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연구 46호] “보통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는 그림자 무리”: 키츠와 독자 대중 / 민병천

I. 들어가며

에이브람스(M. H. Abrams)가 낭만주의 문학론의 핵심적 개념으로 “표현 이론”(expressive theory)을 내세운 이래로, 낭만주의 시인의 이미지는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적 사고와 감정을 외부 세계에 투영하면서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들로 각인되어 왔고, 이는 지금까지도 근대적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Abrams 22). 이 이론에 따르면, 시인의 내면 정신을 시 창작의 근본적 원천으로 여기는 생각은 낭만주의 시론 중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인 “시인은 인지되지 않은 세계의 입법자들”(Poets are the unacknowledged legislators of the World)에 잘 구현되어 있다고 여겨진다(Shelley 508). 에이브람스는 『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the Lamp)에서 퍼시 비쉬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시론을 논하면서 그가 시인을 대중과 유리된 채로 자신의 관념적 이상을 세계에 투영하는 사람들로 규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따라 앞서 인용한 셸리의 구절에서 시인을 실제로 세계를 운영하는 정치인이나 입법자들보다 우월하게 절대적 이상 혹은 진리를 오직 자신의 내면적 정신의 힘으로 세계에 구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한다(128-30). 요컨대, 낭만주의 시대에 발흥했다고 여겨지는 시와 시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요체는 이 시기부터 시인의 힘이 대중 혹은 외부 독자들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만의 독창적 정신과 이를 세계에 실현하려는 예술적 의지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소위 전통적 낭만주의 시인론은 셸리를 비롯한 많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언술과 그들의 시작(詩作)을 통해 입증되는 게 일견 사실이지만, 이렇게 외부에 신경 쓰지 않는 시인의 내면 정신을 낭만주의 시론의 핵심적 의제로 내세우는 시각은 이 시기 시인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세계와의 복잡한 관계를 단순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낭만주의 시인론의 예시로 인용한 셸리의 구절 또한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분명 이 구절에서 시인은 “세계의 입법자,” 즉 세계가 작동하는 질서와 그 근본 원리를 창조하는 주체로 칭송되고 있지만, “인지되지 않은”(unacknowledged)이라는 형용사가 시인에 대한 절대적 칭송처럼 보이는 이 구절에 양가성을 부여한다. 상술하면, 셸리는 시인이 세계에서 행하는 일들의 의미를 “입법자”(legislator)라는 고양된 역할로 끌어올려서 그 역할이 가지는 의미의 막중함을 강조하지만, 그 입법자로서의 역할은 항상 인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음이 동시에 전제되는 것이다. 물론, 이 구절에서 인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외부의 시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본인도 알지 못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 이 점을 고려해도 세계의 작동 원리를 창조하는 입법자라는 시인의 역할이 “인지되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로 인해 그 위중함이 상당히 경감되는 것은 사실이다. 시인이 세계의 입법자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본인 자신이 그 수행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거나, 스스로 그 역할을 인지해도 외부 대중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상기한 구절은 시인이라는 역할의 위대함은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불확실함과 지위의 불안정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낭만주의 시인론을 확신에 찬 개인의 창조적 주체성에 입각해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실 낭만주의 시인론은 작가 외부에 존재하는 여러 조건들, 그중에서 특히 독자 대중과의 관계에 대한 규명 없이는 그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다방면에 걸쳐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심화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출판 시장에서 또한 기존의 유력 인사에 의한 후원 시스템이 점차로 쇠퇴하게 되고 익명의 대중 독자들이 소비의 주요한 주체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렇게 발달한 자본주의적 출판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업적 저널리즘이 발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저널리즘의 부산물로 작가들에게 항상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전문 비평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상기한 것과 같은 변화를 겪은 출판 시장의 한가운데에서 집필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낭만주의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파급력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힘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고,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대체적으로 전문 비평가를 포함한 독자 대중들에 의해 결정되었다(Newlyn 8). 이렇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점점 팽창하는 독자 대중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은, 의식 있는 작가들이 주체적으로 구축하려는 문학적 이상과 수준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소위 문학의 위기론을 당대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심어주게 된다(Erickson 15). 즉,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앞서 인용한 셸리의 시인론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작가의 자기 인식, 좀 더 구체적으로 독자 대중의 반응에 대한 작가들의 강박과 불안감은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창작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문학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정리하면, 분별력이 갖춰진 작가나 독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철저하게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작품의 가치 여부가 결정되는 당대 출판 유통의 구조에서 작가가 작품으로 구현하려는 개인적 창조 정신이 변덕스러운 대중들의 취향에 맞춰 제작된 문학 상품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은 필연적인 귀결이었고, 낭만주의 작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맞설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낭만주의 작가들이 보이는 복잡한 자의식과 불안감이 나오게 된다(Newlyn 47-48).

이렇게 낭만주의 시기에 발생했던, 작가가 독자 대중을 의식하면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자의식과 불안감은 개인의 창조성을 핵심 의제로 하는 전통적 낭만주의 시인론이 가지는 맹점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낭만주의 시인론을 규명함에 있어 공적 영역을 고려할 필요성을 입증한다. 낭만주의 작가들은 주체적으로 내려는 목소리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분명 다양한 언술을 통해 드러냈지만, 이와 동시에 혹은 이보다 더 의식적으로 자신들이 만든 목소리가 독서 대중들에게 만들어 낼 효과나 독서 대중을 의식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할 것인가의 문제 또한 천착했고, 여기에서 낭만주의 작가들 특유의 자의식과 불안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Franta 9-10). 다시 말해, 전통적 낭만주의 시인론이 주창하는 외부의 모방을 넘어 개인 내면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새로운 작가들의 출현이라는 명제는 사실 당대 공적 영역에 존재했던 수많은 난관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했었던 작가들의 숙명과 이로 인한 불안정한 심리가 녹아 있던 그들의 작품을 일면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오류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오류로 인해 언뜻 개인적이고 내면적으로 보이는 많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언술과 작품이 내포한 역사성과 공공성이 지워져 버리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낭만주의 작가 중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던 존 키츠(John Keats)의 창작에 관한 개인적 언술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같이 2세대 낭만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나 셸리와 달리 키츠는 당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작품에 녹여내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키츠 작품이 구현한 역사성이나 정치성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1] 하지만, 키츠가 작품과 서한을 통해 보여준 여러 형태의 복잡한 내면의 표현은 낭만주의 작가 그 누구보다도 당대 공적 현실이 창작에 끼치는 영향과 한 진보적 문인이 문학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양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키츠가 내면의 목소리로 드러내는 공적 의미 중에서 본 논문은 특히 작가 의식에 드리워져 있는 독자 대중의 존재라는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II. 피할 수 없는 독자 대중의 존재

키츠가 리 헌트(Leigh Hunt)와의 교류를 통해 문단에 데뷔를 한 이후 얼마 동안 그의 창작 활동은 헌트가 이끈 문인 서클이 지향한 자유주의적 진보 이념에 입각한 유희적 문인 활동에 가까웠고 독자 대중에 대한 구체적 인식은 없었다.[2] 하지만, 두 번의 저작 활동[3]이 가혹한 비평과 저조한 판매에 직면했을 때, 키츠의 독자 대중에 대한 의식이 비로소 시작된다. 키츠는 존 해밀튼 레이놀즈(John Hamilton Reynolds)에게 보낸 서한에서 『엔디미온』 서문 초안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에 응대하면서 대중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키츠에게 좋은 시를 창작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영원성과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위대한 인물들을 인식할 수 있는 정신인데, 대중들은 이러한 것들을 결여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Letters 1: 266). 이 서한에서 키츠에게 독자 대중은 우매한 민중에 불과했고, 그는 이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겸손과 굴복의 태도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1: 267). 우매한 독자 대중에 대한 강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키츠는 같은 지면에서 자신의 창작 활동의 동기가 되었던 글쓰기를 통한 공공선의 성취라는 이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지지를 표현한다. 오히려, 키츠는 이 우매한 대중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며 자신이 문인 지식인으로서 사회와 문화적 공공영역에서 추구하는 공공선이라는 개념과 일부 작가들이 변덕스러운 독자들의 취향에 영합해서 이룩한 “싸구려 감상주의적 인기”(Mawkish Popularity)를 단호하게 구분한다(1: 267).

1819년 2월 19일에 작성한 동생 조지 키츠 부부(George Keatses)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키츠는 그의 창작 활동이 성공에 대한 욕망과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시 한번 대중 여론에 대한 경멸감을 드러낸다(2: 65). 그런데, 이 서한이 보여주는 더 의미심장한 이슈는 키츠가 파악하는 독자 대중의 취향이 타락하는 방식이다.

비평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은 나약해지고 나태해져 왔네. 지금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네. 하지만 이러한 비평은 점점 그 세력을 얻고 있고, 특히 『쿼털리 리뷰』가 그렇다네. 이러한 비평은 마치 미신과도 같아서, 대중을 더욱 오래 굴복시켜 그들이 약해진 정도만큼 더욱 그 힘을 키우게 되네. (2: 65)

the Reviews have enervated and made indolent mens minds—few thinks for themselves—These Reviews too are getting more and more powerful and especially the Quarterly—They are like a superstition which the more it prostrates the Crowd and the longer it continues the more powerful it becomes just in proportion to their [readers’] increasing weakness. (2: 65)

인용된 서한 구절은 『쿼털리 리뷰』(the Quarterly)를 비롯한 토리(Tory) 계열 저널로부터 심한 공격을 당했던 키츠가 표출하는 분노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4] 여기에는 이러한 개인적 분노 이상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 구절에서 키츠가 지적하는 핵심은 비평의 사악함이라기보다는 대중 독서물에 쉽게 영향을 받는 대중의 모습이다. 키츠가 헌트 서클을 통해 다른 문인들과 교류하며 지향한 문화 활동은 문인 지식인으로서 공공선에 헌신하고자 하는 이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상은 어떤 주제가 주어지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독자 대중의 존재가 필수적 전제 조건이었다.[5] 다시 말해, 하버마스(Jürgen Herbermas)가 공공영역 이론을 통해 주창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공적 토론”(rational-critical public debate)을[6] 소화할 수 있는 독자 대중을 찾아야만 키츠가 지향했던 창작 활동을 통한 공공선의 성취가 가능했다는 것이다(Habermas 27-31). 그러나 키츠가 이 서한을 통해 언급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자질이 부족했다. 키츠의 시각에서 보면 현금의 독자 대중은 읽을거리에 대한 판단을 비평에 의존해서 하고 있고, 이로 인해 그들의 정신은 나약해지고 나태해진다. 게다가 독자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미신에 굴복하듯이 비평에 수동적으로 굴복해 버린다. 즉, 이 서한에서 키츠가 말하듯,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키츠가 지향하는 공공선을 위한 이상적 창작 활동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키츠가 내놓는 작품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키츠에게 당대의 독자들은 그들의 온전한 정신을 마비시키는 소위 나쁜 비평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그가 추구하는 창작 활동의 이상을 출판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는 방해꾼들이었던 셈이다.

대중 독자에 대한 불신은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다른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서도 공유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문학 평전』(Biographia Literaria)에서 상업주의에 물든 독자 대중의 행태를 특유의 엘리트적 보수주의의 시각에서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그는 일반 독자들의 분별력이 저하된 점, 책에 대한 그들의 피상적인 태도, 그리고 “일반적 대중들이 가지는 사고력의 쇠퇴”(depravation of the public mind)를 주요한 문제점으로 꼽았다(1: 39, 1: 48, 1: 57, 2: 229). 코울리지와는 반대로 진보적 계몽주의의 시각에서 독서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던 메리 월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에드워드와 해리엇 혹은 행복한 회복-한 여류작가의 감상적 소설』(Edward and Harriet, or the Happy Recovery: a Sentimental Novel by a Lady)에 대한 평을 쓰면서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소설을 읽는 행태를 비판했다. 이 글에서 그녀는 일반 여성 독자들이 당대에 유행한 순회도서관에서 주로 유통되는 소설들을 탐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행태로 인해 그들은 합리적 정신을 함양하는 대신에 비슷한 양식의 저급한 소설을 자신들 스스로가 무분별하게 써내고 있다고 한탄했다(20).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서문에 덧붙이는 글」(“Essay, the Supplementary to the Preface”)에서 우매한 대중과 온전한 사람들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독자 대중들의 구분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독자 대중은 단일한 그룹이 아니고 두 개의 차별적인 집단으로 나뉘는데, 그중 우매한 대중은 당대에 유행하는 편파적 의견에 쉽게 좌우되는 소란스러운 무리들을 지칭하고, 온전한 사람들은 철학적 사유와 지적 바탕을 갖추고 있어서 작가들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현재에 대한 통찰을 생산하게 하는 믿음직스러운 독자들을 의미했다(413). 즉, 워즈워스에게 변덕스럽고 경박한 취향에 휩쓸리는 당대의 많은 독자들은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되었고, 그의 문필 활동은 그의 글이 품고 있는 시류적 한계를 초월하는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이상적 독자들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앞서 살펴본 키츠와 마찬가지로, 상기한 낭만주의 작가들 역시 당대 상업주의 물결 속에서 수없이 양산되었던 많은 읽을거리를 무차별적으로 소비하는 독자 대중의 급속한 팽창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이러한 독자들의 취향에 영합해야 하는 현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학적 가치의 실현에 심대한 방해가 될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독자 대중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중하류층 출신의 작가들에게 독자 대중의 존재는 그들의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7] 사실 이러한 상황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가가 바로 키츠였다. 그는 진보적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문학적 지향을 바탕으로 공공선을 실현할 이상적 독자들과 소통하길 원했지만, 현실에서는 문학 지식인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업을 지속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이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잘 팔리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의식 있는 문학 활동을 지향하고 이에 따라 당대 독자 대중에게 온당한 반감을 품고 있던 중하층 출신의 문인들은 그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업을 지속하기 위해 독자들을 끌어모을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바로 그들 작품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수용될 것인지에 관한 문제를 향해 그들이 품게 되는 깊은 불안감의 원인이 된다.

낭만주의 시기 중하층 문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던 윌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t)이 『특징들』(Characteristics)에서 표출하는 잘 속는 대중들에 대한 분노는 이러한 불안감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의 평판은 그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난봉질에 달려 있다. 남을 헐뜯는 일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떤 인물에 대해서건, 악의적인 비난을 가하면 오점은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이후에 다른 어떤 업적으로도 씻어내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오명을 씌우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진실일 필요는 없다. 단지 그렇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아주 미묘한 결을 지니고 있어서, 심지어 몇 마디의 말로도 이를 뒤틀 수 있다. (9: 197) 

A man’s reputation is not in his own keeping, but lies at the mercy of the profligacy of others. Calumny requires no proof. The throwing out malicious imputations against any character leaves a stain, which no after-reputation can wipe out. To create an unfavourable impression, it is not necessary that certain things should be true, but that they have been said. The imagination is of so delicate a texture, that even words wound it. (9: 197)

당대 유명한 진보 문인으로 활발하게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던 해즐릿은 키츠와 마찬가지로 친정부적이고 보수적인 토리 계열 저널들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토리 저널들은 해즐릿의 글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퍼부었고, 해즐릿 또한 진보 이념에 입각해서 토리 작가들의 글에 활발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기한 인용에서 해즐릿이 표현하듯이, 그가 문제 삼는 지점은 토리 작가들이 품고 있는 악의나 그들과의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근거 없는 비방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독자 대중들의 성향이었다. 실제로 『쿼털리 리뷰』에 실린 해즐릿에 대한 악의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비판 글은 그의 역작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 극의 인물들』(Characters of Shakespeare’s Plays)의 판매 부수 하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8] 어떤 글이 지니는 진실성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기에는 너무나 변덕스럽고 경박한 독자 대중들의 성향이 이런 사건을 겪은 해즐릿에게는 더더욱 절실히 느껴졌을 것이고, 앞서 언급된 인용에서 나타난 독자들에 대한 경멸감은 이러한 상황의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역설적으로 해즐릿에게 직업적 문필가로서의 삶이 이렇게 경박한 독자 대중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주게 되었고, 이 깨달음에서 그의 분노와 좌절뿐만 아니라 대중들에 대한 만성적 불안감이 나오게 된다. 요컨대, 경제적 기반을 글의 판매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낭만주의 시기의 많은 중하층 문인 지식인들에게 당시 급속히 팽창하고 있던 새로운 형태의 대중 독자는 두 가지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문인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문필 활동을 지탱해 주는 물질적 기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 문인의 모순적 위치를 가장 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키츠였다.

III. 독자 대중과 직면한 키츠의 선택

독자 대중과의 긴장 관계와 이로 인한 불안감이 키츠에게 유달리 증폭되어 드러나고 있었던 점은 마조리 레빈슨(Marjorie Levinson)이 적절하게 표현한 대로 그의 삶을 이루는 물질적 기반이 “노동 계급이 놓여 있는 가혹한 현실과 상류 계급이 지향하는 미적 가치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sandwiched between the Truth of the working class and the Beauty of the leisure class) 사실에 기인한다(5). 키츠의 애매한(그래서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는 당대 문인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키츠는 중하층 출신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기 때문에 당대 일반적인 엘리트 지식인들이 받는 교육에 접근할 수 없었고, 대신에 약제사(apothecary)라는 실용적 직업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키츠가 초년 교육을 받았던 엔필드 학교(Enfield School)는 비록 엘리트 교육 기관과는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키츠가 인문적 지식인으로서 기초 소양을 닦고 전문 문필가로 성장할 꿈을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분위기를 제공해 주었다(John Keats and the Culture of Dissent 27-50). 그리고 엔필드 학교의 교육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인문적 소양과 문학의 공적 사명에 대한 인식은 비록 풍성하지는 못했어도 키츠에게 생존만을 위한 삶과 다른 길이 있다는 사고를 심어주었고, 이 점은 후에 그가 공적 이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던 당대 진보 문인들과 동인 활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키츠는 당대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거치는 과정과는 사뭇 어긋난 삶의 경로를 밟았고, 심지어 약제사라는 부유하지 못한 가문 출신의 서민이 안정적으로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직업 훈련까지 거쳤지만, 굉장히 이례적으로 약제사를 그만두고 직업적 문필가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의 재정 상황은 그 어떤 작가보다도 더 출판된 작품의 판매 부수에 매이게 된다. 다시 말해, 키츠는 당대 문단 환경의 관점에서 볼 때, 작가로서의 출발점 자체가 출신 계급과 재정 안정도라는 측면에서 이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바로 이 점으로 인해 키츠에게는 독자 대중들의 전폭적 지지를 통한 작품의 상업적 성공만이 그가 가까스로 진입한 문필업을 계속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그러나, 키츠가 그의 경력 초반에 출판한 두 개의 작품은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 실패들로 인해 그의 문필가로서의 삶 자체가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된다. 상기한 키츠의 전기적 상황에서 그가 왜 독자 대중에게 양가적이고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키츠는 그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무관심에 깊은 좌절과 분노를 느꼈지만, 동시에 너무도 절실하게 그들의 관심을 열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키츠가 『엔디미온』 서문을 수정했던 과정은 그의 글쓰기에 어떻게 모순적이고 복잡한 감정이 배어들게 되었는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엔디미온』 서문 초본에서 키츠는 그가 데뷔했던 작품집인 『시선집, 1817』의 대중적 실패에 대해 자의식적 반응을 보이면서 새로운 작품이 지닐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이 시(『엔디미온』)는 완결된 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학적 시도 정도로 여겨져야 한다. 즉, 내가 앞으로 계속 살면서 성취하고자 하는 문학적 목표를 위한 작은 서문 정도가 될 것이다”(this Poem [Endymion] must rather be consider’d as an endeavour than a thing accomplish’d; a poor prologue to what, if I live, I humbly hope to do. Complete Poems 739). 다시 말해, 키츠는 여기에서 그의 전작에 관한 비호의적이었던 논쟁을 의식하며 독자 대중에 대한 자기방어적이자 자기비하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더 나아가 새로 출판할 작품의 가치를 스스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키츠는 이러한 자기비하적 진술 다음에 자신의 전작에 대해 비호의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기조차 했던 독자 대중과 비평가들을 향한 복잡한 분노의 감정 또한 드러낸다.

요즘 작가들은 자신들이 우연히 내뱉는 모든 말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매달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비평계에 너무 흔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단언컨대, 나는 글쓰기 작업 전반에 걸쳐서 어떤 특정한 구절, 단어, 글자에 과하게 매달린 적이 없다. 나는 오직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글을 써왔을 뿐이다. 만약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도 즐겁게 하지 못하고, 명예도 얻지 못한다면 글쓰기가 무슨 의미를 지닌다는 말인가? 물론 나는 모든 작품이, 다 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작품의 작가에게 가져오는 비난을 피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항상 이런 기대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연관된 비평적 소통은 있어야 하고,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한 작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739)

It has been too much the fashion of late to consider men biggotted and addicted to every word that may chance to escape their lips: now I here declare that I have not any particular affection for any particular phrase, word or letter in the whole affair. I have written to please myself and in hopes to please others, and for a love of fame; if I neither please myself, nor others nor get fame, of what consequence is Phraseology? I would fain escape the bickerings that all Works, not exactly in chime, bring upon their begetters:—but this is not fair to expect, there must be conversation of some sort and to object shows a Man’s consequence. (739)

이 글 초반에 보여주었던 대중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상기한 인용은 자신의 글이 비판받는 방식에 대한 키츠의 반박, 더 나아가 그의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작가들이 단어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비판하는 최근의 비평 경향에 대해 키츠가 언급한 것은, 아마도 헌트와 연관 지어 그의 문체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를 비난했던 비평을 의식한 발언일 것이다. 키츠는 당연히 이에 대해 분노하며 반대하고 있다.[9] 하지만 이 인용에서 더 눈길을 끄는 점은 키츠가 부당한 비평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이다. 키츠는 이 글에서 그가 글을 쓰는 방식이나 그의 글이 내포하는 주제 의식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대신에 그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목표가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키츠는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명예를 얻고” 싶을 뿐이라고 진술하면서, 그의 문학적 관심이 글을 써서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자연스러운 욕망에 국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구나 키츠는 이러한 작가로서의 소박한 욕망을 내세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평의 필요성까지 인정하고 있다. 물론, 키츠는 그가 전작의 출판을 통해 받았던 비판을 상기하며 어떤 식으로든 이런 가혹한 비평을 피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는 문필가들이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상호 소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즉, 키츠는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부당한 비판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와중에도 자성의 태도와 대중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키츠에게 대중은 너무나 성가시지만 떨쳐낼 수 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키츠의 대중에 대한 유화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엔디미온』 서문 초본은 출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키츠 작품의 출판을 담당했던 테일러(Taylor)와 헤시(Hessey)가 강하게 반대했고, 키츠와 헌트 서클에서 같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레이놀즈 역시 이 반대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1818년 4월 9일에 레이놀즈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이들이 서문 초본의 출판에 반대한 이유는 이 글이 여전히 헌트의 문체를 많이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들에 대한 적개심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반대 이유는 앞선 인용과 연결된 흥미로운 점 하나를 시사하는데, 그것은 바로 키츠가 공들여 설정한 대중들에 대한 유화적 태도가 그의 작품을 상품으로서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을 맡고 있는 출판업자들에게는 아직 충분하지 않게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낭만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작가의 의도와 출판업의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고, 키츠의 글쓰기는 항상 이와 같은 긴장을 전제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키츠는 서문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 수정본에서 그는 작품을 읽어줄 잠재적 독자들에 대해 훨씬 조심스럽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흥미롭게도 이 수정본 역시 비평에 대한 그의 강한 자의식을 그대로 품고 있다.

『엔디미온』 서문 수정본에서 키츠는 상당히 공을 들여 이 작품의 약점을 스스로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약점 인정은 자기방어적인 어조를 띠고 있으며, 예상되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로서 의도된 것이지만, 동시에 이는 키츠가 초본에 비해 대중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상당히 부드럽게 조정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렇게 태도를 보다 유화적으로 바꾼 이후에도, 그의 작품이 대중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인식은 여전히 명확히 존재한다.

내가 이처럼 내 글의 약점에 대해 변명하는 것은 아마도 주제넘은 짓일지도 모르고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나서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글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작가에게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그냥 내버려 둘 것이다. 이 글은 절대 앞으로 나올 비평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 이 글의 목적은 단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진 이들, 특히 열정과 영국 문학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지닌 사람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추구하는 데 있다. (Complete Poems 102

This [Keats’s own excuse of his poetic weaknesses] may be speaking too presumptuously, and may deserve a punishment: but no feeling man will be forward to inflict it: he will leave me alone, with the conviction that there is not a fiercer hell than the failure in a great object. This is not written with the least atom of purpose to forestall criticisms of course, but from the desire I have to conciliate men who are competent to look, and who do look with a zealous eye, to the honour of English literature. (Complete Poems 102)

이 인용이 보여주듯이, 서문 수정본에서는 초본과 달리 키츠의 대중들에 대한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있다. 이제 키츠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다양한 비평들이 나올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그의 전작에 가해졌던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에 대한 예민한 자기방어 의식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키츠는 여전히 대중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이 작품을 감상할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들의 작품 수용에 대한 키츠의 지속되는 깊은 관심에는 사실 의미심장한 의도가 담겨 있다. 우선 주목할 점은 키츠가 비평과 일반 독자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이다. 이 글에서 키츠는 분명 비평의 당위성과 불가피성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는 비평이 부당하게 그의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 끼어들어 왜곡시키는 양상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보인다. 키츠는 자신의 글이 약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점으로 인한 비판은 당연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공감력을 지닌 독자들은 굳이 나서서 이를 가혹한 비난으로 확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작가들은 대중의 반응이 목표한 바에 미치지 못함을 인지함으로써 이미 자신들의 약점에 대한 자각과 자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공공연한 비난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즉, 이 진술을 통해 키츠는 비평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방해하며, 악의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암시는 그의 이전 작품들에 대한 가혹한 비평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키츠가 규정한 바람직한 독자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이다. 키츠는 여기에서 그의 글쓰기 목적이 깊은 식견과 열정, 그리고 영국 문학에 대한 존경심으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목적은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작가의 희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점까지 키츠가 겪었던 작가로서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그가 지녔던 독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이 진술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좀 더 상술하면, 키츠는 이 진술에서 글쓰기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밝히는데, 이는 그가 글을 쓰는 행위를 자성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독자와의 관계를 자신의 개인적 의도 위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키츠는 이제 작품 활동에 독자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키츠는 이렇게 독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독자가 마땅히 취해야 하는 태도를 지적한다. 즉, 작품 활동에는 독자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적당한 수준의 이해력과 감식력을 갖추고 있는 바람직한 독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키츠는 작품이 출판업자를 거쳐 시장에서 상품으로 소비되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성패가 독자 대중의 취향과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음을 통렬하게 인식했지만, 이러한 출판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자각의 와중에도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해 줄 독자를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키츠의 두 번째 출판 프로젝트였던 『엔디미온』 역시 토리 계열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이의 영향으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두 번째 실패는 앞서 언급한 『엔디미온』 서문 수정 작업에서 보여준 대중에 대한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을 더욱 심화시킨다. 『엔디미온』 집필 과정에서 키츠가 보여준 감정이 독자 대중이 드러내는 취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하는 양가적 태도라고 한다면, 이 두 번째 출판의 실패 이후 키츠가 보여주는 감정은 작가로서 독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고민이라고 정리될 수 있다. 『엔디미온』 출판 프로젝트의 상업적 실패는 키츠의 삶과 작가로서의 경력에 실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키츠는 여러 서한에서 『엔디미온』의 실패와 이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데, 한 번은 작가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키츠의 원래 직업인 약제사가 되어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계획을 고려하기도 한다(2: 114). 그러나 키츠는 결국 작가로서의 경력을 지속하기로 결심하고 세 번째 출판을 준비하게 된다. 연인이었던 패니(Fanny)에게 보낸 1819년 6월 17일 자 서한에서 키츠는 본인의 역량을 다시 한 번 최대로 끌어 올려 새로운 작품 출간을 시도해 보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는데, 그는 실제로 와이트 섬(the Isle of Wight)에 칩거해서 새로운 집필 작업에 몰두한다(2: 121).

세 번째 작품집 출간에 대한 키츠의 새로운 결의는 작가로서의 경력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가 걸려있는 결정이었지만, 흥미롭게도 키츠의 이 중대하고 비장한 결의는 유보적 태도와 함께 표출된다. 패니에게 보낸 1819년 7월 6일 자 서한에서 키츠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내가 지금 이곳에 칩거하고 있는 목적은 내 생각에 이미 당신에게 말한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작가로서 내가 어떤 운을 맞이할 수 있을지를 다시 한번 시험해 보는 것이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내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소. 하지만 만약 내가 작가로서 실력을 입증하지 못해서 내가 바라는 사회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약제사로 먹고 살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나는 충분히 편안할 것 같소. (2: 124-25)

I think I told you the purpose for which I retired to this place—to try the fortune of my Pen once more, and indeed I have some confidence in my success: but in every event. . . . I shall be sufficiently comfortable, as, if I cannot lead that life of competence and society I should wish, I have enough knowledge of my gallipots to ensure me an employment & maintainance. (2: 124-5)

이 진술은 키츠가 작가로서의 미래를 상당히 실용적인 방식으로 계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 번째 작품집 출간 계획을 진행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고, 심지어 약제사로서의 삶이라는 실패할 경우까지 고려한 대비책까지 준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실용적으로 보이는 키츠의 미래 계획에 대한 진술은 작가로서의 그의 이상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하고 있다. 상기한 서한의 진술에서 키츠는 자신의 새로운 출판 프로젝트를 무모한 도전이 아닌 충분히 성공이 가능한, 그리고 심지어 실패의 경우에도 대안이 있는 계획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이전 출판들의 실패를 의식한 자기방어적 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의식한 자기방어적 태도 속에서도 “내가 바라는 사회”라는 구절을 굳이 넣음으로써 문학 지식인으로서의 이상을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더구나 대안 직업으로 약제사를 제시할 때조차도 “약단지”(gallipot)라는 이전 토리 비평가들이 키츠를 비하하면서 썼던 표현을 의도적으로 다시 씀으로써 이전의 실패가 보수 비평가들의 부당한 공격에 의해 야기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10] 정리해 보면, 키츠는 대중 독자를 확보하지 못했던 이전 작품들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출판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는 와중에도, 애초에 진보 이념을 추종했던 문학 지식인으로서의 이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보수 비평가들이 문단에 끼친 해악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작가적 지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의 모순적 공존은 키츠가 두 번에 걸친 출판 프로젝트의 실패 이후에 대중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상당히 고민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명확히 결론 내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상과 같은 작가로서의 대중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지닌 채 키츠는 계속해서 대중적 성공을 추구하긴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자의식과 회의가 동반되기도 했다. 이 경향은 특히 세 번째 출판 프로젝트에 실릴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819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작성된 서한들에서 자주 나타나듯, 키츠는 새로운 출판을 통해 대중적인 성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이 의지는 주로 그의 악화된 재정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레이놀즈에게 보내는 6월 11일 자 서한에서 키츠는 그의 집필 진척 상황을 설명하면서, 성공에 대한 강한 희망을 피력하고 이 목적을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밝힌다(2: 128). 게다가 이 시기 내내 키츠는 그의 친구들인 레이놀즈,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 찰스 딜케(Charles. W. Dilke), 리차드 우드하우스(Richard Woodhouse)와 상당한 빈도로 서신을 주고받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그의 집필 과정을 보고하고 작품에 대한 조언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세 번째 작품집 출판을 맡은 존 테일러(John Taylor)에게는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시들과 희곡들을 어떻게 상업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는지에 관해 상세히 질의하기도 했다.[11] 키츠는 심지어 정기간행물에 직업적으로 글을 투고하는 문필가로서의 길을 탐색하기도 했는데, 그는 9월 22일 찰스 브라운에게 보낸 서한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지지하기만 한다면 어떤 저널에도 기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2: 176). 그러나 키츠가 이 시기 일련의 서한들에서 보인 작품의 대중적, 상업적 성공에 대한 열망에는 항상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수반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키츠는 작품의 대중적 성공을 절실히 갈구하면서도, 문단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문필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1819년 8월 23일, 키츠는 담당 출판업자인 테일러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서한을 보내는데, 여기에서 그는 작가로서 대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꽤나 솔직히 표출한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생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성의 사랑만큼이나 대중들의 호의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 둘은 모두 독립을 향한 비상을 방해하는 진저리 치게 달콤한 음식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원히 대중들을 나에게 시작품을 빚진 사람들로 여길 것이고, 절대 내가 그들에게 찬사를 빚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찬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정도 되면, 당신은 이 편지를 내려놓고 “얼마나 외로운 인생이길래 이런 오만과 고집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하고 있겠군요. 맞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이 오만과 고집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여기에 더 집착할 것입니다. 내 능력 너머에 있는 천재들을 보며 겸손해지는 만큼, 나는 문단과 문학 시장을 보면서 우쭐해지고 증오와 경멸감을 느낍니다. 야전 지휘관에게 친밀한 동작으로 손을 내미는 북 치는 군악병 있잖아요. 나에게 대중들의 찬사와 호의는 바로 그 군악병과도 같아요. 그 누가 너무나 흔해 빠져서 서로 구별도 안 되는 약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 그룹에 속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문단이라는 의회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자리 중 하나를 얻기 위해 구걸하고, 이렇게 해서 간신히 얻는 자리가 아부하거나 위선을 떨 가치가 있는 자리인가요? (2: 144)

I feel every confidence that if I choose I may be a popular writer; that I will never be; but for all that I will get a livelihood—I equally dislike the favour of the public with the love of a woman—they are both a cloying treacle to the wings of independence. I shall ever consider them (People) as debtors to me for verses, not myself to them for admiration—which I can do without. . . . You will observe at the end of this if you put down the Letter ‘How a solitary life engenders pride and egotism!’ True: I know it does but this Pride and egotism will enable me to write finer things than anything else could—so I will indulge it—Just so much as I am hu[m]bled by the genius above my grasp, am I exalted and look with hate and contempt upon the literary world—A Drummer boy who holds out his hand familiarly to a field marshall—that Drummer boy with me is the good word and favour of the public—Who would wish to be among the commonplace crowd of the little-famous—who<m> are each individually lost in a throng made up of themselfes? Is this worth louting or playing the hypocrite for? To beg suffrages for a seat on the benches of a myriad aristocracy in Letters? (2: 144)

앞의 인용 구절은 그대로 해석하자면 당대 문단 현실을 키츠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고, 이 글은 대중 독자들에 휘둘리는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시기의 키츠가 성공에 대한 초조한 열망과 대중에 대한 복잡한 자의식을 여러 지면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글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문단 주변에서 작은 성공을 위해 분투하고 있던 키츠 본인의 문필 활동에 대한 자성적 평가에 가까운 면이 있다. 이 글에 내포된 키츠의 자기 평가적 요소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바라보는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첫 번째 관점은 자신이 대중에게 현재는 아니더라도 결국 영향력 있는 독립 작가로 인정받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 두 번째 관점은 자신의 생계가 대중적 인기에 좌우될지라도 이에 연연하지 않고, 종국에는 성공하지 못할 무명의 작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대중에 의해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두 가지 관점이 제시하는 작가상이 동시에 존재하기는 불가능하다. 하나는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작가로서 인정받으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과 독립적인 위치에서 무명의 작가로 남으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한에서 키츠는 이 두 상반된 작가상 모두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키츠는 자신의 세 번째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중적 성공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었지만, 이 서한에서는 애초에 대중과의 거리를 설정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뒤집고 있다. 이 서한은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보여주는데, 이는 바로 키츠가 자신과 독자 사이의 관계를 채무 계약에 빗대는 것이다. 키츠와 독자는 시작품과 찬사를 각각의 자산으로 가지고 채무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독자는 키츠의 시작품을 탐하지만 키츠는 독자의 찬사에 초연하기 때문에 빚을 지는 쪽은 항상 독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비유 안에서 키츠는 독자 대중에게 찬사를 구걸하지 않고도 그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상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소 자기 과시적인 상상의 근원에 오만(pride)과 고집(egotism)이 자리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키츠는 바로 이 자신만의 오만과 고집이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즉, 이 작가상은 대중으로부터의 독립성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키츠에게 있어 실로 대담한 자신감의 표명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담한 자신감의 표명 이면에는 사실 대중 독자의 인정을 절실히 갈구하고 있는 무명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숨어 있다. 키츠는 이 서한에서 분명 대중들이 부여하는 인기에 연연하는 문학 시장의 현실에 염증을 보이고 있고 자신은 기꺼이 무명작가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최고의 영광은 결국 자신의 시작품을 구걸하는 대중을 상상하는 시점에서 실현된다. 비록 구걸하는 측을 대중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오만과 고집이 완전히 보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설정은 작가로서의 키츠가 대중의 영향력을 벗어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대중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 설정은 대중에 대한 지독한 경멸과 이에 따른 오만과 고집으로 표현된 키츠의 작가 정신이 사실상 얼마나 대중에 대한 의식에 잠식되어 있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IV. 나가며

1819년 8월 24일, 레이놀즈에게 보낸 서한에서 키츠는 좋은 글쓰기를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로 여긴다는 진술을 함으로써 그가 본래 지녔던 작가로서의 공적 이상에 대한 신념이 자신에게 여전히 중요한 가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같은 지면에서 이러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이 왕국에 거주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는 그림자 무리”(the crowds of Shadows in the Shape of Man and women that inhabit a kingdom)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한탄한다(2: 146). 글쓰기로부터 가치 있는 공적 이상이 실현되기 때문에 문필업을 계속 추구했지만, 바로 그 공적 이상의 구현 대상이 되어야 하는 키츠의 글을 읽는 독자는 현실에서 어두운 그림자처럼 키츠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갑작스럽게 부상한 독자 대중과 이들의 피상적 취향에 부합해 문학 상품을 기회주의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작가 무리가 함께 만들고 있었던 당대 문학 시장과 이 시장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상업적 논리를 키츠는 고고한 태도로 경멸하고 떨쳐내고 싶었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는 이 시장이 주는 작은 기회라도 잡아 작가로서 살아남으려 분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행하는 문필업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너무나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는 키츠에게 자신의 위치는 사실 그가 그토록 경멸하는 “너무나 흔해 빠져서 서로 구별도 안 되는 약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 그룹”에도 미치치 못하는 것이었다(2: 144). 바로 이 상황이 키츠에게 깊은 자괴감과 분노가 시작되었던 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괴감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키츠는 작가로서의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대 대중의 취향에 순응하는 글쓰기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 역설적 상황에서 본 논문이 지금껏 키츠의 진술들을 통해 드러내 왔던 그의 불안정한 감정들, 그리고 이에 따른 복잡한 자의식이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세 번째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키츠가 보여준 복잡한 감정과 자의식은 당시 작가들에게 중요하게 부상했던 외부적 환경인 대중 독자와 직면해서 이들과 자신의 작가적 이상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강박적으로 고민했던 낭만주의 시기 한 작가의 생생한 의식을 반영한다. 그리고 바로 이 의식의 단면에서 낭만주의 시기 작가들이 새롭게 개척했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독창적 내면이라는 영역이 가리고 있던 공적 의미와 역사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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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wds of Shadows in the Shape of Man and women”: John Keats and the Reading Public

Abstract

This essay explores  how the reading public shaped John Keats’s self-consciousness as an author and influenced his writing practices, by examining his literary and publishing activities. While the traditional image of Romantic poets often highlights their individual creativity as the foundation of their artistic expression, this view oversimplifies their complex interaction with external realities. Instead of characterizing them as isolated bearers of original creativity, it is crucial to acknowledge that their private emotions and artistic expressions were deeply influenced by the socio-economic conditions of their time, particularly within the capitalist framework that intensified during the 18th century. The commercialized publishing market and its associated reading public notably influenced the direction of their literary works. For Keats, who had a vulnerable socio-economic base, the reading public had a profound impact on his writing practices. Thus, tracing his relationship with the reading public is essential for understanding the historicity behind what seems to be his original expressions of personal emotions. More specifically, this essay argues that the complex emotions and self-consciousness Keats exhibited during three publishing projects reflect the vivid consciousness of a Romantic poet who was compulsively contemplating how to reconcile his authorial ideals with the contemporary publishing market’s demands, thus revealing the public significance and historicity embedded within the domain of individual creativity that Romantic poets were thought to have pioneered.

Key Words

the reading public, John Keats, individual creativity, commercialized publishing market, historicity, authorial ideals

민병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부교수


[1] 1970년대 이후로 키츠에 대한 역사주의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러한 연구 경향의 일환으로 키츠 작품이 드러내는 정치성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나타났다. 키츠의 작품이 당대 정치 현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키츠의 정치성에 대한 연구들은 그의 작품이 드러내는 특유의 문체, 개인적 배경, 다른 문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동인 활동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대표적 연구로는 Jerome McGann, “Keats and the Historical Method in Literary Criticism,” Modern Language Notes 94.5 (1979); William Keach, “Cockney Couplets: Keats and the Politics of Style,” Studies in Romanticism 25 (1986); Nicholas Roe, ed, Keats and History (Cambridge UP, 1995); Michael O’Neill, ed, Keats: Bicentenary Readings (Edinburgh UP, 1997); Robert M. Ryan and Ronald A. Sharp, eds, The Persistence of Poetry: Bicentennial Essays on Keats (U of Massachusetts P, 1998) 참조. 좀 더 구체적으로, 키츠의 작품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 사회에 팽배했던 급진주의 사상과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연구로는 Morris Dickstein, “Keats and Politics,” Studies in Romanticism 25 (1986); David Bromwich, “Keats’s Radicalism,” Studies in Romanticism 25 (1986); Roe, John Keats and the Culture of Dissent (Oxford UP, 1997) 202-67 참조. 키츠의 정치성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박혜영, 「키츠의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정치의식: 하이페리온 시편들을 중심으로」 (2008); 오복남, 「키츠의 “소극적 능력”과 『하이페리온』에 드러난 정치의식」 (2015) 참조.

[2] 키츠가 헌트 서클에 포섭되고 이 동인 그룹을 통해 문필 활동을 하는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로는 Nicholas Roe, John Keats and the Culture of Dissent (Oxford UP, 1997) 105-10, 116-33; Jeffrey Cox, Poetry and Politics in the Cockney School: Keats, Shelley, Hunt and Their Circle (Cambridge UP, 1998) 82-122; Richard Cronin, “Leigh Hunt, Keats and the Politics of Cockney Poetry,” The Politics of Romantic Poetry: In Search of the Pure Commonwealth (St. Martin’s, 2000): 181-99; Roe, John Keats (Yale UP, 2012) 139-94 참조.

[3] 이는 키츠의 두 초기 저작인 『시선집, 1817』(Poems of 1817)과 『엔디미온』(Endymion)을 지칭한다.

[4] 키츠 작품에 대한 토리 비평가들의 공격과 이에 대한 키츠의 반응을 상세히 살펴보려면 Byoung Chun Min, “The Dilemma of a Young Liberal Poet: How to Read Tory Reviewers’ Critique of Keats’s Poetry,” The Journal of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69.2 (2023) 참조.

[5] 1810년대 키츠는 헌트가 편집장으로 있던 『이그재미너』(The Examiner)를 통해 작가로서 데뷔했고, 이 저널의 지면이 키츠가 헌트 서클의 일원으로서 공적 담론에 참여하는 수단이었다. 헌트가 저널리즘을 통해 형성한 공공영역에서 독자 대중과의 소통으로 자신들의 진보 담론을 만들고 확산시켰던 활동에 대한 연구로는 Kevin Gilmartin, Print Politics: The Press and the Radical Opposition in Early Nineteenth-Century England (Cambridge UP, 1996) 195-226 참조. 헌트의 저널리즘이 당대 문화 공공영역에서 가졌던 역사적 의미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육은정, 「코크니 시 학파 논쟁 재연(再煙)」 (2016) 참조.   

[6] 하버마스의 공공영역 이론에 대한 기본 개념과 논쟁점에 관한 연구로는 Craig Calhoun, ed. Habermas and the Public Sphere (MIT Press, 1996) 1-48 참조.

[7] 예를 들어, 헌트 서클에서 대표적인 진보 문필가로 활동했던 헌트와 해즐릿은 생계를 글쓰기에 완전히 의존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에 대한 사적인 공격으로 그들 작품의 판매를 방해하고 있던 토리 비평가들에 대해 상당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따라서, 헌트 서클과 토리 비평가 간의 대립은 정치적 이견에 의한 논쟁일 뿐만 아니라, 당대 중하층 작가들의 생계 수단을 둘러싼 투쟁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8] 해즐릿이 동시대 토리 계열 저널인 『쿼털리 리뷰』(the Quarterly)와 『블랙우드 매거진』(the Blackwood’s)에 보인 적대감과 이어진 논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보려면 Duncan Wu, William Hazlitt: The First Modern Man (Oxford UP, 2008) 244-248 참조.

[9] 키츠의 코크니 문체를 둘러싼 당대의 논쟁과 이 문체가 가진 정치적 함의에 관한 연구로는 William Keach, “Cockney Couplets: Keats and the Politics of Style,” Studies in Romanticism 25 (1986) 참조.

[10] 존 깁슨 록하트(John Gibson Lockhart)는 『블랙우드 매거진』(the Blackwood’s)에 실린 『엔디미온』에 대한 비평 말미에서 키츠의 원래 직업인 약제사를 다음과 같이 조롱조로 언급한다. “굶주린 시인이 되는 것보다 굶주린 약제사가 되는 것이 더 좋고 현명한 일이다. 그러니까, 존 키츠 군, 다시 약품점으로 돌아가게나. 붕대, 알약, 연고 상자가 있는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란 말이네. 하지만, 젊은 돌팔이여, 제발 진통제와 수면제를 약 처방에서는 자네가 시 쓸 때 썼던 것보다 좀 아껴주길 바라네”(In the ending part of the review on Endymion, Lockhart directly mentions Keats’s original job, apothecary. He says, “It is a better and a wiser thing to be a starved apothecary than a starved poet; so back to the shop Mr John, back to ‘plasters, pills, and ointment boxes,’ &c. But for Heaven’s sake, young Sangrado, be a little more sparing of extenuatives and soporifics in your practice than you have been in your poetry, Matthews 109-10).

[11] 예를 들어, 키츠가 『성 아그네스의 전야』(The Eve of St. Agnes)의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포피로(Porphyro)와 매들린(Madeline)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 대해 우드하우스와 테일러에게 상의하며 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에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모두 이 작품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드하우스가 1819년 9월 19일 자로 테일러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부분을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은 키츠가 이 작품은 남자를 위해 쓰여진 시이기 때문에, 고상한 여성 독자들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전한다(2: 163). 이 소식을 들은 테일러는 잠재적 독자들을 대하는 키츠의 잘못된 태도를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키츠가 저지르고 있는 이 어리석음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어리석음이오. 그는 세간에서 나오는 비판을 차분히 참아내질 못하기 때문에, 이후에 나올 본인이나 작품에 대한 칭찬을 결코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오. 『엔디미온』이 출간되었을 때에도 그는 이렇게 행동했었고, 나중에 이에 대해 그 누구보다 후회했었소. 하지만 그는 또다시 세간의 비판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려고 하고 있고, 이렇게 된다면, 그는 또다시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좌절하게 될 것이오. 내 동업자인 헤시(Hessey)와 마찬가지로 나는 남자들만 읽는 어떤 작품의 출간도 허용할 수가 없소”(This Folly of Keats is the most stupid piece of Folly I can conceive.—He does not bear the ill opinion of the World calmly, & yet he will not allow it to form a good Opinion of him & his Writings. He repented of this Conduct when Endymion was published as much as a Man can repent . . . Yet he will again challenge the same Neglect or Censure, & again (I pledge my Discernment on it) be vexed at the Reception he has prepared for himself. . . . I will not be accessary (I can answer also for H. [Hessey] I think) towards publishing any thing which can only be read by Men, 2: 182). 이상의 진술들이 드러내듯이, 키츠와 출판업자들은 향후 대중의 반응에 대한 깊은 관심과 우려를 보였으며, 이점이 작품 집필 과정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미문학연구

Journal of English Studies in Korea

46 (2024): 24-144

http://doi.org/10.46562/jesk.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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