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6호] [연작기획] 쪽방촌, 열린 공동체의 무게 / 조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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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영

 ‘사회적 고통’, 인정 이후

최근에 한국방송(KBS)에서 제작한 시사 프로그램 두 편을 봤다. 하나는 「시사기획 창」(이하 「창」)의 ‘쪽방촌 계급사회’(2021. 12. 26)이고, 다른 하나는 「동네 한 바퀴」(이하 「동네」)의 ‘동자동 쪽방촌 동행 프로젝트’(2023. 11. 18)다. 두 편 모두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역으로 알려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일상을 담았다. 그런데 한 지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풍경은 사뭇 대조적이다. 

「창」은 쪽방의 비참을 클로즈업한다. 장판을 활보하는 바퀴벌레, 창틀에 낀 담배꽁초, 김칫국물이 들러붙은 온수매트 조절기, 곰팡이 핀 벽에 걸린 누런 마스크, 머리에 박힌 철심, 초점을 잃은 두 눈, 새까만 발톱……. 내레이션 대신 불편한 소리들이 불편한 풍경 위로 흐른다. 욕설, 구토, 쪽방 복도의 지린내, 독백 같은 일기예보 방송까지. 가난한 주민들은 서로가 징그럽다. 라면 한 상자를 받겠다고 긴 줄을 선 주민들을 향해 술에 취한 남성이 고성을 내지른다. “여기가 거지 동네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겠다.” “동네 창피하잖아. 왜 줄을 서냐고!”

반면 「동네」에서 쪽방촌은 정(情)이다. 씨름선수 출신의 방송인이 좁은 골목길을 오르는 동안 다정한 음악과 함께 내레이션이 흐른다. “빌딩 숲 그늘에 가려진 서울에서 가장 큰 쪽방촌, 다세대 주택을 쪼개서 만든 단칸방 1200여 개, 그곳에 소외된 이웃 900여 명이 살고 계신답니다.” 전원 드라마처럼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쪽방 주민들이 그를 보고 환대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런 데를 다 오셨네.” “이런 데라뇨. 사람 사는 데 격식이 따로 있습니까.” 그와 주민들은 서울시가 ‘약자와의 동행’ 사업으로 조성한 ‘동행식당’ ‘온기창고’(푸드뱅크), 목욕탕을 차례로 방문한다. 골목마다 식당마다 정이 넘친다. 방송은 내레이션과 함께 서울역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지팡이를 짚은 두 노인을 부축하며 계단을 오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 손 내밀고 어깨를 쓸며 함께 걷는 따뜻한 발맞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 아름다운 동행을 늘 함께하겠습니다.”

상반된 표상은 상반된 반응을 낳았다. 「창」을 본 시청자는 씁쓸함, 짠함, 기막힘, 두려움을 토로했다. 반면 「동네」를 본 시청자는 이웃과 골목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불러냈다.1) 전자는 인간의 실종을 고발하는데, 후자는 인간의 복원을 예찬했다. 동자동의 상근 활동가는 두 편 모두에 속상함을 내비쳤다. 「창」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민도 많은데 어두운 면만 보여줬다며, 「동네」는 동자동이 서울시 홍보에 이용됐다며 착잡해했다. 1)

[그림1] 「창」의 한 장면(방송 화면 캡처)
그림2] 「동네」의 한 장면(방송 화면 캡처)

어떤 방송이 쪽방촌에 대한 더 적절한 재현인가를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과 상관이 없다. 지난 5년 동안 동자동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내 기억에 비추어보자면,2) 쪽방촌의 비참도, 온기도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쪽방촌의 무수한 표상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야단법석이 ‘사회적 고통’에 관하여 어떤 쟁점을 던지는가다. 우리가 재현 방식에 동의하든 아니든, 쪽방촌이 시사 고발의 현장, 정부 복지사업의 무대가 되고 방송작업을 거쳐 대중에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쪽방 주민의 빈곤이 ‘사회적’ 고통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회’는 현대사에서 가장 범람하면서도 가장 오리무중인 용어 중 하나가 됐으나, ‘사회적’이라는 표현에는 확실히 개인의 책임으로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 ‘의무’(obligation)의 감각이 들러붙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 이러한 의무는 자연히 생기는 게 아니다. 반세기 전, 가난에 떠밀려 광주 무등산에 움막집을 짓고 살던 박흥숙이 마구잡이로 불을 지르며 무허가 주택을 부수던 철거반원들을 살해하고 체포됐을 때, 언론은 그를 ‘괴물’로 표상하며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칭을 지어줬다.4) 박흥숙의 가난이 ‘무등산 타잔의 엽기적 행각’에서 ‘도시빈민의 사회적 고통’으로 새롭게 번역되는 일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 도시빈민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듯 끈질긴 정치적 저항의 결과였다.5)

하지만 전술한 두 방송과 이를 둘러싼 공론장은 빈곤이 ‘사회적’ 고통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른다는 우려에 불을 지핀다. 빈곤이라는 사회적 고통에 대해 누가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니 애초에 합의란 게 불가능하다면, 책임과 의무를 환기하며 펼쳐지는 무수한 움직임은 고통이라는 실존적 상태와 과정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예컨대 도시빈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유도하는 방송이 대중의 공포를 부추기고 “열심히 살아서 절대 저들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유발한다면, 쪽방촌도 사람 사는 동네라고 이야기하는 방송이 쪽방 주민을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못 박고 국가의 빈민 통치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에 따른 후과(後果)는 누가 어떻게 짊어지는가? 사회적 고통이 “정치적·경제적·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비롯된다는 의료윤리학자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의 설명은—이제는 의문과 쟁론이 대상이 된—사회와 자연의 이분법을 토대로 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하지만, “이(사회적 고통)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들 권력이 대응하는 방식은 또다시 사회적 고통을 야기한다”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통의 실존적 과정은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성이나 기술에 의해 변질”되고, 사회적 고통을 위한 시장에서 희생자는 종종 볼거리로 상품화되며, 정부 정책과 제도는 고통을 측정 가능한 속성으로 분리하면서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6)

이 글은 사회적 고통의 연쇄, 다시 말해 고통에 대한 개입이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하는 과정을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살핀다. 특히 나는 주민운동 조직이 ‘공동체’를 지향하며 고통의 연쇄에 저항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집합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라는 불/가능성을 주어로 형성되는 열린 배치(assemblage)라는 점이다.7) 공동의 가치・윤리・실천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대응은 빈곤을 사회적 문제로 쟁점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에 짓눌리지 않는 역능(力能)을 키우는 과정이 된다. 하지만 공동체의 ‘열림’에 노출된 주민들이 다양한 존재자들과 마주치고 개입하고 연루되는 과정은 방향을 예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긴장을 낳는다. 가난한 사람들・지역・공동체 모두 다양한 존재자들과 ‘더불어’ 그 자신이 되어간다는 점, 사회적 고통은 이 잠정적이고 유동적인 배치 속에서 거듭 출현한다는 점, 모두가 연루된 이 배치에서 연구자를 위한 별도의 비상구는 없다는 점이 이 글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다. 쪽방촌 주민조직에 관한 소개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기로 하자.

쪽방촌의 주민 공동체

언론에서 통용되는 쪽방‘촌’이라는 표현은 지역의 상대적 고립성을 전제한다. 서울역 맞은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쪽방 건물들은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있어 바깥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8) 하지만 0.5~2평 방에 갇혀 사는 사람들한테 집과 지역이란 행정적·물리적 경계를 넘어 골목, 공원, 남산, 서울역으로 계속 확장된다. 특히 서울역과 부근의 광장, 거리, 지하철역은 쪽방 주민 개개인의 생애 궤적에 단단히 착근되어 있는 장소다. 내가 들어온 주민들의 이야기로 보든, 쪽방에 관한 그간의 연구와 구술작업으로 보든, 쪽방 주민 다수의 주거 경험은 (병원, 소년원, 감옥, 부랑인 수용소 등 시설에) 갇힘, (살던 곳에서) 내쫓김, (거리로) 내몰림, (중국집, 사업장 기숙사, 교회, 쉼터, 고시원, 여인숙, 공공화장실 등에서) 잠시 머묾의 반복이었다.9) 이동 과정에서 숱하게 지나쳤던 곳도, 한때 노숙했던 곳도, 좁은 쪽방에서 벗어나 안면 튼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일 곳도, 쪽방에서 밀려나면 되돌아가야 할 곳도 서울역이다.

구획된 영토가 아닌 열린 네트워크로서 동자동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도시빈곤 문제에 관심 있는 활동가들도 유입시켜왔다. 주민조직인 ‘동자동사랑방’(이하 사랑방)은 활동가 엄병천이 2007년 쪽방촌에 오면서 시작됐다.10) 2000년까지 충북 제천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해 트럭 운전, 사회복지, 노동운동을 거친 엄 씨는 쪽방에 살며 가난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제 한 몸 가누기 힘든 사람들이다 보니 시체에서 냄새가 나야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인11) 동네에서 뜻을 같이한 동료들과 함께 주민들의 이사와 도배를 돕고, 병원에 동행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밟고, 쪽방신문을 발행하고, 강제퇴거를 저지했다. 엄 씨는 귀향했지만, 사랑방은 이후 견실한 비영리단체로 지역에 뿌리내렸다. “도시 빈곤의 최극단 빈민인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의 인권, 복지를 실현하는 데 가치를 두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목표 아래 조직은 일상적인 지역활동과 다양한 연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주민조직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이하 협동회)는 2011년 공제협동조합으로 시작했다. 주민이 의제를 발굴하고 스스로 조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의 주민운동 역사, 그리고 활동가가 주축이 되어 의제를 정하고 당사자는 물론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는 ‘홈리스행동’의 역사가 서로 부딪히고 조율되면서 형성된 단체다.12)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 운영하는 협동조합은 2023년 12월 말 기준 조합원 310명, 출자금 약 4억 3000만 원의 규모로 성장했다. 언론은 이러한 공제조합에 주목하며 경제적 ‘자립’과 ‘자활’을 강조하지만, 사실 협동회의 활동은 사랑방과 마찬가지로 “의존의 그물망을 함께 새로 짜는”13) 공동체 실천에 무게가 실려 있다. 협동회는 주민들이 “조합원의 저축성을 함양한다”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과 삶의 질을 높인다” “함께 협동하여 스스로를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실천한다”는 정관 아래 조합원을 위한 복지, 교육, 공동경제 사업을 다양하게 수행해왔다.14)

지역 돌봄과 반빈곤 연대의 연결망 

내가 동자동 주민운동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한 것은 2018년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협동회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서였지만, ‘동자동 이야기’는 주민운동 진영에서 익히 들어온 터였다. 한때 도시빈민 밀집지역에 뿌리내렸던 주민운동 단체들이 2000년대 이후 ‘마을’이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정부나 기업과 공생 관계를 맺고, 운동-활동-비즈니스의 모호한 경계에서 제도화된 ‘협치’ 사업을 수행하는 상황에서15) 일방적 지원을 거부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밟아온 동자동 주민조직은 활동가들에게 각별한 현장으로 남았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재편 과정에서 제도화된 자활 공동체가 “빈민들에게 공동체적 가치와 호혜·협동·배려 등을 학습시키고, 때론 강요하는 복지 장의 새로운 게임 규칙”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16) 상호의존의 관계 맺기를 원칙으로 삼고 주민활동가와 상근 활동가가 공동체의 규칙을 함께 정하는 동자동의 풍경은 자못 인상적이다.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존재 방식, 인격과 자존감, 사회적 관계와 연결, 필요와 욕망이 총체적·부분적으로 부정당하는 경험”17)이 거듭 누적된 사람들이 ‘우리’를 상상하고 말하는 순간은 분명 흔치 않은 사건이다. 실천전략으로든 아비투스(habitus)로든 빈자의 숙명주의를 환기하면서, 연구자들은 공동체를 만들 여력이 없거나 공동체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해왔다.18) 이는 빈자의 공동체를 낭만화하는 경향에 대한 합당한 비판이나, “빈곤 레짐(regime)의 규범화된 지식이나 통치 양식을 거스르는 실천”19)이 거창하지 않아도 꾸준히 이어져왔다는 점은 거듭 상기될 필요가 있다. 

사랑방과 협동회의 실천은 무엇보다 지역 돌봄에서 도드라진다. 가족・학교・일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사람들, 가난・질병・장애가 누적되면서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공동체’라는 단어에 감응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의심, 불화, 반목 속에 “유리로 만든 사랑방 대문은 하루가 멀다고 깨졌다”.20) 그럼에도 일상적인 돌봄에서 무연고 장례까지,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는 더디지만 계속됐다. 매년 협동회 총회에서 주민활동가들은 「공동의 약속」21)을 낭독한다. 2019년 ‘동자동 주민지도자 과정’ 당시 이 약속을 처음 만든 쪽방 주민 다수가 이미 지역을 떠났거나 고인이 되었지만, 쪽방촌에서 관계를 맺는 게 얼마나 어렵고도 절박한가를 아는 주민들은 지금도 「공동의 약속」을 선언처럼 되풀이한다.

우리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1) 주민들을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2) 우리 동네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3) 주민의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4) 늘 주민들과 인사하며 같이 놀아주겠습니다.

5) 조합과 사랑방 공간이 주민의 공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6) 주민들을 위해서 방 청소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7) 최고가 되기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8) 다른 단체 지도자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도 배우겠습니다.

9) 주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10) 주민을 만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적 실천은 일본의 도시하층 지역에 관한 인류학 현장연구에서도 곧잘 발견된다. 일용직 노동자나 노숙자 출신의 수급자가 모여 사는 요세바(寄せ場)는 단지 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복지의 거리”가 아니라 여러 사회주체가 연대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실천이 이뤄지는 곳”이다.22) 이곳에서의 사회운동이란 취약한 사람들이 “개인의 기적적 회복”보다 “집합적 생존”을 참을성 있게 추구하는, 각자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없이 더디고 삐거덕거리는 삶의 리듬・속도・방향을 서로 조율해가는 과정에 가깝다.23) 하지만 동자동 쪽방촌은 연대의 확장성이라는 면에서 일본 요세바 주민운동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노숙인 혐오와 복지 수급자 비난이 노골화된 일본에서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요세바 거주자들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게 활동가들의 주요 임무가 되었지만, 동자동의 (주민)활동가들은 지역을 반빈곤 연대의 핵심 현장으로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2023년 협동회를 찾은 방문자만 해도 대학생, 주민운동 훈련생, 국내외 연구자, 다른 지역 쪽방촌 주민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 교회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양하다.

동자동이 연대의 구심이 된 것은 주민조직이 애초에 사회운동과 맞물려 성장했다는 점 외에 물리적 환경의 요인이 크다. 서울의 대표적 반빈곤운동 조직인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는 홈리스와 쪽방 세입자, 거리와 쪽방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서울역과 동자동을 연결하며 활동했고, 동자동 주민조직은 서울역 인근에 공간을 둔 이 단체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동자동이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다양한 운동·교육 단체가 “한국 사회의 빈곤, 주거, 개발을 둘러싼 모순이 응축된 핵심 현장”24)으로 동자동을 ‘순례’하고 학습의 장으로 삼는 것도, 질병과 장애가 있는 동자동 주민활동가들이 용산이나 종로에서 열리는 빈곤·노동·주거·기후 관련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동네의 지리적 위치 덕택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매년 동짓날 밤 서울역에서는 거리와 쪽방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홈리스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작년에도 동자동 주민들은 추모제 기획에 참여했다. “우리 곁을 떠나간 동료들이 가난과 차별 없는 그곳에서 영면하길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한다”는 권리선언문을 함께 낭독했으며, 추모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서울역 앞 지하보도, 서울스퀘어 빌딩,25) 인근 양동 쪽방촌을 거쳐 동자동의 자신들 삶터까지 행진했다. 추석이면 고인이 된 주민들의 영정사진이 놓이고 차례상이 차려지는 동자동 공원 귀퉁이에, 행진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들고 온 촛불로 바닥에 집 모양을 만들었다. ‘고단한 삶이셨습니다’라는 추모 현수막 아래에서 협동회 주민활동가 조 씨가 거리, 쪽방, 고시원에서 외롭게 살다 간 이들을 기리는 추모사를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했다. 정부가 동자동 일대 공공개발을 발표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켤 수 있으며, 씻고 싶을 때 씻고, 이웃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얼마나 바랐는지 회상했다. 발표 후 3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사이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공공개발 추진에 함께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매년 이들의 빈자리는 살아 있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확인시켜주는 듯합니다.”

[그림3] 동자동 공원에서 마무리된 2023년 홈리스 추모문화제(필자 촬영)

요컨대 동자동의 공동체는 협동회·사랑방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쪽방 주민들이 자신의 몸, 말, 글, 행동, 환경을 사회적 고통의 ‘증거’로 등장시키면서 반빈곤 연대의 연결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또한 이러한 연대는 동자동의 주민조직이 열악한 환경을 서로 돌봄을 통해 단순히 견디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주거를 요구하는 부단한 실천을 공동체의 핵심 과제로 삼도록 유도해왔다. 반빈곤운동 단체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나 기자회견을 열면 상근 활동가들은 빈곤을 (최근에는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미등록 쪽방, 장애인 주거권, 정부의 공공임대 축소, 홈리스 인권 침해 등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공식적으로 쟁점화하고, 주민활동가들은 ‘당사자’로서 고통의 구체적 서사를 전달하는 식으로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식은땀, 휠체어, 고령과 장애로 비틀거리는 걸음, 마이크를 쥔 채 떨리는 손까지, 쪽방 주민은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하기 전에 이미 응어리를 쏟아냈다. 

품행 심사장이 된 쪽방촌

2023년 동짓날 밤, 쪽방촌의 공원은 애도의 공간이었다. 고단한 삶을 살다 간 망자를 추모하는 촛불들이 거리를 지나 마지막으로 모인 곳이었다. 지역의 열린 배치에 반빈곤운동이 접속되면서 등장한 풍경이다. 하지만 빈곤에 대해 구조적·제도적 개입을 촉구하는 사회운동만 지역과 연결되었을까? 동자동의 지리적 위치와 물리적 환경은 인근의 반빈곤운동 단체들만 유인한 게 아니다. 빈자를 수급자로 획정하면서 이 범주를 중심으로 빈곤에 관한 진리를 생산・유통・조직해온 정부가 쪽방상담소와 같은 위탁기관을 매개로 일상적 통치를 수행하는 곳이 동자동이다. 또한 다양한 열망 아래 빈곤의 재현에 뛰어든 기자・방송인・연구자는 물론, 쪽방을 자선・봉사・인정의 현장으로 삼는 정치인・기업인・교인・일반 시민이 꾸준히 드나드는 장소가 동자동이다. 당사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여기서 빈곤은 단순히 부(富)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품행의 심사장”으로26) 등장한다.

26)앞서 소개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보자. 공원을 배경으로 한 「창」의 두 시퀀스는 애도의 풍경과 거리가 멀다. 막걸리병, 사발면, 종이컵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자리 한편에 침낭이 놓여 있다. 술이 깬 남성이 침낭 지퍼를 올려 비죽 내미는 얼굴 위로 빗방울이 흐른다. 얼굴은 흐리게 처리되었다지만 제작진은 그한테 촬영 동의를 구했을까? ‘비참’은 언론이 동자동을 재현할 때 가장 도드라진 전형이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동자동’과 ‘쪽방’ 키워드로 일간지를 검색하면27)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주민들’이다. 이 단어가 무엇을 지시하는가는 기사 헤드라인만 몇 개 나열해도 쉽게 감지된다.

「쪽방 사람들…3000여 명이 ‘1평 살이’」(『동아일보』, 2002년 11월 3일), 「3.3㎡에 갇힌 ‘고단한 황혼’ “잘 팔리는 건 소주 하나뿐”」(『중앙일보』, 2008년 9월 10일), 「35도 찜통 속 병든 노인들…“수면제 3알 먹어도 잠 안 와”」(『한겨레』, 2012년 7월 30일), 「닷새째 미세먼지 지옥, 쪽방촌 주민 “경보도 안 와”」(『머니투데이』, 2019년 3월 5일), 「“화장실도 수도도 같이 쓰는데 누구 하나 기침이라도 하면…”」(『해럴드경제』, 2020년 12월 3일), 「동자동 블루스 “하룻밤이라도 쥐 없는 데서 자고, 거기서 죽고 싶어”」(『한겨레』, 2022년 6월 11일), 「“고추장에 밥, 한 끼만 먹는다” 고물가마저 덮친 쪽방촌 3중고」(『중앙일보』, 2022년 7월 15일), 「‘얼음 계단’ 오르내리는 오싹한 쪽방촌」(『한국일보』, 2023년 1월 28일)……

물리적 환경에 따른 비참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장소는 “생물학적·기후적·경제적·정치적 힘들이 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배치로서28) 쪽방 주민의 몸이다. 줄 서는 몸들은 「창」이 공원을 담는 또 다른 시퀀스다. 물품을 받기 위해 일렬로 늘어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봉사자의 통제에 따르는 일은 “행정 대상에게 특정한 덕목을 갖추고 규율에 따르도록 요구함으로써 순응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효과를 발생시킨다”.29) 이런 해석을 거치지 않아도, 주민들 스스로가 훈육에 따른 사회적 고통을 정동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주민의 고성을 떠올려보자. “동네 창피하잖아. 왜 줄을 서냐고!”

줄서기는 쪽방촌에 들어오는 후원이 그만큼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자동’과 ‘쪽방’으로 기사를 검색했을 때 ‘주민들’ 다음으로 빈도수가 높은 단어는 ‘동자희망나눔센터’와 ‘KT’다. KT는 2014년 지역에 쪽방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제공하고, 대대적인 기사화로 평판자본을 획득했다. KT 봉사단은 공원에 ‘희망의 무지개’ 벽화를 그리고,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 바로 그 장소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대기업은 기자를 대동한 채 봉사·후원 활동을 벌이니 기사량도 단연 압도적이다. KT가 만든 센터에서 쪽방 주민이 만든 양말 인형은 야구장의 캐릭터 상품이 됐고,30) 주민들은 “외롭고 힘든 쪽방촌 생활에서 삼성은 정말 고맙고 소중한 손님”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31) 기업 임직원만 쪽방을 찾을까. 언론사는 인턴이나 신참 기자를 테스트하듯 동자동에 남겨두고, 정치인들은 정당의 화합을 도모하겠다며 동자동에 와서 앞치마를 두르고, 목회자들은 물적·영적 빈곤의 구원자를 자처하며 교회를 세우고 사역에 나선다. 최저생계비로 사는 체험을 자처하는 정치인도, 산타 복장의 합창단도, 유명 가수의 팬클럽도, 용산의 미군부대도 쪽방촌을 찾는다. 서울시 위탁으로 운영되는 쪽방상담소는 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일만 해도 벅차다.

선물은 주민들을 줄 세운 채 일방적으로 제공된다. 물품을 받은 쪽방 주민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데, 증여 의례를 인증샷으로 남긴 데 대해 주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물품 제공자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여기 살면서 수없이 카메라에 찍혔는데 아무도 사진을 안 줘.” 한 쪽방 주민이 내게 했던 말이다. 물품을 받기만 하고 감사 표시를 하지 않는 주민, “제 것인 양” 성급하게 물품을 챙겨 가는 주민한테는 “저러니……”로 시작하는 낙인이 돌아온다. 

전술한 방송 프로그램 「동네」에 소개된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 사업도 “호혜적 보답의 불가능성”32)을 기반으로 하고, 동시에 이를 강화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쪽방 주민들이 근처 식당에서 하루 8000원 상당의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한 ‘동행식당’, 적립된 포인트 한도 내에서 본인이 필요한 후원물품을 고르도록 한 ‘온기창고’ 모두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미 ‘약자’로 위치 지워진 주민은 정부의 관대함에 고마워하며 시스템에 복종하는 것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 시스템에 설계된 대로 소비하지 않는 주민은 “이 동네 사람들 스스로가 ‘입이 청와대’라고 말한다” “서울시에서 식권을 주는데, 그걸 모아서 고급 요리도 시켜 먹는다”라며 입방아에 오르내린다.33) ‘온기창고’를 홍보하는 쪽방상담소 실장이 “(주민들이) 여기에 오는 후원물품들이 ‘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요한 물건을 마트에서 산다는 개념보다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더 필요할 것 같다”라고 인터뷰할 때,34) 그는 설계된 시스템의 중간관리자로서 권리 없는 복지를 대리하고, 그 복지에 길든 자를 심판하는 역설을 충실히 반복할 뿐이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가 선물・은총・체험의 무대로, 품행의 심사장으로 등장하는 현실은 20여 년 전 내가 가난과 복지의 관계에 관해 현장연구를 수행한 관악구 난곡에서도,35) 지금의 동자동에서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 구별되는 바가 있다면, 자선활동은 이제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평사원, 팬클럽 회원, 대학생 등 다양한 시민이 대중적으로 참여하는 의례가 됐다는 점이다. 자선을 통해 “윤리자본”(ethical capital)을 확보하는 일이 시민의 지위를 주장하고 덕성을 배양하는 통로가 될 때, 자선의 수령인은 윤리적 시민들의 일방적 돌봄 대상이자 “신자유주의 연대의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남을 뿐이다.36)

주민 공동체의 위태로운 배치

윤리적 시민의 도덕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품행 심사장으로 남은 쪽방촌의 풍경은 지역의 열린 배치가 반빈곤 연대만 촉진한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원하든 아니든, 이들은 빈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해석하는 무수한 행위자들과 마주치고 뒤얽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민조직의 활동가들이라고 예외일까?

앞서 소개한 두 방송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보자. 「창」에서는 ‘쪽방촌 반장’ 김 씨가 등장한다. 그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 피디를 쪽방촌 여기저기로 안내하면서 주민들과 제작진을 매개한다. 만나는 주민에게 안부를 묻고, 약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고, 싸움 붙은 주민들을 떼어놓는 그의 모든 움직임을 카메라가 좇는다. 비 오는 날 공원에서 자는 남성을 보며 피디는 안절부절못하는데 김 씨는 술 깨면 일어날 거라며 오히려 덤덤하게 반응한다. “겨울 날씨 같으면 죽는데 괜찮아.”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촬영이 있던 시기에 김 씨는 협동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주민활동가였다. 어버이날, 추석 행사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그가 화면 안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힘들게 산다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면서 재현의 위험을 직접 강조했던 그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주민을 달래며 피디에게 말한다. “어마어마해요. 우리 주민들…… 이건 약과야.” 

「동네」에서는 주민활동가로 활약하는 주민들이 아예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골목에 모여 있다가 방송인을 맞이하고, 그에게 열악해도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네의 형편을 전하고, 서울시 사업인 ‘동행식당’과 ‘온기창고’를 친절히 소개한다. 주민들은 방송인을 데리고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한식부페를 찾는다. “보통 점심은 복지관에서 주잖아요. 배식의 개념으로 복지 차원에서 하는 건데 여기는 (각자) 카드가 있어서…….” 방송인의 얘기에 마주한 채 숟가락을 뜨던 박 씨가 즐겁게 맞장구를 친다. “사 먹는 기분이 들어요. 내 돈으로.” 화면 속 박 씨는 반빈곤 집회에서 빈번하게 만나온 그 박 씨와 동일 인물일까?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기 위해 세종시 국토교통부까지 찾아가고, 공공개발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력히 규탄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박 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조직은 서울시와 악연이 깊다. 2009년 사랑방은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려고 서울시에 관련 서류를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서울시는 단체의 설립 목적 중 ‘주민 인권 상담’ ‘주민들과 노숙인의 인권 및 복지 실현’ 등의 대목을 문제 삼으며 ‘인권 활동’을 빼지 않으면 서류를 접수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37) 현재 공공주택사업의 지구 지정이 무기한 보류된 상황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이 쪽방을 벗어나 헌법이 보장하는 주거의 권리를 되찾을 실질적인 방안은 외면하고, 거꾸로 이들을 푸드마켓・식당・목욕탕 등 국가가 제공하는 임시 보호에 만족할 줄 아는 ‘약자’로 호명하는 행태를 비난하며 (정부의 사업 발표 이후 지난 3년간) 집회・기자회견・1인 시위가 끈질기게 이어졌다. 박 씨도, 「동네」에 등장한 다른 주민들도 늘 그 자리를 지켰다.

빈곤에 대한 미봉책과 구조적 개입, 가난한 사람을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보는 관점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시민으로 보는 관점과 같이, 나나 주민조직의 상근 활동가, 반빈곤 활동가들에게 익숙한 분류체계가 실제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주민활동가들에게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적이 있다. 작년 말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가 시민단체인 인권연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권책’에 뽑혀 수상식을 가졌을 때다.38) 이 책의 토대가 된 현장연구에 큰 도움을 준 사랑방과 협동회의 상근 활동가, 주민활동가들이 수상을 축하하러 인권연대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수상식이 끝나고 인근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가졌을 때 주민활동가들은 나와 학생들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건넸다. 직접 캘리그래피로 작업한 머그컵과 손수건이었다. 나와 학생들은 연신 고마워하는데 상근 활동가는 머쓱한 표정으로 귀퉁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서울역쪽방상담소’ 로고였다. 외환위기 이후 노숙과 쪽방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면서 서울시는 2000년대 초반 이후 다섯 곳에 시립 쪽방상담소를 설치하고,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초생활・행정・의료・자활·자립 등의 업무를 지원해왔다. 민간 재단이 보조금을 받고 운영하는 기관은 정부가 정한 지침에 종속된 채 운영될 수밖에 없다. 사랑방·협동회가 주민이 주체가 되어 주민의 힘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공동의 약속으로 실천해왔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외부에서 온 각종 후원물품의 전달자 역할을 도맡으며 주민들을 줄 세우는 쪽방상담소의 업무수행 방식에 주민조직 상근 활동가들은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39)

하지만 ‘주체’로서의 주민과 ‘대상’으로서의 주민이라는 구분은 쪽방촌에서 삶을 살아가는 주민활동가들에게도 명징하게 남아 있을까? 행위자가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라면, 분할할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여러 인간・사물・담론・제도 등이 새로운 동맹을 만들면서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배치를 만든 결과라면,40) 동자동이 최후의 거처가 된 주민활동가의 배치는 쪽방촌 바깥에 집과 가족이 있는 상근 활동가의 배치와 다르고, 주민조직의 손님으로 동자동을 이따금 드나들 뿐인 나의 배치와는 더더욱 다를 테다. 2023년 6월 영면한 협동회 이사장 김○○ 씨의 생애 이력을 보자.41)

(…)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는 다니지 않음. 시금치, 마늘, 상추 같은 농작물을 캐다가 매일 먼 산길 걸어 팔러 다님. 14살에 처음 배를 타서 30년이 좀 안 되는 세월 사이에 장어 통밭배를 시작으로 야끼다마 통통배, 대구리 배, 원양 트롤리, 잡화선, 냉장운반선, 케미컬 탱크선, 폐기물운반선 등 다양한 배를 탔음. (…) 뱃생활을 그만두고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특히 심장이 너무 안 좋아져 일다운 일을 할 수 없게 됨. 그래서 종이와 박스를 주워 살았는데 폐결핵을 앓음. 완치 후 술을 다시 먹고 나태한 생활을 하다 천안에서 노숙 생활을 함. 좀 더 살고 싶은 생각에 서울 ××(중독치료센터)에서 생활을 함.

김 씨처럼 가족・학교・일터와의 연결이 일찌감치 끊기고 어긋난 사람들이 거리・농촌・바다・염전・간이 숙사・요양병원・중독치료센터・교회・쉼터・감옥・여인숙・고시원・서울역・다른 쪽방 등을 전전하다 모여든 곳에 정부・기업・교회・시민단체의 지원이 모이고, 이 지원의 네트워크에 저 자신을 가까스로 연결해낸 사람들이 다시 동자동에 모였다. 이들은 때로 열악한 쪽방촌에서 사는 게 “익숙하다”고 말한다. 약간의 지원을 제공하고 ‘자립’을 요구하는 자들에겐 빈자의 ‘의존적’ 품행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말일 테고, 쪽방촌에 집중된 각종 지원과 후원의 연결망이 빈곤 탈출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는 자들에겐 불온한 서사일 테다. 하지만 주민들이 말하는 익숙함이란—내가 동자동 인근 양동 주민들의 구술 생애사에 관한 서평에 썼듯—“기회와 자원을 힘겹게, 가까스로 연결해낸 결과이자 성취”이기도 하다.42) 국가가 집합적 사회보장 대신 가족 중심의 생존전략을 제도적으로 유도해온, 가족 바깥에서 자기 삶을 지지해줄 안전망이 지극히 취약한 한국사회에서43) 일찌감치 버려진 자들이 서울로, 교회로, 급식소로 부단히 이동하면서 듬성듬성 꿰맞춘 의존의 조각보. 이 ‘성취’가, 성긴 패치가 답답한 미궁처럼 보인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배치의 변화 가능성이다. 모이고, 고이고, 익숙해지기만 한 게 가난은 아니다. 김 씨가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다 동자동에 들어오고, 추석 마을행사 때 주민노래자랑에 참여하면서 협동회와 인연을 맺고 주민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 쪽방의 ‘익숙함’ 대신 물리적·사회적 고통을 환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주거권을 요구하는 과정은 ‘그’라는 배치가 새로운 마주침을 통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김 씨와 같은 주민활동가들은 여러 의례를 통해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의 의의와 방법, 태도를 학습해왔다. 협동회 이사진으로 활동하는 주민들은 조직 설립에 직접 관여한 한국주민운동교육원으로부터 ‘주민지도자 훈련’을 받는다.44) 평소 이들은 회의를 통해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나누고 사안을 결정한다. 특히 어버이날 행사, 추석 행사처럼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잔치를 준비할 때는 결정할 목록이 한둘이 아니다. 주민센터에 신고하고, 과일・떡・전・머리고기・음료수 등 음식을 장만하고, 버너・그릇・일회용품 상태를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행사 진행을 도와줄 학생들에게 연락하는 일을 누가 어떻게 맡을지 모두 회의를 거쳐 결정하고 쉬운 언어로 기록을 남긴다. 이러한 의례는 문해력에 취약하고 사회성을 가정, 학교, 일터에서 익힌 적이 드문 주민들에게 상당한 도전이다. 마찰과 갈등은 필연적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친구, 동지가 생겼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두 번째 고려는 배치의 변화가 언제나 부분적이며, 기존의 연결들과 중첩되면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소중해도, 주민 공동체라는 사건은 ‘그’라는 배치의 한 부분으로 남을 뿐이다. 동자동에서 주민활동가들은 사랑방과 협동회 활동 외에도 여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인연을 맺었던 교회에 다니고, 자신을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준 봉사자에게 의지하고, 쪽방상담소의 다양한 편의시설을 이용하고,45) 심리상담・음악・서예 등 쪽방상담소에서 개설하는 강좌에 참여하기도 한다. 더욱이 (「창」에 등장한 김 씨처럼) 공동체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소통 역량을 쌓은 주민활동가들은 지역을 찾는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매력적인 대화자가 된다. 이들은 쪽방에 웅크리고 있는 다른 주민들보다 더 자주 사회적 고통의 대변자로 공적인 무대에 초대받는다. 전투적인 반빈곤 활동가만 그를 찾는 게 아니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도 그와 악수를 하고, 기자나 피디도 그의 협조를 바라고, 연구자도 그의 도움을 통해 쪽방의 문턱을 넘고 싶어한다. 유명인과의 독대, 연구자나 학생들한테 건넨 충고, 기자를 향한 일침이 모두 그의 이력을 갱신한다. “긍정적 자기 관계의 가능성이 다른 주체들의 인정에 의존하고” 있다면,46) 살면서 무시・모욕・차별・혐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상대의 격려와 지지를 받는 순간은 제 삶의 역사가 된다. 그 ‘상대’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가령 빈곤을 전시행정의 언어로 남용하는 자인지, 다른 세상을 열어젖히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자인지가 그 순간에 던질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닐 테다.

하지만 분배 정의와 무관한 인정의 거래는 분명 주민 공동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열린’ 공동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재현권력의 구미에 맞게 등장하기 일쑤이고, 자신들을 심판하고 평가하는 규율권력에 포섭되기 쉬운 위계적 상태에 놓여 있다. IMF 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20년 넘게 동자동에서 사는 정 씨는 전직 화가다. 몸도 마음도 나락에 떨어졌다가 다시 붓을 든 그는 주민조직의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쪽방촌 화가”라는 수사로, 알코올중독과 다리 절단의 후유증을 딛고 재기한 ‘모범적 약자’로 곧잘 등장한다. 서울시장 집무실에 걸린 ‘마음을 모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글귀가 정 씨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회자되지만,47) 정작 서울시는 그가 휠체어를 끌며 치열하게 싸워온 쪽방촌 공공개발 문제에 대해 지극히 미온적이다. 또한 ‘무대’로 호명된 사람들은 알아서 규율을 실천하고 권장하는 방식으로 재현권력에 응대하기도 한다. 공원에서 진행되는 마을행사에 술 취한 주민이 목소리를 높이면, 주민활동가들은 눈치를 살피며 집에 가라고 다독이고, 봉사하러 온 학생들한테 “못 배운 걸 이해해달라”며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이런 행사에서 간혹 나를 “아가씨”라 부르고 여학생들을 뚫어지게 보는 주민을 발견하면 나 역시 난감해진다. 하지만 나이테를 두른 빈곤의 시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불쾌함을 즉시 공론화하는 게 연구자인 나의 임무일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자들은 쪽방촌 바깥에도, 대학에도 우글거리는데, 비하나 혐오는 식자들 사이에서 더욱 은밀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범람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만 품행의 심사장에 등장시켜야 하나? 말과 행동이, 앞말과 뒷말이 다른 건 쪽방의 그나 바깥의 나나 마찬가지인데 왜 그의 품행만 재현권력, 규율권력에 까발려져야 하나? 상층계급은 인류학자의 진입을 애초에 거부하거나 효율적으로 통제하는데, 왜 하층계급만 과거의 ‘원주민’을 대체하는 인류학적 ‘타자’로서48) 집요한 관찰 대상이 되어야 하나? 계급 지형도에서 재현의 비대칭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인류학자는 무엇을, 어디까지 써야 하는가? 빈자에 관한 시시콜콜한 에스노그래피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정당한 응답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낙인인가?

사회적 고통의 연쇄를 끊는 시도들 

이 글은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그 ‘열림’ 때문에 마주하게 된 가능성과 딜레마에 주목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역도, 이들 일부가 ‘우리’를 선언하며 만들어가는 공동체도 빈곤에 관한 인식과 감각, 규범과 프레임에 휘말리면서 등장한다. 공동체의 열림은 행위의 목록을 늘린다. “타자의 행위이건 자신의 행위이건, 행위가 있는 곳에 놀람이 있다. 그것은 행위가 기본적으로 타자와의 연합이며, 타자의 변형이자 번역이며, 이를 통한 차이의 생성이기 때문이다. (…) 놀람의 요소가 사회에 도입될 때, 사회는 정태적 질서가 아니라 새로움이 시끌벅적하게 만들어지는 불확실성의 공간이 된다.”49) 강조해야 할 것은, 빈민지역에서 이 불확실성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공동체의 열림은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빈곤은 물질적 결핍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핍에 대응하는 온갖 ‘사회적’ 개입이 가난한 사람들의 살아 있는 몸을 해부용 시체처럼 전면적인 진단, 해석, 평가의 대상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통칭한다. 이 과정이 빈자가 외부의 개입을 단순히 감수(甘受)하기보다 (주민활동가들의 사례처럼) 인정과 역능을 도모하고 획득하는 가운데 발생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고통에 대한 대응이 또 다른 고통을 낳는 양태는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인정의 들썩임이 낙인의 재생산으로 귀결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데 ‘고통’만큼 적절한 단어도 찾기 어렵다. 

사회적 고통의 연쇄에서 연구자-나는 어디에 있을까? 빈곤통치의 권력 효과를 분석하면서, 한때 나는 정부・기업・교회・시민단체・언론 등 각종 행위자의 개입을 문제시할 뿐, 정작 나 자신은 ‘비판자’로 괄호 치면서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동자동을 드나들면서 내가 새삼 확인한 것은 ‘나’라는 배치의 연루성이다.50) 주민조직은 지역 내의 일상적인 실천으로만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니다. 주민조직과 인연을 맺은 나라는 존재, 나와 동행한 학생들의 존재, 우리의 생산물은 물론, 우리가 연구나 활동 과정에서 사람・인프라・사건・정책・소셜미디어 등과 거듭 얽히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배치 역시 공동체의 일부다. 우리 자신의 작업을 포함해 여러 주체가 공동체를 명명・진단・평가・해석・역사화하는 일련의 과정, 다양한 힘들이 마주치면서 공동체의 가치가 인정・합의・분열・갱신되는 과정, 이를 통해 공동체의 경계가 물리적·제도적·상징적으로 거듭 만들어지는 과정이 곧 ‘동자동’ ‘쪽방촌’이라는 존재론적 드라마가 된다.

나와 학생들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사랑방·협동회 구성원들 역시 ‘열린’ 공동체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동행」이 방영된 후 상근 활동가, 주민활동가들은 방송 촬영 요청에 어떻게 응대할지에 대해 암묵적 원칙을 공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빈자만 품행의 심사장에 계속 노출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피하려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이야말로 공동체의 열림 덕택에 등장했으므로. 다양한 마주침을 전적으로 회피하지 않으면서 존엄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주민의 힘’을 강조하고, ‘주민이 주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의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22년 5월 11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동자동과 인근 쪽방 주민들, 반빈곤운동 단체들이 모여 공공주택 지구 지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을 때다. 당시 ‘빈곤의 인류학’ 수업 수강생들은 연대발언과 노래로 집회에 힘을 보탰으나, 정작 이튿날 협동회 회의에서는 (쪽방 주민이 아닌) 외부자들의 말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이 오갔다. 연대는 중요하나 사안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중심 주체는 ‘우리, 주민’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동자동의 활동가들은 각종 회의나 행사에서 거듭 환기하고 공유하는 식으로 “윤리적 삶”의 토대를 구축해나갔다.51) 2024년 3월 협동회 총회에서 상근 활동가는 지난 추석과 어버이날 행사를 보고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이 두 행사 모두 동자동 주민들이 하는 겁니다. 우리의 돈으로, 우리가 만든 음식으로.” 올해 어버이날 행사에서 주민활동가들은 이러한 결의를 몸소 실천했다. 학생들을 포함한 외부인의 참여를 정중히 사절하고, 행사비 모금부터 마을 잔치까지 쪽방 주민들이 전 일정을 직접 진행했다. 

이런 시도가 이 글에서 논한 사회적 고통의 연쇄를 끊어내고 열린 공동체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 반드시 성공적이진 않을 테다. 하지만 쪽방촌의 주민조직으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다양한 존재자들이 마주치고 개입하고 연루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노력, 가난한 사람들의 숙명처럼 여겨지는 호혜의 위계와 불평등을 집요하게 문제 삼는 태도, 이 과정이 더디고 혼란스러워도 서로 응원하고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움직임이다. 주민조직 사무실을 찾아 상근 활동가나 주민활동가와 얘기를 나누면 다음 달 협동회 소식지 ‘연대/외부’란에 “X월 X일,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문영 교수, 협동회 방문”이라는 기록이 남는다. 다른 방문자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기록일지라도, 나를 긴장시키는 이러한 행위는 쪽방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의례로 느껴진다. 협동회에서 1년의 사업을 결산하는 총회가 열리면 교계와 시민단체의 활동가, 인근 지역 쪽방 주민 대표, 협동회와 비교적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작가나 연구자들이 방청객으로 초대받는다. 주민활동가들의 사회와 보고로 진행되는 총회에서 쪽방 주민 조합원들이 중앙에 모여 앉고 외부 방청객이 귀퉁이 자리에서 회의를 관람하는 공간 배치는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새삼 일깨운다. 연례행사든 송년 모임이든 나와 같은 외부인은 손님으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동자동 식당에서 뒤풀이를 끝내고 나면 주민활동가들은 위로, 나 같은 손님들과 상근 활동가들은 아래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은 쪽방으로, 우리는 집으로 향한다. 열린 공동체에서 상호성(mutuality)의 눈금을 맞추려는 의식적인 노력은 아무리 치열해도 자본의 불평등에 따른 위계를 온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저렴한 노동을 동원해 이윤을 챙기고 화폐가치로 전환되기 어려운 생명을 버리거나 연명 상태로 두면서 작동하는 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숙명이 된다. 빈곤이 ‘사회적 고통’으로 승인받은 후 벌어지는 난장을 쟁점화하는 작업이 자본주의 체제 비판과 조응하면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1) 방송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과 유튜브 댓글을 살폈다.

2) 동자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전문적인 학술연구로 시작되지 않았으며, 반빈곤운동단체와의 교류, 학생들의 현장실습, 쪽방촌 공공개발에 연대하는 활동 등 여러 공공인류학적 매개를 통해 이어졌다. 이 글이 격식을 갖춘 심층 인터뷰보다 일상적인 참여 관찰과 미디어 텍스트 분석에 방점을 둔 배경이기도 하다. 이 글도 마찬가지지만, 동자동에 관한 나의 글쓰기는 대체로 주민조직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진행되고 있다. 장기간의 집중적인 현장연구를 토대로 동자동 쪽방촌의 빈곤을 쟁점화한 에스노그래피는 정택진 「쪽방촌의 사회적 삶: 서울시 동자동 쪽방촌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와 탁장한 「빈곤 감소 개입과 쪽방촌의 만성적 빈곤」(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학위논문, 2024)에서 살필 수 있다. 가난을 ‘쓰는’ 작업의 정치성을 둘러싼 쟁점은 이 글에서도 잠깐 다루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추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3) James Ferguson, Presence and Social Obligation (Chicago: Prickly Paradigm Press, 2021) 50면.

4) 이영진 「‘범죄’의 재구성: 1977년 무등산 철거반원 살해 사건을 둘러싼 물음들」, 『비교문화연구』 20.1 (2014) 14~19면 참조.

5) 한국 도시빈민운동의 간략한 역사는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 1970~1990년대 민중의 마을 만들기』(한울, 2017);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쪽방촌 공공개발과 주거의 미래』(글항아리, 2023) 2장 참조.

6) 아서 클라인먼 「서문: 보다 인간적인, 새로운 방법의 모색을 위하여」, 아서 클라인먼·비나 다스 외 지음, 안종설 옮김 『사회적 고통』(그린비, 2002) 9~13면.

7) 지면의 제약으로 이 글에서 공동체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별로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유기적 통일체’라는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가 무색할 정도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공동체 논의가 차이와 균열, 거리와 여백, 소통과 자유를 환기하는 방향으로 급물살을 탔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열린’ 공동체, ‘느슨한’ 공동체, ‘가벼운’ 공동체, ‘생성 중인’ 공동체와 같은 수사들이 경험 연구에서 수시로 등장하며, ‘무위(無爲)의 공동체’(장 뤽 낭시), ‘도래하는 공동체’(조르조 아감벤), ‘공통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공동체’(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존재론적 코뮌주의’(이진경) 등 동질성에 대한 거부를 명시한 이론들이 다른 현장, 다른 연구에서 거듭 출몰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흐름에 공명하지만, 연구자들이 공동체의 ‘열림’을 전제하거나 주장하면서도 저 자신은 공동체의 ‘바깥’에 남겨두는 경향은 이 글의 비판 대상 중 하나다.

8) 2023년 8월 말 기준 동자동 쪽방은 1244개, 건물은 64동, 쪽방 거주자는 920명이다. 2021년 2월 5일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될 시점에 쪽방 주민 수는 1000명이 넘었다. 당시 정부는 쪽방 주민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소유주들의 공공개발 반대로 지구 지정이 지연되는 사이 주민 사망자가 늘고, 소유주들이 쪽방 주민의 전입신고를 방해하면서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다.

9) 조문영 「생성 중인 공공: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의 배치」, 『비교문화연구』 29.2 (2023) 289면. 쪽방 주민과 홈리스에 관한 구술작업으로는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후마니타스, 2021) 참조. 취약한 삶, 떠도는 삶은 이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나, 특히 젠더화된 위협에 노출된 여성들은 안전한 거처를 찾아 부단히 숨고, 이동해야 한다. 이채윤 「여성 홈리스의 ‘집’ 만들기: 서울역 인근 여성 홈리스의 생존과 돌봄」(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23);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여성 홈리스 이야기』(후마니타스, 2023) 참조.

10) 이 글에서 반빈곤운동 단체는 실명으로, 조직 구성원은 기사를 단순 인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익명으로 등장한다.

11) 이정현 「‘함께!’ 동자동 쪽방신문의 힘」, 『한국일보』(2011년 11월 18일).

12) 자세한 역사는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앞의 책 188~97면 참조.

13) 조문영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글항아리, 2022) 93면.

14) 사랑방과 협동회는 사무실 공간을 함께 쓰면서 일상적인 돌봄, 추석·어버이날 행사, 각종 연대사업까지 대부분의 활동을 함께한다. 각 단체는 상근 활동가 1인과 쪽방촌의 주민활동가들로 구성되는데, 주민활동가 대부분이 두 단체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다. 이 글에서 두 단체를 묶어 쓸 때는 ‘주민조직’으로 통칭할 것이다.

15) 조문영·이승철 「‘사회’의 위기와 ‘사회적인 것’의 범람: 한국과 중국의 ‘사회건설’ 프로젝트에 관한 소고」, 『경제와 사회』 113 (2017); 이승철 「마을 기업가처럼 보기: 도시개발의 공동체적 전환과 공동체의 자본화」, 『한국문화인류학』 53.1 (2020) 
참조.

16) 정수남 「빈민 ‘공동체’와 연대의 탈감정성: ‘자활공동체’의 사례를 중심으로」, 『OUGHTOPIA』 33.3 (2018) 92면.

17)정택진, 앞의 글 211면. 

18)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구별짓기(하):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새물결, 2005) 7장; 정수남, 앞의 글 참조.

19) 조문영, 앞의 책 9면.

20) 문세경 「‘욕받이’도 괜찮다는 이 사람 ‘너무 미화하지 마세요’」, 『오마이뉴스』(2020년 8월 12일).

21) 「동자동 주민지도자 <공동의 약속>」 2024년 3월 14일 협동회 총회 자료집. 

22) 박지환 『일본 도시 하층 지역에서의 공공적 실천』(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4) 29면.

23) Jieun Kim, “Social Exclusion and Care in Underclass Japan: Attunement as Techniques of Belonging,”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 45 (2021) 56면.

24)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앞의 책 8면.

25) 서울스퀘어 건물의 경비보안직원이 서울역 중앙지하도의 홈리스들을 내쫓은 일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빌딩을 방문했다.

26) 조문영, 앞의 책 69면.

27) 빅카인즈(www.bigkinds.or.kr) 검색(2000년 1월 1일~2024년 1월 1일).

28) 스테이시 앨러이모 지음, 윤준·김종갑 옮김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정의』(그린비, 2018) 18면.

29) 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빨간소금, 2021) 176면.

30) 김향미 「야구장에 들어간 ‘쪽방촌 자활의 꿈’」, 『경향신문』(2016년 4월 4일)

31) 정지은 「쪽방촌 주민들, ‘삼성 최고’ 외친 까닭」, 『머니투데이』(2013년 12월 11일). 심사자 한 분은 대기업의 지원이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는 “긍정적 작용”을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며 “균형 잡힌 시선”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윤리경영을 자처하며 사회공헌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해온 기업들이 동시에 독점, 경영권 불법 승계, 분식회계, 불법 파견 등 온갖 방식을 동원해 천문학적 이익을 획득한다는 점을 떠올리자면 “자선을 베풀면 무자비한 이윤추구 행위도 상쇄된다”라는 지젝(Slavoj Žižek)의 비판을 환기하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 옮김 『폭력이란 무엇인가: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난장이, 2011) 52면.

32) Dinah Rajak, In Good Company: An Anatomy of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 178면. 라작(Dinah Rajak)은 호혜의 위계를 통한 통치를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관한 현장연구를 통해 살폈다.

33) 김도엽·하수민 「‘서울 왜 고집하냐고?’… ‘1평’ 쪽방촌 사는 그들의 속사정」, 『머니투데이』(2023년 1월 31일). 인용구는 동자동의 식품 가게 주인이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34) 김세린 「‘오픈런 없는 무료공간’… 쪽방촌 주민 600명 몰려간 ‘온기창고’」, 『한국경제』(2023년 9월 6일).

35) 조문영 「‘가난의 문화’ 만들기: 빈민지역에서 ‘가난’과 ‘복지’의 관계에 대한 연구」(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01) 211면.

36) Andrew Clarke and Cameron Parsell, “Resurgent Charity and the Neoliberalizing Social,” Economy and Society 51.2 (2022) 15, 18면.

37) 「‘인권’에 알레르기 반응 보이는 서울시」 『한겨레』(2009년 10월 19일).

38) 이 책은 2022년 1학기 ‘빈곤의 인류학’ 수업 현장연구의 결과물이다. 학생들과 나는 ‘정부의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 발표는 어떻게 가능했나’ ‘동자동 사업이 마주한 난관은 무엇이며, 어떠한 논의와 개입이 필요한가’라는 두 질문 아래 ‘주거·개발 정책’ ‘반빈곤·주거권 운동’ ‘부동산 문화’ ‘동자동 쪽방촌 커뮤니티’의 네 팀으로 나누어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커뮤니티 팀은 주민조직의 허락을 미리 구하고 주민활동가와 학생 간 ‘상견례’를 가진 뒤 학생들이 주민조직의 회의나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39) 최근 줄서기는 눈에 띄게 줄었는데, 이는 서울시와 쪽방상담소가 주민조직의 오랜 비판을 수용하면서 ‘온기창고’를 마련해 수요맞춤형 물품 지원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40) 홍성욱 「7가지 테제로 이해하는 ANT」,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사물·동맹』(이음, 2010) 23면.

41) 2023년 6월 26일 추모식에서 배포된 고인의 약력 참조.

42) 조문영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 『서울리뷰오브북스』 5 (2022) 83면.

43) 한국 복지 역사에서 가족이 전담한 역할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김도균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 자산기반복지의 형성과 변화』(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Kyung-Sup Chang, South Korea under Compressed Mondernity: Familial Political Economy in Transition (London: Routledge, 2010)을 참조하라.

44) 한국주민운동교육원(코넷)은 1960~90년대 지역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주도했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주민운동 훈련·교육 기관이다. 이에 대한 소개와 비평으로 Mun Young Cho, “Orchestrating Time: The Evolving Landscapes of Grassroots Activism in Neoliberal South Korea,” Senri Ethnological Studies 91 (2015)를 참조하라.

45) 쪽방상담소의 역할과 관련해서 탁장한 「빈곤 비즈니스와 쪽방촌의 주거 빈곤」, 『사회과학연구』 31.2 (2023)를 참조하라.

46)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 옮김 『인정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사월의책, 2011) 64면.

47) 사지원 「문화의 힘으로 다시 선 ‘쪽방촌 화가’」, 『동아일보』(2023년 11월 21일).

48) Joel Robbins, “Beyond the Suffering Subject: Toward an Anthropology of the Good,” Journal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N.S.) 19 (2013) 448면.

49) 김홍중 「21세기 사회이론의 필수통과지점: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 이론」, 『사회와이론』 43 (2022) 43면.

50) 연루란 “‘남이 저지른 범죄에 연관됨’이라는 사전 뜻이 아니라 잇닿고(連), 인연을 맺으며(緣), 묶어내는(累) 감각을 확인하는 일이다”. 김종목 기자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강조한 ‘연루’ 단어에 대해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주었다. 김종목 「‘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브랜드화 아니라 철폐·종식 대상”」, 『경향신문』(2024년 1월 3일).

51) 인류학자 람벡(Michael Lambek)에 따르면, ‘윤리적 삶’(ethical life)이란 “단지 선하거나 옳은 것뿐 아니라, 무엇이 선하고 옳고 의미 있는가를 분별하고 실행하기 위한 상황・조건・수단”을 모두 포괄한다. Michael Lambek, “Ethnography and Ethical Life,” American Ethnologist 51 (2024) 74면.

쪽방촌, 열린 공동체의 무게

│조문영│

* 이 글의 초안은 2024년 2월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공동체문화 연구캠프에서 발표된 바 있다. 단상을 글로 표현할 기회를 주신 안동대 선생님들, 글에 대해 의미 있는 논평을 주신 심사위원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열린 공동체의 위태로움을 감수하면서 연구자의 접촉을 허락하고 환대해주신 동자동 사랑방·협동회의 주민활동가, 상근 활동가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趙文英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근 논문으로 「생성 중인 공공: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의 배치」(2023), “Intersecting Labor in the Social Factory: Trajectory of a Migrant Woman in SouthChina”(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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