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연구 46호] 스크린에서 보는 연극, 무대로 올려진 영화: NT Romeo & Juliet (2021)과 라이브니스 / 한예림

한예림 (한국방송통신대)[1]

I. 들어가며

본 연구는 연극과 영화의 상호성을 토대로 구축된 새로운 매체가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 번안 및 공연 문법을 다시 쓰는데 활용되는 양상을 탐구한다.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가장 큰 무대인 올리비에 극장(Olivier Theatre)에서 2020년 여름 공연 예정이었던 사이먼 고드윈(Simon Godwin) 연출의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번안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창궐로 극장이 봉쇄되는 바람에 무산된다. 이 상황에서 영국 국립극장은 이 작품을 영화의 형식으로 재구상하여 팬데믹 속에서도 관객이 공연을 만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이에 ‘디지털 시네마 브로드캐스트’, 즉 공연 실황 및 녹화를 방송하는 방식으로 전세계 관객들에게 공연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영국 국립극장의 공연 플랫폼인 NT Live(National Theatre Live)의 기술을 활용하여 팬데믹 시기  『로미오 & 줄리엣』(Romeo & Juliet, 2021)이 고드윈 연출, 에밀리 번스(Emily Burns)의 번안으로 새롭게 만들어진다. 2009년 처음 시도된 NT Live는 공연예술을 영상으로 생중계하여 보다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을 통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한 사업으로, 공연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되 이를 상영하는 방식에 있어 멀티 카메라 촬영 및 라이브 편집과 같은 특수한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었다. 그런데 원래 연극으로 기획되었던 고드윈의 작품은 팬데믹 상황에서 NT Live의 ‘영화’로 변주된다. 물론 기존 NT Live 작품처럼 관객이 착석한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라이브(생중계)로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다른 여러 지역으로 송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연극 Romeo & Juliet 제작진과 배우들은 영화 제작 전문가들과의 협업 속에서 닫혀진 국립극장의 무대 뒤 공간을 활용하여 단 17일 만에 연극-영화 하이브리드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이례적인 Romeo & Juliet은 2021년 영국과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방송되었고, 2022년에는 대한민국 국립극장도 전석 매진 행렬로 동 작품의 흥행에 동참했다.[2]

엄밀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의미의 연극 공연, 즉 관객이 있는 상황에서 연극이 올려진 것도, 그리고 그런 연극을 영상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Romeo & Juliet이 NT Live의 일환으로 홍보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3] 이 각색은 오히려 관객 없이 배우와 스텝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영화 구상, 제작 및 배급과는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 장르를 영화로 한정하기도 어렵다. Romeo & Juliet 제작은 NT Live의 기술과 형식을 활용하여 연극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먼저 TV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그 다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오픈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Romeo & Juliet은 연극과 영화 그 경계 어딘가에 있는데 이 두 장르의 협업이 핵심인 기존 NT Live와도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연극과 영화의 관계와 그것의 매체적 특징을 재사유하게 한다. 라이브 공연 생중계에서의 연극·영화 상호매체성을 주목한 기존 연구는 주로 공연예술의 다각화 양상, 그리고 디지털 스트리밍 방식이 공연예술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면서 문화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NT Live 시네마 브로드캐스트 사례들을 토대로 새로운 공연예술 형식의 ‘사업적’ 측면을 분석하는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연구가 많은 성과를 보였다.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기획 및 제작, 컨텐츠 구성, 인적 인프라 구축 방식, 관객의 니즈와 반응, 홍보, 마케팅 전략을 분석하여 지속가능한 사업을 위한 수익창출 모델로 다양한 공연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4] 이러한 연구는 NT Live를 국내 공연예술 실황 중계 현실에서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업 모델로 분석한다. 이 외에도 라이브 공연 생중계 방식을 영화와 연극의 단순한 절충이 아닌 새로운 장르, 새로운 매체로 사유하는 미학적, 인문학적 연구들도 큰 축을 이루고 있다.[5] 이러한 연구에서는 공연예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브니스(현장성, liveness)에 대한 이론적 담론에 주목하여 뉴미디어 시대에 라이브니스가 ‘지금, 여기’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재정의되는 양상을 살피고, 새로운 매체를 통한 공연예술이 관객들에게 어떤 종류의 경험을 선사하는지를 탐구한다.

본 연구는 NT Live 공연에 대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하되 팬데믹 시기에 만들어진 Romeo & Juliet 이 기존 공연 영상화 사업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어떤 형태로 모색하는지 고찰한다. 특히 고드윈의 Romeo & Juliet 은 영화의 문법으로 각색한 연극을 영상화하여 라이브가 아닌 방식으로 방영했다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라이브니스를 실험하고 있는 NT Live의 특수한 사례로 주목할 것이다. 연극 작품을 영화화하는 기존의 작업과 고드윈의 작품이 달라지는 지점은 바로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와 제작진이 코로나 시국, 영화라는 매체만 유일하게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작품에 새롭게 접근한다는 것에 있다.[6] 물론 연극으로 흥행했던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영화로 다시 각색되는 사례는 이미 많이 있어 왔다. 하지만 연극이란 매체에 숙련된 제작진과 배우들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영화라는 익숙하지 않은 형식으로 자신들의 공연을 재상상하고 여러 제약 속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은 연극과 영화라는 다른 두 매체가 직관적으로 소통하여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특징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가 된다.

Romeo & Juliet에서 눈여겨볼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연극과 영화 각각의 컨벤션들이 섞이는 지점들이다. 영화를 보는데 연극적인 순간이 의도적으로 재현된다. 특히 작품이 원래 연극으로 기획되었지만 팬데믹이 어떤 영향 혹은 제약으로 기능하는지 그 흔적들을 다 보여주는 메타 연극적 장치가 작품에 가득하다. 이런 점에서 고드윈의 연출은 연극과 영화라는 장르적 문법을 재사유하게 한다. 이에 본 연구는 Romeo & Juliet을 큰 틀에서는 ‘영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아직 연극의 자리를 계속 남겨두는 종류의 영화, 즉 영화지만 연극을 품으면서 연극적인 것을 영화로 살려내는 욕망이 투영된 작품으로 바라본다. 또한 연극과 영화 매체 연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라이브 씨어터의 발전으로 다양한 플랫폼, 장르의 다변화가 논의되는 현시점에서 NT Live가 성취한 문법에 고드윈의 작품은 어떠한 변주가 되는지, 특히 이 작품에서 라이브니스에 대한 기존 담론이 어떻게 수정 및 적용되는지 생각하고자 한다. 비대면 공연에서도 라이브니스를 구현해낼 수 있을지, 혹은 지금 공연예술의 현실에서 라이브니스는 다르게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팬데믹 시기의 포스트 NT Live라고 할 수 있는 고드윈의 2021년 연극/영화는 무엇을 성취하는지, 본 연구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II. NT Live의 출현과 라이브니스를 둘러싼 쟁점들

현재 상연되고 있는 연극 작품을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생중계하는 방식의 NT Live는 연극의 확장된 형태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인가? NT Live의 ‘라이브니스’는 어떤 메커니즘을 갖는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공연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공연 형식 및 플랫폼이 다변화함에 따라 공연예술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여겨왔던 라이브니스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7] 공연자와 관객(수용자)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라이브니스’는 공연예술을 영화와 같은 형식과 구분하는 특징이었다. “퍼포먼스의 유일한 생명은 현재에 있다”(Performance’s only life is in the present, 147), “퍼포먼스의 존재는, 주체의 존재론과 마찬가지로, 사라짐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Performance’s being, like the ontology of subjectivity proposed here, becomes itself through disappearance, 147)라는 페기 펠렌(Peggy Phelan)의 명제는 공연예술의 존재론을 이러한 고전적 라이브니스에서 찾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한편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는 펠렌의 논의가 공연계에서 활용되는 미디어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펠렌식의 공연예술 존재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우스랜더는 라이브와 미디어가 이항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라이브 개념은 미디어를 이용한 레코딩이 가능해지면서 생겼다고 주장한다(29). 아우스랜더의 논지는 라이브와 녹음·녹화라는 위계적 이분법 논리의 맹점을 파고드는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펠렌과 아우스랜더의 견해 차이는 이들이 일차적으로 어떤 종류의 공연예술을 염두에 두었는지, 그리고 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차이에 기인한다. 이 둘의 차이는 결국 공연 작품의 라이브니스가 결국 대면(in-person)으로 행해진 공연인지 아닌지에 있다. 그러나 ‘라이브’ 개념은 작품과 관객의 대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확장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지금 공연계의 현실이다. 이에 닉 쿨드리(Nick Couldry)는 라이브니스를 구성된 개념으로 보아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라이브니스 개념이 확장된 현실을 반영하여 SNS와 같은 플랫폼을 논의의 대상으로 포함한다(359). 그러면서 전통적 의미에서의 라이브니스—작품과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면서 이루어지는 현장성—이외에도 라이브니스의 종류를 온라인 라이브니스, 그룹 라이브니스로 확장시키면서 라이브니스 논의를 정교화한다. 결국 라이브니스 논의는 공연예술의 존재론적 차원이 아닌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는가로 그 초점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매튜 리즌(Matthew Reason)은 라이브니스의 존재론이 아닌 라이브 경험의 현상학(phenomenology)에 주목하며(8-12), 파스칼 애비셔(Pascale Aebischer) 역시 공연의 존재론이 아닌 “관객의 현존과 참여에 대한 경험과 관행”(spectators’ experience and practices of presence and participation, 12)을 강조한다. 폴 샌덴(Paul Sanden)은 아우스랜더가 펠렌식의 존재론에 제동을 걸지만 관객의 수용보다는 펠렌의 맹점을 파고드는 방식을 견지하면서 전통적 공연 패러다임에서 라이브니스를 사유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179). 결국 라이브니스는 매체 자체의 특징보다는 관객의 경험과 인식의 영역에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Sanden 179-180).

본 연구는 라이브니스 담론의 초점이 공연예술의 존재론에서 인식론적 현상학으로 옮겨가는 최근 경향을 염두에 두면서 논의를 NT Live의 라이브니스로 한정한다. NT Live의 라이브니스를 다룬 중요한 선행연구로는 로라 히치먼(Laura Hitchman)의 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 히치먼은 NT Live를 연극과 영화의 경계에서 이 둘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new medium)로 본다. 그에 따르면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라이브니스, 그리고 관객의 상황에 있는데, 히치먼은 특히 관객의 인식에 초점을 두어 NT Live의 라이브니스를 조명한다. 라이브 연극 브로드캐스트는 관객들의 극장 참여를 높이기 위한 시도이고 이를 위해 연극과 한때 경쟁 관계에 있다고 여겨졌던 영화적인 것을 과감하게 섞어낸다(172). 물론 NT Live 이전에도 연극 공연에서 영화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관객의 눈으로 포착하기 힘든 장면을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확대하는 것, 자막 제공과 같이 무대 위에서 보조적인 장치로 스크린을 활용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연극의 라이브니스를 위해 NT Live는 적극적으로 영화적인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라이브니스에 대한 우리의 진화하는 감각”(our evolving sense of ‘liveness’, Osborne 225)은 꾸준히 변화하고 재정의 된다.

히치먼은 NT Live가 영화를 활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NT Live가 ‘지금, 여기’라는 시간적 공간적 개념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모델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174).[8] 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은 관객과 작품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을 점유한다는 공간적 현장성보다는 관객 경험의 동시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NESTA(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가 제공한 통계를 분석하여 “상징 자본”으로서[9] 라이브니스가 장소보다는 ‘지금’이란 시간성에 더욱 초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이브니스를 어떤 이벤트/공연의 특징이 아닌 인식의 문제로 보는 시각의 전환은 이 ‘공동 경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라이브니스의 기능은 어떠한 이벤트 자체보다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The shift from viewing liveness as an attribute of the event to an attribute of its perception, then, reveals the importance of this ‘collective experience’. The function of liveness could be seen as a means to link people to one another rather than to the event itself, 176). 히치먼 역시 NT Live의 라이브니스를 관객의 인식론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는 결국 라이브니스에서 관객들이 같은 시간에 공연을 경험하는 동시성이 중요하며 이것이 공연 그 자체보다 사람들 간의 연결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178). NT Live의 라이브니스는 “공동 경험”에 기반하여 형성된다는 것이 히치먼 주장의 핵심이다.

공연 경험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히치먼은 NT Live가 갖는 영화와 연극 사이의 경계적 속성을 탐구한다. 먼저 그는 영화와 연극 이 두 장르는 관객의 몰입 메커니즘, 감정적 이입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179). 로센크란츠(Rosenckranz)에 따르면 영화 관객들은 스크린 속 배우들에 쉽게 동일시되는 반면 연극 관객들은 배우들의 현존을 직접 관람하고 있기에 배우의 실존과 그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를 동시에 인식한다. 따라서 연극 배우를 작품 속, 즉 상상의 세계 속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관객의 의지가 개입되어야 한다(Hitchman 179). 또한 히치먼은 연극 배우와 영화 배우의 아우라가 다른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그는 벤야민과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의 이론에 근거하여 연극 배우의 아우라는 관객들이 배우를 캐릭터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지하는 것에 기대고 있다면, 영화 배우의 아우라는 기계 복제의 과정에서 감소하고 대신 스크린 밖으로 그 위치가 옮겨진다고 설명한다(179).

라이브 공연 생중계에서 배우의 아우라는 연극과 영화 두 매체의 경우보다 복합적으로 구축된다. 히치먼은 NT Live가 인터미션 때 관객에게 제공하는 디지털 프로그램과 같은 공연 외적인 자료(extra-diegetic material)를 사용하여 라이브 공연 브로드캐스트가 연극배우의 아우라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180). 공연 외적으로 제공되는 자료는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지 못하는 관객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연극적 경험에 대한 보상이 될 뿐 아니라 이러한 자료들은 연극 배우들의 셀럽화(celebritization)를 수행한다(Hitchman 180). 즉 배우들의 인터뷰와 같은 공연 외적 자료를 인터미션 시간에 제공함으로써 작품 캐릭터들 뒤에 실제로 어떤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드러낼 수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이 배우/캐릭터를 인지할 때 영화적 동일시가 방해되고 배우와 캐릭터 두 존재를 동시 인식하는 연극적 메커니즘이 가동된다. 결국 라이브 공연 생중계는 영화보다 연극 경험에 더욱 충실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하여 일반 영화와 NT Live를 구별하고자 한다. 스크린으로 공연 생중계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비록 배우들의 현존을 직접 마주하지 못하지만 인터미션에 제공되는 자료들을 통해 현실 속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영화적 동일시가 아닌 연극적 거리가 만들어지고 연극적 경험이 모사된다(Hitchman 180; Osborne 223). 라이브 공연 생중계가 스크린을 통해 제공된다는 점에서는 영화적 세팅을 바탕으로 하지만 또한 영화와는 차별되는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히치먼은 이처럼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파고드는 새로운 장르로 NT Live를 바라본다. NT Live는 단순히 연극 작품을 영상화하여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 외에도 기존의 영화나 연극과 다른 차별적인 특성을 미학적, 미디어적인 전략을 통해 성취하고 있다. 다만 히치먼의 연구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NESTA의 통계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 자료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공연예술의 현실이 업데이트 되지 않은 2010년 보고서라는 점에서 NT Live의 라이브니스를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2020년 전례 없는 전지구적 팬데믹 상황을 지나며 공연 플랫폼의 양식이 더욱 다양해짐에 따라 라이브니스에 대한 담론이 더욱 확장되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특정 시간이나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 라이브니스, 예를 들어 메타버스나, VR을 활용한 공연예술 형식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10]

III. 공간적, 장르적 경계성, 그리고 공동 경험으로서의 라이브니스

연극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이 NT Live가 하는 일 중 하나이고 이것이 하이브리드 성격의 새로운 장르라면, 공간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관객과 작품이 만나기 힘들 때 극장은, 연극은, 스크린은 어떻게 존재하며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양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연출가 고드윈은 관객과의 ‘거리’가 필수적인 상황적 제약을 극장과 공연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극장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공간적 제약을 새로운 시도의 기회로 삼는다(Chuba and Ford). NT Live의 프로듀서 데이빗 사벨(David Sabel)은 한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도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 여전히 스케일이 큰 작품을 제작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작품은 이 건물(극장)의 재능과 기술을 높이 사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시도하게 한다”(It offered up in this instance an opportunity to try and innovate, to try and still produce a work of scale — a work that could reach great audiences celebrating the craft and talent of this building, and also try to push boundaries, Ringrose에서 인용)고 소개한 바 있다. 이처럼 NT Live식의 연극의 영화화는 단순히 배우의 연기만을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의 노동, 그리고 극장이란 건물, 연극을 만드는 소품과 공간 자체를 작품 제작 과정의 서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엄밀한 의미에서는 ‘생중계’(라이브)가 아님에도 예외적인 NT ‘Live’ 작품을 만들게 된다.

고드윈은 고전적 연극의 라이브니스라는 선택지는 없지만 영화로 쉽게 편입하기보다 라이브 연극이 갖는 힘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NT Live의 기술과 모드를 차용한다. 물론 Romeo & Juliet은 생중계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NT Live 작품과 다르다. 하지만 배우들의 무대를 단순히 카메라로 기록하는 작업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고드윈의 시도를 ‘영화’라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작품이 원래 연극으로 구상되었지만 팬데믹 현실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라는 메타적인 코멘트가 작품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작품은 ‘연극적’인 것들을 삽입하고 영화와 연극, 연극과 실재, 환상과 연극,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매체가 가진 속성과 한계를 모두 실험한다. 그래서 연극이란 무엇이며 관객과 배우는 무엇인지, 연극의 장소, 수용자, 공연자의 자리, 연극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본질적 질문에는 그 자체로 이미 극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었다. 관객은 없지만 극장을 떠나지 못한 배우와 제작진들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라이브니스를 구축하는 것인가? 고드윈의 연출은 이전 작품들과 어떤 다른 문법으로 라이브니스 담론에 접근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기 위해 크게 공간의 사용, 연극/영화, 배우/관객의 혼재 양상을 논의하겠다.

작품은 배우들이 한 명씩 리허설룸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11] 사복 차림의 배우들이 각자의 일상을 살다가 공연을 위해 극장으로, 리허설룸으로 들어온다. 극장에 들어서면서 일상의 배우들이 작품의 ‘캐릭터’로 준비된다는 점에서 극장은 현실 속 배우 개개인을 캐릭터로 전환시키는 마법과 같은 공간이다. 이러한 시작은 ‘극장’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정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배우들이 모두 도착하면 안전막(safety curtain)이 닫히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NT at Home이 제공하는 오디오 설명(audio description)은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배우들은 연극 소품과 가구를 정렬한다. 그리고 검은색 철로 된 안전 커튼이 연극 세트와 관객석 사이로 닫힌다”(The actors arrange props and furniture and the black iron safety curtain at top and bottom of the picture closes slowly over the image of the set and the auditorium). 그리고 배우들이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을 배경으로 극장의 ‘막’이 열리는  대신 안전 커튼이 ‘닫히면서’ 극이 시작한다.

그림 1> 화면의 위 아래로 보이는 검은 철문은 안전 커튼/막으로, 필자는 이를 관객(스크린을 보는 관객들)과 무대 사이를 구분하는 일종의 ‘막’으로 해석한다.

고드윈의 Romeo & Juliet은 일반적 연극 무대가 아닌 무대 뒤쪽(back stage)에서 촬영되었다. 보통은 막이 열리면서, 즉 관객들에게 무대가 노출되면서 연극이 시작된다면, 라이브 관객이 부재하는 고드윈의 작품은 스크린을 보는 관객 입장에서 ‘막’이 닫히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막은 무대와 백스테이지 사이의 안전 커튼(fire curtain, safety curtain)으로, 원래는 화재 발생 시에 대비해 불이 번지지 않도록 설치되었던 것이다.[12] 기존의 막이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기능을 했다면, 그리고 이것이 열리면서 관객 앞에 무대가 드러났다면, 고드윈의 경우 ‘막’은 무대와 백스테이지 사이에 있는 안전 커튼이 닫히면서, 즉 ‘무대’가 닫히고 ‘백스테이지’가 열리면서, 동시에 배우들은 백스테이지에 ‘갇히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이 때 안전 커튼/막은 화재가 아닌 코로나라는 비상 상황으로 인해 닫힌 극장의 현실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극장이라는 공간을 외부와 차단한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이 부재한 극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닫힌 극장에는 관객이 없으므로 관객석도, 그들을 위한 무대도 비어있다. 다만 통상적으로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무대 뒤, 무대를 준비하는 공간인 백스테이지만이 극장에 남겨진 배우와 제작진들에게 허용된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노동이 점유하고 있는 그 공간, 팬데믹 시대에 이 뒷 공간을 새로운 무대로 활용한 것에 대해 레이디 캐퓰렛을 연기한 배우 탐신 그레이그(Tamsin Greig)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13]

‘그건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그렇다면 무엇이 가능할까?’를 말하면서 기억과 과거의 공연들로 가득한 버려진 극장이 배우들과 함께 이 이야기에 삶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하나의 캐릭터가 되도록 하는 아름다운 하이브리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래서 거의 건물 자체가 이야기를 하도록 허용한다.

Instead of just saying ‘that’s not possible’ they said ‘well what is possible?’ and came up with this beautiful hybrid idea of allowing an abandoned theater, which is full of memories and past performances, to actually become a character who makes this story come to life with this group of actors. So it’s almost like the building is allowing the story to be told. (Ringrose에서 재인용)

극장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건물의 이야기라는 설명을 조금 더 부연해보자. 리허설룸, 의상실 등 다양한 공간이 펼쳐진 무대 뒤편을 새로운 ‘무대’ 삼아 그 공간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코로나 시대 극장 폐쇄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닫힌 철문은 공간적으로 폐쇄적인 느낌을 전달하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은 갑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안전 커튼으로 기능하는 철문/막의 사용은 바로 이러한 폐쇄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장치로 기능하는 등 작품 중간중간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로미오와 친구들이 줄리엣의 무도회에서 겨우 빠져나오는 장면; 로렌스 신부(friar)에게서 받은 약물을 마시기 전 줄리엣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의 암담함과 절망감이 거대한 철문을 마주한 줄리엣의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고드윈의 연출은 백스테이지, 안전 커튼과 같은 극장을 구성하는 공간과 도구들에 대한 치밀한 건축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 백스테이지는 무대에 서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대를 포기할 수 없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공간으로 제약과 폐쇄성을 갖추면서도 극장 폐쇄의 현실을 재조명한다고 볼 수 있다. 백스테이지를 새로운 무대로 삼으면서 기존 무대도 아닌, 그렇다고 극장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 공간의 경계성(liminality)이 부각되는 것이다. 무대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극장은 기능한다. 이것은 극장이 화려한 배우들의 무대와 가득 찬 관객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보이지 않는 무대보다 더 큰 백스테이지와 같은 숨겨진 공간을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설정은 아닐까? 그렇게 공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설정을 통해 극장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팬데믹 시대 공연예술에 대한 코멘트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 된다. 요약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백스테이지로 환기되는 극장의 공간적, 그리고 연극의 장르적 경계성(liminality)이 바로 팬데믹 시기 공연예술의 새로운 시도의 핵심적인 상징이 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극장이란 공간 그리고 무대는 문화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 하는 극장의 욕망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반영된다. 그 과정에서 라이브니스의 층위는 더욱 정교해진다.

영화의 형식을 대안적 방법으로 선택했지만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연극 연출가 고드윈은 영화의 문법을 즉흥적으로 습득하면서 작품을 제작해간다. 영화의 문법이 낯선 연극 연출가가 단기간에 영화적인 것을 활용하게 되는 경험, 이것은 연극적 상상력이 직관적으로 어떻게 영화와 만날 수 있는지, 그래서 이 두 매체가 기존의 관습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극 무대에서 영화적 기법이, 영화 스크린에서 연극적 장치가 교차한다. 일차적으로는 고드윈의 연출에서 다양한 영화적 기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프롤로그에서는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여 앞으로 전개될 작품의 중요한 장면을 빠른 속도로 전달했다. 로미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마지막 장면을 순간적으로 보여주면서 줄리엣의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냈으며, 에필로그에서는 플래시백(flashback)을 활용하여 작품의 주요 장면이 빠르게 복습되었다. 이처럼 연극이 할 수 없는 것, 연극이 보여주기 힘든 것을 영화가 보충한다. 연극은 언어 예술, 영화는 영상 예술이라는 도식이 무색하다고 할 정도로 작품에서는 클로즈업(close-up)을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친밀한 대화를 더 잘 전달하고 언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적인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사용된 장면은 배우들의 친밀감을 포착해야하는 순간들이다. 마치 “인간은 그 어떤 무대 효과보다도 더 풍부하다”(the human being is richer than the great stage effects that exist)는 피터 브룩(Peter Brook)의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듯 다른 도구적인 것들이 축소되고 배우의 표정, 대사, 몸짓이 부각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속삭이는 장면에서 연인들의 미세한 표정과 이들의 접촉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카메라가 배우를 효과적으로 클로즈업할 수 있기에 포착이 가능하다. 영화는 연극 관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더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 중 하나가 남녀의 치명적인 접촉(fatal touch)라면, 고드윈의 연극 혹은 영화에서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던 일상적 접촉들이 팬데믹 시기라는 맥락에서 위험한 ‘접촉’이 되는 현실과 묘하게 중첩된다. 베로나의 청년들을 죽음으로 견인하는 작품의 비극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육체적 접촉에서 시작한다. 손과 손의 키스를 입술과 입술이 하게해 달라는 “거룩한 순례자의 키스”(holy palmers’ kiss, 1.5.99)가 이 베로나의 젊은이들을 파괴, 죽음으로 이끄는 혈기로 이어진다면, 코로나 시대의 접촉은 말 그대로 바이러스 ‘전염’의 통로이다. 접촉을 통한 전염과 베로나 젊은이들의 위험한 접촉이 중첩되며 팬테믹 현실이 상기된다. 고드윈은 혼란스러운 카메라 앵글 사용을 통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접촉이 이루어지는 무도회 장면을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그려내는 미성년들의 사랑이 아닌 다소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처리한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접촉’을 재현하는데 영화적 기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고드윈의 연출은 영화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영화적인 것에 거리를 둔다. 전술했듯 이 작품은 배우들이 한 명씩 리허설룸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Romeo & Juliet 처음 장면은 일종의 영화에 대한 코멘터리, 혹은 메이킹 필름 같은 영상을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잠깐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일지, 첫 장면은 실제 리허설을 녹화한 것을 사용한 것인지, 리허설 장면을 배우들이 ‘연기’한 것인지 모호하다. 일종의 다큐멘터리 구성처럼 보이는 이 시작은 무엇이 진짜 작품의 시작인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안전 커튼이 ‘닫힐’ 때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작품의 시작을 인지하게 된다. 안전커튼(막)이 닫히고 곧바로 극 중 신부(friar)의 역할을 맡은 배우 하나가 리허설 세팅에서 셰익스피어의 프롤로그를 그대로 낭송한다. 프롤로그가 읊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리허설룸에 있는 다른 배우들을 비춰준다. 특히 로미오 역을 맡은 남자 배우 조쉬 오코너(Josh O’Connor)와, 줄리엣 역할의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이 지나가고, 중간중간 이 영화의 시퀀스를 보여주는 장면이 빠르게 지나간다. 라이브 프로덕션 커뮤니티 디렉터인 페르갈 링로즈(Fergal Ringrose)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셰익스피어의 걸작을 멋지게 스타일화한 이 영화는 연극적 상상력을 높이 산다. 이 작품은 리허설의 간소한 미학에서부터 시작하여 극장 공간의 구조 및 다양한 백스테이지 공간을 담아내는 영화적인 여정으로 이동한다 (필자 강조).

This stylized film of Shakespeare’s masterpiece celebrates the theatrical imagination, moving from the stripped-down aesthetic of a rehearsal into a cinematic journey that embraces the architecture of the theater space and varied backstage spaces of the National’s Lyttelton Theater.

영화는 리허설로 시작해서 점점 극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여정 자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다큐멘터리적인 노출, 자연스러운 세팅이 팬데믹 시기의 작품 제작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상황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링로즈가 언급한 “연극적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프롤로그뿐 아니라 작품 속 로미오와 줄리엣은 리허설룸에서의 조쉬와 제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프롤로그에서 보이는 이들의 눈빛 교환이 연출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둘의 관계가 친밀한 것인지 모호하다. 고드윈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두 종류의 세계—판타지와 현실—에 존재한다고 극 중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과 리허설 룸에서의 두 배우의 모습을 교차시켜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Chuba and Ford).

고드윈의 설명에 첨언하자면, 이러한 환상과 현실, 작품과 현실의 중첩은 리허설 공간이 팬데믹 시기에 새로운 무대의 가능성이 되는 것, 그리고 리허설 공간으로 들어오는 일상복 차림의 배우들이 극장에 들어서면서 극 중 캐릭터가 되는 공간적 세팅과도 맞아떨어지는 구성이다. 사랑이란 사건이 품고 있는 두 세계, 즉 환상과 현실의 경계뿐 아니라 고드윈의 연출은 특히 연극과 현실의 경계에 천착하고 있다. 작품은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사유하면서 팬데믹의 시기에 연극이 과연 가능한가? 어떻게 그러한가? 라는 질문에 보란 듯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사실 명확하지 않다고 응답한다. 즉 언제나 방식과 형식이 다를 뿐, 우리가 현실을 살고 있다는 그것만큼 무대가, 극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세계가 무대”라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메타적 코멘트와도 상통한다.

연극인지 영화인지, 연출된 리허설인지 배우들이 개인 카메라로 찍어놓은 일상의 모습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작품 도처에 산재한다. 프롤로그와 수미상관을 이루듯 엔딩 역시 연극 무대 세팅에서 진행되었던 장면에서 리허설 장면으로 전환되고 작품 속 캐릭터들은 다시 일상복 차림의 배우 개개인으로 돌아온다. 에필로그를 담당한 영주(prince)의 마지막 멘트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프롤로그 배경으로 제시되었던 장면들—로미오와 줄리엣, 때로는 조쉬와 제시가 무대 뒤에서 연인의 모습으로 호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제시된다. 작품 전체가 액자 형식으로 이루어진 듯 연극에서 시작하여 영화적 세계로 들어갔다가 연극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접촉 자체가 치명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는 팬데믹의 현실과 중첩되어 재현되고 연극이 끝나면 현실로 회귀된다. 작품이 끝나고 화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지구적인 팬데믹 시기에 17일 동안 빈 극장에서 촬영되었다”(Romeo and Juliet was filmed in an empty theatre, over seventeen days, during a global pandemic)는 문구가 제시된다. 이 자막을 보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적 몰입에서 벗어나 팬데믹 현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그림 2, 3> 에필로그. 무대 세트장에서 리허설룸으로 장면 전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이외에도 연극적인 설정이 여러 차례 보이는데, 이는 영화적인 몰입을 고의적으로 방해한다. 관련해서 줄리엣의 “come vial” 독백 장면을 주목할 만하다.[14] 임시로 세워진 백스테이지 일부 공간에 줄리엣의 집 세트장이 있다.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이 전개된다: 부모님의 강제로 패리스(Paris)와의 정략 결혼을 앞둔 줄리엣은 죽음을 가장할 수 있게 하는 약물을 로렌스 신부로부터 받은 상태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패리스와 결혼하겠다는 거짓 결심을 말하고 오늘 밤은 혼자 보내겠다고 하며 응접실을 나간다. 그러나 줄리엣의 마음은 흔들린다. 로미오가 피를 흘리고 있는 이미지(나중에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일)가 줄리엣의 불길한 상상 속에 나타나고 그녀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응접실로 이동하며 다급하게 유모를 부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줄리엣은 당황한 채 문을 열고 나가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는 것은 철로 된 벽이다: “뒤쪽에는 빈 극장의 그림자 진 공간이 있다”(Behind is a shadowy space in an empty theatre, audio description). 이는 줄리엣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음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줄리엣은 잠시 당황하다가 결국 “나의 어두운 장면은, 나 홀로 연기해야만 한다”(My dismal scene I must act alone)고 결연하게 말하며 독백을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집 세트장에서 빠져나와 연극 소품들이 있는 다른 공간—“안전 커튼이 부분적으로 올려진”(where safety curtain is partly raised, audio description), 연극 무대의 뒷편—으로 이동한다. 이 새로운 공간에는 줄리엣의 침대가 놓여있고 조명은 침대만 비추고 있다. 다른 인물들은 조명 밖의 그림자 속에 앉아있다. 줄리엣은 침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독백을 시작한다.

그녀의 독백 장면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리허설 장면 구도를 연상시킨다. 무대는 줄리엣의 침대가 되고 다른 배우들은 고뇌에 찬 줄리엣을 마치 ‘관객’처럼 응시한다. 카메라는 줄리엣의 모습과, 다른 배우들을 하나씩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줄리엣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을 관객의 위치에 있도록 하여 마치 지금 진행 중인 영화/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 안에 NT Live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NT Live공연을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카메라는 현장에 있는 다른 ‘관객’의 모습도 방송하여 현장감을 연출해 낸다.

<그림 4> 줄리엣의 독백 장면
<그림 5> 리허설처럼 연출한 프롤로그

줄리엣의 독백 장면에는 분명히 극 속에 참여하고 있는 캐릭터들, 리허설룸에서 함께 연습하던 다른 동료 배우들, 심지어는 관객이라는 세 존재의 층위가 혼재되어 있다. 이 장면은 특히 NT Live에서 영화와는 차별화된 라이브니스를 위해 제공하는 전략들—가령 인터미션 시간에 배우들의 인터뷰와 같은 영상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기제로 작용한다. 모두 몰입에 최적화된 영화라는 장르에 거리를 두고 직접 극장에 왔다는 라이브 연극의 경험을 선사하는 전략이다. 고드윈의 연출은 엄밀히 말하자면 큰 틀에서는 ‘영화’임에도 기존 NT Live가 제공하는 방식, 즉 영화 속으로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며 이것이 원래 극장에서 진행되려던 연극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등장 인물과 개별 배우의 개인성(personality)을 분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NT Live의 인터미션에서 제공되는 공연 외 추가 자료들로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깨는 것이 아니라 고드윈의 영화/연극에서는 어느 순간에 배우가 배우이며, 어느 순간 극 중 캐릭터인지 그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방식으로 연극적인 것을 영화 안에서 녹여낸다. 연극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노출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진짜인지 극이 시작한 것인지, 리허설 장면인지 구분하지 않는 것, 그래서 무엇이 연극이고, 무엇이 연기가 아닌지 불확실하다. 리허설 장면부터 이미 ‘영화’인데 이것은 원래 연극이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식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Romeo & Juliet은 무대와 무대 밖, 연극과 영화, 현실과 작품의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연극의 자리를, 공연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그 고민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다분히 메타연극적 성격을 보인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통찰을 상기한다면 고드윈의 새로운 ‘미디어’는 NT Live의 이례적인 사례일 뿐 아니라 공간적, 장르적 경계 자체를 질문하면서 라이브니스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형성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과 이 두 연인의 치명적인 사랑, 즉 접촉(contact)이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시대와 2021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상황이 겹쳐지면서 작품의 가장 큰 프레임은 ‘지금, 여기’의 코로나 현실로 구축된다. NT Live의 라이브니스를 탐구하면서 그 무엇보다 관객들의 “공동 경험”이 중요하다는 히치먼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2021년 NT Live의 변주로 감행된 Romeo & Juliet은 대면 공연이나 생중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공연 작품을 만드는, 혹은 관람하는 사람들이 코로나라는 같은 제약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새로운 종류의 실험적 라이브니스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기존 공연예술의 특수성이 ‘지금, 여기’로 매개되는 라이브니스에 있었다면 팬데믹 시기에 연극과 영화의 새로운 결합 방식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 아닌 코로나라는 현실의 라이브니스를 공유하는 경험에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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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izing the Theater, Staging the Film:

Issues of Liveness in NT Romeo & Juliet (2021)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concept of ‘liveness’ through Simon Godwin’s reinterpretation of Shakespeare’s Romeo and Juliet, a theater-film hybrid produced by British National Theatre during the COVID-19 pandemic. Set within the backstage of the Olivier Theatre, this unique ‘non-live’ NT Live production explores spatial and generic liminality prompting a rethinking of “liveness.” Laura Hitchman’s emphasis on “common experience” as central to the discourse of liveness of NT Live platform is applied in Godwin’s work, evoking the shared experience of the 2021 pandemic. By incorporating cinematic elements, the production highlights the ‘fatal touch’ of the two lovers, which parallels the dangerously contagious ‘touch’ within the pandemic context. At the same time, it intentionally creates theatrical moments within a cinematic setting,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production and reality, actor and character, stage and backstage. I argue that this spatial and generic liminality serves as an innovative approach, refining discourse of liveness. Godwin’s experimental production demonstrates that the theater itself is contingent upon cultural and historical contexts and reveals the theater’s persistent desire to connect with audiences under any circumstances.

Key Words

NT Live, Romeo & Juliet, liminality, pandemic, liveness

한예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 본 연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22년도 학술연구지원비를 받아 수행되었다. 연구의 기본 아이디어는 2022년 12월 한국영어영문학회(ELLAK)에서 발표된 바 있다.

[2] 고드윈의 NT Romeo & Juliet은 2021년 4월 5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영국의 Sky Channel에서, 그리고 미국 PBS에서 셰익스피어의 생일로 간주되는 4월 23일에 방영되었다. 이후에는 National Theatre at Home(NT at Home, 2020년 12월 1일 런칭)이라는 영국 국립극장의 새로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 공연 컨텐츠가 제공되고, 이듬해 2022년 2월에는 한국 국립극장에서 “공연 실황을 녹화하여 상영하는 작품” 시리즈를 지칭하는 NTOK Live+(엔톡 라이브 플러스)의 일환으로 상영된다.

[3] NT Live의 형식으로 송출되던 것들이 시간차를 두고 세계 각국에서 ‘앙코르 상영’된다. 이 때 엄밀히 말하자면 라이브가 아닌데 NT Live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한다. Live의 용법을 일시적으로 확장하는 사례이다. 각 나라에서 이 ‘영화’를 상연할 때 NT Live: Romoe & Juliet으로 홍보되었다. 한국 국립극장에서는 엔톡라이브플러스(NTOK Live+)라는 시리즈의 일환으로 NT Live 작품들을 앙코르 상연하고 있는데 고드윈의 Romeo & Juliet은 이 기획에 포함되었다. 한편 Imbd에서는 고드윈의 각색을 TV Movie로 분류하고 있다.

[4] 박진원과 김가은의 「공연예술 영상화 제작과정 연구: NT Live 시네마 브로드캐스트 사례분석을 중심으로」에서는 NESTA(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의 보고서 “NT Live_Digital broadcast of theatre Learning from the pilot season” (2011), “Beyond Live-Digital innovation in the performing arts” (2010)를 토대로 영국 국립극장의 NT Live 사례분석, 특히 사업 구상 및 시장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 마케팅 홍보방식, 공연 영상화 과정의 문화적 경제적 효용가치 등을 연구하여 궁극적으로 국내 공연 영상화 사업 모델을 고민한다.

[5] 김수진. 「영상화된 공연 콘텐츠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과제」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23.9 (2023): 115-123, 백로라. 「미디어 테크놀로지 시대에서의 퍼포먼스의 ‘라이브니스’」.  『인문언어』 13.2 (2011): 289-317와 같은 연구들이 있다.

[6] 이 새로운 도전에 대해 고드윈은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촬영감독 팀 시델이 와서 실질적으로 저를 영화 학교에 다니게 했다. 진짜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단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자유롭다! 당신은 지켜야할, 혹은 어길 규칙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알아서 전개되도록 맡기게 된다”(Our director of photography Tim Sidell would come in and essentially put me through film school. Really, I started the process knowing nothing—and sometimes, knowing nothing is liberating! You don’t know the rules to follow or to break, so you just let the story take, Ringrose에서 재인용).

[7] 대부분 미디어와 라이브니스의 담론을 다룰 때 펠렌과 아우스랜더의 논의에서 시작한다. 백로라는 라이브니스를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펠렌, 아우스랜더, 매튜 리즌의 논의를 바탕으로 라이브니스의 층위를 정리한다. 특히 그녀는 아우스랜더가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라이브니스에 집중”(301)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라이브니스를 담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실제 공연 사례에서 어떻게 구성 및 경험되는지를 살피는 방식을 취한다. 이경미 역시 연극의 라이브니스, 현존에 대한 담론을 정리하면서 펠렌, 아우스랜더를 넘어 한스티스 레만, 에리카 피셔 리히테, 디터 메르쉬의 논의를 포함하여 연극의 수행성, 현존에 대해 정리한다(152-158). 지혜원은 라이브 브로드캐스트로 범위를 한정하여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라이브니스의 개념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논의했고(131-133), Suk-Young Kim은 아우스랜더 이후 딕슨(Dixon)등 그 이후의 논의들까지 포함한다(3-5).

[8] 벤야민에게 ‘아우라’는 예술 작품의 독특한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이 “지금, 여기” 존재하는 특성과 관련있는 것으로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존재감을 의미한다 (19-24). 벤야민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 작품이 쉽게 복제 가능해지는데 그 과정에서 원본이 가지는 아우라가 상실된다고 주장한다. 공연예술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페기 펠렌의 논의는 예술작품의 고유성을 설명하는데 있어 벤야민의 ‘아우라’ 모델과 통하는 면이 있다.

[9] 아우스랜더는 라이브 공연에서 공동 현존(co-presence) 가치를 “상징 자본”(symbolic capital)으로 설명한 바 있다(Liveness 26). 그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과 “상징 자본” 개념을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이브 공연의 가치는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우월하기보다는 라이브 ‘경험’을 한 그룹이 자신들의 경험에 상징 자본의 가치를 부여하여 라이브 경험이 없는 그룹과 차이를 둔다는 것에 있다. (Liveness 70, 18n.) 

[10] 본 연구는 NT Live의 형식적 실험으로 주제를 국한하지만 메타버스에서의 라이브니스 논의를 다룬 연구로 다음 연구를 참조. 김다산. 「메타버스와 퍼포먼스: 가상과 실재 사이, 모사된 라이브니스」. 『현대영미드라마』 36.3 (2023): 5-28.

[11] 본 논의는 공연예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NT at Home을 통해 관람한 Romeo & Juliet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NT at Home에서는 공연 자체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오디오 설명(audio description)이 포함된 자료도 제공한다. 

[12] 안전 커튼은 화재 발생 시 관객과 무대를 분리하기 위해 무대 전면에 내려지는 것으로 강한 천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많지만 올리비에 극장에서는 철문(iron gate)으로 되어 있다.

[13] 영국 국립극장의 무대 뒤편에는 의상실(dressing room), 리허설룸(rehearsal room) 뿐 아니라 금속 작업실(metal workshop), 목공 작업실(carpentry workshop), 무대 미술 작업실(scenic art), 소품 작업실(prop workshop) 등의 공간이 있다. 무대에 연극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 준비가 다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14] 셰익스피어 원작 4막 3장 14-37행에 해당되는 장면이다.

영미문학연구

Journal of English Studies in Korea

46 (2024): 24-171

http://doi.org/10.46562/jesk.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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