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효정
1. 보지 못한 것들
1979년 12월 12일 밤, 시민들은 보지 못했다. 영문 모를 차량 통제, 한강다리 교통 혼잡, 다음 날 통행금지가 해제된 새벽에 목격된 광화문의 탱크들. 인상들의 편린으로 누벼진 사건의 풍문만 가득했다. 이튿날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관련 헤드라인 보도 외에는 전날의 사태를 추측하게 하는 기사는 없었다. 신문 1면의 앙상한 이미지는 고작 심야 교통통제 사진뿐이었다.1) 억압된 이미지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조였다. 이듬해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2) 이미지는 금지되었고 시민들은 보지 못했다. 야간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비상계엄의 시대였다.3)
기록과 해명 과정에서 서사는 사후에 시간순으로 재구축되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공통 감각이 구성된다. 그렇다면 그때의 이미지는?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어떠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출현하고 소멸하며 재출현하는 과정에 주목했다.4) 최근 한국영화에서 1979년 겨울과 1980년 봄 사이, 비가시성의 영역이 재출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회파 장르의 상업영화 「서울의 봄」(2023)과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김군」(2019)을 주로 다룰 것이다. 두 작품이 12·12 군사쿠데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시기까지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이미지 작동방식을 사뭇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사회파 정치영화5)의 시간은 민주화 시대에서 계엄의 시대로, 주된 초점은 민중에서 독재자로 이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10년대 중반에는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 「1987」(2017) 등이 흥행을 견인하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시대를 ‘광장과 법정’이라는 상징공간을 통해 소환해낸 바 있다.6) 이러한 정치영화들은 이른바 영화계 ‘블랙리스트’ 시대에 암묵적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사적 실화’에서 소재를 찾고 ‘법정’에서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계몽적 성격의 영화들이었다. 성숙한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회고함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치를 주장하던 이른바 ‘87년체제’의 영화들은 실존인물을 통해 상실된 시간들을 복원하고자 하는 애도와 향수의 영화들이었다. 이 영화들은 역사적 증언과 사진, 그리고 광장에 나선 다중의 시민들의 기억을 통해 개방된 공간과 밝고 명료한 ‘가시성의 영역’을 다루었다.
그런데 근래 「남산의 부장들」(2020), 「헌트」(2022), 「서울의 봄」, 「행복의 나라」(2024)는 박정희 서거에서 전두환의 부상을 거쳐 1980년 광주를 경유하는 독재자의 교체기이자 신군부세력의 집권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7) 이들은 반민주-독재 시대의 배후인 ‘밀실과 계엄’을 조명하면서 음모와 초법의 상황을 다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집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부터 자유로워진 2020년대에 부상한 이러한 영화의 인물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다른 구간에 비해 역사 스토리텔링의 매력적인 서사적 주체다. 이들은 정서적 모순과 취약함, 그리고 광기가 직조한 독재자와 부역자 캐릭터를 통해 인물·서사·장르를 동시에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었다.8)
그런데 1979년 10·26사태와 이어지는 12·12군사쿠데타는 소수의 군인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정보도 상당히 제한되고 훼손되었다. 사건들은 야음(夜陰)을 틈타 통행금지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그 실체의 결정적 이미지들이 대중들에게 철저히 금지되었다. 이어지는 1980년의 광주 학살은 보도검열 및 언론통제를 통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미지의 전시와 유통이 차단되었다. 기억과 사태의 재구성을 통해 끊임없는 규명과 오독 사이에서 해석의 갈등을 빚었다. 사태의 원인이 민주주의적 공론장의 바깥, 음모와 ‘비가시성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의 사회파 정치영화들은 비가시성의 영역에 놓인 장면들을 경합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10·26사태 전후 40여 일의 행로를 따라간다. 「헌트」는 광주학살을 자행한 후 독재적 지도자가 된 권력자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다루는 정치음모 영화다. 「행복의 나라」는 10·26사태에 가담한 요원의 재판 과정을 따라가며 이어진 12·12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잡아가는 전두환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의 봄」의 제목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적 열망을 담고 있지만,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열망을 좌절시킨 독재자가 역사에 등장하는 긴박한 순간이다.
민주화의 영화들이 우울증적 정조를 바탕에 둔 향수와 열망의 영화라면, 독재자의 교체를 다룬 영화들은 무력감과 분노의 정조를 바탕에 둔 예외상태9)의 영화다. 이 시기 등장하는 것은 특정 사조직 출신의 군인 엘리트 집단과 독재자다.10) 보았고 참여했지만 이루지는 못한 열망(민주화)에 대한 향수의 영화들이 기억의 통합을 주장한다면, 실상 누구도 보지 못했고 그렇기에 막을 수 없었던 암살과 쿠데타와 학살의 기억은 다양한 주장과 비판과 오독이 난무하는 영역에 놓여 있다.11) 합의되지 않은 사회적 기억에 대한 해석과 판단의 경합의 장 속에서 어떠한 이미지들이 돌출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서울의 봄」은 우리가 어렴풋이는 알고는 있었으나 볼 수 없었던, 다시 말해 그동안 비가시성의 영역에 놓였던 이미지들을 폭발적으로 등장시키며 131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김군」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한 청년의 잊힌 이미지, 되돌아와 오염된 이미지의 기원을 찾아가는 작품으로 상찬받았다.12) 상업영화인 「서울의 봄」과 독립영화인 「김군」의 이미지 작동방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부상하는 독재자, 소멸하는 시민
독재자가 죽자 또 다른 독재자가 왔다. 1979년과 1980년 사이 어떠한 일이 밀실 속에서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한 채 독재의 영속성으로 보일 수 있던 부정적 전망이 우세해졌다. 시민들은 어찌해볼 도리도 없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악몽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달을 때의 두려움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영화는 한 국가의 고유한 멘탈리티를 어떤 예술 매체보다 잘 반영하기에 특정 시기의 영화는 한 국가의 심리적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텍스트가 될 수 있다. 크라카우어(SiegfriedKracauer)는 영화가 현존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거울이라는 비유는 영화가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는 의미를 넘어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확장된 의미를 함유한다.13) 영화란 제작 특성상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익명의 다수를 향해 말을 걸기 때문이다.14) 크라카우어는 같은 특징들이 스크린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당시 집단심리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극도의 혼란상이 폭군을 낳고 이 폭군들이 다시 새로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15)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20)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군중에게 최면을 거는 특별히 사악한 인물로, 히틀러의 등장에 대한 전조로 해석되었다.16) 「도박사 마부제 박사」(Mabuse, Der Spieler, 1922)에서 마부제 박사는 도처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그려진다.17) 「M」(M, 1931)은 ‘우리 안의 살인자’라는 주제를 내세웠는데, 나치당은 이를 자신에 대한 암시인 양 불편해했다.18) 비이성적 힘이 지배하는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심약한 남자는 가상의 칼리가리(시대의 분위기)에 복종하기 때문에 살인자가 된다. 영화는 시대의 분위기가 살인자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퇴행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사디즘의 분출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9)
의도했든 아니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독재와 카오스 사이에서 주저하다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영혼을 드러내고 있다. 독재로부터의 그 어떤 탈출의 시도도 다시금 영혼을 도저한 혼돈의 상태로 귀결시킨다. 이 영화가 도처에 만연된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치의 세계처럼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세계는 불길한 전조와 테러 행위, 그리고 심리적 공황상태의 분출로 넘쳐난다. (…) 영화에서 어떤 강력한 사디즘과 일상의 질서에 대한 파괴욕이 촉발된다. 이러한 특징들이 스크린에 반복 등장하는 것은 독일인의 집단심리 속에서 그들이 하던 역할을 거듭 입증한다.20)
한국의 오늘날 사회파 영화들은 대중들의 열망과 절망을 서사의 자양분으로 삼아 흥행을 견인해왔다. ‘광장과 법정’의 사회파 영화는 지난 보수정권기 민중들의 좌절된 감성과 더불어 민주주의적 가치와 상식을 반영했다. 그 결과 「택시운전사」 「변호인」은 천만관객을 동원한 국민의 영화가 되었다. 비슷한 흥행의 관행을 잇는 ‘밀실과 계엄’의 사회파 영화들은 정치적 퇴행이 이루어지고 대중들은 무력감에 사로잡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자 시선을 과거로 돌려 불신과 혐오의 시대를 조명했다. 이 영화들은 대중들의 분노와 무력감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
밀실과 계엄의 영화들은 가학적 독재자의 출현을 막을 수 없었던 무기력했던 비가시적 시간들을 집중적으로 소환하고 있다. 어두운 권력의 막후에서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독재자, 특히 전두환이다. 박정희 정권 최후의 날들을 조명한 「남산의 부장들」의 엔딩 신에서 관객의 기억에 깊게 각인된 이미지는 주인이 사라진 청와대 집무실의 어두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새로운 독재자, 전두혁(전두환)의 얼굴이다. 「행복의 나라」는 박정희 사망 이후 권력자로 부상한 전상두(전두환)가 12·12 군사반란을 거쳐 1980년 5·18을 감행하기에 이르는 과정이 배경에 놓여 있다. 「헌트」는 광주학살을 거쳐 신군부의 독재자가 된 대통령(전두환을 암시)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다. 이들 영화 속에서 새로운 독재자의 얼굴은 뚜렷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의 봄」의 이미지 전략은 달랐다. 영화는 군사반란을 통해 신군부의 권력자가 부상하는 과정을 독재자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냈다.
영화들은 독재자의 실제 이름을 호명하지 못했다. 2005년 10·26사태를 재현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영화 속 세 장면을 삭제한 후 상영할 것을 결정했다. 삭제된 장면은 영화가 시작할 때의 부마민주항쟁 자료화면과 영화가 끝날 때 박정희 대통령 장례 자료화면이었다. 당시 개봉된 삭제 상영본에서는 이를 검은 무지 화면으로 처리하고 삭제 사유를 자막으로 밝혀둔 바 있다. 이 사건의 여파 탓인지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상물들은 송사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가명으로 바꾸거나 해당 직위로 지칭하게 되었다. 실화를 소재로 했으면서도 허구적으로 각색했음을 밝히는 자막을 넣는 관행도 굳어졌다.
전두혁, 전두광, 전상두는 실존했던 독재자 전두환을 우회한 이름이다. 동시에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신군부의 언어도단, 광기, 권위주의를 연상시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대개 어둠의 권력자로 묘사되는데, 이는 조명의 활용을 통해 주로 빛을 등지고 등장하여 암군(暗君)의 이미지로 연출된다.
영화 속 독재자의 부상과 함께 남성 집단 엘리트들(군인, 정보요원, 법률가)의 재현도 늘었다. 위에 언급된 영화에는 수십 명의 군인, 관료가 등장한다. 남성 주조연 배우들의 멀티캐스팅과 소재의 유사성으로 인해 개별 작품의 독자성이 살아나지 않고 서로 진부한 인상을 준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서울의 봄」은 역사적 사실을 들어 전문가주의가 통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관료적 부패를 극한으로 보여주며 비루한 인간들로 가득 찬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존엄한 인간들의 가치를 앙망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추하는 영화로 해석되거나, 영화가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남성성의 신화라는 또 다른 권위라는 측면에서 비판받기도 했다.21) 주인공 이태신(정우성)을 존엄한 인간형으로 이상화하는 과정이 또 다른 남성성의 신화에 근거한 것이라고 분석 가능한 평가들이다. 「서울의 봄」을 비롯한 밀실과 계엄의 영화들은 그 영화가 다루는 시대적 배경상 대부분 남성 감독, 배우들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22) 그렇지만 이와 비슷한 외견의 영화가 반복된다는 점은 영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며 문화예술계 성평등 문화의 확산과 여성영화의 부상을 논의했던 201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 담론을 상기해본다면 영화 제작 관행의 퇴행으로 보인다.23)
부상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퇴거하거나 소멸하는 이미지도 있다. 독재자의 부상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민주주의 담지자인 민중의 형상이다. 2010년대 후반, 광장과 법정의 영화에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나섰던 시민의 군상이 사라지고 대신 권력자의 사무실, 비밀회합 장소, 안가와 요정, 형무소와 고문실 같은 폐쇄적인 공간이 부각
됐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시민들은 부마항쟁의 개연성을 위한 서사적 소재로만 동원된다(이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헌트」에서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의 한인 반독재 시위대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테러 진압의 배경 이미지로만 착취될 뿐이다.24) 결정적으로 「서울의 봄」에서는 오프닝에서 박정희의 장례식에 참석한 인파가 나올 뿐, 영화는 군인들의 이미지로 시작해 군인들의 이미지로 끝난다. 영화들은 민주공화국의 주체들이 배후로 물러나고 독재자와 권력집단, 남성 엘리트 관료들이 부상하는 마초적인 권력게임에 집중한다. 민중들의 이미지는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는가? 그들은 한낱 희미한 배경으로, 서사를 위한 조악한 장치로 전락해버렸다.25)
디디-위베르만은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의 『신곡』 독서 경험을 통해 광휘(luce)과 미광(lucciole)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26) 단테(Dante Alighieri)의 어두운 지옥 여행은 파시즘 시대의 이미지에 대한 참조가 되었다. 디디-위베르만의 견해에 따르면, 파졸리니가 경험한 파시즘 시대의 한편에는 눈부신 빛으로 독재자의 후광을 만드는 선전용 서치라이트가 존재한다. 이런 시대에는 ‘사기와 기만의 교사자들’이 충만한 빛 속에 있고,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저항자들은 도주하는 반딧불로 변형된다.27) 여기서 선전용 서치라이트는 광휘로, 희미한 반딧불은 미광으로 볼 수 있다.
밀실과 계엄의 영화들은 권력의 서치라이트를 역광으로 삼아 부상한 독재자와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서치라이트의 불빛이 강할수록 그 배경의 어둠은 깊어진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 안에 미광으로서만 잔존한다. 서치라이트의 영화로 상업영화 「서울의 봄」을 살펴본다면, 그 안에서 겨우 잔존하는 민중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독립영화 「김군」을 참조해볼 수 있다.
3. 비상상화의 전략
「서울의 봄」은 “그해 겨울 철저히 감춰졌던 그 이야기”라는 점을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며 시작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박정희 장례식 실사화면에 동조된 “천지가 진동하여 산천 초목이 빛을 잃었고……”라는 음성 내레이션의 배후에서 “권력의 빈자리를 탐내는 사람은 더 짙은 어둠을 끌고 왔다”라는 자막을 넣어 빛과 어둠의 교차라는 아이러니의 수사학을 선보였다. 김성수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험한 12·12 군사반란일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79년 12월 12일 당시에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보이는 데서 살았는데, 그날 밖에 있다가 장갑차 하나가 공관 쪽으로 가는 걸 봤다. 호기심에 그걸 보겠다고 육교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총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미 육교에 있던 군인들에게 가라는 소리를 듣고 내려왔는데 그다음이 궁금해서 도무지 집에 갈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근처 친구네 집 옥상에 올라가 웅크리고 앉아 간헐적으로 계속 들리던 ‘땅, 타당’ 하는 총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각인됐고 몇십 년간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았다. 한참 지나 감독으로 데뷔할 즈음인 2003년 무렵에서야 그날 밤의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걸 찾아 읽으며 당시의 상황에 놓였던 군중들은 어떻게 행동했을지 계속 상상했다.28)
12·12 군사반란은 심야 시간에 전격적으로 자행됐다. 계엄령하의 야간 통행금지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였다. 당시 서울 시민들은 밤에 어떠한 일이 긴박하게 일어났는지 알 도리가 없었고, 당일의 사건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가 되어서였다.29)
어둠의 시간은 1979년 10월 26일에 시작된다. 그날 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지도자에 대한 충정 또는 망상적 체계 속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가 암살된다. 그리고 혼란 속에서 하나의 얼굴이 부상한다. 「서울의 봄」은 10월 26일 이튿날 새벽에 전두광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는 시점에 시작되어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주된 서사는 1980년 12월 12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인 12월 13일 새벽 4시 사이를 정점으로 진행된다.
10·26 심야 군사회의에서 12·12 사전 모의까지를 빠르게 훑고 지나간 후 영화의 대부분은 12월 12일 일몰 이후의 일을 엮어낸다. 시간적으로 긴박하게 전개되면서도 밤과 어둠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영화는 음모의 비가시성을 보조하는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첫 번째 장치는 역광과 소등이다. 영화 속 전두광은 창문 앞이나 조명을 배후에 둔 그림자진 얼굴로 빈번히 등장하곤 한다. 상징적 장면은 12월 9일 전두광의 자택에서 열린 하나회 비밀회동이다. 전두광이 군법을 초월한 계획을 제시하자 하나회의 선배 군 장성들이 염려를 한다. 그러자 전두광이 일어나서 거실 형광등 중 하나를 끈다. “그 이왕이면 혁명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십시오.” 노재건(노태우)이 일어나 연달아 형광등을 끄자 거실은 어둠에 휩싸인다. 음모는 밤의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두 번째는 커튼과 블라인드의 활용이다. 영화 속에서 전두광 일당이 커튼을 치고 빛을 차단한 채 비밀회의를 하는 장면이나, 밤에 블라인드가 쳐진 밀실의 어둠 속에서 음모를 꾀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커튼으로 엄폐된 비밀 사령부에서 하나회 회원들은 비밀리에 도청을 하며 작전을 진두지휘한다. 커튼과 블라인드는 도청, 밀담, 언론통제의 시대를 암시한다. 음모자의 얼굴에 블라인드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세 번째는 서치라이트와 화장실 백열등의 사용이다. 권력의 빛인 서치라이트는 대항권력의 미광에 대조된다. 디디-위베르만은 이미지는 가까이 있는 여러 미광들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지평은 멀리 있는 강한 빛을 제공한다고 언급했다. 강한 빛의 서치라이트는 최종적 목적의 초월성 속에서 모든 형태의 미광(차이)를 집어삼킨다는 것이다.30) 한편 화장실은 은밀한 개인의 공간이자 악취와 배설의 공간이다. 영화는 두 번의 화장실 장면을 통해 침침하고 습한 화장실에서의 전두광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화장실의 미등은 어둠 속에 홀로 놓인 권력자의 비열한 민낯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작동했던 음모들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가. 권력자는 이미지를 독점하고 이미지를 금지한다. 나치는 가스실을 통해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비상상화(désimagination)31)의 전략을 활용했다. 첫째, 대량학살은 상상하지 못할 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둘째, 대량학살은 소멸할 사람들에게 금지된 것이며 오로지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32)
디디-위베르만은 “절대적으로 시선 없는 절대적 재난”이자 “상상을 넘어서, 그리고 기억의 이전”의 “시선 없는 문제”33)라는 쇼아에 대한 바이츠만(Gérard Wajcman)의 민감한 윤리적 입장이 도리어 쇼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고립시키고 있음도 지적한다. 재현 불가능성을 넘어 우리의 시선을 요청하는 이미지를 응시하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둠을 활용하여 권력의 서치라이트로 사람들의 빛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키는 비상상화의 전략은 계엄의 시대, 야간 통행금지의 시대, 밤의 역사 속에서 비가시적으로 진행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비가시성의 영역에 놓였던 사건을 매우 긴박하게 전달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진실의 규명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합법과 명분은 패배하고 초법과 음모가 성공한다.
「서울의 봄」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지만 보지 못한 것(상상하지 못한 것)을 재구성한다. 여기서 관객은 진실의 규명을 통해 이성적 추론과 합리적 비판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긴박한 사건의 진행 속에서 독재자의 얼굴이 등장할 때 정서적 집단 흥분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봄」 개봉 당시 이른바 ‘분노 챌린지’ ‘심박수 챌린지’라 불린 인증 문화를 떠올려봄 직하다. 이는 전두광(황정민 분)이 등장하거나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이 자신의 스트레스 지수, 혈압, 심박수 등이 보이는 스마트워치나 애플리케이션 기록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관람 문화였다.34)
대체로 관객들은 전두광의 불법적이자 초법적인 군사반란이 군인과 관료들의 어처구니 없는 무능함 속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도가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궤변을 낳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날의 진상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두광의 행태를 보고 점차 고조되는 흥분 상태 속에서 분노하는 것이 초점이었던 것이다. 관객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이렇게 어이없는 하룻밤의 군사반란을 통해 1980년 5·17 군사쿠데타에 이어 5·18 광주 시민학살이 이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신군부의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통제하에 압살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독재자를 향한 강한 서치라이트는 미광들을 말살한다. 디디-위베르만은 미광-이미지와 서치라이트-지평을 대조시켰다. 서치라이트는 독재자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보이지만 오히려 비상상화의 장치다. 이는 이미지를 쇠약하고 메마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즉 이미지에서 공포의 사료(document)만을 보게 하는 방식으로, 이는 전체를 조각내어 보이는 부분만을 강조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재배치함으로써 형식적이고 역사적이고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조작을 자행하는 것이다.35)
빛을 독점한 독재자는 매일 저녁 9시 정각이 되면 텔레비전 정규 뉴스 첫머리에 등장했다. 디디-위베르만은 아감벤이 권력의 의례적인 측면의 역사를 조명한 개념을 차용하여 “군림의 기계와 영광의 스펙터클이 있다”라고 언급했다.36) 군림하는 자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등장한다. 영광이 자신의 목소리나 빛 자체를 군림에 선사하게 된다. 한편 이 빛나는 이미지는 그 고유한 힘으로 우리를 그 흐름에 도취시켜 예속된 민중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독재자에게 강한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방식은 시대의 지평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역사 속에 잔존하는 미광의 이미지들을 더욱 메마르게 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잔존하는가?
4. 유령이자 징후, 잔존하는 이미지
무명(無名)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하는 영화가 있다. 1989년 광주청문회 화면에서 의문의 복면을 쓴 청년(들)이 등장한다. 권력의 서치라이트하에서 (명백한 학살자임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공개해온 독재자의 시대에, 왜 이 청년들은 복면을 쓰고 비가시성 속으로 숨어들었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37)은 잔존하는 이미지 속에 남은 한 청년의 정체를 따라간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페퍼포그를 탄, 카메라를 응시하는 저 청년은 누구인가? 「김군」은 권력의 강한 빛 아래 독재자의 부상을 조명한 대중영화의 지평과 달리 1980년의 광주를 사려 깊게 되돌아본 한국의 독립영화다.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특정한 시대의 조형 이미지 속에는 당시에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고 있던 양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따라서 역사 속 조형 이미지의 변천 과정을 추적해보면 인류 정신사의 발전 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38) 그는 스스로를 한 시대의 억압된 무의식을 탐구하는 심리사학자라 여기며 고전미술에 잔존된 시각 상징을 한 사회의 특정한 시기에 나타나는 정신사적 위상의 병리학적 징후로 설명한다.39) 이번 장에서는 이미지들이 출몰하는 시간 지층에서 특정한 사회적·집단적 기억을 발굴하는 바르부르크의 작업에서 착안하여, 비가시성의 영역에 방치되었던 이미지가 어떻게 잔존하고 부상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영화는 페퍼포그를 탄 청년의 이미지를 둘러싼 기억과 판독의 혼선과 오염의 과정을 따라간다. 보수논객 지만원은 사진 속 청년을 광주에 투입된 북한군 특수요원을 지칭하는 속칭 ‘광수’ 중 제1광수로 명명했다.40) 사이비 심리학적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이 작품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미 지만원이 지목한 이른바 ‘광수’의 사진들이 (당연히 북한군이 아닌) 광주시민들이라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해와 합리성을 차단한 반지성주의자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관계없이 이미 “경험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41)
다만 이 청년의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누군지 모르는, 역사 속에서 사라진 한 무명 청년의 이미지는 1980년의 광주를, 금남로의 시민들을, 익명의 개인을 망각 속에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박기현은 디디-위베르만의 논의를 따라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이미지의 출현과 그 내재적인 이미지의 가슴 찌르는 대조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디디-위베르만은 유대인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들이 남긴 4장의 수용소 사진이 두 가지 불가능성,42) 즉 증인의 임박한 소멸과 증언의 확실한 재현불가능성의 틈을 비집고 출현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을 썼다. 이 사진 이미지들은 진실을 보여주기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심지어 부정확하다.43)
이 청년의 이미지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광주의 기록사진들 속에 남아 있다. 페퍼포그를 탄 청년은 누군가를 닮았고 누군가였다가 누군가가 아니었다가 궁극적으로는 그 정체가 확정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로 영화 속을 부유한다. 단지 그 순간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외에 그의 이름·직업·나이, 그리고 그의 삶 전체는 부정확한 기호의 편린들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광주 기록사진 속 복면을 쓴 청년들은 사실 기록에 남겨져 군부독재의 희생양이 될 위협에 맞서 스스로의 얼굴을 가렸을 것이다. 또는 누가 우리 편이고 우리 속의 적(프락치)인지 모를 극도의 위기감 속에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페퍼포그를 탄 청년, ‘제1광수’로 오도된 명명을 당한 청년은 복면을 내리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 응시를 통해 그가 그곳에 있었음이 증명된다. 그리고 비가시성의 시간을 뚫고 우리의 시선이 그의 시선과 마주치며 시간과 공간이 접히는 시대착오적 경험이 발생한다. 영화는 광주의 생존자들을 만나며 사진 속 청년의 정체를 찾아간다. 하지만 영화의 무의식은 정작 보수우익의 주장에 대한 반증의 증거를 찾아가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영화의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사진에 남겨진 이 청년은 가까스로 잔존한 이미지를 뚫고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가.
디디-위베르만은 ‘보다’라는 행위를 가시성과 시각성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다. 가시성이란 인식과 담론을 통해 이미지가 이해되는 방식으로, 이미지의 의미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추구한다.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도상학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시각성은 우리가 우연히 어떤 작품의 이미지 앞에서 시선을 멈추고 말을 잃고 무언가가 나를 붙잡아 세운다고 느끼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우리는 어떠한 시각적 요소에 의해 우리가 찢겨진 느낌을 받는다. 가시성이 재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시각성은 “지나간 수수께끼의 물질적 잔여, 흔적만이 아니라 일종의 접촉, 침범, 물질적 자국의 자취”이며 물질적 현존임에도 일종의 교란, 착란, 흔적처럼 잔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현이 하지 못하는 것, 즉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충격과 같은 준-촉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징후로서의 이미지’다.44)
징후로서의 이미지란 디디-위베르만이 독특한 미술사학자 바르부르크의 작업을 정리하며 정립한 개념 중 하나다. 우선 유령처럼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이 이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이미지는 이질적이고 과잉 결정된 역사적 요인들이 마주치는 지점45)에서 부상되었다. 이미지는 아직도 잘 정의되지 않은 집단기억의 림보(limbo)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으로, 살아남았지만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이시성(異時性, heterochrony)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46) 이미지는 우연히 출현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잠재되고 지연되고 사후적인 시대착오성을 지니고 있다.47)
디디-위베르만은 바르부르크의 미술사 작업이 ‘세부’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림 속 인물의 식별은 바르부르크의 해석의 목적이 아니다. 첫 번째 작업은 유령을 소생시키는 것, 상실된 화신(Leibheit)에게 무언가를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르부르크의 미술사 작업이 지향하는 궁극적 대상은 이미지 속 인물들의 정체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화석으로서의 역설적 삶, 즉 잔존(Nach-Leben)이다.48) 바르부르크에게 징후는 번역되지 않고 해석될 뿐이며 그러한 해석에는 끝이 없다.
다큐멘터리 「김군」의 진정성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의 진정성은 역사의 깨진 사기그릇의 파편을 모아 복원하는 작업, 즉 기억의 모자이크이자 몽타주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벤야민의 언급처럼 원초적 파괴를 겪은 존재들은 결국 불완전한 총체성의 회복만이 가능할 뿐인데, 그것만이 구원일 수 있기 때문이다.49)
우리를 잡아끄는, 시간의 지층에서 돌출된 이 이미지 속 청년은 다리 밑에 천막 치고 살던 고아 출신 갱생원 청년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쓰레기를 줍는 넝마주이로 살았을 것이다. 5·18이 되자 그도 금남로로 나갔을 것이다.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어도 평범한 광주시민으로서 으레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저 김군이라 불렸을 것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누가 이름까지 물어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미지 속 청년은 5월 23일 이후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광주 송암동 학살사건에서 총을 맞아 죽고 말았을지 모른다. 이름은 그저 김 뭐라고 한다고 누군가는 기억했다. 민간인 학살사건 이후 11공수부대원들이 시체들을 몰래 수거해 갔다. 그래서 지금은 당시의 유골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 증명할 도리가 없다.
아감벤은 보잘것없는 대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초라하고 흐릿한 이미지를 통해 예시의 인식론과 철학의 고고학을 시도한 바 있다.50) 이는 마치 상상이 개인의 전기(傳記)를 거슬러오르는 것과 같다. 고고학이나 상상이나 모두 퇴행적 힘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힘은 트라우마적 신경증마냥 파괴할 수 없도록 남은 기원으로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전미래 시제에 따라 (개인적 또는 집단적) 역사가 처음으로 접근 가능해지는 지점으로 뒷걸음치는 것이다.51) 이는 제임슨(Fredric Jameson)이 현재에 대한 미래의 판단, 미래로부터의 응시가 없다면 현재는 스스로를 하나의 자체적인 역사적 시기로 느낄 수 없다는 판단과 공명한다.52) 시간을 뚫고 잔존한 무명 청년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완결되지 않은 시간의 응시를 맞이한다. 고아 출신 갱생원 청년, 넝마주이였던, 그래도 무장저항 시민군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무고한 학살에 무력하게 사라졌을지 모르는 그에게 희미한 이름이 남겨진다. 영화의 제목은 그래서 「김군」이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한 그의 소멸. 누군가는 오염시키고 모독한 그의 삶. 불확실한 기억들과 왜곡된 정보들을 뚫고 이미지 속 청년은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를 낚아챈다.
1)宋孝貞 대구대 성산교양대학 자유전공학부 부교수, 영화평론가. 최근 논문으로 「감각의 전변, 1970년대 중반 청년 음악영화의 전개」(2023)가 있다.
「통행 차단된 12일 초저녁 육참총장공관입구」 『동아일보』(1979년 12월 13일); 「심야 강남 교통차단…시민들 걸어서 귀가」 『경향신문』(1979년 12월 13일).
2) 광주 관련 기사는 사건 발생 4일 후인 5월 22일에야 신군부의 엄격한 보도검열 지침하에 선별된 내용만 전해질 수 있었다. 이민규 「편집국장 위에 신군부 검열단장: 신군부와 언론 검열(2)」, 『신문과 방송』 593 (2020) 91~104면. 5월 19일 신문 1면에는 사진 없이 “정치활동 중지, 대학 휴교”의 헤드라인이 실렸다. 5월 20일자 신문 1면에는 10·26사건의 주범 김재규에게 사형이 확정되는 법정 사진이 실렸다.
3)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 18일 부산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다음 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사실상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비상계엄은 1980년 5월 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1981년 1월 26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된 대한민국 최장기 계엄령이었다.
4)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김홍기 옮김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도서출판 길, 2012) 84면.
5) 사회파 영화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으로 일컬어지는 영화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헤이워드(Susan Hayward)는 사회적 리얼리즘 미학에 기반을 둔 영화사상의 세 가지 영화운동으로 (1) 194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운동, (2) 1950년대 후반 영국의 프리 시네마 운동 (3) 1960년대 프랑스에서 느슨하게 전개된 시네마 베리테 운동의 예시를 들며 이러한 경향의 영화를 사회문제 영화라 칭한 바 있다. 수잔 헤이워드 지음, 이영기·최광열 옮김 『영화사전: 이론과 비평』(한나래, 2012) 193면. 이 글에서 사회파 영화란 사회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분위기와 주제의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칭한다. 2010년대 이래 한국에서는 주류 상업영화의 장에서 사회파 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가 등장했다. 사회파 영화는 한국 근대정치사의 주요한 국면을 회고하고 재평가하는 정치영화의 외견을 띠고 있기에 이 글에서는 사회파 정치영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6) 송효정 「광장과 법정: 블랙리스트 시대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 『대중서사연구』 25.4 (2019) 185~86면.
7) 이는 계엄의 시대를 경유한다. 영화의 시간은 박정희 저격 40일 전(「남산의 부장들」)부터 김재규가 사형 집행되는 1980년 5월 24일(「행복의 나라로」) 사이에 놓여있다.
8) 남지우 「을사늑약부터 국가부도의 날까지, 영화로 정리하는 20세기 대한민국 근현대사 픽션 영화 정리」, 『씨네21』 1469 (2024).
9) 예외상태는 독일에서 법과 정치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개념으로 비상상태, 긴급상태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비슷하게 계엄(etat de siege), 영미에서는 전시법(material law)과 긴급법(emergency power)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슈미트(CarlSchmitt)는 『독재론』(Die Daktatur)에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보댕(Jean Bodin) 등 주권과 독재에 대한 근대 초기의 논의들까지 검토한 뒤 독재란 변질된 정치현상이 아니라 질서유지에 필요한 법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주권자는 정치체제를 보존하기 위해 예외상태를 만들며 법질서의 회복을 위해 모든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긴급권이란 비상사태를 전제로 헌법(상 기본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권한이며, 국가긴급권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계엄이다. 표광민 「주권 해체를 향한 아감벤의 예외상태론」, 『사회과학연구』 37.1 (2011) 3면; 강성현 「한국의 국가 형성기 “예외상태 상례”의 법적 구조」, 『사회와 역사』 94 (2012) 107면.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예외상태가 법적 질서의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측면에서 ‘법의 문턱’ 또는 한계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라 말한다.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새물결, 2009) 19~28면.
10) 슈미트에 따르면 게엄령하의 무법상태(예외상태)에서는 더 이상 법정이 유효하지 않으며, 법정을 대신해 유일하게 유효한 국가권력인 군대가 일종의 ‘황폐한 대역’으로 동원된다. 칼 슈미트 지음, 김효전 옮김 『독재론』(법원사, 1996) 210~11면.
11) 윤경희는 미술사학자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이미지 아틀라스 므네모시네」 작업을 두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의 작업은 원본이 아닌 복제, 실물이 아닌 도판, 전체가 아닌 파편, 복원과 보존이 아닌 해체와 재구성, 소장보다는 공유를 위한 수집, 소유가 아닌 기억, 상실한 것에 대한 우울한 향수보다는 잔존하는 것의 영속적 원용, 질료보다는 윤곽과 형상, 예술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기록 자료를 총괄했다는 점에서 ‘무세움’(museum)보다는 ‘아르키붐’(archivum)의 원리에 따르고 있다.” 윤경희 「어른들을 위한 유령 이야기: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인문예술잡지F』 9 (2013) 56면.
12) 「김군」은 1980년 광주를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제2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비롯하여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들꽃영화제 2020 대상, 제21회 올해의 독립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13) 하선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114~15면.
14)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장희권 옮김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새물결, 2024) 15~23면.
15) 같은 책 125, 143면.
16) 같은 책 122면.
17) 같은 책 142면. 마부제 박사 시리즈는 랑(Fritz Lang)에 의해 총 4부작으로 제작되었다. 「도박사 마부제 박사 1, 2」(1922), 「마부제 박사의 유언」(Das Testament des Dr. Mabuse, 1933), 「마부제 박사의 천 개의 눈」(Die Tausend Augen Des Dr. Mabuse, 1960).
18) ‘우리 안의 살인자’는 제작 단계 상태에서의 영화 제목이었다. 나치당이 이 표현이 자신들을 가리킨다며 위협을 가했기에 영화는 중의적이고 암시적인 「M」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랑의 두 번째 유성영화 「마부제 박사의 유언」은 나치 당국에 의해 상영을 금지당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를 관장하는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니벨룽겐 1, 2부」(Die Nibelungen 1, 2, 1924) 등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민족주의적 역량을 높이 평가해왔다. 괴벨스에게 불려가 나치의 영화산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랑은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났다. 조너선 로젠봄 지음, 안건형·이두희 옮김 『에센셜 시네마』(이모션북스, 2016) 43면 참조.
19) 크라카우어, 앞의 책 380~88면.
20) Siegfried Kracauer, From Caligari to Hitler (2004 UK: Princeton UP, 2004) 74면.
21) 김영진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씨네21』 1439 (2024); 김예솔비 「사유하지 않는 시대의 징후: 「서울의 봄」이 요청하는 관습적 보기를 의심하며」, 『씨네21』 1438 (2024).
22)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의 제작사는 하이브미디어코프이며 「헌트」의 제작사는 사나이픽쳐스다. 두 제작사 모두 액션, 갱스터, 누아르 장르를 전문으로 한 남성 주도의 멀티캐스팅 대작영화를 다수 만들어왔다. 멀티캐스팅은 한국영화에 대한 피로감을 주는 안이한 기획이라는 비판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정우성은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헌트」에서 안기부 1팀(해외 파트) 차장 김정도 역을 맡았다. 이성민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인물)을, 「헌트」에서는 조원식 역을, 「서울의 봄」에서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을 맡았다. 황정민은 「헌트」에서 리 중좌 역을, 「서울의 봄」에서는 전두광 역을 맡았다. 이외에도 조연배우들의 세 영화의 겹치기 출연이 많다.
23)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21년부터 한국영화산업에서 성차별 해소를 위한 시도로 영진위 지원사업 심사에 ‘성평등 지수 가산점’을 도입했다. 2009~ 2018년 10년 동안 영화학과의 여학생 비율이 50퍼센트가 넘고 여성 관객도 50퍼센트 이상인 데 반해, 여성 감독의 비율은 전체 11.5퍼센트(상업영화의 경우 4퍼센트)에 불과했다. 영화과 졸업생의 반 이상이 여성임에도 영화 현장에서 여성 인력이 감소한다는 점은 그만큼 여성이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성차별적인 영화계 환경 탓이 크다는 말이다. 영진위의 성평등 지수 도입 이후 독립영화인들의 성평등한 제작 관행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으나, 코로나를 거치며 불황에 접어든 상업영화에서는 여전히 성평등한 제작 관행이 답보 상태에 놓인 듯 보인다. 이화정 「성평등한 한국영화 실현을 위한 첫걸음」, 『한국영화』 128 (2021) 2~7면; 서선주 「영화진흥사업 내 성평등지수 도입 배경과 쟁점」(영화진흥위원회, 2022) 3~5면 참고.
24) 영화 속 시위대는 폭력적이고 광적이며 무질서한 폭도들의 형상으로 재현되었다. 독재자 화형식과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 휘갈겨 쓴 피켓을 든 장면은 흡사 중장년 보수단체의 집회의 외양을 닮았다. 한편 영화는 학내에 경찰이 상주하는 비상계엄의 시대를 보여주면서도 운동권 학생들을 엉성하게 묘사했고, 게다가 그중 한 주요 인물은 실제 북파 간첩이라는 설정을 선보였다. 시민사회도 운동권도 부도덕하고 교착된 집단으로 묘사한 셈이다. 이를 재현의 불충실성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는 작품이 내세운 ‘민간인 학살의 원흉인 독재자 암살’이라는 정치적 플롯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25) 사회파 정치영화와 사뭇 다른 장르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시리즈 「지옥 시즌1」(2021)은 무정부주의에 잠식된 폭도들이자 반지성주의적 군중의 형상과 함께 파시스트적 지도자가 부상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파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동시대 한국영화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양상일지 모른다.
26) 『신곡』 지옥편 제26곡 30행에 등장하는 ‘반딧불’이라는 표현에서 디디-위베르만은 ‘미광’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디디-위베르만, 앞의 책 14면;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한형곤 옮김 『신곡』(서해문집, 2017) 263면.
27) 디디-위베르만, 앞의 책 18면.
28) 김성수 「인터뷰: 욕망과 신념이 자아낸 사건을 제대로 포착하고자 했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씨네21』 1438 (2024). 인용자 강조.
29) 12·12 군사반란은 MBC 드라마 「제4공화국」(1995~96)과 「제5공화국」(2005)에서 부분적으로 극화된 바 있다. 문민정부 시절 전 사회적으로 5·18 진상 규명 요구 높아졌던 1993년 12월 KBS는 다큐멘터리극장을 통해 「12·12: 1부 총장공관 7분」, 「12·12: 2부 승자와 패자」를 방영했다.
30) 디디-위베르만, 앞의 책 83, 89, 113면.
31) 디디-위베르만의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Images Maigré Tout)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번역된 개념으로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비상상화’로 번역한 박기현 연구의 용례를 따른다. 박기현 「이미지를 통한 역사의 독해가능성 연구: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연구』 43 (2019) 325면.
32) 섬멸함으로써 증거를 없앨 것이므로 확실한 것이 없다거나 혹여 증거가 남는다 해도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믿기에 너무 기괴하다고 할 것이기에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담론의 역명제 전략을 의미한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오윤성 옮김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레베카, 2017) 36~37면. 관련된 진술은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2014) 9~10면 참고.
33) 디디-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 46면에서 재인용.
34) 「‘전두광’ 결말 알고 봐도 “열 받네”…서울의 봄, 심박수 챌린지까지 등장」 JTBC(2023년 11월 27일); 「“얼마나 열 받나 보자”…‘서울의 봄’ 분노의 심박수 챌린지 화제」 『동아일보』(2023년 12월 8일); 「엔딩 때 178bpm까지 올랐다…‘서울의 봄’ 심박수 챌린지」 SBS(2023년 11월 29일); 「“열 받아서 심장이 두광두광”…‘서울의 봄’ 심박수 챌린지 돌풍」 『뉴스1』(2023년 12월 8일).
35) 디디-위베르만,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 59~61면.
36) 디디-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 95~98면.
37) 한국의 독립영화 감독 강상우의 작품이다. 「김군」 이전에 그는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어왔다. 첫 단편영화는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2008)이다. 「백서」(2010)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됐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클린 미」(2014)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남자 주인공이 교정시설에서 청소 일을 맡아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강상우 감독의 작품은 사소한 존재에 대한 애도와 기억, 사회적 약자들의 비루한 삶 속에서 길어올린 숭고함의 순간을 포착한 절제되고 과잉 없는 연출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38) 윤경희, 앞의 글 297면.
39) 김병선 『이미지와 기억』(새물결, 2017) 147면.
40) 보수주의자들은 광주시민이 시위를 한 것이 아니라 북한군이 남파되어 폭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생학을 동원하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가정보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에서 사용하는 ‘3D 분석 시스템’을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엄밀한 역사학의 관점을 들이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12년간의 지난한 연구를 주장하지만 극우 사이트의 익명 게시판이 양산한 근거를 끌어다 쓰고 있었다.
41)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경험의 가치가 최저치로 하락했으며 현실의 오로지 파괴적인 흐름과 폭발의 역장 속에서 왜소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몸뚱이로 남겨졌다고 느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이야기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대한 고찰」, 『발터 벤야민 선집 9』(도서출판 길, 2012) 417면.
42) 각주 32 참조.
43) 박기현, 앞의 글 335~39면.
44) Georges Didi-Huberman, Confronting Image: Questioning the End of a Certain History of Art (PA: Penn State UP, 2005) 26~28면. 김병선, 앞의 책 247~48면에서 재인용.
45) 김병선, 앞의 책 73면.
46) 같은 책 97~98면.
47) 같은 책 414면.
48)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김병선 옮김 『잔존하는 이미지: 바르부르크의 미술사와 유령의 시간』(새물결, 2022) 623면.
49) 벤야민, 앞의 책 136~37면; 김병선, 앞의 책 231~32면.
50) 김병선, 같은 책 236면; 조르조 아감벤 지음, 양창렬 옮김 『사물의 표시』(난장, 2014) 13~47면 참조.
51) 아감벤, 같은 책 157면.
52)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황정아 옮김 『단일한 근대성』(창비, 2020) 35면.
│송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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