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연구 46호] 사라진 인물, 지워진 인종: 소설  『지상에서 영원으로』와 영화화 각색을 중심으로 / 조충환

조충환 (홍익대)[1]

I. 들어가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진주만 폭격(The Attack on Pearl Harbor)을 소설에서 다룬 것으로 유명한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 이하 FHE)[2]는 제임스 존스(James Jones)의 이른바 “군대소설 3부작”(the army trilogy)의 첫 소설로 1951년에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병영과 전쟁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와 소설의 대중적 인기, 그리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할리우드 영화의 상업적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존스의 군대소설 3부작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존스는 미국 공군에 입대한 후 보병연대로 전출을 자원하여 하와이의 스코필드 병영에서 진주만 폭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존스는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과달카날(Guadalcanal) 전투에 참전한 후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송환된다. 존스는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30여 년 동안의 시차를 두고 집필한 이른바 “군대소설 3부작”,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  『씬 레드라인』(The Thin Red Line), 그리고  『휘파람』(Whistle)에서 병영생활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개인이 부딪히게 되는 실존과 정체성의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사실 존스의 작품은 소설과 동명 영화의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평단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다. 존스가 FHE를 발간한 1951년부터 그가 죽기 전인 1976년까지 학술지와 에세이 모음집에는 그의 작품에 관한 단 10편의 논문만이 게재되었다(Giles 10). 스티븐 카터(Steven R. Carter)는 “1977년 존스가 죽었을 때 그를 괜찮은 마이너 작가 이상으로 여기는 비평가들은 거의 없었으며, 많은 비평가들은 그 이상 그를 평가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하였다(1). 하지만, 이합 하산(Ihab Hassan)은 1973년 발간한  『현대 미국 문학』(Contemporary American Literature)에서 존스를 대표적인 전쟁소설 작가로 거론하며, “세련되지 않은 글, 선정주의, 단순함으로 인해 공격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존스를 “섬세한 재능은 조금 떨어져도 은밀하면서도 초인적인 감수성과 문장에 담긴 정직함 그리고 내러티브의 생동감을 구현하는 중요한 재능을 가진 작가”(65-66)라고 옹호하였다.

존스의 작품은 생전 비평가들의 인색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후에는 이른바 “군대 3부작”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1981년, 제임스 자일스(James R. Giles)는 존스에 대한 본격적인 단행본 비평서를 처음으로 출간하면서 “존스의 3부작은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참전에 대해 다룬 가장 중요한 픽션들”이라고 강조하며, “병사의 성장(evolution)”과 “미국 남성의 성적 미성숙”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존스의 성취가 존스의 작품을 평가하는 그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10). 또한 제프리 월쉬(Jeffrey Walsh)는 주요한 미국 전쟁소설의 하나로 FHE를 언급하며 “군대의 권위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을 찬양한 가장 인상적인 소설”로 평가했다. 월쉬는 FHE에 대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장르로 군대 권력의 남용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는 비범한 소설”이며 “군대 내부의 폭력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장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소설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면서도 순수한 분노의 감정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142).

최근의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소설 FHE가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남성성의 균열과 시사점을 미국 1950년대의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한 제인 헨들러(Jane Hendler)의 연구가 있다. 헨들러는 이 책에서 영화 FHE가 소설 FHE에 비해 성정체성의 문제를 은폐하는 듯 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내러티브가 축약된 후에도 몽고메리 클리프트(Montgomery Clift), 버트 랭카스터(Burt Lancaster),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등의 당대의 영화스타들이 배우 그 자체로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서로 간의 친밀한 이미지와 각색과정을 통해 변형된 내러티브를 통해 남성 간의 애정이 부대원의 결속이라는 외피를 쓰고 은유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본 논문은 제임스 존스(James Jones)의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군대소설 3부작”의 1부작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탈피하여, FHE를 전쟁소설로서가 아니라 미국사회의 축소판으로서의 병영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조직사회와 인종문제에 대해 치밀하게 다루고 있는 텍스트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소설의 영화화 각색 과정을 통해 인종문제가 소설과 영화에서 어떻게 다르게 재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각색으로 인한 소설 FHE의 변형이 FHE를 소설과 영화로 소비하던 백인 중산층 중심의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II. 베스트셀러 소설의 할리우드 영화화

FHE는 작가에 의해 쓰여진 순서로 보아도, 또한 3부작의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의해서도 시간상 가장 앞선 소설이다. FHE가 전쟁 3부작 중에서도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다른 전쟁소설과 달리 전쟁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의, 평화 시의 일상적인 병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FHE는 죽음을 목전에 둔 병사의 전투에서의 실존을 다룬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로 미국 군대조직의 단면과 계급체제의 불합리함 그리고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한 사병의 정신적 고통과 성장을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존스는 FHE를 통해 사역, 구보, 야전 훈련, 길들이기(The Treatment)등의 병영문화와 무능한 장교와 유능한 하사관, 전우애, 영창 등 독자들이 병영에 대해 막연히 떠올리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아주 냉철한 시선으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으며, 평화시 군대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럽고 황당한 병사의 죽음마저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성취는 하와이 스코필드(Schofield) 부대에서의 병영생활이라는 존스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소설 FHE의 제목 면의 뒷면에 인쇄된 서지 면에는 “이 책은 픽션이고, 등장인물은 상상에 의한 것이고 실제 인물과의 일치는 우연한 것”(This book is a work of a fiction. The characters are imaginary, and any resemblance to actual persons is accidental)이라는 의례적인 문장 이외에, “영창에서의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것”(certain of the Stockade scenes did happen)이고 “작가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진실”(they are true scenes of which the author had first-hand knowledge and personal experience)이라는 다소 예외적인 언급이 있다(Jones, FHE, iv).

존스에 대해 첫 비평서를 출간했던 자일스는 마이클 레논(Michael Lennon)과 함께 1991년 존스의 전쟁소설 3부작에서 발췌한 부분과 존스의 작품 계획안이 들어가 있는 작품집,  『제임스 존스 읽기: 존스 전쟁 저작 선집』(The James Jones Reader: Outstanding Selection from His War Writings)을 펴냈는데, 그들은 공동으로 쓴 서문에서 “존스의 작품이 2차 대전을 다룬 작가들 중 전쟁과 전쟁의 문화적 여파에 대해 뛰어난 견해를 가장 잘 담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미국문학에서 존스만큼 전투를 하기 전, 전투 중과 전투를 겪은 후의 사병(enlisted man)들의 고통에 대해 광범위하고 해박하게(encyclopedic) 다룬 사람은 없다”(13-14)라고 덧붙였다.

1950년대에 사병으로 그리고 전후 기업의 사원으로서 조직사회 체계 속에 있게 된 대중들은 FHE에 대해 책의 구입과 영화 관람이라는 형태로 호응하였다. 소설과 영화는 각기 다른 내러티브를 가진 채로,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대중들에게 수용되었다. 대중들은 페이퍼백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독자이면서 관객으로 FHE를 받아들였다. 소설은 1951년 2월 발간된 후 단 2개월 만에 12만5천여 부의 하드커버 판본이 판매되었고(Garrett 100), 폭발적인 책의 성공에 힘입어 FHE의 영화화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콜럼비아 픽쳐스가 영화화 판권을 구입하고, 영화는 소설 출간 후 2년 만에 몽고메리 클리프트(Montgomery Clift). 버트 랭카스터(Burt Lancaster), 데보라 커(Deborah Kerr)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스크린에 걸릴 수 있었다. 소설의 대중적인 인기는 이 작품이 1953년 영화화되자 다시 극장으로 이어졌는데, 영화는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8개의 오스카상까지 수상하였다. 또한 소설은 영화가 개봉된 후에 68,500부의 영화 특별판이 더 팔려 그해 판매집계 5위에 올랐다(Hendler 29). 소설 FHE의 이러한 인기는 1950년대 내내 계속 이어져, 1958년 발간된 존스의 소설  『누군가가 달려왔다』(Some Came Running)의 책 표지에는 존스를 소개하면서 소설 FHE가 50만부의 하드커버와 300만부의 페이퍼백이 팔렸다고 명시하고 있다(Garrett 100). 이처럼 FHE의 소설과 영화는 각 매체의 상업적 성공을 같이 견인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이 출판된 지 2년 후 개봉된 영화를 보며 캐릭터와 내러티브를 비교하였고, 영화를 먼저 접한 관객들은 다시 책을 사서 그 차이를 발견하며 읽어나갔다.[3]

FHE가 영화화되기로 결정되고, 82,500달러에 존스가 영화화 판권을 콜럼비아 픽쳐스에 넘긴 이후에 존스는 영화의 트리트먼트 각색에 참여했다. FHE의 영화화 판권을 파는 협상에서 존스는 소설을 출간하고 판권 협상을 대행한 스크리브너 출판사(Scribner’s)의 편집자 버로우 미첼(Burroughs Mitchell)에게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한 가지는 영화화 판권의 대가로 가능한 많은 돈을 받고, 작품이 형편없이 망가지더라도 영화화된 것에 대해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몇 달동안 각색 작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Jones, To Reach Eternity, 178). 얼핏 보면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조건은 사실 존스의 각색 참여의도가 자신이 집필한 작품 자체의 미덕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후에 쓰고자 하는 “할리우드에 관한 소설의 집필에 도움이 될 경험을 얻기 위해서”(Jones, To Reach Eternity, 178)라는 존스의 편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색 작가를 그만두고 만다. 이러한 어려움은 원작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던 존스의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스는 제작자가 지명한 보조작가와 스토리 에디터와 함께 작업하며 검열을 통과하려는 할리우드의 관행에 충실하도록 트리트먼트를 집필하였고, 그 결과 트리트먼트는 원작이 가진 미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존스는 트리트먼트 작업을 하면서 제작자인 해리 콘(Harry Cohn)에게 “[자신이 각색 작업을 하기에] 기술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고, 각색 작업을 그만두면서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원작자가 각색에 참여했을 때 부딪히는 이러한 어려움은 사실 할리우드에서 그리 보기 힘든 일은 아니다. 혼자서 창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소설과 달리 영화의 경우 감독, 작가 등의 의견이 반영되고, 여기에 제작자, 투자자의 입김까지 작용한다. 결국 소설 FHE가 가지고 있었던 스토리 라인을 대중적으로 혹은 영상 이미지에 맞게 변환시킨 것은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대중영화는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제작비의 리스크를 줄이고, 관객들에게 영화를 쉽게 해석할 틀을 주기 위하여 장르를 택한다. 그리고 각색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와 생략이 이루어진다. 존 화이트클레이 체임버스 2세(John Whiteclay Chambers II)와 데이빗 쿨버트(David Culbert)는 “전쟁을 다루는 영화의 확장된 문화적 역할은 혼란스럽고 유혈이 낭자한 현대전쟁의 공포를 이해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형태로 대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148), 영화 FHE의 각색과정에서도 역시 소설에서 있었던 많은 요소들이 생략되면서 소설이 가지던 의미는 영화에서 다소 희석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물론 그 방향은 이해가 가능하면서도 통제가 가능한 형태이다. 영화 FHE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강조되었고, 실제로 두 커플의 사랑이야기와 프류윗과 마지오 간의 우정이 강조되면서, 관객들은 멜로드라마라는 좀 더 친숙한 장르 안에서 내러티브를 쫓아가게 된다.

일반적인 대중 영화 자체가 민감한 소재를 다룰 때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불편함만을 제공한다면, 흥행에서 성공하는 대중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참는다는 것도 모르게 하는 마법의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맥셰인에 따르면 존스의 후임으로 고용된 시나리오 작가 다니엘 타라대쉬(Daniel Taradash)는 FHE가 영화화될 때 부딪히게 될 어려움들을 피할 방법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타라대쉬는 우선 군대의 협조가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필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창 장면은 생략되어야 하고, 대신 폭력성을 드러내는 효과는 마지오의 죽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타라대쉬는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프류윗이 마지오의 죽음 뒤에 추모나팔을 불게 하고, 두 개의 멜로드라마 내러티브가 사실은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무언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서로 엇갈리게 보여줄 것을 제안했다(MacShane 129). 이렇게 타라대쉬가 제안한 스토리 라인은 영화 FHE에 반영되었고, 소설에서 영화로의 각색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의 생략과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프류윗, 마지오, 워든, 스타크, 홈즈의 주요 인물들은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삭제 변형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사회의 문제는 소설에서처럼 계속하여 반복되는 해결책 없는 문제가 아니라 체제 내에서 자정작용이 가능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소설에서 두드러졌던 프류윗의 미성숙한 태도와 자의식에 대한 묘사가 영화에서는 3인칭적인 카메라의 시선으로 바뀌면서, 소설 속에서 프류윗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차츰 성장해나가는 사회화 과정에 있는 미성숙한 인간으로 묘사된다면, 영화에서의 프류윗은 고독한 영웅으로 바뀌게 된다. 소설에서 정신병을 가장해 제대를 하게 되는 마지오는 영화에서는 탈출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소설에서는 다소 모호한 프류윗의 파초에 대한 복수의 원인은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죽어버린 친구에 대한 복수로 명확하게 규정된다. 독자들은 소설 FHE에서 보이는 소수인종, 동성애자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비판적 대상으로 제시된 사례인지 아니면 그러한 편견에 대한 작가의 지지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하지만, 대중영화로 각색되면서 그러한 이슈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혹은 조직체계 내부에서 해결되는 방향으로 그려진다.

III. 사라진 캐릭터와 바뀌어버린 인종

소설이 출판되던 시기인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소설 FHE에는 인종적인 문제와 성정체성 등의 민감한 문제들이 사실주의적 서술을 통해 파격적으로 등장한다. 인종 문제 및 성정체성의 문제는 미국사회에서 단순히 조직사회를 위협하는 갈등 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실재하지만 공식화되지 않은 요소로 적절히 이용되어왔다. 소설 FHE에서 묘사하는 1941년 하와이 스코필드 병영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와 갈등은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2차대전 승리 이후 당대의 미국 사회가 내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불균질한 모습들을 투영하는 역할을 한다. 1950년대에도 ‘백인 중산층 조직인’들에 의해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던 미국사회의 기저에도 이러한 문제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색된 영화에서는 그러한 이슈들이 삭제, 변형된다. 예를 들어 인종 문제는 생략과 의도적 무시를 통해 스크린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흑인문제는 영화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일본계 하와이 주민 바이올렛(Violet) 등의 등장인물들은 스크린에서 사라지고,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 병사 초우트(Chote)는 초우트로 짐작되는 아메리칸 인디언 병사가 잠간 얼굴이 비춰지는 정도에 그치고, 소설에서 프류윗과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유대인 블룸은 슬라브인 아이크 갤로비치 하사(Sergeant Ike Galovitch)로 대체된다. 이러한 변형되고 사라진 등장인물들에 대한 두 매체에서의 차이점과 함께 그 차이가 가져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중심으로 하나씩 살펴보려 한다.

인종 간의 미묘한 갈등은 소설 FHE에서는 사건을 진전시키는 매우 중요한 소재이다. 프류윗이 마지오를 처음 만났을 때 작가는 마지오를 “어깨가 좁다란 곱슬머리의 이탈리아인”(FHE 64)으로 묘사한다. 작가는 이탈리아인에 대한 프류윗의 태도를 설명하며 “이탈리아인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프류윗”(FHE 64)이라고 제시한다. 등장인물들이 소개될 때 앵글로 색슨계의 등장인물들은 그의 외모와 성격 등이 묘사되는 반면 그 이외의 인종에 대해서는 인종에 대한 언급이 항상 따라 붙는다. 영화에서는 마지오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지오는 당시 대중들이면 누구든 이탈리아계로 알고 있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맡게 되었고, 그의 등장은 그 자체로 이탈리아인의 묘사였다.

소설에서 군대의 병영문제와 조직에 대한 문제가 프류윗에 의해 혹은 그의 저항에 의해 프류윗의 의식을 통해 심각하고 깊게 고민 되어진다면, 인종적 문제는 프류윗 자신을 둘러싼 동료 병사들과의 우정과 갈등에 의해서 반추되어진다.

스탠드에서 프류윗이 부는 진혼곡은 흑인 나팔수가 되받았다. 흑인은 프류윗보다 나은 나팔수였지만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는 언덕 위에서 프류윗의 에코를 연주한 것이었다. 사실은 내가 에코를 연주해야 마땅했다. 그런 생각을 한 후 프류윗은 마우스피스를 주머니에 넣고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There had been a colored bugler who played the echo to his own Taps from the stand. The Negro was a better bugler, but because he was not white he had been stationed in the hills to play the echo. I should have been himself who played the echo. Thinking about it all, he put the beauty back in his pocket and folded his arms across his chest, still waiting. (FHE 38)

자신의 가장 큰 자랑인 나팔 부는 솜씨에 있어서도 프류윗은 자신과 같은 부대에 있었던 흑인의 실력이 낫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탠드에 서지 못했고, 자신이 백인이었기 때문에 스탠드에 섰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자신이 [흑인 대신] 에코를 연주해야 마땅했다”고 프류윗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이러한 깨달음을 서술한다.

영화 FHE에서는 소설에 비해 인종적인 문제를 일으킬 만한 갈등을 뚜렷하게 찾아보기 힘든데, 영화 FHE는 얼핏 보면 소설 FHE 보다 좀 더 인종적인 문제에서 자유롭다. 영화 FHE가 인종적 편견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요 인물로 백인 병사들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FHE에는 단 한명의 흑인 병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스코스에 따르면 양차대전 사이에 흑인 병사를 전체 인구에 대한 흑인들의 비율에 맞추어 군대에서도 유지하는 정책이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잘 지켜지지 않아서, 진주만 공격이 있던 날 흑인은 고작 군대의 5.9 퍼센트를 차지고 하고 있었다고 한다(Moskos 109). 흑인의 본격적인 전투부대 참전이 제2차 세계대전 후반에 가서야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4] 할리우드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소설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부대 내의 흑인 병사를 굳이 영화에 넣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5]

소설에서는 흑인과 관련된 인종적 언급은 앞에서 지적한 프류윗의 나팔부대에서의 회상뿐만 아니라 남부 켄터키의 프류윗의 소년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도 잘 드러나고, 이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프류윗은 흑인에 대한 편견에 대해 “흑인 가운데 질이 나쁜 놈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아. 그러나 백인 가운데에도 그만큼은 질이 나쁜 놈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겠어”(FHE 192)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스타크는 “백인이 나쁘다는 것은 법적인 이유”라고 말한 후 “질 나쁜 흑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FHE 193)고 인종주의적인 대답을 한다. 이 대화는 인종주의적 편견에 갇힌 사고방식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첫째, 자신이 경험한 소수의 사례로 인종 전체를 매도하고, 둘째, 우생학적으로 원래 그 인종은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는 스타크에게 동조하기 보다는 프류윗에게 동조하게 되고, 인종주의적 편견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언급되거나 등장했으나, 영화 FHE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인종은 흑인뿐만이 아니다. 소설에서 프류윗과 대립하고 갈등은 일으키면서 상당한 비중을 가진 중요한 등장인물인 유대인 병사 블룸(Bloom)도 등장하지 않는다. 블룸은 자신이 유대인인 것에 대해 또한 동성애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부대원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종적인 문제와 성정체성의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주인공으로 조직 안에서 실제 차별받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차별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인을 먼저 억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블룸은 자신의 인종적, 동성애자로서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군대의 조직체계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수단인 복싱을 택하고 그러한 수단을 통해 조직 안에서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감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여전히 아이작 네이선 블룸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작 네이선 블룸은 여전히 유대인일 것이다. / 그는 정말로 열심히 일을 했다. 심지어 싫어하는 일까지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자신이 바꿀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그는 그러한 생각에 집착해왔다. 그는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하고 싶었고, 또한 그들이 가진 의심의 그늘을 넘어서 전형적인 유대인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he would still be Isaac Nathan Bloom. And Isaac Bloom would still be a Jew / He had done it all, a lot of it things he did not like, because he thought he could change it and prove it did not matter . . . he had stuck to it; because he meant to make them like him, meant to prove beyond the shadow of a doubt to them that there were no such things as Jews. (FHE 563)

하지만, 블룸의 이러한 노력은 하나씩 좌절하고 만다. 하사관 진급 교육에서 탈락하고, 동성애자가 아니냐고 질문을 받고, 자신보다 조그만 체격의, 부대의 골칫거리 프류윗에게 다른 부대원들이 모두 지켜본 싸움에서 지고 만다. 그는 이러한 좌절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신이 부대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차라리 부대원들이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다는 자조 섞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결코 달라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좋아하기는커녕, 그가 더 많은 성취를 할수록 동료 부대원들은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정관념에서는 사실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 믿어 버린 인상에 어긋나지 않도록 사실을 왜곡해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한 고정관념과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단 한번, 정말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군대에 입대할 때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조금도 달라진 건 없었다.

But in the end it hadnt [sic] any of it made any difference. And he knew it never would make any difference. Instead of liking him, the more honors he gained the more they hated him, Facts didnt [sic] have anything to do with the stubbornness of those minds; they twisted the facts to suit whatever they already believed in the first place. How could you fight a thing like that? / He had though it was going to be different, for once, when he enlisted in the Army. But it wasnt [sic] ever going to be any different, any place. (FHE 563)

블룸은 결국 자살한다. 블룸의 자살은 부정적 인물로 그려진 블룸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유대인이라는 데서 오는 그의 인종적 강박관념이 그의 삶을 어떻게 불행하게 만들고,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갔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이것은 블룸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소설의 특성 때문에 가능하며 결국 반유대주의(anti-semitism)적으로 보이는 블룸의 캐릭터는 사실상 유대인이 부딪히는 편견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는 프류윗의 가장 친한 친구 마지오를 싸움에 휘말리게 하는 파초의 이탈리아인을 무시하는 “이태리 놈”(wop)이라는 인종적 발언을 제외하고는, 중요한 사건 혹은 인종적으로 강조된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은 갤로비치(Galovitch)가 유일하며 나머지 인종적 문제는 영화에서는 모두 사라진다. 프류윗을 괴롭히는 권투부의 하사관들 중에서 갤로비치는 프륫윗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유일한 등장인물이고 가장 많이 프류윗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프류윗, 마지오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블룸의 캐릭터는 영화에서는 등장조차 하지 않으며, 유대인에 대한 언급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소설에서 프류윗을 괴롭히는 블룸의 역할은 영화에서는 슬라브계 하사관인 갤로비치와 영창에서 근무하는 하사관 파초가 나누어 맡게 된다. 소설에서 블룸이 프류윗과 부대 안에서 부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싸우는 사건은 영화에서는 프류윗과 갤로비치와의 싸움으로 대체되고, 마지오에게 여동생 사진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도 블룸에게서 파초의 몫으로 바뀐다. 소설에서 프류윗은 블룸과의 싸움 이후 술에 취한 반공주의자 갤로비치가 시비를 걸어 단 둘이 싸우게 되어 영창에 가게 되는데, 영화에서 이 장면은 사라지고 프류윗은 영창에 가지 않는다.

영화에서 부대원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싸움의 상대가 유대인 블룸이 아닌 슬라브계 이민자인 갤로비치로 바뀐 것은 관객들에게 좀더 명확한 적을 설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유대인과 싸우지 않고 슬라브계와 싸우는 것은 미국의 새로운 주적이 된 소련과의 냉전(the Cold War)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골리앗(Goliath)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갤로비치와 다윗(David)을 연상시키는 작은 프류윗의 싸움은 이러한 점을 뚜렷이 부각시키는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유대인과 싸우면서 관객들이 받게 될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적을 슬라브인으로 혹은 냉혹한 영창 하사관으로 대체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인공 프류윗을 괴롭히는 갤로비치는 소설에서는 미국으로 이민온 유고슬라비아 출신 반공주의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소설에서 반공주의자였던 갤로비치는 영화에서는 그저 소련을 떠올리게 하는 슬라브계 갤로비치로 등장한다.

프류윗과 갤로비치가 1:1로 싸우는 장면의 정교하게 계산된 카메라 앵글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은유적 대립을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갤로비치는 정당하게 싸우라는 동료들의 야유를 무시하고 프류윗을 비열하게 공격하고, 카메라는 쓰러진 프류윗의 분노한 얼굴을 하이 앵글 샷(high angle shot)으로 잡는다. 프류윗의 얼굴은 점점 분노로 가득 차고, 잔인하면서도 야비한 표정의 갤로비치의 얼굴은 이 영화에서 쓰인 샷 중에 가장 극단적인 로우 앵글 샷(low angle shot)/ 클로즈 업(close-up)으로 잡힌다. 이러한 상반되는 로우/하이 앵글 샷은 할리우드 고전영화에서 억압/피억압의 이미지로 흔히 사용되는 것으로, 관객은 프류윗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일치시키면서 갤로비치에 대한 주인공의 분노의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복싱부 = 부당한 하사관”은 갤로비치로 대표되는 소련의 이미지로 치환되며, “선한 미국의 시민”을 괴롭히는 공산주의 소련의 위협은 이를 수수방관하는 홈즈 같은 중간 관리자로 인해 심화된다. 소설에서 갤로비치는 계급이 강등되지만 길들이기를 조장한 홈즈는 승진하면서 하와이를 떠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이러한 위기가 조직을 잘 관리하는 고급 장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발견되고, “프류윗 = 선량한 미국시민”을 괴롭힌 갤로비치는 강등되고, “길들이기”를 조장한 홈즈는 불명예 제대하게 되어 조직체계에 의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실 영화 FHE의 감독인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은 유대인 출신으로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수색> (The Search, 1948)의 감독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 FHE에서 프류윗 역할을 맡았던 클리프트는 부모와 헤어지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돕는 선한 미군병사로 등장한다. 이러한 당대 최고스타 클리프트의 역할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유대인 병사와 싸워 이기는 “몬티”(몽고메리의 애칭)를 보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다루는 과정이 더욱 정교해졌다. 2차 대전 이후의 영화들은 반유태주의를 언급하는 두 가지 전략을 취한다. 첫 번째는 홀로코스트를 통해 독일의 무자비한 인종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미국의 상대적으로 화해 가능한 수준의 낮은 차별을 언급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스티븐 카(Steven Carr)가 지적했듯이 반유대주의를 직접 언급하며 비판하기 보다는 생략을 통해 보편적인 미국식 자유주의의 이념을 강조하는 방향이다(251).

<젊은 사자들> (The Young Lions, 1958)이 첫번째 범주에 들어가는 영화라면, 영화 FHE는 두 번째 범주에 들어가는 영화이다. 영화 FHE에서 프류윗으로 등장한 클리프트는 FHE처럼 베스트셀러로 소설이 성공한 후 영화화된 2차대전 영화 <젊은 사자들>에서는 유태계 미군 지원병이 되는 노아 애커맨(Noah Ackerman)이라는 유대인임을 드러내는 이름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에서 노아는 부유한 백인 출신인 애인의 부모로부터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처음에는 승낙 받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진심어린 사랑을 알게 된 그녀의 부모로부터 인종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승낙을 받아내고, 이후 기꺼이 자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영화 FHE는 두 번째 범주에 들어가는데, 소설에서 프류윗과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킨 블룸은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지며, 유대인 문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적은 유대인에서, 냉전시대 미국의 주적인 소련을 떠올리게 하는 슬라브인으로 대체된다. 즉 영화의 각색을 통해 특정 등장인물이 대표하던 인종은 생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좀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적대적인 인종의 인물로 바뀌는데, 이러한 대체는 관객들에게 할리우드 본연의 가치인 불편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면서도, 그들을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레 노출시켜 무의식적으로 설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할리우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시에 극장에서 전쟁 관련 뉴스릴을 상영하는 등 직접적인 선전에 앞장서고 미국의 승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선전원칙은 바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선전하지 않는 듯 선전하는 것이었다. 즉,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없어 보이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할리우드의 이데올로기 선전 전략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미국의 풍요로운 1950년대의 표면 아래에서 점점 더 심화되어 가던 인종 문제는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의 민주적 가치라는 선전을 위해 의도적으로/비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또한, 독일과 일본이라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명확한 적과 실제적인 전투를 보여주던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의 장막으로 가려진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냉전”(the Cold War)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 미국 체제의 선전은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FHE에서 갤로비치가 소련의 이미지로 대치되어 받아들여지는 반면, 프류윗을 지칭했던 볼세비키(Bolshevik)라는 단어는 영화에서 아예 사라진다. 영화에서 홈즈 대위가 프류윗에게 “너는 고독한 늑대(lone wolf)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대사는 소설에 나오는 “너는 공산주의자(Bolshevik)의 명성을 얻고 싶어 해”(FHE 47)라는 대사를 대체한 것이다. 소설에서 홈즈 대위는 프류윗에게 “공산주의자는 군대에서 어디서도 발붙일 수 없다”고 덧붙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사회에서 이미 요주의 인물들이었고, 소설이 출간된 1951년에는 더욱더 현실화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적이었던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자와 같은 전체주의자들이 미국에 의해 패배한 후 주적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붉은 공포(red scare)로 인해 미국은 맥카시즘에 휩싸이게 되고, 미국 내부에 숨어 있는 공산주의자의 척결은 미국의 안전을 위한 선결과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가 개봉했던 1953년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해야 할 프류윗에게 공산주의자(Bolshevik)라는 별칭을 붙여주는 것은 관객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설정이었다.

인종적 편견에 대처하는 다른 캐릭터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의 상병 초우트가 있다. 초우트 역시 영화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보이는 인물이 잠시 보이는 정도로만 생략되는데, 소설에서는 그는 G 중대로 전출 온 프류윗의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프류윗에게 조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류윗의 재능이 나팔불기와 권투라면, 초우트에게는 운동선수로의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는 군대에 입대한 이후 필리핀, 파나마,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딴 메달을 가득 가지고 있었고, 침대를 옮길 때에는 버린 상장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G 중대에서도 그는 일 년 내내 거의 전 종목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운동선수였다. 가을에는 미식축구 선수, 겨울에는 농구선수, 여름이면 야구선수 그리고 봄에는 육상선수가 되어 각각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운동 능력에도 불구하고, G 중대가 원하는 권투만은 하지 않는다. 권투를 시키고 싶은 홈즈 대위의 제안을 수락했다면 이미 하사관이 되어 있겠지만 그는 제안을 거절하며, 그렇다고 전출을 원하지도 않는다. 왜 그러는지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맥주를 먹고 자주 취할 뿐이었다(FHE 72). 그는 모든 특권이 보장되는 권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는데, 나중에 프류윗에 대한 본격적인 길들이기가 시작되기 전 그는 권투 이외에도 연대에서 운동선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홈즈 대위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다고 넌지시 이야기할 뿐이다. 초우트는 이후에 프류윗이 당하게 될 일을 예상하고, 프류윗에게 권투선수가 되라는 홈즈 대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냐고 말한다.

초우트는 블룸과 달리 인종적으로 낙인찍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성공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길을 택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그의 성향은 사실 그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깨달은 때부터 비롯된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는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편견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부대에서 인정받기 위해 상병이 되고, 권투를 하는 블룸과 대조된다. 초우트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이유는 프류윗이 블룸과 싸운 다음에 제시되는데, 이 때문에 초우트의 인종적 편견에 대한 대응은 더욱 블룸의 행동과 대비된다. 그는 프류윗에게 보호구역에서 자란 아메리칸 인디언으로의 어린시절과 그의 좌절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행하게 태어나.” 그[초우트]가 천천히 말했다. . . .

“불행이라니 무슨 의미야?” / “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추장 초우트가 주저하면서 말했다./ 프류윗은 기다렸다. /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소년이었어. 거기서 태어나서 자랐지.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결과적으로 되고 싶은 가장 최악의 것을 선택한 셈이었지. 짐 소프는 내 우상이었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찾아 읽고는 했어.

”Some guys is just bornd [sic] unlucky,” he said slowly. . . .

“How do you mean, unlucky” / “Well, its hard to explain” Chief Choate said restlessly./ Prew waited./ “You take me,” Chief said, “for instance. I was a kid on the reservation. Bornd [sic] and raised there. And I wanted to be a jockstrap. The worst way I wanted to be one. Jim Thorpe was my idol. I use to read everything about hum I could find. (FHE 497)

운동선수로 성공하고자 했던 그의 우상 짐 소프(Jim Thorpe)는 결국 올림픽에 출전해서 메달을 따고도 나중에 프로경기에 참여한 과거 때문에 메달을 모두 빼앗긴다.[6] 미국 사회에서 공정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에서조차 짐 소프가 메달을 박탈당하고, 올림픽의 영웅이었던 그가 이후 서부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는 것을 보며, 초우트는 자신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의 예상처럼 그는 운동으로 대학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꿈을 포기하게 된다. 초우트는 결국 군대 입대를 택하고 그곳에서 운동선수로 안주하는 차선을 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접는 선택을 한 순간부터 그는 오히려 인종적 차별에 대해 무감각해지려 노력하며, 타인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않고 방관자가 되어 버린다.

인종 문제라는 것은 조직의 단합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갈등 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정체성은 개인이 조직에 맹목적인 충성을 하도록 부추기는 역할도 한다. 블룸과 초우트를 통해 보여지는 개인의 고통은 바로 전형성(stereotype)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인종적 전형성은 편견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 개인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조직 안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미국의 체제를 세상에서 가장 최선의 것이라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경우 이러한 인종 문제는 미국의 체제에서 그들이 인정하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단점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 문제는 아예 없는 듯이 선포되거나 혹은 특정 인종은 그러한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편견을 사실로 뒷받침하려 하고, 이러한 인종주의는 능력에 합당한 대접을 받는 것(meritocracy)이 미국 체제의 장점이라는 주장과 기묘하게 결합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 FHE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러한 전형성이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블룸과 초우트는 인종적 열등감과 사회적 차별이 받아들이는 개인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대조시키는 주요한 인물이다. 블룸은 유대인으로서의 열등감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군대가 인정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자괴감에 빠져 자살한다. 반면 초우트는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운동선수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택한다. 그는 인종적 장벽을 체념하고 오히려 군대가 가장 원하는 권투를 포기한 채 자신의 장기인 운동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군대 역시 상대적으로 나은 곳일 뿐 미국사회의 한 조직인 이상 초우트는 자신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동료의 일에 대해서도 방관자로서 살아간다. 블룸이 유대인으로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는 성공을 위해서 부정한 방법을 쓰고 그래서 더욱 위협적인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부대원들에게 더욱 각인시키게 되며, 인디언으로서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초우트의 행동은 무력하게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인디언의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종적 갈등을, 개인을 억압하는 조직 자체에 내재된 모순으로서 이해하기 보다는 인종 간의 불평등과 이로 인한 열등감을 개인 차원의 노력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혹은 이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결국 이들은 이로 인해 자신을 파괴하거나 자신의 삶의 방관자가 되는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인종 문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데, 하나는 타인종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힐 때 간과하게 되는 근본적인 조직체제의 모순을 간파하는 것이다. 프류윗은 차츰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개인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데, 이러한 발전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종에서만 찾으려 하는 블룸과 같은 강박적인 인물과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으로 개인적 능력과 희망을 포기하는 초우와 같이 무력한 인물들을 접하면서 이루어진다. 프류윗은 자신도 군대라는 조직에 의해 억압을 당하면서 이러한 인종적인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소수 인종 출신의 동료 군인들에 대해 편견 없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인 초우트의 좌절을 경청하고, 자신보다 실력이 좋았던 흑인 나팔수를 떠올리고 흑인에 대한 편견을 쏟아 놓는 스타크 상병의 생각에 대해 반박하고,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택시 기사에 대해서도 자신에게까지 그들을 미워하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프류윗은 백인 이성애 남성들이 아닌 다른 집단들이 가지고 있는 좌절과 그들이 겪는 모순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IV. 식민화된 공간과 주목받지 못하는 현지인

미국인에게 있어 하와이라는 공간은 관광의 공간이자 휴양의 공간이다. 소설 FHE에서 하와이는 많은 인종들이 매일 부딪히며 살고 있고,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상생활의 공간이다. 프류윗은 자신의 현지 애인을 만나기 위해 관광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후미진 하와이의 농촌을 찾아가기도 하고, 하와이 유흥가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을 만난다. 하와이는 유명배우들이 영화를 찍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고, 동성애자들이 미국 본토보다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하와이라는 곳은 하사관 워든(Warden)처럼 자신의 상사의 부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수영복을 입고 인적이 드문 해변가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FHE의 대중적인 성공은,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하와이안 셔츠가 1950년대 미국 시민들이 즐겨 입는 옷이 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민의 이미지로 자신이 보이기를 원한 해리 트루만(Harry Truman) 대통령이 이 옷을 즐겨 입었는데, 하와이안 셔츠는 단순히 여가생활의 의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의 침착함, 결속감(togetherness), 그리고 전형적인 스타일 안에서의 개인적이고 민주적인 표현의 태도를 나타냈다(Karl 39). 또한 하와이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미해군의 태평양 기지가 있어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폭격을 당했던 곳으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미국의 영토이다. 소설 FHE에서 “미국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프랑스에서 15년간 살았던 동성애자 할(Hal)은 하와이의 주변부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하와이를 미국 땅으로 생각하지 않아. 하와이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선택에 의해 미국 땅이 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미국 영토가 되었으니까. 군사적 필요 때문이지. 다른 이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하와이인들도 처음서부터 병적인 기독교 교인으로 개종될 불행한 운명에 처해 있었던 거야.

I do not consider Hawaii exactly American. Like so many other places, it is not American by choice so much as by necessity. The necessity of armed forces. Like all the pagans they were doomed from the start to be converted to our particularly morbid type of Christianity. (FHE 370)

하와이는 또한 사탕수수의 재배지로서 일본계, 중국계, 필리핀계 등의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농장의 노동자로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농장은 자비로운 농장주에 의해 유지되는 열대의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착취와 분열이 이루어지는 모순 가득한 또 하나의 기업이자 ‘사탕수수가 자라는 공장’이었다. 이러한 하와이 농장에 발을 디딘 첫번째 이민자는 일본계였으며, 이러한 일본계의 파업을 깨기 위하여 차례로 중국계, 필리핀계의 이민자들이 하와이의 노동력으로 투입되게 된다.

소설에서 아들에게 술집을 물려준 중국계 하와이인 노인, “늙은 초이”(Old Choy)에 대한 묘사는 이러한 아시안계 이민자들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든은 소설에서 무능한 장교와 대비되는 영리하고 능력 있어 부하들에게 존경받지만 무력감에 빠진 부사관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그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그가 늙은 초이를 대하는 태도는 아시아인을 폄하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워든은 술집에서 “이봐 늙은 초이, 이교도 중국놈”(Hey, Old Choy, you heathen Chinee, 309)이라고 부르고, 일부러 늙은 초이에게 서투른 영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늙은 초이에게, 그의 엄마에 대해 영어의 “Mama”와 일본어 호칭의 접미사인 “-san”을 조합하여 술집이나 유곽의 여자 주인을 뜻하는 단어인 “마마상”(Mama-San)이라고 부르며 놀려댄다.

“허바-허바” 워든은 피트에게 윙크를 하며 노인에게 소리쳤다. “위키위키, 찹찹, 늙은 염소, 너 발, 끈적한 바닥에 달라 붙었어. 나 배고파, 늙은이야. 빨리빨리 가져와” 올드 초이는 캔맥주를 두팔 가득 가지고 간이 탁자로 넘어질 듯 걸어왔다. / “이봐 염소, 올드 초이” 워든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염소야, 맞지? 당신 엄마도 염소고, ‘마마-상’ 염소라니까. 그래서 당신을 염소로 낳았고. 당신 염소 맞지? 바-아아.” 워든은 턱 아래에 손가락을 대고 흔들며 염소 울음 소리를 흉내내었다. / 올드 초이는 간이 탁자 위에 맥주를 올려 놓았다. 그의 아몬드 모양의 눈은 거의 감은 듯 가늘게 반짝였고, 그는 늙은 염소라고 불린 것에 즐거워하며 킥킥거렸다. “염소 아냐, 너가 염소야, 워든”

“Huba-huba,” Warden bellowed after him with a wink at Pete, “wiki-wiki, chop-chop. You feet, stickee floor, old goad, Me in hully, old man, you bletta snappem shit.” / Old Choy tottered to the meatblock with an armload of cans. / “You goat, Old Choy,” Warden grinned. “Goat, see? You mother goat. Mama-San she goat, see? She blingee you goat. Goat, see? Goat. Baa-a-a.” He put his fingers under his chin and waggled them at the Chinese. / Old Choy set the beer on the block, his almond eyes closed to bright slits, and chuckeld with great glee at being called an old goat./ “No goat,” he chuckled. “You goat, Walden.” (FHE 309)

워든의 이러한 행동은 노인에 대해 친근함을 나타내는 행위인 것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서투른 영어를 쓰고 인종적 모욕을 당해도 웃으며 기꺼이 백인 손님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평면적인 묘사를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소설의 서술자 역시 늙은 초이의 외모를 서구인이 바라보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외모적 특징인 찢어진 눈을 가진 노인으로 묘사하고, 늙은 초이가 워든(Warden)을 부를 때 “Warden”이 아니라 일부러 “Walden”으로 R을 L로 바꾸어 표기하면서, 동아시아인이 R과 L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 FHE에서 관광지로서의 하와이는 술집과 바닷가 그리고 거리 풍경 등 영화의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배경으로 등장하고, 군 주둔지로서의 하와이는 G 중대원들의 일상생활의 공간으로서 카메라에 담기지만, 노동과 생활의 현장으로서의 하와이는, 원래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던 등장인물들 즉 하와이인들의 비중이 미미해지면서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바로 소설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프류윗의 일본계 하와이인 애인 바이올렛 오구레(Violet Ogure)이다. 프류윗이 로린을 만나기 전 만나게 되는 바이올렛은 프류윗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프류윗이 사랑하게 되는 오레건 출신의 로린의 집에 놀러가듯이 프류윗은 바이올렛을 만날 때 바이올렛의 집에 놀러간다. 프류윗에 대한 길들이기로 외출을 나가지 못하던 때에도 프류윗은 온통 바이올렛을 만나러 갈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작 바이올렛의 하와이 농촌집에서 그녀를 만날 때에는 프류윗은 그녀를 더 알고자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음에도 그의 태도는 원주민 현지인 여자를 호기심 이상으로 알고자 하지 않는 다른 서구인들의 태도와 동일하다.

바이올렛 오구레. 오오-구-레에. 그녀의 성을 발음하려면 “r”을 꼭 술취한 사람이 “d”를 발음하듯이 해야 했다. 바이올렛은 이름부터가 기묘하고 예측할 수 없었다. 외국 땅의 낯선 특징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낯선 것을 기대하거나, 심지어는 낯선 것을 애써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한 이름과 외국어 성으로 이루어진 방정식은 판독하기 어려웠다. 바이올렛도 다른 일본, 중국, 하와이, 포르투갈, 필리핀인 2세나 3세 소녀들처럼 성은 외국에서 온 조상의 성을 그대로 따라 쓰고 이름은 영어로 된 꽃 이름을 붙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Violet Ogure. Oh-goo-rdee. You pronounced the r like a drunken d. Even the name was strange and unpredictable. The strangeness of a foreign land is understandable, because you expect it when you go among foreigners, you’re even looking for it. But the equation of the simple first name and the alien-tongued surname was unreadable. Violet was like all the other second and third generation Japanese, Chinese. Hawaiian, Portagee, Filipino girls with their first names after English flowers and their last names coming across alien centuries. (FHE 83)

바이올렛은 독립적인 개인 자체가 아니라 아시아계 혹은 하와이에 흔한 포르투갈, 하와이인의 2세나 3세와 비교된다. 그리고 프류윗에게도, 이 책을 읽던 1950년대 미국의 백인 중산층 독자들에게도, 일본인, 중국인, 하와이인, 포루투갈인, 필리핀인은 다르지 않은 비슷한 집합일 뿐이다. “간단한 이름과 외국어 성의 방정식”은 서구인 독자에게는 해독불가능이라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러한 방정식은 서구가 자신 이외의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주는 해독가능한 방정식이다. 그녀의 개인적인 이름은 철저히 이국적인 향기로 즐길 수 있는 “꽃”의 이름이고, 그녀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성씨는 “외국이란 혹은 동양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으로 궁금해 하지 않는 주둔군의 태도를 보여준다. 결국 바이올렛에 대한 외모의 묘사는 개별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주둔지에 살고 있는 비슷비슷한 젊은 현지인 여자들 중의 하나로 파악될 뿐이다. 그녀를 아는데 중요한 단서인 그녀의 인종적 배경도 다음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듯 은근슬쩍 제시된다.

“정말 끔찍해.”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구도 이런 데서 살아서는 안돼. 엄마와 아빠는 홋카이도에서 이런 곳으로 이민을 왔어. 그런데, 이런 집마저 자기 집이 아니야.”

“Its terrible,” she said, still staring down. “No one should ever have to lie in place like this. My poppa and Momma come here from Hokkaido. Not even this house is theirs.” (FHE 86-87)

일본에서도 북단의 변방에 있는 홋카이도에 거주하던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떠나와 하와이에 자리 잡은 것이고, 그녀는 일본계 하와이인 2세였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 가족의 생활은 이곳에 와서도 초라하며 집 한 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모습에 대한 묘사는 여기에서 그치며 프류윗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이국적인 모습까지이고 그는 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바이올렛은 매우 익숙한 느낌과 명백하게 외국인인 점이 양립할 수 있도록 혼합되어 있었다. . . . 프류윗은 바이올렛에게서 [오꾸레]의 정확한 발음을 배웠으나, 그가 그녀에 관해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다

Violet was an ambivalent mingling of the intensely familiar and the inscrutably alien. . . . He had learned to pronounce her name correctly, and that was all he leaned about her. (FHE 83)

바이올렛이 이중적으로 양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그렇다기 보다는 사실 프류윗이 혹은 서구의 남성과 주둔군이 현지 사람에게 바란 것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프류윗의 그녀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사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건네는 미국인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프류윗이 나중에 만나게 되는 로린과 그녀의 미국 본토인 오레건에서의 삶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비교할 때 바이올렛이라는 인물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면서 독자에게 많은 정보가 주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별적인 바이올렛 오구레로 기억되기 보다는 프류윗의 추억 정도로 기억될 뿐이고 이것은 미국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프류윗은 바이올렛과의 만남을 즐기면서도 정작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혼혈아를 자녀로 가지는 것”이 두려워 결혼을 거부한다.

현실에서 바이올렛은 그가 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보아야 바이올렛은 그녀가 이전에 떠나온 곳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프류윗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러니 어떻게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In reality, Vilolet did not exist until he saw her, then she began again where she had left off before. In-between she existed only in his mind, and how can you write a letter to your own imagination? (FHE 82)

그녀의 존재도 프류윗이 보기 전에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실재적으로 인지되어야 의미가 있는 존재로 파악된다. 원래 그곳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몇 천년 동안 경작지였으며 문명이 꽃피웠지만 간단히 “발견되었다”(discovered)고 정의되는 신대륙의 발견처럼 프류윗의 바이올렛에 대한 태도는 서구인들의 신대륙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다르지 않다.

그러한 프류윗이 그녀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팔을 떠올리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남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지금까지 그가 발견한 유일한 방법, 유일한 암호, 유일한 언어는 나팔이었다. 여기에 나팔이 있다면 그녀에게 말할 수 있고, 그녀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사역 나팔을 불어주면, 집에서 쉬면서 잠을 자고 싶을 때 지치고 무거운 배를 이끌고 누군가의 길을 쓸러 가야 하는 고단함을 그녀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는 혼자말로 말했다. 하지만 너는 나팔이 없잖아. 나팔은 여기에도 없고 다른 어느 곳에도 없어. 너의 혀는 이미 찢어져 나갔어.

And the only way that he had ever found, the only code, the only language, by which he could speak and be heard by other men, could communicate himself, was with a bugle. If you had a bugle here, he told himself, you could speak to her and be understood, you could play Fatigue Call for her, with its tiredness, its heavy belly going out to sweep somebody else’s streets when it would rather stay at home and sleep, she would understand it then. But you havent got a bugle, himself said, not here nor any other place. Your tongue has been ripped out. (FHE 95)

나팔은 비언어적 방식의 메시지로서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군대의 기상, 진군, 그리고 병사가 죽었을 때 진혼곡을 연주하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팔은 서양군대의 상징이며 만약 그가 나팔을 가졌다 해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냥 나팔을 통해 토로할 뿐 그녀가 이해할 가능성은 없다. 소통에 있어서의 프류윗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바이올렛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가장 미숙하면서도 이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나팔은 바이올렛에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이 아니다. 나팔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이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군인들이다. 미군들에게 하와이는 군대 막사와 병립하는 휴식처이면서 놀이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힘들고 고된 훈련과 사역이 끝나면 기다리는 휴식처로서의 하와이라는 공간은 안락한 공간으로서 그들이 정서적 단합을 할 수 있는 장소의 역할을 한다. 군대 막사 이외의 하와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막사와 대별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군대의 구성원들이 병영에서 고취시키지 못하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고취시키는 군대조직의 유지에 병영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확대된 의미로의 병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이라는 공간도 그리고 그 곳에 사는 현지인 애인도 그들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다른 병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와이는 진주만 폭격을 통해 이러한 휴식처로서의 의미를 넘어 미국의 단합과 애국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7]

병영에서의 생활이 어려울수록 프류윗은 가정을 가지고 결혼하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결혼과 관련된 프류윗과 워든의 모순은 이들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상대가 프류윗의 경우는 주둔지 도시에서 군인을 상대로 몸을 파는 매춘부라는 것과 워든의 경우는 바로 상사의 아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려면 군대를 떠나야 하지만, 문제는 이들은 훌륭한 군인이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들이 가정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군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대에 남아서 더 높은 계급으로 진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류윗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군대 체제에 반항하다 영창에 갔다 오고, 워든은 장교들을 혐오한다. 손에 잡힐 듯한 이들의 로맨스는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파국으로 결말지어질 수밖에 없다.

FHE에 나타나는 가정의 모습은 홈즈 대위의 해체되기 직전의 가족의 모습과 로린과 프류윗이 각자 꿈꾸는 가정의 모습 정도이다. FHE에서 중산층 가정과 결혼제도는 현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굴레로 그리고 미래의 목표로 제시될 때에는 휴식처로서 양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산층 가정에 대한 묘사는 소설과 영화에서 다르게 등장하는데, 이러한 차이점은 한편으로는 검열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대중영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소설이 G중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영창의 경험을 프류윗과 로린, 그리고 워든과 캐런 홈즈의 두 로맨스와 비슷한 분량으로 동등하게 다루는데 반해, 영화는 “전쟁 로맨스”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로맨스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존스를 이어 각색을 맡은 타라대쉬에 의해 바뀐 부분으로 타라대쉬는 군대의 협조를 위해 영창 장면을 삭제하였고, 프류윗과 로린, 워든과 캐런 홈즈의 두 로맨스를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연관이 없는 두 로맨스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MacShane 129) 로맨스를 전체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중요한 위치로 강화하였다. 이러한 삭제와 각색을 통해 결과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는 1950년대 미국사회의 모순을 은폐하는 중산층 멜로드라마로 변형되게 된다.

V. 결 론

존스의 FHE는 “군대 3부작”의 작품들 중에서도 평상시의 병영생활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통해 군대라는 조직의 개인에 대한 억압과 조직 자체의 모순을 세밀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FHE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2차 대전 발발 전의 하와이 주둔 미군 군대조직은 지원병을 바탕으로 한 조직으로, 2차 대전 중의 징집병에 근거한 조직보다 자발적인 조직참여와 성과에 의한 승진이라는 측면에서 전후 기업 및 정부 조직과 더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고, 또한 이들 조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료조직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1951년에 출간된 소설 FHE와 1953년에 개봉한 영화 FHE는 각각 1950년대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미국내 병영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이러한 고찰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미국 병영의 조직체계가 2차 대전 종전 후 귀향한 군인들과 함께 미국의 기업 및 정부 등의 모든 조직의 근본이 되었으며, 1850년대를 구성해 나간 것이 바로 관료제로 통칭되는 조직체계와 그 구성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바로 관료조직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1950년대의 미국 독자와 관객들이 본격적으로 2차 대전을 다룬 다른 소설과 영화보다 더 FHE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제임스 존스가 FHE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직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하와이에 위치한 미국육군 병영으로, 지원병인 사병들과 직업 장교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소설 FHE에서 하와이의 병영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당대 미국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지며, 이를 통해 조직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이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문제, 성정체성, 가족 등의 요소들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조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으로 확대된 관료조직의 원형으로, 조직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들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소설 FHE는 조직사회와 개인 간의 갈등을 묘사하면서도 특히 조직사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종문제와 성정체성에 대해 사실적이면서도 다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후 미국을 백인, 남성, 중산층 위주의 통합된 사회체계로 인식하고자 했던 소설이 출간된 1950년대의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억압된 형태로 은폐되는 가운데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인종 정체성은 조직 내에서 단순히 갈등을 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하고 개인들이 서로 경쟁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조직이 가진 문제점을 은폐하는 등 미국사회의 유지에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 FHE는 이러한 문제들을 각 인종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과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인 프류윗의 동료로 혹은 적으로서 등장시켜, 이들과 부딪히면서 차츰 확장 되어가는 프류윗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서 미국사회 내에서 인종문제가 가진 복합적인 양상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FHE가 소설에서 영화로 재구성되면서 소설에서 다루었던 소수 인종 및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낸 내러티브들은 상당 부분 삭제되고 변형되었다. FHE가 영화화되면서 유대인, 아메리칸 인디언,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문제들과 주둔지의 현지인들과의 관계는 생략되었고, 냉전 체제와 백인 중산층 가족을 뒷받침하는 소재와 플롯은 강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 FHE는 소설이 보여주었던 다양하고 다층적인 텍스트가 아닌 1950년대의 미국 백인, 중산층 중심주의라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평면적인 멜로드라마 내러티브로 축소되었다. 물론 이러한 할리우드의 전략은 효과를 발휘해 영화 FHE는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195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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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ed Characters, Washed Races:

From Here to Eternity across Novel and Film

AbstractChung Hwan Joe

This paper reexamines James Jones’ From Here to Eternity beyond its traditional classification as the first part of a “military novel trilogy.” Rather than interpreting the novel primarily as a war novel, this study positions it as a detailed portrayal of military life, reflecting broader American societal dynamics, particularly racial issues. The analysis highlights the stark contrast in representation between the novel and its film adaptation. In the novel, racial issues are depicted through realist techniques, while the film omits or alters these themes, reducing it to a middle-class melodrama that obscures the contradictions of 1950s American society. The novel presents minority identities as complex elements that contribute to both conflict and cohesion within the military organization, revealing underlying flaws. Conversely, the film adaptation excludes the racial issues involving Jews, Native Americans, and African Americans, as well as interactions with locals, instead promoting narratives aligned with the Cold War and white middle-class values. Consequently, the film’s narrative is constrained, emphasizing a sanitized depiction of 1950s American society that centers on white middle-class melodrama.

Key Words

James Jones, From Here to Eternity, film adaptation, racism, minority race, military novel, war novel

조충환

홍익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 이 논문은 본인의 석사논문 「From Here to Eternity 연구: 조직사회와 정체성의 문제를 중심으로」(2009)를 바탕으로 수정 및 보완하여 작성되었다.

[2] 본 논문에서 “FHE” 혹은 “소설 FHE”로 언급하는 경우는 소설 FHE를 지칭한다.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된 동명의 영화를 지칭할 때에는 “영화 FHE”로 표기하였다.

[3] 영화 FHE 가 개봉되었을 때 영화 홍보를 위한 태그라인은 “우리시대의 가장 대담한 책 솔직하고 두려움 없이 영화화!”(The boldest book of our time… Honestly, fearlessly on the screen!)와 “5백만 독자를 숨막히게 한, 극명하고 과감하지만 또한 감미로운 감성의 베스트 셀러 [영화화]!” (From The Stark, Bold – Yet Tender – Best Seller 5,000,000 Readers Gasped At!)였다.
http://www.imdb.com/title/tt0045793/taglines (accessed 15 Mar. 2009).

[4] 사실 흑인이 전투부대에 있는 것 그리고, 백인과 같은 전투부대에 섞여 편성되는 것은 미국 군대와 인종 평등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진주만 폭격 당시 흑인 장교는 고작 5명이었는데, 그 5명중 3명은 군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흑인들이 참전하게 되었지만, 모두 분리된 집단으로 복무하였고, 그 중에 3/4는 사단본부, 기술자, 운전병으로 일하였다. 전투부대 조차 전투가 아닌 노동을 위해 자주 동원되었다. 흑인과 백인이 같은 부대에 속해서 전우로서 전투에 참여하는 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반까지도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반부, 전투에 참여할 보충병이 절실하게 필요해지자 미국 정부는 1944년 아르덴(Ardennes) 전투에 시험삼아 백인부대에 흑인을 전투병으로 파병하였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차 대전이 종전 된 후 1948년 트루먼 행정부의 찰스 파히(Charles Fahy)에 의해 군대 인사체계의 공평한 대우와 기회를 위한 이른바 파히 위원회(Fahy committee)가 만들어졌으며, 쿼터시스템이 폐지되고 한국전쟁부터는 흑인의 전투부대 참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찰스 모스코스 Jr의 책을 참조할 것.

[5] 영화 <진주만> (2001)(Pearl Harbor)의 경우 흑인 취사병이 일본 폭격기를 격추하는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

[6] 아메리칸 인디언이었던 짐 소프는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5회 올림픽에서 육상 5종경기, 10종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대학시절 마이너 리그에 출전한 것이 문제가 되어 메달을 박탈당했다. 메달의 적격 여부는 경기가 끝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판단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미국아마추어 스포츠 연맹은 1년이 지난 후에 소프의 메달을 박탈했다.

[7] 진주만 폭격으로 인한 세계 2차대전 발발 이후 미국 국민들에게 하와이는 전쟁으로 그들이 상실한 풍요로운 휴식의 이미지와 이를 침범한 “진주만 폭격”의 충격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진주만 폭격”이 평온한 일요일에 일본의 선전포고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진주만 폭격으로 시작된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승전 후 대량생산에 의한 풍요와 애국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195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의 서문이었다.

영미문학연구

Journal of English Studies in Korea

46 (2024): 24-207

http://doi.org/10.46562/jesk.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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