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7호][서평] ‘선’으로 읽는 인류 생태와 역사: 팀 잉골드 지음, 김지혜 옮김 『라인스』(포도밭출판사, 2024)/ 장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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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동

‘선학’의 출현

지금까지 학문의 역사는 심층 주제를 좁고 깊게 분석·연구하는 분화와 전문화의 길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사상의 지평은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횡단과 통섭, 나아가 전통적인 학문의 영역과 분류마저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총체적인 연계 학문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선학(線學)’이라고 명명된 팀 잉골드(Tim Ingold)의 방법론적 사유세계를 대변하는 『라인스』(Lines)는 이러한 학문적 추이를 잘 보여주는 저작이다.

잉골드는 30권이 넘는 인류학 관련 저서를 출간했지만, ‘선학’의 관점에서 인류 생태의 삶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은 『환경지각』(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 Essayson Livelihood, Dwelling and Skill, 2000), 『라인스』(Lines: A Brief History, 2007), 『만들기』(Making: Anthropology, Archaeology, Art and Architecture, 2013)라는 세 권의 저술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23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환경지각』은 차례로 생계수단의 조달, 거주의 의미, 기술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며 사회인류학, 생태심리학, 발달생물학, 현상학적 접근을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 방식으로 연결한다. 잉골드는 『환경지각』의 소개말에서 “기술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에서의 연습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고 인간 유기체에 통합”되는 것이며 “따라서 기술은 문화적인 것만큼이나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1)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험에서의 움직임·지식·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한 『라인스』에 이어 잉골드는 인류학·고고학·예술·건축을 ‘만들기’(making)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만들기’의 본질이 지식 창출과 새로운 환경 구축을 통해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만들기』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잉골드는 선사시대 석기 제작부터 중세 대성당 건축, 원형 토루(土壘)부터 기념비, 연 날리기부터 줄 감기, 그림 그리기부터 글쓰기까지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소개하면서 “예술과 건축을 인류학적 또는 고고학적 분석을 위한 대상의 일람표로 취급하는 대신, 지각 있는 실천가(전문가)와 능동적인 재료가 형태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서로 끊임없이 응답하거나 ‘대응’하는 만들기를 통해 사고하는 방식을 옹호한다”라고 말한다.2) 인류학이 세상에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대응하며 세상을 함께 만들 필요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선의 역사와 인류의 생태

인류의 역사를 선(lines)의 형성과 변화, 소멸, 재현으로 이해하는 잉골드가 ‘선의 개략적 역사’라는 부제를 단 것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라인스』는 선의 비교인류학으로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융합학문의 토대를 세우려는 시도다. 『라인스』의 머리글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잉골드는 걷기, 직조, 관찰, 이야기, 노래, 그리기, 쓰기에서 선의 진행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내 내용을 구성하고 방대한 학문 영역을 ‘선학’적으로 이어가며 여러 학문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 연결을 논증한다. 잉골드의 인류학적 사유에서 인간과 사물이 어우러져 존재하는 생태는 선이 만들어지고 변화되고 사라졌다가 다시 또 재현되는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걷고, 말하고, 손짓하는 생명체로서 언제 어디서나 선을 만들어낸다. 말하고, 손짓하고, 움직일 때 목소리, 손, 발을 사용하는 것처럼 선 만들기는 어디에서나 행해질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잉골드는 『라인스』에서 선은 실, 흔적, 절단, 균열, 주름, 가상의 선, 맞지 않는 선 등 일련의 형태 중 하나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말·노래·음악이 악보와 글의 흔적 속에 서로 연결된 선의 종류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우리가 풍경 속을 이동하거나 제자리에 멈추는 활동 역시 풍경과 개인의 전기가 선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잉골드는 노래와 악보 표기법부터 글쓰기, 걷기, 여행, 장소의 형성, 직조, 예술적 디자인, 인쇄, 서예에 이르기까지 선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행위를 선의 생성과 관련된 활동 목록으로 재구성한다. 

‘따라가는 선’과 ‘가로질러 가는 선’

‘따라가는(along) 선’과 ‘가로질러(across) 가는 선’은 『라인스』의 ‘선학’적 중심 논리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잉골드가 이 두 종류의 선을 행로와 운송, 거주와 이동, 산책과 조립체, 그물망(meshwork)과 연결망(network) 사이의 차이로 구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를 원시세계와 근대 기계문명을 대변하는 두 선의 형태로 분석한 것은 자못 흥미롭다. ‘따라가는 선’은 클레(PaulKlee)의 용어를 빌리면, 산책과 같다. 대조적으로 ‘가로질러 가는 선’은 이차원 공간에 배열된 일련의 점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잉골드는 ‘따라가는 선’과 ‘가로질러 가는 선’을 행려(行旅) 길과 ‘운송’의 대비로 설명한다. “산책하러 나가는 선과 같이 ‘행려’의 길은 이리저리 천천히 이동하고, 움직이기 전에 여기저기에서 쉴 수도 있다. 길 위에 있는 행려는 언제나 어디엔가 있지만, 그 모든 ‘어딘가’는 다른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따라서 시작도 끝도 없다”3)(174면)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는 이런 길로 이루어진 얽힌 모양의 그물망이며, 삶은 그 길들을 따라 진행하며 계속해서 직조된다. 이에 반해 운송은 목적지 지향적으로 삶의 방식에 따른 행로의 진행이 아니라 사람 또는 물건의 기본 성질을 불변의 상태로 유지한 채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가로질러’ 그들을 운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운송은 정보시스템과 물류가 결합하여 세계화의 전위(前衛)로 작동하는 로지스틱스(logistics)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로지스틱스 운영의 목적은 차이점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점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것이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연결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경계를 비롯한 간극, 차이, 갈등, 조우를 장애물로 이해하기보다 효율성 추구의 조건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4) 잉골드에 따르면 운송의 선은 점과 점을 연결하는 연결망을 이루며, 점령의 식민지적 기획 속에서 거주지의 뒤얽힌 삶의 흔적들을 지우며 영토 전체를 장악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행려는 얽히고설킨 세계 사이로 길을 만들면서 세계라는 직물이 되며, 그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무늬를 형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행려의 방식은 우리의 삶이 한 지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라’가며 사는 것이라는 발상을 뒷받침한다. 잉골드는 선을 따라 사는 삶과 점에서의 삶을 ‘약도 위에 선 긋기’와 ‘작도법적 지도에서 선 긋기’로 대비해 설명한다. 약도 위에 선을 긋는 것은 이전에 있던 몸짓의 자취에 추가적인 몸짓의 자취를 더하는 것이다. 지도 속 참여자들은 각자 다양한 여정을 묘사하면서 반복적으로 선을 더해간다. 따라서 지도는 한 선 한 선 늘어날 뿐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 모든 개입 속에서 몸짓은 지도의 부분으로 생성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도법적 지도의 선 긋기는 다르다. 바다를 항해하는 항법사는 해도(海圖) 위에 항해의 경로를 표시할 것이고, 이때 자와 연필로 그은 선은 해도의 일부가 되지 않고 항해가 완료되면 지워진다. 

잉골드는 약도 위 선 긋기와 작도법적 선 긋기의 비교를 통해 몸짓의 자취나 산책의 선이 작도법적 규율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작도법의 선은 몸짓의 자취가 아니다. 작도법의 선을 읽을 때 신체와 우리의 몸짓은 그 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 선은 삶의 자취가 아니라 점을 연결하는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주의 선/거주의 지식과 점령의 선/점령의 지식 

잉골드가 ‘따라가는 선’과 ‘가로질러 가는 선’의 본질적 차이를 각각 거주의 선/거주의 지식, 점령의 선/점령의 지식으로 대비하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이 세계의 유동하는 존재들은 행로실천을 통해 세계에 거주한다. 세계에 대한 앎의 방식 역시 이 행로를 ‘따라가는’ 것이지 특정 지점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주민의 지식이 행로를 따라가면서 통합된다면 점령의 지식은 위쪽을 향해 통합된다. 거주의 지식체계에서 앎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계 사이로 움직이는 길이며, 행려는 말 그대로 여행의 선을 따라“가면서 알게 된다”(185면). 반면에 점령의 지식체계는 움직임의 역학과 지식의 형성 사이, 또는 이동과 인지 사이의 범주적 구별 위에서 설립된다. 이 체계에서 이동은 점에서 점으로 세계를 ‘가로질러’ 잘라내고, 인지는 점들의 배열과 그것의 축적이 통합된 조립체로 쌓아 ‘올려’진다. 그러나 잉골드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 지식이란 ‘가로질러’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선은 삶처럼 끝이 없다. 삶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따라’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모든 경험이다. 우리가 어디에 존재하든 갈 수 있는 더 먼 곳이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모든 존재[事物]는 근본적으로 장소의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체득하는 유동하는 존재다. 따라서 한 지점에 붙박여 정적이고 고정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잉골드는 삶이 특정한 장소에서 사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길들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장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어떤 곳들이 하나 이상의 길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이어진 길이고, 어떤 곳으로 향하는 움직임의 길”이라고 말한다(26면).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연결망의 선들은 점들을 잇는 연결장치다. 현대인의 생활세계를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연결망은 인간과 동물이 다니는 샛길을 단절하는 간선도로, 기찻길, 파이프라인처럼 존재의 지형을 가로질러 그려지는 선으로 지역 안에 직조된 거주의 선들을 자르고 유린하며 연결하는, 제국의 힘이 작용하는 점령의 선이다. 잉골드의 관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그 점령의 선이 연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한 표면을 영토로 구획하고 절단하여 분할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삶은 그런 절단과 분할로 중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들의 무수한 선을 따라 세계 사이로 누비듯이 나아간다. 요컨대 생명의 생태학은 실과 자취의 생태학이지 교점과 연결장치의 생태학이 아니다. 그리고 생태학은 선으로서의 삶에 대한 학문이다.

잉골드에 따르면 정주민은 장소를 점령하는 반면 유목민은 점령에 실패한다. 하지만 행려는 실패한 점령자나 주저하는 점령자가 아니라 성공한 거주자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먼 거리를 여행하고, 이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지나간 장소의 지속적인 형성에 기여한다. 요컨대 행로는 장소가 없거나 장소에 묶인 것이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움직임으로 장소의 연쇄를 통해 나아가는 흐르는 선으로 묘사될 수 있다. 시간과 ‘더불어’(with) 움직이는 행려와 달리 운송되는 여행자는 시간에 ‘저항하면서’(against) 앞다퉈 달리고, 그 시간의 통로에서 성장의 유기적 잠재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비의 기계적인 한계를 절감한다. 

잉골드가 『라인스』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쓰기와 인쇄의 비교를 통해서도 두 종류의 선과 삶의 방식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잉골드에 따르면 저자가 문학적인 예술가라면 인쇄업자는 활자 기술자다. 쓰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선은 연속적이지만 인쇄 과정을 거쳐 나타난 선은 연결장치이며 움직임이 없다. 마찬가지로 인쇄된 텍스트의 지면 전체보다 손글씨의 자취 하나에 더 많은 움직임이 있다. 손글씨가 걷기와 같다면 일정한 간격의 글자들을 결합하는 인쇄의 선은 등거리의 플롯을 결합하는 보행 분석 기록과 같다. 인쇄물이나 타자로 친 원고에서 글자의 선은 산책하러 나가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전혀 나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원래 있던 지점에 머물 뿐이다. 

인문 커뮤니티, ‘덩이’에서 ‘선’으로의 전환적 삶

인류학자들은 근대 서구사회의 특징을 선형성으로 이해하고 비서구사회를 자민족중심주의를 체화한 결과 나타난 선형성의 부재, 즉 ‘비선형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잉골드에 따르면 식민주의는 먼저 삶이 진행되는 경로를 그 진행을 억누르는 경로로 바꾸고, 하나의 지점에 억눌려 폐쇄된 공동체를 수직적이고 통합적인 조립체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을 따라 사는 일과 선을 결합하는 일은 매우 다른 활동이다. 잉골드는 “선을 따라 사는 것과 선을 결합하는 것은 꽤나 다른 일이다”(26면)라는 선언적 명제를 통해 선의 인류학이 나아갈 방향과 의미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라인스』는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물을 연구하는 일은 곧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연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잉골드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책의 주장을 요약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한 것은 이렇게 함께 그리는 것이 세계에 한 장소를 확립하는 방법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려진 실들이 자신의 차례가 오면 다른 실들과 함께 다른 매듭으로 묶일 끝부분을 예외 없이 남긴다는 점이다. 선은 열려 있으며, 삶, 관계, 역사, 사고과정에서의 이러한 개방성이야말로 내가 기리고 싶은 것이다”(333면).

잉골드의 『라인스』는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문헌과 다양한 경험적 사례를 통해 선의 원형적 의미와 역사를 인류의 생태와 연결지어 논의한다. 『라인스』를 읽는다는 것은 지적 여행을 떠나는 일과 같다. 잉골드는 머리말에서 “나와 달리 정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는 내 방식대로 길을 만들기 위해 힘겹게 나아가야만 했던 해당 분야에 대한 나의 무지와 서투름을 사과한다”(30면)라고 말하는데, 명쾌한 논지에 비해 논증의 정확성이나 논리의 치밀함에는 약간의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라인스』와 동행한 지적 여행의 경로에서 새로운 선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학문적 영감을 체득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잉골드는 또 다른 저서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에서 ‘덩이’(blob)에서 ‘선’(line)으로의 전환적 삶을 역설하며, 선의 원리와 덩이에 기초한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대비하여 논의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선의 원리는 탈영토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데, 사회적인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게 만든다. 따라서 선으로서의 삶에서 부분은 구성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이다”라고 주장한다.5) 인문 커뮤니티에서 집합성을 벗어난 개인들 간의 역동적·선형적 관계를 중시하는 필자에게 잉골드의 선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은 하나의 탈주선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덩이에 없으면서 선에 있는 것은 비틀림, 구부림, 활발함이며, 선이 생겨나 덩이의 독점에서 벗어났을 때 생명이 시작되고, 따라서 선은 우리에게 삶을 주기 때문이다”.6) 덩이의 연합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는 선들의 뒤얽힘 속에서 서로를 따라잡고 따라잡히는 연쇄적·선형적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적이지 않은 삶, 즉 선들의 뒤얽힘을 수반하지 않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Tim Ingold, 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 Essays on Livelihood, Dwelling and Skill (London: Routledge, 2000).

2) Tim Ingold, Making: Anthropology, Archaeology, Art and Architecture (London: Routledge, 2013).

3) 팀 잉골드 지음, 김지혜 옮김 『라인스』(포도밭출판사, 2024). 앞으로 이 책의 인용은 본문 괄호 안에 면수만 표시.

4) 산드로 메자드라·브렛 닐슨 지음, 남창수 옮김 『방법으로서의 경계』(갈무리, 2021) 304면.

5) 팀 잉골드 지음, 차은정·권혜윤·김성인 옮김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OIUI, 2024) 22면.

6) 같은 책 18면.

│장복동│

張福童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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