor.com/.

│양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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