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문학 텍스트에서 나타난 감정에 관한 연구는 20세기 말 정동 이론의 등장 이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현재는 문학 및 문화 연구에서 하나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디지털인문학의 등장 이후 도입된 컴퓨터 기반 감정분석은 아직도 상대적으로 생소한 분야다. 201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감정분석은 주로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상품 리뷰와 같이 짧은 글을 대상으로 긍정적/부정적 의견을 판별하고 키워드를 추출하는 단순한 오피니언 마이닝(opinion mining) 수준에 머물렀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이 누적되는 양상을 측정한 넬리스닉(Eric Nalisnick)과 베어드(Henry Baird) 이후 문학 텍스트 속 감정 전개에서 시간적이고 역동적 측면까지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가 뒤따랐다.1) 국내에서는 2019년을 기점으로 문학작품에 대한 감정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2) 이들 연구는 선그래프의 시각화 이외에도 딥러닝・텍스트 마이닝 등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고전문학・희곡・소설에서 나타나는 감정 패턴을 포착했으나, 많은 경우 계량화한 감정의 언어학적 분석에 치중하고 있거나 방법론의 검증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국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엄밀히 따지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의 문학비평 담론과 단절 없이 이루어진 감정분석 연구는 매우 미진한 실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디지털 감정분석이 문학작품 비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기존의 해석을 보완하는 방법론으로서 문학연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디지털 감정분석은 파편화된 형식과 불연속적인 서술로 말미암아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 양상의 추적이 어려운 모더니즘 소설의 텍스트 분석에서 특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모더니즘이 감정적인 것을 억제한다는 통상적인 인식과 달리 지난 10여 년간 학계에서는 텍스트 내에 주어진 삶의 조건과 경험을 인식하는 주요한 지표로서 감정을 모더니즘 문학의 중심에 둔 연구가 진행되어왔다.3) 하지만 모더니즘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논하는 비평가들마저도 모더니즘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이에 조커스(Matthew Jockers)의 수제(Syuzhet) 패키지를 도입해 울프(Virginia Woolf)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 잠재된 감정구조를 찾아내고자 한 엘킨스(Katherine Elkins)와 천(Jon Chun)의 2019년 논문은 전산적 방법론을 모더니즘 연구에 적용한 흔치 않은 사례로서 눈여겨볼 만하다.4) 그들은 멀리서 읽기(distantreading)와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를 혼합한 중거리 읽기(middle reading)를 통해 울프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감정 모델이 하나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서사구조를 반복하는 대신 등장인물들 간 “소통과 의존”을 시사하는 새로운 종류의 분산된 감정구조를 생성하고 있음을 밝혀냈다.5)
이 같은 중거리 읽기라는 학제적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본 연구는 디지털인문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율리시스』(Ulysses)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발현되는 감정구조의 가시성을 높이고, 자세히 읽기를 통해 그 감정구조가 두 모더니즘 서사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근대 도시공간에 어떤 정치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하는지 비교 분석한다. 두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도시의 곳곳을 누비고 다님에 따라 더블린과 경성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소설의 무대로서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감정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서사의 구조를 좌우하는 중요한 물질적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이들 도시가 새로운 문물로 군중을 매혹하면서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아래 그들을 이중으로 소외시키는 공간임을 고려할 때,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정서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곧 민족적 그리고 근대화의 공간으로서 식민도시에 대한 두 텍스트의 인식을 파악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조이스(James Joyce)와 박태원의 모더니즘 소설에서 재현된 도시공간의 식민성과 근대성에 주목하여 두 텍스트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비교문학적 연구가 다수 진행되었다.6) 두 작품의 비교연구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 담론의 복잡한 구조를 드러내고, 20세기 초 아일랜드와 조선에서 식민주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의심하고 재상상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할 수 있게 한다. 이들 논의에서 더블린과 경성은 제국과 식민지의 권력관계가 집약된 공간으로, 등장인물의 산책은 실제 공간을 재구성함으로써 근대자본주의와 식민지 현실을 진단하는 비판적 형식으로서 다루어진다. 이 글은 텍스트의 반제국주의적 측면 또는 조이스가 박태원에 끼친 영향을 주로 강조해온 기존 문학비평과는 노선을 약간 달리하여, 식민지 권력을 향한 욕망과 저항의 무대로서 두 도시공간이 가진 양면성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두 도시를 활보하는 산책자들은 암울한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고자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정체성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비전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온 제국의 문물과 언어의 개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블린과 경성 도처에 산재한 감정의 굴곡은 근대도시에서 식민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식민주체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욕망과 적대감의 대상으로서 제국의 존재를 민족적 현실의 일부로 직면해야 한다는 시대적 역설을 보여준다.
2.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문학 텍스트에서 감정의 흐름이 서사적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수제 패키지의 2020년 버전이 사용되었다. 이 패키지에 기본으로 설치된 어휘사전은 조커스의 네브라스카 문학연구소에서 2015년 구축한 수제 사전으로 총 10748개의 영어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부정값 -1에서 긍정값 1 사이의 범위에서 16단계로 점수가 매겨져 있다. 특정 코퍼스(corpus)를 집어넣으면 수제 사전이 문장 단위로 텍스트의 감정점수를 계산하는데, 이때 각 문장의 감정점수는 해당 문장에 포함된 모든 단어의 긍정값과 중립값(0), 부정값을 더한 값이다. 이렇게 계산된 문장의 감정점수를 서사적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불필요한 극단치를 제거하여 정제된 모양의 그래프를 창출하는 기능은 수제 패키지로 문학 텍스트의 감정분석을 진행하는 데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두 개 이상의 텍스트에서 플롯 유사도를 측정할 때에는 서사 시간을 정규화하여 하나의 그래프 위에 여러 개의 곡선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도 이 패키지의 장점 중 하나다. 복합적 메시지(mixed message) 기능의 경우, 문장 내 상충되는 감정값을 계산해 텍스트에서 관찰되는 상대적 불확실성을 측정하여 역설 등 시적 언어를 포착하지 못하고 이중부정을 탐지하지 못하는 소프트웨어적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해준다.
수제 패키지는 감정곡선을 통해 “서사의 잠재적 구조”7)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관찰자의 직관적 의견에 대한 객관적 평가기준을 제공한다는 강점을 지닌다. 하지만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수치로 변환하면서 수반되는 생략과 추상화 때문에 컴퓨터로 읽어낼 수 있는 감정의 범위와 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소설에서 개인과 집단의 감정을 쉽게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별적 인물의 감정이 일반화되거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율리시스』처럼 감정의 주체가 각각 개인과 집단에 치우친 두 텍스트를 비교할 때 분석 대상에 불균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연구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근대 식민도시가 민족 구성원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단순히 미시적이고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인 경험이며, 이러한 집단적 감정구조는 작가가 의도한 공동체의 서사 구성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이다.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말처럼 만약 “모든 문학이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상징적 사색”8)이라면, 조이스와 박태원의 식민도시에서 주인공과 서술자, 기타 인물들이 각기 양산하는 감정의 차이를 참작하더라도 더블린과 경성의 시민으로서 그들은 각각 같은 시대와 지역의 감정구조를 공유하는 민족적 공동체의 일원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총체적 감정 흐름은 비교적 일관된 형태를 띤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이스와 박태원의 텍스트에서 서술자와 주인공, 기타 인물들이 시대상황과 공동체에 대한 유사한 비전과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주인공과 서술자, 개인과 집단의 감정을 동일선상에 놓고 분석을 진행했으며, 필요에 따라 개별적인 인물의 독자적 감정이나 민족감정 내부에서 충돌하거나 모순되는 감정 등은 자세히 읽기를 통해서 확인했다.
코퍼스로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율리시스』 텍스트 파일과 손수 디지털화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영문번역본을 사용했다.9) 박태원 소설의 경우 수제 패키지에 속한 어휘사전은 아직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 불가피하게 박선영의 2015년 번역본을 채택했다. 추후 어휘사전이 확장되어 한국어 텍스트도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10)
수제 패키지에 포함된 NRC(National Research Council Canada) 사전은 소설의 특정 섹션에서 어떤 종류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지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모하메드(Saif Mohammad)가 개발한 이 사전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구분 이외에도 각 단어를 화(anger), 기대(anticipation), 혐오(disgust), 불안(fear), 기쁨(joy), 슬픔(sadness), 놀라움(surprise), 신뢰(trust)라는 여덟 가지 감정값으로 분류해놓았다. 본 연구에서는 NRC 사전을 이용해 이 여덟 가지 감정이 분석 대상 텍스트에서 어떤 빈도로, 어떤 단어에서 주로 나타나는지를 워드클라우드로 시각화하고 특정 감정으로 분류되는 문장 목록도 추출하여 텍스트 분석에 활용했다.
3. 『율리시스』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감정분석
3.1 『율리시스』의 더블린
“어느 날 더블린이 지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내 책을 통해 재건될 수 있을 만큼 도시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반영하듯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18개의 장을 통해 가장 사적인 공간인 몰리의 침실부터 학교, 신문사, 병원과 같은 공적 장소까지 더블린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고 있다.11) 그의 소설에서 더블린은 근대 식민지 시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의 집단적 상상과 기억이 매개되는 공간이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계속되는 더블린이지만 이 도시공간을 거니는 인물들의 행적을 컴퓨터로 측정된 감정선을 통해 따라가보면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운데 더블린 사람들의 아일랜드를 향한 애도와 욕망, 제국에 대한 물질적 욕망과 환멸 등이 드라마처럼 분출된다.
그중에서도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더블린이라는 도시공간을 향한 등장인물들의 양가적 감정과 이 감정이 드러내는 식민주체의 모순적 자기인식이다. 1990년대 이후 조이스의 모더니즘에 관한 논의들은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근대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자인 조이스가 전근대적인 아일랜드 문화에 대해 가진 이중적 태도에 주목해왔다.12) 발렌티(Joseph Valente)에 따르면 조이스의 작품은 식민지와 피식민지, 영국문화와 아일랜드 문화, 제국의 권력과 민족적 저항에 대한 “이중적 동일시”(dual identification)를 드러낸다.13)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본 연구는 조이스의 인물들이 양산하는 민족주의적 감정의 집합체가 내재하고 있는 감정적 이중성에 대해 주목한다. 아래 이어지는 감정분석에서, 더블린 사람들의 반제국주의적 정서와 저항적 에너지는 제국으로 표상되는 근대문물과 지배권력에 대한 은밀한 환상을 수반하며, 이러한 자기분열적 시선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결국 되돌아와 그들 자신을 향하게 된다.
감정분석을 위해 『율리시스』의 단순플롯 곡선을 추출한 후, 특정 크기의 텍스트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며 평균값을 산출한 롤링산술평균(Rolling mean) 그래프를 기준으로 변곡점을 추적했다(그림 1).
x축의 값은 문장 단위로 측정한 소설의 전체 서사 시간이며, y축의 값은 -1(부정), 0(중립), 1(긍정) 범위의 척도를 기준으로 보정된 감정점수를 나타낸다. 그 결과 1장의 저점인 마르텔로 요새탑에서 시작하여 → 5장의 더운 여름날의 거리(상승) → 6장의 공동묘지(하강) → 9장의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상승) → 11장의 오먼드 호텔(하강) → 12장의 술집(상승) 및 13장의 해변 바위(상승) → 15장의 사창가(하강) → 17장의 집(상승)이라는 감정곡선의 변화를 보인다.

소설에서 부정적 감정의 변곡점이 나타나는 지점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스티븐이 방문한 마르텔로 요새탑과 팻 디그넘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공동묘지, 블룸이 저녁을 먹는 오래된 오먼드 호텔, 그리고 블룸과 스티븐이 만나는 사창가로 총 네 곳이다. 공교롭게도 발전과는 거리가 먼 도시의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 장소는 죽음, 쇠퇴, 부패의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첫 세 번의 하강 변곡점에서는 과거의 기억에 마비되어 아일랜드의 새로운 비전을 찾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의 매너리즘이 강조된다.
한 예로 마르텔로 요새탑의 경우, 워드클라우드에서 슬픔과 혐오를 드러내는 어머니(mother), 조롱(mockery), 저주(damn), 죽음(death), 검정(black), 어둠(dark) 등의 어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그림 2). 마르텔로 탑은 역사적으로 영제국이 아일랜드를 감시하기 위해 해안선에 세운 요새탑으로, 지금은 영국인 하인즈와 스티븐의 대학 친구 멀리건이 머무는 곳이다. 하지만 또한 그곳은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한 죽은 어머니에 대한 스티븐의 개인적 죄책감과 언어와 문화를 박탈당하고 영제국의 감시를 지속적으로 받는 아일랜드의 어두운 역사가 교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상을 치르고 있는 스티븐의 꿈속에서 죽은 어머니는 “왁스와 장미목의 냄새를 풍기는 수의를 입고, 젖은 재의 향이 옅게 묻어 있는 숨”14)을 “소리 없는 침묵의 말과 함께” 내뿜으며 계속해서 스티븐을 괴롭힌다.15) 뒤에 등장하는 게일어를 말하지 못하는 우유 파는 노파와 같이, 죽음의 체취를 내뿜는 어머니의 침묵은 전통적 언어를 잃어버린 아일랜드를 상징하며 스티븐의 상실감을 증폭시킨다.

되풀이되는 죽음의 이미지와 회복 불가능한 과거로의 침잠은 6장과 11장에서도 이어진다. 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패디 디그넘의 장례식에 참가한 마을 주민들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진 “공동묘지에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톰 커넌처럼 술에 의존하거나 파넬과 오코넬과 같은 순교한 영웅들과 유사하게 신화화된 지인들의 기억에만 의존해 현재의 삶을 근근이 살아간다. 블룸의 경우 10년 전 죽은 아들에 대한 자책감이 아직까지도 그의 성적 무기력함과 수동적인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율리시스』의 감정곡선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일련의 상승 변곡점은 이렇게 죽음의 쳇바퀴 속에서 더는 새로운 비전과 삶의 모습을 생산하지 못하는 결핍된 도시의 풍경에 대치되는 또 다른 궤적을 보여준다. 5장의 배경이 되는 더운 여름날의 거리, 9장의 아일랜드 국립도서관, 12장의 바니 키어넌 술집, 13장의 샌디마운트 해변가 바위, 17~18장 블룸의 집에서는 정도는 다르지만 상품과 음식, 문화가 소비되는 가운데 개인과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이 포착된다. 사람들이 불꽃놀이 장관을 즐기는 13장의 샌디마운트 해변은 결말을 제외하고 소설에서 감정의 긍정값이 최고조에 이르는 대표적인 장소다. 거티 맥도웰의 환상 속에서 그녀는 워드클라우드의 beautiful, beauty, lovely, mother, virgin, young 등이 나타내듯 여성화된 아일랜드의 완벽한 표상으로 존재하며, 블룸 또한 그녀를 통해 쇠락한 남성성을 일시적으로 회복한다(그림 3). 거티의 눈은 “아일랜드적 푸른빛 중에서도 가장 푸르”며, 그녀의 소녀다운 수줍음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나라 아일랜드에서 그녀와 대등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묘사된다. 나아가 거티라는 여성의 스펙터클을 통해 성적 만족을 얻은 블룸이 “자치법의 태양”을 상상하며 자신을 아일랜드와 동일시하는 장면은 일시적으로나마 획득한 그의 남성적 이미지가 민족 정체성의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영국/아일랜드 문학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9장의 아일랜드 국립도서관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는 12장의 술집이 감정의 상승 변곡점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12장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대부분 조이스가 시민이라는 호전적이고 자기과시적인 캐릭터를 통해 아일랜드 내의 “편협한 민족주의”16)를 폭로하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17) 많은 비평가가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인종주의를 토대로 한 시민의 민족의식에 대한 대안으로 블룸의 포용적이고 평화적인 민족 개념이 제시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활기 없는 오먼드 호텔에서 술집으로 장소를 바꾸자 극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는 감정곡선은, 그래프의 전체적 오르내림을 고려해 보았을 때, “키클롭스” 장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18) 그중에서도 이곳에서 오가는 이야기 대부분이 아일랜드 국가와 민족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로이드(David Lloyd)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다양한 의견과 표현이 상충하고 공존하는 더블린의 공적 장소 그 자체의 에너지에 주목할 필요성을 시사한다.19) 이름 없는 관찰자의 과장된 수사와 유사하게 과장된 시민과 블룸의 정치적 대화, 그 외에도 이곳에서 정신없이 오가는 영웅적・법적・학술적・종교적 언어의 집합은 가령 바니 키어넌이라는 술집이 지위와 계급에 상관없이 많은 더블린 남성이 모여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표출하는 장소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평범한 주객들에 대한 신화적 묘사 장면이 6.35라는 높은 긍정적 감정값을 자랑하는 가운데 아일랜드 신문의 영제국 풍자(7.35),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의 찬양(5.3), 변주되는 블룸의 사랑 이론(2.75, 1.75, 1.65…) 등 다양한 목소리가 술집의 감정값 상승에 기여한다.20) 술집은 공동묘지와 호텔바 등 고정된 이미지에 사로잡힌 애도의 공간과는 달리 격렬한 논쟁 속에서 아일랜드 공동체 재현의 절박함이 표출되는 곳이다.21)
한편 『율리시스』에서 아일랜드 구성원들이 민족국가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제국을 비판하면서도 제국의 정체성 강화에 기여하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거리, 국립도서관, 술집, 해변 등지에서 그들이 재현하고자 하는 아일랜드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이미 영국적인 것 또는 제국에서 들어온 소비문화와 혼합되고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의 언어 또한 전통적 젠더관에 기반한 제국의 수사법이나 영국화된 목소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5장의 길거리에서 반복되는 광고카피와 “오렌지 향수” “터키식 목욕탕”처럼 블룸의 나른한 공상을 형성하는 언어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상품의 스펙터클에 의존하고 있으며, 스티븐의 고상한 학문적 언어도 영국작가 셰익스피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일랜드적 예술을 논할 수 없다. 바니 키어넌 술집에서의 과장적 수사가 20세기 초 앵글로-아이리시 역사가들이 사용한 영웅적 수사의 패러디라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왔으며, 해변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뽐내는 거티의 말투 또한 당시 유행하던 감성 로맨스 소설 스타일을 흉내내고 있다. 이처럼 제국적인 것에 대한 무의식적 모방은 당시 새로운 문물이 끊임없이 유입되던 식민지 도시공간에 깃든 영국적인 것에 대한 환상과 민족주의적 욕망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제국에 편입된 언어와 성적 이미지의 무비판적 수용을 통해 순수한 아일랜드의 모습을 찾으려는 식민주체의 과장된 제스처는 은연중에 그들이 비판하고자 한 제국의 허위적 자기동일성을 모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거티, 다른 여성적 아일랜드인을 배척하는 시민과 같이 제국의 타자들을 계속해서 양산한다. 자세히 읽기를 통해 발견한 이 같은 아이러니는 긍정값 속에 내재된 부정적 의미를 암시하는 것으로 감정값을 단순하게 긍정과 부정으로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수제 감정곡선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후반부에서 급변하는 감정의 추이를 해석하는 데 유용한 일말의 단서를 제공한다.
소설이 끝나가는 15장 사창가는 아일랜드 구성원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가 거침없이 폭로되는 장소다.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이 재등장해 온갖 기괴한 형태로 변신하는 홍등가는 소설 전체에서 부정적 감정의 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공포스러운 곳이지만, 감정의 불확실성(emotional entropy)과 계량된 불확실성(metric entropy) 그래프에 따르면 감정값의 불안정성이 각각 극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거나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이다(그림 4).22)

문장에서 상충되는 단어들의 감정값을 측정해서 의미의 불확실성을 수치로 나타내는 수제의 복합적 메시지(mixed message) 기능은 특정 텍스트 내에서 발현되는 비결정적 감정의 윤곽을 파악하게 해준다. 이 기능을 사용해 감정의 불확실성을 그래프로 추출해보면, 사창가 에피소드가 죽음과 쇠퇴의 이미지에 압도되는 마르텔로 요새탑이나 공동묘지처럼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15장에서 증폭된 텍스트의 불안정성은 역설적으로 더블린의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사창가를 지극히 역동적이고 계몽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요컨대 사창가는 식민주체의 패배주의적 우울증과 민족 재현을 향한 욕망 모두를 보류하는 곳으로, 제국 바깥에 존재하는 동일자적 아일랜드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긴밀히 유지되어온 영제국과의 문화적 교류를 인정함은 물론, 그간 억눌려온 아일랜드의 주변부적 형상을 재사유하게 되는 곳이다. 소설의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식민지 상황에 대한 무기력함과 투쟁적 감정이 교차하며 패배자 또는 승리자로서의 아일랜드만이 강조되어왔다면, 조이스는 이처럼 단순화된 아일랜드의 이미지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이곳은 술에 취한 스티븐이 두 영국군인과 주먹다짐에 휘말리는 등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립이 적나라하게 드러남과 동시에 그 둘의 경계가 무너지는 혼돈의 장소로 소설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음에 제시한 표처럼 감정의 불확실성 수치가 1에 가까우면서 계량된 불확실성 수치가 양수인 문장들의 예시를 살펴보면 아일랜드적인 것과 영국적인 것이 충돌하면서도 많은 경우 자기모순적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5).

영국과 아일랜드 양측 모두의 기념비적 장소와 긍정적 상징이 등장과 동시에 훼손되는 양상은 재현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아일랜드와 영국의 불가피하면서도 불편한 문화적 공존을 나타내고 있다. 누군가는 활기찬 목소리로 런던이 불에 타고 있다고 소리치고, 영국의 장군 넬슨 기념비와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 탱크는 주로 “가장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여성들이 자살하는 장소로 소개되며, 안면마비에 시달리는 셰익스피어는 벽에 걸린 순록 뿔의 그림자가 만든 우스운 왕관을 쓰고 있다. 개신교를 부흥시킨 영국의 에드워드 7세(Edward VII)는 가톨릭 아이콘이 그려진 넝마를 걸치고 있으며, “흑미사”로 치러지는 가톨릭 미사에서 사제가 외설적인 행위로 영성체를 진행하는 등 신교와 구교 모두가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뒤죽박죽의 환상적 이미지는 해당 장이 “식민문화에서 생겨난 이국적 부조화”의 발현이라는 깁슨(Andrew Gibson)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23) 바흐친(Mikhail Bakhtin)의 카니발을 연상시키는 홍등가의 무정부주의적 요소는 지배자 문화에 일방적으로 감염되거나 종속된 아일랜드 문화를 마냥 달갑게 대하지만은 않으면서도 영국과 아일랜드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접근 모두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와 동시에 서로를 오염시키고 조롱하는 영국발 도시문화와 아일랜드 전통문화의 지속적 견제와 긴장감은 식민주의라는 역사의 파편더미 속에서 아일랜드를 구제하기 위해 직면해야 하는 필요조건임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율리시스』의 더블린이 고착된 아일랜드의 과거와 상품화된 미래 사이에서 자아가 분열하는 공간이었다면, 사창가는 이러한 분열을 직면함과 동시에 죽음과 삶, 과거와 미래 모두로부터 거리를 둔, 그리고 문화적 근접성과 혼종성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아일랜드의 민족적 비전을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홍등가를 떠나기 직전 스티븐과 블룸이 각각 마주하는 “흡혈귀”와 영국식 이튼 양복을 입고 히브리어 책을 읽는 11살 소년의 환영은 그들이 지금껏 극복하지 못한 죽은 아일랜드(어머니와 아들)를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대안적 표상이 된다.
3.2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성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구보가 점심때쯤 집을 나와 경성을 산책하다가 새벽 2시에 다시 집으로 귀가하는 순환적 경로를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구보라는 한 인물의 시점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변덕스럽고 자의적인 개인의 감정변화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율리시스』와 비교했을 때 감정그래프의 굴곡이 자의적이고 서사의 예측이 어렵다(그림 6). 중간에 한 번의 커다란 추락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감정선이 우상향 형태를 유지하는 『율리시스』는 여러 사람의 감정이 서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일관되게 집단적 정서를 생성하고 있다. 식민도시의 상실감과 그 상실감을 보상하려는 과장된 심리가 다양한 형태의 굴곡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마지막에 블룸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끝에서 감정값이 최고점을 찍음으로써 일상적인 삶 속 구원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그에 반해 대학교육까지 마쳤으나 마땅한 직장이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구보의 시선을 통해 서술되고 있는 박태원의 소설에서 감정곡선은 구보가 매 순간 마주치는 도시 장면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근대화의 매혹적 풍경을 동경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풍경 뒤에 도사리고 있는 식민지 시기의 불안과 우울을 느끼기도 한다. 임의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 마지막에는 저점과 가까운 곳에서 멈추는 구보의 감정곡선에는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한 익숙한 이야기 플롯이 부재하다.

『율리시스』에서 감정의 상승과 하강이 식민지 아일랜드인의 끊임없이 상충하는 욕망과 우울증의 시각화라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나타나는 감정변화는, 최혜실이 지적한 것처럼,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의 “행복 찾기”와 “고독 느끼기”의 결과물이다.24) 박태원의 소설에서 구보의 행복을 향한 여정의 의미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홍혜원과 권은은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다르게 내리지만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구보의 해방을 향한 정치적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읽고 있다.25) 그러나 최근에는 소설에서 재현되는 동경(東京)과 소비문화가 구보의 근대에 대한 모방심리와 열등감을 반영한다는 논의 또한 이루어지는 추세다.26) 이에 대해 이 글은 구보가 경성을 거닐며 근대의 어두운 측면을 꿰뚫어보지만, 매혹적인 근대에 동화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소설의 서사에서 주요한 갈등으로 보아야 한다는 절충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실제로 수제 프로그램을 통해 도출한 감정곡선에서는 소설 초반에 구보가 동경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가치에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제법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림 7]에서 볼 수 있듯이 구보의 행적을 따라 변화하는 감정의 추이는 다음과 같다. ② 광교에서 탄 동대문행 전차(하강) → ③ 조선은행 앞에서 내려 도착한 장곡천정의 다방(상승) → ④ 서소문정 방면, 여름 한낮의 거리(하강) → ⑤ 다시 돌아간 다방(상승) → ⑥ 종로네거리(약하강) → ⑦ 다료에서 대창옥으로 향하는 길(상승) → ⑧ 광화문통(하강) → ⑨ 조선호텔과 경성우체국(상승) → ⑩ 낙원정 카페(하강) → ⑪ 집으로 가는 종로네거리(약상승). 동경에서 유학까지 했으나 변변한 경제활동이나 결혼도 하지 않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구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와 광교에서 전차에 올라탄다. 소설의 전반부는 구보가 집에서부터 계속된 울적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차에 몸을 맡기고 근대화된 도시가 만들어내는 쾌활한 분위기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텍스트 초반의 감정이 하강하는 ②전차와 ④한낮의 거리 장면은 모두 도시의 주변부적 공간이나 타자화된 존재들이 구보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목적지 없이 ②동대문행 전차를 탄 채 구보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과연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지 생각하지만, 그는 장충단・청량리・성북동과 같은 도시의 주변부와는 거리를 둔다. 그곳은 “자연”과 “한적”이 있지만, 또한 그가 두려워하고 결코 이겨내지 못할 “고독”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27)

이렇듯 막 도시 산책에 나선 구보가 행복을 찾기 위해 향하는 곳은 가난과 고독이 즐비한 시골보다는 명랑하고 활기찬 도심이다. 근대화의 물결에 올라타 궁핍한 식민지 현실과 지식인으로서의 무기력함을 회피하고자 하는 구보의 열망은 서소문정 방면에서 ④뜨거운 한낮의 거리를 걷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땡볕 아래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변비. 요의빈수. 피로. 권태. 두통. 두중. 두압.”(70면) 등 자신의 허약해진 육체를 한탄하다가 “살풍경하고 어수선한 태평통”(72면) 거리를 보고 불쾌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불결한 고물상들을” 이 거리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궁리하는 구보에게 도심에 남아 있는 구질구질한 전근대적 자취는 자신의 몸을 불능 상태로 만드는 질병마냥 경성의 쾌활함을 위해 치워버려야 할 존재다. 그는 오랜만에 거리에서 반가운 옛 동무를 만나고도 그의 초라한 행색 때문에 말을 걸까 망설인다. 도망치듯 떠나가는 동무의 슬픈 뒷모습은 화려한 도시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며, 일부 건물이 헐리고 축소된 모습으로 조금 전 그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 “빈약한, 너무나 빈약한”(66면) 덕수궁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깨끗하고 매력적인 근대도시를 향한 그의 기대감은 집에서 나와 감정그래프에서의 긍정값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상승세를 보이는 ③다방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구보는 자신의 행복을 돈과 시간이라는 가치로 가늠하려 한다. 전차에서 내린 후 도착한 장곡천정(지금의 소공동) 다방에서 그는 자신처럼 마땅한 직업 없이 차를 마시며 오후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을 구경한다. 삶의 피로감과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는 다시 한번 행복의 물질적 기준에 대해 생각한다.
구보는 자기에게 양행비가 있으면, 적어도 지금 자기는 거의 완전히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경에라도–. 동경도 좋았다. 구보는 자기가 떠나온 뒤의 변한 동경이 보고 싶다 생각한다. (…) 구보는, 조그만 ‘슈트케이스’를 들고 경성역에 섰을 때, 응당 자기는 행복을 느끼리라 믿는다. 그것은 금전과 시간이 주는 행복이다. (60면)
구보의 어휘는 그가 조금 전 지나온 (일제의 부와 자본의 상징인) 조선은행을 연상시킨다. 여행을 갈망하는 그가 경성을 탈출해서 가고자 하는 곳이 서양 또는 동양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인 일본의 동경이라는 점 또한 그가 근대화된 도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과 기대를 보여준다.
여기서 당시 경성이 조선인 거주지역인 북촌과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중도시였다는 사실은 구보의 감정곡선을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지리적 근거를 마련해준다. 소설을 통틀어 구보의 감정은 총 네 번 최고점에 도달한다. 남촌의 입구에 위치하는 다방(③, ⑤)과 조선은행과 경성우체국(⑨), 그리고 구보가 동경의 거리를 회상하는 북촌의 다료(⑦)가 이에 해당한다. 당시 남촌은 번화한 상권의 중심지로 최신식 건물이 즐비하고 북촌보다 경제력과 생활수준이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사실에 빗대어볼 때, 구보의 감정이 대부분 남촌 부근에서 또는 동경을 회상할 때 상승한다는 점은 일본 유학 경험으로 식민지 본국의 근대적 문화에 익숙할 뿐 아니라 식민자본주의에 우호적인 그의 성향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구보가 일본인 구역의 묘사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다는 학계의 주된 논의와는 대립하는 것으로,28) 구보라는 인물이 일본이라는 근대세계에 무의식적으로 투영하는 환상과 욕망을 공간 이동에 따른 감정의 시각화를 통해 파악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소와 감정의 기계적 연결은 특정 공간이 지닌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지닌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워드클라우드 등의 양적 자료를 기반으로 한 질적 분석을 병행했다.29) 예를 들어 다방이라는 공간은 당시 박태원의 분신인 구보가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일하게 긍정할 수 있었고 집단적 자의식을 쌓을 수 있었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구보의 감정이 상승하는 다방이 단지 남촌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구보를 식민지 본국을 선망하는 인물 또는 남촌을 지향하는 일차원적 인물로 해석한다면, 다방이라는 공간이 구보에게 주는 복합적 의미는 물론 구보라는 인물이 조선에 대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여정에 따른 감정변화는 텍스트의 워드클라우드에서 나타난 부정적/긍정적 감정의 주제어와도 상응한다(그림8). 대부분 외로움 및 질병과 관련된 단어가 부정적 감정의 주제어로 나타났으며(lonely, mother, late, worn, money, misery, pathetic, chronic, fee, darkness, anxiety, disease), 긍정적 주제어로는 “벗”(friend), “사랑”(love), “행복”(happiness), “젊음”(young), “좋았다/좋은”(good) 등이 있었다.
[그림 8]에서 볼 수 있듯이 구보의 감정선이 상승하는 지점에서 주로 발견되는 단어는 “벗”과 “사랑”으로, 해당 감정이 발생하는 다방은 경성의 진보적 도시문화와 연결되면서도 도시의 속물적 문화와는 대립되는 가치로 설정된다는 점에서 그 양면성이 주목된다. 특히 그가 하루 동안 네 차례나 들르는 다방이라는 장소는 1930년대 살롱문화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향함과 동시에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구보의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다방이 일제침탈과 근대화로 인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을 수 있고 인간적 소통과 관계 맺기가 가능한 이상화된 공간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계속해서 행복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구보는 결국 벗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임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⑤그는 심지어 다방 손님들에게 홀대받는 한 강아지의 무료한 눈빛에서 고독을 읽고 그에게 다가간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강아지와 소통을 시도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고독을 잊기 위해 “사랑의 표현”을 교환하고자 하는 그의 절실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가 공용어인 일본어만 빼놓고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일제라는 공식적 권력에 대항하는 지식인의 암묵적 저항으로도 볼 수 있다. 말 못 하는 짐승에게도 한국어를 씀으로써 조선의 언어적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외국어로는 영어만을 사용함으로써 서구의 근대문화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일본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모두 감지된다. ⑦저녁 무렵의 다방은 또한 구보가 동경에서 유학하며 만난 옛사랑이 떠오르는 장소다. 그는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과 처음 만나 신숙(新宿)의 영화관에서 데이트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순수한 사랑과 로맨스가 가능했던 청년 시절을 그리워한다. 여기서 동경은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제국의 중심부이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근원적 합일이나 화해가 가능한 낭만화된 공간으로서 더욱 중요성을 지닌다. 조국과 그에 준하는 공동체적 삶이 부재한 상황에서 동경은 상실의 기표이자 고향을 환유하는 원형적 공간으로서 소설의 표면 위를 떠다닌다. 즉 구보는 일시적으로나마 경성을 동경이라는 추상화된 기표와 동일시함으로써 그의 조국과 옛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완화하고자 한다.

만약 구보가 다방에서 느낀 긍정적 감정들을 단순히 일본에 대한 선망이나 식민지 시대의 현실 회피로 깎아내릴 수 없다면, 북촌에서 마주치는 고독이라는 감정 또한 일제 치하의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조선에 대한 부정적 감정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가난하고 차별받는 조선인은 아무리 열심히 남촌 내지인(일본 거주민)의 행복을 모방하더라도 나라를 빼앗긴 박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심지어 초반에 구보가 좇는 명랑함도 식민지 체제에 순응적인 청년의 순진한 허영 또는 막연한 희망 이상의 것이 아님이 밝혀진다. 오히려 소설이 진행될수록 강하게 엄습하는 고독이야말로 성숙한 현실인식을 위해 그가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불균등한 사회구조의 발현이자 식민자본주의 사회의 비판적 진단을 위한 도구로 제시된다.
쾌락과 행복감을 선사하는 근대적 도시문화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구보는 집을 나설 때부터 그를 괴롭힌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독을 피해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는 근대성이라는 환상적 베일에 가려진 인간성의 상실을 절감한다. 다방에서 시도한 네발짐승과의 감정적 교류는 강아지의 도망으로 싱겁게 좌절되고, 길에는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보다는 값싼 웃음과 술을 팔아 돈을 버는 여급/매춘부들로 가득하다. 사람과 웃음과 술이 있지만, 구보는 이 모든 것을 가장된 행복으로 느낀다. 그림 8에서 화(anger)라는 감정 범주에 “금전”(money)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오길영의 말처럼 “모조근대”로서 식민지 경성이 가지는 상대적 결핍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근대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양산하는 소통의 소멸 및 자본에 의한 인간 소외와도 관련 있다.30) 소설의 중후반부에서 그의 감정선이 추락하는 곳에는 빠르게 팽창하고 진보하는 도시화가 남기고 간 젊은이들의 불안과 고단함, 외로움에 대한 비판적 관찰이 어김없이 동반된다. ⑥황혼 무렵의 종로 네거리에서 구보는 하이힐을 신은 “노는 여자”들의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보며 황금만능주의 사회의 자본을 향한 욕망이 식민지 젊은이들을 소외시키는 양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곱게 차려입고 삭막한 거리를 바삐 걷는 그들은 근대도시의 스펙터클에 속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스펙터클에 의해 소외되는 자들이다. 끊임없이 세속적 가치를 좇으며 진정한 인간 사이의 관계나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집이라는 공간마저 희망보다는 허울뿐인 안위만을 제공하는 무덤과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들 자신의 무지다. ⑩나중에 단골 여급을 찾으러 간 낙원정의 술집에서도 구보는 술집 여급들의 무지를 한탄하는데 해당 장면을 이루는 구절들은 소설에서 가장 부정적 감정값을 지니는 문장에 속한다(그림 9).31)

한편 작품의 후반부에서 밑바닥을 치는 감정선의 양상은 마침내 구보가 경성의 중심부에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불균형의 소산으로서 고독을 서서히 인지하는 과정과 상응한다. 시작은 ⑧그의 동경에 대한 회상이 끝나가는 지점으로, 눈을 떠보니 이미 해는 저물었고, 눈앞에 펼쳐진 “넓고, 또 휑한 광화문 거리”(142면)는 자신이 여전히 위태로운 식민지에 서 있음을 알려준다. 유학 시절 동경에서 조선인으로서의 고독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면, 조선으로 돌아온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라 잃은 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광화문이 옮겨지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광화문통은 “멋없이 넓고 또 쓸쓸”해 외로움을 한층 더할 뿐이다(138면). 중심부의 명랑함은 곧 주변부의 고독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근대성의 필연적 불균형을 어렴풋이 깨달은 구보는 “어디로 갈 것을 잊은 듯이, 그러할 필요가 없어진 듯이”(144면) 그 자리에 서 있다. 물론 이후에도 상승하는 감정곡선이 증명하듯 행복을 갈구하는 그의 노력은 끝나지 않지만, 그는 적어도 더는 인위적으로 “명랑을 가장”(94면)하지 않는다. ⑨근대화의 상징인 조선호텔과 경성우체국을 앞을 지나가며 생각지도 못한 벗에게서 편지를 받는 기쁨을 상상하다가도 곧 우체국은 집세가 석 달이나 밀린 벗에게 서류우편을 전달하는 장소임을 자각한다. 화려한 근대도시를 걷지만, 구보의 마음에 불쑥 밀려들어오는 것은 “구차한 내 나라”(164면)에 대한 생각이다. ⑩기품 있는 여인네가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할 만큼 가난이 뒤덮고 있는 경성은 암울한 식민지 조선의 삶을 상기시키며 뒤로 갈수록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이렇게 ⑩구보가 근대 식민도시 경성에서 현실감각을 되찾으며 산책을 마무리 짓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감정값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한다.
구보가 집을 나서기 직전의 소설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그가 집으로 향하는 결말은 감정곡선에서 부정적 감정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그의 활기찬 도시 산책은 뒤처진 조선의 정체된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고자 하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⑪마지막 장면에서 위쪽을 향해 꿈틀대는 감정그래프는 구보의 일상이 단순한 식민지 지식인의 멜랑콜리아나 패배주의로는 빠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도시의 명랑함 뒤에 감추어져 있던 고독은 그가 근대성(행복)과 전근대성(고독)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건설적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문장 단위를 살펴보면 어머니의 고독과 사랑을 생각하고(“Oh, a mother’s love, how infinitely deep and infinitely sad.” 163면) 좋은 소설을 쓰라며 친구의 응원을 받고 또 그럴 것이라 다짐하는 장면에서(“Write a good novel,” his friend says with real sincerity, and they partcompany.; “Kubo finds happiness in the thought that he will write a truly good novel.” 163~65면) 텍스트의 감정값이 각각 2.9, 2.1, 1.6으로 미약하게나마 높아진다. 그가 그토록 잊으려고 노력했던 주변부의 쓸쓸함을 직면하고 관찰해서 자신의 소설에 담아야 함을 깨닫는 이 순간, 그는 역설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심지어 순사의 모멸적인 시선까지도 개의치 않는다. 피해야만 했던 감정이었던 고독은 근대화된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을 이해하고 조선의 정체성을 긍정하기 위해 안고 가야 하는 필연적 조건으로서 소설가 구보가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주요한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4. 결론
본 연구는 뚜렷한 감정의 흐름이 부재하다고 알려진 조이스와 박태원의 모더니즘 소설에서 감정선을 시각화하여 공간의 이동에 따른 문학 텍스트의 내재적 서사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식민주의와 근대 역사의 전경이 되는 1900년대의 더블린과 1930년대의 경성에서 생성된 감정을 분석하여 등장인물들이 각각 아일랜드와 조선에 대해 갖는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컴퓨터를 통한 감정분석은 등장인물의 감정선과 그들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을 양적으로 측정하여 장소 이동 및 서사에 따른 감정변화의 큰 그림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캐릭터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수치로 단순화한다는 방법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러 딜레마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색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재평가하는 텍스트 분석 작업에 유용한 지침을 제공한다.
조이스의 더블린과 박태원의 경성은 우울한 전근대성과 명랑한 근대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감정의 시각화는 두 도시에서 식민주체가 강박적으로 좇는 행복의 경로와 그 경로의 모순 및 불가능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처음에 두 텍스트에서 내리는 행복의 정의는 상반되는 듯 보인다. 『율리시스』의 경우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차 고조되는 행복의 감정은 수많은 등장인물이 역사의 승리자로서 아일랜드의 재현을 꿈꾸는 모습과 상응한다. 순수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이 감정곡선의 상승을 이끄는 조이스의 소설에 반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감정값이 올라가는 지점은 대부분 주인공이 선진문물을 향유하며 식민지 조선의 정체된 일상을 잊고자 노력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두 텍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의 중심부에서 주로 형성되는 이들 행복에 관한 비전은 시간이 갈수록 등장인물들이 추종하는 단순화된 민족/제국 또는 근대성/전근대성 담론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많은 경우 행복은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상실감과 제국의 문물에 대한 환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찰되며, 제국과 식민지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망과 근대성이 수반하는 불균형한 세계구조를 간접적으로 재현한다. 두 서사에서 식민지 구성원들은 그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패배자적 우울함을 타개하기 위해 힘쓰지만, 그 과정에서 제국을 통해 들어온 매혹적인 자본과 지배자의 언어 또한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암울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성급하게 민족의 순수한 자기동일성에 집착하거나,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를 명랑함과 불쾌함이라는 서열화된 잣대로써 정의하려는 시도는 두 텍스트 모두에서 결국 좌절되거나 낯선 방식으로 폭로되고 만다. 『율리시스』에서 아일랜드와 제국의 모순적인 문화적 공존이 까발려지는 곳은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은밀한 형태의 성상품화가 이루어지는 매춘굴이다. 이곳에서 서구에 오염되지 않은 아일랜드의 미덕을 찬양하는 자기기만적인 민족 신화는 무참히 무너지며, 제국의 문화적 지배를 인정하면서도 저항을 실천할 수 있는 피식민지의 인식론적 전환점이 마련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는 주변부의 고독을 차단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근대성의 중심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외로움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지막에 속절없이 하강하는 그의 감정선은 이러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구보의 좌절감을 시각화하고 있지만, 이 추락은 또한 식민지 삶의 역사적 조건인 고독을 받아들임으로써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시작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1)全보미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 “Autonomy and the Birth of the Modern Intellectual in Pierre Bourdieu’s The Rules of Art”(2024)가 있다.Eric Nalisnick and Henry Baird, “Character-to-Character Sentiment Analysis in Shakespeare’s Plays,” Proceedings of the 51st Annual Meeting of the Association for Computational Linguistics (Volume 2: Short Papers), Association for Computational Linguistics (2013) 479~83면; Andrew J. Reagan et al., “The Emotional Arcs of Stories Are Dominated by Six Basic Shapes,” EPJ Data Science 5.31 (2016); Qiyue Hu et al., “Dynamic Evolution of Sentiments in Never Let Me Go: Insights from Multifractal Theory and ItsImplications for Literary Analysis,” Digital Scholarship in the Humanities 36.2 (2021) 322~32면 참조.
2) 강우규・김바로 「고전소설에 대한 디지털 감정 분석방법론 탐색: <구운몽>을 대상으로」, 『동아시아고대학』 56 (2019) 349~77면; 문석형・강주영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활용한 고전 추리 소설 작가 간 문체적 차이와 문체 구조에 대한 연구」, 『지능정보연구』 25.3 (2019) 89~115면; 서혜진・이종현・신정아 「딥러닝을 이용한 셰익스피어 작품의 감정 분석」, 『영어학』 19.4 (2019) 817~36면; 장세은・박호민・Mengjiao Suo・이성화 「감정분석 시각화를 통한 소설과 영화의 비교: 모비딕 중심으로」, 『언어과학』 28.1 (2021) 207~29면 참조.
3) Enda Duffy, “‘Ulysses’ Becomes Electra: Electric Energy in Joyce’s Novel,” James Joyce Quarterly 48.3 (2011) 407~24면; Kirsty Martin, Modernism and the Rhythms of Sympathy: Vernon Lee, Virginia Woolf, D. H. Lawrence (Oxford: Oxford UP, 2013); Julie Taylor, Affective Modernism (Edingburgh: Edingburgh UP, 2012); Julie Taylor, Modernism and Affect (Edinburgh: Edinburgh UP, 2015) 참조.
4) Katherine Elkins and Jon Chun, “Can Sentiment Analysis Reveal Structure in a ‘Plotless’ Novel?,” arXiv preprint arXiv:1910.01441 (2019); 유사한 연구로 수제 감정곡선에 대해 분석한 Katherine Elkins, The Shapes of Stories (Cambridge: Cambridge UP, 2022) 및 『율리시스』에 관한 다음의 감성분석 연구 참조. Kurt Cavendar et al., “Body Language: Toward an Affective Formalism of Ulysses,” Reading Modernism with Machines, ed. Ross Shawna, and James O’Sullivan (London: Palgrave, 2016) 223~41면.
5) Elkins and Chun, 앞의 글 24면.
6) 오현숙 「1930년대 식민지와 미궁의 심상지리」, 『구보학회』(2008) 183~214면; 이영심 「탈식민주의와 세계문학: 제임스 조이스와 박태원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제임스조이스저널』(2016) 113~14면 참조.
7) Matthew Jockers, Syuzhet. https://github.com/mjockers/syuzhet, 2017.
8)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scious (Ithaca: Cornell UP, 1981) 70면.
9) 『율리시스』의 경우 의식의 흐름으로만 이루어진 마지막 “페넬로페” 장이 텍스트 전처리 과정에서 난제로 작용했다. 문장을 마침표나 물음표, 느낌표로만 구분하는 수제 패키지는 방대한 내용이 구두점 없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을 단지 세 문장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율리시스』를 단어 단위로 토큰화(tokenization)해서 분석하기에는 해당 텍스트의 크기가 너무 큰 나머지 R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차선책으로 18개 장을 구성하는 방대한 길이의 문장을 주어와 서술어를 갖춘 의미 단위로 세분화했다. 혹시라도 임의로 나눈 문장 단위가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해당 장의 경우 단어 단위로 측정값을 모두 추출하여 그래프를 비교하는 검사까지 진행한 결과 두 그래프가 거의 일치했기에 문장화 처리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수제 패키지의 특정 기능을 사용할 때 “…”처럼 텍스트 내에 연속적으로 구두점이 존재하는 경우 오류가 발생했으므로 텍스트의 모든 구두점을 확인하여 여과하는 작업을 거쳤다.
10) 물론 번역가의 개입이 원본 텍스트의 감정을 왜곡할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박선영의 번역이 미사여구나 의역을 줄이고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업되었음을 확인하고 번역본을 사용했을 때도 감정분석이 유효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영문버전을 채택했다.
11) Frank Budgen, James Joyce and the Making of Ulysses (Oxford: Oxford UP, 1972) 69면.
12) Derek Attridge and Marjorie Howes ed., Semicolonial Joyce (New York: Cambridge UP, 2000); John Rickard, “‘A Quaking Sod’: Hybridity, Identity and Wandering Irishness,” European Joyce Studies 11 (2001) 83~110면 참조.
13) Joseph Valente, “James Joyce and the Cosmopolitan Sublime,” Joyce and the Subject of History, ed. M. Wollaeger, V. Luftig, and R. Spoo (Ann Arbor: U of Michigan P, 1996) 59~80면.
14) James Joyce, Ulysses. Project Gutenberg. 이후 이 절에서 이 작품의 인용은 인용 부호 외에 따로 괄호나 각주를 표기하지 않음.
15) “In a dream, silently, she had come to him, her wasted body within its loose graveclothes giving off an odour of wax and rosewood, her breath, bent over him with mute secret words, a faint odour of wetted ashes.”는 감정값 -3.85로 같은 장에서 두 번째로 부정적인 문장으로 측정되었다.
16) Declan Kiberd, Inventing Ireland: The Literature of a Modern Nation (Cambridge, MA: Harvard UP, 1997) 356면.
17) Vincent Cheng, Joyce, Race, and Empire (Cambridge: Cambridge U, 1995); Enda Duffy, The Subaltern Ulysses (Minnesota: U of Minnesota P, 1994)
18) 학계의 지배적인 해석에 반론을 제기한 학자의 대표적인 예는 놀런(Emer Nolan)으로 그는 “조이스와 시민의 정치적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므로” 시민의 위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mer Nolan, James Joyce and Nationalism (London: Routledge, 1995) 100면.
19) David Lloyd, Anomalous States: Irish Writing and the Post–Colonial Moment (Durham, NC: Duke UP, 1993) 107~109면.
20) 괄호 안 숫자는 해당 부분에서 나타난 감정값이다.
21)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에서 스티븐과 영국계 아일랜드 지식인들은 아일랜드적 문학과 아일랜드의 예술가를 정의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스티븐은 “언어 사용의 대가”인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신만의 (신성모독적인) 이론을 내놓는다. 이는 많은 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키지만,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학문적 담화는 대문호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미적 경험의 의미를 재정립함은 물론, 스티븐의 경우 스스로 아일랜드의 대표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경쟁심리, 불안감 등을 표출하며 생산적인 담론의 장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22) 감정의 불확실성이 각 문장에서 상충되는 단어가 만들어낸 모순된 감정값을 계산한 절대값이라면, 계량된 불확실성은 문장 길이를 표준화하여 계산한 불확실성값이다.
23) Andrew Gibson, “‘Strangers in My House, Bad Manners to Them!’: England in ‘Circe’,” Reading Joyce’s ‘Circe’: European Joyce Studies 3, ed. Andrew Gibson (Amsterdam: Rodopi, 1994) 99면.
24) 최혜실 『한국모더니즘소설연구』(민지사, 1992) 214면.
25) 홍혜원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과 탈식민주의」, 『현대소설연구』 27 (2005) 237면; 권은 「경성 모더니즘과 역사적 알레고리」, 『현대소설연구』 39 (2008) 157~ 82면.
26) 허정 「이상과 박태원 문학에 나타난 동경 번화가」, 『로컬리티 인문학』 18 (2017) 37~99면; 오길영 『세계문학공간의 조이스와 한국문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참조.
27) Taewon Park, A Day in the Life of Kubo the Novelist, trans. Sunyoung Park (Seoul: Asia Publishers, 2015) 36면. 이후 이 작품의 인용은 괄호 안에 면수만 표기함.
28) 윤대석 「경성의 공간분할과 정신분열」, 『국어국문학』 114 (2006) 91~112면; 조이담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바람구두, 2005); 정현숙 「1930년 도시공간과 박태원 소설」, 『현대소설연구』 31 (2006) 53~72면; 권은 『경성모더니즘』(일조각 2018) 참조.
29) 지면 관계상 따로 그래프를 추가하여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복합적 메시지 그래프에서 불확실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 부분은 ⑤다방에서 ⑨광화문통 사이의 구간임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실제로 자세히 읽기를 했을 때, 해당 구간은 행복과 고독에 관한 다양한 정의가 공존하고 따라서 이들 개념에 깃든 불안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30) 오길영, 앞의 책 173면.
31) [그림 9]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부정적인 감정값을 지닌 문장을 내림차순으로 나열한 것으로, 하이라이트된 문장은 도시인의 무지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 밖에도 가장 부정적인 감정값을 지닌 문장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도시인의 질병과 고독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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