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디지털인문학과 공연예술
연극과 공연예술은 미디어로 포화된 세상에서 라이브니스(liveness)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데이터화를 통한 탈육화적 큐레이션에 기반하는 디지털인문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문학의 분야이자 예술형식이다. 그러나 의외로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진보가 가져온 변화의 와중에 컴퓨터 기술과 가장 친연성을 보여주는 인문학의 분과 또한 연극과 공연예술이다. 뉴미디어를 위시한 퍼포먼스는 라이브니스를 재정의함으로써 오히려 라이브 공연에 한층 더 가까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컴퓨터와 사용자의 상호작용은 종종 공연자와 관객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의 그것에 비추어 이해되곤 했다. 무엇보다 양자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을 상정한다. 가상현실이 컴퓨터와 관련하여 사용되기 이미 반세기 전 아르토(Antonin Artaud)는 현실을 전복시킬 “가상현실”1)로서 연극의 개념을 환기한 바 있다. 컴퓨터 사용자의 환경은 가상이라는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의 그것에 비유될 수 있으며, 예컨대 팬데믹 이후로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았던 메타버스는 이러한 유비관계를 ‘낯설게 만드는’ 수많은 브랜딩 중 하나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디지털인문학은 인문학 콘텐츠로서 연극과 공연예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손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본연의 역할을 다해내고 있다. 「애비극장 1904」(Abbey Theatre, 1904), 「아델피 극장 일정」(Adelphi Theatre Calendar), 「베케트의 편지 위치 레지스터」(Beckett Letters Location Register), 「영국 도서관 플레이빌 필사 프로젝트」(British Library Playbill Transcription Project), 「쿠바 극장 디지털 아카이브」(Cuban Theatre Digital Archive) 등 단지 드라마 텍스트뿐만이 아니라 극장・공연과 관계된 물리적인 자료들은 모두 웹 전시, 데이터 분석, 크라우드 소싱, 디지털 모델링 등의 해석 모델에 기반한 디지털인문학 프로젝트의 수집・분석・유통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인문학은 21세기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은 그 정의와 범위가 확립되지 않은 창발적인 분야다.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의 이질성, 그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융합적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당위 앞에 디지털인문학이 인문학에서 디지털 툴의 활용이라는 협의의 개념으로 수렴하거나 인문학이 디지털의 도구 속으로 흡수되는 일방적인 방식의 결합을 의미할 우려는 상존한다. 궁극적으로 디지털인문학의 정신이란 디지털과 인문학의 상호 결합을 통한 양자의 확장을 의미한다. 예컨대 피츠패트릭(Kathleen Fitzpatrick)은 디지털인문학을 “학자들이 인문학의 전통적인 종류의 질문들을 연구하기 위해 컴퓨팅 기술을 사용하는, 또는 컴퓨팅 기술에 대한 인문학 중심의 전통적인 종류의 질문을 던지는 일련의 분야”2)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는 디지털인문학에서 다분히 그 구심점을 인문학으로 옮겨오는 듯하지만 디지털인문학에서 컴퓨터 기술의 존재를 탈중심화하려는 시도만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을 인문학 연구를 위한 보조수단에서 인문학적 규범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미디어 형태로,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예술과 과학, 기술 간의 융합적 결합을 견인하는 위치로 격상시키는 셈이다.
요컨대 연극 및 공연예술 분야의 디지털 큐레이션 작업에 동원되는 컴퓨터의 기능은 단순히 드라마 텍스트를 저장하고 검색하는 데에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며, 이미지와 오디오의 저장과 검색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큐레이션의 대상이 되는 지식의 특수성에 최적화되어 있는 수행능력을 보여준다. 이렇듯 단순히 문자의 인식과 분류 색인 기능을 넘어서서 영상과 소리를 포괄하는 멀티미디어의 차원으로 그 초점이 옮겨가면서 공연예술 분야의 디지털인문학 프로젝트들은 연극과 공연이라는 시각적・청각적・육체적 개별 사건들이 실행되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연극과 공연예술에 대한 산술적인 디지털화를 넘어 공연 자체에 통합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퍼포먼스(digital performance)로 귀결되고 있다. 딕슨(Steve Dixon)에 따르면 디지털 퍼포먼스란 “콘텐츠, 기술, 미학, 또는 전달의 형식에서 컴퓨터 기술이 부수적 역할이 아닌 중추적 역할을 하는 모든 퍼포먼스 작품”3)을 일컬으며, 이는 “라이브 연극(live theatre), 춤, 퍼포먼스 아트” 등 협의의 퍼포먼스 예술뿐 아니라 “설치물, 사이버 연극 이벤트, MUD(Multi-User Dimensions Game), MOO(Multi-Use Object-Oriented environment), 가상세계, 컴퓨터 게임, CD롬/퍼포먼스 넷아트”4) 등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가능한 모든 작품과 행위를 망라하는 광의의 퍼포먼스를 지칭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디지털 퍼포먼스란 프로젝션(projections), 텔레마틱(telematic) 기술에서부터 컴퓨터 감지/활성 장비가 부분적・전면적으로 활용되는 VR 퍼포먼스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무대 위에 로봇이 등장하는 퍼포먼스까지 포함된다.
연극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연극은 늘 테크놀로지의 산물이었다. 19세기 후반 모던드라마가 발흥했을 때 리얼리즘이 시대의 새로운 형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한 조각’(slice of life)을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해준 무대장치의 기술적 발달 덕분이었다. 무대 위에 횃불을 올려놓으며 밤임을 표시하던 르네상스 시대 글로브 극장에 비추어볼 때, 섬세하게 조도를 조정할 수 있는 20세기 실내극장의 조명장치는 관객이 날것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외양의 그럴듯한 재현이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매개’가 개입하고 있음을 가리는 고도의 기술이기도 했다. 부르주아지 가치체계를 그대로 옹호하는 듯한 사실주의 드라마가 어떻게 재현으로 실제를 호도하고 은밀하게 관객을 프로덕션에서 배제해왔는지를 상기한다면, 그리하여 모던드라마가 지배적인 형식으로서의 사실주의뿐만이 아니라 이와 길항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제시적(presentational) 형식들의 발굴과 공동 현존을 이상으로 하는 다양한 연극적 실천 속에 정의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진화’가 20세기의 마지막 10년부터 디지털 미디어와 VR 콘텐츠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를 넘어서 드라마・퍼포먼스・공연예술의 존립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퍼포먼스의 제작과 소비를 위한 인터페이스로 작동하게 되면서 공연의 매체가 다각화되고, 공연자・퍼포먼스・관객 사이 상호작용은 강화되지만, 반면에 이 과정에서 공연자의 육체성이나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의 물질성은 심각하게 희석된다. 디지털 퍼포먼스에서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매개를 감추는 역할이 아닌, 공연자・퍼포먼스・관객 사이에서 본격적인 매개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디지털 라이브니스란 이렇듯 본질적으로 매개의 형식인 디지털 퍼포먼스의 매체성 그 자체를 이르는 개념으로 현존과 매개의 상태를 동시에 배태하는 태생부터 혼종의 형태를 지칭한다.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시작된 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이 글은 예술과 테크놀로지, 드라마와 테크놀로지의 역설적 관계를 좀 더 정치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드라마 텍스트의 디지털 매체로의 재매개(remediation)5) 과정을 추적한다. 이 글은 우선 라이브니스 논쟁에서 디지털 라이브니스 개념에 이르는 라이브니스의 계보를 퍼포먼스 담론 내에 위치시키고, 선험적인 존재론적 가치가 아닌 유동성을 가지는 역사적 개념으로서 라이브니스를 규정한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매개와 현존 사이 불안한 이분법을 지칭하는 뉴미디어 드라마터지(dramaturge)의 한 예로서, 베케트(Samuel Beckett)의 『연극』(Play)을 VR 기술로 재현한 브이-센스(V-SENSE) 그룹의 「버츄얼 플레이」(Virtual Play) 프로젝트를 소환하고, 디지털 라이브니스의 개념이 현존과 지각, 연극성의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하는지 살펴본다. 메타극적인 구조와 ‘거기 있음’의 순수한 경험이 공존하는 가상의 공간은 이제 테크놀로지의 개입 여부로 연극의 존재론적 가치를 갈음하기보다 정치하게 설계된 매개의 겹을 통하여 연극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일깨우는 디지털의 시대 연극성을 새롭게 사유하는 공간이 된다.
2. 라이브니스 논쟁
1990년대 퍼포먼스 담론의 한 계기적 지점을 기록하는 펠런(Peggy Phelan)과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의 라이브니스 논쟁의 핵심은 라이브니스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 옹호나 반대의 여부가 아닌, ‘생생함’(the live)이라는 가치를 정의하는 각각의 서로 다른 방식에 있었다. “단지 사라짐으로써만 그 자신이 될 수 있는”6) 라이브 퍼포먼스의 존재론적 가치를 옹호하는 펠런에게 라이브니스란 1960년대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turn) 이후 퍼포먼스의 존재론적 근간이 되어준 현존(presence)의 가치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이다. 퍼포먼스 담론에서 현존의 골자를 형성하는 신체적 공동현존의 이상이란 단순히 공연자와 관객의 몸이 물리적으로 한 시간과 공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공연자의 육체적 현존이 가지는 아우라적 가치를 상정하는 것으로 펠런에게 라이브니스란 퍼포먼스의 찰나성과 일회성(ephemerality)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 일체의 매개를 거치지 않은 신기루 같은 동시적 합일감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1960년대 해프닝(happenings)이나 1970년대 보디 아트(body art) 등 ‘몸의 연극’이 성행했던 것은 공연자와 관객 사이 찰나적 상호작용의 순간, 이 순간 발생하는 즉각적인 마법 또는 에너지를 포착하고자 하는 네오아방가르드적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퍼포먼스의 유일한 생명은 현재에 있다. 퍼포먼스는 저장・녹화・기록될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반복적인 재현의 순환 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 일단 그러한 체계에 참여하고 나면, 그것은 퍼포먼스가 아닌 다른 것이 된다. 퍼포먼스가 재생산의 경제학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존재론적 전제를 배반하고 약화시키게 된다. 마치 주체성의 존재론과 같이 공연의 존재는 사라짐을 통해 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7)
펠런의 논의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현존, 라이브니스로 요약되는 1960년대 네오아방가르드의 기류를 소급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러한 가치들이 위협받기 시작한 상황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기계복제와 대량생산의 시대에 퍼포먼스가 매체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는 존립 근거란 기록이나 재생산이 가능한 다른 예술형식과의 차별점, 즉 사라짐이라는 가치에 있었다. 이에 반하여 아우슬랜더는 사라짐이라는 가치가 여타의 미디어 형식과 라이브 공연 사이에 변별적 특질이 되지 못하며, “일련의 텔레비주얼 작품들과 다른 기계적 복제품들도 사라짐을 통해서 그 자신이 된다”8)고 주장한다. 아우슬랜더는 펠런이 주장하는바 퍼포먼스의 현재성・즉각성・현존성의 가치를 고전적 라이브니스라 지칭하며, 미디어 환경이 우리의 삶에 전면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스 미디어와 외떨어진 그만의 문화경제 안에서 작동”하는 퍼포먼스의 존재론적 가치를 상정하는 것은 단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9) 아우슬랜더에게 라이브니스란 “존재론적으로 가정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공연예술이 미디어와 혼합된 양식(mediatization)이 되면서 생겨난 “효과”로서, 이미 존재했던 가치가 아닌 역사적 우발성을 가지는 개념이었다.10) 아우슬랜더에 따르면 공연의 특성으로서의 “라이브”라는 개념은 1920년대에 생겨났으며 이때의 역사적 정황으로 포착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브”라는 새로운 형식의 출현이 아닌, 라이브를 방불케 하는 녹음 및 재생 기술의 발달이다.11) 라이브니스 개념은 선험적인 존재론적 가치가 아닌, 라이브 공연의 차별성을 소급적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성에서 생겨난 일종의 “효과”로서, 이는 라이브와 라이브가 아닌 것을 구분해내야 할 담론적・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 라이브니스 개념은 이러한 담론적・사회적 요구에 좀 더 기민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의미로 확장, 진화된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이 주로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이를 견인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깊숙이 연관되는 정황은 라이브니스의 ‘역사적 우발성’이 아우슬랜더의 ‘매개된 라이브니스’ 개념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예컨대 “실시간 녹화”(recorded live)라는 개념은 단지 라이브 공연을 레코딩했다는 의미 이외에, 공연이 처음 발생한 시간이나 공간을 떠나서도 “라이브”로 경험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에 그 자체로서 모순형용(oxymoron)이지만, 아우슬랜더는 이것이 더 이상 모순형용으로 간주되지 않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언급한다.12) “실시간 녹화”라는 원거리적이고(telematic) 지연된(deferred) 관극의 형태가 라이브 공연으로 성립하게 되는 것은 공연자의 신체적 현존, 공연자와 관객의 시간적・공간적 공존이라는 기준이 이제 라이브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충분조건일 뿐 양자 사이에 필요충분조건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라이브니스는 이제 관객의 정서적 측면을 일컫는 개념이 되었으며,13) 리슨(Matthew Reason)의 논의에 이르면 라이브니스는 아예 관객이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가치가 된다. 리슨은 “관객이 구입한 상품으로서의 퍼포먼스에 참여할 때, 퍼포먼스의 라이브니스는 관객에게 소비되는 것”이라 정의하며,14) 라이브니스를 관객이 다른 관객과의 관계 및 연기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라이브 공연의 가치와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체험되거나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15) 아우슬랜더와 리슨이 라이브니스를 구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시간적 공존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지 않는 반면, 쿨드리(Nick Couldry)는 물리적 공간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시간적 차원에서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통해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16) 느낌만으로도 라이브니스는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쿨드리는 챗방에서 일어나는 소규모 구성원의 교류나 웹사이트의 뉴스를 소비하는 거대한 초국적 관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공존을 언급하며 이를 “온라인 라이브니스”(online liveness)라 규정한다. 더 나아가 전화나 문자메시지 등 모바일폰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일련의 그룹 친구들의 관계조차 “그룹 라이브니스”(group liveness)라는 새로운 개념의 라이브니스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17)
쿨드리가 제안하는 새로운 라이브니스의 형태는 퍼포머와 관객이라는 라이브니스 담론의 기본 구도를 빗겨나간 것이기는 하나, 디지털 환경에서 라이브니스가 정의되는 복잡다단한 담론의 단초가 되어준다. 테크놀로지는 이제 관극의 대상과 주체가 되는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조우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라이브니스의 경험이란 “기술적으로 매개된 지속적이고 알 수 없는 타인과의 시간적 공존”18)을 의미하게 되었다. 컴퓨터 기술이 “콘텐츠, 기술, 미학, 또는 전달의 형식”에 있어 부분적으로 차용되거나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디지털 퍼포먼스의 국면에 이르면, 전통적 라이브니스를 위시한 현존이나 실재의 개념은 더더욱 그 존재의 근간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가상과 실재는 늘 융합해 있거나 나아가 가상이 실재를 대신하기도 하며, 이러한 혼재 속에 기계는 라이브 공연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진 개체가 된다. 예컨대 솔츠(David Saltz)는 “라이브 미디어”(live media)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라이브니스가 인간 공연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퍼포머가 가지는 라이브니스의 가치는 그 육체성(corporeality)보다 자발성(spontaneity) 또는 가변성(variability)에 있음을 선언한다.19) 컴퓨터에 미리 저장되어 있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공연자의 행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하도록 조작되어 있는 라이브 미디어 공연에서 라이브니스의 감각을 유발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나 육체성이 아닌,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가능하게 하는 기계나 기술 그 자체다.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기계”에게 행위자성의 지위를 부여하는 모스(Margaret Morse)의 논의에 이르면20) 이제 라이브니스는 테크놀로지로 매개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서 인간과 순수 비인간 개체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확장된다. 아우슬랜더 또한 2012년 자신의 기존 논의를 디지털 매체를 통한 라이브니스에 대한 논의로 업데이트하며 챗봇(chatbot)을 예로 들어 인간과 컴퓨터 및 가상 개체와의 상호작용에서도 라이브니스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때 발생하는 라이브니스란 “웹사이트를 비롯한 여타 가상의 개체가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만큼 우리에게 생생하다고 느껴지는 정도”로 측정되는데, 아우슬랜더는 이를 “디지털 라이브니스”(digital liveness)라 규정한다.21) 아우슬랜더는 디지털 라이브니스의 방점을 그가 “관객”으로 부르는 수용자/사용자의 정서적 반응에 둠으로써, 비인간 개체의 퍼포머로서의 주체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디지털 라이브니스 개념이 빠지기 쉬운 기술적 결정론을 경계한다.22)
이러한 현상학적 관점의 이득이란 디지털 라이브니스가 가상의 존재의 내재적인 특성들만으로 유발되거나 오롯이 관객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오히려 디지털 라이브니스란 자아와 타자의 관계, 즉 ‘어떤 대상과 연계되는’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라이브니스의 경험은 가상의 존재가 우리에게 하는 요구에 대하여 우리가 그들을 라이브한 존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우리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발생한다.23)
아우슬랜더는 라이브니스가 기술적인 인공물이나 그것의 작동 그 자체보다 “우리가 그것에 관여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 완전한 현존으로 가져가려는 의지”24)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인터랙티브 기술은 그것이 실시간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라이브니스에 대한 요구를 구체화할 뿐이며, 라이브니스는 관객/사용자가 이 요구를 구속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취된다는 것이다. 아우슬랜더의 지적은 VR 환경에서 몰입이 작동하는 역설의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1980년대 컴퓨터 게임의 개발 과정에서 유래하는 몰입25)의 개념은 사용자가 디지털 게임이 제공하는 가상현실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지각할 때 게임에 더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내가 ‘그곳에 있다’(being there)는 단순하고도 명징한 느낌을 지칭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에서와는 달리 VR 환경에서 ‘그곳에 있다’는 느낌은 공간적 가상성에 대한 지각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에 VR 환경에서 몰입의 상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상의 존재가 우리에게 하는 요구에 대하여 우리가 그들을 라이브한 존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우리의 의식적인 행동”이 발동해야 한다. 몰아의 경지를 지향하는 VR 환경에서 의식적인 인지 활동을 가정하는 몰입이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전통적 라이브니스에서 디지털 라이브니스에 이르는 라이브니스 개념의 역사적 우발성을 추적하며 이 글의 논의는 이처럼 퍼포머 또는 관극의 대상이 가지는 육체성/가상성의 여부가 흐려지고 공연의 아우라적 가치가 그 시뮬라크르(simulacre)로 대체되며 퍼포먼스를 이루던 인간과 물질세계가 기계와 가상세계로 대체되는, 또는 이 모든 환원적 이항대립이 해체되는 디지털 가상이라는 겹겹의 매개된 공간에서 라이브니스가 오히려 ‘거기 있음’이라는 단순하고 주관적이며 명징한 지각으로 회귀하는 데 주목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 라이브니스를 유발하는 요소를 장소성이라는 몰입적 환경과 인터랙티브 장치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디지털 라이브니스의 국면에 개입하는 연극성의 측면을 추적하며, 특히 연극의 구조를 차용한 여타 VR 콘텐츠가 아닌 VR 환경을 차용한 디지털 퍼포먼스를 예로 들어 이러한 재매개의 형식이 원작의 메타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해석의 한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3. 디지털 라이브니스의 사례: 브이-센스의 「버추얼 플레이」
「버추얼 플레이」는 베케트의 『연극』을 가상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트리니티대학의 학제간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비주얼 컴퓨팅(Visual Computing) 연구소 브이-센스의 2017년작 「XR 플레이」(XR Play) 3부작의 일환으로 컴퓨터공학과 및 통계학과, 드라마학과, 전기전자공학부 등이 함께 참여한 연구로서의 실습(practice-as-research, PaR) 협업 프로젝트다. 본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은 브이-센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드와이어(Neill O’Dwyer)와 사뮈엘 베케트 학자인 드라마학과 교수 존슨(Nicholas Johnson)으로 이들은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의 지형을 그려내고자 『연극』이라는 단일한 작품을 각각 라이브 웹캐스트, 가상현실, 증강현실로 제작하여 「인터미디얼 플레이」(Intermedial Play) 「버추얼 플레이」 「어그먼티드 플레이」(Augmented Play) 3부작을 완성
했다.
베케트의 원작 『연극』은 코러스(Chorus), 서술부(Narration), 묵상부(Meditation)의 3부분으로 나누어지며 M, W1, W2로 지칭되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3분할의 구조를 가진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중앙에 위치한 똑같은 모양의 항아리 속에서 주둥이에 꼭 끼인 머리만을 드러내고 있는 이 세 명의 등장인물은 “나이와 외모를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마멸되어 있어 마치 항아리의 일부처럼 보인다”(Faces so lost to ages and aspectas to seem almost part of urns).26) 작품 내 이렇다 할 액션은 발생하지 않으며 작품을 추동하는 것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에 대한 발화다.26) 각각 한 남자(M), 그의 아내(W1), 그리고 정부(W2)로 어렵지 않게 추정되는 이들 세 인물의 이야기는 W1의 M에 대한 의심, W1의 미행, M의 실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M과 W2의 애정행각, W1과 W2의 대면과 다툼, 그리고 마지막으로 M의 W1로의 복귀와 사랑 고백으로 이어지는 상투적인 삼각관계와 불륜의 서사를 담고 있다. 반면에 대화가 전개되는 방식은 내용의 익숙함과 상투성에 반한다. 무대 위에서 조명은 아래에서 위로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비추고, 이들은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자신의 얼굴을 비출 때 순서대로 “자극을 받은 듯이 이야기를 지껄이도록”(147면) 되어 있다. 조명의 인물 간 이동은 즉각적이며, 한 명이 아닌 세 명의 등장인물을 동시에 비출 때에도 조명은 반드시 하나의 광원에서 셋으로 갈라진다. 조명이 비추면 반사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읊는 작품의 패턴에서 작품의 주요 액션을 형성하는 것은 조명과 등장인물들 사이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이며 이는 조명이라는 기술에 의해 매개된다. 이 즉각적인 상호관계란 결국 실질적으로 조명 조작자와 배우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베케트가 조명에 심문자(interrogator)라는 의인화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 개의 항아리로 이루어진 미니멀한 무대와 조명이라는 미니멀한 무대장치로 구성되는 이 작품은 그러나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술을 요하는 작품이었다. 베케트가 작품의 지문과 말미의 작가노트에서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스포트라이트의 작동은 작품이 라이브 연극의 형태로 초연되던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1962년 당시 세 개로 분기되는 단일 조명기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디지털 멀티플렉스 프로토콜(digital multiplex protocol, DMX)은 약 20년이 지난 1986년에나 발명된다. 2017년 「버추얼 플레이」의 선행 프로젝트였던 「인터미디얼 플레이」는 당대 첨단의 조명 기술이었던 스포트라이트를 팬-틸트-줌(pan-tilt-zoon, PTZ) 카메라로 대체하고 『연극』의 공연 실황을 무선 스트리밍을 통하여 각자의 장소에 있는 관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라이브 공연과 라이브 방송을 중첩시켰다. 즉 배우는 관객의 시선을 실시간으로 피드백받지 않고 관객은 화면을 통해서만 배우의 작업 강도를 접할 수 있었다. 「인터미디얼 플레이」는 일차적으로 라이브 웹캐스트라는 기술에 기대어 극장의 스펙터클을 각각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유통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것은 로봇 카메라라는 기계 시스템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렇듯 중계된 라이브의 형식은 참여자들의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테면 매개된 라이브 형식으로서 「인터미디얼 플레이」는 공간성을 떠난 시간적 관계로서 라이브니스를 규정한다. 참여자들은 스포트라이트의 역할을 하는 로봇 카메라의 눈을 통하여 심문의 현장감과 생생함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으며27) 관객들은 점차 자신을 카메라 자체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로봇 카메라를 매개로 한 관객과 배우들 사이의 상호작용적 관계는 본 프로젝트와 「버추얼 플레이」를 연결하는 지점이 된다. 그들이 스스로 버전 2.0이라고 부르는 「버추얼 플레이」에서 『연극』의 상호작용적 관계는 가상세계 속 상호작용적 몰입형 환경으로 새롭게 구축되며, 팬-틸트-줌 카메라는 VR 헤드셋(head mount displayer, HMD)으로 대체된다.
「인터미디얼 플레이」와 「버추얼 플레이」 두 개의 프로젝트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매개된’ 퍼포먼스의 형태였지만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적 공연에 기초하고 있다. 「인터미디얼 플레이」에서 로봇 카메라 너머 무대 위로 등장하는 것은 녹화된 이미지나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배우들이었고, 「버추얼 플레이」에서 볼류메트릭 비디오(volumetric video) 방식을 활용 VR 환경 내 3차원으로 재구성되는 이미지는 녹색 스크린을 배경으로 실제로 촬영된 배우들의 라이브 연기였다. 그러나 캡처 기술이라는 과거의 재현/재연 및 매개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버추얼 플레이」는 VR 시어터에서 인터랙티브 몰입형 환경이 가져오는 라이브니스의 경험을 다각도로 입증한다. 사용자는 VR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극이 펼쳐지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 공간 안에서 배우들은 녹화된 이미지, 즉 디지털 픽셀로서 존재하게 된다. 피멘텔(Ken Pimentel)과 테이셰이라(KevinTeixeira)는 VR을 정의하는 특질을 “몰입”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환경으로 둘러싸이는 내포”28)라고 정의한 바 있다. “가상현실에 참여하기만 해도 현전의 경험이 즉각적으로 다가오는”29) 몰입감은 VR 기술의 장소성에 기반하는 것으로, 3D 모델링을 바탕으로 한 고해상도의 그래픽과 공간 오디오(spatial audio)30) 등 VR 기술은 “탐색 가능한 3차원의 환경을 시뮬레이션하여”31) 사용자가 자신이 속한 물리적 환경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있다고 느끼도록 한다. 이러한 공감각적 착각 속에서 사용자는 자신의 몸이 관극의 대상인 가상공간, 표상물인 이미지 속에 있다고 믿게 된다. 몰입의 순간이 가정하는 몰아적 상태란 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나와 투사된 이미지와의 거리가 사라지고 매체의 사물성이 의식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볼터와 그루신은 몰입의 상태를 일컬어 “비매개”(immediacy)32)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표상물이 인간의 육체에서 비물질로 변화했을 뿐 가상현실에서의 몰입이 전통적 라이브니스의 직접성, 현존감과 맞닿는 촉각적 경험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머천(Josephine Machon)이 몰입의 경험을 연극적 실천의 계보에서 논의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 라이브니스 담론의 계보에 서 있는 바그너(Richard Wagner)의 총체연극(total theatre), 아르토의 잔혹극, 해프닝과 환경연극(environmental theatre)를 소환하는 것은33) 이처럼 몰입의 경험이 제공하는 유사 현존감에 기인한다.
「버추얼 플레이」 프로젝트의 연구자들은 3D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고정된 시점의 360도 동영상이 아닌 자유시점 비디오(free-viewpoint video, FVV) 캡처 기술을 사용했다. 이로써 사용자는 단순히 제작자가 지정한 카메라 위치에서 공간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점과 시청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환경에 놓이게 된다. 예컨대 본 퍼포먼스의 사용자/관객은 항아리의 둥그런 형체를 실감할 수 있고 항아리 위로 삐져나온 배우를 옆면에서도 볼 수 있으며 위로 올려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 인터랙션이나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의 측면에서 「버추얼 플레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설계는 원작에서 무대감독 또는 작가에게 있던 스포트라이트의 제어권이 디지털 퍼포먼스의 사용자에게 옮겨가는 것이다. 오드와이어는 이 VR 시어터의 환경을 유니티(Unity) 게임 엔진에 구축함으로써 사용자의 시선에 맞추어 가상 스포라이트의 빔이 비추어지도록 프로그래밍을 구동했다. 이를 통하여 “최종 사용자는 배우를 바라보고 주의를 집중하는 것만으로 상호의존적인 독백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으며”34) 심지어 배우들의 독백 순서나 누가 얼마 동안 말을 할지도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장치를 통하여 VR 시어터에서의 몰입은 기존 영상 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언뜻 보기에 스포트라이트의 빔이 사용자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몰입은 관객의 시각이 카메라의 눈과 동일시되는 듯한 착각을 통해 일어나는 영화에서의 몰입 과정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버추얼 플레이」는 사용자의 시선이 카메라의 이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카메라가 향하는 지점을 사용자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수동적인 소비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해지는 역설적인 관극의 상황이 펼쳐진다. 전통적인 극에서 라이브 공연의 상호작용에서 배제되었던 관객은 능동적인 사용자의 지위로 격상되며,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경험하는 즉각성과 효능감은 VR 기술의 장소성이 유발하는 몰입의 경험과 함께 가상공간에서 디지털 라이브니스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35)
4. 디지털 라이브니스라는 자유의 역설
전통적 라이브니스에서 매개된 라이브니스로, 더 나아가 디지털 라이브니스로의 전환은 라이브니스가 특정한 형식이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끊임없이 유동적인 속성을 지님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라이브 공연에서 공연자의 존재론적 특질에 대한 아우라적 경험이 매개된 공간에서의 인지적・감각적 경험이라는 시뮬라크르로 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디지털 매체로의 재매개가 디지털 문화 환경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수순인지 아니면 결국에는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소멸되어가는 과정인지에 관한 논쟁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으며, 이는 결국 디지털 문화 환경에서 장르의 자생력에 관한 문제로 수렴할 뿐이다. 공연예술의 디지털 매체로의 재매개 과정은 예술작품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한층 진보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예술 대중들에게 전통적 문학/드라마 작품을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 되었다. 요컨대 「XR 플레이」 프로젝트는 기술의 혁신이라는 측면보다는 AR/VR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혁신적인 “시청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36) 제작에 참여한 연구자와 실무진이 연구소의 홈페이지와 다수의 논문을 통하여 이례적으로 제작의 전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한 것은 이렇듯 관극과 교육의 목적을 겸하는 VR 콘텐츠의 제작이 저렴한 비용으로도 전문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방증하기 위함이었다.
드라마 텍스트의 모든 무대화의 결과물이 해석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한 현실화의 실례이듯이 재매개의 과정은 문화적 인공물이 진화된 구현 환경으로 이식되는 과정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 해석의 과정을 포함한다. 오드와이어와 존슨은 이 해석의 과정에서 소실되는 원작의 특성들이 있듯이 필연적으로 획득되는 원작의 특성들이 있음에 주목하며, 이 중첩된 매개의 과정이 반드시 문화적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실제로 『연극』은 VR의 인터랙티브 몰입 환경으로 구현해내기에 최적화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가상현실의 사이버 공간은 원작에서 텅 빈 무대가 전달하는 실존주의적 의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비-)공간적 배경이 되어준다. “세월에 마멸되어”(147면)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등장인물들의 극도의 노쇠 상태는 라이브 연극에서 주로 얼굴에 진흙을 덧바르는 등 유골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무대 위에서 표현되었지만 「버추얼 플레이」의 배우들은 일상적인 깨끗한 얼굴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전자의 연출이 흙으로 빚어진 무거운 항아리라는 물질성과 공명한다면, 후자의 연출은 ‘디지털 연옥’에 비견될 만한 가상공간의 비물질성과 조우한다. 아날로그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육체성과 배우들을 가둔 항아리의 물질성은 가상공간과 이미지의 비물질성으로 대체되며, 사용자는 이 비물질의 확장된 공간에서 이에 상응하는 사이버 공간의 무중력상태를 경험한다. 부조리극에서 텅 빈 무대 위에 역설적으로 감금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시공간적 진공은 VR 시어터에서 가상현실이라는 디지털 진공의 상태로 전이되며, 이러한 디지털 진공의 상태는 원작의 서사구조를 아날로그 무대보다 더욱 선명하게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원작의 갈등구조는 삼각관계라는 상투적인 관계를 빙빙 돌 뿐 세 인물의 대사는 선형적인 서사에 도달하지 못하며, 서사의 의미체계를 형성할 만한 욕망・질투・증오・회피・체념 등 인간적인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재매개의 과정에서 소실되는 배우의 육체적인 현존성은 가상공간에 참여하는 사용자의 방향감각 상실과 더불어 배우들 사이의 교통되는 감정이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고 진공에 부표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강화한다.
이렇듯 디지털 미디어로의 재매개가 원작에 대한 잠재적인 해석의 가능성으로 기능하며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원작의 특성이 획득되는 것은 상당 부분 『연극』이 가지는 메타극적인 속성에 기인한다. 『연극』은 통상적인 의미의 드라마에 해당하지 않으며 작품은 그 자체로서 퍼포먼스의 알고리듬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작품 안에서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패턴이 독백이 시작되고 끝나는 패턴, 즉 배우의 목소리가 켜지고 꺼지는 패턴과 호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입력과 출력의 알고리듬을 형성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적인 관계는 작품을 작동시키는 내재적 원리가 된다. 심문자와 배우들, 앞선 대사와 뒤따르는 대사라는 입력과 출력의 정확한 조응은 유희(play)와 조작(play)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며, 이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것은 기계(조명)이거나 기계를 방불케 할 만한 등장인물들의 강박적인 장광설이다. 삼각관계라는 치정으로 설정된 이들의 상호관계는 단지 독백에 가까운 대사로만 매개되며, 이 관계는 이 독백들이 교환되는 리드미컬한 보폭으로 매개될 뿐, 이들은 서로 치대고 얽히는 관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버추얼 플레이」에서 일어나는 VR 체험은 관극의 행위이자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는 행위다. 연극과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사이의 개념적 연관성에 관한 출처로서는 흔히 1991년 동명의 저서에서 “연극으로서의 컴퓨터”(computer as theatre) 개념을 주창한 로럴(Brenda Laurel)이 지목되지만,37) 베케트는 일찍이 1962년 『연극』을 통하여 이러한 유비관계에 천착했다. 작품이 제시하는 다양한 관계성과 상호관계는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비유될 만한 연극의 메커니즘에 대한 메타적 사유를 담고 있으며 그 자체로 알고리듬을 수행한다. 「버추얼 플레이」는 이러한 알고리듬을 축자적으로 디지털화하는 VR 시어터로서, 인터랙티브 장치를 통한 이 정연한 알고리듬의 설계 과정에서 관객이었던 사용자는 역설적으로 행위능력을 획득한다. 인간과 기계, 인간과 물질, 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용자의 개입이란 무엇보다 온몸의 감각으로, 이 세계에 참여하여 자신의 행위로 이 가상의 세계를 움직이고 변형시키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용자는 마침내 기계의 일부가 되어 이러한 입력과 출력의 시퀀스로 이어지는 강박의 리듬을 흩트려놓는다. 컴퓨터-프로그래머에 비견될 만한 라이브 공연에서의 배우-무대감독의 일방적 입력과 출력 관계는, 관객이 VR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인자가 되어 직접 조명 또는 무대감독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예측 불가능해지고 변칙적이 된다. 아날로그 무대의 배우가 가상세계 속의 이미지로서 비물질적인 특질을 획득하면서 이 디지털 퍼포먼스의 퍼포머는 디지털 매체 그 자체가 되고, 관객은 가상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서’ 이 비물질의 확장된 공간에 자신의 신체를 입력하고 이미지와 세계의 변형에 참여하게 된다.
예컨대 「버추얼 플레이」에서 사용자/관객은 한 사람의 독백을 듣다가 이 독백이 끝나기 전에 이내 다른 인물로 옮겨갈 수 있으며 그 순서 또한 원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원작으로부터의 자유는 연구자들에게도 아직은 유보적인 사안이며 프로그래밍에 의한 제어를 고려해야 하는 변수에 해당한다.
이 시퀀스가 닫혀 있는지(베케트가 정의한 텍스트 순서대로) 아니면 열려 있는지(시청자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무작위로), 열려 있는 경우 어떤 규칙을 따르는지(다음 독백이 과연 중간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아니면 사용자가 마지막으로 떠난 지점에서 시작되는지)는 프로그래밍의 문제이자 실험의 대상이다.38)
아날로그 공연에서 디지털 퍼포먼스로의 ‘마이그레이션’ 과정은 지독한 기술적 규칙들의 연속으로 가능해지는바, 단지 “열린” 시퀀스를 무한히 양산해내기 위하여 이 수많은 규칙과 제어가 적용되는 디지털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자유이며 역설이다. 오드와이어의 우려가 시사하듯 연극의 시퀀스와 컴퓨터의 시퀀스는 원칙적으로 닫힌 시퀀스이며 이들은 열려 있는 경우에도 규칙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원작에서 무작위로 편성된 듯한 인물들의 독백은 베케트가 그 순서와 패턴, 분량, 각각의 속도 등을 세심하게 계산하여 배치한 결과로서 서로 어긋나는 듯한 대화들 속에 대화의 순서와 패턴, 분량, 속도 등은 서로 공명하고 있으며 마치 교향곡처럼 대위법과 변주를 거듭한다. 물론 디지털 퍼포먼스에서 대화의 순서와 패턴, 분량에 대하여 사용자/관객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이들만의 교향곡, 이들만의 변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이라는 미리 설계된 자유를 벗어날 수는 없으며 이처럼 디지털 매체로의 재매개 과정이라는 무한한 매개와 해석과 자유의 겹들이 최종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의외로 저자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이다.
VR 공간에서의 몰입의 경험 또한 디지털 라이브니스가 부여하는 역설적인 자유이기는 마찬가지다. 게임이론가 카예하(Gordon Calleja)는 몰입의 개념을 흡수(absorption)와 이전(transport), 두 가지 상태의 공존으로 이해한다.39) 흡수의 상태가 한 공간이나 상태로의 함몰을 의미한다면, 이전이란 나를 이곳—현실세계—에서 저곳—극적 또는 가상세계—으로 이행하게 하는, 몰입의 상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매체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개념이다. 사용자가 HMD를 착용하는 순간 흡수라는 몰입의 상태에 이르는 것은 상대적으로 이 헤드셋의 시야 밖으로 매체의 사물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은 헤드셋을 벗는 순간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발생하며, 이렇게 기계의 도구성에 의지하여 두 가지 상반된 상태를 오가는 사용자에게 몰입이란 이 불연속적 변화에 대한 일종의 인지적・심리적 승인이자 약속이다. 오드와이어는 아날로그 무대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관객들과 달리 VR시어터의 사용자/관객들은 가상환경의 안과 밖을 오고 가는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상황에 몰입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데,40) 이처럼 몰입이란 VR 시어터가 가지는 메타극적 구조가 처음부터 승인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VR 공간에서 자발적인 불신에의 유예는 인지적 몰입(cognitive immersion)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한편으로 참여자가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감각적 몰입(sensory immersion)에 의해 견인되는 측면이 있다. 몰입이란 단순히 가상의 상황에 대한 몰입이 아니라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상황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며, 그 틈들과의 유희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연극성과 맞닿는다. 전통적 라이브니스가 매개된 라이브니스를 거쳐 디지털 라이브니스로 퍼포먼스 담론이 ‘진화’되어가면서 연극성의 개념 또한 새롭게 환기되었다. 연극성”(theatricality)이라는 부제가 달렸던 『본질』(Substance)의 2002년 특별호 서문에서 페럴(Josette Feral)은 연극성을 “일상공간”과 “재현공간”, “실제”(reality)와 “허구”(fiction)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틈들(cleavages)로 규정함으로써41) 예술작품은 “연극(-성-)을 패배시키고 중지시켜야 한다”는42) 모더니즘의 정언명제에 깃든 반연극적 담론을 타개하고 연극성에 깃든 해체적·전복적 면모를 새롭게 상상해낸다. 페럴의 논의에서 연극은 그 자신을 타자성의 공간으로 현실화하는 매체이며 연극성은 “타자성이라는 가상의 공간”(virtual space of the other)을 창조해내는 수행적인 행위로 정의된다.43) 연극성이란 퍼포머의 육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자질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연극성의 안과 밖으로 나뉜 상호불연속적인 공간들을 오고 가는 관객의 “분리와 통합의 유희”(play of disjunction/unification)44)에 의해 가능해진다. 메타극적인 지각과 현존감이라는 순수경험이 융합된 상태로서 디지털 라이브니스는 ‘흡수’와 ‘전이’를 넘나드는 사용자의 지속적인 상태 변화이며, 가상현실이란 이 변화에 결부되는 연극성 속에서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다. 『연극과 그 더블』(Theatre and Its Double)에서 아르토가 지칭한 가상현실이란 무대 위의 존재들이 재현하는 허상이 아니라 표상이 아닌 실재, 실재하는 현실이었으며 이는 현실을 전복할 수 있는 끊임없는 변형의 공간을 의미했다.45)
5. 나가며
아날로그 무대와 영화부터 라이브 웹캐스트,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이르기까지 베케트의 『연극』이 거쳐온 플랫폼들이 가지는 다양한 사용성(affordance)46)은 재매개의 과정 자체가 드라마 텍스트에 대한 유력한 해석의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VR 콘텐츠를 활용한 디지털 퍼포먼스 프로젝트 「버추얼 플레이」에서 디지털 라이브니스란 매체의 혁신이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자유 또는 민주적 가치로 요약된다. 「버추얼 플레이」의 VR 시어터는 컴퓨터 게임이 프로시저럴(procedural)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던 방식을 활용, 사용자/관객을 스토리텔링 과정의 중심에 둠으로써 이들이 가상세계에 더 적절하게 동화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능동적으로 원작을 탐색하고 발견하고 해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들은 이전의 VR 콘텐츠들이 여전히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주목, 사용자가 내러티브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가상환경의 구축에 집중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디지털 매체를 겨냥하고 쓰여진 경우가 아니라면 전통적 드라마 작품이 디지털 대중에게 소비될 수 있는 형태로 재매개화되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할 일종의 관문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치판단의 존재를 아예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해석의 자유와 매체가 제공하는 해체적 가능성을 빙자하여 무책임하게 난립하는 ‘디지털 찌꺼기’들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대중이 가지는 매체의 리터러시와 드라마 장르의 리터러시는 상호호환적이거나 필요충분의 관계가 아니며 그렇기에 문제적이다.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연극기술학에서 기술이 테크놀로지만을 의미할 수 없는 연유다.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를 자연(Nature)과 영혼(Soul)이라는 두 개의 대립항으로 일괄했던 초절주의자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희구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양자 간의 정확한 조응이었다.47) 에머슨의 기술(writing)에 따르면 자연이란 내가 아닌 모든 것을 의미하며 기술(art)이란 인간의 영혼이 자연과 결합한 경우를 의미한다. 철학적인 의미가 아닌 좀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에머슨에게 자연은 산・들・물・나무 같은 자연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아방가르드 시대의 사이버 공간에서 내가 아닌 자연이란 순수 테크놀로지로 화한다.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기술이 탄생한 배경에는 자연, 순수성에 비견될 만한 테크놀로지의 절대성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가 있지만, 이 자연과 조응하는 영혼의 존재를 입증해줄 만한 기술(art)에 대한 희구도 깃들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들판 위 투명한 눈알은 여전히 들판을 응시하지만 주변을 순환하는 온갖 기류가 통과하는 통로가 되었다. 아르토에게 착란 상태(trance)에 다다른 무대 위 몸은 정신의 상태를 직관적이고 신체적으로 표출하는 “형상”(figure)이었으며, 이는 느낌과 흐름이 순환하고 관통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통로였다.48) 디지털 시대의 투명한 눈알, HMD가 가져다주는 디지털 라이브니스란 메타극적인 지각과 현존감이라는 순수경험이 교차하며 연극성이라는 인지적 행위와 현실을 교란시키는 아르토의 가상성이 만나는 세계다.
1) Antonin Artaud, Theatre and Its Double, trans. Mary Caroline Richards (New York: Grove Weidenfeld, 1958) 49면.
2) Kathleen Fitzpatrick, “The Humanities, Done Digitally,” Debates in the Digital Humanities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2) 12면.
3) Steve Dixon, Digital Performance: A History of New Media in Theater, Dance, Performance Art, and Installation (Cambridge & London: The MIT Press, 2007) 3면.
4) 앞의 책 3면.
5) ‘재매개’는 미디어 학자인 볼터(Jay David Bolter)와 그루신(Richard Grusin)이 주창한 개념으로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현양식,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 등을 차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볼터와 그루신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미디어는 재매개되었으며 이들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는 라이브 공연을 원본, 매개된 공연을 복제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라이브니스 개념에 반하는 것이다. 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IT Press, 2000).
6) Peggy Phelan, Unmarked: The Politics of Performance (New York: Routledge, 1996) 146면.
7) 같은 책 같은 면.
8) 아우슬랜더는 영화와는 대조적으로 실시간 전송이 가능한 “텔레비전 이미지는 현재의 순간에만 발생하며” “전송의 순간에 수정, 변경, 또는 변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텔레비주얼 이미지의 라이브니스를 주장한다. Philip Auslander, Liveness: Performance in a Mediatized Culture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9) 44~ 45면
9) 같은 책 45면.
10) Philip Auslander, “Digital Liveness: A Historico-Philosophical Perspective,” A Journal of Performance Art 34.3 (2012) 3면.
11) 사운드 레코딩이라는 기록 매체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지만 초기 형태의 녹음은 오히려 라이브 공연의 우위성을 강화하는 선에 머물렀다. 그러나 1920년경 라디오 생방송 매체가 발달하면서 이전의 사운드 재생 기술과는 달리 라이브와 녹음된 사운드의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청취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듣고 있는 것이 라이브 사운드인지 녹음된 사운드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1934년 BBC 연감이 이러한 청취자들의 불만을 언급하면서 최초로 ‘라이브’를 공연과 관련된 용어로 사용한다.
12) 같은 글 5면.
13) 같은 글 같은 면.
14) Matthew Reason, “Theatre Audience and Perceptions of ‘Liveness’ in Performance,” Particip@tions 1.2 (May 2004) 25면.
15) 리슨은 아우슬랜더의 매개된 라이브니스 개념이 라이브니스와 “유사 라이브니스”(live-like), “논라이브”(non-live) 등의 형태와의 차별점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하며 여전히 라이브니스의 경험에 고유성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라이브니스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시간적 공존보다는 관객의 경험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아우슬랜더의 논의와 맥을 같이한다.
16) Auslander, 앞의 글 6면.
17) Nick Couldry, “Liveness, ‘Reality,’ and the Mediated Habitus from Television to the Mobile Phone,” The Communication Review 7 (2004) 356~57면.
18) Auslander, 앞의 글 6면.
19) David Saltz, “Live Media: Interactive Technology and Theatre,” Theatre Topics 11.2 (2001) 107~30면.
20) Margaret Morse, Virtualities: Television, Media Art, and Cyberculture (Bloomington: Indiana UP, 1998) 15면.
21) Auslander, 앞의 글 6면.
22)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비인간 개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상정하기에 이때의 라이브니스란 고전적 라이브니스의 경우와는 달리 관극의 대상이 되는 개체의 육체적/물리적 존재보다 이것을 수용하는 사용자/관객의 정서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23) Auslander, 앞의 글 10면.
24) 같은 글 8면.
25) 일반적인 의미에서 디지털 라이브니스란 디지털 미디어의 몰입형 VR 콘텐츠에서 몰입의 경험을 유발하는 디지털 인스톨레이션의 효과적 측면을 이른다. 아우슬랜더가 지적하는 실시간 반응이란 몰입을 유발하는 핵심 장치인 인터랙티브 기술을 일컫는 것으로, 디지털 게임을 위시한 VR 콘텐츠들은 사용자와 매체 간의 상호관계를 고려한 인터랙티브 환경을 상당 부분 연극의 공연과 관객 사이의 상호관계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26) Samuel Beckett, Play in The Complete Dramatic Works (London: Faber and Faber, 2003) 147면. 앞으로 이 책의 인용은 괄호 안에 면수로 표기한다. 모든 인용문은 필자 번역임.
27) Neill O’Dwyer & Nicholas Johnson, “Exploring Volumetric Video and Narrative through Samuel Beckett’s Play,” International Journal of Performance Arts and Digital Media 15. 1 (2019) 55면.
28) Ken Pimentel & Kevin Teixeira, Virtual Reality: Through the New Looking Glass (New York: McGraw-Hill, 1993) 8면.
29) O’Dwyer & Johnson, 앞의 글 64면.
30) 가상현실에서 실감나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각적 요소 못지않게 청각적 요소 또한 중요하다. 공간 음향은 인간의 청감 특성이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원리 그대로를 재현하는 기술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가상/증강/확장현실 환경에서 좀 더 몰입감 있는 소리 경험을 제공한다.
31) Dixon, 앞의 책 364면.
32) Bolter & Grusin, 앞의 책 21면.
33) Josephine Machon, Immersive Theatres: Intimacy and Immediacy in Contemporar Performance (Hampshire: Palgrave Macmillan, 2013) 21면.
34) Neill O’Dwyer et al., “Virtual Play in Free-Viewpoint Video: Reinterpreting Samuel Beckett for Virtual Reality,” 2017 IEEE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xed and Augmented Reality (ISMAR-Adjunct) 264면.
35) 여기서 라이브니스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는 인지과학에서 각각 장소환영(place illusion)과 그럴듯한 환영(plausibility illusion)으로 규정된다. 장소환영은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한(being there, presence) 느낌의 정도로 사용자가 스스로 가상의 장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가상의 환경이 설정하는 장소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얼마나 갖는지에 대한 정도를 나타낸다. 그럴듯한 환영은 장소환영과는 달리 인지능력보다 참여자 개개인이 해당 가상환경에서 ‘무엇’을 인지했는지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환영으로, 이를 위해서는 가상환경이 사용자의 행동에 따라 반드시 연관된 반응을 보여야 하며 이러한 가상환경의 반응과 사건(event)들이 사용자의 실제 환경에서의 상호작용에 기반하여 사용자의 기대감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36) O’Dwyer et al., 앞의 글 263면.
37) Brenda Laurel, Computer as Theater (Reading: Addison-Wesley, 1991).
38) O’Dwyer et al., 앞의 글 265면.
39) Gordon Calleja, In–Game: From Immersion to Incorporation (Boston: The MIT Press, 2011) 32~33면.
40) O’Dwyer et al., 앞의 글 263면.
41) Josette Féral, “Foreword,” Substance 31.2/3 (2002) 11면.
42) Michael Fried, “Art and Objecthood,” Minimal Art: A Critical Anthology, ed. Gregory Battcock (New York: Dutton, 1968) 135면.
43) Josette Féral, “Theatricality: The Specificity of Theatrical Language,” Substance 31.2/3 (2002) 98면.
44) Féral, 앞의 글 12면.
45) Artaud, 앞의 책 49면.
46) 사용성은 사물과 사용자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디자인 이론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인지심리학자 깁슨(J. J. Gibson)이 처음 사용했다. 문학비평 분야에서는 2015년 르빈(Caroline Levine)이 『형식들』(Forms)에서 사용성 개념에 담긴 “제약과 역량의 상반된 특성에 중점을 두어” 이른바 신형식주의(New Formalism)의 맥락에서 사용했으며, 본 연구의 용례도 대체적으로 르빈의 경우를 따른다. Caroline Levine, Form: Whole, Rhythm, Hierarchy, Network (Princeton, NJ: Princeton UP, 2015) 9면. ‘사용성’ 개념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위해서는 6~11면을 참조하라.
47) “Philosophically considered, the universe is composed of Nature and the Soul. Strictly speaking, therefore, all that is separate from us, all which Philosophy distinguishes as the NOT ME, that is, both nature and art, all other men and my own body, must be ranked under this name, NATURE. In enumerating the values of nature and casting up their sum, I shall use the word in both senses;-in its common and in its philosophical import. In inquiries so general as our present one, the inaccuracy is not material; no confusionof thought will occur. Nature, in the common sense, refers to essences unchanged by man; space, the air, the river, the leaf. Art is applied to the mixture of his will with the same things, as in a house, a canal, a statue, a picture.” Ralph Waldo Emerson, “Nature,” Ralph Waldo Emerson (Oxford: Oxford UP, 1990) 3면.
48) Antonin Artaud, Artaud on Theatre (London: Methuen, 1989) 129면.
│조연이│
* 이 연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내 일반과제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曺淵珥 서울과기대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최근 논문으로는 「Marjorie Prime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돌봄과 디지털 휴먼의 타자성」(202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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